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2)

출처: 욤키푸르 전쟁(아브라함 라비노비치), 중동전쟁-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임용한)

영감을 받은 글: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115250?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mJpdGV0aGF0YmFpdCIsImFydGljbGVJZCI6MTE1MjUwLCJpc3N1ZWRBdCI6MTcwMjEyNTA4NDI3OX0.jteCfVp4PgBAuYqkj-VczwYxl4a_Z_fqnelosBWbH3I

 

공중에서의 불안

 

베니 펠레드의 사진.jpg

베니 펠레드의 사진, 특이사항으로 베니 펠레드는 장교가 아닌 수리병으로 군 경력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공군 사령관 베니 펠레드Benny Feled는 이집트 군의 SAM의 대처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미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공군은 SA-2에 의해 3대의 전투기를 상실했다. 그리고 욤 키푸르 이전 소모전 당시엔 SAM은 이스라엘군을 노리는 치명적인 비수가 되었다. SAM은 이스라엘 공군의 전략적 우위를 방해하는 요소였다. 설상가상으로 소모전 시기에 다수의 SAM 포대가 국경선에 배치되자 사거리는 시나이반도 내륙까지 뻗히게 되었다.

 

 

이스라엘 팬텀기.PNG

이스라엘 팬텀기의 모습

 

이런 상황에 이스라엘의 난다 긴다하는 두뇌들이 미사일 공격을 막기위한 다양한 방법을 짜기 시작했다. 베니 펠레드는 빈-눈Avihu Bin-Nun대령이 이끄는 팀이 제안한 타가르Tagar(히브리어로 싸움이라는 뜻)계획에 주목했다. 비행기 수백 대가 최고속력으로 비행하며, 초시계를 재야할 정도로 정확하게 발레마냥 복잡한 기동을 하는게 타가르 계획의 내용이었다. 시리아에서는 타가르 계획과 유사한 두그만-5Dougman-5(히브리어로 예제-5라는 뜻)계획이 세워졌다.

 

오페라, 그것도 형편없는 오페라야.

-SAM 제압법을 읽은 베니 펠레드 장군의 감상

 

 

 

https://youtu.be/nJwKAhgWHOc?si=8752wQlCCB6HK4P1

타가르 계획이 어떤지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출처: 탑건 매버릭)

 

 

아비후 빈눈대령의 사진.jpg

아비후 빈-눈 대령의 사진, 후에 이스라엘 공군 사령관을 역임한다.

 

이후에 이스라엘군은 심열을 기울여 SA-3에 대응하는 전파방해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1972년에는 기존보다 고도화된 SA-6 미사일이 등장했다. 베니 펠레드가 계산한 결과 SAM 포대 1개를 파괴할 때 마다 아군 전투기 1대를 잃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집트와 시리아 전선에는 87개의 SAM 포대가 있었고, 이집트와 시리아군 후방의 군기지에 있는 SAM 포대들은 그것보다 더 많았다. 타가르와 두그만-5계획은 시행하기에 너무 복잡했지만, 그것을 바꿀만 한 다른 적절한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계획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이스라엘군 항공기가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만 했다.

 

베니 펠레드: 선제공격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이 계획은 계획이 적힌 종이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모셰 다얀: 아랍이 공격할 것이라는 단서를 잡았는데도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시오?

 

SAM 대처방안에 대한 베니 펠레드와 모셰 다얀과의 대화 중에서

 

폭풍 전야

 

캘리포니아주 샌 클레멘테의 닉슨 대통령 별장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방에서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헨리 키신저는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가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경호를 맡은 소련 비밀경호국에서 온 전화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미국을 방문했고, 당일에 브레즈네프를 위한 환송만찬이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브레즈네프가 이미 잠든 닉슨 대통령과 비밀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닉슨.png

1973년 워싱턴 회담 당시 닉슨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모습

 

키신저는 전화를 걸어 닉슨 대통령을 깨웠고, 45분 뒤 브레즈네프가 닉슨 대통령을 방문했다. 브레즈네프는 1주일 동안 열린 회담에서 꺼내지 않은 중동 문제에 대해 닉슨 대통령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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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쟁 당시 포로가 된 이집트군의 사진

