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3)

출처: 욤키푸르 전쟁(아브라함 라비노비치), 중동전쟁-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임용한)

영감을 받은 글: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115250?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mJpdGV0aGF0YmFpdCIsImFydGljbGVJZCI6MTE1MjUwLCJpc3N1ZWRBdCI6MTcwMjEyNTA4NDI3OX0.jteCfVp4PgBAuYqkj-VczwYxl4a_Z_fqnelosBWbH3I

 

 

1~2편 요약

 

 

 

https://youtu.be/n1VJ39nVIBk?si=Kmb_R5YYnIZVMQyd

 

 

카운트 다운

 

크라이스키.jpg

브루노 크라이스키의 1983년 당시 사진, 유대인이지만 오스트리아인의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하나로 최장수 임기를 보낸 오스트리아 총리이기도 하다.

 

10월 3일 골다 메이어 총리가 귀국한다. 메이어 총리는 오스트리아 브루노 크라이스키Bruno Kreisky 총리와 빈의 임시난민수용소 폐쇄(동유럽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 오기 전 잠시 머무는 시설, 당연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좋은 표적이다.)건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돌아왔다. 언론은 이를 가지고 떠들었다. 북부전선의 불안감은 짤막한 단신의 기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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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키푸르 전쟁 초기의 골란고원 전역의 지도

 

성이 난 메이어 총리에게 모셰 다얀은 회의의 소집을 요청했다. 다얀도 슬슬 골란고원의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가진 고민을 총리와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는 순전히 군사적인 부분까지 메이어 총리에게 다 설명했다. 이집트가 전쟁을 결심했다는 보고가 있으나 시리아 전선은 골란고원과 고원의 정착촌 문제로 이집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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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스라엘이 공중전에서 탁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 10월 3일의 메이어 총리와의 보고에서 전쟁 가능성을 일축하며 아리예 살레브 장군이 한 말.

 

병가를 낸 제이라 대신 부국장 샬레브 장군은 현 상황에 대한 아만의 보고서를 제출하며 최근 다수의 화포가 전선에 배치되고, 수에즈에선 이집트군이 훈련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함과 동시에 최악의 수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근데 그 발표 직후 샬레브 장군은  과장된 목소리로 아만이 입수한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이집트는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집트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시리아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전쟁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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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보력은 훌륭합니다. 전쟁 준비라는 큰 기계가 움직인다면 어딘가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 10월 3일 다비드 엘라자르의 의견에서, 그는 골란고원에 약간의 증원 만 하고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었다.

 

아만의 왜곡된 정보에 흐려진 엘라자르 장군도 샬레브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다수의 장군들의 낙관적인 반응에 메이어 총리는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샬레브는 잠깐이나마 골다 메이어를 안심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회의 다음날 골다 메이어 총리는 내각 관료들에게 유럽 순방의 결과를 설명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장군들이 심각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 만큼 현 군사 정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내각 관료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10월 4일 참모본부 회의에서도 아랍군의 증강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 회의 유일한 안건은 어디 동아시아 모국가에서 들은 것 같은 병사들의 복장 규정 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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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홈스에 위치한 석유 정제소

 

10월 3일 이집트 국방장관 이스마일 알리는 다마스쿠스에서 전쟁의 최종시간을 조율하고 있었다. 시리아측은 홈스Homs의 연료 탱크를 비울 수 있게 공격 개시일을 48시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마일은 작전 누설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후의 이스라엘의 반응을 보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결국 양측은 실랑이 끝에 10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전쟁을 개시하기로 최종합의를 했다.

