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번역] 회전하는 오로나민C [6MB+]





갑작스럽지만 이 사진을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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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서 귀가하다가 무심코 찍은 사진입니다.
자판기의 음료 샘플이 기울어 있는 게 재밌어서 촬영했습니다. 꽐라가 되면 아무거나 재밌어지는 거 무섭죠.

계속해서 같은 자판기의 다음날 상황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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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습니까? '우향우'하고 있는 오로나민C입니다. 180도 회전해서 엉덩이를 이쪽으로 들이대고 있습니다.
신기해서 다음날 또 상태를 보러 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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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정면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뭐야 이거 무서워.

참고로 다른 샘플은 변한 게 없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오로나민C만 회전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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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기발랄하게 활동하는 오로나민C.

왜 도는 거지. 제멋대로 도는 건지, 아니면 누가 돌리고 있는 건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따라가 봐도 "그래서 대체 왜!!"에 맞닥뜨리고 맙니다.


저는 이 회전하는 오로나민C의 진상이 궁금하여 관찰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설 설정>

왜 오로나민C가 회전하는 건지 가설을 세워 봤습니다.


[저절로 돌고 있는 경우 추측 가능한 원인]

1. 자판기 내부의 인버터가 가동할 때의 진동

2. 음료 보충을 위해 자판기를 여닫을 때의 진동

3. 음료가 출구로 떨어질 때의 진동


[인위적으로 회전시키고 있는 경우 추측 가능한 원인]

1. 오로나민C를 돌리고 싶은 사람이 하는 중이다


오로나민C를 회전시키고 싶은 사람이 만약 있다면 만나 보고 싶네요.




<오로나민C 매일 관찰하기>

다음날부터 관찰을 재개했습니다.

9/5~9/7 총 3일간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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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다. 자세히 안 보면 모를 정도로 소심하게 회전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섬세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저 또한 대응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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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단위로 움직이는 것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오로나민C의 둘레를 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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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측 결과를 오로나민C 치수표로 정리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사무직에 몸담았지만 엑셀로 오로나민C 라벨을 그려 보는 건 처음이라 아주 신선한 기분으로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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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나민C 치수표 덕분에 다음과 같은 움직임이 밝혀졌습니다.

*9/5~9/6 : 9mm(시계 방향)
*9/6~9/7 : 7mm(시계 방향)


오로나민C 대체로 비슷한 페이스로 천천히 돌고 있는 듯합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자판기 내부의 인버터가 정기적으로 진동하는 탓에 오로나민C도 슬쩍슬쩍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하루만에 180도 회전했던 첫날의 현상은 뭐였는지 설명이 안 됩니다.

조금 더 관찰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관찰을 재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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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소녀 같네요. 갸우뚱해 보거나 뒤돌아 보는 등등 천진한 움직임은 소녀 그 자체. 갑자기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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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mm도 안 움직이는 패턴도 있군요. 뭐냐고.


저는 화가 났습니다.

쓸데없었던 오로나민C 치수표에게 말입니다. mm로 재 봤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런 걸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지...!



<오로나민C 본체를 쭉 관찰해 보기>

혼란스러워져서 다시 한 번 샘플 자체를 꼼꼼히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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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오로나민C는 진짜 유리병이었습니다.

오른쪽 오로나민C는 얇은 플라스틱 소재이고 그냥 봐도 가벼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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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휘청합니다. 가벼운 만큼 진동 따위에 영향을 받기 쉬운 거지요.


그러니 같은 오로나민C라도 틀림없이 오른쪽의 플라스틱만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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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보고 깨달았는데 고정쇠와 병 사이에 틈이 있었습니다. 느슨한 걸 보니 원래는 캔 사이즈를 고정했던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오른쪽 오로나민C는 무게가 가벼워 단단히 고정되지 않아 애초부터 움직이기 쉬운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움직이기 쉬운 상태=어떤 계기로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라는 연광성이 농후해졌네요.

진상에 한 발자국 다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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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했더니 유리로 된 오로나민C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놀랐어?"라고 말할 때가 아니라구.

'소재가 가벼워 움직이기 쉽다'라는 전제도 뒤집어져 버렸습니다. 절망입니다.



<점원에게 직접 원인을 물어보기>

실은 이 자판기, 편의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므로 편의점 직원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지만요.

