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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초스압] 황금 금붕어(1) - 무자각과 자각의 스케치

 

켈켈.png

 

* 매우 강해져서 돌아왔다. 켈켈.

[초초스압] 세계 진화설, 세계가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면? - DogDrip.Net 개드립

예전 글에 반응남겨준 개붕이들 무척 고맙다

덕분에 자신감얻고 교수님들한테 용기내서 피드백도 얻고 분량도 대여섯배로 뿔어낫고

가지치기할거 쳐내고 추릴거추리고 철학도 85%정도 완성햇음 핵심테마도정햇음

이제 학술적인 능력만 키우면 되지않을까 싶은데? 경솔하면 안되지.

 

난 더강해질거야. 힘을 실어준 과거의 개붕이들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실 나랑 안맞게 힘있게 시작해본거고. 아직 부족한게 많지만 스스로한테 파이팅한다는

명분으로 처음부터 오바점해봣읍니다. 글 시작할게용

(컴퓨타에서 작성한 글이니까 모바일 pc모드로 하고 읽으면 가독성이 좋을거야? 아마도?)

 

 

 

 

──────

 

글에 대한 소개

요약 : 내가 부모님 친구들을 비롯하여 십년간 남몰래 만든 철학에 대한 글

 

 

 

쌩 브레인스토밍만으로 퍼즐풀듯이 10년동안 나홀로 머리 굴려본 것이야

근데 이번에 교수님들 피드백 받고 무늬오징어 탁 때리면 삭 변하듯이

지금까지 난해했던 거 거의 다 해결했는데 그래서 개드립에 자랑하러 옴

 

진짜 이거 이래보여도 900페이지 이상가는 분량

초초초초초초초초초초압축요약

철학 어린이집 버전이니까 염두에 둬주라

서론 써놨던 것도 괜히 방해될 수 있으니까 싹 지울게

나 이거 졸업논문 쓰기 너무 막막해서 졸논 두달 남기고 제물 바쳐서 쓰는 글이거든?

10년 동안의 철학적탐구 안 헛됐는지 읽으면서 평가점 부탁해

그리고 피드백점! 그럼 시작할게

 

 

 

 

2 123 ABC.png

 

내 철학은 이렇게 생겼구 1->2->3 파트로 논의 전개 한다음에

논의들 통해서 A, B, C 세 방법으로 응용할 거임

그러니까 <3>이 제일 중요해. 쟤만 알면 위로도 아래로도 전부 이해가 가능하거든

<3>을 개붕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볼게

 

그리고 저 그림이 가장 두꺼운 골격이고파트끼리 신경이 중구난방 연결돼있어서 <1>을 설명하는데도

<A><B> 등의 논의를 끌어와야 될 수도 있거든

어디 하나가 완벽하게 독립인 데가 없어

그래서 "이거는 미리 얘기하는데, 여기 파트 관련한 내용 끌어온 거니까 알아줬음 해", 이런 식으로 적어줄 테니까

참고해줬으면 좋겟어.

가령 "지금 <1>을 설명하고 있긴 한데, 이해 쉽게 하려면 <A>의 이러한 내용 필요하니까 미리 얘기해줄게." 이런 식으로.

유기적이기 때문에 좀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 난이도와 분량 조절을 위해서 오히려 예시들을 생략해가면서 쓸 건데 혹시 잘 모르겠다는 덧글 남겨주면 답글로 답변해줄게

근데 이해해준 다른 개붕이들이 대신 답변해줘도 좋을 것 같아

이 과정에서 내가 잘 이해시켰겠는지 두 사람의 피드백이 가능해지니까 나한테 유익할 것 같아

어차피 내가 오독했다면 수정해줘도 되구

 

* <1>에서의 논의 A는 러프 스케치라서 일부러 빈틈을 많이 두니까

미간 찡그리게 하는 질문거리 생기더라도 간직하면서 읽어주세용

여기는 막 갈긴 파트라 왠만하면 의도된 빈틈일 가능성이 높음

어차피 나중 논의로 땜빵 메꾸기 때문에 별 신경 안쓰고 갈기는점이야

 

 

 

그래서 무슨 철학을 이야기하려는 것?

 

내 철학,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무자각과 자각의 스케치

 

A-1(-1)

 

 

 

원래 철학의 글은? 처음에 가장 쉬워야만 한다. 이 글, 저 글 읽어보며 얻어낸 결론.

처음부터 아주 쉽게 쓸게.

 

먼저 난 <무자각><자각>이라는 개념을 쓸 거 거든얘네들이 <일상><현실>에 대응한다고 보는 거야.

??? 대응한다고?

 

잊어버리자.

벌써 머리아플 수 있지만 쉽게 설명해볼게

어떻게 대응한다는 건지 한 번 알아보자구.

 

 

 

 

 

보자생소할 수 있는데? 그냥 읊을게.

 

무자각과 자각은 일상과 현실에 대응한다.

 

 

진짜로다 생각 가지면서 살아보통의 나말야생각 없이 살지 않아?

정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말이야,  알아차림 없이 그냥 막연하게 산다?

그 당시를 생각해야만 해예컨대 늘상 있는 일을 생각해보자.

맨날 하는 출근.

출근에 대한 생각이 출근하면서 정말 있어? 슥삭슥삭 하면 회사 와 있다?

학교 수업을 듣고 있다 생각해보자. 왠만하면 별 생각이 없어서 그냥 쓱 흘러가지?

유튜브 보다 보면 시간 슥삭 가있는 것도 그렇고. 그냥 시간 뚝딱이잖아.

 

그러니까 일상을 보낼 때 우리는 의식적일 수는 있어도, 무자각하게 지낸다는 거임.

근데 일상을 지내던 중에 어디서 갑자기 콩 콩 콩 소리가 난다?

그러면 별 생각 없다가 뭔가 하고 쳐다보겠지그러니까 출근이나 수업은 일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자각했었는데,

소리 나는게 비일상이어서 자각한 거로 보는 거야. 일상이 아니면 자각하는 거지.

즉, <일상에 무자각이 대응>하고, <비일상에 자각이 대응>하는 것이게 첫 번째 줄기야.

 

아닐 수도 있잖아?

콩 콩 소리가 나면 자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한 소리가 났기 때문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 몇 달 동안 출근하고 수업 들으면서 콩 콩 콩 소리 계속 나면 어느 순간 신경이야 조금 쓰이겠지만

처음보다 분명히 무자각하게 될 걸?

백수 개붕이라면 하루가 무자각하게 흘러갈 거야. 줄줄줄.

그러니까 일상에는 무자각과 자각이 대응하는데일상에는 무자각이 대응하고비일상에는 자각이 대응한다.

이게 첫 번째이것만 납득해도 반절이 된 것이야시작이 반이다

 

 

 

 

A-1(-2)

 

 

6 진짜코끼리.png

 

이걸 생각해볼까우리가 코끼리 투어에 갔다고 생각해보자넓은 초원을 달리고

저 멀리 코끼리들이 계속 보이는 거야.

처음엔 코끼리코끼리다

비일상이라서 자각하고 그러겠지코끼리를 눈여겨 보겠지?

코끼리 평소에 한국인으로서 많이 못 보던 대상들이니까.

 

근데그대로 코끼리들 계속 보이고 버스가 초원의 길 따라서 100km 줄줄줄 간다고 생각해보자.

한 다섯 시간.

덜덜 거리는 타이어 느끼면서. 근데 밖에는 코끼리가 계속 보여. 이렇게 많았나 싶어.

100km의 이동 경로에서 계속 보이는 코끼리는 이제는 무자각해질걸그렇지?

그냥 자각 없이 코끼리를 막연히무던하게 보고 있을 지 모를 일이야.

나에게 비일상의 코끼리는 자각의 대상이었지만어느덧 일상의 코끼리가 되는 순간 무자각의 대상이 된다.

이제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문제는 여기서.

보고 있는데, 내가, 창밖을 그냥 별 생각 없이 코끼리들 보고 있는데,

등에 다리 세 개가 나 있고 등쪽으로 거꾸로 서서 걷는 삼족보행 코끼리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고 생각해봐.

???

정신이 번쩍 들겠지? 놀라서 욕부터 나올 개붕이도 있을 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그 코끼리가 비일상이라고 볼 수도 있긴 한데, <비현실>의 대상일 때도 적용된다는 뜻이야.

등으로 걷는 삼족보행 진짜 코끼리가 현실에 어딨어.

 

무자각은 일상과 현실에 대응하고자각은 비일상과 비현실에 대응한다여기까지 이해했으면 반절 또 됐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갈게.

 

무자각은 일상과 현실에 대응하고 자각은 비일상과 비현실에 대응한다.

 

 

 

 

3. 코끼리.png

 

삼족보행 거꾸로 코끼리를 보고 자라 놀란 가슴을 겪는 개붕이의 모습이다.

 

스스로 성찰했을 때에

본인이 일상일 때에 무자각하고 비일상에 놓일 때 자각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거야.

대체로 맞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고?

지금까지의 예시도 미적지근하게 어딘가 잘 모르겠지만은 못마땅하다고?

그건 논의 길게 전개하면서 디테일하게 풀어보도록 하자.

 

 

 

 

A-1(-3)

 

이건 예시 따로 안 들게.

 

상황 두 가지 놓고 어떤 게 더 현실적이야? 물어볼 수 있잖아. 맞지?

"둘 다 현실이라서 뭐라 비교하기 힘들 텐데...?"

둘 다 현실이니까 둘 다 현실적인 거지, 라고 대답할 만한 경우 분명 있긴 할 테지만

말을 바꿔서

"실제로 뭐가 더 일어날만 해?" 물어보면,

둘 다 현실이겠지만... 이게 더 현실적이긴 해, 라고 말해볼 상황 충분히 상상할 만하고

따라서 현실적인 대상이란 존재할 만하지?

그리고 일상에서 또한 어떤 게 더 일상적이야? 이거는 더욱 가능한 물음이지?

 

한 번 생각해보자. 현실하고 비현실하고 딱딱 두 가지로 나뉘어져?

, 일상하고 비일상하고 딱딱 두 가지로, 정확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질까?

상황마다 더 현실적인 게 있고, 덜 현실적인 게 있지 않아?

그러니까 같은 현실 사이에도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덜 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또 같은 비현실 사이에서도 좀 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게 있고.

일상 쪽에서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현실끼리에서도 좀 더 현실적인 게 있다! , 비현실끼리에서도 좀 더 비현실적인 게 있다!

이 말이 뭘 의미할까?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상황은 내가 파악함에 따라 성질을 가지게 되고,

성질끼리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탓에 같은 성질을 가진 대상끼리 비교될 수 있다.

 

 

근데 아까 이야기했지.

강조한 대응이 뭐라고 했더라?

무자각은 일상과 현실에 대응하고, 자각은 비일상과 비현실에 대응한다.

만약에 무자각이, 일상과 현실 대응을 넘어서,

<성>질이 된 일상<>과 현실<>에 대응하고,

자각이,

비일상<>과 비현실<>에 대응한다면,

대응 관계에 따라서 무자각은  무자각<>이 되고 자각은 자각<>으로 변할 가능성을

검토해봐야만 한다. 

 

왜냐면? 현실과 비현실 간의 정도 차이가 있는데, 대응관계를 가진 쪽도

정도 차이가 있어줘야 그 정도 차이를 품어낼 수 있겠잖아.

뭔 소리냐면은 <좀 더> 현실적인 게 있다? 그러면 <좀 더> 무자각적이라 해볼 수 있고.

<좀 덜> 현실적인 게 있다? 그러면 <좀 덜> 무자각적이라고 말해볼 수 있듯이

 

 

즉, 정도를 따라가주어야

대응 관계로써 적합하지 않을까요? 이런 의문이야.

그래서 그 적합할지 한 번 보자구. 자각과 무자각에 정도를 부여하고 따져보자.

 

 

상황 두 가지 놓고 어떤 게 더 무자각적이야? 물어볼 수 있지?

또 어떤 게 더 자각적이야? 당연히 가능한 물음이지?

혹시나 <무자각><자각> 개념은 생소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한국인으로서 코끼리 투어 처음 코끼리 봤을 때랑, 삼족보행 거꾸로 코끼리 봤을 때랑

어떤 쪽이 더 자각적이야? 물어보면 보통 후자를 고름으로써 자각 성질이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게 되겠지?

, 평소 이빨 닦는 거랑 코끼리 투어로 100km 코끼리만 보고 있게 돼서

코끼리가 익숙해진 거랑 뭐가 더 무자각적이었어? 물었을 때, 이거는 각자 개인따라 또 다를 수 있지만,

대답을 각자 해주게 될 거야.

 

그래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자각과 무자각은 이분법적으로 딱, 딱, 구분되는 게 아니고?

현실성과 일상성이 갖는 정도에 대응하여

상황 내 성질 정도의 차이로 비교 가능한 성질의 대상, <무자각 성질> 혹은 <자각 성질>로 삼아볼 수가 있다.

뭔 소리야 이게

 

쉽게 풀면 그냥 <자각성>, <무자각성>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는 소리야.

그리고 자각적이다, 무자각적이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는 소리고.

자각과 무자각 뒤에 <~>을 붙여서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성질로 논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당연한 얘기지? 넘어갈게.

 

요약하면 원래 <자각>, <무자각>을 논하고 있었는데, <자각성>, <무자각성>으로 만들었다.

 

 

 

 

A-1(-4)

 

 

가벼운 얘기예요.

더 자각적이다, 더 무자각적이다, 이런 말은 다른 용어로 치환이 가능해.

<당연하다>, <자연스럽다> 이걸로.

 

ex)

이것 참 무자각적이네 → 이것 참 당연하고 자연스럽네.

이것 참 자각적이네 → 이것 참 당연하지 않고 부자연스럽네

 

 

더 무자각적일 경우, 당연하다. 자연스럽다. 이 두 가지 마음 가는대로 골라서

대강 이해하면 편할 거야. 아무래도 이쪽이 더 자주 사용하니까.

왜냐하면 너무 당연하고,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걸 무자각적이라고 말해도 그럴싸하잖아?

아예 자각 없다는 무자각이라는 게 아니고 무자각<>이라고 부를 만하지.

 

생각 필요 없을 정도로딱히 제대로 알아차릴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대상을 무자각적이라고 부를 테니까.

그러니까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은 무자각적인 것과 대응하게 되는 거야.

 

너무 당연해. 너무 자연스러워.

 

 

그리고? 자각적이냐고 내가 물어본다면

그것은 무자각성의 대응과는 거꾸로, <당연하지 않은지, 자연스럽지 않은지> 물어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거 자각적이야?

그거 부자연스러운 거야? 안 당연한 거 아냐? 같은 용례임.

 

음, 당연하지 않아. 부자연스러워.

 

 

자각과 무자각 얘기 나오면 좀 생소할 텐데, 말 바꿔서 해석한다면 이해 쉬워질 거야.

무자각적? 자연스러운거군! 당연한 거군!

자각적? 부자연스러운거군! 당연하지 않은 거군! 요렇게.

 

덧붙여 이야기하면,

무자각성이 일상성과 현실성에 대응하고, 자각이 비일상성과 비현실성에 대응한다 했는데,

자연스러움으로써 묶어서

무자각성이 일상성, 현실성을 합친 <자연성>에 대응하고,

자각이 비일상성, 비현실성을 합친 <부자연성>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자연성>, <부자연성> 나중에 쓸 수 있는 용어니까

이런 단어로써 대응한다고도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해봅씨다

 

*<당연성>은 대충 막 만든 말이기도 하고 어감도 안 예뻐서 안 쓰는 편.

 

 

 

 

 

A-1(-5)

 

 

 

여기부터 슬슬 어려워진다잉. 개붕이들이 장애물 구간들 성공적으로 넘어가줬으면 좋겠다.

하고 썼다가 심하게 어려워져서 다 갈아엎음. 다시 쉽게 적어 볼게.

 

많은 걸 다루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냥 이 정도만 흐름 타고 넘어가자.

진짜 다른 논의 다 버리고 핵심 줄기만 읊을 테니까 입만 벌리면 될 것 같아.

한 번 먹여볼게.

 

이게 상황이란 게, 실제로 <사건>이기만 한 건 아니기 때문에 뭉텅뭉텅 덩어리가 아니야.

예시를 들어볼게.

 

즐거움의 시작, FUNSHOP

 

책상 위에 놔뒀던 스마트폰이, 어제는 뜨겁고 오늘은 차갑다면,

뜨거운 스마트폰, 차가운 스마트폰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뜨거운 스마트폰에서 차가워진 스마트폰으로의 한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게 현실적이지?

 

 

그러니까 스마트폰은 <사건>으로 보면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한데,

(당시의 차가운 스마트폰, 당시의 뜨거운 스마트폰,)

<상황>으로 보면 한 가지겠지. 그리고 이게 일상적으로, 현실적으로 당연하지?

 

그래서 상황이 사건보다 일단 <일상적으로> 우위의 개념이다. * 자연스럽다.

일단 이걸 체크하자. 왜냐면 상황으로서 과정이었던 것이 사건으로서 대상화되니까.

<상황>으로써 <사건>으로 대상화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게,

<뜨거운 스마트폰>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뜨거워진 스마트폰>인 거야.

현실에서 스마트폰이 뜨거웠다가 차가우려면

애초에 뜨거워지기 전 상태의 상황이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아직 안 뜨거운 스마트폰 -> 뜨거운 스마트폰 -> 차가운 스마트폰]으로

뒤에가 더 있는 거지. [뜨거운 스마트폰 -> 차가운 스마트폰]으로 상황이 끊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리고 성질의 정도 차이가 있다 했으니까,

만약에, 아직 안 뜨거운 스마트폰 온도가 10.000001도 인데,

그 이전의 스마트폰 온도가 10도면, 0.000001도 차이가 있는 거잖아?

 

이렇게 되면

[더 덜 뜨거운 스마트폰 -> 덜 뜨거운 스마트폰 -> 뜨거운 스마트폰 -> 차가운 스마트폰]

그냥 계속해서 성질을 계속 쪼갤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러면서 상황이 끊어져 있는 게 아니니까. 이전의 상황은 계속계속 숨어있는 거고.

그니까 계속 성질은 미세하게 계속계속 변화하는 거야. 상황 속에서.

내가 겪는 시간을 멈추던가, 온도랑 삭제빵 뜨던가, 서로 관련 없도록 아무것도 못 움직이게 하던가,

전부 못하지? 신 아니잖아. 개붕이잖아.

 

대상을 미세하게나마 변하게 만들 모든 원인의 차단이 불가할 테니까?

 

상황 속의 대상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미세하더라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것을 염두에 둬야 해. 아주 장기적으로 봐야 하며, 아주아주 미시적으로조차 계속해서

그것은 변화하겠다.

 

점점점점점점 멀리볼수록 어쨌든 성질이 변화하며,

점점점점점점 파고들어서 보더라도 어쨌든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 여기서 가볍게 언급하기를 빈틈 있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빈틈 몇 가지 발견한 매서운 개붕일지라도 일단 버리고 쭉 읽어보도록 하자.

 

 

 

 

 

A-1(-6)

 

 

다시 일상성으로 돌아오자구. 다 까먹으면 안 되는데, 느낌을 되찾아오자.

 

일상성이 근데 어따가 쓰는 말이야?

뭘 보고 일상적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해?

따져보면 <상황>이 일상적이라고 하던가, <상황 속 대상>을 일상적이라고 하거든.

일단 <사건>을 일상적이라고 하거나, <사건 속 대상>을 일상적이라고 하는 건 논외로 제쳐두자.

어차피 논외로 할 그 지시들은 <상황> 이라는 녀석에 포함한단 걸 짐작할 만하니까.

 

그래서 논의의 편리를 위해 <상황>적 측면만 살폈을 때,

예컨대 동물원에서 당장 체험 중인 기린 구경이 비일상적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비일상적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대상은

 

무료 사진 | {{제목}} * 촵촵.

 

 

"와, 되게 비일상적이다..."

 

- 동물원의 기린이 보이는 상황은 비일상적이다.

- 보이는 동물원의 기린은 비일상적이다.

 

 

이렇게 둘 중에 하나던가, 별 생각 없었기 때문에 대충 둘 중 아무거나를 다루고 싶었던가 할 거야.

아 나, 기린 보는 <지금> 좀 비일상적이네. 혹은 아 나, 기린 <저것> 좀 비일상적이네.

그러니까 <지금> 혹은 <(지금의:상황 속 대상이므로) 저것>

일상성, 비일상성, 현실성, 비현실성으로 이야기되는 거지.

 

 

근데! 상황 속의 대상이 가지는 성질은 계속 변화한다고 했지?

그리고 상황 자체는 계속 변화한다고 했지?

그래서 정도의 차이가 있는 일상성과 비일상성, 현실성과 비현실성은

상황에 두었을 경우에 계속해서 성질이 변화한다.

 

,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 성질이라면!

정도의 변화 및 변화 가능성을 수긍해야만 한다!

이 말은 뭐다?

저거 일상적이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저게 더 일상적이거나 덜 일상적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비일상적이게 될 변화 가능성까지 일상적인 그것은 가지고 있다.

 

기린 보는 <지금> 좀 비일상적이네. 혹은 아 나, 기린 <저것> 좀 비일상적이네. 가

기린 보는 <지금> 좀 <일상적>이네. 혹은 아 나, 기린 <저것> 좀 <일상적>이네. 가 될 수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 우리는 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을 차단할 수 없는 개붕이기 때문에.

 

 

현실성, 비현실성, 비일상성 쪽도 마찬가지.

그래서 상황 속 처해 있음에 따른 성질 변화 가능성에 따라,

 

쉽게 풀면 지들끼리 변할 수 있을 성질끼리 묶어서, 라는 명분으로

 

<일상성-비일상성> 그리고 <현실성-비현실성> 이렇게 표기할 거야. 상황 안 에서 얘 됐다가, 쟤 됐다가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괄호로 성질이 담겼잖아? 이걸 <맥락>이라고 부를 거야.

왜 맥락이냐고? 그냥.

 

 

 

* (효도합시다)

 

 

 

 

A-1(-7)

 

 

 

근데 무자각성과 자각성이 <현실성-비현실성> 그리고 <일상성-비일상성>에 대응해야 하잖아?

대응 관계에 있으니까 얘네 성질의 정도 차이까진 수긍해서

무자각<>, 자각<>이라 부르는 걸로 일단 됐었지?

 

근데 이제 성질의 정도 변화 가능성까지 수긍해보자는 거야.

자각적이다? 무자각적이다? ㅇㅋ

근데 자각적이었다가 무자각적으로 될 수 있고, 무자각적이었다가 자각적으로 될 수 있다. 이것도?

ㅇㅋ 함 해보자는 거.

 

현실적이었던 게 비현실적으로 될 수 있었잖아? 거꾸로도 되고.

또, 일상적이었던 게 비일상적으로, 그 반대도 될 수도 있는 거잖아?

 

<현실성-비현실성>, <일상성-비일상성>에

무자각<성>, 자각<성> 대응해야하니까 <무자각성-자각성> 가능한지 보기 위해서

무자각적이었던 게 자각적으로 될 수 있는지,

또, 자각적이었던 게 무자각적으로 될 수 있는지 함 보자는거임.

 

 

근데 숨 쉬고 있는 거 사람들 자각 잘 못하더라?

이 글 읽고 있으면서, 지금 숨 어떻게 쉬고 있는 거야?

 

하는 순간 이제 호흡의 무자각성 → 자각성으로 변화하게 되는 거. 삥뽕.

즉 성질의 정도 변화 가능성을 확인했지?

그리고 거꾸로도 봐야지.

그건 이따가 스스로 한 번 깨달아보면 될 거야. 또 별 생각 없이 무자각하게 호흡하고 있을 걸?