 

 

이스라엘 정보 장교들은 9월 27일 홈스에 주둔 중인 제47기갑여단이 골란고원 전선에 온 것에 놀랬다.(홈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소굴이었고 이들을 억누르기 위해 제47기갑여단이 새로 편성되어 주둔 중 이었다.) 어떤 장교는 이들이 왔다면 전쟁은 곧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바르레브선은 초병들은 다수의 이집트 병사들이 뗏목을 내리기 위한 하강로를 다수 건설하고 바르레브선의 모래장벽보다 높은 방벽을 건설하는 공사가 매일 밤 늦게까지 됨을 확인했다. 만들레르는 초병의 보고를 듣고 하루에 1번 하던 참모회의를 2번하기 시작했다.

 

 

● 예정된 훈련이면 왜 이집트군이 훈련과정을 취소하고 장교 시험을 연기했을까?

● 훈련이라면 왜 이집트 방송에선 전쟁을 독려하는 방송을 하고 장교들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가?

● 왜 이집트군은 운하를 따라 40개나 되는 하강로를 마련할까?

● 왜 전차들이 지금까지 조용했던 운하 북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는가?

● 왜 이집트 공군은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가?

● 고작 1주일 훈련하자고 이렇게 크게 일을 벌리는가?

● 왜 이집트 군은 탄약과 공병장비를 열심히 비축하고 있을까?

10월 1일 만들레르 장군 주관 시나이사단 참모회의에서 나온 논점들

 

 

10월 1일 회의 참석자들은 마지막 붉게 강조된 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반면 남부사령부 수석 정보장교 다비드 게달리아David Gedalia 대령은 아만 윗선과 배치되는 이런 내용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언짢아 했다. 그는 해당 내용의 표현을 순화시키더니 나중엔 윗선으로의 상신을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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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나 인공위성의 사진

 

이스라엘을 도와주던 미국도 곤란에 빠졌다. 9월 27일 중동지역 정찰을 목적으로 발사된 아제나Agena 정찰위성은 궤도에서 지상으로 사진을 전송할 수 없었다. 사진은 2주 뒤에 위성이 돌아온 다음에 현상이 가능했다. 궤도에서 사진 전송이 가능했던 빅버드Bigbird 위성은 28일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비용문제로 이 위성들은 간헐적으로 사용되었고, 발사되는 로켓의 일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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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포토맥에 위치한 DIA 본부 사진

 

또한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이집트 군이 무선통신에서 유선통신으로 바꾸자 CIA는 통신감청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보력은 미국은 신뢰하고 있었는데, 아만이 보낸 잘못된 정보로 미국도 중동지역 문제에 대해 오판을 하고 말았다. 10월 4일 헨리 키신저는 국방정보국DIA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아만의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보고에 전쟁 가능성을 오판하고 말았다. 결국 전쟁이 일어나자 DIA 실무자 3명은 잘못된 평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1974년 안드레이 그로미코의 연설.jpg

"소련 인민들의 생명이 더 소중합니다." -민간인이 대피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눈치챌 수 있다는 보좌진의 의견에 반박하며

 

반면 소련은 시리아로부터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것을 통보 받아 알고 있었고, 내부의 다른 정보원을 통해 정확한 전쟁 개시 시간까지 알게 되었다. 소련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i Gromyko는 소련인민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이유로 소련 군사고문단 가족들의 철수를 명했다.

 

 

10월  4일 오후 늦게 날씨문제로 이제서야 재개한 정찰기의 사진 정찰이 끝나서 돌아왔다. 오후 4시엔 그때까지 전쟁이 안날 거란 헛된 믿음을 깨뜨리는 한 무선 감청으로 전쟁이 안날것이란 아만의 믿음이 와장창 무너진다.

 

 

"왜 이해하지 못하시오?"

"12는 여자, 7은 아이요"

아만 정보통신부대가 잡은 감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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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터보프롭 수송기 AN-22, 지금도 러시아 공군과 우크라이나 안토노프사에서 잘 쓰고 있다.

