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왜 살아야하는가- 니체

총 10장으로 이어져 있는데

10장을 한꺼번에 리뷰하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고봉밥이고 나한테도 고봉밥이라서

찬찬히 리뷰해보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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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궁극의 의문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 존재의 핵심 파고드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에서도 궁극적이다

 

P 8 궁극의 의문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목적’ 측면에서 의문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온 우주, 그밖의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떤 목적을 수행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P10 만약 우리가 죽기 위해 살고 우리 같은 존재가 살 수 있도록 죽는 것이라면 그처럼 계속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이 모든 과정’ 자체는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살고 죽는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유와 우리가 죽는 이유 각각은 알지라도 우리가 ‘살고 죽는’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P13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다른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처럼 내재적인 목적(그 자체가 곧 목적인 수단)만이 우리 인간의 죽음에 대한 도덕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거나 흐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P14 표현은 중요하다. 언어 표현에서 사상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현은 의미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표현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둘려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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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3

19세기 말엽 서유럽을 지배하던 세계관은 유물론과 인본주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에 더해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즉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입에 발린 말로 기독교를 추켜세웠을지는 모르나 그들 중 대다수는 종교가 더이상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삶에 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 두 세기에 걸쳐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변화의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변화를 알아차리기가 쉽지않았다. 사람들은 사실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을 믿기를 관뒀다.

 

P234

《즐거운 학문The Gay Science》(1882)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냉혹한 선언을 한다. 그리고 신을 죽인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라 밝힌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음으로써 신을 죽였다. <....> 이제 세상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했다. 신이 없이는 무엇도 확실하지 않고 무엇도 분명하지 않으며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 신에 대한 믿음과 함께 우리는 세상에 대한 믿음 역시 잃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방향성을, 목적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여기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땅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낙하를 하는 기분이다. 

 

P235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사라진 세계에 대응하는 방법 중에는 허무주의 말고도 훨씬 건강하고 진보적인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털어낼 수 있다. <....> 분명 신의 죽음은 무언가가 끝났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끝은 곧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P236

우리가 신을 죽였을지는 모르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세상은 더 이상 이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소중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이전보다 '덜' 소중한 곳이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중한 곳이 됐을 뿐이다. 신이 죽음으로써 이전에 존재하던 가치들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했다. 새롭게 등장한 가치들은 종교적 신념을 유지하느라, 완전하고 불변하며 영원하다는 허구적인 일자를 숭배하느라 형태가 일그러지거나 얼룩이 지지 않았다. 인류에게 덜 적대적이며 삶에 덜 적대적이다. 죽음이 악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반영하는 대신 죽음 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새로운 존재의 출현에는 낡은 존재의 소멸이 요구된다는 사실, 창조하기 위해서는 파괴하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한다. 신의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기회를, 더 고등한 형태의 인간으로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신이 됨으로써 우리에게 신을 죽이는 것을 비롯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명령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영혼이 돼야 한다. 확실성을 갈망하지 않는, 안전망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돼야 한다. 

 

P237

이처럼 반비관론적이고 반허무주의적인 자유로운 영혼철학은 니체의 가장 특이하고 난해한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oke Zarathustra》(1883~1885)에서 자세히 다뤄진다. 니체는 페르시아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인간 실존이 불가해하고 무의미해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런 무의미함이 상당 부분 우리가 타락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자살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아직 내면에 "춤추는 별에 숨을 불어넣는 데 필수적인 "작은 혼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니체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상황조차 지나갈 것이며 결국 "말인Jast human" 이 세상을 장악할 것이다. 말인들은 더 이상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경멸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 중 가장 경멸스러운 자들이다. 

 

 

P238

니체는 역사적으로 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암시한다. 인류가 지금과는 달랐던 시대, 오늘날과는 달리 더 영웅적이고 열정적이던 시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는 심지어 그런 시대나 생활양식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단어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다. “'사랑이 무엇인가? 창조가 무엇인가? 갈망이 무엇인가?' 말인은 그렇게 묻고는 눈을 껌뻑인다. 그러자 대지가 작아졌으며 말인은 그 위를 뛰어다니며 모든 것을 작게 만든다. 말인이라는 종족은 벼룩처럼 뿌리 뽑기가 힘들다. 말인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 말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껌뻑인다. 니체는 말인이 누리는 행복이 딱히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 행복에는 깊이가 없다. 위대함이 없다. 말인들은 모두 같은 것을 원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가치하다. 또 그들은 모두 똑같아지기를 원한다. 스스로가 다르다고 느끼는 자들은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P239

