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월요일, 월요병 더 쎄게 오게 만드는 지루한 북한 니야기

출처: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런던에 도착한 이후에도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목표는 주혁이(저자의 장남)의 병(신장증)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병이 다시 재발하자 구역 병원에서는 주혁이를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어린이 전문병원(Great Ormand Street Hospital)로 이송했다. 치료비 걱정없이 명성이 자자한 교수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다. 처음 교수님은 우리가 북한에서 온 외교관 가족임을 알고 조심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대했다. 북유럽에서 진행한 치료방식(덴마크, 스웨덴)과 북한에서 진행한 치료 상황에 대해 묻는 그의 질문에 나는 10년간 기록한 주혁의 치료 일지를 보여주었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받다 보니 치료의 연장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치료 과정을 투약내용과 함께 일지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치료 일지를 만족스럽게 읽은 그는 약과 식단 조절을 잘하면 사춘기에 오는 체질 변화와 함께 병이 나을 수 있다며 우리를 위안했다. 유능한 교수님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것도 좋았지만 치료비와 약 값을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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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관의 자녀가 입원한 런던의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

그의 예언대로 15살에 접어들면서 주혁이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약을 끊어도 병이 재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하느님(기독교 신은 아니다.)을 향해 매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평생 착하게 살겠으니 우리 애를 더는 고생시키지 말아 주세요.'

....중략.....

외국에서 보낸 8년 세월은 나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언제나 우리 가족에세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은 조국이 아니라 외국의 복지 제도였다. 그 과정을 피부로 절감하며 사람답게 사는 나라, 국민을 위한 국가가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외국의 난민이나 외교관들도 포함된 영국의 국가보건제도(NHS)의 혜택이 없었더라면 큰 애는 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에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면서 나를 포함한 대사관 성원들은 임기 기간 평생 받지 못한 의료검진과 병원 치료를 더 받으려고 기를 썼다. 아픈 곳이 없어도 무작정 떼를 쓰며 상급 병원의 종합검진까지 받곤 했다. 이후 영국 복지제도에 대한 소문은 평양 외교가에도 널리 퍼져, 런던은 외교관이나 자녀들의 병 치료를 위한 파견지로 인식되기도 했다.

북한은 가난한 나라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세금이 없는 나라다. 북한식 사회주의 무상치료제도와 무료교육제도가 세상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자랑하는 나라이다. 철없던 대학시절에는 나도 북한의 복지제도에 대해 열심히 선전한 적이 있었다. 대학 4학년에 진학하던 해, 평양에서는 아시아 지역 세계 보건상 회의가 진행되었다. 나는 태국 대표단에 동원되어 태국 보건상과 함께 온 여의사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미래의 외교관이 될 꿈을 안고 나는 대외 일군 강습에서 배운 대로 북한의 사회주의 우월성에 대해 기회가 나는 대로 외국인들에게 선전하고 했다. 특히 북한이 실시하고 있는 무상치료제도와 무료 의무교육 제도를 칭찬하면서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세금 없는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여의사는 국민에게서 세금을 받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 생각하듯 상냥한 여의사가 나를 골려 먹으려고 한 질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국가가 무상치료제, 무료의무교육제를 시행하는 것이 세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략....... 2000년 7월 의 과거로 넘어가서.......

만반의 준비(신장증 치료 및 약에 대해서)를 갖추고 북한에 귀국했지만, 평양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혁이의 병은 재발했다. ....중략...... 신장증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면역억제재의 장기적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피하는 것이다. 주혁이의 경우 덴마크서 받은 첫 치료는 북한에서 장기적으로 복용했던 프레드니솔론(한국에선 부작용이 심해 아동들에게 사용 안함.)의의 부작용을 없애는 것이었다. 종합적인 검사를 통해 프레드니솔론의 부작용을 확인한 후 새로운 면역억제재인 프로그라프 치료를 시작했다. 스웨덴에서는 프로그라프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산디문이라는 면역억제제 치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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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증 치료제로 쓰인 프레드니솔론은 단기간 소량 복용 및 주사 시에는 소염 진통의 효과가 있지만 장기간 복용시에는 백내장, 녹내장, 구토, 여드름, 골다골증, 위장장애, 당뇨, 고혈압, 우울, 어지럼증, 불면증, 시야 흐려짐, 피로, 부종, 쿠싱증후군, 두통 등등 부작용이 있으며, 하나의 부작용이 아닌 2개 이상의 부작용을 동시에 겪는 어메이징한 경우도 있다.

 

수소문한 끝에 북한 비뇨기과에서 명성이 자자한 "김만유 병원(재일교포 사업가 김만유가 조총련에 기부하여 세운 병원, 부유층 및 권력층도 들어가기 힘든 병원)"의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신장병 분야에서는 권위자라고 할 만큼 치료 경험도 많았고 그가 발표한 시낭병 관련 의학서적들도 꽤 되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침착한 말투에서 그의 열정과 지성이 느껴졌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검사 과정을 다 마친 후 교수님과 치료 방향을 토의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교수님의 치료법도 여전히 프레드니솔론에 의지하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썼던 면역억제제 계통의 신약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제일 유능한 교수님이었지만 프레드니솔론 치료 외에 다른 치료 경험이 없었다.

그제야 북한 보건 분야의 현 실태를 깨달았다. 북한은 장기적인 폐쇄정책과 경제난으로 의학 분야에서도 수십 년간 국제 교류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의학 수준은 이전 소련이나 중국에서 들여오던 낡은 서적이나 해방 전 의사들의 경험에 머물러 있었다. 간혹 신간 의학 잡지에 새로운 치료방법이 소개된다고 해도 약을 구할 수 없는 의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그는 주혁이가 외국에서 경험한 치료방법과 신약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물어보았다. 교수님은 집에서 식생활 관리를 잘하면서 외래 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중략........

워낙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선구적인 치료를 받았던지라 평양에서의 치료조건에 대해 걱정을 하긴 했었지만 정작 평양에 와보니 환경이 상상 밖으로 열악했다. 북한의 약국들에서는 외화만 있으면 의사의 처방전 없이 그 어떤 약도 구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정작 병원에는 약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주혁이의 치료와 관련한 모든 것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약 중략..... 다행히 큰 병원 수술실 간호사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수고비를 주면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무모한 행동들에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무상치료 제도라고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돈이었다. 의사들은 월급은 커녕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 환자들로부터 공공연히 치료비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누구나 치료비를 낼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북한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했다. 옷을 잘 입을수록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외모를 보고 환자의 돈주머니 깊이를 가늠했고 돈이 있는 환자들은 간절한 정동 따라 치료비를 정했다. 첫 진찰비는 보통 10달러 정도에서 시작했다. 의사들은 가끔 치료비로 돈 대신 담배를 받기도 했다. 평양에서 의술이 좋기로 소문난 평양의학대학의 정문은 늘 담배 장사꾼들로 붐볐다. 의사들은 환자에게서 받은 담배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다시 병원 앞 장사꾼들에게로 들고나갔고 환자들은 그 담배를 다시 사서 의사에게 주다보니 병원 앞 담배는 의사와 환자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

3줄 요약

1. 킹 갓 대영제국 의료보험

2. 무상 치료제도의 낙원 북조선!(사실 자본주의 그자체임.)

3. 의사: 치료법 업데이트 안되어서 잘 몰?루 딴데는 어떻게 치료함?

 

 

 

※ 북한에서의 세금 : https://m.blog.naver.com/gounikorea/221450596408

1개의 댓글

2023.11.20

참고로 저자의 남편이 그 태모씨가 맞다.

책 내용이 흥미로우니 한 번 읽는 것을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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