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개드립에 간 게임의 정치적 올바름 문제에 대한 소고

본 소고를 쓰게 한 최태섭의 글은 결국 크게 2가지의 논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게임은 결국 사회의 반영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는 게임이 자본을 이유로 '현실성'을 취사선택 하고 있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는 작금의 게임은 위선적이며, 동시에 자폐적이라고 말한다. 

 

사실 게임계에선 이런 비방 글들은 이제 흔하디 흔한 낙서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글들이 게임계를 덮쳐질 때마다 많은 '사회단체'에서 게임을 까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그 때마다 게임계는 골머리를 썩어왔다.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요즘 게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슈퍼라이트 유저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벼운 유저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사실 알피지를 아르피지라고 읽는 것도 있겠지만, 이러한 수집형 게임들 뿐 아니라 게임에 대한 설정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게임분석은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로 구분된다. 루돌로지는 게임성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 내러톨로지는 게임 전반에 관한 서사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배경설정은  많은 부분이 내러톨로지의 영역에 속한다. 천신과 마신이 나오고, 마왕의 독재에 봉기하는 등의 영역은 소설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게임의 내러톨로지도 소설이나 영화와 같이 쉽게 PC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최태섭 마냥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게임의 설정은 내러톨로지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루돌로지의 영역에도 게임의 설정은 영향을 미친다. 

루돌로지는 다시 크게 4가지 아곤, 알레아, 미믹크리, 일링크스로 나뉘는데 여기서 미믹크리는 모방을 뜻한다. 얼마나 현실적으로 재현하는지, 하나의 롤(Role)을 만들어서 그 역할을 얼마나 몰입하게끔 하는지를 뜻한다. 소꿉놀이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 미믹크리로 인한 가족의 모방과 재현성에 있고, 코스플레이 같은 것들 역시 게임이나 영화 속 캐릭터를 재현하는 것에 그 흥미가 동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게임의 단순 서사가 아닌 설정의 영역은 루돌로지와 내러톨러지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설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게임의 설정 하나하나에 유저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설정은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하나의 '재미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태섭의 글은 초반에 게임의 스토리 설정이 얼마나 허술하고 유저들이 관심이 없는지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글 전체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게임의 스토리 설정은 게임의 방향성 그 자체를 상징함과 동시에 유저들의 재미있는 놀이거리이며, 또한 유저들이 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하는 거대한 기둥으로서 작용한다. 

 

유저들이 얼마나 설정에 미쳐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게임' 이라고 불리는 던전 앤 파이터 QnA게시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설정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지 등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가능하며, 와우 게시판에서 누가 더 나쁘냐고 매일 싸워대는 사람들이나, 소녀전선의 스토리를 보며 눈물이 나오네 마네 하는 등의 심심찮게 보이는, 속칭 "오덕"들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게임의 메인설정은 게임성 평가 항목에서 빠져선 안되는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인 데다가, 특히 RPG라는 장르에 속해 있다면 더욱 더 무시할 수 없는 장르인 것이다. (애초에 테이블에서 오직 이야기로만 시작했던 롤플레이게임 장르를 말하면서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니...)

 

그렇게 설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게임개발사 역시 마법이나 이세계같은 현실 외부적 요인을 통해서 캐릭터의 설정을 핍진성 있게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현실 배경의 이야기에서는 최대한 고증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배경은 이미 '기초설정'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300살의 중학생과 같은 엘프 여전사는 이해할 수 있어도 2차 세계대전에서 의수를 단 여자 저격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마법적 능력으로 인한 비키니 갑옷은 이해할 수 있어도 1000만명이 넘는 한국 시민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흑인 레즈비언 비건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설정을 현실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순간 설정은 오롯이 현실의 법칙으로 따져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 현실의 영역으로 게임을 만들려면 전쟁게임은 거의 대부분 남자캐릭터만 있어야 하고, 몬스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등의 게임도 남자, 전투의 영역도 남자만 있어야 한다. 간혹 앞서말한 장르적 허용을 한다고 해도, 3대 300은 칠 것 같은 여성이 나와서 닭가슴살 먹으며 전투를 치뤄야 한다. 어찌되었던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게임의 설정은 매우 중요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본인이 대충보니까 아니라는 식의, 게임의 기본적 이해도 안되있는 사람이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난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게임 설정이 그렇게 안 중요하다면 왜 만들겠어요? 걍 예쁜 여캐나 움직이게 만들지?

 

3줄 요약

1. 최태섭 말대로 게이머들이 게임설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2. 게임의 기초설정은 게임의 재미 자체를 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3. 핍진성이 뭔지도 이해 못하면서 뭔 사회학을 하신다고?

15개의 댓글

2019.08.19

서울에서 흑인 레즈비언 비건이 주인공이 될수는 있음.

하지만 그건 납득이 가능할만한 배경이나 이야기가 있어야지.

물론 300살먹은 엘프여전사를 사람들이 납득하는 이유는 마법과 검의 세계와 같은 그 나름의 배경이나 이야기가 있기때문에 납득하고 집중할 수 있는건데.

