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6) 계속되는 전쟁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T2bI8

 

 

http://www.dogdrip.net/52911268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1) 전쟁전야

http://www.dogdrip.net/52958524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2) 1차 거란전쟁
http://www.dogdrip.net/53024941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3) 2차 거란전쟁 발발과 통주회전
http://www.dogdrip.net/53119150 고려전쟁사 - 거란전쟁 (4) 서경공방전
 
 

계속되는 전쟁

 

 

  1010년의 원정 이후로 거란군은 특별한 승리를 하지 못했다. 거란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무시를 했고 무시할 때 마다 공격을 했다. 1012년부터 1017년까지의 전황은 일진일퇴였다. 물론 고려는 당하는 입장이었고 패배도 했지만 거란은 성과를 거둔게 없었다.

  1014년 때 거란군은 바로 통주성을 공격했지만 고려군이 흥화진에서 정신용과 주연이 거란의 뒤를 공격 700명을 죽이고 다수를 익사시켰다. 이 때 병사 장교 15천명이 포상을 받는다.

  1015년 때에도 거란은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을 했고 고려도 똑같은 방법으로 뒤를 공격해 700명을 죽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란군은 대비를 해 정신용 이하 지휘부가 전사한다. 흥화진군을 격퇴한 거란군은 통주를 버리고 안주를 공격하지만 안주는 흥화진이나 통주보다도 공략이 어려운 요새였다. 거란군은 이틀만 공격하고 발길을 돌린다. 대장군 고적여가 후퇴하는 거란군을 쫓아 공격하지만 이번에도 거란군은 이 작전을 간파하고 고적여 이하 지휘부가 전사한다.

  1016년 때는 야율세량의 부대에 곽주성이 함락되어 고려군 수만 명이 살상된다. 강조의 패배 다음가는 손실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거란군은 다시 후퇴한다.

 

 

 

1013. 5

여진을 앞세워 압록강 도하시도

고려 김승위 부대가 격퇴

1014. 10

소적렬 통주 공격

정신용 부대가 700명 사살

1015, 1

압록강에 다리 설치

저지 실패

흥화진 포위

고적여 부대가 격퇴

통주 공격

 

1015. 3

용주 침입

 

1015. 9

흥화진 통주 공격

정신용 부대 700명 사살하고 전사

영주 공격

고적여 부대 거란군 추격중 전사

1015

선화진 정원진 공격

 

1016. 1

곽주 공격

고려군 수만 명 희생

1017. 8

흥화진 공격

  

<1018년 거란의 침공 전까지 거란군과 고려의 공방>

 

 

  고려는 거란의 침공을 그럭저럭 막으며 버텨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 사정은 힘들고, 복잡했다. 큰 이유는 전비로 당시 고려는 전국을 커버할 제대로 된 지방행정망도 없어 조세징수나 병사징발이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 질 수 없었다. 현종은 거란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하며 이 일을 수행했다. 거란의 3차 대규모 침공이 있던 1018년 무렵 전국의 행정망을 경 4, 8, 15, 129, 335, 29개로 편제 이 중 1/3가량의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했다. 이는 어느정도 명칭이 변하고 개편되긴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이때 만들어진 것을 사용했다.

  재정때문에 문신과 무신의 다툼도 발생했는데 고려는 북쪽에만 10만 이상의 병사를 상주시켜야 했다. 북의 병사들은 열세임에 불구하고 필사적인 방어전을 수행하고 있었으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유능한 장수와 병사의 희생도 늘어났다.

  이렇듯 장군과 병사들의 노고가 커지는 것과 비례해 불만도 커져갔다. 그들은 나라를 지킬 의무만 있지 통치에 참여할 자격도 없었으며 보수도 예우도 열악했다. 이에 전몰자와 유공자에 대한 포상 역시 늘어났고 최고 15천까지 한번에 포상했다.

  하지만 재정은 부족했고 만족스런 보상은 할 수 없었다. 유공자는 계속 늘어났고 그 중에 충성스럽고 양심적이며 능력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최전선으로 보내야 했다. 강감찬도 동북면에 파견해야 했다. 여진도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무신.jpg  

<생각해보면 무신의 난에 비하면 애들 장난수준이었다>

 

 

  그러던 차에 일이 터졌다. 1014년 중추원일직사로 있었던 황보유의는 거란은 통주를 공격하고 궁궐을 새로 짓는 사업까지 수행하느라 관리에게 줄 녹봉이 부족했다. 이에 중추원사 장연우에게 건의해 군인들의 녹봉을 관료들에게 돌린다.

  군인은 당연히 폭발했다. 거란군이 불러간 11월 거란전쟁의 영웅인 김훈-완항령에서 거란군 저지-과 최질-강조군이 궤멸된 후 통주 사수-은 봉기한다. 이들은 책임감도 있고 리더십이 있는 인물들이었고 병사들 사이에 인망도 높았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궁으로 쳐들어간 병사들은 황보유의와 장연우를 죽지 않을 정도로(...) 패고 왕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

  그들의 분노와 요구는 정당했고 김훈 등도 정의로운 인물들이었던 것 같지만 시대의 평가는 그러지 않았다.

 

  현종 5년 상장군 김훈, 최질 등이 반란을 일으킨 후 무관들이 정권을 잡은 때로부터 사납고 흉악한 무리가 문관 자리까지 다 차지하고 어중이 떠중이들이 대신 줄에 들어앉아 정사가 집중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조정기강이 한없이 문란해졌다.