 

벤 포라트 대령은 소련 내 군사고문단의 가족들의 긴급 철수가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승객 400명을 태울 수 있는 안토노프사의 AN-22 6대를 포함, 11대의 소련 항공기가 중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전 감청은 이런 갑작스런 철수조치로 소련인들도 공황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집트 항구내 계류 중이던 소련 함정들도 서둘러 출항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해군 정보부의 보고도 벤 포라트에게 들어왔다. 마치 해군 정보부 역시 전쟁이 임박했다는 벤 포라트의 의견을 지지하는 듯이 말이었다.

 

 

이 첩보로 전쟁 가능성을 부정하던 엘리 제이라도 처음으로 전쟁이 진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흔들거릴 정도 였다. 이때가 전쟁 발발 약 36시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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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즈비 자미르의 사진, 이번 전쟁에서 제대로 된 예측을 한 건은 모사드와 즈비 자미르 밖에 없었다.

 

금요일(10월 5일) 새벽 2시, 모사드 국장 즈비 자미르Zvi Zamir는 자신의 비서실장 프레드 에이니Freddy Eini의 전화에 잠에서 깼다. 엔젤(아슈라프 마르완)이 즈비 자미르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아슈라프 마르완이 즈비 자미르를 만나고 싶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런던의 모사드 요원은 약속 시간을 당일(금요일) 밤 9시, 이스라엘 시간으로 밤1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즈비 자미르는 아슈라프 마르완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문스러워 졌다. 마르완은 작년 12월과 올해 4월에 전쟁이 온다는 신호를 주었지만, 그 신호는 거짓이 되어 버렸다.  마르완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통화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즈비 자미르는 엘리 제이라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다.

 

소련 고문단의 철수와 마르완의 요청을 들은 즈비 자미르의 머릿속 상황 

 

제이라는 소련 군사고문단 가족들이 주재국을 떠났다고 말했다. 제이라는 이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이 두가지 사건이 중첩되자 즈비 자미르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는 엘리 제이라에게 총리(골다 메이어)를 깨우고 싶지 않으니 자기는 런던으로 간다고 총리에게 말해달라고 한 다음 갈길을 서둘렀다.

 

금요일(10월 5일) 아침 8시(전쟁 발발 30시간 전) 국방장관 모셰 다얀은 장관 집무실에서 참모총장 엘라자르, 참모차장 탈, 아만국장 제이라를 포함한 고위 장성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정찰기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만의 왜곡된 정보에 현혹된 엘라자르 역시 군사적 모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항공사진에는 수에즈 운하 서편에 가득 펼쳐진 이집트 대군이 포진하고 있었다.

 

 

사실 엘라자르는 제이라에게 그 주에만 2번이나 특별수단(도청장치)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확인했고, 제이라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이라는 도청장치를 사용하자는 아만 내부의 참모진의 의견을 이집트군에게 노출될 수 있다(사실 그 전에 이미 발각되긴 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다얀과 엘라자르는 그가 계속해서 도청장치를 작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금요일 오전 1시 40분에 작동시켜 9시간 정도만 운영했다. 그리고 내용이 별다른게 없다고 껐는데, 사실 이쯤 되면 이집트군도 도청의 위험 때문에 죄다 유선 통신이나 전령을 통해 명령을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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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비' 아미르의 사진

 

엘라자르 장군은 현 상황이 우려스러워 전군에 전쟁 바로 전 단계인 기멜 경계령을 하달했다.(히브리어 알파벳의 C를 의미) 기멜 경계령은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에 내린 명령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 이었다. 이 명령에 제이라도 동의했다. 전군에 휴가, 외박은 통제되었다. 제7기갑여단의 잔여 병력은 모두 골란고원으로 배치시켰다. 육군기갑학교 기간요원과 생도들은 교장 가비 아미르Gabi Amir 대령의 지휘하에 1개 기갑여단으로 긴급 편성되어 시나이반도에서 골란으로 이동하는 제7기갑여단을 대신하게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엘리 제이라는 끝끝내 이집트와 시리아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고수한다!!  즈비 자미르가 마르완을 보러 런던으로 간것을 보고하며 마르완의 보고에 따라 결정하자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야 제이라는 자기가 이중간첩이라고 떠벌렸던 사람의 보고를 믿기 시작했다. 이쯤되자 제이라를 신뢰하던 모셰 다얀도 제이라의 판단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금요일 아침의 회의가 이렇게 마무리되자 참석자 대부분은 골다 메이어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엘라자르는 메이어에게 "적이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특별수단에 대해 언급했다, 제이라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합동 공격은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했고, 소련 민간인들의 긴급 대피를 해명할 새로운 이론을 창시했다.

