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전쟁사 - 여진정벌 (2)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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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의 전력

 

 

  고려는 자신들이 상대할 여진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야했다. 여진은 기본적으로 부락조직을 그대로 군사조직으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 맹안모극제도라 하는데 300호를 모극으로 10모극을 1맹안으로 한다. 수장도 모극과 맹안 그대로 똑같고 실제로 추장이 직위를 맡으며 세습됬고 민간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군지휘관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무기와 식량은 모두 자비였다.

  이는 부대원간에 단결이 좋고 평소의 생활이 군사훈련이기에 수준도 좋지만 부족단위의 체제라 잘 분열하고 통치하고 조직하는데는 나쁘다. 유목민족 모두에게 나오는 공통적 특징이었다.

  하지만 여진족은 지형적특징이 다양하기에 농경, 수렵, 유목 등 다양한 생활방식이나 문화를 가진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기병의 특징이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보단 중장기병과 경기병의 균형과 협력에 비중을 더 두었다.

 

 

  여진 기병.jpg

<다시보는 여진 중기병>

 

 

  또한 거란군은 500~700기를 1대로 했지만 여진은 50기를 1대로 20기는 중장기병으로 30기는 경기병으로 구성하며 적과 조우하면 경기병은 약점을 찾고, 찾으면 중기병은 그곳으로 돌진하며 경기병은 엄호를 하고 그렇게 적의 진형에 균열이 생기면 전군이 돌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소부대는 게릴라전에 좋지만 전면전을 하기에 규모가 부족했기에 나름대로 보완을 했는데 말이나 기병 모두 갑옷을 세 벌까지 입었으며 괴자마라는 제도로 말 3마리를 묶어 좌우익에서 돌격시키는 방식도 고안했다. 괴자마 뒤에는 돌격하면 후퇴를 하지 못하게 거마창을 든 보병이 따라다녔다.

 

 

  괴자마.jpg

<괴자마는 이렇게 서로 말을 묶은 부대를 말한다>

 

  또한 이들은 강대국에 핍박받던 민족이었다. 특히 거란 천조제-거란 마지막 황제- 때 극에 달했는데 한겨울에 진주와 해동청-흰발톱을 가진 회색빛 매-를 바치라고 한다. 이는 우리도 조선 초기에 당한바(...) 있는데 일 년에 한 두마리 찾기가 힘들다. 또한 거란의 관리들은 지나가는 곳 마다 처녀나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여진지배층의 부녀자까지 여자를 요구를 했다.

  핍박받고 억압된 경험은 해방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만들어냈다. 국가건설의 투지와 결의다. 그들은 그렇게 거란이라는 목적으로 단합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휘관은 순수하고 헌신적이었으며 이런 단결심이 부족체계가 지닌 약점인 분열을 극복하게 했다. 고려가 대적할 군대는 이러한 군대였다.

 

 

 

준비

 

 

  1104년 고려군은 국가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부족연합적 군대였던 완안부에 심각한 패배를 당했다. 그 이유는 고려군은 준비가 안됬었고 적은 기병이고 우리는 보병이라 했다. 삼국시대 마지막 전투였던 일리천전투에서도 기병이 반을 차지했다 그 때부터 기병의 비중이 높았던 고려가 기병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게 잘 이해가 안간다.

  거란전쟁 이후 고려는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리며 군대가 해이해졌다. 군인에 대한 대우도 나빠졌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평시에 전시체제에 준하는 군사조직을 유지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전쟁이 나면 항상 군대는 어딘가 해이해졌고 준비는 부족하다. 따지고 보면 거란전쟁때도 그랬다. 준비부족을 군사제도의 와해와 동일하게 인식해선 안된다. 군사제도 자체가 망가진 것과 준비없이 전쟁하는 것과 달랐다. 당시의 패배는 후자에 가까웠다.

  근데 사실 기록을 보면 군을 사열하는 등 보병과 노 부대에 관한 기록이 많다. 노의 개량도 힘썼는데 그 중 박원작은 수질노를 개발하고 그 성능이 좋아 매년 사격연습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 사격.jpg

<노 사격 우리는 노를 유럽에서만 많이 사용된 줄 알고 있다>

 

 

  고려는 거란전쟁에서 기병을 앞세운 거란군을 저지하기 위한 보병전술로 궁수와 노수 양성에 많이 힘썼고 노의 효과를 보고 높게 평가했다. 서북면에 개인용 노화살 6만개와 차노 화살 3만개를 보급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들은 백병전에 약했고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 공자는 먼저 움직여야하고 불리한 지형에서도 전투를 해야한다. 더군다나 이제 전역은 함경도로 궁수나 노수가 활약하기 힘든 지형이 많았다. 좁고 길고 구불구불한 산길과 골짜기같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지형이 많은 곳에서 행군하면 길게 대형을 유지해도 끊어져있는것과 마찬가지였고 기병의 기습을 받으면 최악이었다.

