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연애 상담을 하다 보면 상대방과 싸우고 온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납니다. 대부분은 상대방을 욕하면서 자신의 편을 찾다가,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결국 ‘제가 먼저 사과를 하는 게 맞겠네요.’라는 결론을 내시지요. 보통 이런 결론까지 도달했다면 깔끔하게 사과하고 멋지게 화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제가 먼저 사과하면 을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생각하나요?]

 

 

사과하면 지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수직적이고 투쟁적인 관계에 익숙하신 분들입니다. ‘승자가 없다.’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기세등등해져서 나를 누르면 어쩌나?’하는 강박관념에 집착하는 분일 수도 있지요. 어쨌든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제대로 사과해본 적이 없다.’라는 점입니다. 이런 분들의 우려대로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일까요?

 

 

‘미안해’의 진짜 정체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A와 B는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습니다. A는 설레는 마음에 일찍이 일어나 옷을 골라 입고 한껏 꾸미고 나와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요. B 역시 데이트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는데, 웬걸 주말이라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데이트 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되었습니다. A는 그 바람 부는 추운 날에 밖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지요.

A는 화가 나서 B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늦었어?”

 

A의 말에 B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미안해. 조금 늦은 건데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한편, 평행우주인 지구-2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A와 B의 데이트에 B가 늦어버린 것이지요. 지구-2의 A도 화가 나서 B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늦었어?”

 

A의 말에 B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추운데 기다리느라 너무 힘들었지? 일단 따듯한데 들어갈까?”

 

[지구-1과 지구-2중 어느 세계의 B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

 

지구-1의 B, 지구-2의 B 중에서 어떤 지구의 B가 마음에 드나요?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지구-2의 B를 더 마음에 들 것입니다. 신기한 사실은 지구-2의 B는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미안해’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미안해’의 진짜 정체는 바로 ‘너를 이해해’인 것입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미안해’의 진짜 정체가 ‘이해해’라는 것을 이해하셨다면, 제대로 된 사과는 나를 을로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갑으로 올려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을 겁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결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강아지나 고양이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과 동급이거나 더 높은 급에 올라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인 겁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그렇다면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찾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상대방이 하는 말 들어보기

 

많은 경우, 상대방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직접 말해줍니다. 대부분은 “니가 OO해서”라는 형태로 내 탓을 하지요. 기분은 나쁘겠지만 이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힌트가 됩니다.

 

 

2. 상대방의 시선에서 상대방을 변호해보기

 

하지만 까다로운 상대방이라면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직접 답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요.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봐.’라는 말을 들으면 ‘객관적인 시선’이나 ‘제 3자의 시선’에서 상대방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객관적인 시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요.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이 확실하다 하여도 상대방이 느낀 ‘서운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찌 되었건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확실하다 해도, 지금 당장은 상대방의 감정을 보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누차 말하지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관계'에서는 나의 감정뿐만 아니라 너의 감정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상대방과 ‘연애’를 하는 중이지 ‘징계위원회’나 ‘재판’을 하는 중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묻는 것은 일단 상대방의 기분이 풀리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요. (상대방과 헤어질 자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네가 잘못했잖아’하셔도 돼요.)

 

 

3. 물어보기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알았다면 “내가 OO한 행동 때문에 네 기분이 상했구나? 맞지?”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확인을 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화가 난 이유를 모르겠다면 “나의 어떤 행동이 네 기분을 상하게 했어?”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4. 만약 상대방이 계속 화를 낸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상대방이 화를 낸다면 여러분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 겁니다. 이 관계를 이어갈지, 포기할지요. 관계를 포기하겠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면, 좀 더 깊게 생각해야 해요. 덮어놓고 화를 내는 경우라면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요. 하나는 상대방이 너무 화가 나서, 왜 화가 나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상대방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상대방이 생각해도 상대방의 잘못이 확실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방어 수단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너한테 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다.’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지요. 이 상황이 잘 해결되길 바라며, 너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보편적으로 “네가 정말 많이 화가 났구나. 너의 기분 이해해.” 하는 말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다독여 주는 것이 유효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했다면?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면, 사과할 차례입니다(상대방이 잘못한 경우는 나중에 다뤄보도록 해요.). “너는 그랬구나”의 형태를 빌려서요.

 

“내가 30분이나 늦어서 네가 많이 기다렸겠다. 꽤 추웠지? 늦어서 정말 미안해”

 

여기서 좀 더 오버하고 싶으면 “네가 화날 수도 있겠다.”, “나였어도 화가 났을 거야.”와 같은 말을 덧붙여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해주면 좋습니다.

 

“네가 추운데 기다리느라 고생이 많았겠네. 네가 화낼 수도 있는 상황이야. 내가 미안해”

 

[이런 말을 하면, 싸움은 보통 5분내로 끝납니다.]

 

 

혹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보통은 사과 한마디로 끝내는 게 제일 좋습니다. 내가 하는 해명은 변명처럼 들릴 테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정말 억울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꼭 표현해야겠다면 ‘나 전달법’을 활용해보시면 좋습니다. 하지만, ‘나 전달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기로 해요. 벌써 3000자가 넘었거든요.

 

 

결론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제대로 사과하기만 하면 내가 을이 될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역량은 ‘감사하기’와 ‘사과하기’입니다. 방금 여러분은 ‘사과하기’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관계를 더 잘 풀어나갈 수 있는 멋진 분이 되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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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절 요약

상대방은 "미안해"라는 말보다 "이해해"라는 말을 듣고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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