그럼 그때 아차! 하고 자각성 → 무자각성으로 성질 변화도 되는구나! 하면 되겠네.

 

그리고 무자각성끼리도 자각성끼리도 차이가 있을 거라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잘 비교해보면 될 거야. 얘네 무자각성으로서 성질이고, 자각성으로서 성질이기 때문에.

 

아무튼 디테일은 나중에 다루니까 대충은 확인됐지?

얘네도 성질 변화 가능성 수긍해서

<무자각성-자각성>으로 묶고, 각각 <현실성-비현실성> <일상성-비일상성>에 대응된다고 둘게.

그리고 <무자각성-자각성>으로 성질 변화되는 이 세트를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고.

 

이제 <맥락>이라는 형태끼리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저런거 맥락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깐.

여기까지 했으면 거의 다 왔다.

 

 

 

 

 

A-1(-8)

 

 

 

약간 논의를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드는 가벼운 파트.

<일상성-비일상성>, <현실성-비현실성>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면,

일상성과 비일상성을 딱 가르고 왼쪽이 일상성, 오른쪽이 비일상성 이렇게 상상은

해 볼 수 있지?

그리고 <현실성-비현실성> 쪽도 현실성, 비현실성 완벽히 가운데 딱 가르고

왼쪽이 현실성, 오른쪽이 비현실성 이렇게 상상은 해 볼 수 있지?

 

 엉덩국 둘리 어서 오고, 선 넘네 밈과 유래 (원본: 애기공룡 둘리) — 빕버의 리뷰 블로그

 

예를 들어서 <괜찮다-안 괜찮다>에서 둘리가 선 넘네... 하잖아. 안 괜찮아졌으니까.

그 맥락의 가운데를 완벽히 가르는 일종의 선을 상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는 거,

<무자각성-자각성>에도 구분선이 있음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흑백이라고 두면, 완벽한 회색을 상상은 해볼 수 있잖아.

딱 50퍼의 흑과 50퍼의 백을 가진 그런 회색이 있다고 상상은 된다. 그런 거임.

 

무자각성과 자각성이라는 맥락의 가운데를 완벽히 가르는 일종의 선을 상상으로 짐작해볼만 하다.

그래서 선을 기준으로

맥락상 좌측이라면 무자각하다,  우측이라면 자각하다,

이렇게 편리하게 판단하면 될 만한. 그런 평가 기준선이 있다고 상상으로 짐작해볼만 만하다.

 

 

안어렵지??

계속 진행할게.

 

 

 

A-1(-9)

 

 

 

근데 잘 생각해봐봐. 그 구분선을 기준으로 좀 애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 그 구분선을 볼 수가 없잖아. 애초에 맥락을 오감으로 확인할 수가 없잖아.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완벽한 회색이란 게 대체 어딨어?

애초에 회색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눈 없이 굴리는 건데 말이야.

 

오잉.png

 

쉽게 설명해서, "아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둘 간에 비교하고 있으니,

여기서 꿈은 비현실성이고 생시는 현실성이잖아?

 

근데 와 진짜네 할 수도 있고, 아 ㅅ꿈이었네 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소리임.

이게 포토샵을 바른 건가? 진짠가? 조작 안 했나? 이런 알쏭달쏭한 느낌으로.

 

, 두 성질이 맥락화될 수 있다면? 묶일 수 있다면?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미적지근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뜨거운 거 같은데? 아닌가 이 정도면 차가운 건가? 아닌데 뜨거운 거 같은데? 이런 지점.

 

 

이것은?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서도 적용되겠다.

왜냐하면? 대응 관계라고 뒀기 때문에.

그럼 이건 무자각적인가? 자각적인가? 알쏭달쏭한 예시 가져와줘 할 수 있잖아?

 

당장 못해. 왜냐면 논의가 활발히 되지 않았던 생소한 성질 개념이기 때문이야.

다들 무자각하다, 자각하다 그냥 두 가지로 보통 쪼개서 쓰거든.

애초에 무의식-의식에 묻혀서 간혹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내 말로 뭐라뭐라 해도 당장 아무도 이해 못할 걸?

 

그래서 이건 편하게 이해시켜주려면 사전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이건 나중에 다루도록 할 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서론에서 제시한 그림상 <1>의 논의를 다루고 있잖아?

<2>에서 무자각성과 자각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주고 개념화 필요한거 다 한 다음에

그 개념들을 바탕으로 적절한 예시를 들어줄게.

무자각성은 이런 거고, 자각성은 이런 거다나의 논의를 통해서 점점 뚜렷하게 보여준다면

그걸로 다양한 파악이 가능해지겠지.

 

 

일단, 일단,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서도 무자각성인지 자각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이 있다, 아하, 일단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대응이라고 뒀으니까.

 

정말로 운이 좋아서 예컨대 길에서 만원 줍고 이야,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런 관용적으로 쓸 때가 아니고

정말정말정말 어안이 벙벙했을 때, ,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헷갈려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구분이

<현실성-비현실성> 맥락의 상상되는 완벽한 구분선을 기준으로 애매한 지점, 생길 수가? 있겠다.

 

 

 

 

A-1(-10)

 

 

근데! 정도의 차이에 따라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애매한 지점>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 가운데만 애매할까?

아니겠지?? 덜 현실적이다. 더 덜 현실적이다. 더 더 덜 현실적이다. 이렇게 나아가다보면,

무조건 현실적인 지점과 비현실? 까진 아닌데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덜 현실적인 지점과

헷갈리겠지? 현실 지점 vs 아무튼 비현실은 아니고 현실적인데 현실 아닌 듯한 지점.

 

이게 무슨 소리냐?

 

 

 

아날로그 온도계 습도계 나무 온습도계 : 롯데ON

 

* 내 주머니에 지금 온도계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0도라는 차가움과 100도라는 뜨거움 사이에서 (0°~100°)

0도에 가까운 45도인지 아니면 100도에 가까운 55도인지 헷갈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간 쯤에서 이쪽인지 저쪽인지 헷갈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

[0°~(45°?/55°?)~100°]

 

맥락이라면, 즉, 성질의 변화가 있다면? 그 0도라운 차가움, 100도라는 뜨거움으로 엮인 맥락 안에서

0도에 가까운지 30도에 가까운지 알아내야 하는데, 온도 범위 안에서

손으로만 만져보고 10도인지 20도인지 헷갈려할 수도 있겠고, 

*

(0°~30°) : [0°~(10°?/20°?)~30°]

 

70도에 가까운지 100도에 가까운지 알아내야 하는데, 온도 범위 안에서

손으로만 만져보고 물론 많이 뜨겁겠지만

80도인지 90도인지 헷갈려할 수도 있겠고, 그래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개헷갈리고 당연하지?

*

(70°~100°) : [70°~(80°?/90°?)~100°]

 

 

위에 0도에서 100도의 온도 맥락 처럼

이게 <현실성-비현실성> 쪽도 맥락적이기 때문에, 가운데만이 헷갈리진 않는단 소리야.

그냥 전부 헷갈릴 수 있다고. 어느 범위를 잡든가 간에.

어느 곳을 비교하든가 간에.

 

그 중에 살펴볼 수 있는 데가 위에서 얘기한 두 군데인데,

즉, 좀 정돈해서 얘기해보자면

이건가? 이게 아닌가? 이 헷갈림 뿐만 아니라 ex) 차가움인가? 뜨거움인가?

뿐만 아니라,

 

무조건 이게 맞나? 아닌가? ex) 무조건 차가움인가? 무조건까진 아닌가?

무조건 저게 맞나? 아닌가? ex) 무조건 뜨거움인가? 무조건까진 아닌가?

 

이렇게도 있다는 소리.

 

 

 

, 이 정도면 무조건 현실적이지. 아닌가? 비현실적일 수도 있나?

아냐, 아냐 이 정도면 무조건 현실적이지.

무조건 현실적이지 않나?

...아닌가? 좀 덜 현실적인데?

 

(1)

이 현실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은 하는데

뭔가 머릿속으로 약간 확신이 흔들리는 애매한 지점있겠지?

 

 

그리고 아, 이 정도면 무조건 현실은 아니지. ...아닌가?

무조건 비현실적이지 않나? 현실적인 여지도 있나? 아닌가?

무조건 이 정도면 비현실적인데?

그래, 이 정도면 비현실이지. ...아닌가?

 

(2)

이 비현실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은 하는데 뭔가 머릿속으로 약간 확신이 흔들리는 애매한 지점.

확신 자체가 애매한 지점이 양쪽으로 있을 수 있는 거야.

확신이 들랑말랑하는 지점이 있단 소리.

 

그러니까 하나의 맥락에서 확신이 들랑말랑하는 지점 최소 두 군데가 있단 소리야.

 

 

 

근데 봐봐.

 

현실적이고 그런 게 아니고 진짜 현실을 현실대로 인식한다면,

저런 확신 흔들림 전혀 없겠지? 그냥, 이건 무조건 현실이다. 하고 끝나게 될 거야.

진짜 개뜨거움이라면

손에 물 담것다가 아 ㅁㄴㄹㅇ개뜨거워지,

어, 이정도면 무조건 개뜨거워, ...아니지? 이정도면 안 개뜨거운가? 이러고 있진 않다는 뜻.

그러다 화상을 입는다.

 

즉, 저렇게 확신이 흔들릴 수가 있다. 애매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를 말하고 싶은 거야.

그 가운데에서의 애매한 지점은 확신이 아예 불가한 상태에서 현실적인지 비현실적인지

와리가리하는 결정장애의 애매한 상황이었고.

 

 

에어프라이어 '마약 군고구마' 레시피, 열량 조심하세요

 

* 갓 받은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를 한입에 넣었는데 개뜨거운거 같은데 참을만한데 개뜨운거 같은데

뜨겁긴한데 참을법한데 하면서 뱉어야 한다는 순간의 확신이 흔들리는 지점을 상기해보자.

 

 

그러니까 맥락 전반이 골고루 애매하게 되는 거야. 솔직히 중앙만 애매한 게 이상하긴 하잖아?

위의 얘기처럼 온도가 0도에서 100도가 있다치면 50도만 애매성 있다고 편애하는 느낌이 돼버리잖아.

중앙의 애매성만 취하게 된다면.

있을 거면 애매성이란 게 전반적으로 다 있어야 할 것 같지.

 

이것처럼

대응하는,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서도 골고루 애매하다.

다시 말하건대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서도 골고루 애매하다이렇게 치부하고 넘어가자.

 

 

 

 

 

A-1(-11)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 제조기 메이커 홈카페 집콕 - 인터파크

 

* 태초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가 있었으니...

 

 

 

나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거야

그러니까 태초부터,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가 있다면, 아이스크림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태초의 기계 쪽이 더 본질적이겠지?

 

그래서 기계를 먼저 다루고 아이스크림을 다루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거야.

본질에서 비본질이 나오는 건 용법과 직관상 당연하니까.

본질 → 비본질 맞잖어?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먼저 다루고, 기계를 그다음에 다루는 건,

본질을 논하는 논의에서 비효율적이겠지?

뭣하러 그래? 태초에 기계가 있었고 거기서 이렇게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설명하면 말끔한데 말이야.

 

그래서 그냥 본질 얘기하기 편하게끔 <맥락>의 개념을 규정할 거야.

 

 

그러니까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때는,

<A의 성질-B의 성질> 이렇게 중괄호로 묶었다 치면

맥락상

좌측을 본질적인 쪽, 우측을 비본질적인 쪽으로 고정하자구.

 

 

다시 말할게.

 

<A의 성질-B의 성질> 이렇게 있으면

<B의 성질-A의 성질뒤집어서 생각할 수야 있긴 한데,

 

만약에 본질을 논하게 된다면,

'비'본질(아이스크림)은 본질(아이스크림 기계)로부터 파생한다고 위에서 그랬지?

A의 성질이 본질적인 성질이고,

B의 성질이 비본질적인 성질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비본질적 B의 성질-본질적 A의 성질> 거꾸로 두기 금지하자는 거야.

 

<본질적 A의 성질-비본질적 B의 성질> 만을 오케이 허용하는 거야. 이해햇니

그러니까 맥락상 요 성질이 본질적이다 하면 그렇게 여기는 쪽을 좌측에다 두면 됨.

 

 

<현실성-비현실성> 맥락으로 다시 얘기해 볼게.

 

이 논의 방침에 따라서 <현실성-비현실성>을 따지면,

비현실성보다 현실성이 당연히 본질적이지?

그럼 여기에서도

본질적인 현실성에서 안 본질적인 비현실성을 설명해내는 게 쓰기나 읽기나 편할걸 유추해볼 수 있어.

 

ex)

세 다리 등에 붙인 삼족보행 코끼리와 코끼리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일상적 코끼리부터 설명하고

그래서 그냥 세 다리만 떼서 등에 붙인 다음에 거꾸로 뒤집어서 만들어 봤어, 이게 편하지.

 

세 다리가 있는데, 이건 현실 코끼리의 어떤 점에서 기인하고, ,

거꾸로 뒤집은 건,

근데 보행을 하는 건 코끼리가 다리로 보행을 하는데, , 삼족보행을 하는 건 또 아닌데.

 

이건 좀 불편하잖어

 

 

그러니까 <본질성-비본질성>의 맥락에서의 본질을 대우해서

본질을 파헤치는 논의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쉽게 하려고자 미리 고정 해두는 거야.

어...

우리 개붕이들 중에는 삼족보행 코끼리가 더 본질적이라고 여기는 이상한 개붕이 없지요?

 

어쨌든간에 손 들고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도 그럼 고정하는 거야?" 어떤 개붕이가 물어볼 수 있지?

대응관계라고 자꾸 내가 갖다붙였으니까.

 

맞습니다. 아주 나를 잘 파악하고있군요.

그러니까 <자각성-무자각성>의 맥락은 금지할 거고,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으로만 얘기하자.

 

 

 

 

 

 

A-1(-12)

 

 

 

봐봐. 맥락 안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댔잖아? 근데 우리 애매한 지점 세 군데 찾았지?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으로 두면,

 

현실성인지 비현실성인지조차 결정할 수 없는 애매함 … ① 

무조건적 현실성을 확신할 수 없는 현실성 안에서의 애매함 … ②

무조건적 비현실성을 확신할 수 없는 비현실성 안에서의 애매함 … ③

 

잠깐. ②, <무조건적 현실성>, <무조건적 비현실성> 이라는 말이 있네?

그러니까 <무조건적 현실성>, <무조건적 비현실성>이란 말은 각각 무조건 현실, 무조건 비현실이란 거겠지.

이건 백퍼 현실이다. 이건 백퍼 비현실이다.

 

이걸 우리, <맥락의 극단>이라고 부르자. 줄여서 <극단>으로. 그 완벽한 양쪽 끝의 백퍼의 순혈 성질 지점.

그러니까 맥락은, 극단을 두 가지씩 가지게 되는 거겠네.

<현실성-비현실성> 이렇게 양쪽 끝으로.

맥락은 양쪽 끝으로 성질이 정도 비교를 위하여 두 가지로 주어지는 게 파악되니까. 맞?

 

그럼 극단 근처에서 애매한 지점이 생기니까,

극단에 관련한 애매한 데는 양쪽으로 두 개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겠구만. 정리가 되었다.

 

 

 

 

 

A-1(-13)

 

 

소심한 개붕이 둘이 기사식당에 왔다!

돈까스를 먹을까, 제육볶음을 먹을까. 치열하고 치밀하게 고심하다가 돈까스를 시키게 되었다.

근데 돈까스가 개맛없었다. 요리하시는 분 돈까스 솜씨가 많이 별로엿다?

! 제육볶음 먹을걸. 맛을 본 개붕이들 각자 내심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 근데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었어. 서로가 그렇게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위안 삼는다.

 

소심해서 주인장한테 별 말도 못하고 눈물의 우걱우걱.

 

 

어쩔 수가 없었다?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

이 말 뭐라고 생각해봐야 할까??

 

결정하기 애매했기 때문에 실패한 돈까스를 골랐던 그 상황을,

우리 개붕이 둘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우리 개붕이 간 과거의 결정 실패를 이해하고 존중할만 하다.

왜?

당시의 상황이 돈까스? 제육볶음?의 결정장애로써 굉장히 애매했기 때문에.

 

 

 

7 뭘루.png

* 개붕이는 몹시 몰?루하고 있다.

 

 

돌아와 보자.

맥락상 애매한 지점이 있다고 했잖아. 애매한 지점이 있다는 말은?

→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인데,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은?

→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 판단을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이 말인즉슨?

→ 애매한 지점에서 우리는 판단을 실패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고 수긍한다면

그 애매한 지점에서의 판단 실패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돈까스의 선택 실패는 눈물 나지만 돈까스의 선택을 실패했던 그 상황은 냉철하게 바라봤을 때

부정할 수 없듯이. 실제로 당시에 애매했거든.

 

애매하니까 판단 잘못할 수도 있는 거지, 더 뭐 따져봐야 갈림길이었던 거잖어.

 

 

그러니까 애매한 지점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애매한 상태에서의 갈림길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 강하게 언급하면서 정리하자면?

우리는 애매한 데에서의 <판단 실패 가능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A-1(-14)

 

 

근데 애매한 지점이 세 군데 있었지?

 

현실성인지 비현실성인지조차 결정할 수 없는 애매함… ①

무조건적 현실성을 확신할 수 없는 현실성 안에서의 애매함 … ②

무조건적 비현실성을 확신할 수 없는 비현실성 안에서의 애매함… ③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맥락의 논의에서는 최소 애매한 지점이 세 군데 나왔고.

그리고 이 말은? 애매한 지점으로 제시한 최소한의 세 군데에서는

<판단 실패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애매한 그 자체로써 판단이 여기인가, 저기인가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판단 실패할 수 있음을 전제로 둬야하는 것이다!

 

 

나 근데 애매한 지점을 <혼재 구역>이라고 불름.

그래서 그냥 바꿔서 말할 거니까 애매한 곳이라고 바꿔서 생각하든,

대강 말 바꿔 이해하면서 따라와주라.

 

 

 

 

 

A-1(-15)

 

 

 

, 보자구.

내가 항상 우려먹는 <코끼리의 비유>를 가져와볼게.

 

개붕학교.png

 

너가 개붕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생각해봐. 어쩌다 개붕이들이 다니는 학교 교사가 된 것임.

그리고 너네 반 개붕이들한테 물어본다고 생각해 봐. 이거를.

 

코끼리는 발 몇 개로 걷나요? 순수한 개붕이들이 각자의 손을 들고 대답하겠지?

 

답을 생각하고 내려가보자. 너네 학교의 개붕이들이

그 질문에 어떻게 반응했을지 밑에 그림에서 확인해보자구.

 

 

5. 코끼리.png

 

* 앗! 진짜 코끼리인 개붕이가 한 명(?) 있었다!

 

 

Q. 코끼리는 발 몇 개로 걷나요?

 

A.

... (이미 자신이 코끼리라 말하지 않아도 안다.)

코끼리는 네 발로 걸어요!

코끼리 다리 잘릴 수 있으니까 세 발로 걸을 수도, 보조기기에 의존할 수도.

코끼리는 등짝과 손가락과 꼬리를 사용해서 걸어요!

 

은 만약에 내가 질문을 이해할 수 있는 코끼리라면 그냥 당연히 알겠지?

너무나도 당연스럽고, 자연스럽겠지? 아니, 그냥 당연스럽다, 자연스럽다가 아니고

그냥 코끼리의 당연과 자연 그 자체잖아. 표현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아주 아주 굉장히 자연스럽지.

, 좀 이상하긴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싸하지. , 그럴만해.

미친놈인가?

 

그래서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은?

<현실-현실성-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으로 쪼갤 수가 있다.

다시 봐보자.

 

코끼리가 발 몇 개로 걷는지에 대한 답변을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에서 파악해보자.

 

... (이미 자신이 코끼리라 말하지 않아도 안다.) ->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현실>

코끼리는 네 발로 걸어요!

-> 현실적 성질로써 자연스럽게 수긍되기에 <현실성>

코끼리 다리 잘릴 수 있으니까 세 발로 걸을 수도, 보조기기에 의존할 수도.

->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 가능성>

코끼리는 등짝과 손가락과 꼬리를 사용해서 걸어요!

-> 현실상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비현실성>

 

그래서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은,

<현실-현실성-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으로 쪼개서 볼 수가 있게 된다

 

이해가 조금이나마 어려우면 자신이 대답 중인 개붕이들 사이에 섞인

진짜 코끼리 개붕이라고 이입해서 생각해보면 될 거야.

⑶은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더라도, ⑷는 자신의 롱노우즈로 정신좀 차리라고 제법 강하게 후려치고 싶어질 거야. 

 

* 아주 심화 내용이라 생략하는데 비현실성을 비현실로 대충 사용 가능.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여서.

 

 

 

 

 

 

A-1(-16)

 

 

 

거꾸로도 가능해. 아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인데, 크게 어렵지 않으니까

여기서 가볍게 다루고 넘어갈게.

 

<현실-비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비현실> 뒤집어봤다!

한 번 살펴봐봐. 맞지?

 

좌측 극단의 본질성을 유지하되 우측 극단을 존중한 맥락 구분이야.

대강 코끼리의 비유에 대입해보고 확인되면 넘어가도록 하자.

 

 

 

 

 

 

A-1(-17)

 

 

, 여기 진짜 어려울 수 있는데, 이렇게도 쪼갤 수 있음.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은?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이렇게 나누기도 가능.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감 잘 안 잡힌다고?

이렇게 맥락 구분했을 때, ~적을 <개성>이라고 부르고 ~성을 <본질>이라고 축약해서 부름.

그래서 앞에 꺼가 개성이고, 뒤에 꺼가 진짜 본질이다. 이렇게 둔 뒤에

읽으면 편해짐.

 

 

 

 한번에 양파 감자 요리를^^ - 메타쇼핑 위메프

 

 

가령 <양파-감자>의 맥락이 있고, <개성>을 맛으로, <본질>을 과자로 바꿔보자.

그럼 맥락 구분을 나열했을 때,

 

<양파맛 양파칩(근본)-감자맛 양파칩-양파맛 감자칩-감자맛 감자칩(근본)>

 

퍼센트로 보여주면, 양파를 중점으로 뒀을 때,

감자 0%/양파 100%, -양파맛 양파칩

감자 25%/양파 75%, -감자맛 양파칩

감자 75%/양파 25%, -양파맛 감자칩

감자 100%/양파 0%, -감자맛 감자칩, 이런 느낌?

 

 

잘 보면 감자 0%~100%, 양파 100%~0%로 섞여 있지? 그러니까 위에 두 가지를 섞은

최종 형태라고 보면 돼.

 

*물론 아주 아주 극한 심화내용으로 최종 형태 아니긴 함. 근데 대충 넘어가자.

 

 

<현실-현실성-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

<현실-비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비현실> 을 섞어서,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이렇게 만든 거임.

 

그래서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은?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으로 맥락 구분이

가능하다.

 

 

 

 

 

A-1(-18)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해놨는데,

내가 이걸 왜 구분해놨을까? 의도가 뭘까???

 

잘 모르겠을땐 그놈을 다시 데려오자.

 

 

아까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 그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하고 맥락끼리 대응한다고 뒀었잖아?

그러므로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 구분이었던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이걸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도 대응시켜서 적용해보자구.

 

 

해보면?

<무자각적 무자각성-자각적 무자각성-무자각적 자각성-자각적 자각성>이 되겠네요.

 

이렇게 맥락 구분을 바꾼 다음그 대응하는 맥락 구분끼리 비교해보면서 논의를 전개해보자구.

 

 

 

 

 

A-1(-19)

 

 

 

참고로 두 가지 섞은 최종 형태의 맥락 구분이라고 부르는 건, 뒤에 이라는 말

떼버려도 성질이 효과적으로 함의될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해서 쓸게.

