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창궁 by 카지이 모토지로

창궁
    카지이 모토지로


 어느 늦은 봄날 오후, 나는 마을의 길가의 흙제방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하늘에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구름이 있었다. 그 구름은 그 지구를 향한 쪽에 연보라빛 음영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용적과 그 연보라빛 음영은 어쩐지 망망대해 같은 비애를 그 구름에서 느끼게 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넓다는 평지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과 골짜기가 그 풍경 대부분인 이 마을에서는 어디를 바라보아도 경사진 지형이 아닌 곳이 없었다. 풍경은 끊임없이 중력의 법칙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더구나 빛과 그림자의 변천은 골짜기에 있는 사람에게 시종일관 어수선한 감정을 주고 있었다. 그러한 마을 속에서는 골짜기로부터 높게 하루 종일 해가 내리쬐는 이 평지의 풍경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나에게는 그 하루종일 해가 내리쬐는 풍경이 슬프도록 향수어렸다. 로토스파고이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가상의 주민들]가 살고 있다는 언제나 오후만 있는 나라 ㅡㅡ 그것이 나에게는 상상되었다. 


 구름은 그 평지 맞은편의 잡목산 위에 얹혀 있었다. 잡목산에서는 끊임없이 두견이가 울어댔다. 그 산기슭에 물레방아가 반짝일 뿐,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은 없고 화창하게 늦봄 해가 구석구석 비추고 있는 산과 들에는 조용한 나른함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구름은 무언가 그러한 안일한 비운을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을 골짜기 쪽을 향해 옮겼다. 내 눈 아래에서는 이 반도 중심의 산 무리로부터 갈라나온 두 골짜기가 만나고 있었다. 두 골짜기 사이로 쐐기처럼 서 있는 산과 앞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산 사이에는, 골짜기 하나를 그 상류로 걸친 십이홑옷[十二単衣, 옛날 여관(女官)들의 정장(正裝)]같은 산주름이 번갈아 겹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거대한 고목 한그루를 그 꼭대기에 두고 있는, 그래서 새삼스레 감정을 고조시키는 산 하나가 솟아 있었다. 해는 매일 골짜기 두 개를 건너 그 산으로 떨어져 가지만, 이른 오후에 해는 지금 겨우 골짜기 하나를 건넜을 뿐으로,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에 서있는 산의 이쪽이 죽음 같은 그림자에 안겨 있는 것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3월 중순 나는 산을 덮은 삼나무 숲으로부터 산불 같은 연기가 일어나는 것을 종종 봤다. 그것은 해가 잘 닿는 바람이 불고 습도와 온도가 알맞은 날 삼나무 숲이 일제히 날리는 꽃가루 연기였다. 그러나 지금 이미 수정을 끝낸 삼나무 숲 위에는 갈색을 띤 차분함이 감돌고 있었다. 가스체 같은 새싹으로 흐리게 보이던 느티나무나 졸참나무의 초록에도 이제 초여름 같은 차분함이 있었다. 무성한 잎들이 저마다의 그림자를 품고 가스 같은 꿈은 더이상 없었다. 그저 골짜기에 뭉게뭉게 무성해 있는 모밀잣밤나무가 몇 번째의 발아로 노란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그런 풍경 위에서 놀고 있던 나의 눈은 두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삼나무 산 위로부터 푸른 하늘이 비쳐 보일 만큼 엷은 구름이 끊임없이 솟아오는 것을 봤을 때, 어느새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솟아오르는 구름은 순식간에 햇빛을 받아 번쩍이며 거대한 모습을 하늘에 펼쳐보였다. 


 그것은 한쪽에서 끝없이 생성되면서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말려 올라간 가장자리가 끊임없이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름의 변화만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말 못할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그 변화를 끝까지 지켜보려고 하는 눈은 언제나 그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속으로 빠져들고, 그저 그것만을 반복하고 있는 동안에 불가사의한 공포와 비슷한 감정이 점점 가슴으로 치솟아 온다. 그 감정은 목을 조여오고, 몸에서 평형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만약 그런 상태가 길게 이어지면 그 어느 극점으로부터 자신의 신체는 나락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마치  폭죽에 장치된 종이인형처럼 신체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힘을 잃고. ㅡㅡ


 나의 눈은 점점 구름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그러한 감정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그 때 나는 문득 어느 불가사의한 현상에 눈을 멈추었다. 그것은 구름이 솟아나는 곳이 그늘진 삼나무 산 바로 위가 아니라 거기서 꽤 떨어진 지닌 곳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와서야 처음으로 엷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커다란 모습을 드러낸다. ㅡㅡ


 나는 하늘 속에 보이지 않는 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가사의한 기분에 붙잡혔다. 그 때 나의 마음을 문득 스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마을에서 겪은 어느 어두운 밤의 경험이었다. 


 그 날 밤 나는 등불도 없이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그 길에 단 한 채의 민가가 있고, 그 집의 등불이 마치 문틈 사이로 비치는 문밖 풍경처럼 보이는, 큰 어둠 속이었다. 길가에 그 집의 등불이 빛을 던지고 있다. 그 속으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사람 그림자가 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등불을 들지 않고 걷고 있던 마을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별로 그 사람을 수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사람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등에 진 빛을 점점 잃어가며 사라져 갔다. 망막만의 느낌이 되어, 어둠 속의 상상이 되어 ㅡㅡ 이윽고는 그 상상도 뚝 끊어져 버렸다. 그 때 나는 '어디'랄 것 없는 어둠에 희미한 전율을 느꼈다. 그 어둠 속으로 같은 절망적인 순서로 사라져 가는 나 자신을 상상하여 말 못할 공포와 정열을 느낀 것이다. ㅡㅡ


 그 기억이 나의 마음을 스쳤을 때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구름이 솟아오르고 사라져가는 하늘 속에 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산도 아니고, 불가사의한 곶도 아니고, 이 얼마나 허무한가! 백일의 어둠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나의 눈이 한순간 시력을 잃은 것처럼 나는 커다란 불행을 느꼈다. 짙은 남빛으로 피어오른 이 계절의 하늘은 그 때 보면 볼수록 그저 어둠으로만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

 

며칠 전 오전에 습기 때문에 건너편 산이 안보이는 거 보고 예전에 번역했던 소설 생각나서 올려봄

1개의 댓글

2023.07.28

묘사가 대단하네, 번역하기 힘들었겠다. 잘 봤어요!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22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바람피우던 여성의 실종, 27년 뒤 법정에 선... 그그그그 1 1 일 전
12421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下) 1 綠象 4 1 일 전
12420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中) 1 綠象 2 2 일 전
12419 [기타 지식] 아무리 만들어봐도 맛이 없는 칵테일, 브롱스편 - 바텐더 개... 3 지나가는김개붕 1 2 일 전
12418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上) 5 綠象 4 3 일 전
12417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보돔 호수 살인사건 2 그그그그 2 4 일 전
1241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2 지나가는김개붕 6 4 일 전
1241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10 대한민국이탈리아 22 5 일 전
1241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3 FishAndMaps 5 5 일 전
1241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그녀는 왜 일본 최고령 여성 사형수가 되었나 10 그그그그 9 7 일 전
12412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3 7 일 전
12411 [역사] 인류의 기원 (3) 3 식별불해 6 8 일 전
12410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재벌 3세의 아내가 사라졌다? 그리고 밝혀지... 그그그그 5 10 일 전
1240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의붓아버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사진 3 그그그그 8 12 일 전
12408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12 일 전
12407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5 14 일 전
1240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12 일 전
12405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14 일 전
12404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6 일 전
12403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5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