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북한은 정말 주한미군을 필요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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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국무장관인 폼페이오가 북미 정상회담 전 평양 방문 간 김정은으로부터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언론에 언급한 적이 있다. 해당 내용은 기사로 빠르게 퍼져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기사들을 보고 적잖이 의외라는 반응이 주류였고 혹자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주한미군 주둔, 즉 외부의 적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체제 결속을 강화한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토록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가열차게 반대했던 북한이 사실은 주한미군 주둔을 반기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를 토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이 점차 변화한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언론도 있었다. 물론 1994년 정전위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며 주한미군을 주장해온 국가가 갑자기 '사실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면 다소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근데 이런 북한의 반응이 과연 처음일까?

 

그렇진 않았다.

 

 

 

김일성 시대인 1992년 1월 최초의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아널드 캔터 당시 미 국무부 차관에게 “북·미 수교를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위원장은 이런 입장을 미국에도 밝혔는데 2000년 10월 김 위원장을 만났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도 “당시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했으며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봤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 중앙일보, '김정일은 대놓고 말 못했는데…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공식화', 2021

 

 

사실 북한은 이미 한참 전인 김일성, 김정일 시대 때도 이미 비슷한 입장을 미국에 보인 적이 있었다.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듯한 뉘앙스에 지역 안정을 언급한 대목에선 김정은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발언은 시대적 맥락도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로, 당시 동구권 사회주의 진영이 차례로 붕괴하고 자신들의 최대 물주였던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과 국교 정상화를 시행하자 북한의 입지는 적잖이 타격을 받고 있었다. 북한은 고착된 상황을 타계하고자 그간 저자세였던 외교 기조를 약간은 바꿔 한국과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는 2000년 북한의 주장이 무색하게 이듬해인 2001년 8월 4일, 김정일은 러시아 크렘린 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진 뒤 북-러 모스크바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 중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8번 항목을 살펴보자.

 

 

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로 된다는 입장을 설명하였다. 러시아측은 이 입장에 이해를 표명하였으며 비군사적 수단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모스크바 선언 中

 

 

미국 앞에선 주한미군 인정을, 러시아 앞에서는 미군 철수를 표명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론적으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입장을 결코 철회하지 않음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이따금 북한이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마치 입장을 유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을 때도 일관성은 없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북한의 속내는 이미 한참 전인 2016년 7월 6일에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요구조건에서 공개 표명된 적이 있었다. 

 

 

o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조선반도비핵화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다음과 같은 우리의 원칙적 요구부터 받아들여야 할 것임.

- 첫째,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함.

- 둘째,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페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함.

- 셋째,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 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함.

- 넷째,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 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함.

- 다섯째,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함.

 

-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개의 요구조건' 中 

 

 

한국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이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서 조금은 탈피하길 기대하며 평화적 해결책을 기대해왔으나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북한은 냉전기부터 현재까지 민족단결을 명분으로 반미감정을 조장하여 미군철수를 획책했을 뿐만 아니라, 수 차례 무력도발을 자행하여 한반도의 안보적 위험을 고조시켜왔다. 동시에 정전협정의 무효화와 주한미군 주둔이 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지속해 왔다. 남북회담, 북미회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북한은 언제나 주한미군 철수라는 전제조건을 빼놓지 않았다. 

 

 

가끔씩 지나가는 식으로 내뱉는 정치, 외교적 수사에서 희망을 기대하기엔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적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점을 망각한다면 북한은 또다시 상대를 기망에 빠뜨리려 시도 할 것이며 국민들은 또다시 공허한 약속과 허황된 외교에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16개의 댓글

2023.03.04

평화협정만큼 의미없는게 없지

둘다 시간벌고싶어서 잠깐 쉬는건데

0

이제 우리를 위협할 능력이 없는 애들인데 이정도면 본질 변한거 아님?

0
2023.03.04
@고층에사람있어요

미사일 포대 TEL화 하고 SRBM, SLBM 등으로 발사 플랫폼 꾸준히 다각화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 위협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 좀..

1
@K1A1

전면전 걸고 점령할 능력 전혀 없고

지금 쏘는 미사일들 우리가 만드는 것처럼 유도기능 제대로 들어갔다고 보기도 힘들고 맨날 발사각 높여서 떨궈도 아무 문제 없을만한데만 골라서 떨구는데 이걸 예전이랑 같은 수준으로 보면 그것도 좀...

