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괴담

철거

한참 취준생일 때 생활비 때문에 용역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용호동에 주택 내부 철거를 갔는데, 그 규모가 꽤 컸습니다

 

평수는 넓었지만 아주 낡은 주택이었습니다.

 

40평 규모의 바닥을 5cm가량 까내서 바닥열선을 들어내고 새로 까는 작업이었습니다.

 

가구, 장비, 자제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바닥에 아무것도 없게한 뒤 장판을 치웠는데 이상한게 나왔습니다.

 

공구리 바닥에 덕지덕지 괴황지가 붙어있었는데 그게 현관부터 거실 바닥까지 얼추 세도 이백장 넘었습니다.

 

괴황지에 바랜 붉은 색으로 한자가 쓰여있는데,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악필에, 글귀도 전부 달랐습니다.

 

오야지가 얘기하길, 본디 철거 할 때 몇가지 함부러 버리면 안되는게 있는데

 

아기사진, 신앙에 관련된 물건, 오래된 책은 일단 놔두고 집주인에게 물어본 뒤 나중에 처분하는게 순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온 바닥에 이런게 붙어있으니 일이 진행이 안 되는겁니다.

 

오야지가 집주인과 통화하는 동안 다들 옹기종기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용역 특성상 매일 다른 사람을 마주치니, 자주 볼게 아니면 굳이 이름이나 나이를 묻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일 끝날 때까지 서로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처럼 짬이 난 경우에 서로 통성명을 했습니다.

 

다들 본적이 부산이 아니고 일하러 내려온거고, 나이가 열살차이부터 아버지뻘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래도 노가다판 특성상 전부 형님으로 퉁치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제일 많은 형님이 얘기하길, 철거만 십수년을 했는데 이렇게 기괴한 경우는 처음이랍니다.

 

본디 이렇게 마루 밑에 부적이나, 액땜을 넣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도배를 해놓은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또 딴 형님이 얘기하길 부적에 쓰이는 사각틀에 맞춰서 쓴듯한 한자체를 전서라고 하는데, 이게 쓰는 사람마다 묘하게 달라서 알아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딴건 모르겠고 방문 턱과 창문 앞 그리고 집 현관에 붙어있는 한자의 생김새가 금(禁)자를 꼭 닮았다고 하덥니다.

 

전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들어 찝찝해졌습니다.

 

자세히 보면 다른 부적은 전부 방향이 제각각으로 붙여져 있는가운데,

 

방 어귀마다 붙어있는 부적과(무슨 글자인지는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금(禁)자 부적만 정방향으로 붙어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금지 한다는 걸까요? 

 

결국 그날은 반공수만 받고 오사마리를 지었습니다.

 

새 집주인이 사진을 보더니 기겁을하고 공사를 중지시켰다는 겁니다.

 

집에 온 후에도 워낙 인상깊은 현장이라 가끔 기억이났습니다. 뭘 위해 그렇게 많은 부적을 붙여놓았던 걸까요?

 

 


친가 고모가 불교용품을 판매하시는데 자주는 아니고 설 추석마다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왠일로 아버지 얼굴을 보러 놀러오셨습니다.

 

성격이 곧고 바른말을 잘 하셔서, 가족들이랑 다툼이 많으셨는데 저랑은 잘 맞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는 와중에 갑자기 생각이나서 이러이러한 현장이 있었더라~ 정도로 별 생각없이 물었습니다.

 

고모는 곰곰히 들으시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말씀하시길 보통 입춘대길入春大吉같은 길한 부적은 입구 위나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것이 보통이라합니다.

 

바닥이나 벽뒤에 숨기는 부적은 대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정집에서 부렇게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보살이나 장군을 모시는 무당집이나 그렇게 붙이지, 가정집에 그렇게 부적을 쓰는건 과유불급이라 얘기 하셨습니다.

 

또 악귀를 쫒을 때는 단순히 금(禁)자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은 진언이나 불경이 많은데 굳이 부정적인 글자를 박아놓을 이유가 없다고요.

 

부적을 쓴 놈이든, 붙인 놈이든 문외한이 분명하고, 부적 방향도 이상하다고 합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걸 막으려면 부적이 안에서 볼 때 역방향을 취해야하는데, 마치 안에서 밖으로나가는 걸 막는 꼴이라고요.

 

전체적인 구도가 마치 집 밑에서 뭔가 올라와서 나가는걸 막으려고 하는 형태라고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당시 형님들하고 그런 얘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집 밑에 시체라도 묻혀있는게 아닐까하고요.

 

그 당시엔 흰 소리로 넘겼는데, 고모께 직접 얘기를 들으니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고모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디로 일하러갔는데 그런게 있냐고.

 

주소는 잘 기억은 안나는데 오륙도 근처란건 선명히 기억났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고모께서 안색이 희멀게지셨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으시던 고모님이 차분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과거 용호동 오륙도 앞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살던 촌이 있었답니다. 부산어른들은 문디촌이라면 거의 다 안다고요.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고 불리는 한센병은 지금은 치료가 쉽지만 예전에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얼굴이 녹아내려 극심한 혐오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길가다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죽으면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는 등 차별을 많이 당했다고요.

 

그러다 보니 자기들끼리 장례를 치르거나 빈 터에 공동 묫자리를 만들곤 했는데 제가 일을 간 곳이 그런 터 같다고 합니다.

 

집은 지었는데 혹시나 터에서 병이 옮을까봐, 혹은 억울하게 죽은 이에게 해코지 할까봐, 막연한 불안감에 제멋대로 부적을 붙여놓은듯 하다고요.

 

살아서 곱게 죽지못했을 사자(死子)가 누운 터에 집을 지을 생각을 하거니와 제사는 지내주지 못 할 망정 땅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놓

은 꼴이라니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고모께선 참 안타깝고 안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10년이 넘어서 요즘 다시 그 자리를 지나갔는데 아파트가 들어서있었습니다.

 

과거 문디촌이라고 불리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고, 부자동네로 알려져있더라고요.

 

한센병 환자들은 어느순간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고합니다.

 

다른곳에 환자들끼리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얘기도있고, 소록도로 떠났다고하는 얘기도 있다고합니다.

 

전 영혼을 믿지 않지만 만약 영혼이 있다면 죽어서도 집 아래 눌려있던 그들의 영혼은 잘 성불했을까요?

7개의 댓글

2021.08.08

거기 이미 부적이 아니라 p가 몇억씩 붙어서 오름

1

부적 숫자 곱하기 한 만큼 땅값 미친듯이 뛰었을 듯

 

근데 얘기는 재밌다

0
2021.08.08

난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한센병이 불치병이던 시절에 돌았던 미신이 뭐냐면 사람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이었음 근데 이미 근육도 많이 약해져 있는 한센병 환자들이 성인을 죽여서 먹을순 없었음 그래서 대부분 아이를 납치해다가 죽여서 간을 먹었다고 함 지금 86세대 혹은 60대 정도 되신 분들한테 물어보면 그때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생간 빼먹는 일이 꽤 있어서 아이들 절대로 혼자서 못돌아 다니게 했다는거 그 시절 분들은 다 기억 나실거임 그렇게 납치해서 죽여 생간을 먹고 후환이 두려워 저렇게 부적을 붙여 놓은게 아닌가 싶은데

4
@년째덥다

와우..........

0
2021.08.08

잘 읽고 갑니다😀😀😀😀

0
2021.08.09

담담한 썰체 너무 좋고

0
2021.08.14

귀신도 막아버리는 콘트리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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