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지구의 속삭임, 골든 레코드의 우주

고1때 문예부에서 썼던 글인데 그냥 올려봄

칼 세이건의 <지구의 속삭임> 이라는 책을 보고 주요 논지를 담아 적었음(독후감은 아님) 

 

 참고할 만한 개드립 글 - https://www.dogdrip.net/doc/363097473

 

골든 레코드(나뮈키) -  https://namu.wiki/w/골든%20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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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를 좋아하고 한 번이라도 드넓은 밤하늘을 품에 안아본 사람이라면, 보이저 호라는 이름은 익숙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의 강력한 대립 관계, 그것도 우주적인 경쟁 구도에 미국이 승자의 위치를 점점 가져갈 때쯤 소련의 의지를 꺾을 쐐기를 박아넣기 위한 미국의 야심찬 작품이었다. 총 두 대로 이루어진 보이저 호는 각각 외행성계와 심우주를 항해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주었다. 소용돌이치는 폭풍의 목성, 푸른 알사탕 같은 해왕성과 천왕성과 아름다운 우주의 사진을 보내올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것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흥미로운 시각적 경험을 넘어 전 인류적인 과학적 발전과, 나아가 우리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추진체와 같은 것이었다. 보이저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꿈이자 희망이었다. 카메라가 달린 얇은 알루미늄 기계덩어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도 컸다.

 

 무엇보다도 보이저가 기존의 탐사선과 차별점을 가지는 점이라면 심우주 탐사까지 가정하여 설계한 우주선이라는 점이다. 심우주, 말 그대로 깊고 넓은 우주라는 특성에 걸맞게 사람들은 그 특성을 최대한 살릴 프로젝트를 하나 더 준비하게 된다.

 

 ‘골든 레코드’ 는 보이저의 겉면에 부착된 직경 50cm가 채 안 되는 레코드판이다. 극미량의 우라늄 238과 황금으로 도금된 그 레코드판에게 사람들은 큰 임무를 주었다. 바로 외계인을 찾아 지구인들의 소리를 들려주는, 어찌 보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임무였다. 우리 은하 내부 14개의 펄서를 이용하여 태양계의 위치를 간단히 표시하고, 단조로운 기계음으로 이루어진 소리와 그 소리를 겨우 320개의 주사선으로 바꿔 주는 원시적인 사진 변환 장치를 실은 채 골든 레코드는 출발했다. 모든 인류의 소리를 담은 채, 우주 구석의 작은 ‘속삭임’ 을 담은 채.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자면, 골든 레코드는 탄생 목적과 그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 완전히 어긋난, 어찌 보면 상당히 어색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것의 과학적 가치와 그 목표를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도 ‘사실 골든 레코드가 외계인을 만날 확률은 매우 낮고, 만난다 해도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말해, 본래 목적을 기준으로 그것의 과학적 가치를 따지자면, 좀 과장해서 ‘고철’ 에 불과했다. 그럼 어떤 연유로 사람들은 과학적 가치 하나 없는 걸 만들어서 우주로 쏘아보낸 걸까.

 

 

 

2.

 우주의 밀도는 매우 낮고, 애초에 직경 3미터짜리 우주선이 항해하며 미약한 전자파로 자신을 알리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공간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를 우주선으로 쏘아올려도 발견되지 못 할 확률이 큰데, 하물며 보이저 정도면 두말하면 입만 아픈 것이다. 그렇게 작은 물체가 다른 문명에 의해 발견될 확률은 0에 수렴했고, 그것은 골든 레코드도 마찬가지였다. 전인류적인 과학적 목표를 맡기기에는 그 구조 자체가 태생적으로 이상했다는 것이다.

 

 이걸 과학자들이 몰랐을 리 없었다. 당장 앞에서 말했듯이 칼 세이건조차도 골든 레코드가 외계인을 조우할 확률을 사실상 0으로 보았다. ‘외계인에게 지구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려주는 것 아니냐? 이는 우주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라는 질문에 한동안은 자신들이 만든 레코드판의 의미를 자신들이 부정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참 냉정하기 그지없는 과학자들답게 말이다. 그렇게 정치계와 과학계가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보이저는 묵묵히 날아갔다.

