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전쟁사 - 여진정벌 (4) 철수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ZfPnI

 

 

 

http://www.dogdrip.net/52911268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1) 전쟁전야

http://www.dogdrip.net/53870213 고려전쟁사 - 여진정벌 (2) 준비

http://www.dogdrip.net/54035978 고려전쟁사 - 여진정벌 (3) 여진정벌과 9성

 

 

 

춥고 힘든 전투 

 

 

 

 고려는 9성을 구축하고 백성을 이주시켰다. 그렇게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행정구역으로 만들면 물자도 지속적으로 이동되어야 하며 교류도 있어야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이

주정책이 중요했다. 이러한 상황은 군사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형성했는데 군의 임무가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그곳은 아직 국경선도 그어지지 않고 국경 안에는 아직 많은 여진부락이 존재했다.

 

성이 험하고 튼튼하여 쉽게 함락 당하지는 않았으나 싸우고 지키느라 군사의 손실이 많으며 개척한 땅이 넓어 9성이 서로 거리가 요원하고 골짜기와 동네가 깊고 멀어 적은 복병을 매복해 왕래하는 사람을 노략질함이 잦았다.

 

  여진군은 본래 고려와 정규전을 했었다. 그러나 고려가 지키는 성을 공략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두 번의 웅주성 공격에서 참담한 패배를 맞본 바 있었다. 여진군은 고려군의 상황을 이용하는 전술을 택하게 된다. 여진인과 적은 고려인이 혼재하고 고려군은 넓게 포진되있다. 게릴라전을 하기엔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11087월 전쟁의 양상은 게릴라전으로 바뀌어 전후방이 없는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행영병마판관어사 신현 등이 수군을 거느리고 적선을 쳐 20급을 베었다.

행영평마판관 왕자지, 척준경이 여진과 함주, 영주 두 곳에서 싸워 33급을 베었다.

윤관이 적의 머리 31개를 바쳤다.

병마판관 유익, 장군 송충, 신기군 박회절 등이 여진과 길주에서 싸우다 전사하다.

왕자지 척준경이 여진을 사지령에서 쳐 27급을 베고 3명을 사로잡았다.

동계행영병마녹사 왕사근, 하경택 등이 여진과 함주에서 싸우다 전사하다.

 

 

 

  칠보산 산길.jpg

<길주의 산길>

 

 

  이렇게 해상과 육지, 길주와 함주에서 동시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왕자지와 척준경부대는 9성을 순회하며 적을 기동방어 했던 것 같다. 고려군은 피로가 높아지고 전투가 잦아지며 희생도 늘어갔다. 소득과 목표가 없이 전쟁이 장기전과 게릴라전으로 진행되며 병사의 사기는 떨어져가며 사명감과 의욕도 사라져갔다. 벌써 3번째 겨울이었다.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고 감기, 폐렴, 동상 등으로 전투력이 저하되며 병력은 교체되며 실전을 경험한 군인은 줄어들고 부대원의 유대는 떨어졌다.

  그나마 병력도 마땅치 않았고 동북면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다시 소집되며 고려는 전국에서 장사들을 선발하지만 좋은 군인이 되려면 훈련은 필수고 그 훈련은 시간이 필요한데 고려는 시간이 없었다.

  여진군이 게릴라전으로 전술을 바꾼이 얼마 안돼서 알색이 모친의 병환으로 귀환하고 부지휘관인 알노가 지휘하게 되는데 알노는 한가지 전술을 더 시행하게 되는데 그는 작년 고려와의 공성전에서 성공직전에 갔지만 고려군의 구원부대의 돌파에 패배한 경험을 생각했다. 당시 고려군은 수준이 높아 정면대결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구원부대에 본대가 공격받아 실패한 전투에서 교훈을 얻어 여진도 9성을 쌓아 자신들의 주둔지를 강화하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몰았다.

