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임진왜란 조선군 육지의 맹장들 4편 [한명련]

한명련 韓明璉

? ~ 1624년

1, 황해도의 출신의 천민, 용맹으로 이름을 남기다.

조선왕조실록 1593년 12월 3일 기사中

상이 이르기를,

“변장과 수령 가운데 공적이 현저하여 칭송할 만한 자는 없는가?”

하니, 아뢰기를,

한명련이 제일 잘 싸웠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594년 1월 21일 기사中

비변사가 아뢰기를,

“남쪽 변방의 장사들이 해를 넘기면서 풍찬노숙하여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매양 외로운 군대로 역전하고 있습니다.

(중략)

..한명련도 다같은 역전의 용장들인데 아직 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무예로 명성이 있던 김덕령과 비견되다.

 

조선왕조실록 1595년 10월 7일 기사中

한명련ㆍ김덕령은 모두 한 시대의 용장으로 남방에 헛되이 머물러 있으니,

(중략)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명성이 있으니 관서의 인심이 진정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3, 선조의 관심과 총애를 받다.

조선왕조실록 1594년 6월 23일 기사 中

한명련과 백사림 같은 자는 말단의 부하로 두어서는 안될 것 같은데,

 

조선왕조실록 1596년 10월 21일 기사中

상이 이르기를,

“나의 의견으로는 기용할 만하다. 그리고 한명련은 어떤 사람인가?”

【전공으로 항오 가운데에서 발탁되어 당상으로 승진하였다.】

하니, 원익이 아뢰기를,

“그의 군대는 이미 지쳐 있으며 단지 40~50인이 있을 뿐인데도 날마다 교전(交戰)할 때처럼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소신이 때때로 불러다가 재주를 시험해 보았는데 말 달리고 칼 쓰는 것이 가장 날랬습니다.

..(중략)..

“다른 일은 알 수 없으나, 적중에 종횡무진 돌격한 것은 분명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596년 11월 24일 기사 中

한명련에게 옷을 내려주라고 정원에 하교하다.

조선왕조실록 1597년 9월 13일 기사 中

상이 이르기를,

“한명련은 어디에 있는가? 칼날에 오른 팔을 부상당하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중상은 아닌가?"

조선왕조실록 1597년 10월 3일 기사 中

정원에 전교하였다.

“한명련은 상처가 가볍지 않으니 용렬한 의사로 치료하게 할 수 없다. 급히 내의를 보내 병을 간호하되 마음을 써서 구제하도록 하라.”

【한명련은 힘껏 싸운 장사다. 앞장 서서 돌격하여 참획이 매우 많았으므로 상이 장하게 여겼는데, 이때에 이르려 오른쪽 볼기에 탄알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기에 이러한 명이 있었다.】

4, 한명련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

당상관의 신분으로서 졸오와 같이 처신하여 산비탈을 오르내릴 때 혹 걸어다니기도 하였는데,

같은 당상관들이 비웃기라도 하면 의(義)로써 그들을 나무랐다고 하니, 이 일은 매우 가상합니다.”

...(중략)...

평상시에 날랜 부하 서너 사람과 뜻을 같이하여 사렵하는데,

보기에는 가소로운 사람이나 그의 마음은 매양 국은에 보답할 것을 마음먹고 있으니,

이 점이 매우 가상합니다.

5, 이몽학의 난 시기 김덕령의 대적자로 거론되다.

 

자해필담

“한명련이 지금 영남에 있는데, 또한 용감하옵니다. 그를 시켜서 도모하게 하고, 김응서로서 항복한 왜병 50인을 이끌고 조력하게 한다면 김덕령이 어찌 감히 맞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작성자 : 당시 김덕령은 무예와 용맹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어 민간에선 그가 도술까지 부린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6, 용맹으로 명나라 제독 마귀에게 눈도장을 찍다. 이순신 권율과 함께 조선의 양장으로 인정받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5월 11일 기사中

명나라 제독 마귀가 말하기를

귀국인 가운데 정기룡ㆍ김응서ㆍ한명련은 모두 의협심이 대단한 사람들로

왜적을 잘 사살하니 함께 적을 토멸할 만합니다.

..(중략)..

지난번 아군의 대구와 삼가 전투에서는 한명련이 선전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598년 8월 15일 기사中

제독이 말하기를, "저도 들었는데 이순신이 아니었던들 중국 군대가 작은 승리를 얻는 것도 어려웠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국왕께서는 조선의 여러 장수 가운데 누가 양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순신 · 정기룡 · 한명련 · 권율 등이 제일이라고 여깁니다.