 

그러니까 현실적 현실성, 이라고 하면 현실적 현실.

이렇게 해도 별로 문제 없지?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그러니까 여기 이 네 군데 다 붙어있으니까, ‘은 실용적으로 떼버릴 수 있다는 거임.

<현실적 현실-비현실적 현실-현실적 비현실-비현실적 비현실> 이렇게.

 

물론 은 못 떼. 왜냐면 앞이랑 뒤랑 이어줘야 되니까.

은 생략할 수 있다는 가벼운 이야기였어.

 

 

 

 

 

A-1(-20)

 

 

거의 다 왔다. 이제 논의된 걸 바탕으로. 착착착, 하면

<논의 A-1>의 결론이 나올 거야. 한 번 해보자.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무자각적 무자각성-자각적 무자각성-무자각적 자각성-자각적 자각성>

 

이렇게 대응하는 맥락 구분끼리 비교해서 논의를 전개해보자고 했지?

 

 

이제부터 결론 나오니까 간결하게 갈게.

 

첫 번째로,

대응하는 <비현실적 현실()>을 살폈을 때, 비현실처럼 보이나 현실인 것이 있듯이,

<자각적 무자각()>을 살피면, 자각처럼 보이나 실제로 무자각인 것이 있겠다.

(감자칩처럼 느껴지나 그것은 감자맛일뿐이었고 실제로 양파칩인 것이 있을 수 있듯이.)

 

대응 관계와 판단 실패 가능성에 따라서.

 

 

번째로,

대응하는 <현실적 비현실()>을 살폈을 때, 무조건 현실처럼 보이나 실제로 비현실적인 면이 있듯이.

<무자각적 자각()>을 살피면, 온전히 자각처럼 보이나 실제로 무자각적인 것이 있겠다.

(양파칩처럼 느껴지나 그것은 양파맛일뿐이었고 실제로 감자칩인 것이 있을 수 있듯이.)

 

대응 관계와 판단 실패 가능성에 따라서.

 

 

그러므로 자각 자체의 판단 실패 가능성을 자각하기 위하여 자각해서 그 자각과 무자각의 디테일을 잘 살펴야 한다.

 

 

 

 

 

 

A-1(-21)

 

그런데 자각은 비일상적일 때 이루어진다.

 

 

 

 

A-1(-22)

 

 

그러므로 일단 자각하기 자체를 일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A-1, 끝>

 

 

1. 일상에 무자각이 대응비일상에 자각이 대응

2. 현실에 무자각이 대응- 비현실에 자각이 대응

3. 일상성, 현실성에 무자각<>이 대응- 비일상성, 비현실성에 자각<>이 대응

4. [일상성, 현실성] -> <자연성>, [비일상성, 비현실성] -> 부자연성

5. 사건보다 상황이 우선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이 우선함에 따라

상황 속 (상황 그 자체가 포함된 어떠한 대상의) 성질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6.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 성질이라면 상황 속에 있으므로 변화 가능성을 수긍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일상성은 비일상성으로 변화하고, 비일상성은 일상성으로 변화할 여지를

가지므로 양립하는 성질의 변화 가능성의 일련으로 묶어 <맥락>이라고 칭한다.
7.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에 대응 
8. 맥락의 가운데를 그어 성질 판단의 완벽한 기준의 되는 일종의 구분선을 상상할 수 있다.
9. 맥락의 관찰 불가로, 구분선의 근처에서 판단이 애매할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10. 맥락은 맥락적이므로, 극단의 근방에서도 판단이 애매할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11. 논의 편의를 위하여 좌측 극단을 우측 극단보다 본질적인 성질로 취급하는 것으로 하자.

12. 논의 A-1-8과 논의 A-1-9에 따라 애매한 지점은 최소 세 근방에서 파악된다. 

13. 애매한 지점의 애매성은, 개인의 판단 실패 가능성을 시사한다.
14. 논의 12에서 정리한 최소 세 근방의 애매한 지점은 판단 실패 가능성을 가지며, 그 구역을 <혼재 구역>이라고 칭한다.

15. <코끼리의 비유>에 따라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은,

<현실-현실성-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으로 쪼개어낼 수 있다.

16. 거꾸로 <현실-비현실적 가능성-비현실성-비현실>로도 쪼개어낼 수 있다.

17.  논의 A-1-15와 논의 A-1-16의 종합에 따라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으로

쪼개어낼 수 있다. 한 항의 ~적을 <개성>, ~성을 <본질>로 칭한다.

18.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무자각적 무자각성-자각적 무자각성-무자각적 자각성-자각적 자각성>이 대응

19. <본질>~성은 모든 항에 본질 표기가 된 맥락 구분에서 유연히 생략 가능하다.

20. <비현실적 현실성>과의 대응에 따라 <자각적 무자각성>을 살피면

논의 A-1-13에 따라 판단 실패할 수 있다.

, <현실적 비현실성>과의 대응에 따라 <무자각적 자각성>을 살피면

논의 A-1-13에 따라 판단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혼재 구역의 판단 실패 가능성을 주의하기 위하여 자신의 <무자각성-자각성>

맥락을 자각하여 파악해야 한다.

21. 그런데 자각은 논의 A-1-1에 따라 비일상적일 때 이루어진다.

22. 그러므로 일단 자각하는 것 자체를 일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자각에 대하여

 

A-2(-1)

 

교통사고가 나면 안전삼각대를 설치해 2차 사고를 예방해야 합니다? : 네이버 포스트

 

 

주의!!!!!!!!!!!!!!!!!!!!!!!!!!!!!!!!!!!!!!!!!!

* 난이도가 개역겹고 B에서 쉽게 다루기 때문에 <난 철학이 좋아변태>가 아니라면 절대로 피해갈 것

* 난이도 별 다섯 개 중 일곱개 (내 철학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움)

* 여긴 직접적인 논의고 어차피 나중에 간접적으로 이해되는 파트라 여기서 고생안해도 떠먹여줄거임. 도멩챠

──────────────────────────────

 

 

근데 잘 생각해보자구.

 

그, 현실이고 비현실이기 때문에 내가 무자각하고 자각하는 걸까?

 

저 눈앞에 현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내가 무자각하고,

저 눈앞에 현실이 비현실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에 내가 자각하는 걸까?

 

 

대학교 일체형 책상 대신 새로 생긴 의자.jpg - 인스티즈(instiz) 인티포털 카테고리 * (이런 의자는 내눈앞에 없었으면 좋겠지만...)

 

 

내 앞에 의자가 보인다?

그럼 내 눈 앞에 의자가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게 지당 당연한 사실이라고,

나는 일상적으로, 현실적으로 일반 사람들처럼 여기는 바이긴 해.

 

또, 아까 코끼리 투어를 하고 있을 때에, 버스 안에서 바깥에 코끼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코끼리를 자각한다고, 내가 일반 사람들처럼 여기는 바이긴 해.

 

근디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아?

 

 

거꾸로 생각해보자. 혹시나

내가 무자각하기 때문에 저것은 현실인 거고,

내가 자각하기 때문에 저것은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나의 무자각, 자각의 여부에 따라서 현실과 일상의 여부가 결정되는 거 아니야?

소리가 있기 때문에 들리는 게 아니고, 들려서 소리가 있는 게 아니냔 소리지.

 

즉, <자연성-부자연성>에 <무자각성-자각성>이 지금껏 해온 논의처럼 대응하는 게 아니고,

거꾸로 <무자각성-자각성>에 <자연성-부자연성>이 대응했던 게 아니냐는 거야.

 

쉽게 말하면,

현실이기 때문에 내가 너무 당연하다 느끼는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당연하다 느끼기 때문에 현실인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무자각하냐, 내가 자각하냐에 따라서 바깥의 <자연성-부자연성>은 결정된다.

 

하물며 <현실>이란 것도, 내가 나의 무자각을 자각했기 때문에 <저것은 현실>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고,

내가 나의 자각을 자각했기 때문에 <저것은 비현실>이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어이. 잠깐 멈춰봐. 잠깐 멈추고 다시 논의를 전개해보자.

 

 

 

 

A-2(-2)

 

 

라고 얘기를 하고? 네 시간 동안 줄줄줄 적었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아주 극심하게 올라가는 게 보여서

그냥 싹 갈아 엎을게. 자투리로 백업 빼놨으니까 궁금한 사람은 물어봐도 됨.

 

대신에 이걸 어떻게 쉽게 써? 라는 생각이 들만한 정도의 난이도니까

이거에 이입하면서 읽어줘.

쉽게 쓰려다가 머리통 박살날거같음

 

 

암튼간에 무슨 소리냐면,

평소에 일상적으로 <의자가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 이런 생각조차 안 하고 살지?

 

아니 타박하는게 아니고 나도 그러는데 내 삶이 바쁜데 저런 생각을 뭣하러 해?

보통 개붕이들이라면 배를 벅벅, 철학 왜 해? 이러잖아? 밥이나 줘.

아니 그 타박하는 게 아니라니깐.

 

 

아무튼 근데 봐봐.

의자가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A

생각을 할수 있기 때문에 의자가 있는 거다. -B

 

뭘 동의하던 간에 의자파-A 생각파-B 나눌 수 있지?

 

 

근데 말이야

나눌 수 있는데도 <의자가 먼저고 내 생각이 이후냐>, <내 생각이 먼저고 의자가 이후냐>,

이런 거는 일상 살면서 생각을 절대 안하지? 이런 생각을 왜해?

 

이 글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었어? 아니잖어. 배고프다~ 뭐 먹을까~?

나 같은 경우는 멕시칸닭강정 먹고싶다~ 이러고있었단말이야.

다들 별 생각없잖아?

 

엇 그렇다면 아예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었던 게 더 무자각한 거 맞지?

!!! 더 무자각한 거네? 아예 아무 생각도 없어버리는 게?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야.

 

이것(무자각)(의자파) -> 저것(자각)(생각파)

: 해석, 의자 먼저 있다고 보는 게 나에게 무자각적이고, 후자가 자각적이다.

 

저것(무자각)(생각파) -> 이것(자각)(의자파)

: 해석, 생각 먼저 있다고 보는 게 나에게 무자각적이고, 후자가 자각적이다.

 

라고 <자연성-부자연성> 대응관계와 논의 A-1에 따라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게 아니라! 애초에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 <종합되어 잠재>한 상황에서 이것 혹은 저것(자각) 이 파생하는 거야.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의자파+생각파) -> 이것(자각)(의자파)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의자파+생각파) -> 저것(자각)(생각파)

 

이렇게 된다는 거임. 뭔소린가싶지? 해설할게

 

 

 

 

 

A-2(-3)

 

 

고1 통합과학 1-1-2 [스펙트럼] : 네이버 포스트

 

* 이것은 강력한 떡밥이다

 

 

 

예컨대 가령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살듯,

아무 생각 없이 무자각하게 연속스펙트럼 하나를 보고 있잖아? 그냥 느껴봐.

이러면 색의 구분이 없이 그냥 전반적으로 종합된 성질에서 스펙트럼을 인지하고

있는 거잖아?

 

그러다 누가 스펙트럼 속 색깔을 하나 쏙 골라와서 이 색깔은 빨강이야!

그러면 그제서야 빨강-비빨강(빨강 아님) 나뉘어질 수 있지?

빨강과 빨강 아닌 색.

색의 구분 없었는데 색의 성질이 쪼개지니까,

 

그래서

무자각은 종합된 성질을 가지고, 자각은 분리하는 성질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잘 모르겠으면 하늘색!

 

내가 방금 이렇게 말했으니, 하늘색 별 생각 없다가 나 때문에 자각해버려가지고

하늘색과 하늘색 아닌 걸로 연속스펙트럼이 쪼개지는 거임.

그렇게 하나의 연속스펙트럼이었던 게

하늘색과 하늘색 아닌 두 방면으로 쪼개져서 자각이 될 수 있어버리는 거임.

 

 

아무튼 빨강-비빨강으로 다시 돌아오자.

그래서 이것 플러스 저것,

다시 말해서

무자각할 때는 <빨강 플러스 비빨강>을 동시에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자각해서 <빨강 혹은 비빨강>으로 찢어진다는 소리야.

그래서 무자각할 때는 성질이 종합된 게 일상적이고, 자각해서 분리된 게 비일상적이라는 소리.

아주 넓게 보자면 이렇다는 거야.

 

이 머리스타일 유행 가능성 있다고 본다 - OP.GG Talk

 

  집합으로 얘기하면 원래 무자각 상태란 건,

  보이지 않는 전체집합인 U(연속스펙트럼) 인데

  A 와 Ac 가 U로부터 자각해서 확인이 됐잖아? 

  U에서 A(빨강)와 Ac(비빨강)가 자각해서 나올 수 있으니까

  U = A ∪ Ac 로써 

  무자각을 A ∪ Ac (빨강+비빨강) 라고 말할 수 있다는 소리야.

 

  즉, 어떠한 전체집합(연속 스펙트럼) =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빨강+비빨강) 이니까,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빨강+비빨강) -> 이것(자각)(빨강)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빨강+비빨강)-> 저것(자각)(반빨강) 라는 소리.

 

 

 

 

 

 

A-2(-4)

 

 

수업들을 때 불교철학 교수님이 자주 드시던 예시 어레인지 좀 해볼게.

* (감사드립니다 불교철학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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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각을 우리가 볼 수 없는 칠판이라고 두면 돼. <전체집합 U>를 못 보는 칠판이라고 두자. 투명 칠판.

근데?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칠판을 쓰고 있는 거야.

근데 생각해봐. 저곳에 낙서를 한다면, 낙서를 할 수 있는 바탕이 있는 거고,

저곳에 낙서를 하지 않는다면, 낙서를 하지 않은 바탕이 있는 거잖아?

 

근데 그게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지? 바탕이라는 이름 하에서? 투명 칠판 안에서?

그래서 낙서를 한 곳과 낙서를 하지 않은 곳을 합쳐서 아~ 이게 전체 바탕이구나, 함과 동시에

이 낙서 가능한 모든 바탕일 수 있는 곳을 종합한 게 바탕이겠구나~

다른 말로 무자각이구나~

아하! 칠판이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야.

 

이 칠판은 낙서가 되기도 하고, 낙서가 되지 않기도 하니

낙서를 할 잠재성과 낙서를 하지 않을 잠재성 모두를 가지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낙서를 그냥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고,

낙서를 잠재해서 가지고 있다는 소리야.

 

 

 

 

 

A-2(-5)

 

 

 

또, 다시 연속스펙트럼 얘기로 돌아와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을 때는 그냥 아무 주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 색! 하면서 뜯어서 들고왔잖아?

이제 이 색을 보고 빨강이냐, 빨강 아니냐 둘로 갈릴 수 있는 거고.

 

여기서 빨강!이라고 이름붙임 을 통해서 빨강, 비빨강이 파생한다는 비빨강 드러내기가 포함된 과정뿐만이

자각의 일종이 아니고

빨강! 이라고 하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이것 자체가 자각이라는 소리야.

나 당연한 얘기 하고있는거임.

 

ex)

어, 저걸 이름 뭐라 붙이지? 빨강이라고 해야겠다!

↑ 빨강 아닌 거 굳이 안드러내도 이것 자체로 자각이란 소리

 

 

그러니까

빨강 혹은 비빨강이 나뉘기 전의, 그 이분되는 이전조차도 자각이라는 소리야.

색 구분 자체가 없었잖아?

그러면서 이 분할될 주제의 잠재성조차 무자각이 가지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A와 A의 여집합이 출몰한 상황 뿐만이 아니라,

A의 여집합의 자각이 없는 A의 자각만 벌인 상태라도, 그것 A의 자각? 당연히 자각이다.

당연한 소리지?

A의 자각은 A의 자각이다. (A의 자각 = A의 자각)

근데? A의 여집합이 아직은 A의 자각만 했으므로 무자각하니까?

A의 자각으로써 A의 여집합이 자각될,

그러니까 A와 A의 여집합 두 가지로 쪼개질 잠재성을, 무자각이라는 바탕은 이미 A를 자각함으로써 들고 있다.

 

이 소리임.

 

 

 

 

 

A-2(-6)

 

 

즉,

무자각은 <자각에 연관돼서> 어떠한 가능성을 늘 잠재하고 있다구.

 

그러니까 넓은 맥락에서 볼 때, 무자각은 그저 성질이 종합된, 잠재적인 형태로 <없는> 거야.

애초에 구분 자체가 없다!

 

* 자각해서 구분이 나오니까. 자각이 무자각이라는 종합을 분리하니까.

 

 

물론 없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무자각을 자각해서 말한 거지.

무자각은 <무자각이란 건 있음>+ <무자각이란 건 없음>에서

<무자각이란 건 있음 "혹은" 무자각이란 건 없음>으로 자각돼서 쪼개지는 거니까.

 

혹은 두 가지 모두가 종합된 형태로 쪼개질 수도 있는 거고. 우리가 A와 A 여집합 두 가지 모두를

하나의 바탕으로 자각해볼 수 있듯이.

 

 

 

그래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또,

있으면서도 없을 수도 있는, 자각했을 때 표현 딜레마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거임.

뭔 말을 할 수가 없네?? 도라이네이거?

 

 

그래가지고 우리는 말이야. 이걸 알았잖아? 이거 모르는 개붕이가 질문한다고 해보자.

"무자각... 무자각이란 건 있나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글을 읽은 개붕이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만약에 이 글을 읽고 무자각을 제대로 배워버린 개붕이가

음~ 무자각이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하면 이제 따봉개붕이 되는 거임.

 

 

따봉도치야 고마워~~!!!"…당신은 따봉도치의 행운을 받았습니다 * 따봉개붕이의 모습 예시

 

 

 

 

 

A-2(-7)

 

머리 아프지? 개어렵지?

일단 써놓을게. 흘러가는대로 줄줄 읽어봐.

 

 

그러니까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빨강+빨강 아님) -> 이것(자각)(빨강)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빨강+빨강 아님) -> 저것(자각)(빨강 아님) 이라는

(* 물론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 -> 이것 플러스 저것 ->(자각) 또한 존재하지만 아무튼 쉽게 쓰고자 생략)

무자각성과 자각성의 색깔 성질 논의를 통해서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과 <자연성-부자연성>의 맥락 대응 뭐가 우선이냐?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말해볼 수 있다.

 

즉, 그 무엇이 우선이냐? 의 논의는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 우선 주장 + <자연성-부자연성>의 맥락 우선 주장이 종합된 무자각에서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 우선한다 주장하거나,

<자연성-부자연성>의 맥락이 우선한다 주장하거나, 둘 중 하나로 자각된단 소리.

 

 

그리고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 + <자연성-부자연성>의 맥락]이라는 무자각의 규정은

애초에 무자각성이란 게 본인이 제대로 알 수 없는 전체집합이었기 때문에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 우선한다 주장되거나,

<자연성-부자연성>의 맥락이 우선한다 주장될 수 있음으로

<자각될 수 있기 때문에> 거꾸로 집합과 여집합의 관계로 무자각은, <빗대어 말해진 것>이다

 

 

*

이게 뭔 개소리냐?

설명하자면 아까 얘기했던 결국에 의자가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 이거는

둘다 먼저인게 가장 본질적이란 소리임

(현실이 본질적이고 현실이 무자각에 대응한다면 무자각이 이제 본질적이니까)

 

아니 이게 뭔 개소리냐고?? 두개 다 본질적인게 말이 되냐고?

원래 무자각이란게 그렇읍니다.

근데 너가 생각이고 의자고 두개 다를 지금 얘기하고 있는데 그게 무자각에서 자각해서 나온 대상들이니까

거꾸로 그놈들 지금 있는 자각에서 무자각으로 집어넣는거임

그래서 그거두개 둘다 먼저인게 가장 본질적이란 걸 알수 있단소리.

원래 아무 생각없었는데 가능성으로 파생했으니까

 

다시말해서 무자각할때는 의자니 생각이니 전혀 없었잖아? 그래서 자각을 통해서 빗대어 알 수 있단 소리야.

그래서 빗대어 말해지는거임.

 

 

 

 

 

 

A-2(-8)

 

 

그리고 빗대어 말해진 것에 따라, 애초에 무자각성이란 게 전체집합임에도

전체적으로 파악을 할 수가 없으니까,

즉 전체적으로 파악을 할 수 없는 전체집합이기 때문에

아무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얘기해야 바람직하다는 소리.

 

하지만? 더 나아가서? 더 바람직한 건? 완벽한 무자각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가장 바람직하다.

 

 

 

* 불교철학 시간에 들었던 얘기 해석

 

 

그래서 옛날 스님들한테 진리란 무엇인가요? 여쭤보면 박수 짝 치거나 검지손가락만 들어서 보여주는거임.

 

짝 치면 물어본사람이 자각하잖어?

스님의 의도로는 자각시켜서 무자각이 있다는걸 알려주려는 거임.

수행자는 영문 모를 박수로서 손가락으로서 무자각했다가 비로소 자각했기 때문에.

거꾸로 수행자 스스로가 무자각했다는걸 깨닫기를 바라는거겠지?

 

대신 스님은 무자각이 뭔지 알고있기때문에 최대한 제대로 표현하려고 한다면 표현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거임.

그래서 박수나 손가락 보여주기로 표현 최소화해서 끝내는거.

근데 이건 그나마 수행자를 배려해준건데 왜냐면 아무말도 안해버려야 그것이야말로 무자각이고

그것이야말로 수행자를 위한 제대로된 대답인데 그래도 수행자 알려주려고 표현 조금이라도 섞은거.

암말도 안하고 ... 이러고 있으면 에잉하고 절대 못깨닫고 가버릴테니까

에잉쯧쯧 어리석은 중생이여

 

 

 

아니 근데 개어렵네. 대체 이걸 어떻게 쉽게 써?

(아직도 모르겠으면 그냥 버리자. 사실 나중에 난이도 확 내려가서 괜찮아질거임)

 

 

 

 

 

A-2(-9)

 

(1)

 

근데 볼펜을 보면서 성질의 구분을 생각할 수 있지?

뜨겁다-차갑다, 길다-짧다, 뭐다-뭐다, 등등...

근데 여기서 또 메타적으로 넓혀서 볼펜이다-볼펜이 아니다 하면,

볼펜 얘기하다가 갑자기 볼펜이 아닌 성질의 모든 게 또 끌려오지? 

 

*

집합으로 얘기하면 집합 '볼펜' 안에서 낙서하다가도 메타적으로 집합 '볼펜'과 집합 '볼펜'의 여집합(볼펜 외 집합) 발견하면

다시 집합 '볼펜'과 집합 '볼펜'의 여집합은 전체집합이 되니까 갑자기 확 전체의 논의로 땡겨질 수 있다는 소리.

 

 

그러면서 애초에 저것들,

자각이란, 논의 A-2-2에 따라서 이 모든 성질의 잠재를 드러내는 거고

그러면서 논의 A-2-5에 따라서 이 모든 성질 구분의 잠재를 드러냈으니까

무자각에서 자각돼서 나온 산물들이지? (집합 '볼펜'과 '볼펜' 외 집합은 모두 자각 산물)

 

* 혹시 헷갈릴까봐 A-2-5의 논의란,

집합 A와 집합 A의 여집합의 구분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집합 A를 그려버린 것 자체가, 여집합의 발견을 잠재하므로 전체집합을 시사한다는 의미.

 

 

그렇다면 무자각은?

뜨겁다+차갑다, 볼펜이다+볼펜 아니다, 뭐다+뭐다, 등등...  전부를 포함하는 놈이잖아?

* <볼펜이다-볼펜 아니다>에 맥락 같은 정도 변화가 어떻게 있냐? 는 논의를 이해하고 있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성질을 잠재하고 있는 게 무자각이잖아?

