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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리딩Dog] 7호-무라카미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 글로벌히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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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 해외수출된 작품들.

 

책의 저자인 오쓰카 에이지, 그는 자칭 1세대 오타쿠이며 동시에 창작자이자 비평가이고 대학교수이다. '1세대 오타쿠'라 함은 저 먼 우주소년 아톰 시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은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하루키와 하야오들의 저작들이 갖는 이야기 구조를 들여다보고 개별 작품들을 예로 들어가며 어떻게 이 작품이 해외에서 인기가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분석 및 비평하는 책이다.

 

한때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과 하루키의 책들, 그런것들이 해외에서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일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며 그들의 세계화가 곧 일본 문화력의 강대함과 같은 것, 그러니 일본인들이여 애국심을 드높여라! 라고 외치곤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째서 그들의 작품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 수 없었고, 세계화를 노리고 만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쓸려나갔는데 오히려 세계화를 신경쓰지 않은 소수의 작품들이 해외로 퍼져나갔다. 일본은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작 해외에서는 하루키의 소설과 여타 애니메이션들이 '주류'가 아닌 '하위 서브컬쳐'로써 유명해진 상황이었기에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일본은 영원히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무엇이 세계화를 이뤄낼 수 있는 조건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들은 일본 고유의 것을 담아낸 정서로써 세계화가 된 것이고, 자신의 소설은 인류보편을 추구하는 서구문학 그 자체를 썼기 때문에 세계화가 된 것이며, 하루키는 세대의 급변 속에서 자본주의의 부흥과 그에따른 현대의 소비문화가 녹아들어 있었기에 세계화가 된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가? 오쓰카 에이지는 그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창작자로써의 자신의 경험을 견주어 보면 번역과정 및 국가별 문화 이해의 장벽으로 인해 얼마나 창작자가 쓴 원본 그대로의 정서를 전달하기 까다로운지를 알 수 있으니, 어느 특정 정서를 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전세계로 퍼질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 된 가와바타, 겐자부로, 하루키 세 명의 작품들 사이 공통점은 바로 구조가 뚜렷하다는 것. 이야기구조의 뚜렷함이다. 바로 그것이 세계화를 이뤄낸 방법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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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프로프.

 

과거 러시아에서는 파시즘의 영향과 감시 아래 소설을 제대로 써내지 못하도록 억압받게 되자, 누구든 소설을 쉽게 써낼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구조주의라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프루프란 자가 러시아민담의 모든 형태를 연구해서 그 공통점을 이야기의 최소단위로 잘라낸 후 체계적으로 배열시켜 정형화시킨 것이었다. 이 틀에서 벗어난 러시아민담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약간의 변형과 생략들이 있었지만 그가 설정한 31가지 배열순서는 지켜진다고 보면 되었다. 파시즘의 억압 아래에서도 누구든 쉽게 소설을 써내려 갈 수 있게, 마치 컴퓨터에 입력만 하면 소설들이 쑥쑥 뽑아져 나올 수 있도록 틀을 체계화 시켰던 것.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플롯을 강력하게 구조화시켜버리니 캐릭터들의 내면은 무시되었다는 점인데, 프루프도 중요한 것은 '기능'이라며 각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갈등 등은 전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강력한 이야기 구조가 여러 등장인물들을 붙잡아 내면이 어떻든간에 강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 그것이 구조주의에서 바라 본 러시아 민담의 공통된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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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캠벨과 '영웅의 여정' 도식.

 

그 후에는 융 학파의 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이 '전세계의 민담과 전설들'을 총집합해 그의 공통요건과 조건들을 다시 한 번 체계화시켜 이야기의 정형화된 틀을 뽑아냈다. 프루프의 러시아 구조주의와 다른 점은 캠벨이 심리학을 알았던 인물인 만큼 이야기 속 각 캐릭터들의 내면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 두 개의 정형화된 스토리 창작의 틀을 소지하게 된 후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이 틀을 이용해 이야기를 창작하기 시작했고, 금새  전세계적으로 유행이 되었다.

 

이 틀을 정석 그대로 차용해내 만들어낸 스토리가 대표적으로는 스타워즈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틀을 그대로 따랐음을 책의 해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 원작자가 자신은 캠벨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그 구조를 가져다 이야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디즈니 역시 캠벨의 구조를 약간 뜯어고쳐 자신만의 정형화된 틀을 만들어두고 그것을 따라 작품들을 차례차례 만들어 냈다. 세계화를 위한 헐리우드 이야기들의 기본 뼈대는 어느새 이야기론의 구조 그 자체를 빼놓을 수 없었으며 범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저자는 그 유행이 6-70년도에 시작되어 십 년 정도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21세기가 된 지금에까지 계속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다. 신화로 부터 추출한 이야기 틀이 만들어내는 흡입력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정말 강력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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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무라카미 하루키. 아래, 미야자키 하야오.