 

  그가 개인적 욕심에서 병사를 선동했든, 양심과 공의에 밀려 시위대 대장을 맡았든 간에 그는 순박하거나 어리석었다. 그와 동료들은 국가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동북면 방어사로 함흥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이자림이 있었는데 그는 장원급제 출신 문관으로 조정의 상황을 본 후 일직 김맹을 통해 현종에게 고조 유방이 운몽으로 놀이가던 고사를 본받으라는 전갈을 보낸다. 현종은 그 뜻을 알고 이자림을 서경판관으로 임명, 파견한다. 그는 이전에도 서경에서 서기로 근무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서경의 토호들에게 인망을 얻었다.

  현종 610153월 현종은 서경으로 행차해 장락궁에서 연회를 개최한다. 개경과 달리 서경은 김훈의 편이 없었다. 북계 방어의 중심인 만큼 많은 수비대가 있었고 이들은 서경 호족과 향리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김훈파가 만취했을 때 현종은 서경군을 동원해 김훈과 최질 등 19명을 체포해 처형했다. 이자림은 이 공으로 왕씨를 받는다.

게다가 현종은 뒷수습도 잘했는데 이들 외에는 한명도 처형하지 않고 구금했다가 바로 석방했다.

 

 

  연회.jpg

<평양 부벽루 연회장면 현종때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상상이 된다> 

 

  무관들에게도 대대적인 포상을 단행했다. 전사한 장군들의 관직을 높이고 유족들에 대한 보상도 늘리고 자손을 등용하고 군공자는 병사들까지 포상했다. 이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관직 인플레나 재정 등을 생각해야했고 부작용 때문에 효과를 보기도 힘들었다. 현종은 전쟁 중에 이런 정책을 아슬아슬하게 해나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여진이었다. 함경도 지방에는 동여진이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해 연안을 따라 고을들을 약탈했는데 1012년에는 경남까지 내려와 포항 근처에서 약탈했었다, 고려는 이 지역에 파견할 중앙군이 없었다. 그러면 경상도 지역의 병사를 동원해 여진족을 격퇴해야 했지만 행정망이 엉망이었다. 당시 까지 지방관이 군현에 지방관이 있는 곳이 없었고 1010년 현종이 몽진을 하며 죽을 위험을 겪은 이유도 지방에서 국왕을 맞이하고 수행할 지방관이 없었기에 지방의 토호나 백성의 개인적인 충성과 호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여진도.jpg  

<거란은 항상 여진을 걱정했다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였고 역사는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외적이 침략한 상황에서 토호들과 주민들로 구성된 군대는 자기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 고향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휘관이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그들은 비협조적으로 변할 것이다.

  현종은 서경공방전 때 공을 세운 강민첨을 발탁했다. 강민첨은 과거에 급제한 문관으로 군사에도 밝았고 의지가 굳고 과감했다. 또한 경상도는 그의 고향이었다. 그는 경상도로 내려가 도부서라는 임시 지역 사령부를 구성해 경상도 지역의 군대를 징발하여 여진족을 격퇴한다. 이후로 전란이 있을 때 도부서를 설치하여 군을 모집하는 방식이 전통이 된다.

  1013년에는 거란과 함께 압록강을 도하하려다 격퇴되었고 여러 침략이 있었지만 부족단위로 분열되었기에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어떤 부족은 고려군에 가담해 함께 싸웠고 어떤 부족은 거란과 합세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대응하는건 중요했다. 현종은 이런 외교에도 나름 탁월했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고려에 귀순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여진족이 늘어났다.

 

이 전쟁에서 거란, 고려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전쟁을 끝내려면 결정적인 타격이 필요했고 소배압은 이 지루한 공방전을 끝내기 위해 고려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구상을 했다. 그것은 개경 직공이었다. 10189월 거란은 대대적인 준비를 했고 전국의 말을 징발했다. 고려도 분위기를 읽고 강감찬을 서북면 최고 책임자로 임명해 군정와 민정을 총괄하게 했다.

 

그리고 거란은 10월 정식 선전포고를 한다.

 

2개의 댓글

2014.07.22
7편 빨리올려주세요!현기증난단 말이에요!
0
2014.07.23
2-3차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구나... 땡큐!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1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FishAndMaps 0 2 시간 전
1241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그녀는 왜 일본 최고령 여성 사형수가 되었나 10 그그그그 6 1 일 전
12412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4 K1A1 22 2 일 전
12411 [역사] 인류의 기원 (3) 식별불해 4 2 일 전
1241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재벌 3세의 아내가 사라졌다? 그리고 밝혀지... 그그그그 4 4 일 전
1240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의붓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사진 3 그그그그 7 6 일 전
12408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6 일 전
12407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4 9 일 전
1240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7 일 전
12405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9 일 전
12404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0 일 전
12403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0 일 전
12402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1 일 전
12401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0 일 전
12400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1 일 전
12399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9 일 전
12398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체포되기까지 28년이... 1 그그그그 6 11 일 전
12397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3 12 일 전
12396 [과학] 경계선 지능이 700만 있다는 기사들에 대해 34 LinkedList 11 13 일 전
12395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두 아내 모두 욕조에서 술을 마시고 익사했... 그그그그 2 15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