그러니까 칠판 안에서 A집합을 그리던, B집합을 그리던, C집합을 그리던

A집합 안에 그리던, B집합 안에 그리던, C집합 안에 그리던 간에,

그리고 그 집합들이 여집합을 몽땅 가지고 있을 텐데,

이거 전부 합쳐서 칠판이란 거잖아? 낙서를 하든, 안 하든, 뭘 그리던, 낙서 안에 낙서를 그리던,

낙서를 하지 않은 바탕이 있던, 이 모든 것들은 낙서들은 전부 바탕의 칠판으로부터 나오니까?

 

 

 

(2)

 

가령 다른 식으로 접근하더라도

말로 하면 뜨겁다-차갑다의 종합이다 라는 말조차,

뜨겁다-차갑다의 종합이다, 종합 아니다 다른 맥락 구분들 역시 이런 식으로 또 쪼개지고 쪼개지면서

서로 합쳐지고, 합쳐지면서...

(<뜨겁다-차갑다의 종합이면서 볼펜이다-볼펜이다의 종합이다 - 아니다> -<그 반대> 등등)

 

8. 다른것으로두자면.png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모든 경우의 수를 빨아먹거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낙서를 최종적으로 끝내고

그 낙서들끼리 엮어서 다른 집합관계로 해석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모든 가능성을 함의하게 되거든?

 

그림으로 봐보자. 내가 최상의 자각 능력으로 암울하지만 집합 세 개 만든 게 능력상 끝이라고 해보자.

그럼 그 세 개의 집합에서 저런 식으로 포괄을 다르게 보다보면 모든 포괄될 수 있는 집합의 가능성과

모든 여집합의 가능성, 즉, 내가 자각한 데에서의 모든 가능성을 함의하게 된다는 뜻이야.

 

* 가령 집합 A와 집합 B가 겹쳐있으면 조랭이떡을 하나의 집합으로 봐도 된다는 소리.

아무튼 테두리를 묶어서 하나의 집합으로 이렇게저렇게 만들어버리면

어떻게든 성질이 합쳐질 수 있다는 소리.

 

아무튼, 아무튼.

어쨌든 간에 무자각은 결국에 전체가 되거든?

 

 

 

다시 얘기하면 무자각이라는 건 어떻게 될 가능성, 전부, 몽땅 잠재하고 있는 거 잖아?

자각이 어떻게 될 가능성, 모든 걸 드러낼 수 있는 놈이어야 하니까?

얘가 모든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무자각은 모든 가능성을 잠재하는 녀석이잖아.

 

결국에 중요한 건 무자각은 모든 가능성을 잠재하는 바탕이잖아.

 

 

 

 

 

A-2(-10)

 

 

 

근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현재란 놈은 가능성이 아니지? 이미 가능성이 벌어진 사태이자, 가능성이라는 씨앗의 화분이지?

현재로부터 가능성의 미래가 생겨나고, 가능성이 가능 혹은 불가능으로써 발현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잖아.

 

가능성이 아니고 필연이잖아. 현실은.

 

 

참. 대신에 이걸 이렇게 동의하든 안하든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지.

<이건 현실이다-현실이 아니다>로 시작해서

<이건 필연이다-필연이 아니다>,

<이 현실조차 가능성이다-이 현실조차 가능성이 아니다>

<아름답다-아름답지 않다>, 그 와중에 보이는 <저건 의자다-의자가 아니다>.

왜? 지금까지의 논의를 볼 때 그 무자각이란 놈에는 맘대로 그릴 수 있었으니까.

낙서 막 할 수 있으니까. 현실은 손난로다. 현실은, 현실은, 하면서 별 정신 나간 얘기도 다

그럴싸하게 할 수 있는 거지. 무자각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맞지?

 

 

근데 착각하면 안 되는 게 있어.

진짜 현실을 보고 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진짜 현실이 본질적으로 현실이 아닌 게 아니지? 왜? 은연중에 가정한대로 진짜 현실이니까.

진짜 현실을 보고 그저 현실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거니까.

 

다시 이야기하면, 진짜 칠판이 있다고 했을 때, 칠판에다가 칠판은 없다라고 낙서할 수 있다고 해서,

진짜 칠판이 본질적으로 없는 게 아니지? 왜?

그야말로 칠판에다가 낙서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낙서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낙서가 다 옳은 건 아니다. 틀릴 수 있다, 내용은 비본질적일 수 있단 소리임. (물론 당연히 본질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말해질 수 있는, 표현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는 거야.

즉, 자각되면 아무리 진짜 본질이 있고 그게 진짜 본질이더라도

그 진짜 본질이라는 게 비본질로 말해질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는 거.

 

최고의 본질이 현실이라고 표현할 때,

진짜 현실이라도,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말해질 수 있다는 잠재성까지

현실은 본질로서 포함하고 있다는 소리임. 우리의 무자각을 전제한다면.

 

 

 

 

 

A-2(-11)

 

 

 

그래서 아무튼 알 수 없는 본질처럼 보이는 것 위에서 본질이 있다-없다로 말해질 수 있더라도,

본질이 있다고 <가정하고> 일단 논의를 전개할 건데,

 

그러면 걔 또 데려와야지.

논의 A-1에서 한 내용 끌고와보자.

당연한 게 무자각이고,

그러면서 현실은 변화하잖아. 어떠한 가능성에 따라서.

 

그러니까, 어쨌든 생각을 멈췄을 때, 너무나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현실과 일상.

 

논의 A-2-9에 따라

무조건적인 대응관계 설정 아닌, 모든 가능성을 포괄한다는 무자각 관점으로도

(본질을 가정하고 자각된 무자각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최종의 전체로부터 최종에서 비롯하는 부분이 파생하므로)

현실(현재)과 일상이 아무 생각 없는 무자각이면서,

아무 생각 없는 무자각이 현실과 일상 그 자체일 때 본질이란 소리임.

 

왜? 저것에서 모든 가능성들이 아이스크림처럼 파생하니까

 

*

물론 현실=무자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질로 보이는 두 놈을 섞을 수가 있으니까

현실 무자각이자 무자각한 현실 이걸 최고 본질이라고 둘 수 있다는 소리임.

 

 

 

 

진짜 설명하기 개디지게 어렵네.

그러니까 생략해서 말할 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단, 어떤 해석조차 없이 무자각한 '지금'이라는 현재 체험이 본질이라는 소리야.

그리고 아무리 이렇게 비슷하게 얘기해도 표현에 달라붙는 자각성 탓에 윗 문장의 본질은 절대 본질이 아니게 되고

본질 겪으려면 그냥 몽땅 버리고 아예 무자각하게 살아가야함.

 

그럼 자각하면 지금이 아닌거냐?

지금이긴 한데 <진짜 지금>은 아니란 소리야. 본질적일 수 있기야 한데 본질은 아니란 소리.

 

 

먼 소린지 알.. 겠지... ???

 

 

 

 

 

 

A-2(-12)

 

내가 도망가랬잖아.

대충 이해했다고 치고 넘어갈란다.

 

아니, 근데, 아무튼 모른다매.

그게 현실이 진짜던, 아니던, 아무튼 모른다매!

낙서 맘대로 할 수 있다매!!!!!!!!

 

그럼 논의 A-2-6에서 본질이 있다고 <가정했던 건>, 아무 쓸데 없는 거잖아.

말 그대로 가정일 뿐이고, 어차피 가정한다는 건 진짜일 수 있는 가정 불가능한 현실에

눈 가리겠다는 소리인데.

 

무자각한 현재가 본질인 것처럼 써놨는데 사실 본질 아닐 수도 있는 거 잖아, 그러면.

본질이 있다고 그저 가정한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는 강한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A-2(-13)

 

 

 

일단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점.

칠판이 무자각이고, 낙서가 자각이었다면, 그리고 본질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본질로 치부할 대상을 찾는다면 <무자각한 현재> 였지만은,

우리는 애초에 본질로 치부할 대상을 찾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 본질이란 놈을 체험할 수가 없다.

 

왜? 어떠한 그 미세한 자각조차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무자각이란 건,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 있어야 하는데,

무자각성이란, 완벽한 무자각에서부터, 덜 무자각, 덜 덜 무자각, 덜 덜 덜 무자각한 게 있다,

무자각끼리 어떤 게 더 무자각적인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소리를 했었는데.

 

즉,

<무자각-강한 무자각성-약한 무자각성-자각성>의 강약 정도로써 쪼개질 수 있다는 소리고,

이건 또,

강한 무자각성은 약한 자각성이 될 수 있으니까,

강한 무자각하기가 아니고, 맨 좌측 <극단>의 완벽한 <무자각 그 자체>를 현재에서 체험해야만

본질로써의 '무자각한 현재'를 겪을 수 있다는 소리인데?

 

완벽하게 무자각할 수가 없다. 일체의 자각도 없는 완벽한 무자각을 겪을 수가 없다.

알려면 자각해야 되는데 자각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본질로 둬버린 것조차 우리의 일상과 좀 멀리 동떨어진 얘기다.

그래서 그나마 본질을 체험하고, 본질을 맛보고자 한다면? 무자각하기 위해 무자각으로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종교 좀 믿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 그런 거 아니야?

너도 명상해야 하고, 수행해야 되고, 기도해야 하고, 출가해야 하고,

영적인 체험을 해야 하고, 초자아를 찾아야 하고, 이런 걸 강조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이쪽을 다루는 종교적인 철학들과 나와의 가장 큰 차이점.

하지만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이다.

 

 

 

 

A-2(-14)

 

 

그래서 현실, 현재든 뭐든 간에, 무자각이든 뭐든 간에 떠나서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보자고.

 

다들 본질을 알기 위해서 무자각을 위한 종교적인 수행해야돼? 영성 체험해야돼?

물론 어떤 면에서 되게 좋을 수도 있겠지.

근데, 일상적으로 평소에 우리가 그러고 살진 않잖아.

이걸 하면 미래를 알 수 있어요.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이런 뜬구름잡는 필요가 아니더라도,

이걸 하면 행복해져요. 이걸 하면 욕심이 없어져요.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져요.

현실적인 필요야 있을 수 있는데, 그러고 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면서 잘 사는 사람

일상속에 있긴있잖아? 내가 그 행복한 사람 아니더라도 있긴 있잖아?

 

 

 

 

4. 웃는모습.png

 

어우, 행복하세요? "물론요 행복합니다." 이런 사람들 분명히 있잖아?

개붕이들 중에서도 있을거고. 일상에 충실하면서말이야.

 

 

그래서 나름의 철학을 구축한 나의 입장에서 말해볼 수 있는 대답은 이래

내 입장임. 이건 내철학이잖아. 쭉 말할게.

그냥 내 일상부터 잘 챙기는게 장땡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할 수도 있겠고.

아무튼 굳이 왜?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본질 겪기, 그 완벽한 무자각 체험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가?

그냥 잘 살다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개붕이들도 그냥 나처럼 일상이 행복하면 아주 만족할 거 아니야?

 

아무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

두번째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이거 내가 만든 철학이잖아?

그리고 우리는 완벽하게 무자각할 수 없다는 소리였잖아? 위에 논의가?

근데 이게 나한테는 문제가 안 되는게?

 

무자각하게 일상을 잘 살아가는 <나로서는> 완벽한 무자각의 체험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걸 넓혀서 두 번째로,

무자각하게 일상을 잘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완벽한 무자각의 체험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가 있다.

 

 

* 종교가 누구에게나 쓸모 없다고, 쓸모가 있더라도 아주 조금의 쓸모만 있다고 비하하지 않았다.

 

 

 

 

 

A-2(-15)

 

 

그래서 나는 나의 일상을 알기 위해서

(1) 일상에서 완벽하게 무자각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무자각이 아닌, <무자각성>, 즉, <자각된 무자각>을 다룬다.

이거 중요함. (2) <자각된 무자각>을 다룬다.

 

(3) 그리하여 <일상을 위한 철학>을 하겠다. 이상한 데서 힘빼지 말아보고

내 일상을 위하긴 했지만 넓혀서 우리 생활의 실용을 위해서 일상 탐구에 같이 집중해보자구.

 

그리고? 회의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저 무자각은, <무>라는 이름으로, 맥락의 논의 바깥으로

치워놓고, <무자각>이라고 이야기하면, <자각된 무자각>을 함의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거야.

 

 

 

 

 

 

A-2(-16)

 

 

즉,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라고 적어놓는 점에서,

앞으로 논의에도 무자각 및 무자각성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그

<완벽한 무자각>의 <무자각>, <무>를 일컬음이 아니고,

<강한 무자각~ 아주 덜 강한 무자각>의 <무자각(성)>을 일컫겠다는 것.

<완벽한 무자각> 얘기는 <무>라고 얘기를 할거야. <순수 무자각>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기억해주고.

 

또, 중괄호로 묶은 데가 비로소 칠판에서의 <무>가 되는데,

(왜냐면 무자각성과 자각성을 잠재하고 바탕하며 파생시키기 때문에)

 

<자각된 무자각>에 따라서 (무-)<무자각성-자각성>, 이렇게 치부하겠다.

 

 

10. 맥락무.png

 

다시 말해서 좌측 그림처럼 무자각성-자각성이라는 중심점을 두고

무자각성의 위에도, 아래에도, 자각성의 위에도, 아래에도, 밑바탕에도, 윗면에도, 다른 차원에도

잠재한 가능성들이 골고루 퍼져있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지만,

(즉, 자각성은 무자각성으로 오른다 말했는데도 <무>의 관점에서는 무자각성을 건너뛰고

무자각성-무-자각성> 이렇게 써도 되긴 하지만, 기타 다른 발상들이 가능하겠지만) 

 

우측 그림처럼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 따라, 무자각성으로부터 자각성으로, 혹은

자각성으로부터 무자각성으로의 일련으로 변화하는 성질임을 수긍하여,

무를 편의상 중괄호 좌측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다. 그냥 무조차 맥락적으로 두겠다.

그리고 맥락만을 <자각된 무자각>으로써 다루겠다.

 

즉, 무->무자각성->자각성의 순서로 오른다고 편의상 생각해보되,

무는 자각되지 않는 대상이므로 중괄호 바깥으로 놓고

오르는 순서에 따라, 깊이에 따라 무를 무자각성 좌측에 놓겠다는 소리.

 

그리고 본질-비본질 논의 중 편의에 따라 본질적인 걸 좌측 극단에 놓겠다 하였으니, 여기서도 일맥상통.

 

 

 

 

 

 

A-2(-17)

 

 

 

정리하면,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무자각은 자각이 조금이라도 가미된 <자각된 무자각>을 말하는 거야.

왜? 무자각에는 자각에 연관하여 성질 비교를 할 수 있어서, 성질이 부여될 수 있었고,

애초에 우리는 일상에서 완벽하게 무자각하다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또, 우리의 일상에서 완벽한 무자각으로 파고드는게 굳이 안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완벽한 무자각>이라며 <무자각>이라고 부르던 논의 A-2에서의 <무자각>은

<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고 일상적 논의를 위해 잠깐 밀어둘 것.

 

그래서 이제 무가 좌측 극단 바깥에 딱 붙어서 함축된 (무-)<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거라는 소리였어.

 

 

 

 

 

 

 

A-2(-18)

 

 

단, 맥락 구분 와중에 <무자각적 무자각성>이라는 애가 있었잖아?

얘를 <무>처럼 취급할 거임.

이게 뭔 소리냐하면, <무>라고 내가 쓸 수 있잖아? 완벽한 무자각을 <무>라고 뒀지만

완벽한 무자각을 <무>라고 쓸 수 있듯이, 얘도 어떤 자각의 형태로 논해볼 수 있긴 한 거야.

 

그러니까 맥락 구분 논의상 <100퍼의 무자각~0퍼의 무자각> 이었으므로 100퍼의 무자각을

<무자각적 무자각성>이라고 일단 두긴 둘 거라는 뜻.

100퍼의 무자각 또한 자각이 가능하다는 정말 엉뚱한 가정 하에서.

왜냐면 말이야 이렇게 말해볼 수 있긴 하기 때문에.

 

그래서

(진짜)무-<(가짜 무)무자각적 무자각성-자각적 무자각성-무자각적 자각성-자각적 자각성> 이렇게 되는 거임. ㅇㅋ?

 

개어렵네.

이거 이해한 사람 있긴함?? 이해한개붕이있으면 사탕주고싶네

 

 

 

 

 

 

A-2(-19)

 

 

이건 다 갈아엎고 난 뒤의 예시인데, 그나마 이해하기 쉬울법해서

폐기한 것들 중에 얘만 떼가지고 논의 A-2 마지막에 붙여놓을게.

 

───────────────

 

머리가 정말 탁월한 개붕이라면 혹은 철학을 두루두루 공부한 개붕이라면

말로만 해도 어떤 감이 슬슬 잡혔겠지만, 나 같은 정상적인 개붕이들을 위하여 천천히 설명해볼게.

 

지금 정신 차려봐. 글 읽고 있지? 글을 읽던 시야각을 인지한 채로

보고 있는 시야각에 포함되던 앞의 주변들을 자세하게 관찰해봐. 하면은

이게 인터넷에다가 글 쓴거니까 인터넷을 보여주는 화면 바깥의 것들을 이제 볼 수 있겠지?

 

 

그림 모니터.png

 

 

* 동그란 게 본인의 머리, 양쪽으로 뻗어난 게 시야각, 빨간 테두리가 화면을 주목하고 있던 곳.

 

그러니까 그림으로 보면, 주목하거나 주의를 집중하고 있던 빨간데 그만 보고

그 본래 시야각을 유지한 채로 눈만 조금씩 돌려보면서 시야각 안의 것들을 관찰해보란 소리야.

 

 

나는 세세하게 책상 여섯개, 쓰레기통 하나, 의자 네 개, 도서관이라서 막 이제 보이기 시작하네.

창문이 옆으로 높고, 위로 좁고, 블라인드가 쳐져있고,

빛이 들지 않는 곳의 기둥은 특히나 칙칙한 색을 띄고...

 

 

근데 다시 정신 차린 상태잖아? 관찰할 수 있잖아? 지금.

다시 화면의 글로 눈 돌아와봐. 세밀한 관찰 그만하고 원래 글 보던 시야각 맞춰봐.

다시 그림처럼 글을 읽기 위해 눈이 화면으로 돌아와도,  화면 바깥의 것들이 이제는 같이 구분되지?

 

왜냐면 시야각 안에 화면을 보든, 안 보든 이미 포함되어 있었던 대상들이었잖아.

화면 전체, FPS 프로게이머처럼 코대고 보는 게 아니라면은.

 

근데 정신 차리기 전에 오늘의 저거, 분명히 화면으로 글 읽을 때도 보였을 텐데,

저거 자각하긴 했어? 코 대던 거 아니라면 분명히 볼 수는 있었겠지.

그리고 코 대고 보더라도, 인터넷 주소창이라던가, 툴바라던가, 이런 거 다 자각했어?

화면 전반이 시야 안에 있긴 했을 터잖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 -> 이것 (자각)

이것 플러스 저것(무자각) -> 저것 (자각) 이라 했잖아.

 

만약에 화면 바깥의 정신 차리기 전, 사실 <이것 플러스 저것>이라는 것조차도 무자각에서는 없는 상태인 거야.

우리가 자각했을 때, 이것 혹은 저것으로 무자각이었던 걸 해석했기 때문에,

아, 이것, 그리고 저것이라는 게 잠재해있구나, 거꾸로 "추론" 해볼 수 있는 거야.

 

왜 <이것 플러스 저것> 이라는 것조차 없냐고 말했냐면,

난 무자각했을 때, 의자가 없었거든. 의자가 있는 줄도 몰랐어.

 

근데도 엄밀하게는 없다고 표현해서도 안 돼. 왜?

나는 무자각했을 때, 의자가 없다는 것조차 몰랐으니까.

 

다시 얘기해서,

<그 무자각을 자각해봤을 때> 자각할 수 있는 구분이 잠재한 상태가 무자각이기 때문에.

다시 쉽게 얘기해서,

무자각은 자각으로만 파악될 수 있으므로.

무자각을 자각하고자 하여 자각하고 나면 더이상 무자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자각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얘기하는 건 피할 거야.

 

 

그래서 중괄호가 진짜 무자각성.

<무자각성-자각성>은 무자각성 자각된 무자각성으로

진짜 무자각성이라고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것.

 

무자각(성)에 대한 기본 이해인데 개어렵고

나중 논의에서 간접적으로 아하 이래서 이런거군 하면서 다 밝혀지니까 이 논의

어려우면 그냥 버려버리고 넘어가면 됨.

 

단, 이것만 알면 되는데

중괄호가 진짜 무자각성이라 하였으므로,

<무자각성-자각성> <현실성-비현실성> <일상성-비일상성> 모두

진짜 무자각성이 바탕이 되되,

이건 암묵적으로 지우고 중괄호 내에서 자각된 얘기를 할 거라는 점.

이게 핵심

 

 

 

 

 

 

A-2(-20)

 

 

위에 읽었니? 여튼 별로 안남았다.

 

여담으로 생각하기 편리하라고 벤 다이어그램으로 뒀지만,

여러 물감을 풀어놓은 물처럼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한데, 이건 여담임.

 

 

 Dripping Watercolor into Water 물에 물감 떨어뜨리기 | Skylynn 스카이린 - YouTube

 

* 사실은 이런 느낌?

 

 

 

 

 

 

 

A-2(-21)

 

 

이거 논의 A-2에서 제일 중요한데 들어봐.

 

<무>라는 것. 논의의 편리를 위하여 잠깐 밀어둔 거지.

아예 버려버린 건 아니고, 잠재한 형태로 내 <자각된 무자각> 논의 속에 잠들어있고

거기에 나중에 <무>에 대한 파트가 나오긴 한다.

 

그러므로,

<무>는 숨죽이고 있으므로

내가 쓴 이 글들을 절대 맹신하지 말 것. 나조차도 절대 맹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의존하지 않는다.

 

어딘가 틀리면 바로 보수하려 할 테고 대처 안 되면 폐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실제로 엄청나게 많이 버리고 엄청나게 많이 고쳤다.)

 

그러므로

절대 맹신하지 말 것. 절대 맹신하지 말 것. 절대 맹신하지 말 것. 
대전제 자체가 가정되었다.

 

*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철학의 핵심 중 최소 세 손가락 안에 꼽는 핵심이므로 명심할 것.

 

 

<A-2, 끝>

 

 

1. <무자각성-자각성>이 먼저냐? <자연성-부자연성>이 먼저냐? 둘 다 가능해 보인다.
2. 근데 애초에 완벽한 무자각에선 그런 가능성의 출현조차 없었다.
따라서 사실 둘 다 무자각에서 가능성으로 잠재해있고 가능성이 파생하는 식이겠다.
3. 예컨대 <연속스펙트럼>의 색과 <벤 다이어그램>의 집합을 볼 때 집합과 여집합의 관계로 추리할 수 있다.
4. 또, <칠판의 비유>로도 추리해볼 수 있다.
5. 가만히 살피면, 굳이 여집합의 자각 없이 집합 하나의 자각만으로도
무자각은 여집합의 가능성을 잠재한다.
6. 즉, 어떠한 자각 방식조차 무자각을 함의하므로 무자각은 모든 (자각)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7. 그 자각 잠재를 바탕으로 파생한 자각을 통하여 그 무자각의 본질을 거꾸로 추론해보는 일이겠다.
8. 그러나 그렇게 자각을 통하여 파악됨에도 자각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무자각은 표현 딜레마에 걸린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정확할 아이러니이다.)
9. 논의 A-2-2와 논의 A-2-5에 따라, 그리고 집합-여집합 설정의 유연성에 따라 어떻게 보더라도
무자각은 결국에 모든 (자각) 가능성을 잠재하는 바탕이 된다.
10. 진짜 본질이 있다고 하였을 때, 이것을 비본질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그저 비본질이라고 말해짐일 뿐 진짜 본질을 부정할 수 없겠다.
따라서 본질 자체가 부정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11. 그래서 진짜 본질-비본질 구분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가능성을 잠재하는 (생략) <무자각한 현재>가 본질이다.
12. 그러나 그것은 가정일 뿐, 무자각 특징에 따라 동시에 본질이 아닌 게 아니냐?
그리하여 가정에 기반한다면 쓸모없는 논의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강한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13. 첫 번째로 생각해보자. 애초에 우리는 완벽한 무자각을 체험할 수 없다.
14. 두 번째로 생각해보자. 무자각하더라도 일상을 잘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완벽한 무자각의 체험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15. 논의 A-2-13과 논의 A-2-14에 따라 일상 해명을 위하여 회의주의로 빠질 수 있는 점을 수용하면서
그 <완벽한 무자각>을 치워놓고, <자각된 무자각> 위주로 다루겠다. 일상을 위한 철학을 전개하겠다.
16. <완벽한 무자각>은 <무>, <순수 무자각>으로 부를 것이며,
<자각된 무자각>은 <무자각>, <무자각성>으로 부를 것이다.

