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약간 긴 글)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자예찬.txt

여기 교과서가 한 권 있다.

전공책도 좋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책들도 좋다.

지금까지는 그냥 읽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랬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걸 다 발견했지?를 잠시간 생각해보자.

 

교과서라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씩은 들여다봤을 책들에 쓰여 있는 모든 문장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 수백 수천년에 걸쳐 쓰여졌다.

 

잘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부터,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과 중력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물론이고, 그 중간중간의 갈릴레이의 사고실험, 러더포드의 원자모형,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 등등까지

 

그리고 이 챕터들을 채우고 챕터와 챕터의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모든 문장들

 

그 모든 문장 하나하나에는 유한한 불멸의 존재로 남은 학자의 영혼이 살아숨쉬고 있다.

 

5cc69d61ee15b623549a9c889eb31736.jpg-이 모든 문장은 면역학이 있기 까지 수백 수천년간 인간종이 쌓아온 토대 위에서 지금까지 가장 합리적으로 자연을 밝혀낸 여러 학자들의 업적이다. 누군가는 벤젠을 친 골수를 들여다봤을 것이고, 누군가는 항암제를 친 골수를 들여다봤을 것이다. 

 

 

학자들은 업적을 통해 불멸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 업적은 그 길을 먼저 걸었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존재하며, 어느 날엔가 그 거인을 파괴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것이다. 학자들의 가장 큰 소원은 연구비, 로또, 테뉴어, 노벨상 따위가 아니라 자신을 가르쳤던 모든 거인들을 자기 손으로 부숴버리는 것이며, 두 번째는 내 후대의 사람이 나를 부수고 교과서에서 지워버려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천천히,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결국 학자라는 사람들은 앞으로 틀릴 사실을 밝혀가는 사람들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어쩌랴,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사람들인 것을.

 

막스 베버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학자라는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차단하는 안대를 하고, 고대의 필사본의 단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신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침잠(깊이 몰입됨)할 능력을 가진 자다. 오늘 내가 딱 그렇다

 

오늘 나는 주말을 빌려 하나의 새로운 재료를 합성하고왔다. 용도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물질의 물성과 어렴풋한 구조식만을 이 세상에서 내가 최초로 알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여자친구의 카톡도 씹고, 어머니의 전화 세 통과 문자 두 개를 무시했기에 조만간 두 여자에게 한 소리를 듣겠지만, 여간 신이 난 하루가 아니다.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그래서 그걸 어디다 쓰냐는 답이 돌아왔지만, 그건 이제부터 알아가면 된다는 말로 퉁쳤다. 

 

다시 막스 베버의 입을 빌리자면,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 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 그렇기에 학문에 소명이 있는 자 라는 말을 나는 오늘 어렴풋이 느껴버리게 됐다.

 

세상에 있어 티도 안 나고, 제조법만 남기고 폐기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에서의 최초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비밀을 가진 기분은 썩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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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밈이 널리 알려지면서 대학원생을 하찮게, 또는 가여이 보는듯 하여 내심 서운하다.

물론 일부를 제외한 대학원생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위아래에서 치이며 연구와 발표, 실험실이 있는 곳이라면 실험실 관리까지 해야하기에 쉽지는 않은 길이다.

 

그런데 연구현장에서는 세상만사가 그따위 일로 치부가 가능해진다.

 

장갑과 고글을 벗기 전까지 나는 세상과 격리되어 고뇌와 한숨과 열정과 희열과 희망과 절망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연구실에서 홀로 살아숨쉰다. 

 

이 격리된 시간을 겪고나면 학문에 투신한 행위가 바보취급 당하기엔 너무도 가치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1줄 요약

 

학자의 길은 분명 가치있는 길이다.

15개의 댓글

가치는 있지만 가고 싶지는 않은 길임 ㅋㅋㅋ

0
2023.03.18
@오늘의고기도맛있었다

뚝딱거리는거 좋아해서 그런지 정말 재밌슴 ㅎ

0

소설 문구중에, '남들보다 머리 좀 더 쓰고 돈 더 받는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좀 와닿더라.

학자가 많을수록 덕분에 나라가 부강해지고, 타인은 소일거리로도 보다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될터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1

학문을 많이 넓히고 대접도 잘 받길~

0
2023.03.19

내가 누구고 여긴 어딘가 하는 강렬한 감정은 타고나는것같음. 머리가 좋은것하고도 상관없는것같음.

0

명문이네 진짜

메모하고감

0
2023.03.19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할때 학자가 이름을 남기는 방식이 제일 강렬한듯

 

삼성 이건희도 이름을 남겼지만 500년뒤에도 기억될지는 알수없고

역대 대통령이나 위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엮였으니 한국멸망까진 기억되겠지만 그냥 생애와 행적이 기록됐을뿐인데

학자는 그가 고민하여 만들어낸것이 누구의 무슨원리 이런 이름으로 후대에 계속 학습되고 활용되니 진정한 불멸의 느낌

3
2023.03.20

닿을 수 없지만 가까워질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묵묵히 걸어간다.

0
2023.03.20

결국 부자들의 신선 놀음이야 연구란건

누나도 나도, 우리 같은 흙수저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어...

 

 

2
2023.03.20
@천로역정

공대면 월급, 대출, 장학금으로 돌려막으면서 흙수저도 할 수 있어

나도 굶어죽을 각오 하고 시작한 흙수저야

 

인문 사회과학이면 현실적으로 힘들겠지만

2
2023.03.20
@십원에두대

글쎄... 할 수는 있겠지만 ...^^

그냥 학사취업하거나 아예 의대가는게 금전적으론 훨씬 보장되는데 굳이굳이..

0
2023.03.20
@천로역정

그러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던거지.

1
2023.03.20

공대쪽인 것 같은데 글도 되게 잘 쓰네. 대학원생들 엄청 고된 환경에서도 노력하면서 잘 살더라. 연구 잘 됐으면 좋겠네

1

자본주의가 팽배하게 되자 직업적 가치를 얼마나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았는지로 판단하게 되어버렸다는 내용을 들었는데 참으로 공감할만한 말이다. 사회 전체가 그러하다보니 각 직업들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고자하는 개인의 노력을 지ㅛ밟는 사람도 많고 스스로도 그런 물결에서 중심을 잡는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걸 느낀다.

개붕이도 사회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끝까지 음미할 수 있기를 응웒할게

0
2023.03.28

(약간 긴 글)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자예찬 ㅇㄷ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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