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서술하자면, 조선을 먹었을 때의 손해가 이득보다 커지기 때문임.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행정력의 한계, 두 번쨰는 군비절감이야.
이미 중국은 충분히 큰 나라였고 고대의 행정력으로는 중앙집권적 체계를 어느 한도 이상 유지하기 어려웠음.
당시 시대에서 국가를 유지하려면 중심지-국경까지 사이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는 만큼의 행정력이 필요하다고 봐도 될 거야.
그래서 중앙직할령 말고도 토사, 번부 등등 etc... 자회사를 통해 관리하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다스린 거지.
중원 자체도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데 이런데 그 바깥 나라들은 어떻겠어?
먹어 봤자 행정력이 미치지도 않아서 이득이 없고, 점령하는데도 예산이 엄청나게 소모되겠지?
그런데 점령해 봐야 그 바깥에는 또 적이 있으니까 결국 국방비는 더 늘어나는거야...
다시 설명하자면 거리가 멀다는 건,
1. 보급도 힘들고
2. 점령지에서 세금 걷어오기도 힘들고
3. 국경은 더 넓어져서 방어해야 하는 구역은 더 넓어지는
3가지 단점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어느 한도 이상으로는 확장하지 않는 게 나아.
근데 영토 밖 나라를 꼭 적국으로 남길 필요가 있나?
괜히 국경에 요새 세우고, 군사 주둔시키고...... 쓸데없이 국방비 소모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우리한테 깝치지 마라 마! 하고 상하관계만 잘 정리해 두는 게 서로한테 훨씬 이득인 거지.
추가로 국방비 절감을 넘어서 아예 좀 친하게 지내면 어떨까? 하고 등장한 게 조공무역이야.
서로한테 이득이 되는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잖아.
그런데 위대한 대.중.화가 한낱 조공국들하고 동등하게 무역을 할 수 없으니 조공이라는 형식을 빌린 거지.
조선이 조공무역에서 오히려 큰 이윤을 봤던 걸 알지 모르겠는데, 사서에는 조선놈들이 오지 말래도 1년에 두 번씩 와서 금을 쓸어간다고 한탄하는 내용도 있어.
뭐 교역이라는게 원래 순기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조선이 오히려 큰 이득을 가져간 거지.
근데 중화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보면 별로 손해는 아니었음.
그 뭐시기...... 몸빵 역할이랄까? 홍삼같은거 사주고 사신들한테 돈푼 좀 챙겨주는 게 국방비보다는 훨씬 싸게 먹히자너 ㅎㅎ;
그래서 조선이 이득을 보는 구조의 조공무역이 꽤나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거야.
한반도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계륵' 되시겠다.
추가로 왜구놈들 몸빵역할도 ㅎㅎ;
전진배럭
년차 호그와트 교장
전진배럭
qudtlsemf
대충 기억나는게 한반도 먹으려다 깔짝거리면, 그 사이 다른 변방국이 힘을 키워서 그 나라를 먹었다. 이런 식이었던 것 같음.
전진배럭
약골멸치
아래앟
왈라비
다들 일제 하면 당시 반일정서가 지배적이라 생각하는데생각보다 워낙에 구한말 조선이 개판이라 의외로 친일정서가 많았음 독립투사도 거의 대부분이 명문가 선비들이나 그 자제들이었고
왈라비
노동력+군강제징집
시베리아 횡단루트 등 대륙발판으로 인한 물자수송 절감및 기동성 증가 그 외 군 진출 유리
다만 결과론적으로는 일본이 패망하고 실패했기에 손해라고봄 식민지배 하면서 중국 동남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 꼴도 말이 아니었지 괜히 이새기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게 아님
만약 일본놈들이 동남아 중국먹으려다 배 째질거 알았음 조선만 먹고 열강놀이하면서 꿀쳐빨았을듯
결과론적으론 실패했기에 손해라고봄
뭔가 눈앞의 욕심에 사서 고생한 느낌
일라클
당시 조선은 근대화가 1도안된 순수 농업국가엿고 일본입장에서 쌀수탈이외에는 매리트가 없는땅이엿지
철도부설권을 명목으로 사실상지배를 시작하고 철도깔고 공장지어서 근대화시키고
강제노역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게 원래 목적이엿음
양갈보
넨가드
쉬어가는집
넨가드
쉬어가는집
왈라비
왠만해서 난 추주는데 니 글은 아님
중고딩 수준의 뇌피셜느낌이다.
Salvacion
크리스피롤
복숭아술
역사적 사례나 논문, 의견서 아무것도 없이
글쓴이의 의견을 펼친 글이잖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에 맞는 뒷받침이 잇어야지 수긍하지
글쓴이가 아니라 오히려 댓글보는게 역사적사례가 더 많을 정도니까
개한심들
내닉넴보는애들탈모생김
커넥톰
1.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 가는 길이 모두 천혜의 험지라(개마고원을 지나거나 바다를 건너거나 해야 함) 거리가 가까운 것에 비해 점령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함
2. 민족이 거칠어 끊임없이 저항하여 다스리기 어려움
이거 쓰고 찾아봤는데 맥락이 비슷한 말만 찾고 똑같은 말은 못찾겠다. 어쨌든 주원장이 위와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어. 그리고 실제로 중국 왕조들이 최전성기에 갔을 때도 해외원정의 실패, 대규모 해외원정등으로 국력이 기울어서 망한 경우가 많지.