 

브레즈네프는 닉슨 대통령에게 비교전(非交戰) 협정을 대가로 1967년 이전의 국경으로 이스라엘군이 철군할 것을 요구했다. 만일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군사적 대치의 재점화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즈네프의 말은 사다트의 요건과 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랍국가들의 전쟁에 대한 강한 요구를 소련이 더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다가올 전쟁에서 최소한의 면피(어차피 아랍 너네들이 지겠지만 난 최소한 경고는 했다 식)라도 할 셈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은 확답을 피하고 "한번 살펴보겠습니다."라는 말투로 브레즈네프에게 작별을 고했다.

 

 

1973년 5월 미국무부 정보연구국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의 젊은 분석관 로저 메릭Roger Merrick은  사다트가 전쟁을 막을 모든 동력을 소진했다고 보고 6개월 안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50:50으로 보았다. 이때 이스라엘 정부에서도 많은 고위 관계자들이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두들겨 맞아야 정신 차리겠지란 반응을 보일 정도로 아랍 정부와 그 군대를 얕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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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무엘 '고로디쉬' 고넨의 사진, 저돌적인 맹장이지만, 정작 이 전쟁에서 멘탈이 붕괴되어 자기 죄를 만회하고자 여러 삽질을 벌였고(거의 원균수준으로, 꺼무위키가 관대하게 씀), 전후 시나이전역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에서 쫓겨난다.

 

7월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남부사령부 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슈무엘 고넨Shmuel Gonen 장군이 후임으로 들어왔다. 고넨은 6일 전쟁 당시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여 수에즈 운하까지 다달을 정도로 저돌적인 맹장으로 "이스라엘의 패튼"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명 답게 매우 지랄맞은 성격으로 악명을 떨쳤다. 유능한 야전 지휘관이었지만 그는 난폭한 행동으로 부하들을 공포에 몰아붙이기도 했으며,(기갑 사령관 아브라함 아단Avraham Adan은 고넨의 반응이 무서워 그 밑의 부하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답변을 망설이는 것을 보았다.) 수시로 병사들을 영창에 보내 한 대대에서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들로 무려 82명의 병사들을 영창으로 보낸 전설적인 일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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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페즈 알 아사드의 사진, 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집트 정부는 철저한 기만책으로 더욱더 이스라엘 정부를 오판에 빠뜨렸다. 1973년 이스라엘-아랍 문제 해결을 위한 '25년 전략'에 대해 사다트는 7월에만 무려 4번이나 연설하여 이스라엘 정부를 안심에 빠뜨렸고, 이집트군이 SAM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내용을 외국신문에 유포 및 타국에 알리기도 했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가장 경계하는 SAM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이집트 정부의 계획적인 술책 이었다. 또한 시나이 수복을 위해 동맹이던 시리아까지 이집트는 속임수로 대했다. 시리아는 이집트군이 이스라엘군 대부분을 묶어둘 때 비로소 군대를 움직일 계획이었다. 사다트는 시나이만 회복되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을 반면, 아사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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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틀라 고개 지도 사진

 

1973년 2월 이집트 국방장관 이스마일 알리는 아사드에게 기디와 미틀라 고개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아사드에게 확약했지만, 이집트군 사령부는 자기들이 이스라엘군을 시나이에서 몰아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절대 SAM의 사거리에서 벗어나는 진격을 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작전 공유를 위한 합동 사령부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서 이집트군은 시리아군을 또다른 미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욤 키푸르의 사진.jpg

욤 키푸르(속죄일) 때의 사진

 

이집트군은 의도적으로 10월에 전쟁을 진행하기로 계획했는데, 정확한 공격개시일을 만들기 위해 조수간만 지도와 유대교 달력까지 보면서 가장 최적의 공격시간을 짜고 있었다. 수에즈 운하를 한 밤 중에 도하하기 위해선 도하 때는 달이 뜨고 도하 후에는 달이 지는 그런 날을 원했다. 그리고 그때가 때마침 유대교의 속죄일 욤 키푸르인게 이집트군에게 최고의 행운이었다. 또한 10월은 이슬람교의 라마단 기간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인들은 라마단에 설마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의 신성한 날이 이집트 군이 반드시 10월 6일에 공격해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1973년 9월 시리아군 3개 사단이 배치되어 이스라엘군 당국을 근심에 빠지게 했다. 원래 이들 사단은 4월이 되면 철수하고 한여름에 축차적으로 재배치 되는데 그러기는 커녕 더 많은 전차와 화포가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9월 13일 이스라엘공군 팬텀기와 시리아공군 미그기가 교전을 벌여 시리아공군기 8대와 이스라엘 미라주 전투기 1대가 격추되었다.