 

...이렇게 이야기의 틀을 제공받은 후대 사람으로써 하루키와 하야오도 예외일 순 없었다. 특히 하루키의 초기작들에 대한 이 책의 분석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의 하루키는 이야기론의 틀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초기작 중 언더그라운드 라는 작품은 곳곳에 캠벨에 대한 무수한 오마쥬들을 넣어놓았기에 그 단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던 부분. 하지만 하루키는 이 고전적 틀을 계속 그대로 쓸 순 없었다. 고대신화로부터 차용해 제작된 이 틀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공은 강제로 여정의 끝에서 자아성장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시대는 흘러 근대를 넘어서고 있었고, 근대의 관점이었던 인간의 합리성 체계성 거대담론등은 세계대전 이후로 저물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소설의 주인공만은 끝끝내 근대적 인물로 남아 끊임없는 자기성장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졌던 것. 그래서 하루키는 당대의 비평가들로 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 구조만 있고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하다고. 뭔가 있어보이는 장치들을 잔뜩 끌어다 가져와서는 정작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맥거핀-영화 싸이코에서 초반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위해 설정된 돈 가방, 허나 그것은 결국 영화 내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만 난무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비평가들의 언급에 고민하던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뻔한 결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강제로 성장을 저지시켜 버렸다. 이제껏 자신의 작품과는 다르게 모험을 앞둔 상태에서 주인공이 출발을 하지 않아 버리는 전례없는 형태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예정되었던 남자 주인공의 모험길엔 여자 주인공이 대신해 나서게 되었고 남자대신 여자가 성장하는 이야기로 바뀌게 되었다.

 

같은 논리로 하야오 역시 하나의 작품 외에는 모두 수동적이고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는 남자주인공들이 여자주인공을 도와 종국에는 그 여자 주인공의 성장을 완성시키는 구조, 하루키의 경우와 유사하게 이야기 구조를 비틀어 내어 지브리 스튜디오 전매특허의 여성서사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그렇고 붉은돼지에서도 그렇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언제나 남자 주인공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이며 여주인공의 자아실현이라든지 그밖의 성장에 기여를 하는 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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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작품 속 성장이 멈춘 수동적인 남자 주인공들.

 

직접 읽으면 더 흥미로운 부분이 많으며 하루키의 작품들 여러개에 대한 평가 및 분석, 그리고 역자후기에 이르러서는 최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와 iq84도 평한다. 하야오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작품들을 가져와서 각 장면들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하며 어째서 하야오는 아들의 작품인 게드전기를 보다가 뛰쳐나와 탄식을 했는지 등의 이야기들도 다루며 앞서 언급한 스타워즈 시리즈도 이야기 구조를 분석한다. 결국 이 책에서 논하게 되는 작품들이란 것이 하나같이 이야기구조론에 입각한 플롯으로만 승부를 보는 작품들인데 사실 그 점이 문학의 입장에선 비평의 대상이긴 하지만 저자인 오쓰카 에이지는 오히려 이야기론 그 정형화 된 틀 안에서야 말로 각자의 개성이 더 없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말을 한다. 완전히 자유로운 창작보다 제한적인 상황 하에 다뤄지는 창작이야 말로 더 없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오쓰카 역시 이야기론의 적극 사용권장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상, 책 추천.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오쓰카 에이지.

 

...

 

전에 쓴 글 옮김. 원문링크.

https://m.idpaper.co.kr/counsel/item/item_view.html?cnslSeq=814379&rurlList=https%3A%2F%2Fm.idpaper.co.kr%2Fcounsel%2Fitem%2Fitem_list_my.html

4개의 댓글

2022.05.28

소설가가 꿈인데 이야기 구성을 만들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봐야겠네

1
2022.05.28
@글깨작

작법서가 아니라서 원하는 내용 없을지도

0
2022.05.28
@상어조련사

작법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본질이라고 해야하나 핵심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대충 써본것만 봤을때는 도움 될거 같음

1
2022.05.30

재밌게 잘 읽음. 지브리 영화 남캐들이 수동적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전부 여주의 성장을 위한 도구였다고 하는 거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딱 들어 맞는거같음. 그리고 마지막에 제한된 상황이 더 창의성을 발휘 할 수 있단 말은 로버트 맥키도 똑같이 말하던데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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