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3) 2차 거란전쟁 발발과 통주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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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gdrip.net/52911268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1) 전쟁전야

 

 

 

 

 

 

거란의 침공배경

 

 

  고려와 전쟁을 끝낸 거란의 성장은 놀라웠다. 1004년 거란의 성종은 중국원정을 단행해 1005년 전연까지 쳐들어간다. 하지만 송군의 반격으로 더 이상 진군을 하지 못했지만 송은 거란과 전연의 맹이라고 불리는 조약을 맺는데 송은 거란과 사대관계를 맺고 매년 10만 냥의 은과 비단 20만 필을 상납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거란은 송을 굴복시켰지만 중국 내부 깊숙이 정복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동쪽의 정치 상황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후대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1009년 고려에선 강조의 정변이 일어나 목종이 폐위되며 현종이 즉위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성종은 당장 고려 정벌의 기회로 삼는다. 관계개선이 아닌 그가 직접 친정하는 정복을 위한 침공이었다.

 

  성종.jpg

<성종은 거란을 동아시아 최강국가로 만든 명군이었다>

 

 

  거란은 결국 침공사실을 통보한다. 이는 신사의 도리가 아닌 고려의 쿠데타 직후 반대파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지만 그 의도는 실패한다. 그래도 고려의 국내사정이 심각했던건 사실이었다. 고려도 거란에 사신을 보내 화의요청을 하지만 그와 별도로 전쟁준비와 정세를 살피기 위함도 있었다.

  성종은 강조처벌을 위한 친정을 선포하고 40만의 규모의 원정군을 소집하며 도통은 소배압이 임명된다. 이에 여진도 적극 가담하게 되는데 무려 만 필의 말을 거란에 바치고 원정에 참여한다.

  다행스럽게 고려는 거란에 대한 대비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이번엔 30만의 대군을 소집한다. 그리고 각 성엔 주현민으로 구성된 주현군이 있었던 만큼 40만을 상회한다. 양측 모두 최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한다.

  강조는 직접 이 병력을 이끌고 북으로 향한다. 전쟁소식이 전해진 고려는 오랫동안 중단된 팔관회-1차 거란전쟁 당시 이지백이 청한 그것-를 재개해 온 도시가 축제를 벌인다. 이날 개경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짐작해볼만 하다. 그리고 훗날 이 전쟁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에겐 평생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됬다.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송도.jpg

<송도 전경 저 길은 사람으로 꽉 차있었을까>

 

 

통주 회전

 

 

  101011월 거란군은 1차 전쟁 때처럼 내원성에서 압록강을 건넜지만 소손녕이 이 지역을 무인지경으로 지나갈때와는 달랐다. 서희의 노력 덕분에 주요 거점은 모두 요새화가 되있었다. 최초로 맞닥뜨린 요새는 흥화진이었다. 조선시대 백마산성으로도 불린 이 곳은 풍부한 수원이 최대 장점이었다. 장기 농성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성에는 도순검사 양규, 진사 정성, 부사 장작, 주부 이수화, 판관 늠희령, 장호 등이 이끄는 고려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요충지인 만큼 엄선한 장군과 정예군을 배치한다. 병자호란 때 이 곳을 지킨 임경업은 적정 인원을 4235명으로 산정했다.

 

 

  흥화진.jpg

<후에 백마산성이라 불린 흥화진>

 

 

  거란군은 10101117~23일까지 7일간 공격을 하지만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결국 거란군은 20만을 무로대에 남기고 남진을 한다. 거란군이 7일 만에 흥화진을 포기한건 원래 거란군이 성에 얽매이기 싫어했다. 사실 이 전술은 무서운 전술인데 보급문제 때문이다. 거란은 과거 수, 당보다 보급에 자유로웠다. 보급로가 끊겨도 당분간은 싸울 수 있었던 거란군에겐 큰 장점이었다. 그래도 성을 그대로 지나치면 배후공격을 당할 수 있기에 약간의 병력을 두지만 흥화진의 경우는 특수해서 원정군의 절반인 20만을 남기는데 이는 흥화진의 고려군만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중간기지쯤으로 생각해서 였다.

  흥화진에서 남하하는 길은 두가지 였는데 고려는 강조의 본대는 통주, 최사위에게는 귀주를 방어하게 했다. 이에 거란도 통주엔 본대를 귀주엔 별동대를 보낸다. 여기서 최사위군은 귀주 북쪽에서 패전하는데 전세에는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거 같다.

 

 

 

  통주성.jpg

<동림(통주)성 이곳에거 강조는 거란군과 전투를 한다>

   

 

  조선시대 통주에는 세 개의 성이 있었는데 그 중에 거란군과 싸운 성은 동림성이었다. 강조는 성밖으로 나와 거란군에 승부를 걸었다. 강조의 부대는 세 부대였는데 세 지류가 만나는 점, 서쪽 돈대, 청강 안쪽에 진을 쳤으며 이는 퇴로가 확보되고 요새가 가까이 있고 하천에 보호를 받게 한 이상적인 포진이었다.

  고려군의 배치를 보면 거란군은 통주읍을 점령해서 남쪽으로 왔거나 서쪽에서 바로 동림성으로 온 가능성이 있었다. 어디서 접근했든 고려군의 삼각망 안에 들어와 공격을 받게 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거란군은 고려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러 차례 공격을 하나 패배하게 된다.