 

이츠하크 호피의 사진.jpg

이츠하크 호피의 사진

 

북부사령관 호피Yizhak Hofi 장군은 골란고원에서 일어나는 시리아군의 행동에 근심에 빠졌지만, 엘리 제이라 아만국장은 전쟁은 안 일어난다고 호피 장군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호피 장군은 그런 제이라의 말에 안심..... 되기는 커녕 더욱더 큰 근심에 빠졌다. 이스라엘-시리아 국경의 이스라엘군 전차가 77대인 반면 시리아군 전차는 800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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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케니제르 중령의 사진

 

1973년 9월 25일 텔아비브 교외의 보안시설에서 요르단 국왕 후세인과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와의 비밀 회동이 열렸다. 아만의 요르단과장인 케니제르Zussia Keniezer 중령이 모니터링을 하는 가운데 후세인 국왕은 메이어 총리에게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통보한다. ※ 이 부분에서 당시 참석한 이들의 증언이 엇갈리는데 확실한 건 후세인 왕이 긴급 경고를 내린 것은 확실했다.

 

 

Arie_Shalev.jpg

샬레브 준장의 사진

 

옆에서 모니터링 하던 케니제르 중령은 매우 놀랐고, 아만 서열 2위이자 제이라의 사실상 딸랑이...인 아리예 살레브Arye Shalev 준장에게 보고한다.  또한 아만의 시리아과장 아비 야아리Avi Ya'ari에게 자기가 들은 내용을 전했다.

 

 

야아리 중령의 사진.jpg

야아리의 사진, 

 

첩보 측 실무자들이 해당 내용을 듣고 경악한 가운데 골다 메이어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유럽평의회의 연설을 위해 프랑스로 출국했다.

 

 

10월 1일~7일 이집트 군은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해방Tahrir(Liberation) 41'이름의 훈련을 벌일 것이라고 통보했고, 이스라엘군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9월 28일 사다트는 나세르 서거 추모일의 대국민 연설에서 '실지 회복'을 언급했다. 이스라엘은 사다트의 블러핑이라 넘겨 짚었다. 이미 그 전에 9월 22일 사다트와 아사드는 비밀리에 회동하여 10월 6일에 다같이 공격하기로 약속했다.

 

 

 

 

칼을 뽑다!

 

10월 초 수에즈 운하 서쪽에 병력 10만과 전차 1,350대가 배치되었다. 운하지대에 위치한 이스라엘군은 전초기지 약 450명과 전차 77대가 전부였다. (시나이 반도 내부에 이스라엘군 전차 약 200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시나이 일대에서의 이집트군의 화력은 이스라엘군을 1대 80으로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 군은 약 65만명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리아군의 규모는 15만명이고, 이라크, 요르단(요르단은 6일 전쟁 당시 나세르의 사기극에 휘말린 경험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기타 아랍국가의 파병 병력까지 약 10만 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당시 37만 5,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중 24만명은 예비군이었다.

 

 

전차 역시 이스라엘군은 6일 전쟁 이후로 기갑 전력을 확충하여 약 2,100대의 전차를 보유했지만, 이집트군(2,200대)과 시리아군(1,650대)에 비하면 절반 밖에 안되는 수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이라크와 요르단이 이 두 국가에 추가적인 전차를 보내줄 것은 분명했다. 전투기 역시 질은 이스라엘군이 앞서지만 양적인 면에서 이스라엘군(359대)의 전투기 수량은 이집트군(400대)과 시리아군(280대)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다.