차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우리 존재의 의미란 "초인superhuman"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달하는 수준에 비해 더 뛰어난 수준의 인간이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에는 우리가 아직 실현하지 못한 혹은 실현하는 법을 잊어버린 잠재력이 담겨 있다. 세상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우리는 초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초인이 되는 것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이자 일어나기로 정해져 있는 일이다. "초인은 곧 대지의 의미이다.” 현재 인류는 과거 동물에서 출발해 언젠가 초인에 이르게 될 궤적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니체는 이런 중간 상태를 가리켜 "위대한 정오great noon"라 부른다.초인이 될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다가와야만 하는일, 말하자면 인류의 저녁과 밤을 적극적으로 반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여명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40

우리는 이성, 미덕,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과 같이 일반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을 경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중 어떤 것도 중요하지도, 가치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는 자기 극복으로 향 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너머에 걸린하나의 밧줄이다." 인간이란 끝자체가 아니라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끝을 향해 이행하는 과정이다. 우리 인간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업은 우리 자신을 대지에 제물로 바쳐 "초인을 위한 집을 짓”는 것, 다시 말해 초인이 도래할 수 있도록 필수적인 준비를 모두 갖추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에 관해 가르치면서 새로운 긍지와 결의를 불어넣는다. “더 이상 천상의 것들로 이루어진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지 말고 의미를 부여하는 대지의 머리를 자유롭게 쳐들라!" 

 

 

P241

생물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태도에 관한 개념으로 보인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초월적인 근력, 고도로 향상된 인지능력, 훨씬 긴 수명 등 어떤 '초인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초인은 삶을 이해하는 방식,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도덕적 견해에 있어서 일반적인 인간과 구별된다. 우리 대부분이 의심 없이 고착하도록 길들어진 그리고 니체가 보기에 우리가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막는 역할을 하는 (기독교적) 가치체계를 통째로 갖다 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초인이 될 것이다.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초인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초인을 더 좋은 종류의 인간이라고 이해하거나 인간의 이상을 체화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좋다'라는 표현의 일반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초인은 결코 '좋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P242

니체는 자연에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단호히 부정한다” 가치평가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므로 자연에 가치가 존재하는 것 같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이전에 그곳에 가치를 갖다놨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 가치를 부여했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세상은 전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창조한 세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선과 악은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도덕적 가치들을 준수하며 살고 있는 것도 모두 우리 책임이라는 뜻이다. 무엇도 그리고 누구도 조상에게서 물려받게 된 가치들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외로운 일이다. "자기 율법의 재판관이자 집행관으로서 홀로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P244

니체가 생각하기에 도덕이란 약자들이 강자들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위해 고안한 발명품에 불과하다. 도덕의 밑바닥에는 공포와 원한이 깔려 있다. 평범한 인간은 비범하고 예외적인 인간이 평범한 인간에게 제기하는 위험을 인식하며 비범하고 예외적인 인간이 지닌 자연적인 우월성을 시기한다. 따라서 평범한 인간은 비범하고 예외적인 인간에게 특정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세상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믿음, 의지를 발휘하기를 삼가고 다른 모두를 배려해야 한다는 믿음, 다른 사람, 특히 약자의 선이 강자의 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믿음을 주입한다. 미덕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주체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미덕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는 에외적인 존재는 악한 존재는 낙인이 찍힌다.

 

P245

모두에게 유효한 도덕에 충성을 맹세하고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삶을 훨씬 더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이른바 "선"에 종속시키는 것은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선"은 더 안락하고 덜 위험한 실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위험이 따른다. 어쩌면 어떤 위험보다도 가장 심각한 위험일지도 모른다. 도덕의 요구에 순응한 채 삶을 살아가는 것은 퇴화로 이어진다. 삶을 더 쉽게 만들어줄 수는 있으나 동시에 삶을 더 하찮고 하등하게 만든다. 실제로 도덕의 핵심 목적은 우리를 하등한 상태, 즉 길들여진 상태, 예측 가능한 상태, 관리 가능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두려워할 만한 존재를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는 인간 무리의 제일가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진보"라 부른다. 하지만 도덕은 겉으로만 우리를 더 낫게 만들어주는 척할 뿐 실제로는 우리의 생혈을 빨아먹는 데 성공한다. 도덕은 일종의 흡혈귀나 마찬가지다

 

 

P247

니체는 연민이 강자에게서 나온다면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약자에게서 직접 고통을 겪고 있는자에게서 나온다면 연민은 무가치하다. 우리가 서로를 동정하는 이유는 주로 우리의 허약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전염됐기 때문이며 마치 일정 수준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연민에 따라오는 방종을 경멸하다시피 거부한다. 니체 자신이 고통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임에도, 아니,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부한다. 니체는 극심한 두통,일시적 실명, 심각한 현기증 등 다양한 종류의 질병으로 거의 평생동안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집필 활동을 했으며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할 때 고통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했으며 고통을 견딜 만한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무언가로 느낄수 있었다.