 

 

  Liao-Dynasty-army-uniform.jpg

  <거란(요)의 군대> 

 

 

  하지만 유목민족의 기병돌격은 늘 탐색전을 겸한다. 그래서 이들의 공격은 처음보다는 나중에, 어제보단 오늘이 더 위협적이다. 몽골군이 유럽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군대가 이 함정에 걸렸다. 강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란군이 퇴각하자 장기를 두며 여유를 부렸다.

  야율분노, 야율훙고가 이끄는 부대와 야율적로의 부대가 급습한다. 야율분노, 야율홍고는 대송전쟁에 참전하고 야율적로는 성종이 영재라 칭찬한 뛰어난 장수였다. 이들은 장기대로 고려군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기습적이고 집중적인 공격을 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진을 돌파, 중앙 본대까지 파고들어 강조를 생포하고 그외 수뇌부를 포로로 잡거나 죽인다. 이 때 강조는 죽은 목종에게 사죄했다는 표현이 고려사에 있다.

 

병사가 고하길 거란병이 많이 들어왔습니다!“라고 하니 강조가 정말인가?“라고 하면서 일어섰다. 이 때 강조는 정신이 흐릿해지며 목종이 눈 앞에 어리더니 뒤이어 네 놈도 그만이다. 천벌을 면할 수 있겠느냐?“고 꾸짖는 소리가 들리는거 같아 투구를 벗고 꿇어앉고 그리고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끝나기 전에 거란군이 결박하여 메고 갔다.’

 

  거란군은 고려군의 방어선을 돌파해 중심부를 곧바로 돌격해 순식간에 지휘부를 궤멸시켰다. 후위의 고려군은 통주성으로 빠지는 퇴로를 열어줘야 했지만 야율홍고군에 저지되며 대혼란이 일어나고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곽주로 향하는 27km의 죽음의 달리기를 시작한다.

 

  추격.jpg

<사진은 관계 없지만 아마 이렇게 고려군의 등뒤로 거란 기병이 무섭게 추격했을 것이다>

 

 

  거란의 추격은 계속되고 곽주성 반밖에 가지 못했는데 3만명이 죽었다. 하지만 곽주와 통주 사이 완항령이라는 곳에서 좌우기군장군 김훈의 부대가 매복해 있었는데 정황상 강조군 소속으로 예비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패주하는 고려군에 섞여 후퇴하다 부대를 수습하고 완항령에서 목숨을 걸고 거란을 공격해 더 이상의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통주에서의 소식을 들은 성종은 기뻤다, 이긴것도 이긴거지만 강조를 생포했기 때문이다. 강조는 실세였고 회유한다면 고려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조는 최후의 양심을 지켜서인지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신하가 되기를 거부 한다. 성종은 회유를 포기하고 강조를 죽인다.

  한 편 강조군의 궤멸을 목격한 통주성은 공포에 휩싸이는데 성종은 사로잡은 고려 장군 노전과 거란의 합문사 마수를 보내 항복을 권유하나 중랑장 최질과 홍숭이 궐기해 이 둘을 억류하고 저항을 주장한다. 여기서 통주의 주민이었던 김거와 수견은 향리의 우두머리급으로 주민으로 구성된 주현군으로 장비와 훈련도 부족한 상황, 절망과 공포에서 성을 지켜내게 하는 활약을 한다. 강조군은 패했지만 통주성 사수라는 전과는 이후의 상황전개에 커다란 변수가 된다. 그곳은 완벽하게 차단될 거란의 회군로 중 하나였다.

 

 

    통주성사진 .jpg

<지금은 북한의 문화재로 남아있는 통주성 김일성의 다른말은 안지켜도 좋으니 문화재보존하라는 명령은 지켰으면 좋겠다>

 

 

  통주성에서 예상치 못한 저항을 받자 거란군은 통주성의 공략도 포기하고 곽주로 내려간다. 아무리 보급의 여유가 있어도 청천강 이남으로 가려면 중간기지는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거란은 곽주 공력은 신경을 썼을 것이며 강도도 강했을 것이다. 당시 곽주에는 후퇴한 고려군을 포함한 수비병력이 있었다. 고려군이 주둔한 성은 아마 능한산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 성도 만만치 않은 요새였다.

  하지만 패전이란 패자에게 두려움을 남겨줄 뿐이었다. 이 공성전에서 통주에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고려군 상당수가 죽게되고 함락하게 된다. 이제 적을 막을만한 곳은 안주와 서경뿐이었다.

 

  2차 거란전쟁 전역.jpg

<2차 거란전쟁 전역>

 

 

  한편 고려는 강조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경도의 병사를 서경으로 집결하게 했다함경도가 비면 여진이 공격할 우려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고려와 거란이 전쟁을 한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조치였다. 서경이 중요한건 누누이 말했다. 고려 건국 이래 태조가 신경써서 일으킨 도시였고 고려 제 2의 수도라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물자와 식량도 풍부했고 1차 거란전쟁 때는 버릴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동북변 도순변사 탁사정과 함흥에 주둔한 지채문은 서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이동한다.

 

 

 

 

 

3개의 댓글

2014.07.13
잘보고있섭
0
2014.07.14
이쯤되면 슬슬 다음게 보고싶어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다음것을 내놓으시게!
0
2014.09.04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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