*작성자 : 한명련이 정유재란에서 싸운 기록들까지 일일히 넣기엔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7, 공신으로 인정받다.

 

조선왕조실록 1603년 3월 4일 기사中

공신 도감이 아뢰기를​

..(중략)..

정기룡 · 한명련 · 이수일 · 김태허 · 김응함 · 이시언도 모두 힘써 싸운 노고가 있는데 더러 수전 · 육전에 참전한 공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603년 4월 28일 기사中

공신 도감이 【당상은 이항복·이호민·황진·홍가신·박명현이다. 】 아뢰기를,

"전후의 왜적을 정벌할 때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을 의의하여 취품한 것은, 이원익 · 이순신(李舜臣) · 권율 · 원균 · 권응수 · 김시민 · 이정암 · 곽재우 · 이억기 · 권준 · 이순신(李純信) · 이운룡 · 우치적 · 배흥립 · 박진 · 고언백 · 김응서 · 이광악 · 조경 · 정기룡 · 한명련(韓明璉) · 안위 · 이수일 · 김태허 · 김응함 · 이시언 등 26인이었습니다.

 

8, 종2품 오위 장이 되다. 그러나 미천했던 신분 때문에 견제를 당하다.

 

조선왕조실록 1599년 5월 2일 기사中

궁궐을 숙위하는 벼슬은 결코 미천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위 장(五衛將) 한명련과 홍대방은 모두 하천한 사람들인데 지금 본직에 제수되었으므로 동렬의 관원들이 동료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체차를 명하소서.”

..(중략)..(선조의 답변)한명련 등은 어찌 오위 장이 되지 못하겠는가. 체직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 1599년 5월 5일 기사中

사헌부가 아뢰기를,

오위 장 한명련과 홍대방은 용렬하고 비루한 일개 천한 무리로서 숭반의 지위에 이르었으니, 이미 명기를 더럽혔다 하겠습니다.

 

*작성자 : 참고로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 또한 종2품 관직이었습니다. 즉 단순히 품계만 본다면 이순신 장군과 동급까지 오른 것이죠.

 

9, 스스로 변방으로 떠나다. 파직과 유배 상소가 올라오다.

 

조선왕조실록 1599년 5월 20일 기사中

비변사가 아뢰기를,

“한명련이【해서의 천민이었는데 난리가 일어나자 입신하여 전공으로 2품의 지위에 이르렀다.】북방의 사변을 목격하고 자신이 가겠다고 청하는 상소를 하였으니,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용기가 매우 가상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604년 5월 15일 기사中

사헌부가 아뢰기를,

“외람되이 역말을 사용한 죄에 대한 율이 지극히 엄하니 드러나는 대로 엄중하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들이 황해도 기린역에서 3월에 역말을 사용한 것에 관한 성책을 가져다가 고찰해 보니, 행 사과 한명련은 당초 역말을 타라고 한 명이 없었는데도 원산ㆍ연양 두 역의 기복마(騎卜馬) 각각 1필씩을 공공연하게 외람되이 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604년 6월 2일 기사中

(선조가)비망기를 내렸다.

한명련은 장사로서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적을 수없이 베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죽을 힘을 다해 국가에 보답했는데 이번에 차질이 생겨 유방의 죄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그 사이에 깊은 실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견이 없어 잘못하여 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장차 죽게 된 어미를 버려두고 멀리 부산(釜山)으로 유배간다면 모자가 각각 한쪽 하늘가에 있게 되어 오직 꿈속에서나 오갈 뿐일 것인데 나는 그에게 차마 그러한 처지가 되게 하지 못하겠다.

*작성자 : 이후 한명련에게는 재물로 형벌을 대신케하는 유형이 내려진다. 선조가 한명련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0, 광해군 집권기에 다시 기용되다.

 

조선왕조실록 1609년 3월 3일 기사中

비록 상중에 있는 자라 하더라도 한명련 등과 같은 드러난 역전의 장사는 기복시켜 올라오게 하고,

조선왕조실록 1615년 4월 17일 기사中

한명련을 길주 목사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 1622년 6월 12일 기사中

의주 유학 주의립이 상소하기를

(중략)

순변사 한명련은 군졸들을 잘 보살피고 부윤과 함께 한마음으로 성의를 다하여 죽음으로 지킬 것을 기약하였으니 모두 논상하기를 청합니다.”