  그렇게 여진군은 보급과 병력의 충원이 수월해졌다. 알색도 귀환해 이 전술을 계속 사용하며 고려군이 이제 한계라고 판단했고 다시 대규모 공세를 준비했다. 게릴라전은 효과적이지만 궁극적인 승리 즉 적이 전쟁을 포기하게 만들 타격을 하기 힘들었다. 승리를 위해 여진은 다시 군대를 모았고 목표는 길주였다. 여진군은 길주 주변에 목책 6개를 쌓아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한다.

  길주는 병마부사 이관진과 병마판관 허재가 지키고 있었다. 이관진은 최홍정과 함께 초기부터 종군한 장수로 윤관이 척준경과 함께 돌격을 맡긴 바 있으며 병목에서도 윤관을 구한 부대도 최홍정과 이관진이었다. 허재는 공신가문의 후예였고 부친도 대창승을 지냈으나 부친이 요절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과거도 보지 못해 외가에 의탁해 문음으로 벼슬을 받았는데 숙종 때 철주 방어판관으로 공을 세워 능력을 인정받아 내시로 발탁되었다. 그들도 척준경 못지않게 공을 세운 고려의 장수들이었다.

  전투는 시작되었고 여진정벌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하고 집요한 공세였다. 당시 오연총은 개경에 있었는데 길주가 포위됬다는 소식을 듣고 출전을 자원했다. 어차피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을 보내야 했는데 오연총이나 윤관이 아니면 갈 사람도 없었지만 같은 전우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은 상하를 가리지 않았다. 2차 웅주성 전투를 지휘한 임언도 이 때 귀환해 승선이 되었는데 11092월 연등회 날 큰 잔치가 벌어졌을 때 모두 술이 오르고 흥이 나 춤을 추자 임언은 견딜 수 없었는지 거짓으로 취한체하며 말하길

 

동쪽 변방이 아직 편안하지 못한데 차마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잔치장을 빠져나오고 왕자지와 척준경과 함께 동북면으로 간 경력이 있다.

 

    길주성.jpg

<길주성 이는 조선시대로 여진정벌 당시엔 더 작고 토성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오연총은 구원부대를 이끌고 길주로 간다. 그러나 길주에 다다를 무렵 여진의 기습을 받게 된다. 고려군은 행군을 서두르다 실수를 하게 됬다. 실수의 대가는 컸다. 고려군은 대패를 하며 사상자와 포로가 된 자가 셀 수 없었다. 고려군은 여진정벌을 하며 여러번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이런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

  여진정벌을 시작하고 최대의 패배를 당한 오연총은 자신을 처벌을 요구하는 장계를 올렸으나 예종은 대신 윤관을 파견한다. 그 후 윤관과 오연총은 다시 군을 정비해 길주로 가는 길을 돌파하려 했으나 멈추게 되는데 여진이 강화를 청했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길주는 계속 공격 받았고 윤관과 오연총은 돌파하려 했으나 실패 했던 것 같다. 이 무렵 여진은 기록을 남겼는데

 

목리문전에서 적을 만나 오랫동안 교전했다. 아리가 창을 뽑아 말을 달려 고려의 장수를 진중에 찌르니 적이 궤주했다. 아리가 적병을 패주시키고 2성을 취했다. 고려가 쳐들어왔으나 우리 군사가 지켰기 때문에 철수했다. 아리가 그들을 추격해 갈라수에 이르렀을 때 고려인들이 물 위로 달아나자 아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거의 죽였다. 석전탄군과 합세해 가다 고려군 5만을 만나 쳐서 패주시켰다. 다시 석적탄과 적 7만을 만나 조우했는데 아리가 먼저 적을 치자 고려군이 대패했다. 석전탄이 하루에 세 번이나 많은 적을 깨뜨리고 성을 공략했으니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하고는 상을 내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 때부터 화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됬고 9성을 포기하고 강화를 주장하는 강화파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주의 군민을 구해야할 부대는 파견해야했다. 그러나 구원부대의 편성은 늦어졌다. 무슨 음모가 있던건지 정말 사정이 어려운건진 모르나 전쟁의 의지는 떨어졌고 전투력도 예전과 같지 않은건 사실이었다.