 

요나 밴드맨의 사진.PNG

이집트 과장 요나 반드만 중령

 

 

9월 24일~25일 밤에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집트군의 대규모 병력 이동을 확인한다. 이집트군 헌병대의 엄중한 감시하에 1개 사단이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간 다수의 병력 이동이 감지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만 내 엘리 제이라와 샬레브, 이집트 과장인 반드만Yona Bandman 중령같은 높으신 분들은 이제는 완전히 폐기된 개념에 집착하여 주변에서 들리는 전쟁신호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집트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실수다."

"우리는 분명 사다트가 전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안다."

"아사드는 자신의 한계를 알며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우월성을 안다."

 

-전쟁 직전 엘리 제이라의 주옥같은 말들.......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동향은 개념을 깊게 신봉한 아만에 있어서 단순한 훈련과 9월 13일 공중전으로 인한 불안으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이런 아만이 만든 편향적인 정보로 이스라엘 군의 핵심인 예비군 동원령은 발동되지 않았다.(이거 하나 발동되는 대도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비용 부담이 되었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공간 밖에서 일측촉발의 전쟁위기가 감도는 지도 몰랐다. 9월 한 달 동안 이스라엘이 내부 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전쟁 위기는 11건이나 되었다.

 

 

지난 1972년 전쟁 위기론에서 전쟁이 안난다는 것을 예측(절반의 사실)으로 이스라엘 군에서 예언자 취급을 받는 제이라에게 그 누구도(국방장관 모셰 다얀과 참모총장 엘라자르도!) 전쟁이 왜 안나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이스라엘 탈.jpg

아니 개같은! 지금 우리는 x되고 있다고!!!!! 이스라엘 탈은 지금 아만의 현실과 유리된 정보에 매우 큰 근심을 품었다.(이스라엘 탈의 1970년 사진)

 

9월 28일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전쟁이 임박했다는 경고(이 역시 요르단의 후세인 왕이 보내준 정보였다.)를 받지만 장군들 대다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껏해야 국지적인 도발이 끝이라 판단했다. 29일 아침에 벌어진 회의에서 오직 참모차장 이스라엘 탈Israel Tal장군이 전방에서의 시리아군의 동태를 토대로 골란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다. 아만 국장 제이라에게까지 찾아와 탈 장군은 엘라자르 장군이 아만의 정보로 동원령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정보를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제이라는 그 요청을 거부했다. 탈장군보다 자기가 군사정보의 전문가라는 이유였다.

 

 

아만의 로고.png

이스라엘 군사정보국(AMAN 통칭 아만)의 로고

 

10월 1일 새벽 2시 모사드는 신뢰할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다. 당일, 이집트와 시리아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첩보였다. 모사드는 이 충격적인 첩보에 놀라 아만에 해당 정보를 전달했지만, 제이라는 "주무시는데 깨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란 이유로 다얀과 엘라자르에게 해당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후세인 1세.jpg

후세인 1세 국왕의 사진, 그는 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지만, 골다 메이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만의 수뇌부들의 생각과 다르게 아만 내부 실무진의 생각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리에 전쟁이 옴을 확신하고 있었다. 시리아 과장 야아리 중령도 처음엔 제이라의 의견에 동조했지만, 케니제르의 군법 위반과도 같은 비공식 보고서(후세인 국왕의 경고)에 정신을 차리고 전쟁이 곧 옴을 직감하게 된다. 10월 1일 야아리 중령은 모사드의 보고서를 읽고 전쟁이 임박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무단으로 북부 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전쟁이 임박했음을 경고했고, 이일이 아만의 부국장 샬레브 준장에게 걸려 공식 견책 처분을 받는다. 인사기록에 남을 정도로 말이다.(근데 새옹지마처럼 이 기록은 그의 군경력을 살리게 된다.)