또 자각된 무자각과 논의 A-1-11에 따라

맥락상 <무>가 <무자각성-자각성> 좌측 극단 바깥에 잠재한다 치부하자.
17. (무-)<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겠다.
18. 단, <무자각적 무자각성>은,
(진짜)무-<(가짜 무)무자각적 무자각성-자각적 무자각성-무자각적 자각성-자각적 자각성>의
관계에 있음을 염두에 두자.
19. 자각하는 화면과 무자각한 시야각 내 화면 바깥에 대한 나의 무자각-자각을 살피더라도
논의의 전반은 추리되므로 참고하자.
20. 여담으로 무자각과 자각에는 집합 비유보다는 물감을 풀어놓은 물이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
21. 어쨌든 <무>는 일상 논의를 위해 치워둔 것일뿐
논의 속에 잠재하고 있으므로 대전제부터 가정인 이 철학을 절대적으로 맹신하지 말라.

 

 

 

 

 

 

일상성 맥락과 기타 맥락에 대하여

 

A-3(-1)

 

 

 

딱 다음 파트에서 필요한 거만 언급하고 넘어갈게.

<자각된 무자각>에서 하는 이야기야. 편하게 그냥 줄줄 읽으면 됨. <무>를 다루는 게 아니니까.

논의 A-2 넘긴 개붕아 <무>가 뭐냐고?? 읽고오는게좋을지도 근데읽다보면 간접적으로 이해될거임 ㄱㅊ

 

코끼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뿌

 

여튼 딱 다음 파트에서 필요한 거만 언급하고 넘어갈게.

<일상성-비일상성>과 <현실성-비현실성>의 차이.

코끼리 투어에서 내가 빈틈 있게 써놨거든?

 

가령 생각해봐봐.

아무리 내가 와! 코끼리! 하면서 비현실적으로 느낀대도 저 눈 앞에 있는 코끼리가

정말로 <비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아니 자각하면 비현실에 대응한다매. 근데 아니네?

뭔가 글쓰는 내가 잘못 생각했지?

그 엄밀한 대응관계에 따르면 자각했을 때엔 비현실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언리얼리스틱하게 자각된대도 현실인 건 다들 알고 있잖아.

아무리 코끼리 처음봐서 들뜨더라도. 그렇지?

근데 왜 자각하면 비현실성에 대응한다고 내가 적어놓았을까?

 

 

 

 

 

A-3(-2)

 

 

또, 콩 콩 콩 소리 나더라도 나중에도 끝없이 자각되고 개빡치는 경우 있을 수 있지?

들을 때마다 자각돼서 개빡치는 층간소음 같은 경우 말이야.

분명 반복되고 계속 겪으면 층간소음이 일상인 건데도 왜 계속 자각되냐구.

 

왜 자각하면 비일상성에 대응한다고 내가 적어놓은 걸까?

층간소음은 자각되는 일상인데??


 

그렇다면 왜 하자 있는 것들끼리 묶어서 <자연성-부자연성>이라고 해놓고

완벽한 대응관계처럼 설명을 이어나갔을까?

그럼 부실한 논리 전개잖아. 그럼 위에 써놓은거 몽땅 폐기해야겠네?

 

개붕이들 시간 낭비 시킨거네???

 

 

 

 

 

A-3(-3)

 

 

사실 그렇게 극단적으로 폐기해야 될 건 아니고, 뭐가 문제냐면

그 저 대응 논할 때 포함 안 시켜서 그래.

가령 코끼리 투어, 층간소음 사례 이런거 맥락의 애매성 같은거 얘기하기 전에 했던 논의들이잖아.

충격이겠지만 애초에 맥락의 애매성뿐만이 아니고 맥락에 대한 논의도 아직 제대로 안했어.

여기 맛보기야.

분량이 이따군데 이것도 엄청 줄여쓴건데다가 아직도 한참~한참한참 멀었음.

애초에 덜 채운 부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소리.

 

아무튼 그 전에 했던 논의들은 그냥 개붕이들 받아들이기 편하게 적어놓은 거임.

그래서 빈틈 숭숭 난 거.

또, 위에 논할 것들 얘기하더라도 엄밀하게 하는 논의가 아니라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건 유의미한 문답 주면

강한 스포를 말하게 하는 날카로운 개붕이가 아닌 한에서 세밀하게 답해주고 채워나갈게.

 

음... 그림상 제시했던 <2>에서 저 현실 논의들은 보강될 거야.

 

 

 

 

 

A-3(-4)

 

 

 

그렇지만 다룰 건 다뤄야겠지?

가볍게 다룰 수 있으니까 <2>에 대한 맛보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줘.

여기서 다룰 건 <일상성-비일상성>과 <현실성-비현실성> 간의 차이 정말 맛보기.

일단 구상을 잡는 러프 스케치.

나중에 윤곽 따라 그림 그리면서 살 붙이려는 거임. 이런 관점에서 논의 A를 한 번 봐보자.

 

여기 진짜 그냥 휘갈긴거니까 너무 진지하게 보지마셈 대충대충 ㄱㄱ

 

 

<일상성-비일상성>과 <현실성-비현실성> 간의 대응 차이는,

<느낌 판단>과 <생각 판단> 간의 괴리가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야.

쉽게 이야기하면 <직관>하고 <논리>? 하고의 차이임.

 

* 진짜 개대충 쓰는거니까 대충읽으셈

 

 

<느껴서 직관적으로 생각>, <머리 굴려서 생각>? 대충 뭔 소린지 알겠지?

예컨대 자각했을 때, <비일상>처럼 느끼고. 머리를 다시 굴려서도 <비일상> 맞네 보통 할 수 있거든?

근데 자각했을 때, <비현실>처럼 느끼고, 머리를 다시 굴려서 <비현실>은 아니고 <현실>이긴 하네.

이게 더 잦다는 소리야.

 

이게 왜그러냐면은

일상하고 비일상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고,

현실하고 비현실은 순전히 개인적이라기엔 객관적으로 수긍되어야 할 영역이기 때문임.

 

 

 

 

신라면소컵.jpg스테이크 했다 - 개념글 모음

 

 

 

더 쉽게 풀면

나한테 일상적인 게, 가령 집에서 컵라면 끓여먹고 하는 게

아, 이건 나한테 비일상적이야. 하는 개붕이 있다면은 수긍할 수 있잖아? 오지랖 부리지 않는한?

쟤는 저게 일상적이지 않나 보구나, 게시물 검색해보니까 아, 스테이크 구워먹고 그러네,

집에서 평소에 스테이크 썰어먹나 보구나. 그렇구나 할 수 있지?

 

근데 나한테 비현실적인 게, 가령 등으로 걷는 삼족보행 코끼리는 현실에 절대 없다, 하는 게

아, 이건 나한테 현실적이야. 하는 개붕이 있다면은

계도 가능해보이는 그런 영역이라는 거. 왜냐면 객관적인 이해가 바탕에 있기 때문에.

오지랖 부릴만하다는 거임.

 

아무리 일상에서 스테이크 써는 개붕이라도 나 스테이크는 0.001초만에 만들 수 있다.

강력하고 진중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면 그 스테이크 써는 일상에 못마땅했던 배고픈 개붕이들이

이때다! 하고

흠씬 두들겨팰텐데 린치당할만하는거임.

 

 

뚝딱뚣갇.jpg뚝딱뚝딱.jpg * 뚝딱뚝딱

 

 

 

이거는 가볍게 다루면 <사회성-반사회성>, <상식성-비상식성> 이런 데에서도 궤가 유사해.

 

즉, 좁게는 사회적 다수, 넓게는 인간 전체의 이해가 바탕된 <보편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거.

이게 핵심임.

<일상성-비일상성> 에는 <보편적 판단>이 개입될 이유가 별로 없고. 맞지?

 

 

 

 

 

 

A-3(-5)

 

 

 

내가 머리 아픈 거 하나만 넣어볼게

<보편적 판단>이 개입된다고 했잖아. 즉, <현실성-비현실성>, <사회성-반사회성>, <상식성-비상식성> 같은 애들은

판단 과정 중 <보편적 판단>이 개입된다.

 

이거 그림에서 제시되는 B, 응용 파트에서 다루는 내용인데,

그냥 맛보기로 먹어 봐봐. 정말 가벼운 분석법이야. 어차피 재료들은 다 논의에서 나오기도 했고.

 

<보편적 판단>이라고 했잖아?

이건 <보편적 판단(성)>, 생략된 거라고 볼 수 있어. 말했었지? 생략된다고.

 

이건?

<판단적 판단-보편적 판단-판단적 보편-보편적 보편>

<판단적 판단성-보편적 판단성-판단적 보편성-보편적 보편성> 이렇게 늘릴 수 있고,

두 번째에 위치함을 알 수 있지?

 

극단을 살펴보자

언어 사용이 바를지는 좀 모르겠지만 그냥 엄밀하게 안 하고 줄줄 풀 때,

좌측의 판단적 판단성은 진짜 완전 주관적인 판단 100%라는 뜻이고

우측의 보편적 보편성은 진짜 완전 객관적인 보편 100%라는 뜻이잖아?

 

대충 좌측에 가까운 보편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말은 주관적인 판단 75% 객관적인 보편 25% 이런 식으로

주관적인 판단이 더 쎄게 개입됐다는 말이야.

 

물론 애매성이 있어서 보편적 판단 51% 객관적 보편 49% 아니면, 판단 실패 가능성에 따라서

거꾸로 판단적 보편일 수도 있겠으므로, 아무튼 간에

뭐가 됐든 누가 이건 현실적이야! 라고 말하는 건 보편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이긴 하잖아?

판단하는 거잖아.

 

그럼 아무튼 주관적이란 소리임. 분석 과정이 생략된 게 있긴 한데

어쨌든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볼 만하다, 싶어서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판단 대결은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에서 비교해야 한다는 점. 어디까지나 '판단'이기 때문에.

 

<판단적 보편>의 제시로써 객관적으로 마련된 근거를 제시해서 객관성에서 비교하도록 유도를 하던가.

보편 대결 하던가.

너무 나갔네. 다시 각설할게.

 

 

 

 

 

A-3(-6)

 

 

 

근데 <생각 판단>에서 괴리가 주로 일어나지, <느낌 판단>은 대체로 대응 관계와 비슷하거든?

그러니까 자각하면 느낌상 <비일상>적이야.

느낌으로 <자각성->비일상성> 대응 관계에 따라서 대응 잘 된다고 볼 수 있지?

또, 자각하면 느낌상 <비현실>적이야.

또, 느낌으로 <자각성->비일상성> 대응 관계에 따라서 대응 잘 된다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괜히 <느낌 판단> 과정 중에 남에 대한 내가 느끼는 나의 <비일상>을, 대응이 유사한

<비현실>, <반사회>, <비상식>따위로 스스로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이거 표현 주의하라는 소리.

 

어우, 비현실적인 소리좀 그만해라

반사회적인 놈이네

상식 없는 놈이네

← 진짜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알고보니 나한테 비일상적인 것일 뿐인걸 대응되는 느낌 유사성에 따라 확대해석 할수있다는 뜻.

 

 

너가 느끼는 남의 비일상이자 남에게는 일상인 것을 남에게도 보편적이어야 할 비현실로,

남에게도 보편적이어야 할 반사회로, 남에게도 보편적이어야 할 비상식으로 매도하지 말 것.

그 사람에겐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에서 당연히 일상적일 수 있다.

 

 

 

롤 티어 순서 정리해봤어요 : 네이버 블로그 

 

 

ex) 개붕이 1 : 골드 가기 너무 어려워 골드애들 너무잘해

     개붕이 2 : 현실적으로 골드개못하는데

 

ex) 개붕이 1 : 가끔 밖에서 생쥐 보면 귀엽긴 해

     개붕이 2 : 개징그러운데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ex) 개붕이 1 : 역시 퇴근하고 마시는 술 한 잔이 최고야

    개붕이 2 : 사회적으로 좀 보기 안좋더라 나는

 

 

여기부터는(현실, 사회, 상식) 반드시 어떤 근거라고 불릴 만한 것을 가져와야 한다.

왜? 저런 것들은 판단이 아니라 어떠한 <보편>을 전제하기 때문에

 

근데 근거 없으면? <보편>을 위해 내놓아야할 나만의 <보편적 판단>은 판단 실패 가능성에 따라

<판단적 판단> 일 수 있는데다가,

특히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에서 연계되어 오르는 자각은, <보편적 판단>의 개입이 불필요한

주관에서도 만족되기 때문에

맥락상 대응되는 자각성이 유사하다고 보편이 필요한 <비현실, 비상식, 반사회>

<느낌 판단>만 하고 <생각 판단> 잘못해서 얘네랑 확대해석해서 묶어버리면

맥락파악에 실패한 경우라 맥락파악을 못하는 이상한 개붕이이다.

 

근데 <생각 판단>의 잘못이 근거가 없는 점에 기인해서 생각 판단 못했다고

지금 나를 무지한 개붕이로 전락시키려는 건가? 어림없지 하면서 근거를 가져와서 자기변호를 시작할텐데

애초에 자기의 비일상성을 잘못 판단한것부터 어긋난거라 초장부터 반사회적인것을 자기만 모름.

자각해라 몇 개붕이.

 

어쨌든 현실, 사회, 상식 얘기하는 맥락에서는

최소한 <(강한) 보편적 판단>하되 <판단적 판단>이 아니도록 판단 잘하라는뜻.

 

어떤 맥락에서든 무슨 주장을 얘기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면

최소한 엄밀하게 아예 주관 더욱 줄이고자 보편적일 근거 대면 그나마 바람직하다.

 

* 근데 애초에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에서의 이야기를 맥락파악 안하고

근데 현실적으로... 근데 상식적으로... 근데 사회적으로... 라며 끌고 오는 것 자체가 자기 절제가 모자란 거긴 함.

 

 

그냥 가볍게 하고 넘어가는 이야기인데, 뺄 걸 그랬나.

진짜 핵심줄기 타서 얘기하는 파트가 아니고 딴길로 샌거임 이거

 

난잡해보일 수 있는데 정리하면,

그냥 대화에서 맥락 파악부터 잘해라.

그중 <일상> → <현실,사회,상식> 맥락 파악의 실패는 주관적 느낌 확대해석에서 비롯된 것

만약 실패하더라도, 아니면 그런 주제를 정말 다루고 싶다면,

근거를 못대더라도 최대한 보편을 고려하며 얘기해야. 근데 맥락 파악부터하고

참아도 괜찮으면 자기 절제하라는 소리. * 너무 압축했는데 나중에 풀어질거임

 

 

 

 

 

 

A-3(-7)

 

 

 

 

어쨌든 정리하고 <2>에서 고쳐 나갈게.

 

① 애초에 초반에 논의됐기도 했고 아직 많은 논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관계가 잘 안 맞는 사례가 있긴 한데, 대응관계 글 더 쓰면서 구체적으로 고칠 거임.

 

② <일상성-비일상성>, <현실성-비현실성>으로 묶이는 <자연성-부자연성>으로 얘기되는 이 뭉텅이도

논의가 추가되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데 지금은 논의의 편리를 위해 먼저 가정한 것.

솔직히 차이가 있으면 같은 맥락으로 묶어버리면 안 되 잖아.

차이가 없는 경우를 정해주고 거기에서만 쓸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제시해줄 거임.

 

③ 남에게 일상일 수 있는 영역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판단으로 비현실, 반사회, 비상식으로 속으로 치부하더라도

남을 자신의 느낌만으로 객관적으로 규제하려해선 안 되고, 생각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상대방과 나와의 건전한 논의를 위하여 근거의 제시가 전제 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의 <일상성-비일상성> 맥락만 생각할 줄아는 상대방에게 무자각한 이기적 개붕이

 

③은 그냥 자투리 내용이고, ①, ②는 예고야. A에서 이런 의문이 남았으니, B에서 저런 걸 다룰 거라구,

떡밥 뿌려놓는거임.

사실 이걸 나중에 다뤄야 전반적인 전개 자체는 자연스러울 것 같긴 한데,

난이도가 심히 올라가니까 엉성하게 스케치부터 하고 차근차근 그려나가는 걸로.

 

 

 

 

 

A-3(-8)

 

 

 

이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우리의 판단은, (아직 많은 걸 언급하진 않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판단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나서야

<현실성-비현실성>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말. 또, 그래야

<자연성-부자연성>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겠다는 말.

일단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과 차이가 지금은 좀 있어 보이니까, 차이 없을 전제를 정해주겠다는 말.

대응관계 효과적으로 대응 잘 하도록.

여태까지 그냥 스케치처럼 대충 가정하고 막 휘갈긴거엿음 ㅎㅎ

 

여튼간에 처음쓴 거보다 훨씬 훨씬 쉬워졌다.

 

 

 

 

A-3(-9)

 

 

근데 이렇게 결론내버리면 딴 길로 새서 딴 길에서 멈춘 느낌이지?

어차피 <2>에서 한다는 말을 왤케 질질 끄냐? 그냥

아 아직 안 다룬 게 있어서 그거는 <2>에서 할게. 이러고 끝내면 되는데 빙빙 돌았잔어, 괜히.

 

그래서 위에걸 바탕으로 중요한 거 하나만 끄집어내고 갈게.

 

내가 논의 A-2-15에서 일상을 위한 철학을 한다고 했잖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엄밀하게 안 쓰고 대충 쓰면 세계가 진짜 본질이든 아니든 간에 <자각주체>이다.

 

그러니까 일상 속 너나 나는 각자 자각하면서 살아가는 녀석이라는 뜻이지?

 

 

 

 

 

A-3(-10)

 

 

 

이 말은?

그, 본질적인 게 생각이냐, 의자냐 따지기 전에?

자각주체를 위한, 일상의 철학이므로?

 

자각 → 자각이 중요하므로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이 중요시된다.

주체 → 주체, 주관이 중요하므로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이 중요시된다.

근데 현실은 몰라도 일상은 주관적인 거니까 <무자각성-자각성>이 우선해도 상관없지?

그래서 (사실 머리쓰기 귀찮아서) 뭐가 먼저든 간에

<무자각성-자각성>을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보다 우선적으로 하고 논의전개할거. 이게편함.

 

따라서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도 <자연성-부자연성>의 이야기에 따라서

<일상성-비일상성> 엮이니까 연결고리야 있긴 한데, 중시되지는 않을 거임.

중시되는 건 그림상 A 파트부터.

 

아니, 이럴거면 뭐하러 논의를 A-3-10까지 썼냐

논의 A-3-9, 논의 A-3-10 두 개만 써도 되잖아.

에헴. 암튼 그냥 이러고 끝낼래.

 

 

 

 

 

A-3(-11)

 

 

하나 덧붙일 게 생각나서 붙이는데 <현실성-비현실성> 간과한다는 소리 아니다??

과학자들 빅뱅 파고 이런 거 쓸모 없다는 소리 아니고,

우주가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소리도 당연히 아니고

 

핵심은 이제 <일상의 철학>을 다루기 때문에

<일상의 철학> 대상 삼은 <일상을 살아가는 자각주체>를 효과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위에 제시한 맥락 두 가지를 특히 <중요시> 한다는 거야.

그래서 이것을 중심으로 다루겠다는거지, 나 그래서 생각이 먼저인 게 무조건 맞다

나 그래서 의자가 먼저인 게 무조건 맞다, 이런말 안했음.

<일상의 철학>에서는 뭐가 먼저인 건 딱히 안다루고 암튼 여기서는 이게 중요하다. 이렇게 선 딱 그은겨

 

만약에 자기가 물리학자라 치면은 그냥

이 일상의 <철학>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평소에 일상적으로 하듯이

연구 계속하면 됨 ㅇㅋ? 어차피 나중에 얘기 다할거

 

그리고 내 철학이 <일상의 철학>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 일상 얘기 다 했다 이제 다른 것도  얘기해보자 하면서

<일상의 철학> 껍데기 벗겨버리고 더 넓게 나가는 구간 있는데,

거기에 어? 왜 <일상성-비일상성> 중시 안하고 <현실성-비현실성> 얘기하냐?

이거 아니란 소리.

일상에서는 자각 주체가 중요하지

일상 치우면 자각 주체는 더이상 중점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자각된 무자각>에서는.

 

인간 없는 세계가 있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로써 인간 없는 세계를 논해보겠다면

그 논의에서 인간이 대체 뭐가 중요하겠냐는 거랑 비슷해.

 

 

그런 맥락으로 나나 너가 없으면 우주가 없다, 이런 거 낙서로는 가능하겠지만?

본질은 나나 너일 뿐, 다른 건 없다, 이런 거 가능하겠지만?

언제나 가능성으로만 두고 <자각된 무자각>에서 그럴싸한 얘기만 할거야.

대충 당연한 소리만 하겠다는 얘기. 그러면서 논의 A-2-21에 따라서 너무 맹신하진 말고.

 

아무튼 이 말은? <일상>은 적어도 무자각과 자각에서 파생한다.

그래서 <일상의 철학>을 벗겨내고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단 뜻은?

내 철학은 <무자각성-자각성>의 철학이라고 말해지는 게 더 적합할 순 있다는 뜻.

쉽게 풀면 결국에는 무자각성, 자각성이 내 철학의 중심이라고 보는 게 맞다.

보충 끝.

 

 

<A-3, 끝>

 

 

1.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에 <자연성-부자연성>이 대응하는가?

2.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자.

3. <코끼리 투어 사례>에서 자각과 비현실성과의 대응은 잘못되었다.

이는 <맥락의 애매성> 이전에 논의되었기 때문에 첨가되지 않아 생긴 문제이다.

2에서 첨가하겠다.

4. <일상성-비일상성>, <현실성-비현실성>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전자는 주관적 성질이라 관계 없으나 후자에 <보편적 판단>이 개입된다.

그래서 <느낌 판단><생각 판단> 간에 괴리가 발생한다.

(물론 관용적인 과장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5. <보편적 판단><판단적 판단-보편적 판단-판단적 보편-보편적 보편>으로

맥락 구분 중의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편적 판단><본질>인 판단의 성질에 의하여

객관적 성질이 함유되더라도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6. 그러니까 나의 일상이라면

<느낌 판단>상의 <비일상><비현실, 반사회, 비상식> 등으로 착각하기 주의할 것.

그리고 <비일상>이라 치부되는 남의 일상이라면

자기의 <보편적 판단>으로 남에게 <보편>이라고 가르치려 들지 말 것.

최소한 <판단적 보편><근거>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오지랖 부려라.

7. 정리하면,

논의 첨가하여 사실은 부실한 맥락 대응관계 보강하겠다.