  오연총의 부대도 윤관의 부대도 저지한 여진군은 이 전쟁을 끝낼 기회라 생각했다. 강화사절을 파견하는 한편 정예를 동원한 공세를 한다. 강화를 하려면 적이 강화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야했다. 여진은 날랜 병사를 동원해 성을 공격했고 정예군을 동원한 공격을 고려군은 막아내지 못하며 방어선이 뚫리고 함락직전까지 간다. 다행이 날이 저물어 여진군은 철수했으나 하루의 생명을 연장 받은 것 이었다. 구출은 기대할 수 없었다.

 

 

  장진호전투 병사.jpg

<장진호 전투의 미군 혹한의 지역에서 고립된 전투는 가혹하다>

 

 

  여진군의 맹공을 받았던 길주성의 병사들은 불안과 배신감에 빠져있었다. 지난날 함께 전투를 한 전우들은 하루 종일 계속된 싸움에 하나둘씩 쓰러져 가며 지친 병사들은 편한 대로 기대고 누워있었다. 여진정벌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왔다. 성을 쌓으며 주민을 지키고 혹한의 땅에서 남북을 오가며 전투를 수십번도 치뤘다. 처음엔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웅주성 전투때만 해도 자부심이 있었고 전쟁이라고 부를 만 했다. 서로를 위해 싸우고 선봉을 피하지 않았고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앞뒤 안가리고 달려왔다.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무용담을 자랑할 수도 없고 헌신과 용기, 자부심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며 죽어갔다. 그들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버림받고 자신들의 고생이 패배로 끝나는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날 밤 모두 하룻밤 사이 성안에 새로운 성벽을 쌓았다.

 

 

허재석관.jpg    

<허재석관 이 석관에 길주의 전투 기록이 있다 물론 그의 열전에도>

 

 

  다음 날 쳐들어온 여진군은 성을 쌓은 고려군을 보고 철수했다. 아마 그들도 전날의 접전으로 한계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여진도 더 이상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길주성은 그렇게 외부의 구원이 없이 130일을 버티며 전쟁의 끝을 평화조약으로 만들었다.

  예종은 여진사신을 불러 환원 결정을 통보했다. 이렇게 전쟁은 종식되었다. 최홍정의 지휘로 고려군은 성을 헐고 9성에서 철수했다. 여러 상황 때문에 민간인을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는데 여진은 강화에 기뻐하며 처진 백성들을 수레에 태워 보냈고 한사람도 살상하지 않았다 한다. 과장 됬을지 모르나 여진은 불필요하게 고려를 자극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윤관과 오연총은 힘든 발걸음을 하며 귀환했고 예종은 개선행사를 생략하고 승지를 보내 중도에서 윤관과 우연총의 부월을 거둬 지휘관직을 해임했고 그 둘은 궁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병사들은 차례로 개경으로 귀환해 개선행사를 했다. 신기군은 8월에 개경에 입성하며 예종이 그들을 위로한다.

 

전쟁의 패전은 장수의 잘못이다 짐이 어찌 너희들의 노고를 잊으랴

 

  병사들은 어려운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 그들의 기록이 많지 않은게 아쉬울 뿐이다.

 

 

  신봉문 터.jpg

<신봉문터 예종은 이곳에서 군을 사열했다>

 

 

각자의 방향

 

 

  여진은 1113년 아골타가 수장이 되며 1114년 거란에 봉기하며 1115년 아골타는 황제를 칭하며 금을 건국한다. 1122년엔 연경을 함락해 거란을 사실상 멸망시키며 1127년 태종은 북송의 수도 개봉을 함락시키며 송의 황제를 잡아간다.

