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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네가 태어났을 때, 사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노량해전.

7년간 이어진 전쟁 최후이자 최대의 전투입니다.

 

또,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은 전투이기에 한산, 명량 만큼이나 유명한 전투이면서

한편으론 어떤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전투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가장 덜 알려진 전투이기도 합니다.

 

최근 영화로도 나와 흥행 중이기에,

디테일하게는 아니더라도 간략하게 전투 배경과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1. 노량해전 당시, 조일전쟁의 간략한 배경 상황.

 

https://youtu.be/bTVnK772_7E?si=v__oiMaZdi3C5NC5

↑ 참고하면 좋은 영상.

 

 

 

1-1. 전쟁 초기, 일본의 쾌속 진격.

 

1592년,

일본은 20만 대군을 동원해 조선과 전면전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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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의 총력전을 상정해두지 않았던 조선은 불과 2개월만에 평양까지 함락당하며 멸망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상 평양 함락 이후부터는 상황이 변화했습니다.

 

 

 

조선군은 급작스러운 대규모 침공에 순간적으로 와해되었을 뿐이지, 궤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흩어진 조선군은 각 지방 관리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집결하여 재정비에 성공했고,

이들이 부산에서 평양까지 일렬로 길게 늘어진 일본군을 상대로 다시 공세에 나서면서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진격했던 일본군은 되려 반쯤 붕괴된 보급로를 갖고,

공세를 멈춘 채 평양에 웅크리는 형세가 되었습니다.

 

 

 

한양에서도, 그리고 평양에서도 조선 왕, 선조를 잡지 못 한 일본군은

이제 앞엔 재정비에 성공한 조선군을, 뒤에는 게릴라전을 펼치며 보급로를 괴롭히는 지방 조선군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식한 임진왜란 초기의 모습은 이렇듯 멸망 직전의 모습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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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이렇듯 불안한 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상황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현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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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키이우를 함락하고 드네프르강 동쪽을 장악하고자 했던 러시아가 키이우를 함락하는데 실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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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이 붕괴해 일부 병력들이 고립, 항복, 이탈하면서 점령지를 탈환당해

 

본래 빠른 수도 함락으로 단기전을 목표로 했던 전쟁이 장기화되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1-2. 전쟁 중기, 조선의 반격과 명나라의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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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일본군이 이 상황을 타개하려던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A. 불안한 육로 대신 수로를 활용하여 일본군 주력에 보급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의주를 함락시킨다.

 

B.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서 조선군보다 우위에 있으니 이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의주를 압박,

의주에 위치한 조선 조정과 지방 조선군 간의 연계를 방해하여 현재의 주력군 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한다.

 

 

 

자신들의 이점을 바탕으로 우위를 유지하며 적에 공세를 유지한다는 전략은 사실 너무나 교과서적입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를 성공시키지 못 했습니다.


 

 

 

 

A. 불안한 육로 대신 수로를 활용하여 일본군 주력에 보급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의주를 함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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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해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었습니다.

일본 수군이 서해로 진출하지 못 하니, 바다를 통한 보급은 실패했습니다.

 

 

 

 

 

B.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서 조선군보다 우위에 있으니 이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의주를 압박,

의주에 위치한 조선 조정과 지방 조선군 간의 연계를 방해하여 현재의 주력군 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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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명군이 참전했습니다.

일본군이 가진 군사적 우위는 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8월부터는 조선과 일본이 대등하게 전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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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은 평양을 두고 6개월간 격전을 벌였습니다.

 

평양성 탈환전에서 끝내 조선-명 연합이 승리를 거두면서 조선은 평양을 탈환했고,

일본은 빠르게 진격하던 전쟁 초 1년과는 달리 2년차부터는 수세로 전환하게 됩니다.

 

 

 

 

 

평양성 전투 패배 이후,

일본군은 후퇴하는 병력을 한양 부근에서 수습, 재정비하여 전선을 형성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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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한양 탈환을 위하여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부근에 주둔한 조선군을 상대로,

한양 방위를 위해 10배가 넘는 병력을 동원해 선제 공격을 한 일본군이 참패하면서 (행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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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하는 조-명 연합군을 상대로 한양을 지킬 수 없게 된 일본군은 경상남도 일대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허약한 조선이 전쟁 내내 일본에게 얻어맞았다고만 알고있는 대중들의 인식과 달리,

임진왜란은 초기 대응에 실패한 조선이 발발 이후 8개월간 고생했으나, 반격에 나서고서는 6개월도 안 되어 대부분의 국토를 수복했습니다.

 

 

 

이후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조선-명과 일본은 긴 협상기에 들어서면서,

크고 작은 국지전과 민간 피해와는 별개로 점령지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1-3. 전쟁 후기, 일본의 재침략. 정유재란.

