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은 러시아 수병의 긍지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크림반도에서의 소련군의 근성있는 한판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대해 알아보자.
때는 1941년 6월 22일, 불가침 조약을 박살내고 소련을 신나게 공격하던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소련의 영토를 쌈싸먹으며 크림반도를 향해 진격, 포위하기 시작한다.
크림반도는 입구가 좁고 호수가 많은 지대였기에 대규모 병력의 이동이 매우 까다로웠다.
그말인 즉슨 사실 마음만 먹으면 방어하기 매우 쉬운곳이였다는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란게 뜻대로 되는법이 어디있던가.
당시 크림반도에 주둔한 소련군의 군세는 대숙청으로 인해 베테랑 장군들과 주요 군 관계자들이
러시아식 아오지 '굴라그'로 끌려가거나 총살당해 전투력이 많이 약해져 있던 때 였고
그렇다 하더라도 잠시 물러나 전선을 재정비하고 지역을 사수할 준비와 여유만 있었어도 손쉽게 방어할수있었으나,
서기장 동지는 공세를 지시하고
주요 방어병력까지 싸그리 공세에 동원되어 별 다른 이득없이
독일 국방군의 명장 '에르히 폰 만슈타인' 장군이 이끄는 독일 제11군에게 갈려버리고
지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 쉽게 방어 할수있던 크림 반도는
상부의 삽질로 인해 10만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동쪽은 케르치 , 서쪽으로로는 세바스토폴로 분단되어 고립 되어버린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케르치가 점령당하고
서쪽의 세바스토폴이 홀로 남아 크림반도를 사수하기위해 눈물나는 저항을 시작한다.
세바스토폴 자체는 러시아 제국 당시부터 흑해 함대의 모항이였고
100년전 크림전쟁 당시에도 방어전을 하다가 털린적이 있기때문에 긴시간에 걸쳐 요새화가 되어있었다.
근처 항구에는 소련해군의 군함들이 정박해있어 직접적인 포격지원을 해줄수 있었고
공방전 직전까지 소련 해군이 대량의 물자와 장비를 운송해왔으며
근처 오데사에서 격전을 치루고 퇴각하던 병력까지 합류하였다.
세바스토폴 요새는 3겹에 걸친 튼튼한 방어선과 깊은 암반 속에 감추어진
대구경 요새포와 해안포가 존재했는데 세바스토폴의 소련군은
12구경 305㎜ 연장포탑포대 를 포함하여 무려 645문의 각종 견인포와 2000문 이상의 박격포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독일군이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세바스토폴을 향한 공세를 준비하던 당시에
2개월간 폭우가 내리면서 독일군이 제대로된 공격조차 시도하지 못하게 되면서
소련해군이 지속적으로 해상보급을 통해 재무장하고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우여곡절끝에 폭우가 그치고 날씨가 개어 세바스토폴 요새에 독일군이 당도하였을때는
요새 중의 요새의 모습을 갖춘 뒤였다.
보기좋게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세바스토폴 또한 쉽게 공략할것으로 생각한 독일군은
충격과 공포를 맛보게된다.
첫번째 공방전에서 소련군의 해안포와 함포지원을 얻어 맞고
만슈타인 장군은 공격을 일주일간 중단하게되며 근처에 흩어져있는 병력들에게 재집결지시를 내린다.
이후 몇차례의 포위와 공격을 재시도했으나 계속되는 포병공격과 견고하게 짜여진
방어선에 막혀 지속적인 피해를 입게되고 이렇다할 공격으로 인한 별다른 이득또한 없었다. 게다가 계속되어온
진격으로 인해 독일군은 보급선까지 길어지게 되어 병참 및 수송능력이 떨어져 오히려 공세에 밀려나는 양상이였다.
소련군은 계속해서 해안선을 통해 전차와 병력을 수송하여 방어선을 정비하며 세바스토폴을 더욱 견고하게 방어하고
독일군측은 돌파하기 어려운 소련군의 반격과 계속된 포병공격으로 병력이 피로해지며 오히려 상황이 심각해졌다.
정면승부를 벌였다간 엄청난 피해를 입을게 분명했고 그 또한 쉽게 공략해볼 요새가 아니였다.
공군으로 어떻게 해볼 규모도 아닌데에다가 모스크바 전투로 인해 병력이 재배치 되어
오히려 세바스토폴 주둔군의 공군력이 우세였다.