 

 그랬기에 골든 레코드는 사실 발사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게 맞았고, 인문학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편이 누구나 납득 가능할 해답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외계인을 만나지 못 하고, 외계인을 만나도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 할 지도 모르고, 애초에 과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냥 두께 4밀리미터의 금으로 도금한 강철 쪼가리를 날려보낸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 주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사실 레코드판을 올려보낸 것이 아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인류의 어떠한 상징적 메시지를 날려보낸 셈이었다.

 

 1970년대는 아직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오지 못 했던 시기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여파는 냉전이라는 거대한 눈치싸움으로 계승된 지 오래였다. 많은 식민지가 해방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제 3세계 근방에서는 잔혹하고 더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 번에 걸친, 50년을 관통하는 유럽의 거대한 폭풍이 남긴 피해는 어마무시했다. 사실 미국이나 소련같은 강대국이 우주를 꿈꾸는 것도 전지구적으로 보면 사치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우주를 개척하기 위한 또다른 원동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지난 백 년 간의 광기어렸던 분위기를 떨쳐내고 우주로 나아가고 미래로 나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골든 레코드는, 이러한 소망의 집합체였다. 우주를 향한 미래의 시초선을 알리는 시작점과 같았다. 더 이상 아픈 상처를 만들지 말고 평화와 행복을 실현하며, 아픔을 향한 작별 인사와 미래를 향한 첫 인사를 이어주는 선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의미를 담은 골든 레코드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과학적인 임무’ 가 아니라.

 

 골든 레코드에는 여러 가지 인류의 소리와 사진들이 담겨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과 모차르트의 클래식과 세상 여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 음악들이 들어 있고, 고래의 울음 소리,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 인간이 말하는 소리를 담았다. 곧, ’지구가 속삭이는 소리’ 를 담았다. 끼릭거리는 소리로 이루어진 저속 주사식 텔레비전을 통해, 지구의 사진과 뉴욕의 도심을 담은 사진과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의 사진을 담았다. 인간의 사진을 넣었고 동물의 사진을 넣었고 여러 식물의 사진을 넣었다.  곧, ‘지구가 속삭이는 풍경’ 을 담았다. 이름값에 걸맞는 내용물인 셈이다.

 

 이는 지구의 이미지를 외계에 전달하려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우리 인류의 발자취와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보려는 목적에 가까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세계의 일기장과 같은 것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3.

 골든 레코드가 인문학적 의미만을 지니는 기형적 존재라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비판할 이유도 없고 비판할 수조차 없다. 레코드판에 적용된 기술은 어마무시했고 지구의 언어를 모르는 외계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메시지답게 순수과학적으로 가지는 가치도 매우 높았다. 그때 당시로서는 기계공학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여러 기술들이 적용되었으며 이는 각 분야의 기술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장기적으로는 우주공학의 좋은 선례로 남아 여러 분야의 유기적인 선순환을 가능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골든 레코드는 일종의 ‘속삭이는 일기장’ 이다. 인간들끼리 속삭이던 것들을 우주에 외침으로서 우리의 지난날들을 추억하는 표식과도 같은 것이다. 우주와 같은 미지의 존재는 언제나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해왔고 어쩌면 우리는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득하고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미지를 향한 목소리는 언제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법이었다.

 

 다시 말해, 레코드는 인류의 영원한 속삭임이었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담은, 이 세상에 대한 평화를 담은, 더 이상 아픈 상처를 만들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써내려가는 미래를 바라지 않기에 만들어진 인류의 소망이었던 셈이다.

 

 

 

 

 

 

나중에 시간 되면 골든 레코드에서 인간의 수 체계, 지구의 정보와 태양계의 위치를 외계인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적을게요

 

 

9개의 댓글

2024.02.16

오른ㅈ쪽 맨밑에 뱅앤올룹슨 스피커 같네

0
2024.02.16
@질문

사실은 수소 원자의 전자 스핀 주기를 나타낸 거라고 하네요

0
2024.02.16

오 이런거 좋다

0
2024.02.16

낭만

0
2024.02.18

최첨단 기술 위에 인문 한 스푼

마치 참기름 한 숟갈 두른 비빔밥처럼 못참거든요 이거

0
2024.02.19

공돌이들이 인문학을 배워야하는 이유

0

이걸 고1때 썼다고…? 대단하다

0

다음 글도 기대

0
2024.02.24

근데 기술 수준이 높다면 저렇게 작은것도 감지 가능할수 있지 않을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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