 

P248

니체는 <우상의 황혼Twilight of Idols》(1889)에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도전적으로 선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망치를 가지고 철학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실제로 끝에 가서는 바로 그 망치가 우리에게 말을 걸면서 자기 자신처럼 “단단해지라"고 권고한다. 고통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고통은 우리를 훈육한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가 높이 올라설 수 있는 이유는 전부 고통 덕분이다. 고난 속에 있는 영혼의 긴장이, 인내하고 감내하고 이용하고 극복함으로써 불행을 짊어지고자 하는 용기가 영혼을 더욱 강인하게 만든다.우리가 최소한 엄청난 고통을 겪을 가능성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고의 기쁨 역시 결코 맛볼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 없이 살 수 없다. 기쁨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지식을 얻기를 바란다면, 위대함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고통 역시 원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제대로 된 고통을 찾을 수 없을 때 고통을 고안해 내기까지 한다. 우리는 진짜든 가짜든 고통 위에서 번성한다."

 

 

P249

하지만 우리가 그 무언가에 대단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우리조차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 그 무언가가 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달리 우리 존재를 납득할 만한 방법을 떠올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다. 어쨌든 우리 인간의 삶은,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동물의 삶은 내재적으로 뚜렷이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라든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연에 어떤 궁극적인 목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이 존재하는 목적이라든가 저편에 존재하는 세계라든가 경험을 초월하는 무언가라든가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물자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아름답지도 무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P251

금욕주의적 이상은 인간적인 모든 것(즉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과 육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증오를 반영한다. 관능은 물론 (인간) 이성에 대한 혐오를 반영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 출현, 변화, 생성, 죽음, 욕망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갈망을 반영한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삶을 멀리하고자 하는 반감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포기하고자 하는 저항심을 표출한다. 이런 이상을 추구할 때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최소한 의지를 부정하려고 애쓰는 '의지' 라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의지는 기형적인 의지임에 틀림없다. 스스로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이상과 관점, 의지를 좌절시키기는커녕 의지를 증진하고 촉진하는 이상과 관점이 필요하다.

 

P252

시초에는 그저 우리에게 힘이 있다는 감각을 증진시켜주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반대로 나쁜 것이란 약함에서 초래되거나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가리켰다. 행복이란 힘이 자라난다는 감정이었다. 기형이거나 허약한 대상을 향한 연민은 그저 그 대상의 존재를 연장시킬 뿐이라는 점에서 나쁜 것이었다.

….

그전까지 좋은 인간이란 고귀한 인간, 즉 강하고 건강하고 용감한 인간을 상징했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운명인 인간을 상징했다. 반면 나쁜 인간이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허약하고 겁이 많은 인간을 상징했다.

….

귀족 도덕은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데서 기인한 반면 노예도덕은 자신이 아닌 모든 것,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데서 기인했다

 

P255

진정한 미덕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만의 도덕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선이 있고 그런 선을 행사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도덕을 개인이 최선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산출을 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여건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니체는 "성스럽고도 건전한 이기심”을 온 마음을 담아 예찬한다. 진정으로 성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당신은 우선 서는법, 걷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늘을 나는것으로 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소위 죄 많은 행위를 정죄하는 기독교적인 도덕관념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도덕관념은 우리 모두를 “도덕적인 괴물이자 허수아비'로 만들 뿐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면 여기에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따라온다. 스스로를 혐오하기 때문에 삶 역시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고귀한 이기심”을 끌어안아야 한다

 

P256

자유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데 있다. 자기 자신에게 겁을 먹고는 자기 자신이 비열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대신에 우리는 마치 자유의 몸으로 태어난 새처럼 수치심도 걱정도 없이 날아올라야 한다. 

요약하자면 니체는 '이것을 하지 말라' 혹은 '저것을 하지 말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억제할 것을 요구하는 모든 도덕에 반기를 든다. 부정하는데 본질이 있는 모든 부정적인 도덕을 거부하는 대신, 무언가를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잘 하라고 독려하는 도덕을 환영한다." 결국 핵심은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폭력을 가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가하는 폭력은 당연하게도 우리를 병들게 만들 뿐이다.

 

P258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사자에서 아이로 바뀌는 세 번째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는 삶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한 “성스러운 긍정”을 상징한다. 자신의 존재를 수치도 근심도 없이 긍정하는 것을 뜻한다. “어린아이는 순결이자 망각,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 신성한 긍정이다.”