 

조선이 대부분의 영토를 수복한 상태에서 지지부진한 협상을 거친 지가 3년이 넘었습니다.

무능한 자들은 이런 상황에 곧잘 방심하고, 탐욕을 부리곤 합니다.

 

원균의 음해로 인한 이순신의 좌천 또한 이 시기에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원균의 음해로 인해 이순신이 좌천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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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14만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재침략했습니다. (정유재란 발발)

 

 

 

이 때, 이순신의 자리를 빼앗아 자리를 꿰찼던 원균은 조선 수군을 스스로 궤멸시키고

일본군이 전쟁 기간 내내 단 한번도 쥐지 못 했던 제해권을 일본군에 안겨다주면서

(칠천량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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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 연합군은 어떤 면에서는 평양을 두고 격전을 벌이던 때보다도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 일본군은 14만 대군이 경상도에 위치해 조선-명 연합군보다 군사적 우위를 점했고,

 

2. 수도를 점령해 조정을 붕괴시키는 단기전을 계획하여 조선의 핵심지 중 한 곳인 전라도를 방치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라도를 공격하여 안정적인 진격을 획책했으며,

 

3. 조선 수군이 완전히 궤멸함에 따라 곡창지대인 전라도가 남해안을 따라 수륙 양측에서 공격당하여 유린당할 가능성이 생겼고,

 

4. 수로를 통해 일본의 최전방 주력군이 보급을 받아 다시금 한양을 노릴 것이었으며,

 

5. 일본군이 천혜의 요새인 조령(문경새재)을 우회하여 전라북도와 충청도를 지나는 진격로를 가짐에 따라

한양 이전에 방어선을 구축할 곳이 없었다는 문제가 발생.

 

 

 

 

조선은 원균 단 한 명에 의해 미드 오픈 상태가 된 것.

정말이지 원균은 임진왜란 최고의 일본 장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역사) 일본군은 왜 명량해전을 피하지 않았을까?

 

다시금 국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단 13척 만으로 100척 이상의 적을 물리쳐 제해권을 되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면서 조선은 구원받았습니다.

 

 

 

1598년.png

 

해안을 따라 남부지방을 점령하고, 한양을 노리며 현재의 경기도 안성까지 진격하던 일본군은

1597년 10월 26일, 명량에서 수군이 패전함에 따라 보급에 제동이 걸렸고,

 

서서히 날씨가 추워지자 다시금 경상남도 일대로 급히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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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사로병진책입니다.

 

 

 

급히 후퇴하는 일본군을 상대로, 

 

세 방향에서 치고 들어가는 육군과

바다에서 밀고 들어오는 해군을 통해

 

일본에 점령당한 조선의 주요 도시들을 탈환하고 남해안의 일본군들을 뿌리뽑겠다는 작전.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

사람은 남의 전쟁에 내 피를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법입니다.

 

'굳이 흘리지 않을 수 있는 피를, 내 전쟁도 아닌 전쟁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필요가 있는가.'

'7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이미 피폐한데, 수십만에 달하는 일본군은 아직 건재하다. 굳이 얌전한 말벌집을 건드려 피를 볼 필요가 없다.'

'히데요시가 죽어 일본군이 철군하는 지금이 드디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인데, 철수하는 자들을 굳이 막아 다시 확전할 필요가 있느냐.'

 

퇴로를 열어준 명군에 의해, 사로병진책은 실패하고 맙니다.

 

 

 

 

 

2. 노량해전의 배경

 

그러나 조선군은 후퇴하는 일본군을 그대로 놓아보내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타국 간의 전쟁이었던 명군과는 달리, 조선은 피해를 본 당사자였기 때문이며,

이건 그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천민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는 개마고원부터 남쪽으로는 남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 온 국토가,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가,

 

그리고 나 자신이 또한 이 전쟁의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저기 바다 너머로 도망가려는 적들은 내 원수요,

가족의 원수이고, 또한 조선의 원수였습니다.

 

지금 저들을 놓아주면 안 됩니다.

절대 놓아줄 수 없습니다.

 

적들을 놓아주면 정유년(1597년, 정유재란)에 그랬듯,

정비하여 또다시 이 땅을 침략할 뿐일 겁니다.

 

 

 

절대 이대로 일본군을 놓아줄 수 없고, 놓아주어서도 안 됩니다.

 

 

 

 

 

3. 노량해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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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jpg

 

사로병진책이 비록 본래 목적(일본군을 남해안에서 완전히 뿌리뽑는다.)은 실패했지만,

어찌 되었든간 남해안의 일부 왜성들을 제외하고는 일본군 점령지를 모두 탈환, 수복하는데에는 성공했습니다.