 

 

오전 11시 30분 장성들은 텔아비브 거주 각료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일몰이 되면 욤 키푸르가 시작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각료들은 부르지 않았다. 제이라는 장관들에게 우리가 제공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이집트-시리아군)은 전쟁에 돌입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전면전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집트군의 도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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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 아니야? 골다 메이어는 골초였고, 아마도 담배를 빽빽 피워대며 이 답도없는 보고를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제이라의 희망회로에 골다 메이어는 이의를 제기했다. 공격의도를 가진 상대를 포격으로만 격퇴가 가능한 것에 골다 메이어는 정치인 특유의 감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골다 메이어는 군사지식은 전무했으나 상식과 직감은 매우 풍부한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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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쟁도 안나는데 동원을 하면 지금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통제불능이라고! 엘라자르는 동원령을 절대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다.

 

엘라자르는 특별한 징후(특별수단이란 이름의 작동하지 않는 도청장치)가 없는 한 동원령은 내릴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이미 봄의 청-백 경계령으로 인한 혼란으로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또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모셰 다얀도 아랍이 먼저 적대행동를 하지 않는데 동원령을 먼저 발동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나중에 정치*외교적으로 보면 다얀의 의견은 현명했다.)

 

 

그 시각 아만의 제이라의 참모진들은 42개의 문단으로 된 회보를 작성하고 있었다. 회보에는 이집트와 시리아군의 특이동향이 적혀져 있는데 내용들이 모두 전쟁이 임박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43번째 회보에서 42개의 문단에서 도출하는 결론(전쟁)을 부정해 버렸다. 그리고 어둠은 찾아와 사람들은 욤 키푸르를 보내러 집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이때 샬레브와 반드만 같은 전쟁 비관론자들도 제이라의 근거없는 자신감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원령을 발동할 최종적인 기회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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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여단 소속으로 바르레브선에서 근무하던 메나헴 리터반드Menachem Ritterband 일병은 순찰 중 놀라운 것을 목격한다.

 

한편 수에즈 동편 이스라엘 점거지에서는 병사들이 전초기지 사이를 자동차로 이동하며 순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일과는 전초기지 사이로 이집트 군이 침입하지 않았는지 그 흔적(발자국)을 찾는 것 이었다.

 

 

셀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발자국들이 시나이 사막 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정보수집이나 혹은 포병관측 임무를 맡은 인원들이 시나이 반도로 침투한다는 증거였다. 병사들은 놀라 전초기지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엘라자르 장군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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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 기프가파 공군기지 Bir-Gifgafa 공군기지는 이집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이 레피딤이란 이름으로 시나이 사단 사단본부 및 공군기지로 사용했다. 지금은 민간 및 군용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사단 본부가 있는 레피딤Refidim에서 만들레르 장군은 동원령이 발동되기를 기다렸지만, 텔아비브의 동료는 내각 회의 결과를 만들레르에게 알려주었다. 만들레르는 먼 산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 사단장 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상황 파악하고 작전 계획 재검검에 동참하는 레셰프 대령과 단 숌론Dan Shomron 대령에게 말했다. "동원령은 없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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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숌론 대령의 사진, 후에 이스라엘 제13대 참모총장이 된다.