둔전제로 보급하는 21세기 군대가 그렇게 큰 위협인가

0
2023.03.04
@고층에사람있어요

전면전 걸고 점령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데 오히려 난 그 근거를 모르겠는데? 북한군은 이미 걸프전을 교훈으로 C4I체계 도입하고 기존 배합전에다 전자전까지 발달시켜서 일선 부대에서 운용하고 있는데 이건 전면전 능력을 키우는거지 손을 놓은게 아님. 재래식 측면에서도 한국이 점차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게, 당장 전방에서 대치하고 있는 전연군단이 4개인데 한국군은 병력 감소로 전술제대별 담당할 섹터는 계속 커지고 있음. 이런 상황 자체가 충분히 위협적임.

 

러우 전쟁처럼 전쟁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만 발생한 것도 아니고 국지적인 무력도발은 최근까지도 계속 일어나서 언제 우발적 충돌에서 확대되어도 이상할게 없음. 설사 전면전까지 안간다 해도 북한이 이전보다 더 발전시켜 계획된 도발을 감행 했을때 한국측 피해는 더 커질 수 밖에 없음.

 

고체연료로 바꾸고 극초음속 테스트하고 사거리 늘려가며 과거보다 더 고도화하고 있는데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KTSSM 같은 유사 계열의 단거리 정밀 탄도미사일도 계속 나오는데 정확도가 의심된다고 해도 수도 위주로 인구가 밀집된 한국에 피해가 덜 할 수가 없음.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비교적 최근에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게 위협이 안됨?

2
2023.03.05
@고층에사람있어요

잃을거 없는 그지 깽깽이랑 잃을거 많은 부자랑 싸우는데 둘 다 폭망한다고 하면 부자한테는 큰 위협 아닌가....

7
2023.03.06
@고층에사람있어요

위협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전면전 걸고 점령할 능력 -> 재래식에 낡았지만 어쨋건 숫자는 많음.

 

최근 공개하는 대형 방사포나 탄도탄은 정확도가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있음.

0
2023.03.05
[삭제 되었습니다]
2023.03.05
@베댓전문가

대외적 수사만 이중적이지 쟤네가 표방하는 전략적 목표는 김일성 시대때 주창한 조국통일 5대 강령에 따라 미군 철수를 전제로 깔고 있고 이건 한번도 철회된 적이 없음. 시간이 지나 표현만 조금씩 달라진거지 연방제 도입과 주한미군 철수라는 개념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함.

 

이런 이유 때문에 제네바 합의도, 6자 회담도, 북미 정상회담도 결국엔 비핵화와 미군 주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흐지부지 되어왔음.

 

오히려 북괴가 그리는 그림에서 미군은 무조건 빠져야 함.

0
2023.03.05

적화통일은 이제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데 체제유지만 된다면 주한미군이든 뭐든 뭔 상관이겠어

1
2023.03.06
@년째하는중

그게 한국사람들의 착각일 뿐, 북한은 언제나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

 

다만 지금은 매우 불리하니까 아닌'척' 한다는게 본문의 내용이고, 나도 동감함.

4
2023.03.06
@비마조추

꿈을 포기하든 안하든 그림의 떡인건 마찬가지지

0
2023.03.06
@년째하는중

그림의 떡인데, 그걸 보고서 '쟤는 분수를 알고 포기했구나~' 라고 착각하면 안된다는거지.

0
2023.03.06
@비마조추

그니까 착각하든 말든 아무 상관없다고 ㅋㅋ

어짜피 북한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제 체제유지밖에 없으니

0
2023.03.06
@년째하는중

왜 상관이 없어? 북한이 헛된 꿈을 버렸구나~ 하면서 '북한은 적화통일 관심없고 주한미군 철수 원하지 않는데!' 라고 착각하면 안된다는거지.

0
2023.03.06

나도 본문에 동의함. 북한은 그간 회담이나 공동선언문에서 전향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지만, 전반적 외교 기조나 대남, 군사 전략에서 단 한번도 목표를 변경한 적이 없음.

 

지금은 남북의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까 비현실적이라 잠깐 눌러두고 있었을 뿐, 이런저런 이유로 그 격차가 좁혀진다면 다시 노골적으로 의향을 드러내면서 압박할 가능성이 높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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