 <자연성-부자연성> 개념화 내의 <비일상>, <비현실>의 괴리 해결하겠다.

⓷ 보편적 판단 요구되는 곳에 근거 없이 오지랖부터 부리면 이기적인 사람.

8. , 맥락은 애매하기 때문에, 맥락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논의가 전제되어야 <무자각성-자각성>, <현실성-비현실성>

대응 관계가 효과적으로 정리될 것.

2에서 하겠다.

9.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각주체>이다.

10. 자각주체를 위한 철학이므로 <자각성-무자각성>, <일상성-비일상성>의 맥락이 중시되되,

<자각성-무자각성>의 맥락을 우선으로 두겠다.

11. 단, 말 그대로 중시이므로 자각주체를 위하지 않는 철학도 전개하기 때문에  <현실성-비현실성>의 맥락을 간과함이 아니다.

넓게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 철학으로 치부하자.

 

 

 

 

 

 

 

 

철학에 관하여

 

A-4(-1)

 

 

취향, 컨셉, 가치관, 철학

 

철학은 무자각을 자각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자각적으로 무자각할 때 무자각적으로 자각하는 학문이면서,

철학은 무자각적으로 자각할 때 자각적으로 자각하는 학문이다.

 

즉, 철학은 자기 맥락의 자각학이다.

 

 

 

A-4(-2)
 

 

내 철학을 바탕으로 <철학>이라는 말을 해석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가정된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으로써 어떤 대상에 접근해봄이 철학이라고 생각.

기존의 무자각적이었던 걸 자각해서 끌어올려놓고 대상을 자각에서 논해보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대상화>인 거지.

 

예술철학

과학철학

정치철학

 

전부 예술에서 무자각했던, 과학에서 무자각했던, 정치에서 무자각했던

예술에서의 무자각, 과학에서의 무자각, 정치에서의 무자각을 자각의 수면 위로 올려놓고

대상화시켜서 탐구해보는 거?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가정된 자기 맥락을 다루기에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부터 파생하며

가장 일상적이기에 어떠한 일상적인 자각도 철학이 될 수 있으며,

철학한다고 말하지만, 철학에 대한 규정이 어려움은 그 자각함이

무자각성을 포함하여 무자각적으로 자각을 하기 때문.

자각하고나면 자각만 보이고 무자각은 안보이기 때문에.

 

형이상학, 논리학, 인식론, 미학, 윤리학, 존재론 이런 철학 클래식들은

원체 무자각이기 때문에 철학 바깥으로 못나가는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철학은 최고입니다. 철학 최고

 

 

 

 

A-4(-3)

 

그래서 나의 철학이 뭘 이야기하고 싶어하냐?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을,

그러니까 무자각적으로 활용하는 우리의 일상 자체를

자각적으로 끌어올린 뒤에 대상화하여 자각된 국면에서 논해보겠다는 것.

 

그래서 좁게는 일상의 철학이며, (나의 용어로) 넓게는 자기 맥락의 철학이며, 무자각성의 철학이야.

대충 셋 중에 하나임.

 

그냥 어따 끼워넣을 데가 없어서 요따가 붙여넣고 <2>로 넘어갈게.

 

 

 

 

A-4(-4)

 

 

여담으로 메타인식을 세 번 하니까 깨달을 수 있었어.

여기는 그냥 그때 깨달은 당시의 감격이 생생하게 아른거려서 쓰는 파트야.

오, 내 철학, 이게 다 무자각의 철학이었구나... 하면서 뜬눈으로 다음날까지 잠못잤음

난해하던 내철학이 심하게 쉬워지더라고

이렇게 쉬워져도될까? 십년 고민했는데 이렇게 난이도낮아지면 의심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그러니까 나의 생각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깨달을 수 있었는데,

글 극초반부에 언급했던 무늬오징어가 메타인지 세 번째에서 됐음.

어떻게 깨달을수 있었는지 계기를 <2>에서 논의랑 자연스럽게 넣어보도록 할게.

 

 * 불쌍한 오징어들을 보여줘서 미안하지만 저런 느낌이었어

 

 

처음에는 <무자각성-자각성>의 자기 맥락의 자각과 거리 먼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각하기

ex) 컴퓨터란 무엇인가? [인식]

… 1단계 철학,

 

<무자각성-자각성>의 자기 맥락에 의함을 모른 채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각하고 자각이 수그러드는

내면의 작동을 자각하기 [메타인식 한번]

ex) 컴퓨터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 2단계 철학,

 

내면의 작동에 자각이 아닌 무자각도 있음을 깨닫고 간접적으로 대상화하기 [메타인식 두번]

ex) 컴퓨터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음이란 것을 포함하여 그것을 <이것>이라 했을 때, <이것>은 무엇인가?

 2.5단계 철학

(특징 : 무자각을 다루지만 무자각이 무엇인지 성질만을 다루는탓에

글이 논의 A-2 보다도 더욱 역겹게 어려워짐, 여기 철학하는 사람들은 뭔가 강하게 걸린 느낌일거),

 

내면의 작동을 무자각하고 자각하는 나를 자각함으로써

<무자각성-자각성>의 자기 맥락을 발견하고 2단계 철학에서 만들어놓은 것들을 꼬치처럼 뚫어내기

[메타인식 세번]

ex) <이것>이란 무자각이겠는데, <무자각>이란 무엇인가?

3단계 철학

 

내가 3단계. 높다거나 우월하다는게 아니고, 넓은거임. 다루는 범위가 넓을 수 있는거.

넓이에 따른 단계매김이야. 깊이나 높이 아님.

내 철학이 어떤 학술적이고 엄밀한 면이나 수준에서 최약체임.

단, 다 포용할 수 있는 점에서 넓이가 가장 넓다.

 

 

 

아무튼

2.5단계에서 걸리는 이유는 무자각을 파다보니까 무자각을 자각하는 게 일상이 돼서 무자각적으로 하게 되기 때문에,

이걸 자각적으로 전환하면 이게 무자각이었구나, 이게 자각이었구나 눈치까게됨.

무자각을 자각하는 무자각을 자각하게 될 때 3단계에 돌입할 수가 있게된다

그래서 애초에 무자각을 자각하는 것조차

메타적으로 일상속에서 생각하던 사람이어야만 더 넓은 철학에 진입할 수 있게됨.

 

근데 진입 직전에 극고통 받는 시기가 있는데

여담으로 아무튼 뭔가 표현이나 정돈된 철학으로 못바꾸면 <철학이 걸렸다>고 말할게.

 

 

공(불교),도(노자),살(메를로퐁티),느낌(화이트헤드), 까먹음(들뢰즈), [초기:무의식/중기:느낌/후기:무자각(과거의나)]

내가 뭐 배운다음에 아예 까먹어버리는편이라 인용을 내 수준부족으로 꺼리는편이긴 한데

아무튼 위 개념들이 가장 잘맞아떨어지는 개념들이야. 내가 발견한 2.5단계~3단계에 위치한 철학들.

 

저 철학 읽어본 사람들 저따가 자기가 아는개념 끼워넣고 내글 읽어보면 대충 말된다는거 발견할거임

특히 불교철학하고 유사한데 나무위키에 불교치고 핵심교리만 쭉 훑어도 내철학하고

굉장히 궤가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을거야.

 

 

 

 

조이오브메이킹 » [소품] 비즈 목걸이

 

각설하고 중점을 재차 비유하면 3단계에서

그 꼬치로 꽂을 지점이 여긴가? 싶은, 난잡한 구슬들을 한 목걸이로 꿰어버릴 실마리를 찾은 느낌?

2.5단계에서는 연결돼있긴할텐데 무자각에 대한 곁다리 대상이라 단어를 좋게 지시할 수가 없으니까 읽으면서

의미가 흩어질 수밖에 없음.

지금 나는 찾았으니까 구슬들 꿰서 목걸이 샘플 만드는 중이야.

구슬이 <자각돼서 나온 핵심들>, 실이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인 거구.

실이 여태 생각했던 것들로 이 사이트에다가 즉흥으로 짜는 중. 반응 괜찮으면

서강올빼미라는 철학 고인물 커뮤에도 자신감 얻고 양해 구함담에 올려보고싶어.

(철학커뮤니티 다뒤졋어... 내 철학 검사맡을만한 수준적당한데가 없어... 그냥한탄임)

 

 

 

 

 

A-4(-5)

 

 

2 123 ABC.png

 

이제 전개를 말하고 갈게.

 

<1>은 그냥 접근이자 바탕을 즉흥으로 구조 꾸려서 써본거고 
* 평소에 아이디어를 일단 던져놓은 다음에 수습하는 편. 그래서 표현이나 논리가 중구난방일 수 있는데,

숙성시키면서 나중에 찬찬히 고쳐나감.

이 글에서 한 논의 A는

수습 자체가 덜 돼서 다음 글들의 전개들과 모순되는 빈틈이 많은 곳에 있을 수 있음.

 

 

<2>는?

<1>에서 본 그 맛, 스케치로(<1>은 아예 그냥 막 휘갈긴 스케치),

그래서 무자각성(자각된 무자각성)과 자각성이 뭐냐, <2>에서 뚫어볼 거야.

그러면서 실생활에 밀접하고 파생 개념들 좀 많이 나옴.

 

솔직히 <2>까지는 글 쓰고 올리고 싶은데, 일단 당장 바빠서 <1> 까지만 올리고

한 두달뒤에 또 올릴게. 반응 안좋더라도 2까지만은 올릴 생각.

반응 괜찮으면 미친듯이 여기에 몰두할거야. 좀 반응 안좋을거같긴한데 어쨌든...

 

요즘 좀 열심히 브레인스토밍 하고 있는 구간이라 여기도 아직 완성은 덜 됐는데 그냥 막 말할거.

여기가 제일 난잡하고 정리가 안 돼서. 그러니까 생각은 많이 했는데,

연결을 어케시킬지 고민중임. 널린 주제들 알아서 주섬주섬 담아야 하니까 유의 필요함.

<2>에서 분량 엄청날 것. 아마 더 쪼개질 수도 있음.

그리고 <3>하고 떨어져있는 데가 딱히 아니라 연관도 강할 거야. 물흐르듯이 넘어갈거라는점.

 

 

다음에

<3>에서 <1>과 <2>를 바탕으로 하나의 모델을 만들 거고

<3>을 바탕으로 세 가지 응용을 하는데 그게 <A>, <B>, <C>. <세 가지 확장>이라고 부르는 파트임.

 

 

<A>는 무자각성-자각성 모형으로 세계 전체를 해석하는 형이상학적 응용이야.

<세계의 확장>

 

다른 몇 철학들 형이상학적 논의에서 사이비처럼 보이거나

온전히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는 몇 가지 철학들 몇 번 접한 적 있는데

그런, 그리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말도 안되는 듯이 보이는 생각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논리상으론 일리가 있음을 포용하면서 일상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려서 때릴 거임.

그러니까 사이비라고 취급받는 철학들 때릴 거야. 물론 완전 부정하지는 않음.

 

별개로 여긴 좀 상식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철학적인 폭탄 같은 영역이 있는데,

개붕이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고.

<B>의 논의를 위해서 <A>의 인식론적 논의에서 많이 끌어와야 되는 부분들 많기도 하고.

 

 

<B>는 모형을 잘라서 쓰는 가치론적 응용. 가장 실용적인 영역이고. (<2>랑 <B>가 굉장히 실용적인 편)

위에 <보편적 판단> 이야기한게 가장 가벼운 분석법임.

약간 집합론이나 논리학처럼 주어진 거 분석가능하고 분석가능함에 따라 새로운 발상이 나오기도해서

야채같이 싱싱한 곳임. * <갈등의 확장>

 

 

<C>는 모형을 기울이거나 원으로 만들어서 쓰는 미학적 응용, 여긴 기울기라는 개념으로 감정 해석 가능

맥락 통해서 많은 개붕이들에게 반감 주는 현대 예술이 뭐냐,

현대 예술 말고도, 일상에서도 쟤네 도대체 저딴 걸 왜 좋아할까? 짐작 가능. * <감명의 확장>

 

 

 

 

<A-4, 끝>

 

1. 철학은 무자각을 자각하는 학문이고,

우리는 자기 맥락에 무자각하므로 결국에 자기 맥락의 자각학이다.

2. 나의 철학을 바탕으로 철학을 해석하자면 무자각의 것을 대상화하여 논해보는 자각 작업의 통칭이므로

따라서 기존 철학이 가지는, (1) 대장 학문, (2) 일상언어적 용례,

(3)엄밀한 정의의 어려움, 성격 모두 설명된다.

3. 어쨌든 나의 철학은 일상의 철학, 혹은 자기 맥락의 철학, 혹은 무자각성의 철학이다.

4. 나의 철학은 소위 메타인지가 세 겹으로 가능해졌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5. 서론에서 제시한 나의 철학 갈래 보충 설명. 전개 예고.

 

-

<A, 완결>

 

 

 

-

9 황붕어.png

 

p.s. 졸논 한달남앗다 🥺🥺😭😭

* 진짜 올릴까말까 2주일동안 고민 많이했다ㅏㅏㅏ 피드백너무무서워...

최대한 개인적인 얘기 빼려고 했음. 참고로 교수님들한테 이글보여드릴지도 모름.

* 일단 저번에 글 올렸을때도 그랫지만 며칠 정도는 덧글 무서워서 안볼게. 초장문 읽어줘서 고마워!

* 질문받아욧...

 

 

 

 

48개의 댓글

2022.05.30

일단 정독했고 개추박음.

 

님 글쓰는 방법 바꿔보셈.

 

차라리 님이 언급한

니체처럼 쓰는 게 낫을 것 같음.

 

님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 보다

님이 "읽기 쉽게" 쓰려고 노력한

님의 문장과 언어가 산만해서

님의 텐션에 기빠지고, 힘빠짐.

 

그냥 각잡고 써주셈.

 

쉽게 설명하려고 너무 의식해서

님의 논증을 잡아먹어버린 느낌임.

0
2022.05.30
@낙성대원빈

결국 궁금증을 못참고 와버렸다

답해볼게

 

이게 몇년동안 그래도 혼자 해왔으니까

고여서 썩을까봐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누구한텐가 비밀스럽게 보여주려해왔거든

 

근데 여태껏

주제가 철학인지라 아무도 안 읽어주고

읽어보더라도 이해 자체를 힘들어해서

내 역량 부족으로

피드백을 위한 이해조차 못 시키니

거의 정신강박처럼 새겨져있음

아, 사람들 이해부터시켜야

내 철학이 유의미해진다

 

그래서 사람들 이해라도 시킬 수 있게

가장 쉽게 써보자 해가지고

가장 쉽게 쓰려는 거에만 매진했던 거 맞는데

생각보다 부작용이 강한 것 같네...

 

근데 아무래도 결국에

<일반인한테 읽힐 수만 있다면>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이

글의 목표였어서 당장 쓰려는 이 글의

논증이 묻히고 철학을 보러 왔다가

산만한 문장력에 독자가 거부감을 겪는

부작용은 필자로서 감수해야만 할 것 같아

 

왜냐면

<어려워서 안 읽는다>

<읽어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의

고통과 기회 증발 여태껏 너무 겪어와서

차라리 이게 낫다 싶은 거야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건데

이번 글은 최대한 라이트하게 적고

원래 이번 연재에서 안 끝내고 다른 문체로

여러 번 적을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재연재, 업데이트할 때마다 문체의 무게를

늘려나갈 거야

 

2번째 연재는 모든 자투리 생각까지 꽉꽉

채워넣고

3번째 연재는 아예 본연의 내 문체로 적고

4번째 연재는 가능하다면 학술적으로

완결짓고 싶어

물론 각각 다른 플랫폼에서 진행하게 되겠지만

 

각설하고 니체처럼 이라는 글 붙인 것도

경솔함이 있음에도 아무튼

니체처럼 유사하게 작법을

채용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당장은

글의 스타일과 방향을 정해버린 탓에

유지는 할 계획이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목표로써

 

다만 부작용이 있음을 너의 덧글로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텐션 낮추고 논증 쪽에

집중해보려고 할게

 

가만 생각해보면 굳이 텐션 올릴 필요는

없긴 하지 철학 글이란 게 읽을 사람만 읽고

어떤 내용인가 보러온 사람들한테

내용과 별개의 호불호를 바르는 격인데

그러므로 앞으로는 그나마 담담하게 써보겠습니다

 

틀은 다 잡아놨는데

어케써야될지 벌써부터 고민이네.....

그냥 줄줄 논리가는대로 쓰는 쪽으로 해봐야겠다

이해 안 되려나? 라고 생각 들면

논증을 세밀하게 더 쪼갤 생각을 해야겠네

문체로 날먹하려는 거 절제하고

다음 글부터 적용해볼게

 

마지막으로 진짜 정독해줘서 너무 고맙고

피드백 고마워 나 진짜 내 글

읽어준 사람 있다는 것만으로 감격임 지금

0
2022.05.30
@제준

내가 철학이라곤

 

카뮈랑 푸코 현대적인거랑

니체, 칸트같은 유명한 고전만 군대에서

번역본 읽어본

< 지극히 평균적인 일반인 시각, 수준> 이니깐

너무 신경쓰진마.

 

너가 문장 형식에 있어서 비전공자들도 읽기 쉽게 대중성을 추구한 것 같아서 "대중"으로서

의견임 :)

 

 

0
2022.05.30
@낙성대원빈

대중을 위하는 글을 읽은 대중의 의견이라서

더 무시해볼 수가 없는 것이야

 

물론 더 철학을 잘 못 접해본 사람들까지

독자 목표로 둔 건 맞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나에겐 너무 소중하고 값진 의견들이라

납득되는 피드백이라면

적극 반영할 거라는 사견을 비쳐봄...

 

그 혹시 감히 물어봐도 될 진 모르겠지만

이해는 되었니...??

감이라도 잡힌 정도로...

아직 전개해나가는 파트라서 맛은 없을지

모르지만 이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0
ric
2022.05.30

녹색칠판 좀넘어서 까지 보다가 집중력 자원 바닥나서 내려왔는데

일단 순진한 공돌이로서 감상은,

뇌 속의 세계인 '자각-무자각'과 외부적 존재인 세계의 '현실-비현실'을 동일취급하는거 아니냐는 느낌적인 느낌임 ㅋㅋㅋㅋ

개인적인 생각을 본문의 표현에 빗대어서 (좀 바꿔) 말하자면,

- 외부적 세계는 자연이 선행하고 비자연이 따르고

(feat. 마르크스 노동)

- 뇌속의 세계는 반대로 자각이 선행하고 무자각이 후행

(비고 : 어린이와 성인의 시간감각 차이)

하는거 아닌가 싶음.

0
2022.05.30
@ric

에헴 일단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

내 글로 질문 받으니까 부끄럽다

답변 남겨볼게

 

1. 뇌 속의 세계인 '자각-무자각'과

외부적 존재의 세계인 '현실-비현실'을

동일 취급하는 건가요?

 

-

맞으면서도 아닌데,

사실 떡밥은 뿌려놨거든.

맞다라는 관점, 아니라는 관점 둘 다

얘기해줄게.

 

일단 맞다는 관점에서 얘기해보면

'자각-무자각'과 '현실-비현실' 구분 있잖아.

그거 그냥 '현실-비현실'이 아니라,

 

'자각-무자각'과,

'자각된 현실 - 자각된 비현실' 을 동일 취급한다,

바꿔서 이해해줘도 될 것 같아.

 

왜냐면 아직 안 읽어봤겠지만

논의 A-2 에서 결론이 '자각된 무자각'만을

다루겠다, 무자각을 논하더라도

결국에 자각된 걸 다루겠다 했으니

내 철학은

일상을 살아가는 나로서 <자각된 대상>만을

다루려는 거야.

자각할 수 없는

무자각의 특징을 고려해서 자각해보자는 거지.

 

그래서 <자각된 무자각>의 관점에서는

뭐 많이 함축되긴 하지만 동일 취급한다,

그렇게 이해해도 될 것 같아.

 

단, 내가 자각해서 뇌로의, 혹은 정신으로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외부 세계>라는 "믿음"에 의한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둘 다 <내적 세계>일 수도 있는 거야.

 

<자각>된 현실, <자각>된 비현실이기 때문에.

 

단, 그러면서 외부의 현실,

외부의 비현실을 부정함이 아닌데,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자각하는 우리에겐

<내적 세계만 있다>고 주장함이 아닌데,

 

그럼으로써 이 바깥의 현실-비현실은

모종의 대응관계로써만 엮어두었을 뿐,

동일 취급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또, 아니라는 관점이야.

 

그래서 내가 숨겨둔

'자각된 현실-자각된 비현실'의 용법 뉘앙스상

그런 느낌을 받는 게 바르게 읽었다,

생각이 되긴 하지만,

 

뇌 세계와 외부 세계를 아예 편가르기 하진

않았다 이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핵심이야

오히려 나는 둘 다 있고,

어떤 해석으로도 정당하며

아예 섞여있다고도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1번 답변 끝

0
2022.05.30
@ric

2. 비유에 대한 견해?

 

-

일단 그냥 내 용어로 일상적인 관점에서,

비유에 대한 견해에 참여하면

 

어떤 게 더 본질적이냐? 로 이해해볼게.

 

마르크스 노동이 사실, 마르크스를

배우지를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저 문장만 읽었을 때는 수긍하는 바야.

자연 쪽이 본질적으로 선행한다고 생각해.

 

후자의 것은 여기도 예시를 이해 잘 못했지만

어쨌든 풀자면 나도 뇌의 세계에선

자각이 선행한다고 봐. 아닌가?

 

사실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봐

내 철학에서 말한 바는

일단 무자각에서 자각이 되고,

자각에서 무자각이 된다고 했는데

무자각을 그냥 대응관계로 잡아서 본질로

해놨잖아?

 

근데 이게 관점 따라서 뭐가 선행하냐,

뭐가 후행하냐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여

 

예컨대 개붕이와 같은 자각적 관점에 의하면

자각하고 나서야 무자각을 알 수 있으니까

자각이 선행한다고 여겨지고,

 

나의 경우 자각하고 나서 무자각을 안 뒤에

그 무자각이 자각하기 이전부터 있었구나, 의

무자각적 관점, 무자각을 위하는

자각적 관점을 취하기 때문에

무자각이 선행한다고 여기는 바인데,

 

가령 많이 뜨거운 거 손대면 몸이 먼저

무자각적으로 반응하고 자각이 이후에

오는 것처럼?

 

하지만 자각한 뒤에

뜨거워서 손을 뗐다, 마치 뜨거움을

자각해서 뗀 듯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글이 꼬여버렸네

이게 맞는 해석인가???

사실 잘 이해 못하긴 했어...

 

예시에 대한 보충설명 가능할까?

 

어린이와 성인의 시간 감각 차이가

솔직히 감이 잘 안잡혀서...

내 기준에선 어렸을 때 후딱후딱 지나갔는데

오히려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을 때보다 더 후딱후딱 간다 하시니까

시간 감각 차이가 어떤지 주관적으로

안 잡혀있어 가지고 말이야...

 

위랑 아래랑 연관 있는 거 같아서

시간 감각 차이만 보충 설명 해주면

단번에 이해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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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
2022.05.30
@제준

자연-비자연은 내가 의도한 대로 이해한거 같으니 마르크스 이야기는 생략하겠음,

 

시간감각 이야기는 이런 거였음.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1년에 대한 시간감각은 어렸을 때가 가장 길고(느리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찗아진다 (빨라진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어릴 때에는 세계에 대한 해석 프레임이 자리잡지 않아서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새로운 정보라서 개별 사건으로 인지하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면서 1년간 있던 사건들을 추상화 시켜서 통합하기 때문이라는 거임.