 

한편 이집트군은 이스라엘군이 완벽하게 속은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처음 베두인족 스파이를 통해 시나이반도의 공군기지에 고위 장교들이 참여하고 전차들이 이동하고, 정비병이 부지런히 움직인 것에 혹시 이스라엘도 눈치 챈 것이 아닌가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너무나 평온한 이스라엘군의 모습에 역으로 이스라엘군이 운하를 너머 기습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군은 정찰대를 파견했다. 그들은 내륙 깊숙히 주변 지역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관측했다. 그리고 보고했다.

유대인들은 자고 있음.

 

 

한편 즈비 자미르는 욤 키푸르 임에도 불길한 생각에 유대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마르완을 기다렸고 마르완은 예정보다 살짝 늦게 도착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사다트는 내일 전쟁을 시작합니다."

 

면담은 1시간 동안 진행되어 토요일 밤 12시 30분(이스라엘 시간 토요일 새벽 2시 30분)에 끝났다. 즈비 자미르는 에이니 비서실장에게 전할 쪽지와 펜을 준비하고 책상에 앉았고, 마르완이 전해 준 내용을 음어로 신중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더 완전한 전문은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최종 검수 후 오전 7시에 보낼 예정이었다.

 

 

 

욤 키푸르의 아침

 

욤 키푸르 당일(10월 6일 토요일), 자미르의 비서실장 프레드 에이니는 자미르의 전화를 받고 그가 전해주는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힌 내용은 즉시 오전 03시 40분 메이어 총리의 국방비서관 이스라엘 리오르Yisrael Lior 장군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다얀 국방장관의 부관인 아브네르 샬레브Avner Shalev 중령에게 전달되었고, 샬레브 중령은 오전 04시 30분 엘라자르를 깨워 비상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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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어의 국방 비서관인 이스라엘 리오르 장군의 66년 사진

 

엘라자르는 탈 차모차장을 비롯 주요 간부들을 오전 05시 15까지 출근하도록 명했다. 북부 사령관과 남부사령관은 오전 6시까지 참모본부로 출근하도록 명했다. 엘라자르는 일어나자마자 10분 뒤 베니 펠레드 공군 사령관을 깨워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통보와 함께 준비되었냐고 물었고 펠레드는 준비되었다고 응답했다. 펠레드는 무엇보다 SAM 포대의 우선 제압을 중요시 했다. 엘라자르는 지금 상황이면 다얀과 메이어도 승인을 해줄거라 생각하고 내가 승인을 받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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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 입장이오" -엘라자르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다얀이 한 말.

 

아침 05시 50분 다얀과 만난 엘라자르는 선제공격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얀은 거부했다. 이미 1967년 6일 전쟁으로 많은 욕을 먹은 이스라엘이었다. 다얀은 또다시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면 이스라엘은 침략당하는 국가가 아니라 침략국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이 텔아비브를 공격하거나 혹은 화학무기 같은 끔찍한 무기를 사용했을 경우만 선제공격을 허용하겠다고 다얀은 말했다.

 

 

다얀은 20~25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동원령에도 반대했다. 즈비 자미르의 보고 하나에 그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엘라자르는 방어를 한다면 5~6만명의 예비군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얀은 그렇다면 그것은 총리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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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시리아 공군(이들의 전술기 숫자는 이스라엘의 2배 였다.)이 동시에 이스라엘 영공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비하시오." - 공군 사령관 베니 펠레드에게 엘라자르가 한 명령

 

아침 7시 선제공격을 준비하던 펠레드는 기상 악화로 인해 SAM 포대를 선제공격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는 엘라자르에게 전화를 걸어 시리아 지역의 SAM 포대 공격은 불가하나 다른 지역의 공격은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SAM 포대 공격용 무장을 탈거하고 콘크리트 엄폐호 및 활주로 손상용 폭탄으로 무장을 교체한다고 제안했다. 오후 1시 30분 영공 초계를 위해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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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욤 키푸르 당시 남부 사령부의 모습, 안경을 쓰고 앉아있는 사람이 고넨, 옆에는 엘라자르 참모총장이 앉아 있다.