 

해서, 노량해전 당시 남은 주요 왜성들은 순천왜성, 사천왜성, 웅천왜성, 부산왜성이었습니다.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고성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의 소 요시토시(고니시의 사위, 대마도주),
부산의 테라자와 히로타카.

 

남은 일본 다이묘들은 어떻게든 조선군의 포위를 풀고 일본 열도로 살아서 복귀해야만 했고,

이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수륙 양면에서 조선-명 연합군에게 포위당했고,

또 가장 깊숙한 내륙에 위치해있던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살기위해 명 수군 제독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한 척의 연락선을 통과시켰고,

이 연락선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구원을 위해,

함께 탈출해 열도로 복귀하기 위해 다른 다이묘들을 소집해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이로서 조선-명 연합수군은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남해의 일본 다이묘 연합수군에게 역으로 포위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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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군을 이대로 보내줄 수 없었던 조선군은 조선 수군의 주도로 조선-명 연합수군을 이끌어,

포위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이 때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598년 12월 19일 이덕형의 보고에 따르면,

이순신은 "연락선이 순천을 떠난지 4일이 되었으니 내일쯤 많은 군사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먼저 나아가 싸우면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라 하였다.

진린은 소극적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순신이 눈물 흘리며 청하자 함께 하기로 했다.

 

1599년 2월 2일 이덕형의 보고에 따르면,

이순신은 "적의 구원병이 수일 내 당도할 것이니, 난 먼저 가서 요격하겠다" 하고, 진린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순신이 듣지 않고 단호히 나팔을 불며 배를 띄우자, 진린이 어쩔 수 없이 함께 따랐다고 했다.

 

 

 

분명 같은 이의, 같은 상황에 대한 증언을 남긴 당대의 기록임에도 두 기록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만,

두 기록 모두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연합수군을 이끌었고, 일본 연합 수군이 오는 것을 알고도 요격하러 노량으로 향했다.'

 

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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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노량해전에 앞서, 조선의 함대를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1. 서쪽의 순천왜성(고니시 유키나가)를 위장공격하여 이들의 출전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을 극소수의 위장함대.

 

2. 노량해협의 출로를 차단하여 해협을 지나오는 일본 연합 수군의 진로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을 분대.

 

3. 유도된 진로를 따라 이동한 일본 연합 수군을 격파하는 역할을 맡을 본대.

 

 

 

그리고…….

 

 

 

 

 

4. 노량해전

 

4-1. 순천왜성

 

순천왜성2.jpg

 

조선의 위장함대가 늦은 밤, 서쪽의 순천왜성에 미친듯이 포격하며 화력을 투사했습니다.

 

 

 

노량해전 2개월 전에는 순천왜성 인근의 순천 검단산성에 주둔한 조선-명 연합 육군이 이순신의 수군과 협력하여 순천왜성을 공격한 적이 있었으므로

(순천왜성 전투)

 

순천왜성에 틀어박힌 고니시 유키나가는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해석하여,

'이순신이 구원군이 오기 전에 순천왜성을 끝장내려는 것'으로 오인했습니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순천왜성이 위치한 산을 통채로 불태워가며 왜성의 위급함을 일본 연합 수군에게 알립니다.

 

 

 

 

 

4-2. 일본연합수군

 

연기를 본 시마즈 요시히로도 고니시 유키나가와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1. 조선 수군이 고립된 순천왜성을 노리고 포위하여 강한 화력으로 단기 결전을 위한 포격을 벌이고 있다.

 

2. 그리고 연기로 보아, 순천왜성의 상황이 무척이나 급박하다.

 

 

 

이에 긴급함을 느끼고 노량해협을 빠르게 통과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이순신의 계획대로 모두 유도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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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해전의 전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도.

 

 

 

일본 연합수군이 노량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순풍을 타고 해협을 빠르게 통과했으나,

일본 함대가 해협을 통과해 출구로 나오자 북쪽에 숨어있던 조선 분대와 명나라 수군이 기습 포격하며 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 연합수군은 조선군을 포위, 섬멸하려했고,

북서쪽에 숨어있던 명나라 수군이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일본 연합수군을 따라 전선을 형성함에 따라,

 

일본 연합수군에겐 세가지 선택지가 놓였습니다.

 

 

 

1. 예상 외의 기습을 당했으니, 순천왜성을 버리고 노량해협을 거슬러 올라가 후퇴한다.

→ 당초 목적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구원 실패, 역풍과 물살을 거슬러 후퇴해야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최악의 선택지.

 

2. 교전 중인 조선-명 연합수군의 수가 일본 연합수군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으니, 전면전을 통해 섬멸하고 이동한다.

→ 순천왜성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소규모인 적의 목적 자체가 연합수군을 지연시켜 순천왜성을 함락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차악의 선택지.

 

3. 조선-명 연합수군이 수가 적은 것과, 순천왜성에서 대량의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아 조선-명 연합수군의 주력은 순천왜성을 노리는 것이 맞다.