(1년 시간 길이에 대한 감각은 그 동안 일어난 의미있는 사건 갯수에 비례한다)

이걸 본문 표현으로 바꾸면,

사람의 내면세계는 어렸을 때에 자각의 세계로 구성되어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비자각의 세계로 이행되는거 아닌가,

그렇다면 무자각보다는 자각이 인간 의식의 기본상태가 아닌가 싶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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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ric

앗 이해했다 설명해볼게

나중에 나올 수 있는 논의지만 지금 미리

꺼내볼게

 

내가 생각해봤던 문제인데

아직 어딘지는 잘 모르는데 어렸을 때

자기 맥락이 확 넓어지는 지점이 있어

 

그러니까 아기 때는 무자각적 무자각성에

가까운 자각적 무자각성,

쉬운 말로 풀자면 자각처럼 보이게

무자각해있는데

(가령 눈 앞에 딸랑이 흔들면 쳐다보고

엄만줄 <인지>하고 붙으려 하는 등은

자각처럼 보이지만 나중의

무자각-자각 구분 상 무자각에 가깝고

따라서 무자각 쪽으로 편입시킴)

 

어떤 내가 아직 발견 못한 기점으로

애가 자라면서

무자각적 자각성, 무자각하게 자각하는 맥락이

확장되면서 이것저것 무자각하게

자각하기 시작함.

 

그래서 어린이 때 좀 자각이 많아지다가

너가 얘기한 대로 어른은 자각한 것들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서

비일상을 학습, 그리고

무자각해짐에 따라서 일상이 되는데,

즉, 자각적인 비일상이 일상이 되면서

무자각해지는데, 이에 따라서

어릴 때보다 맥락 상 자각보다 무자각 쪽에

머무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해석하기로 했음.

 

즉,

아기(무자각)-어린이(자각)

-성인(무자각) 이런 식이라 어린이 때

시간 감각이 길어서 자각이 본질적이라기 보단

인간이라는 생물로서 맥락이 확장되다 보니

그에 따른 자각 활동이 증가한다고

이해해주면 될 것 같아

 

무자각에서 자각으로 오르니까

그리고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무자각으로 귀결하기 때문에

넓게 봐서 무자각이 더 본질적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뇌의 생동적 측면에서는 자각이

본질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가능성

ㅡ 그냥 <무>의 논의에서 가능성 다 된다고

막 말하는 게 아니라 ㅡ

편하게 생각해보았을 때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자각이 더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봐

 

아 근데 머릿속에서는 자각이 선행한다는

관점이 내가 생각 안 해본 주제라

혹시나 놓친 부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껌 씹듯이 오래 생각해볼게

뭔가 나올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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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
2022.05.31
@제준

 

ㅇㅇ 나도 다시 내 생각 검토해보니 그 유아기 때의 무자각은 아예 사람의 뇌가 완성되기 이전 시점으로 알아서 논외로 쳤던 것 같네.

(발달심리학에서 4세이전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잘 없는 이유가 뇌-사고방식이 완성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라 하더라)

 

순진한 공돌이로서 유아론이나 주관주의는 학을 떼고 싫어해서 내면세계랑 외부세계를 직접 연결짓는 건 싫어하는 편인데, 본문 글은 오히려 거부감 적게 읽히네. (장황해서 그런가? ㅋㅋㅋㅋㅋㅋㅋ)

이전 글, 본문 대충 훑어봤는데 예에에에전에 얼핏 들은 현상학 정도로 한정짓고 생각하면 괜찮아보임.

 

**여담.

그.... 댓글들 보니 글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론 뭐....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

지금 이야기하는 대상이 일상적 행동/생각이 아니라 그 너머의 메타적 부분을 파고들어서 일반적으론 아예 인지조차 안하는 그런 개념이잖음.

그러면 애초에 '내가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설명해야 하고 (본문 글의 목표?),

또 '청자의 지식수준은 어떠한가'까지 고려해서 써야 하는데.....

이게 또 어떤 개념들은 그저 '높은 지식수준을 가진 사람만 이해 가능한' 것들인지라....

(참조: https://youtu.be/3smc7jbUPiE )

개드립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쓰려고 하면 뭐 음.. '잘 쓴다'라는게 불가능한 주제인거 같음.

 

하고 싶은 말은..... 뭐 너무 '잘 설명하는 것'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거임.

어떤 것들은 그저 많이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알아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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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ric

아무래도 맥락이란 개념이 여기서 여기까지다 라고

끊을 수도 있지만 안 끊어야

본래 맥락의 개념과 더욱 가까워져서

그 이전의 유아기까지 끌어올 수밖에 없더라구

내가 못 보던 부분까지 보려고 하는

철학적 습성이 있어서 관점을 넓게 잡으려는

편인데 그 점이 반영된 것 같아

 

나중에 유아론, 주관주의를 벗겨내긴 하는데

이건 아주 나중의 논의고

그리고 현상학적인 면 있는 거 맞아

(애초에 머릿속에 많이 든 것도 아니지만)

아예 지식 편견 다 지우고

내 식으로 다시 궁리해본

다음에 새로 만들어서 조립해본 거라서

 

근데 현상학이 의식을 다루기 때문에

더 얘기하면 복잡해지지만 내가 다루려는

무자각성-자각성하고 차이가 좀 있어서

온전히 의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기 현상학이 주목 더 돼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잡설이었고

 

어떻게 설명해야 사람들이 이해하려나...

하다가 최대한 모든 방법 끌어보아서 써보았더니

말대로 장황해지긴 해서

개붕이들이 얘기해준 것 중에 공통되는

피드백 따라서 반복성 글 좀 줄여볼 계획이야

 

그렇다고 개붕이들 간 차이는 무시할 수 없으니

이해해줄 수 있을까 미심쩍어서 비유법 쓰게 되면 여긴 이해됐으면 넘어가도 되니까

글 읽기 난잡하면 넘어가세요 하고 덧붙이는 게

좋겠다 뭔가 틀이 잡히네

 

얼떨결에 영상도 재밌게 봤고

특히 다음 논의가 거의 나만 쓰는 개념들인데

일단 거기까지만 너가 얘기해준대로

스트레스 안 받고 편하게 쓰려고

노력해봐야겠다

 

진짜 세밀한 피드백이랑 독려 고맙고

힘 받아서 일단 이 글 꼭 완결해볼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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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0

이름모를 개붕이를 위한 답글 정리해놨는데

덧글이 사라졌네...

다음 글부터

아니면 지금 글 시간 날 때 최대한 논증에 주목해서

내용 다이어트 해볼게

반복적인 부분도 꼭 줄일게 피드백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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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제준

나도 글 잘 못 쓰는데 피드백이니 뭐니 거창한 듯 해버려서 민망해서 댓글 지웠어.ㅋㅋ 나도 한 때 철학과도 가보고 싶고 대학원생도 해보고싶었는데. 화이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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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리딩Dog

다른 분들보다 같은 내용으로

앞서 피드백해주셨다면

선견지명이었는데 아쉽네요 ㅎㅎ

농담이구 저 진짜 하나하나의 피드백도 귀해서

민망을 무릅쓰고 올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 너무 안 부끄러워 하셔도 될 것

같으세요

 

아무튼 말씀 주신대로 화이팅해볼게요!

저도 대학원생해서 여유 가지고

천천히 공부해보고 싶은데 현실이 녹록지가 않네요

ㅠㅠ...

해소 삼아서 열심히 적어보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주셔서

응원해주셔가지고 진짜루 감사드려요!

0
2022.05.30

재미있게 읽었어요. 철학을 잘 모르는데 쉽게 설명해주려 노력하신 덕분에 무리 없이 다 읽었습니다.

 

이건 글을 읽고 문득 든 생각인데, 마치 <무>라는 건 우리에게 죽음과 같네요. 자각이라는 것은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우리는 무자각의 경지에 들게 되고, 곧 죽음을 맞이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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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스비니

무가 죽음에 관련있는 것 맞아요!

이해해주시고 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다만 뒤에 남겨주신 사견에

제 철학적 사견을 덧붙여보도록 할게요

 

<무>가 아니라 <자각된 무자각> 관점에서

<무자각>을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사실 무자각에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이루어져요. 아직 깊은 논의를 안 해서

단편적인 예시를 들 수는 없지만요.

다만 자각과 무자각의 강한 차이는, 자각은

대상을 만든다는 점이에요.

이 말인즉슨 나를 나라고 대상 만들어 부를 수

있게됨으로써 의미 부여 보다 더욱 깊도록

나라는 존재 부여가 가능해지게 되죠.

 

그래서 생각보다 아주 기초적인 데부터 자각이

개입해요. 내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물론 자각적이긴 하지만, 죽음을 논한다면

좀 더 자각을 깊게 여겨보는 게 실용적일 것

같아서요.

 

아무튼 얕은 무자각에서도 의미 부여는

일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의미를 찾지 않을 때>보다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될 때>, <무>에 더욱

가까워지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편에요.

죽음, 무라는 극단을 논하기 위해서는요.

 

그래서 무자각적으로도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될 때, 다시 말해서 무자각으로도

인간으로서 어떠한 활동이 불가할 때

<무>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이는 죽음과의 해석과 맞닿을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좀 난해하게 적긴 했는데,

결론이 염세주의처럼 무서우셔서 나름

적어보았어요.

따라서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글의 부작용을 염려해서

사람들이 무의 바탕으로 죽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명상과 몰입을 추구했으면 좋겠네요.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명상과 몰입이 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보니,

비유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석하면

멋진 글귀로 수긍이 되네요.

 

아무튼 정말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진짜 삭제하고

고쳐쓸까 말까 큰 고민

하고 있었는데요. 용기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하던대로 마치고 마무리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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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제준

저는 죽음이 마치 영광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ㅎㅎ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열반이라는 것이 곧 죽음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죽음이란 것이 절망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한 차원 올라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죽음이 두렵잖아요.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말 그대로 의식이 없는 것, 극단의 무자각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근데 우리가 살아있으면서도 무자각의 극단을 경험하면, 비로소 죽음이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커뮤니티에서는 결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아요. 큰 틀에서는 결정한 대로 우직하게 쓰시기를 응원합니다. 다만 글이 저같은 철학 무지랭이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쉽게 써진 듯 하니 더 쉽게 쓰려고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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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스비니

오 말이 되네요

무가 무자각성에 맥락적으로 연계됐다는

가정 하에 죽음이 절망적이고 두려운 분들이라면

무자각 극단의 경험으로 간접 체험을 겪고

죽음이란 대강 이럴 수 있겠구나, 이해해보고

일상화한다면 그에 대한 불안이

좀 해소되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본인을 철학 무지랭이로 표현하시는데

제 철학 제목이 황금 금붕어인만큼

그리고 본인이 철학적 사유를 능동적으로

전개하실 수 있으신만큼 오히려 동떨어진

표현 아닌가 싶네요

 

일상생활에서도 철학적이란 말이 잘

쓰이는만큼 저는 철학을 제가 정의해본대로

자신의 맥락을 활용해서 자각할 수만 있는

역량을 가진다면 고평가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해당되시니까 그리고

제 철학을 활용해서 말씀해주시니까

좀 많이 기쁜 점이에요

 

말씀 주신대로 제 주관을 잃지 않되

다른 분들 의견 적절히 종합해서

더 나은 글 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충분히 쉽게 써주셨다는 말씀에 정말

안심 엄청 되고요

그래서 특히나 감사드리고 더불어

이름없는 개붕이

철학 초장문 글에다가 시간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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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1.읽는 사람을 '철학 글 관심없는 사람'으로 설정해서 설명하느라

일부러 이렇게 썼구나 하는 부분들이 몇군데 느껴짐

 

본인이 철학글이라고 제목에 썼으니

쉽게 쓰는 것에 너무 집착 안해도 될 것 같아

 

정확하게 쓰고 싶으면 정확하게 쓰고,

명료하게 쓰고 싶으면 명료하게 써.

 

어려워서 읽기 싫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지부조화잖여

그냥 철학에 관심이 없고 읽기 싫으니까 읽기 싫은 이유로 어렵다를 가져와 말하는거잖아 ㅋㅋㅋㅋ

 

2. 개드립에 쓰는 글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전공서적보다는 교양서적 카테고리에 실릴 글이잖아?

나중에 같은 내용을 비전공자한테 설명할 때가 있다면

본인 핵심 개념어가 아닌 키워드들을 쓸때

반복적인 내용을 다이어트하기 어렵다면,

동어반복을 줄여주면 그것만으로도 독자가 편할듯

0
2022.05.31
@닉고민만1시간

1.

생각해보니까 내 철학이 어려울까봐 라고

구실은 잡았지만 내 글이 안 읽힐까봐

철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욕심부리고 타겟 잡고 있었네

철학 제목 보고 관심 생긴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어야 했는데

 

오 먼가 깨달았음 고마워

다음 글부터 욕심 안 부릴게

 

2.

꼭 실천할게 보다보니 좀 눈에 보이더라

담글부터 주의할게

그리고 시간 날 때 이 글도 수정해서

간결하게 만들게

 

관심 가져주고 조언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열심히 해볼게!

0
2022.05.31
@제준

ㅋㅋ 나도 학부때지만 철학 전공했었어서 같은 습관들이 있어서 쉽게 내뱉는거임ㅋㅋㅋㅋㅋ

 

아예 이말년처럼 니들이 보던가 말던가 해도 먹힐거면 먹히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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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닉고민만1시간

사실 니들이 보던가 말던가에 대한

자신감은 내심 있는데 이게 ㅎㅎ

특히 철학같은 마이너한 분야는

내가 안 움직이는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비례해서 안 오더라구 이걸 정말 크게 느껴서

머라도 해보려하는 중이긴 함

 

근데 이건 가벼운 글이라

로우리턴 로우리스크니까 이것저것 피드백

적용해보면서 미리 감을 익히면

나한테도 장기적으로 도움될 것 같아서

일단 내가 급한대로 써보고 피드백을

요구해본건데 그 필요한 피드백이

비슷한 내용으로 집중돼서 개선하기 편한 것도

있고

 

여튼 철학하는 사람들 글쓰기의 고질적인 습관

같은 거라면 고쳐보는 편이 바람직하겠고

그래서 말해주었을텐데 쉽게 말해준 것이래봐야

나에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인 것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

 

말 그대로 <키워드>에서 동어반복

줄여보도록 할게

생각해보면 철학자들 글 읽은거 떠올려봐도

곁다리에서 컴팩트하고 자기 핵심에서

비유나 사례 왕창 들고 그랬던거 기억나네

기억 살려서 적용해볼게! 조언 고마워!

차라리 <정확하게 혹은 명료하게>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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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열심히 읽어보려 했는데 글의 분량에 비해 영양가가 없어서 내리게 되네. 분명히 중간중간 맛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좀 아쉽다. 같은 설명을 예시로 반복하니까 지루하고, 예시 하나에서 일반화하는 논리적 비약도 많은 것 같음. 그냥 콜드하게 논증만해줬으면 오히려 더 읽기 편했을 것 같아.

 

중간정도만 읽었지만 질문이 있는데

1.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자각과 자각이 현실과 일상으로 대응한다하고 시작했는데 이 명제를 증명한다 보기에도 애매하고 이 명제로부터 끌어내고 싶은 결론? 삶의 태도?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음.. 이 글의 핵심 정수가 무엇일까

 

2. 기존 철학 이론과 차별점이 무엇인지?

초반 부분은 그냥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부분들인것 같고, a2 이후 논증은 인식론, 불교철학이 뭔가 섞인듯 아닌듯한 느낌임. 내가 이후부턴 자세히 읽지 않긴 했는데 여튼 그런느낌이 들었어

 

다른 댓글도 비슷한 의견들인데 너무 읽게하고 싶단 마음이 커서 중요한 부분이 가려진 것 같아. 난 그냥 아무도 이해 못할지라도 자기가 담담하게 하고싶은 말을 하는게 맞는 것 같음. 그게 철학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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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흉근게이

이런 차가운 피드백을 기대 많이 했는데

나름대로 답해볼게

 

1.

이 글의 목적은

(1) 무자각 및 자각 개념이

아예 안 익숙한

일반인들을 위해서 다음의 논의들에 효과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진입구를 만드는 일이야

 

(2) 또, 말그대로 다음의 논의들을 위한

전제 바탕이 되기도 해.

 

그래서 종합하면 다음의 논의를 위한

밑바탕을 깔아놓는 작업이야.

집을 짓기 전에 흙부터 평평하게 다져놓는

건축가에게 가장 재미없는 과정?

 

그래서 다음의 논의들에서 전부 해소될 거라는

어차피 집만 잘 지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흙 대충 고르게 피고 마친 거야

다만 나름 엄밀하진 않더라도

꼼꼼하게 펴놓으려 하긴 했어

 

다음 논의로 갔을 때, 읽는 사람들이

"아, 저 정도로 평평하게만 해도 집이

지어지는구나." 정도로 느껴줬으면 좋겠고

이 말은 곧 이 논의들은

다음 논의들을 위한 떡밥처럼 사용될 거기도 해.

 

그래서 <명제를 증명한다>의 투가 아니라

대충 이렇다, 신경 안 써도 된다.

논리적 비약 감안 안하고 대강 되면

거칠게 예시 든 것도 어느 정도 부정 못하고,

그리고 논증으로 이끌어내는 의의도

서로 끈끈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해

물론 나름 사랑하는 의의긴 한데?

이건 내가 만든 철학이라 주관적으로 애정 있을

뿐인 거고, 여튼 간에 그래서

<러프 스케치>라고 표현했던 거야.

일단 구도 잡는 일.

 

그래서 영양가 당장 없어보일 수 있는데,

떡밥처럼 돼서 나중에 이곳저곳 뜬금없이

나와서 굴러갈 거라고 이건 얘기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후를 위한 사전작업이다,

이게 이 <1>, 논의 A의 목적이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주면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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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흉근게이

2.

논의 A-1 벗어나서 넓게 이야기할게.

내가 가장 타 철학들과 차별을 두려는 점은,

(1)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당연한 것들을

(2)<자기 맥락>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엮어서

(3)범용성을 아주 좋게 만들어

(4)각자 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보급화>

 

그러니까 가장 쉬우면서 가장 넓은 철학을

만드는 게 목적이고

따라서 글에서는 목걸이로 비유했는데,

쉽고 당연한 것들을 엮어서 엄청나게

큰 관점을 제공해주려고 하는 거야.

 

실제로 내가 아무 배경지식 없을 때

철학의 핵심부들은 다 만들었으니까

일반인도 내가 글만 잘 쓴다면 접근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이게 내가 철학을

하는 신념이야

 

그래서 다시 좁혀 돌아와서

이번 논의와 다른 철학과의 차별점은 뭐냐?

묻는다면, 목걸이에 필요한 실을 짠 거야

 

그리고 이 실을 최대한 절약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목걸이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난 이 논의를 고효율로 쓸 거라는 점

 

그래서 내용상 차별점은 딱히 없고

오히려 다른 철학들이 다뤘던 내용이고

다만 차별점을 따로 둔다면

내가 먼저 떠올리고, 이후에 다른 철학을 접했다.

이게 어찌 보면 중요할 수도 있겠네.

 

혼자 생각해본 게 나중에 알게 된

다른 철학들의 의의랑 잘 맞아떨어졌다면

혼자 <잘> 생각해본 게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배경 지식이 없던

학술 지식이 없던 일반인이 만든 철학의

배경 자체가 다른 철학들과 달리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밀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자 차별점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요즘 철학들은 약간 종교계와 학계에 고여 있잖아

 

철학이란 응고물을

혈액순환시킬 수 있는 실마리, 배경적으로

가지고 출발하는 데에서

일상에 보급화한다는

최종 목적이랑 연계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차별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좋은 답변이 됐는진 잘 모르겠네

 

일단 그리고 글쓰기 방향,

논증 몰두로 잡는 점은 다음 글쓰기 때 해도 되고

내 표현상 사다리를 놓는 작업을

위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일단 다양한 사람들 이해할 수 있도록

너무 불필요한 반복만 걷어내가면서

적어보려고

낮은 난이도로 적어보고

<상호주관성>, 나 혼자만 생각했던 게

다른 사람들에게 통용할 수 있는 개념인가?

확인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내 스타일이

온전한 글을 써보려는 계획이야

 

사실 좌절해서

에라 모르겠다,

담담하게 쓰려다가 피드백들 읽으면서

다시 그냥 논증 묻히더라도 원래 쓰던대로 쓰려구

다음에 글 쓸 기회 충분히 있으니까

혹시 그래도 다른 의견으로 부정되는 피드백

있다면 말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

 

나 이런 피드백류 특히 진짜 도움돼서

너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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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제준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가 가장 큰 의의인 것 같네. 그러기 위해 최대한 쉽게 전달하고 싶었던 거고.

 

취지는 정말 훌륭한 것 같아 진짜 멋진 사람이네. 그렇다면 글을 쓸때 쉬운것보다 흥미 돋구기를 우선하는게 좋을 것 같아. 아무리 쉬워도 사람들이 읽게 마음을 먹게 해야 하는데, 제목이나 서두 부분에 그런 포인트가 없어서 철학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읽을 것 같아. 분량도 너무 많고, 아무리 쉬워도 양이 많으면 다 못읽겠지?

 

탈무드 같은거 보면 우화 형태로 진리를 전달하잖아. 난 그게 재밌으면서 쉬운 형태라 생각해.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본 것 같고. 이 철학도 더 좋은 방식이 없을까 고민했음 좋겠네

 

여튼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잘 했으면 좋겠네. 이후 행보를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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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흉근게이

일단 오늘 학교 일하다가 체력이 딸려가지고

자고 일어나서 쓰는 거라 좀 정신 없을 수가 있는데

넘 늦으면 안 되니까 끄적끄적 적어볼게

 

이건 여담인데

나름 쉽게 써내려 한 것의 부작용과 별개로

이번 글 진짜 어려운 내용 다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비슷한 철학이라고 언급한

노자, 불교, 뭐시기 관련한 내용 떼어내서

가져오면 왠만한 사람들 감조차 못 잡기 때문에)

오히려 이 정도로 설명 쉽게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들 듣고 좀 감격스러웠어

진짜 혼자 짤 때 몇 년간 개고생했는데 내용

부담 없이 먹어주니까 넘 뿌듯함

 

사실 쉽게 쓰는 게 이해 최대한 해줬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쓴 것도 있지만

흥미 돋구려고 쓴 면도 없지 않아 있는데

이쪽에서 혹평 듣는 점이 당혹스럽긴 했어

 

근데 덧글들 읽어보니까 지나치게 가벼웠나

싶긴 하더라고. 실제로 내 텐션보다

훨씬 오바해서 적긴 했거든

 

억지로 만든 가벼움 걷어내는 게

차라리 그 서예할 때 화선지 눌러주는 것마냥

글 읽을 때 흐름 방해 안 하고

무게 잡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그래서 오히려 글쓰기에

눈이 트인 느낌이라 부끄러움 감수하고

글 올린 거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생각들어서 여기도 많이 뿌듯함

 

그러니까 명심할게

하긴 나도 도서관 갔다가 지나치는 글이,

펄쳐보고 다시 꽂아놓는 책이 수많으니

남에게 읽힐 글을 쓰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겠지

그냥 이렇게 쓰면, 하고 안일했다가

작법에서 혼 많이 나네. 반성합니다.