  기병이 평지에 강하고 보병이 산악지형에 강하다는건 단순한 생각이다. 게릴라전과 기습에서 기병보다 중요한 요소는 없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려면 빠르고 강한 기병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기병은 개개인의 전투력이 월등하기에 부대가 공격받을 때 신속한 지원을 할 부대다.

  하지만 임간이나 윤관의 부대에 속한 기병은 그러지 못했다. 더욱이 공자입장으로썬 전투력이 수비군보다 월등해야 했다. 고려군은 오랜 평화로 실전경험이 부족했고 전문 무사나 기병이 부족과 자질하락을 겪고 있는 반면 석적탄의 부대는 완안부가 세력을 늘리면서 양성한 실전 경험이 풍부한 군대였다.

  고려는 침공과 정복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해야할 편제가 필요했다. 여진정벌을 위해 고려는 별무반이라는 부대를 만든다. 목적은 당연히 공격이었고 공격을 하려면 병사 하나하나가 전력이 좋은 강력한 부대여야했다. 그래서 기존 소속과 신분을 가리지 않으며 전군에서 우수한 무사와 병사를 징발하고 그 중 말이 있는자는 신기군으로 말이 없는자는 신보군으로 편성한다.

 

 

  별무반.jpg

<엄청 알기 쉬운 별무반>

 

 

  신기군은 일종의 기사단으로 유럽과 달리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하며 전마와 병기는 스스로 준비해야했다. 말도 두 필 이상 보유해야 했으므로 신기군이 되려면 재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양반, 토호의 자재들이 많이 들어갔다. 이들은 정규전에서 중장기병으로 유격전과 기습전을 벌이거나 기습공격에 대항해 백병전을 담당했다.

  윤관이 우리는 보병이라 졌다고 하지만 이유는 그런 단순한 논지는 아니었다. 기병만으로 전쟁을 할 수 없기에 신보군을 편성했다. 산악지형에서의 여진군으로부터 기습과 궁노수나 일반 보병, 보급부대를 보호하는 전문적인 백병전능력, 사격과 전술운영 능력도 뛰어나야 했다. 이들은 돌격대나 화공부대 궁노수 등 병종으로 육성됬다. 물론 병종은 기존에 존재했지만 일반보병보단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그 외에 고려시대는 군대말고 정말 우수한 무사를 보유한 집단이 있었는데 사원이었다. 사원에는 금으로 만든 불상이나 보물도 많았고 대찰은 승려가 수 천명도 되기에 식량도 많아 도적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더군다나 산중에 위치한 사찰도 많아 보호를 받기 힘들어 자체 방어를 위한 무승을 키웠다.

  이들은 관이 없는 지역에서의 치안유지 역할이 컸다. 오늘날 숙박시설을 당시 원이라 했는데 왕래가 많은 길에도 있었지만 산길같이 하루에 지나기에 멀고 민가도 없는 그런 곳에도 세웠다. 고려시대엔 이 원을 사원에서 승려를 파견해 관리했는데 이런 곳을 관리하려면 어느정도 무술 실력이 있어야했다.

 

 

    절.jpg

<산속의 절>

 

 

  무승이 모두 완벽하다고는 못하지만 신앙심과 계율 아래 생활하기에 실력이 뛰어나고 헌신적이며 희생적인 인물이 많았다. 그렇기에 고려시대 내내 전쟁이나 내란이 발생했을 때 이들은 뛰어난 활약을 한다. 그렇기에 별무반의 세 번째 부대에 속하는 항마군을 이들로 편성한다. 이들의 활약은 전무하지만 우수한 부대는 틀림이 없다.

  숙종과 윤관은 국가가 비상시국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고려는 지난세월 거란을 잘못 판단해 긴 세월 전쟁을 경험했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은 그걸 잊지 않았다. 고려는 아예 국가총력전으로 징발에 있어 신분과 개인사정에 구애받지 않았다. 말 그대로 외아들도, 아버지와 형제도, 관료의 아들까지 직무가 없으면 다 징발해 별무반에 넣었다.

별무반의 목적은 공격부대였지만 이들이 여진정벌의 전부는 아니었다. 전쟁의 상당부분은 일반 기간부대가 맡아야했고 이들도 강훈련을 한다.