그리하여 독일군 측에서 내놓은 아이디어가
"야포로는 이도 안먹히니 존나 큰포를 들고와서 때리면 되겠지"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애초에 프랑스의 마지노선의 요새들을 뚫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 요새전용 초대구경 포인 만큼 용도에도 적합했고
마침 실전에 투입시키기 좋도록 숙성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전선에 배치된 구스타프포가 불꽃을 내뿜고 위에서 구술했던
세바스토폴 요새의 27m 깊이의 천연암반을 관통해 안에 건설되있던 소련군 탄약고를 격파하고
지상의 요새포와 진지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독일 제11군은 보유하고있던 대공성용 전략포들과 1차세계대전에서 쓰였던 대구경 야포들까지
총동원하며 보유한 물자량의 약 10% 가량을 소비해 5일간 공격하여 도심을 초토화 시키기 시작했고
하늘에서는 폭격기가 도시내 주요 물자집적소와 잠수함기지에 심각한피해를 입힘과 동시에
대공포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 강력했던 세바스토폴은 치명타를 입게된다.
엄청난 인명피해와 주요 전력의 손실, 요새진지가 상당히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바스토폴은 방어선을 지켜낸다.
독일군은 엄청난 공세를 받고 세바스토폴이 무력화 되었을거라 판단하고 도심내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선 살아남은 소련군들과 심지어는 해군소속 수병들까지도 모조리 도심내로 재집결해서는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고 독일군이 진격해 들어가자마자 대규모 시가전을 일으켰다.
비록 포격으로 인해 지휘체계가 무너졌으나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곳곳에 빠르게 박격포 진지와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소련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세바스토폴을 사수하기위해 저항한다.
결국 한달 가까이 시가전이 장기화되자 독일군은 다시 포격을 개시하여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소련군은 독일군을 향해 자폭공격을 시도하는등 매우 극단적인 저항을 벌이나
결국 승기는 독일군에게 넘어갔고 스탈린은 얼마남지 않은 방어병력의 후퇴를 허락한다.
(전설적인 세바스토폴 군가의 2절이 해군 수병들이 폭탄을 안고 적에게 돌진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남아있는 군함과 잠수함등 각종선박을 동원, 해상으로 통한 후퇴가 이루어졌고
철수를 호위하던 저항군이 전멸하며 잔여병력들도 완전히 소탕되면서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막을 내렸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나 세바스토폴은 해방되고 스탈린 그라드와 같이 훌륭하게 공방전을 버텨낸 도시들과 같이
영웅도시의 칭호를 수여받는다.
이후 그냥저냥 평화로운 항구도시로 발전하던 세바스토폴은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되었으나 도시일부를 러시아가 해군기지로 쓰기 위해 임차하여 쓴다.
그러나 2014년 2월 친러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탄핵 및 우크라이나에서 유로마이단 사태가 일어나고
포로셴코의 반러 정부가 들어서자, 러시아가 이에 개입할 것을 선언하고 군대를 출병시킨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가 개입한다면 미국도 출병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철군하지 않을시 무력·외교적인 보복을 가할 것이라 선언했다.
결국 러시아해군의 흑해함대 소속 해군보병연대를 필두로 러시아의 본격적 개입이 시작되어
주민투표를 비롯해 크림반도가 러시아 편입을 위한 수순을 밟은 이후 사실상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해군은 함정과 육상 장비 및 시설 상당수를 그냥 두고 와야 했으며 지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오스만유머
2차대전 소련군 방어전 이야기 들으면 진짜 사람 갈아넣어서 그 성과를 이뤄냈다는 말 밖에 안나오는듯
공세 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남자간호사이직준비중공부하라고해줘
연합군의 탱커 ㄷㄷ
도희
돌려깎기
호오우우준
하일 히틀러
피토하는판다
이래저래 우크라이나는 참 불쌍하다.
옥탑방개드립
쿠쿨자
7인히오스 뭐냐ㅋㅋ
내닉넴보는애들탈모생김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땅이 아니라 원래 러샤땅이라며? 소련된 후 각지역관리편의를위해 자치공화국들 국경재정비했다던데 자세한 내용아는 개붕이없음?
로스케빌런
크림 반도는 러시아가 제정시대 때 오스만 따까리였던 크림 칸국 박살내고 먹은 금싸라기 땅임. 헌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스탈린이 죽고 난 다음 흐루쇼프가 행정구역 개편 겸 자기 고향땅인(흐루쇼프는 러시아인이지만 나고 자란 곳이 우크라이나고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은 수완가) 우크라이나의 민심 좀 잡으려고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에게 넘겨줌. 그래도 소련 내에서 행정구역을 한 거라서 경기도 평택이 충북 평택으로 넘어간 모양새였지만 소련이 해체된 이후는 RG?
뭘로해야되냐
동부전선은 사상자 기본이 십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