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담배를 사봤다. (스압)

 

 

여느때처럼 야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너무나도 하기 싫지만 그래도 돈은 냈으니 지친 마음을 이끌고 운동을 끝냈다.

하하 호호 왁자지껄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안개처럼 깔려있는 유흥가를 가로질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도착까지 20분,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네.

근처 로또방에 들려 이번에는 되리라 로또 한장을 사고 편의점에서 생수 한병을 계산 하던도중 우연찮게 눈에 띈 일회용 전자 담배를 하나 샀다.

 

8500원, 연초보단 비싸고 전자담배보단 싼가격을 보고 평소에 펴보지도 않던 담배를 샀다.

편의점에서 나와 술집앞에서 모여 담배를 피는 무리에 껴서 구석자리에 슬금 섰다.

익숙치 않는 포장방식에 한참을 낑낑 거린 끝에 손에 딱닥한 플라스틱 질감의 작은 담배를 쥐었다.

 

살포시 입술에 가져다대고 소심한 들숨을 들이켰다. 

콜록콜록콜록콜록.. 기침을 하니 담배무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듯 다시 소심한 들숨..

 

콜록콜록콜록콜록... 두번째 기침을 하니 담배무리는 가소롭다는 분위기를 풍기고선 나에게서 곧이어 관심을 끊었다 

 

다시 세번째시도.. 아주 조금 입안에 연기를 머금고 깨끗했던 폐속으로 삼켰다. 이번에는 괜찮구나..

폐를 거친 담배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다보니 문득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항상 담배를 피고 저녁이면 술에 떡이 된 상태로 들어오던 아버지.

만취되서 흐리멍텅한 풀린 눈으로 보던 그 눈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실때가 되면 이불을 덮고 자는척을 하곤했다.

쥐죽은듯이 규칙적으로 숨쉬는 법도.. 깊고 느리게 새근새근 자는척을 하는법도 그때 익히게 되었다.

 

만취되서 온 아버지는 어느때는 용돈을 뿌리는 호탕한 아버지였고 어느때는 형과 나를 때리는 무서운 아버지였다.

이미 시골동네 망나니로 소문나서 일도 하지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술만 퍼먹으면서

항상 담배를 물고 다니는 아버지를 보고 모든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가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형만 데리고.

집에서 무섭고 두렵던 아버지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울던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눈병이 걸려서 아무도 만지지 않던 나를 안고 몇시간을 엉엉 울었다.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아빠를 버릴순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버지와 살게 됬다.

어머니와 같이 살때는 집안에서 담배를 못피게 했었는데.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로는 집안에서도 담배를 물고있었다.

물론 저녁이 되면 만취되는 것은 같았다. 때론 대화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지역토박이라 어머님은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미용실을 하셨고

매일 어머님한테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고자질했다.

 

아버지한테 맞는건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슬퍼할것 같았다.

그렇게 수년이지나 고등학교를 갈때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갔다.

어머니가 살고있는 집은 옆동네 삼춘집이었다. 여긴 너무나도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생겨서 프로그래밍 언어 관련 책을 사서 집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운좋게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군대를 간 동안에도 휴직처리를 해줘서 맘편하게 군대도 다녀왔다.

 

말년 휴가때 집에서 뒹굴거리던중 잠깐 나간 동네 슈퍼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고등학교 입학이후 한번도 못본 아버지는 엄청나게 늙어있었다. 머리는 새하얗게 새어있었고 여느때처럼 만취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몇년동안 변한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알콜성 치매 때문에 아예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이름을 말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은 그냥..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집에 왔다. 

 

제대를 하고 복직을 하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하던 어느날.

업무시간에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무심히 하던 일을 놓고 차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집으로 왔다.

항상 오가던 출퇴근길이 담배연기 처럼 흐릿하고 뿌연 느낌이었다.

 

집에 돈이 없어서 장례식을 어떻게 차리나 싶었지만 고맙게도 많은 분이 위로해주시러 발걸음 해주신덕에 잘치루었다.

 

장례마지막날. 아버지의 시체를 만지는데 슬프지 않았다.

단지 나를 기억할지 궁금했다.

뒤돌아 보았을때 아버지가 엉엉울던 날처럼 어머니가 엉엉 울고있었다. 그걸 보니 눈물이 났다. 그때는 슬펐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깊게 빨았다. 왠지 기침이 나오질 않는다.

담배 연기가 하늘로 흩어졌다.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걸 깨닫고 버스를 타러 갔다.

 

담배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시는 피지 않으리.

10개의 댓글

18 일 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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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전

https://www.youtube.com/watch?v=J9XwFecNX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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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전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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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 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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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 전

아버지, 내게도 애증의 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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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 전

좋은데 대리고 -> 데리고 자꾸 눈에 거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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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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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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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 전

좋은 글입니다

0
13 일 전

어머니는 왜 우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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