 

엘라자르는 회의를 뒤로 미루며, 남부와 북부사령관인 고넨과 호피장군을 만나 의견을 교환한다. 이후 공군, 해군, 기갑 사령관을 만나 전쟁은 오후 6시(앞서 말하다시피 전쟁은 오후 2시로 합의했다.)에 있을 예정이라고 전달했다. 엘라자르는 정규군이 공군의 지원으로 적을 막는 동안 동원 사단들이 전열을 정비해 적을 반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엘라자르의 입장에선 시나이보단 골란이 최우선 걱정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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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키푸르 당일(10월 6일)의 상황을 묘사한 영화 골다(2023)(출처: 시네모리)

 

토요일 08시 05분 다얀과 엘라자르는 메이어에게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메이어는 연기가 자욱할 정도로 줄담배를 피웠다. 이스라엘 리오르 장군이 전쟁이 임박했다고 보고하자. 메이어는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군사에 문외한(사실 그녀는 사단이 뭔지 잘 몰랐다.)인 그녀는 두 장군에게 필요한 정보를 듣고 결정을 내렸다. 선제공격은 허락하지 않는다. 전쟁이 나면 그때 그것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총리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또한 엘라자르 장군이 제시한 10~12만명의 예비군 동원을 허락했다. 엘라자르는 부관을 보내 2개 예비사단의 동원을 재촉했다. 시간은 09시 25분 금같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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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키팅의 사진

 

아침 09시 30분 메이어 총리는 주이스라엘 미국대사 케네스 키팅Kenneth Keating과 공관 차석 니콜라스 벨리오티스Nicholas Veliotes를 불러 전쟁이 임박함을 이야기 했다. 키팅 대사는 얼굴이 창백해 졌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헨리 키신저에게 긴급 전문으로 보내러 갔다. 그리고 부친상으로 이스라엘에 온 심하 디니츠Simcha Dinitz 주미국 이스라엘 대사에게 골다 메이어는 비행기를 하나 수배해 줄테니 얼른 미국에 가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무기를 받아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욤 키푸르라 이스라엘에 오가는 민항기는 없었다. 리오르 장군은 IAI(이스라엘 항공산업 Israel Aircraft Industries) 경영진이 쓰는 비스니스 제트기를 수배했다. 디니츠 대사는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간 다음 곧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심하 디니츠의 사진.jpg

심하 디니츠의 사진, 캠프 데이비드 협정 당시 이스라엘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멘붕한 아만의 상황

 

한편 멘붕한 제이라는 국장실에서 긴급회의를 벌였다. 샬레브, 반드만, 케니제르 등이 자리에 앉았다. 제이라는 샬레브와 반드만에게 오늘 전쟁이 일어나냐고 물었다. 샬레브와 반드만은 전쟁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 꼴(아마 일이 틀어지면 같이 갈 희생양을 구하는 제이라의 모습)에 개빡친 케니제르 중령이 자기 소신을 못내는 아만의 윗대가리들에게 화를 낸다.

당신 생각을 말해! 누구 의견을 지지 한다고만 하지 말고!

그리고 나서 케니제르 중령은 자기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만 수뇌부는 자기들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름을 깨달았다.

 

 

12시 30분 다얀과 메이어는 각료들이 모인 회의실로 들어갔다. 메이어의 안색은 창백했다. 단정했던 메이어의 머리는 헝클어졌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듯 한 표정에 등이 굽은 할머니같은 모습에 각료들은 생전 처음보는 총리의 몰골을 보고 놀랬다. 메이어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개의를 선언했다. 단조로운 목소리로 아랍군의 현상황과 배치등 각종 군사자료를 단조롭게 읽던 메이어는 오후 6시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각료들에게 고지한다.