알면서 왜 안 그랬냐면, 8시에 문을 닫아서 퇴근길에 들르기에는 그다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먹고 휴일 낮에 편의점으로 취재를 갔습니다.


――죄송한데요, 저기, 바깥에 자판기 있잖아요….

"네?"

――바깥에 있는 자판기 때문에 그런데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예에."


――자판기의 오로나민C 샘플이, 그,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날마다 보고 있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요….

"엥, 그런가요? 헐?"

――아, 괜찮습니다. 실례할게요. 감사합니다.


중간에 갑자기 괜찮은 듯한 기분이 돼서 취재는 끝났습니다.

직원 분이 오로나민C의 움직임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이새키"라는 분위기를 찌릿찌릿 느꼈기 때문에, 괜찮아졌습니다.


취재 결과 음료 보충시에 오로나민C가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직원이 보충할 때 알아차리고 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점점 진상은 미궁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움직여 보기>

남은 건 '음료 구매시 출구로 떨어지는 충격으로 오로나민C가 움직인다'라는 가설입니다. 실은 이거 움직일 가능성이 꽤 크지 않나 싶었습니다.

저, 사겠습니다. 스스로 오로나민C를 움직여 보겠습니다.

제 눈 앞에서 오로나민C가 움직이는 순간을 당당히 목격해 줄 겁니다.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두고 구입 버튼을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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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입니다. 음료가 낙하한 순간이지만 움직임이 전혀 없어서 정지화면처럼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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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나민C가 회전하는 자판기에서 야심한 밤에 호지차를 사는 여자, 수상쩍겠죠.

열다섯 병쯤 사고 관뒀습니다. 오로나민C가 1mm도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됐어, 참패 인정!



<지금까지의 조사 정리>

1. 자판기 내부의 인버터가 가동할 때의 진동?
: mm단위로 움직인 날은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돌아간 날도 있다.

2. 음료 보충으로 자판기를 여닫을 때의 진동?
: 직원이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가능성은 옅다.

3. 음료가 출구로 떨어진 때의 진동?
: 아무리 사도 오로나민C는 지장보살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4. 오로나민C를 돌리고 싶은 사람이 하는 중이다?
: 그런 사람은 없고, 만약 있다면 그건 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

정리 : 오로나민C가 도는 의미는 모르겠고, 무섭다



<그래도 오로나민C는 돈다>

회전하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전혀 모르지만, 저는 오로나민C를 계속 살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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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을 보는 듯한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지켜봤습니다.

늦여름에 관찰을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겨울의 문턱에 와 있는 계절.


시간의 흐름은 잔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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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나민C가 스미야키 카페오레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오로나민C…!

갑작스런 이별에 쇼크로 무릎부터 넘어질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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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따뜻한 음료로 바꿀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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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어느새 자판기 본체도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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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긴 꿈이라도 꿨던 걸까요.


감사합니다.



출처 http://oni-gawara.hatenablog.com/entry/2017/12/23/230602







14개의 댓글

2018.01.01
결국 끝장은못봤네
0
2018.01.01
뭔가 귀엽닼ㅋㅋㅋㅋ
0
2018.01.02
냉장고 콤프의 진동때문이겠지
0
2018.01.02
@네비두라
그게 맞는듯
0
2018.01.04
@네비두라
수금할때 문 열고 닫을때 충격일꺼 같은데?
0
2018.01.02
ㅋㅋㅋㅋㅋ개웃기네
0
2018.01.02
채워넣고 문 닫으면서 탕 하는거때문아님?
기묘하네 ㅋㅋㅋ
0
2018.01.02
@백탁
이것도 맞는듯
0
2018.01.02
@백탁
이게 젤 그럴듯하다 ㅋㅋㅋㅋ 누가 저 일본인한테 전해줘
0
2018.01.03
ㅋㅋㅋㅋㅋㅋㅋ
0
2018.01.03
저거 자판기 주인은 열수 있으니까 재미삼아 돌리는거 아닐까?
0
2018.01.04
편의점인데 8시까지만 열다가 결국은 망했다니..
도대체 얼마나 시골인거지
0
2018.01.04
재미따 ㅋㅋㅋ
0
2018.01.07
기승전망 ㅋㅋㅋ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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