11, 인조반정 이후 사직을 요청하나 거절당하다. 반역혐의로 내몰리다.

 

조선왕조실록 1623년 10월 26일 기사中

순변사 한명련이 소장을 올려 면직을 비니, 답하였다.

내가 요사이 서쪽 변방에 대한 걱정이 늦추어진 것은 오직 경이 변방에 있기 때문이다. 노병으로 사피하지 말고 다시 면려하여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조선왕조실록 1624년 1월 17일 기사中

*이우가 공초하기를

..(중략)..

드디어 그 정상을 실토하기를 ‘이괄ㆍ한명련ㆍ정충신ㆍ이익 등이 지금 연결하여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

*문회가 공초하기를,

..(중략)..

이때부터 불궤의 뜻을 품고서 한명련의 세 부자와 정충신과 함께 모의하고, 그 아들 이전은 정돈ㆍ정찬과 함께 유산한다는 핑계로 외방을 두루 다니며 일을 같이할 사람을 맺었는데,

12, 임진왜란의 영웅, 반란군이 되다.

조선왕조실록 1624년 2월 10일 기사中

역신 이괄과 역신 한명련은 당초 그 아들이 반역을 꾀한 것이 드러났기에 사신을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더니, 역신들이 감히 사신을 죽이는 등 명령에 항거하고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침범하였다.

조선왕조실록 1624년 2월 11일 기사中

이괄이 자기의 재능을 믿고 국가를 경시하여 불궤를 음모하였는데, 그의 아들이 잡히게 되자 자기 휘하를 협박하고 한명련과 연합 모의하여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였다. 두 역적은 모두 용병(用兵)을 잘하여 ..

*작성자 : 보통 이괄의 난은 이괄의 원맨쇼로 그려지지만 당시의 기록을 보면 조정에선 이괄과 한명련을 같은 급으로 묶어서 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괄의 난의 과정을 다 풀기엔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괄의 난 주요과정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13, 같은 천민출신 장수인 정충신에게 패하다. 부하의 배신으로 죽다.

조선왕조실록 1624년 2월 14일 기사中

대장 신경진의 군관이 와서 이괄ㆍ한명련 두 역적이 죽은 정상을 아뢰었다. 상이 불러서 그 정상을 물으니 군관이 대답하기를,“적이 12일에 40여 기를 거느리고 광주에서 이천으로 향하여 경안역 근처에서 머물러 묵었는데 그의 수하 사람에게 참살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624년 2월 15일 기사中

적장 이수백ㆍ기익헌 등이 이괄ㆍ한명련 등을 베어가지고 행조에 와서 바쳤다.

14, 한명련의 아들 한윤. 후금으로 도망치다. 복수귀가 되어 조선침공의 선봉에 서다.

조선왕조실록 1624년 5월 16일 기사中

금부가 경외로 하여금 도망중인 역적 한윤ㆍ윤신을 현상금을 걸고 잡게 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한윤은 한명련의 아들이고..

조선왕조실록 1627년 1월 17일 기사中

방금 도망쳐 온 사람이 와서 고하기를 ‘노병이 어젯 밤에 의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전 창성 부사 박성인, 선사포 첨사 오성인 및 한윤이 다 적진에 있었으며

조선왕조실록 1722년 12월 21일 기사中

예전에 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서캐처럼 보잘것없는 자였으나, 이국으로 도망해 들어가 마침내 정묘년의 난을 불러 왔는데,

계곡집

한윤이 무슨 사단이 일어날 때마다 그 기회를 편승하여 문득 본국을 침략할 것을 청하곤 하는데 그 계책이 필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해당 글의 사료 내용 중 일부는 네이버 부흥 카페 길공구님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한명련의 아들 한윤의 이야기는 길공구님이 자세히 써주신 글이 있으니 흥미가 있으시다면 참고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명련의 인생사는 굉장히 드라마틱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미디어 매체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게 아쉬울 정도로요

천민-> 영웅-> 반역자

4개의 댓글

6 일 전

이괄 한명련 세트메뉴로만 알았는데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군요. 그 아들이 청나라로 망명한것도 이해가 갑니다.

0

한윤이 한명련의 아들이었구나

0
5 일 전

글 정말 잘 읽고잇어! 본문에 나와있는 김덕령도 혹시 쓸 생각있니!?

0
4 일 전

아버지의 복수는 아들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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