 

골다 메이어 내각.jpg

1969년 3월 17일에 있던 골다 메이어 내각의 첫 회의, 골다 메이어 내각의 특징으로 내각 회의를 골다 메이어의 주방에서 자주 벌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내각은 진정한 의미의 부엌 내각Kitchen Cabinets으로도 불렀다.

 

해당 소식을 들은 각료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적어도 동원령이 발동되려면 48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본인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5시간도 남지 않았음을 알고 기겁한다.

 

베르셰바.PNG

오른쪽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베르셰바Be'ersheva는 이스라엘 남부사령부 본부가 있던 곳이다. 지난 6일 전쟁 때는 베르셰바는 최적의 요충지였다면 이번 전쟁에는 전선이 된 시나이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고넨은 있는 정보에 만족하지 말고 최전선을 돌아보며 상태를 점검해야만 했다.

 

 

벙컹.jpg

오늘날 이스라엘 국방부 지하 벙커인 구덩이 The Pit의 모습, 골다 메이어는 여기에서 군대가 돌아가는 상황을 듣고 있었다.

 

12시 30분 엘라자르는 참모본부 벙커 일명 '구덩이The pit'에서 고넨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넨은 3개월 전에 남부사령관이 되었어도 아직 자기 사령부의 기본적인 정보도 몰랐다. 심지어 아만이 입수한 이집트군의 작전계획도 몰랐으며, 이집트군이 공격전 예비포격을 할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고넨은 전날 이스라엘이 만든 '귀중한 불'이라는 화염방사 장치를 가동하라고 지시했지만, 상당수의 장치들은 고장나 있었고, 이집트군이 사전에 특수부대를 보내 해당 연료파이프의 입구를 막아서 무용지물이 된 것을 몰랐다. 고넨은 아만이 주는 정보만 믿고 일선의 정보들과 비교할려는 노력 자체를 안했다. 전력 보강도 마찬가지로 없었다.

 

반면 호피 장군은 계속해서 전쟁 발발 위험을 주장해서 상당한 증원을 얻는데 성공했다. 

 

사다트의 모습.PNG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사다트 대통령

 

오후 1시 30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군복을 착용한 채로 이스마일 알리 국방장관이 제공한 차를 타고 '센터 텐(이집트군 참모본부 지휘벙커)'으로 향한다. 모든 장군들과 참모들이 상황판과 시계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다트는 차 한 잔을 주문한 뒤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같은 시각 바르레브선 전초기지 병사들은 전원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벙커에 있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같은 시각 골란고원에서는 헤르몬 산의 포병 관측병이 시리아군이 야포와 전차의 위장막을 걷고 있다는 보고를 올렸다.

 

 

시리아 공군3.jpg

욤키푸르 전쟁 당시 출격하는 시리아군 Mig-21MF

 

오후 1시 50분 시리아군의 통신을 감청하던 정보장교가 공군사령부에 전화를 울린다. "다미르Damir(시리아군 공군기지)에서 적기 이륙!" 곧이어 이집트에서도 적기가 이륙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https://youtu.be/AJETvSNa178?si=zhLVZrkng0zyAQCR

영화 골다(2023)에서 묘사하는 전쟁 발발 당시의 순간

 

오후 2시 회의실에서 다얀이 브리핑을 마칠 무렵 부관이 쪽지를 전해준다. 쪽지 내용은 이집트 공군이 공습을 개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메이어는 각료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선언하자마자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이스라엘 모든 군 당사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순간이었다.

 

 

 

https://youtu.be/118QgNTzP3w?si=alG0ecxwwBYREhT-

전쟁 당일 미국 NBC에서 보도하는 욤키푸르전쟁 발발 긴급뉴스

 

욤 키푸르 전쟁이 시작되었다.

3개의 댓글

2023.12.13

IAI가 크피르 만든 거기 맞음...?

0
2023.12.13
@비행기구름

ㅇㅇㅇ

1
2023.12.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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