 

P259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오히려 삶이 희극이라는 점, 삶이 웃음을 터뜨릴 만한 무엇인가라는 점, 삶이 오로지 “즐거운 학문”을 통해서만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무언가라는 점이다. 

….

여기에는 예술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

또한 예술은 우리가 도덕 위에 서 있을 수 있도록(더 정확히는 도덕위를 떠다니며 놀 수 있도록)만들어준다. 삶은 사실상 권력 의지의 표출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의무나 운명이나 사기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실험의 장으로 여기는 가운데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P261

단 하나뿐인 진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다. 일단 진리가 비진리보다 늘 유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류가 삶의 조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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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고유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무한한 수의 다양한 해석이 열려있다.

 

P263

좋은 죽음은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자유로운 죽음이다. 우리는 언제가 떠나야 할때인지 알아야 하며 그때가 되면 삶에 매달리지 말고 기꺼이 떠나야 한다.

….

죽음은 삶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죽음 없이는 성장도 없다. 삶은 자기초월적이다. 

 

P264

모든 일이 필수적이므로 우리는 체념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는 아무리 이상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일의 모든 부면을 긍정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는 그저 존재하는 삶 대신 급진적으로 생성하는 삶을 살기 위해 죽음과 소멸을, 대립과 전쟁을 끊임없이 긍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바로 이런 긍정이 니체가 <…>본격적으로 다루는 유명한 사상, 영겁회귀 사상의 핵심이다. 니체는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미 일어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이전에 이미 일어난 적이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다.

 

P267

모든 것을 되풀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사람, 가장 살아 있는 사람,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다.


19세기 유물론과 인본주의 유행하면서 인지했던지 못했던지, 의식적이였는지 아니였는지 모르지만 인류는 점차 신을 믿기를 관뒀다.

이런 상황에서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인류가 믿음을 관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인류는 방향성,목적의식, 가치관이 모두 붕괴되었다.

신의 죽음은 충격적이지만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종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스스로 재창조하고 더 고등한 존재로 인간이 존재할 수있게 만들었다. 그러한 인간은 스스로 행동하는 영혼을 가지며, 확실성과 안전망이 필요없는 존재이다.

이런 작은 혼란, 춤추는 별 같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행복을 찾기 위해 많은 추상적인것들을 정의 내린 '말인'들에 의해 위대함과 깊이가 사라졌다.

니체는 우리 안에 초인이 존재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운명이다. 우리는 말인들에 의해 실현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린 존재다.

그럼에도 존재 방식의 변화를 통해 초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초인이 되는 것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이자 정해진 운명이다.

초인은 먼저 전통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던 이성,미덕,행복 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이 중요하지도, 가치 있지도 않다. 초인은 삶을 이해하는 방식,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도덕적 견해에서 남들과 구별된다. 모든 가치체계를 거부한다. 초인은 선하거나 '좋은' 존재는 아니다

니체는 객관적인 가치 존재를 부정한다. 가치있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며, 우리가 창조한 세상일 뿐이다.

선과 악도 인간의 창조물이며 도덕관도 우리 책임이다. 그러니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시 우리 각자에게 달렸다. 당연히 기존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건 어렵지만 파괴없이는 창조도 없다.

니치에게 도덕이란 약자들이 강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도덕의 밑바닥에는 공포와 원한이 있다.

그러니깐 도덕은 평범한 인간이 특별한 사람을 시기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시로 선에 충성하고 맹세하길 요구하는 것은 강자들을 조련하는 도구다.

안락하고 덜 위험하니깐,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위험에 빠트린다. 강자 삶이 더 하찮고 하등하게 길들여진다. 이렇듯 도덕은 흡혈귀다

연민도 마차간지다. 강자의 연민은 가치있지만 약자의 연민은 무가치하다. 허약함이고 고통에 지나치게 치명성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니체에게 고통은 부가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고통은 우리를 훈육한다. 고통없이는 기쁨도 없다.

기쁨,지식,위대함을 원한다면 우리는 고통 역시 원해야 한다. 우리는 고통안에서 번성한다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실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그럴수밖에 없는게 자연은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우주는 아름답지도 무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저 존재한다.

태초에 우리는 힘의 감각을 증진시키는 것은 좋은 것이였고 약함은 나쁜 것이였다.

좋은인간(주인) = 건강하고 강하고 용감한 인간, 자기 자신을 그정

나쁜인간(노예) =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허약하고 겁이 많은 인간, 모든 것은 부정 

그런데 노예들의 반란으로 가치가 전도됐다.