 

 

벤 포라트의 사진.jpg

벤 포라트 대령의 사진,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벤 포라트 대령은 1969년 일반적인 기동훈련 인줄 알았던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가 갑자기 프라하를 급습(프라하의 봄 맞다.)하는 것을 본 목격자였다. 당연히 지금 상황을 보면서 69년 프라하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10월 1일 새벽 3시 모사드가 보낸 첩보를 들은 아만 통신정보부대 대장인 요엘 벤-포라트Yoel Ben-Porat 대령은 즉시 통신정보부대 당직 장교에게 연락하여 1시간 안으로 주요 간부를 소집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집트 군이 뭔가를 꾸미지 않을까란 의심을 하며 아랍측 통신의 모니터량을 늘리라는 지시를 내린다.. 부국장 샬레브에게 해당 정보를 토대로 경고했지만, 샬레브는 지난 1973년 봄 청-백 경보사건에서 벤 포라트가 똑같은 충고를 했음에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상기 시키며 묵살했다. 벤 포라트는 당연히 분노했다. 이후 벤포라트는 샬레브에게 특별수단이 가동되고 있는지 물었다. 

 

 

9개월 전 한 밤 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일군의 특수부대가 이집트 카이로와 수에즈 중간의 아타카Ataka 산에 내려 군 통신선에 다수의 도청장치를 설치한다. 벤-포라트대령에게 샬레브 준장은 제이라에게 해당 장치의 작동을 요청했지만 거부했다는 말을 듣는다. 제이라와 전화가 연결되고 난 후 벤 포라트 대령은 도청장치의 가동을 요청했지만 제이라는 짜증을 내며 거부한다. 벤포라트 대령도 제이라의 이같은 반응에 당황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정보 수단을 제이라가 가졌을 것이라 판단해 버렸다.

 

 

샤브타이 브릴.PNG

2020년의 샤브타이 브릴의 사진, 이후 그는 드론 개발자로 전환하여 Tadiran Systems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통신정보부대 내부에서도 시리아 공군이 국경 전방에 2개 전투단을 배치한 것을 확인했다. 지난 전쟁 및 교전으로 시리아 공군은 이스라엘 방공망이 닿지 않는 곳에 전투기를 배치했다. 또한 이집트 전선에선 300대의 탄약 운송 트럭이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는데, 통상적인 훈련에서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은 탄약이 전선으로 이동되는 것에 통신정보부대 작전장교 샤브타이 브릴Shabtai Brill이 경고했지만 그의 경고는 묵살 당한다.

 

 

만들레르.jpg

시나이 사단장 만들레르는 전방에 있어서 국경 너머의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음주 월요일 1973년 10월 8일은 마겐Kalman Magen과 사단장 자리를 교환하는 날이었다.

 

같은 날 시나이사단 사단장인 만들레르Albert Mandler도 아만에서 근무하는 친구에서 비공식 정보를 받고 전쟁이 곧 옴을 인지했다. 만들레르는 기갑 여단장 레셰프Amnon Reshev에게 언제든지 진격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다. 또 같은 날 수에즈 전선의 제2군 사령관 사드 마문Saad Mamoun 장군과  제3군 사령관 압델 무네임 와셀Abdel Muneim Wasel 장군은 카이로로 소환되어 10월 6일 토요일이 공격 개시일 임을 확인한다. 사단장은 10월 3일, 여단장은 그 다음날, 대대장 및 소대장은 공격 전날, 병사들은 전쟁 시작 6시간 전에 해당 내용을 들을 예정이었다.

9개의 댓글

2023.12.10

마지막은 한 1주일 뒤에..... 뒷부분 내용 빈약해서 수정 좀

1
2023.12.10

당장 다음편 가져오ㅓ!!!!!

0
2023.12.11

이집트 지대공 미사일 sam이 아니고 sa겠지?

0
2023.12.11
@콜럼비아나

원전 내용이 그래서 그냥 썼는데 수정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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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우리 어렸을땐 도덕책이나 이런데서 이스라엘이 자기 국토의 몇십배나 되는 시나이 반도를 먹었네 어쩌네 하면서 존나 칭송했는데 지도로 보니까 몇십배는 개뿔 한 두세배 되겠네. 그때는 암것도 몰라서 이스라엘이 존나 세고 좋은 나라인가보다 했는데 커서 보니 중동전쟁 몇번 하면서 망했어야 하는 나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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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예스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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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개꿀잼입니다 꼭 끝까지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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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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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아니 왜 쓰다가 마냐구!!!!

얼렁 써줘~~ 현기증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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