1
2019.08.19
@개드립굉이

막말로 누가 말했듯이 전쟁게임에 의수달린 흑인여자저격수가 나오지 말라는법은 없음.

 

그러나 그 캐릭터가 나왔던 게임이 실제 전장의 분위기와 전쟁상황에 대한 높은 재현도를 보여주던 배틀필드이기 때문에 욕을 존나게 먹은거지.

 

만약 배틀필드가 아니라 울펜슈타인이었다면...

누구나 다 납득했을걸?

0
2019.08.20
@개드립굉이

맞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게임의 기초 스토리 설정이 중요한건데, 꼭 게임도 안하는 것들이 옆에서 지랄들을...ㅠㅜ

0
2019.08.20

최태성 그 예스24에 뜬 남페미맞냐

0
2019.08.20
@리트리버

ㅇㅇ 한국남자 작가이면서 예전에 100분토론 나왔던 작가

0
2019.08.20
@밥짓기 귀찮아

최근에 그래서 개소리하다가 비슷한계열인 노동쪽 정치인한테도 한 소리듣다가 결국 글삭튀함 ㅋㅋㅋ 개졸렬 ㅠㅠ

0
2019.08.20

게임을 잘 아는 유저들은 만듦새나 현질유도 같은 진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데

 

꼭 게임을 잘 모르는 새끼들이 중독세를 만들어서 예산을 따먹으려 든다던가 잘못된 사상을 퍼뜨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먹으려고 하지

1
2019.08.20
@아졸려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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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좋은 글 잘읽었습니당 비슷하게 생각은 해본적 있어서 더욱 공감되는 글이네용

0
2019.08.21

요약하자면 정치적올바름을탑재한 캐릭이라고해도

그 뒤를받쳐주는 배경과 과거가 맞는다면 문제가없을것이다라고 하는거지?

 

정확히말하자면 우리가 그 캐릭터를 이해할수있는 조건이 필요하다라는걸로 해석하면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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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3
@금나방

저는 일단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발달한 미래기술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오히려 인종계층보단 자본계층을 중심으로 도덕적 타락과 방종 등이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죠.

 

그렇다보니, 사이버펑크장르에선 특별한 설정이 없는 한, 성적문란함이라던지, 젠더문제에서 매우 자유롭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 트레일러에 남자가 레깅스를 입어서 고간이 튀어나와있는 광고판이 있음에도 문제가 되지 않죠. 원래 그런 세상이니까요. 설사 그 남자가 동성애자이던, 트랜스 젠더이건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나 중세 기독교 배경의 세상에서 동성애자가 자랑스럽게 돌아다닌다면? 그건 전혀다른 설정이나 접근이 필요하겠죠?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을테니까요.

 

아니면 배경이 그닥 필요하지 않은 게임이라면 또 달라질 지도 모릅니다. 예를들어 레식의 캐릭터의 배경이 무엇이던, 성별이 무엇이건 우린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이것 역시 게임의 스토리 설정이나 게임설정이 그 캐릭터의 과거나 성격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0
2019.08.24
@밥짓기 귀찮아

굳굳굳

0
2019.08.21

잘 읽었엉.

나도 게임이 가급적 정치적올바름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인데

본문 서두에 제시된 최태섭의 2가지 논점 중

첫째인 "게임은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이 현실성의 취사선택을 문제삼은 두번째 논점을 반박하는데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슴으로는 게임이 굳이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나? 연예인이나 정치인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소규모 인디 게임이 아닌 대규모의 유저를 거느리고 있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고 있는 롤과 같은 게임이라면 자신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

 

네 의견이 궁금하다.

0
2019.08.23
@싸우지마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아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 분명히 일정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그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기존의 그 기업의 게임을 구입해주던 게이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행동이나 발언은 매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롤을 예시로 들어주셨으니 롤을 가져오자면, 바루스의 설정 변경등의 예시는 완벽히 기업이 게이머들에게 책임을 전가한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바루스의 팬들이나 설정을 무너트리고, 게이로 만드는 행위는 기업의 입장에선 우린 이렇게 생각해준다 라는 사회적 생색은 가능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선 정말 배신행위잖아요?

 

박가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말에 가장 공감했던 것이 '왜 PC주의자들은 자신들 만의 창조물을 가지지 않고, 기존의 것들을 망가트리려 하는가?'라는 식의 논평이 있었는데 그 말은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한다고는 저도 생각하지만, 그게 강요가 되선 안 될 뿐더러 기존의 것을 파괴하면서 존재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1
2019.08.25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기업의 문제라... 날카로운 판단인 것 같네요.

확실히 게이머들로 하여금 그런 PC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게 거부감이 들죠.

저도 극성 사회운동가들의 문제점 중 하나가 설득이 아닌 강요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드러운 방식으로 문화에 침투하려 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만드는 건지...

페미니즘, PC주의, 비건 등등...

분명히 어느 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는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겠지만,

그들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부의 과격한 움직임이 그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 자체가 그러한 움직임을 용인하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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