우리에게는 나만의 선, 나만의 선을 행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가 도덕을 내가 최선의 존재로 존재할 수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낼 수 있는 여건으로 이해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죄책감을 느끼면 삶을 혐오하게 될 뿐이다.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통해 우리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 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처럼 수치도, 근심도 없이 긍정해야한다.

또한 삶이 희극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예술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삶은 권력 의지 표출이다. 우리는 삶을 실험의장으로 여기며 즐겁게 살아야 한다.

죽음 또한 자유롭게 받아야 들어야 한다. 체념과 수용을 넘어서 반대면을 긍정적으로 사랑해야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겁회귀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이 삶을 다시 반복한다해도 무조건 다시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한다.

세줄 요약

  1. 모든 가치관에서 벗어나

  2. 고통을 사랑하며 더 성장해, 그리고 너의 가치를 실현해 

  3. 다시 살아간다해도, 다시 살고싶은 삶을 살아가


니체 철학은 정말로 파괴적이다.

더 강한 나를 꿈꾸게 한다. 나로써 존재하고 다른 것에 휘둘리지 않는 나로 성장하길 바라게 된다. 

너의 가치가 실현되는 삶을 살고 그 삶을 사랑해 

괜히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뿜뿌되는 느낌, 내일이 기대되는 느낌

실은 모든 페이지마다 인상 깊은 구절이 많아서 다 적고 싶었지만 너무 많으면 내 생각이 들어가 틈이 없을까봐 일부로 몇 개는 뺐다

여태까지 앞선 작가들은 삶과 타협하는 법을 말했다면 니체는 삶이 타협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13개의 댓글

2023.01.17

니체 쇼펜하우어 철학을 몇번 읽어봤는데 느껴지는 결론은 하나더라

저 2명이 원하는 인간상은 저 2명이 말하는걸 듣고싶지도 않아하고 들을필요도 없는 인간이겠구나...

이미 충분히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독선에 가까운 확신으로 살아갈테니

4
2023.01.17

나중에 시간나면 좀 읽어봐야지. 니체 ㅇㄷ

0

나체 ㅇㄷ

0
2023.01.17

진짜 즐거운 학문이 영어로 The Gay Science임?

0
2023.01.17
@25374

20세기 중반까지 gay는 원래 즐거운, 유쾌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였음 ㅋㅋㅋ

0
2023.01.17
@이근

신기하네..

0
2023.01.18
@25374

월터 카우프만이라는 저명한 니체 번역가가 1960년대에 Gay라고 번역함. 원래 독일어 원문이 처음으로 영번역된 1910년도에도 이 책을 the gay science라고 처음 번역되었으나 그때는 이 동성애자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 그런데 카우프만은 이제 완전히 동성애자란 뜻으로 자리잡은 60년대에도 gay라 번역함. 누가 joyous 같은 단어도 있는데 왜 이렇게 번역했냐고 질문하니까, 카우프만은 이렇게 말함.

0
2023.01.18
@25374

원래 Gay라는 단어에는 즐거운이란 뜻도 있지만 기존 형태의 저항이라는 의미가, "도덕적 제약을 받지 않는"이라는 어원이 있다고. 동성애자들이 이 gay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이 기존의 homosexual이란 단어가 욕으로 변하니까 이 제멋대로인 도덕적 제약에 저항하겠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그런 것 아니겠냐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Gay라고 번역했다고 말함... 나도 사실 재미로 찾아봤는데 이거 아주 심오한 번역이었음...

1
2023.01.17

초인이 정말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게 맞을까? 우리 정신이 고결해져도 몸은 여전히 땅바닥에 있는데 그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난 오히려 동물에 가까워지는 것이 행복해지고 순리에 맞는 방향이라고 요즘 생각함

2
@흉근게이

니체가 말한 초인은 몸이 땅바닥에 있어도 신경안쓰지않음?

0
2023.01.18
@흉근게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몸이 땅바닥에 있든 어디에 있든 상관 없지. 그리고 정신이 고결해진다,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 더 크다 뭐 이런거 보면 아직 니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듯

1
2023.01.18
@흉근게이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자칫 상대에 대한 비난으로 읽힐 수 있어서 댓글을 닮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기보다 내용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듯

니체와 상관없이 평소 해오던 생각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임

'고결한 정신과 그렇지 않은 몸에 대해서'

아마 윗댓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을 것임

 

동의하진 않지만 충분히 타당한 생각인듯

읽을거리 게시판의 다른 글에서

다뤄도 될 법한 주제로 보임 화이팅

0
2023.01.17

눈마새가 니체 철학 짙게 묻어있다 해서 요새 좀 관심이 가더라 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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