  고려는 당시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이 민족을 공격해 전쟁터에서 결코 밀리지 않고 일진일퇴의 싸움을 했다. 비록 장기전에 밀리고 9성을 영토로 확보하는덴 실패했지만 17만의 대군을 동원해 긴 시간 혈전을 벌인 정부와 병사들의 노고를 무시할 순 없다. 우리 역사에 이처럼 오래 대규모로 원정군을 편성해 전 국력을 동원해 지원한 사례는 없다. 9성을 반환하자는 관료들도 겁쟁이가 아닌 4년간 원정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이었다. 아쉬운 사실은 참전자들의 종전 후 중요인물 상당수가 그리 오래 살지도 못하며 최홍정이나 이관진은 종적이 묘연한 것으로 보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례가 보인다.

  그들 중 특별한 삶을 살았던 척준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정치의 혼란에 염증을 느껴 인종 초반 홀연히 관직을 버리고 낙향을 하나 놀란 왕이 사신을 보내 그를 다시 데려오니 척준경에겐 천추의 한이 되었다. 그 후 이자겸의 언동에 인종이 거사를 해 지녹연-지채문 증손-, 최탁, 오탁, 권수, 고석등이 이자겸을 제거케 하는 과정에서 척준경은 동생인 척준신과 아들인 척순이 죽은 사실에 인종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이자겸의 난에 참여한다. 이자겸과 인종의 화의가 결정되고 인종의 행렬이 남궁으로 갈 때 척준경은 최탁 등 호위군사를 모조리 죽여 복수를 한다. 하지만 다시 이자겸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사실을 듣자 이자겸의 집으로 가

 

내 죄가 크다! 법관에 들어가 자수할련다! 난은 모두 니들이 한 일인데 나만 죽으라 하다니!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인종은 이자겸에대한 척준경의 불신을 깨닫고 아들과 동생을 죽여 말성였지만 척준경을 회유했다. 척준경은 이자겸 제거의 동의를 한다. 척준경은 인종이 감금된 곳을 쳐들어가 왕을 구하고 이자겸 일파를 제거해 많은 관직을 받았는데 결국 토사구팽 되어 다음 해 1127년 암태도로 유배되나 곧 고향으로 이배되고 1130년엔 아들의 토지를 복구해 주었다. 그 후 14년간 고향에 살다 1144년 죽게되는데 죽기 수십일 전 인종은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나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그의 열전은 반역전에 있다.

 

  그렇게 고려는 현종 이후 황금기를 이뤄냈지만 예종을 마지막으로 인종이 즉위하며 이자겸의 난을 시작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6개의 댓글

2014.08.04
꿀잼! 추천!
0
2014.08.04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건 머야??
0
2014.08.04
@한히힛
글쓴사람이랑 보는사람이랑 다르게 보이나 전에도 누가 짤린다고 했는데 스샷좀 찍어서 링크 걸어줄 수 있음?

http://i1mgur.com/ 여기가 편함 1지우고 ㅇㅇ
0
2014.08.05
키아 내가 읽어보고 책을 사게 만든 글 ㅋㅋ
0
2014.08.05
잘보고간다 게이야!!
0
2014.08.08
척준경은 그래도 천수를 누리다 죽었으니 다행이다 ㅠㅠ
진짜 재밌게 잘 읽었음여!!! 필력 갑!!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17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보돔 호수 살인사건 그그그그 0 7 시간 전
1241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1 지나가는김개붕 3 12 시간 전
1241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9 대한민국이탈리아 16 1 일 전
1241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3 FishAndMaps 3 1 일 전
1241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그녀는 왜 일본 최고령 여성 사형수가 되었나 10 그그그그 7 3 일 전
12412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3 3 일 전
12411 [역사] 인류의 기원 (3) 3 식별불해 6 4 일 전
1241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재벌 3세의 아내가 사라졌다? 그리고 밝혀지... 그그그그 4 6 일 전
1240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의붓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사진 3 그그그그 7 8 일 전
12408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8 일 전
12407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5 10 일 전
1240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8 일 전
12405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10 일 전
12404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2 일 전
12403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1 일 전
12402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2 일 전
12401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2 일 전
12400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2 일 전
12399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11 일 전
12398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체포되기까지 28년이... 1 그그그그 7 13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