 

 

  훈련.jpg

<군인 입장으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려는 1년이 지나자 자신감을 되찾았고 병기와 군량도 축적했다. 1105년 일부는 동북면으로 배치된다. 보통 전쟁은 추수절이 끝난 후 음력 10월 이후가 적정기이다. 설욕을 갚을 시간이 왔지만 이러한 대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숙종도 10월 갑자기 쓰러지고 얼마안가 죽게된다. 그때도 한참 서경에서 병사들을 사열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예종이 즉위한다. 국상이 나고 새 임금이 즉위해 여진정벌은 연기됬다. 고려는 새 임금이 즉위한 만큼 내정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여진과 일전을 겨루기도 부담스러웠는지 반대하는 관료도 많아 예종은 통치기반이 약해 반대를 무릅쓰고 여진공격을 감행하긴 곤란했다. 완안부는 여진을 통일해 제국을 건국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거란이 고려와 전쟁을 치르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것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분쟁을 내고싶지 않았다.

  에종은 즉위 초기에 성과가 불확실한 전쟁보다는 내부 권력을 신장하고 안정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서경을 단순 순행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행차해 머물며 정사도 보고 법령도 반포하며 두 개의 수도를 운영하는 체제를 구상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관리와 군인과 백성, 직할지를 얻게 된다. 지배층도 양분되므로 왕으로썬 좋은 방향이었다. 그렇게 예종은 궁궐신축계획을 어전회의에 붙이자 기이하게 오영총만이 반대하고 불리하게 작용할 대부분 대신이 동의한다. 전쟁보단 정치적 손실이 낫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거란전쟁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위험보다는 눈앞에 이익이 중요했다.

  예종은 지금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여진족도 화해의 사절을 파견했다. 반드시 화해를 하고싶었던 예종은 전례를 깨고 회경전에서 여진을 접견하고 환영식을 베풀겠다 선포한다. 회경전은 대국으로 인정하는 국가만 접견하는 곳이고 여진을 이제 중국사신과 동급으로 보겠다는 말이었다. 신하들이 반대해 회경전에선 안했지만 그래도 여진은 감동을 받았나본지 '전 임금의 일이니 옛 일은 잊고 잘 지내자' 라는 말을 남기고 국경에서 철군한다.

 

 

  회경전.jpg

<회경전 복원 모형 원래 여진같은 별 취급 안되는 국가는 선정전에서 맞이한다>

 

  여진과의 마찰은 없어지고 숙종과 윤관이 추진한 여진정벌은 백지가 되가는 듯 했다. 하지만 1107년 국경에서 군관 한 명이 보낸 보고서가 상황을 바꾸었다. 이를 묘사하길

 

병사가 고하길 여진이 강해져 자주 국경을 침범하고 추장이 꿩의 꼬리에 바가지를 달아 여러 부족에 돌리며 의논하는데 의중을 알 수 없습니다.’ 왕은 이 보고를 듣고 숙종의 발원물을 가져다 대신들에게 보이니 대신들이 그 글을 읽고 선대 임금께서 남기신 뜻이 이 같이 심절하신데 어찌 복수를 잊을 수 있으오리까? 선왕의 뜻을 계승해 여진을 토벌할 것을 청원하옵니다.’ 라고 상소를 올렸다.

 

  예종은 잠시 결정을 내릴 수 없었지만 평장사 최홍사를 태묘로 보내 점치게 해 감지기제-일이 잘 풀린다-괘가 나와 출병을 결심하여 윤관을 행영대원수, 오연총을 부원수로 임명한다. 임명을 받은날 윤관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선왕의 밀지를 받고 전하의 엄명을 받으니 어찌 감히 3군을 통솔하고 적의 보루를 격파해 강토를 개척하고 지난날의 국치를 씻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오연총은 윤관에게 작은말로 무어라 말했다. 뭐라고 한진 모르겠지만 신중해야하지 않냐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에 윤관은

 

당신이나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죽음의 땅으로 가 국치를 씻겠는가? 국책은 이미 결정되었고 무얼 의심하겠는가?

 

 라고 말하니 오연총은 잠잠했다.

 

 

 

그렇게 전쟁은 결정되었고 17만의 별무반과 원정군은 동북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진정벌의 시작이었다.

 
 

2개의 댓글

2014.07.28
ㅠㅠ 존잼이야

다큐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을때마다 드라마를 보듯이 머리속에서 주인공들이 대화하고 소리치고 갈등하는 모습이 막 펼쳐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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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ㄹㅇ 잘씀 ㅊㅊ을 안할수가 없다.
옛날 향랑각시님도 기억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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