→ 적의 함선 수가 적어 우리 함대에 많은 피해를 주기 어렵고, 저들의 함선이 우리보다 속도가 느린데다, 바람과 물살 또한 순천을 향하니.

최소한의 대응만 하며 빠르게 순천으로 이동해 순천왜성을 포위한 적의 수군 주력을 포위, 격파하고 고니시를 구원한다.

본래 목적이었던 고니시의 구원도 달성할 수 있고, 전술적으로 가장 쉬우며, 또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이다.

 

 

 

당연하게도 일본 수군은 3번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서는 억울하게도 이 것이 이들의 패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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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적군을 우회하며 돌파한 일본연합수군의 앞에 이순신의 조선수군본대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적 함대 가운데로 파고들어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적들이 이 땅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

 

 

 

때마침 일본군에게는 불행히도,

지금껏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던 바람의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일본 연합수군은 바람을 타고 돌진해오는 조선-명 연합수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이에 전투에 어려움이 있음을 느끼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비교적 전력이 약한 명나라 수군쪽을 돌파하여 포위망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오히려 조선군이 포위망을 단단히 조이게 됩니다.

 

 

 

돌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시마즈 요시히로는 바뀐 바람과 물살을 타고 다시 동쪽으로 후퇴하기로 선택을 바꾸었습니다.

 

순천왜성이 적의 주력 수군에게 포위되지 않았음은 현재 적 수군의 규모를 보면 알 수 있고,

이미 일본 연합수군의 피해는 극심했습니다.

 

일단 후퇴했다가 날이 밝아오면 함대를 재정비하여 순천왜성의 구원을 위한 결전을 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더욱 구원 성공의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산을 불태우며 구원을 요청하던 순천왜성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함정에 빠졌던 것이라면 이미 구원을 오고 있을 수도 있으니 불리한 전투를 지속할 필요도 없습니다.

 

 

 

순천왜성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현재 이 불리한 전투를 지속하는 것보다 후퇴하였다가 날이 밝으면 상황을 보고 교전을 시도하는 것이 나음은 명약관화했습니다.

 

 

 

그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또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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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마즈 요시히로는 몰랐습니다.

그 판단까지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는 사실을요.

 

 

 

물살이 바뀌고, 전투 상황이 불리하면 적은 반드시 동쪽으로 후퇴하여 날이 밝을 때까지 정비하고자 할 것이다.

동쪽은 적들의 탈출로가 아닌, 적들을 잡기 위해 이순신이 마련해둔 통발이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자연스레 동쪽으로 향하는 물살이 큰 바다로 이어지지 않고,

깊숙히 들어갔을 때에야 육지로 막혀있는 바다이며 자신들은 꼼짝없이 갇혀 포격당할 것임을 깨달았을 때.

 

시마즈 요시히로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순천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원하고, 다같이 열도로 복귀하기 위해.

남해안에 위치한 왜성들을 정리하고 모든 함대를 이끌고 돌아왔는데.

 

배를 버리더라도 꼼짝없이 섬에 갇혀 탈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자각했을겁니다.

 

 

 

 

 

일본 연합수군은 일말의 탈출 가능성을 위해 적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최초, 조선 분대를 포위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명 함대를 돌파하려는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조선 본대.

이순신의 함대로 전군이 돌진했습니다.

 

 

 

 

 

진인사대천명, 모사재인성사재천이라 합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고, 하늘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것인데….

 

노량해전의 끝이 그러했습니다.

 

 

 

이순신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여 하늘의 뜻을 기다렸으나,

전쟁이 끝난 탓인지, 어쩌면 이순신 장군의 역할이 끝난 것이었는지.

 

7년에 이르는 전쟁 기간 내내 장군의 뜻과 함께 하던 하늘이,

이 때만은 하늘이 이순신의 뜻에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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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대부분의 함선을 잃었지만 돌파에 성공해 다이묘들이 탈출했습니다.

 

구국의 성웅은 전투에서 이기고, 적들을 이 땅에서 뿌리뽑았으나 전사했습니다.

 

 

 

흔히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알려져있는 이순신 장군의 유언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군사들을 놀라게 하지 마라.'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병졸들을 걱정하고, 전투 상황을 걱정하며, 전쟁의 끝을 생각한 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은 이 전투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16세기 말에 멸망의 위기에 놓였었던 국가는 이 전투를 끝으로 300년의 수명을 더 연장했습니다.

5개의 댓글

잘 읽고 갑니다!

1
2024.01.17
@날씨가나쁘잖아

한산도 쓰려하는데 사람들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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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7
@2NAUwU

제발 써줘요 개붕씨!! 글 너무 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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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AUwU

일단 저는 볼 예정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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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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