 

생각해보니 말대로 포인트를 안 뒀다는 게

가장 큰 간과인 거 같아

지금까지 나온 내용 중에 가장 실용적으로

염두에 둘게 평소에 포인트 두는 편인데

안 쓰던 장문을 쓰려니까 진짜 까먹고 있었어

꼭 기억할게

 

우화도 어떻게 만들 수 있다면 되게 좋아

보이는데 이건 내가 삐끗하면 오독의 여지를

쎄게 줄 수 있어서 아직 나의 부족한

글쓰기 역량상 검토에 있어야 할 것 같구

 

분량은 이게 사실 오히려

미친 압축을 거친 거라, 그리고 여기서 더

쪼개쓰면 읽게 도배 수준이 될 것 같아서

이 분량을 유지는 하되 좀 더 독자 친화적으로

글쓰기 쪽에 갈아넣는 게 바람직하겠다는 성찰이야

분량 좀 많아도 이상적인 얘기긴

하지만 솔직히 글이 좋으면 문제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라 모은 피드백으로

양질의 글을 쓸 수 있도록 연구 해볼게

 

진짜 피드백 해줘서 너무 고맙고

갈 길이 진짜 현실적인 문제랑 겹쳐서

슬슬 깜깜하고 까마득하긴 한데 말해줬듯이

그 좋은 취지 실현 위해서 스스로

미련은 안 남도록 여기 글 올리는 거부터

열심히 해보도록 할게

 

훌륭하고 멋지게 봐주는 거 몇년 째

혼자 하는 거라 나는 많이 무뎌져서 되게

신선하게 들리기도 하고

여튼 진짜 좋은 양분이 되었다 보다 더

아직 글 달랑 하나 올려놓고

안주해선 절대 안 되겠지만 마른 자신감에

사람들이 물 주는 것 같아서 소박하게

행복감 느끼는 게 넘 좋은거 같아

이 기분 꼭 기억하고 원동력 삼아서 쭉 써볼게요

좋은 평가랑 좋은 피드백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0
Wae
2022.06.02

다음 글을 봐야 재미 좀 볼 것 같음

잘봤어요

0
2022.06.03
@Wae

감사합니다...!! 종강하고 바로 써서 올려볼게요!

0
2022.06.02

셤끝나고 볼것 메모

0
2022.06.03
@산양꾼

고마워용

0
2022.06.02

1) 일단 철학적인 내용 자체에 있어서는 무척 흥미롭게 봤습니다. 다만 골자에 비해 문체와 구조가 집중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2) 1-2-3-[A+B+C] 구조의 글이라면 1 / 2 / 3 / A+B+C로 글을 나눠서 총 4부작으로 연재하는 편이 좋을 것 같고요.

 

3) 일반인과 철학인을 지나치게 멀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일반인 수준으로 풀어서 설명한다, 일반인 레벨로 얘기한다... 는 강박 하에 쓰여진 문장들이 몇 개 보이는데, 오히려 이해가 어렵고 논증을 복잡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일반인은 3살 짜리 어린애가 아닙니다.

 

4) 이론과 예시는 별도의 문단으로 기재하는 게 더욱 명료하게 읽힙니다.

 

5) 전반적으로 문체가.. 세보이지만 영양가 없습니다. 보통 세보이는 문체는 그 카리스마로 글을 휘어잡아 쭉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용도인데 글에 카리스마가 없습니다. 장황한 동어반복과 불필요한 비문들이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강한 문체를 쓰실 거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문장 구조를 짜셔야 합니다. 지금처럼 동어반복과 비문을 쓰실 거라면 문체의 강도를 낮추시는 게 낫고요.

 

6) 저는 남이 읽을 글에 대해 '러프 스케치'라는 말을 쓰는 건 자신의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러프할 수 있는 건 독자가 작가뿐일 때죠. '설명하기 어려운데 걍 보셈' '대충 쓴거라 대충 봐주셈' 이라는 말은 평가를 바라는 글에 쓰기에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멍청한 말입니다. 이 글은 아마도 다음 논제를 위한 발판이 되는 글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쓰일 글들을 다 합친 것보다 중요한 글입니다. 있어보이는 비유와 뭔가 쿨해보이는 표현을 쓰려고 하는 태도가 꽤 많이 보입니다만 그런 것보다는 기본적인 문장 구조를 다듬어주세요.

 

위와 같이 강한 말을 쓰는 데에는, 저 역시 [무자각의 자각] 이라는 개념을 꽤 오래 생각해왔거든요. 아마 중학생 때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고 나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 표현의 아쉬움은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 상당히 오래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흥미롭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이미 내용물은 충분히 요리가 잘 된 것 같으니, 진열만 더 잘되면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길게 적어봅니다.

0
2022.06.03
@Ralph

1.

동의합니다 꼭 개선하겠습니다!

 

2.

[A+B+C]라기 보다는 <3>에서 갈라져나오는

세 가지 별개의 응용을 다루기 때문에

현재 연재하고 있는 점과 더불어

A-B-C 통합해서

글 쓰기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오히려 전제를 마련하는 파트

1-2-3 보다 응용 파트 A-B-C 각각이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썼다간

일반 시중 책 한 권보다 두꺼워질 수 있는 염려에서

또, 각각이 다른 핵심 주제를 가지고 있는 탓에

쪼개 적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사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이건 특수하게 제가 처했던 개인적 상황과

연관이 깊은데, 십년 간 아무도 이해시켜본 적이

없으면서 학자로서의 역량조차 현저히

불충분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반인과 학자 사이 그 어디쯤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항상 학자의 벽은 높으니

일반인을 타겟 잡아 <어느 정도로 쉽게 써야

사람들이 내 철학을 이해해줄 수 있는 거지?>

고통 받아서 쉽게 표현하는 법에만 몰두해왔습니다

갖은 비유들이 이 과정의 산물이구요

 

쉽게 쓰면 또 이해 실패시키고

더 쉽게 쓰면 또 이해 실패시키고 과정을

반복해서 겪다가 이번에 글 서두에서 다뤘듯

무자각이라는 테마가 정립돼서 전반적인

제 철학의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낮아졌는데,

<원래 테마가 제대로 안 잡혀서 난해함> 이었다가

(1) 테마 정립으로 내용 난이도 많이 낮아짐

+ (2) 이해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쉽게 쓰려는

기존의 철학 설명 습관이 시너지 겹친 탓에

거의 제 의도를 초과해서

독자 수준 낮게 취급하듯이 적혔다고 판단합니다

 

이 쉽게 쓰려는 습관 형성 중에

이해 못시키니 작법 피드백 인풋 없는 채로

안 좋은 글쓰기 버릇까지 만들어져서

(동어반복, 은연중 논증 도외시,

논리적 비약, 명료적 표현 취약 등)

더 단점이 부각될 수 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렇게 성찰하는 바입니다.

 

차차 고쳐나가려고 하니 배경이라도

제시 드려서 당장의 과오는 용서해주십사

일종의 자기 변호를 구구절절 드려봤습니다

물론 필자는 글로 평가를 받아야 하니

해주신 피드백 가감 없이 따끔하게

새겨듣겠습니다

 

4.

약간 논의 A-2부터 직관적으로 이론하고

비유랑 분리하기 시작하다가

논의 A-3에서 풀어져서 다시 합쳐서 썼는데

꼭 명심하고 의식한 상태에서

실천해보도록 할게요!

0
2022.06.03
@Ralph

5.

솔직히 논증 위주, 거기다 본인이 생각하는

핵심만 강조하는 식에 제 특유의 감수성과 문체를 가미해서 적고 싶은 작가적 충동과

사람들을 꼭 이해시키고 말 거라는

목표 하에 제 평소 성격과 맞지 않는

과장된 가벼움 추구랑 섞여서 일종의 괴식 같은

글을 만들어내버린 것 같습니다

 

거듭된 피드백들로 강하게 인지하고 있으므로

강도 무조건 낮추고 간결하게 적어내겠습니다

 

6.

<러프 스케치>는 사실 변명이 맞습니다

꿰뚫어보아주시는 게 많이 신기하네요

제가 말씀드렸듯이 <최근에> 테마를

깨달았다고 글에 언급드렸는데,

일종의 무책임한 러프 스케치가 된 이유는

아직 머릿속으로 되새김질이 덜 됐기 때문에

논증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유의 덜 굴린 철학 덩어리에서 느껴지는

불충분함이, 저의 것을

불순물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그래서 아예 시간을 더 들여

더 굴리는 쪽보다 불순물로써 제시하되

이후의 논의로 해결하겠다, 작가로서의 책임을

뒤로 미룬 거죠. 포장한 게 맞습니다

물론 이후의 논의로 빈틈이 해소될 수 있는 건

스스로 구상해봤을 때 맞긴 맞는데,

어떻게 더 포장을 위한다면

다음의 논의까지 합쳐서 바탕을 위한

흙을 고르는 작업이다, 아직 발판 까는 작업이

덜 끝났다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되실 것 같습니다. <1>+<2>로 <3>을 만드는

전개 구조니까요.

다만 일단 들켜버려서 다시 얘기 드리건대

굉장히 신기하네요.

사실 잘 숨겨놓은 것도 아니었지만은,

다음부터는 스스로에게 더욱 솔직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수

있도록 <나>를 잘 감시하면서 적어내겠습니다.

 

그리고 있어보이는 비유와 쿨해보이는 표현은...

진짜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얄팍한 <러프 스케치>의 비유를 특정지어

이것에서 유추되는 태도 전반을 저격하신 건지??

그 이외에는 제 철학 구상법이

저 스스로 이해 쉽도록 비유 만들고 거기서

퍼즐 맞추는 식이라, 그 외의 대부분은

그래도 필요성 있는 비유라고 생각이 드는데,

혹시 기타, 독자의 다른 눈으로 보이는

쓰레기 같은 곳 있으면 꼭 해당하는 표현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아예 몰랐던 데를 가격 당하는 게 가장

유의미한 피드백이라고 생각해서요

 

사실 쿨하게 쓴 것이라고 말씀 주신 부분도

그런 의도 전혀 없이 글을 적었기 때문에

약간 여기서 혼란스럽긴 하네요...

혹여나 다른 표현에 불편감 느끼셨다면

구체적으로 짚어주시면은 진짜 감사드리겠습니다

 

ㅡㅡㅡㅡㅡ

 

한 번을 이해시켜본 적이 없어서

내용이 발효나 숙성이 아니고 다 썩어버리진

않았을까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반응을 살폈을 때 괜찮은 것 같은데

아직 안 적은 내용들은 사람들에게

용납 될 수 없을만큼 썩어버린 게 아닐까,

다음 글을 적어내야 하는 입장에서

조마조마 하고 약간의 부담이 있기는 한데요...

가능성을 봐주시고 기대해주시기 때문에

저로서는 일단 최대한 부응하는 방향으로

노력해보겠습니다

 

진짜 이런 류의 피드백이 도움 많이 되고

특히 글을 넘어서서 나에 대한 관점을

바르게 조정해주는 조언이라 빈말이 아니고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지만은

정말 감사드린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진짜 스쳐지나갈 만한 글에

강한 관심 기울여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교 일만 끝나고

두달 내에 바로 적어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1
2022.06.02

아까 전에는 그냥 읽기 싫어서 개 사진 올렸는데 개붕이 덕분에 숨쉬는걸 자각하게 되어 버렸네 책임져 개붕아

0
2022.06.03
@편편편

이 답글을 올리면 다시 숨쉬는걸자각하게 되겠지??

미안해 하지만 답변은 남길게

0
2022.06.02

1. 높이가 3m가 넘어가고 표표범처럼 무늬가 있으며 긴목에 뿔이 있는 저것은 기린이다

 

2. 세상에 높이가 3m가 넘어가는 표범같은 얼룩무늬가 있고 뿔이 있는 사슴같은것이 있네?

 

3. 높이가 3m가 넘어가고 목이 길고 게다가 뿔도 있고 표범같은 무늬도 있는 기린은 사실 있을까?

 

4. 높이 3미터에 목길고 뿔도 있고 표범같은 무늬도 있는 그런 생물이 있는데 유니콘은 왜 없냐 병신아? 그딴게 있을거 같냐?

 

5. 시벌 진짜 있네 좆된다

 

6. 씨벌 저런 생물도 존재 하는겨 존나 쩐다 신기하네

 

7. 이야 저 기린이란게 사실 있는게 존나 신기하지 않냐?

 

8. 좆까 병신아 그래픽이잖아 하여튼 보는게 전부가 아니에요 친구야

 

9. 멍청한 새끼가 또 개소릴하네 그래픽이니까 현실에 없다는 거잖아 멍청한놈아

 

10. 하 존나 답답하네 저기 그래픽으로도 있으니까 있다고 하는거다 왜? 유니콘은 그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없는거냐? 실제가 꼭 존재해야 있는거냐? 우리가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 한거다

 

[현실적 현실성-비현실적 현실성-현실적 비현실성-비현실적 비현실성] 연속성에서 자각과 무자각

 

뭐 그런거야?

 

자각과 무자각은 종이와 같아서 세로로 보면 같은 종이고 앞쪽을 보면 앞면 뒷면을 보면 뒷면

 

그러면 우리가 보기에 앞면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앞면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어디가 앞인것인가?

 

진짜 철학적 주제네

 

어려운 주제네용 이해하는데 한참 걸림

0
2022.06.03
@편편편

솔직히 영문을 모르겠는데

지금 덧글 써준 게 위에

내가 쓴 글이랑 조금 벗어났거든?

 

근데 쭉 적어준 게 지금 논의가 <1>인데

<B> 응용에서 다루는 내용을 적어줬네..??

그니까 혼자 심화해서 더 들어갔는데?

어디서 심화할 껀덕지가 있었던 거지?

기묘한 의문이 드는점이야

 

밑에 종이 생각도

나름 그 문제의 답변을 나중에 <B>에서

내놓겠지만

저 생각이 <B>의 핵심이긴 한데 신기하네잉

 

암튼 뭐 그렇게 분류해서 이해하고 있어도

나중에 읽으면서 정리될 수 있으니까

굳이 수정 안 해줘도 될 것 같기도??

 

여튼 읽어줘서 고마워

어려운 주제라고 느껴지는 건

다른 덧글 남긴 사람들이 많이 쉽다고

한 걸로 추정해봤을 때

글에서도 아직 안 들어간 걸

혼자 추론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무서운 개붕이군

정리하면 뭔가 개붕이만의 더 나아간 해석이랑

글의 내용이랑 섞여버렸는데 오독이라기 보단

발전돼서 섞여버렸다는 거야

 

물론 내가 어긋났다 그러면

실타래가 꼬여버려서 풀어보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냥 그렇게 뒀으면 좋겠어

나중의 글도 읽어준다면

글 읽다가 스르륵 풀릴 수 있는데

이게 쾌감 좋을 수도 있음

 

여튼 읽어줘서 고맙구

호흡 자각시켜버려서 미안해 ㅎㅎ

개 사진이 뭔가햇는데 개드립콘 얘기였네

암튼 귀찮음 무릅쓰고 열심히 읽어줘서 고마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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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제준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핵심이라 생각한 부분이 자각과 무자각의 중간이거든

 

아이러니 하게도 파생되는 모든 글들은

 

B를 보완 하기도 또는 B라는 전제가 없다면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흡사 뱀꼬리를 물고 도는것과 같다라고 생각했어.

 

이것은 순전히 나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

 

본디 철학이라는 주제를 생각했을때

 

가장 잘 설명한 글은 '너 자신을 알라'

 

무엇을 보든 누가 어떻게 말하든 중요한것은

 

나라는 존재기 때문

 

예를 들면 박수를 친 스님을 보고 '아!' 라고 자각한 자

 

또는 박수를 친자도 자각하기 때문이지

 

이 전제를 봤을때 현상이 중요한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지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자각하는것인가?

 

아주 원초적인 질문까지 가는것이지

 

흡사 과학자들이 아주아주 작은 단위까지 또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가 무엇인지 파헤쳐 나가는것 처럼

 

끝도 없는 질문이지

 

feat. 그럼 이글을 쓰는 개붕이는 무엇인가?

 

무자각에서 파생되어 자각으로 깨우치고 다시 무자각으로 돌아가는 여정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ㅋㅋㅋ

 

밥먹고 똥싸고 자고 자식을 번식시키는 자

 

농담이고 또 본질이기도 하니까

 

너무 어려웡 왜 철학자들은 이런걸 하는거야

 

스님들이 생각을 비우고 명상을 하는것도

 

깨어있기 위해서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지?

 

여기 개붕이는 똑똑할거 같아

0
2022.06.03
@편편편

뭔가 흩어져있긴 한데 대강 파악은 하고 있구만

중간의 개념이 무자각-자각으로써

어떤 애매한 지점을 상정함이 아니라

순수 무자각-순수 자각 사이의

<무자각성-자각성>의 맥락 전체가

중간이다, 이 개념으로 치부한다면

이 글에 나올 모든 글 전체가

B를 보완하면서 B가 전제되는 거 아무튼 맞고

 

차이로는 나는 현상도 충분히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러면서 개붕이가

두 가지로 구분해서

개인 설명하는 거 보면은 딱히 내 철학과

비교했을 때 틀린 소리도 아니고

정돈만 하면 될 거 같은데??

 

마지막에 여기 개붕이가 날 지칭하는 거면

하나도 안 똑똑하니까 개붕이가 이길 수 있음

암튼 내 철학으로 머리 굴려주는 거

보니까 없던 경험이라 기분 좋네요 ㅎㅎ

고마워용

1
2022.06.03
@제준

오 내가 생각하는것이 정확해 개붕이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구만 재미 있는 친구네! 여기 개붕이가 제준 개붕이룰 지칭하는 말이 맞아 나도 재미있었어! 나도 개붕이처럼 어려운걸 쉽게 풀이해서 말하는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싫어 하더라 근데 어렵게 얘기하면 관심이 없어요 참.. 물론 이글이 논문을 상정하지 않고 평이 하게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는 참 좋았던거 같아. 원래 잘 알고 잘 이해하는사람이 글을 편하고 쉽게 쓰거든 단 지금의 글 경우 애매하게 마치 각주 들어가듯이 챕터를 나눠 놓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난해 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봐 위에서 글을 쭉~ 그냥 읽었을때 아하! 하는 글이 베스트라고 생각해 다만 지금은 내용이 복잡하고 이해의 범주가 넓기 때문에 어 쩔 수 없다고도 봐! 다음에도 또 글써주길 바래~

 

아 하나더. 생각나는데로 댓글을 조금씩 다듬어서 쓰긴 했는데 개붕이가 생각한 관점을 나는 쪼~오끔 비틀어서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한거라고 보면될거 같아 그리고 두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현상의 차이점에서 개인의 자각적인 즉 이해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시각이 존재함으로써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다르다 또는 틀리다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거 같아

 

하나더 ㅋㅋㅋㅋㅋ

 

위에 글의 카리스마가 언급된 글을 읽고 개붕이가 조금 상처받았을거라 생각해 그 개붕이 글 쓴걸보니 패션과 관련된 글을 많이 쓴거 같던데 장르가 다르다고 봐. 패션계나 트랜디 쪽은 엣지있는 한마디 또는 한문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기때문이지(즉 임팩트 있는 짧은 몰입감) 하지만 수필이나 철학, 문학적으로는 힘있는 문체 ~ 카리스마도 쓸때 써야 맛깔나는 글이 되는거지.

나는 말이야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아주 강한맛에 아주 자극적이고 고칼로리에 영양가 있는것이 있지 하지만 소화시키기가 어렵고 부담스럼단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좀 칼로리가 낮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어린이 부터 노인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편안한 글도 좋다고 봐 물론 지금의 글이 매끄럽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개붕이의 의도와 생각이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이글의 저자는 좋은 강사의 자질을 가진거 같아. 강사란 어려운 주제도 쉽게 풀어서 많은 이들을 감명받게 만들잖아. 나는 판타지 책을 상상하고 스토리 짜는걸 즐기는데 좋은 판타지는 저자의 작은 철학이 들어 있거든 물론 카타르시스가 크기때문에 읽는것이지만 ㅋㅋㅋㅋ

0
2022.06.04
@편편편

정리해서 답 남겨볼게잉

 

1.

어려운 걸 쉽게 풀어서 얘기하는 걸

안 좋게 여기던 건 보통 뭔가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더라구...

어려운거 쉽게 먹여주면 안 좋아할 사람

별로 없으니까

 

나의 경우에 피드백을

모아본바

독자에게 잘 읽힐 수 있을까? 라는 의도에만

치중했다가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까? 를 고려하지 않아서

좀 난잡해졋다고 생각해

 

사견으로 챕터 분리는 철학글이라

논증끼리 뭉쳐놔야돼서 여긴 좀 어려워도

유지해야 될 거 같아

오히려 분량이 넘 많아서 합쳐놓고

쉽게 쓰려하면 흐름이 길어져서

내가 천재 작가가 아닌이상

읽는 사람이 개빡쎄지지 않을까 고런 생각

옛날 글에서 장문이면 좀 쪼개달라고

요청을 많이 받아서 논증하는 겸 쪼개둔거엿어

 

2.

저런 류의 피드백에는 상처 절대안받아

상처받는 피드백이라봐야 나의 한계에

정확히 비수 꽂는, 그래서 대처할 길 없다면

혼자 상처 받는 그런 거지

내가 고쳐나가야할 방향성을 정확히 짚어주는

피드백은 오히려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야

솔직하게 감정을 적으면 당혹스러움 전혀 없이

아! 진짜 피드백 왔다! 하고 읽기 전부터

흥분하는 편

변태 같을 수 있지만 나든 뭐든 고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흥미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철학을 하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괜춘

 

물론 저 개붕이가 패션 쪽의 짧은 글을 쓴다면

카리스마의 글을 지향하는 편이 있다고

판단할 수야 있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을

몇 가지의 단서로 규정하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덧붙이면 그냥

<글에 맛이 부족하기 때문에> 라고 생각함

 

좋은 재료로 맛을 제대로 못 냈다, 이게

저 개붕이가 아쉬워하는 포인트라고 생각해

물론 좋은 재료라고 스스로 말하는 게

어색하긴 한데 어쨌든 좋은 재료를 썼다면

맛 없더라도 자극 없고 술술 넘어가는

그런 음식일 수는 있겠지만 요리로써

매력 있는가? 그거는 사람마다 싱거운 거 좋아하고

짠 거 좋아하고, 그냥 중간 맛 좋아하고

다 다르듯이 취향의 영역일 텐데

대다수의 피드백이 글에 문제 있다 짚은 거 보면

많이 싱겁든, 많이 짜든 어디에서 맛의

하자가 있다는 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글의 목표에 있어서

분명하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고쳐보려구

비유하면

대체로 개붕이들 요구가 잔기술 넣지말고

재료의 <맛>으로만 승부해보라는 조언이었는데

그래서 재료의 강점 살린 <맛있는 요리>

만들어보라는 조언이었는데 다음에

이렇게 만들어보려구여

 

물론 언급해준

낮은 칼로리, 부담스럽지 않은 목넘김

강점일 수야 있는데, 이렇게 썼다간

한계가 명확해 보여서...

낮은 칼로리 + 부담스럽지 않은 목넘김에

맛은 무조건 추가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

그래도 되게 챙겨주려고 해서 고마웡

좋은 강사의 자질이 있다고 말해줘서도

고맙구

 

3.

여러가지 있긴 하지만

이해의 범위 차이도 개인 간 견해 차이에

영향 미치는 게 맞워

어쨌든 개인에 집중한 논의에서

개인과 타자 간 견해 차이로 논의를

자주적으로 옮겨간 모습이 되게 바람직하고

보기 좋아 보이고 그래서 기분 좋음

판타지 짜는거 좋아한다했는데 내가

취미처럼 철학짜듯이 취미로 크게크게

짜본다음에 읽게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용

 

정리하면 내 철학 가지고 놀아줘서 고맙구

지금 글 내 감정상태 고려해주면서 독려해주는것도

고마워 ㅎㅎ

그치만 고쳐나갈데 있어보이니까

개붕이가 말한 장점 유지하면서 더 맛있게

써보도록 노력할게! 다음글 잘써졌으면 좋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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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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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Pain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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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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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Pain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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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0
2022.06.09
@Fact

시험끝나고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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