커넥톰
사방의 제이(諸夷)는 모두 산으로 막히고 바다로 떨어져 있어 단지 한 모퉁이에 치우쳐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땅을 얻어도 산물을 가져올 수가 없고, 그 백성을 얻어도 감히 부릴 수 없다. 만약 그들 스스로가 살피지 못하고 우리 변경을 소란하게 한다면, 이는 그들에게 좋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중국의 걱정이 되지 않는데도 우리가 가벼이 군사를 일으켜 침공한다면, 역시 좋지 못할 것이다.
나는 후세의 자손이 중국의 부강함을 믿고 단지 한때의 전공을 탐하여 이유 없이 군사를 일으켜 인명을 살상할까 그것이 두려우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라. 다만, 호융(胡戎 : 몽골)과 중국은 국경이 붙어있어 오랫동안 전쟁을 펼쳐왔으니, 반드시 좋은 장수를 가려 뽑아 병사를 훈련시켜 그들에게 대비하여야만 한다.
이제 나는 정벌하지 말아야 할 여러 나라의 이름을 열거하겠다.
동북에서는 조선국. 정동편북에서는 일본국. 정남편북에서는 대유구국, 소유구국. 서남에서는 안남국(베트남), 진랍국(캄보디아), 섬라국(태국), 점성국(참파), 소문달랍국(수마트라), 서양국(인도 남부), 일형국(말레이시아), 백화국(자바섬), 삼불 제국(팔렘방), 발니국(브루나이).
─ 황명조훈 中
Salvacion
걍 방파제역할로 조공국들로 나둔거라 보는게 좋을거임
모모무
전진배럭
패드립장인
1. 이민족왕조가 중원을 먹고 영토를 확장
2. 이민족은 금방 한족에 동화되버리고 한족왕조가 일어나고 영토를 계승
3.그러다 또 이민족이 중원을 먹고영토확장... 한족이 계승을무한 반복
한반도는 최초에 한나라때 한번 먹혓엇고. (고조선함락) 그 이후로는 수많은 침공을 전부 버텨냄. 거란여진몽골 오랑캐 3대장 전부 이겨낸건 잘알거고. 수백범의 침공을 견디어냇기 때문에 주권을 유지한것이지. 만약 중간에 중국에 먹혓으면 한화당하고 중국인 됫을거임.
청나라가 조선을 합병할수 잇엇음에도하지 않은것도 이런 끈질긴 저항끝에 '저 나라는 먹으면 탈나...' 라는 인식을심어준 조상들의 노력덕분.
패드립장인
전진배럭
패드립장인
청나라는 아직 유목민족체제를 유지하고있어서 충분히 조선정벌한 능력이잇엇음. 근대 결국 안한이유는 조선에 대한 이미지 덕분임.
몽골때도 항복안햇으면 한민족 멸망햇을거다 하는 가상스토리도잇듯이. 청나라때 항복한거도 나중에보니 신의한수다 라고 보는 의견이많지만.
결국은 저 조선국이라는 나라는 합병해도 득보다 실이 많다 라고 여기기에 정벌하지 않은것이고. 그게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커리어덕분임.
과거에 중국에서 한사군이나 도독부 총관부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한 시도들이잇엇으나,
결국은 얼마못가서 다 말아먹거나 유명무실해짐.. 이러한 과거의 사실들이 후대에도 중국군주들의 판단에 영향을 준 사례도잇음(쿠빌라이등)
복권한번 긁어보자
고려군 개좋아했다던데
전진배럭
전진배럭
2.청나라는 유목민족이 아니라 반농반수렵민족임. 조선에 대한 이미지는 청나라가 고려한 사항이 아님. 병자호란시점에서 청나라는 조선에서도 나름 상대가능한 국력이었고, 배후의 명나라를 고려하면 항복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합리적 판단이었음
3.조선을 합병해도 득보다 실이 많으니 정벌하지 않았다는던 조선뿐 아니라 중국왕조에 합병되지 않은 나머지 수백개나라들 모두에 해당함. 그리고 득보다 실이 많았던 까닭은 당대에 외교적 상황 때문이지 조상들의 커리어 때문이 절대 아님.
4. 한사군은 수백년을 갔지만 나머지가 모두 실패한건 맞음. 그러나 이또한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결국 지금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 독립한 이유도 그런 정복과정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인데 너무나 당연하고 의미없는 설명임.
5. 쿠빌라이 칸이 고려에게 항복조건에서 우대한 것은 고려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아 당대의 외교적 환경에 부산물임. 당시 쿠빌라이칸은 아릭브케와의 내전으로 정통성이 결여된 상태였고, 만주에 동방삼왕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음. 그런 외교적 환경 때문에 비교적 완화된 항복조건을 얻어낸 것이지 이미지는 별 상관없음. 이미지 어쩌구는 그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음.
전진배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