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아 또 속냐!

일단 근본적인 문제는 두 히어로가 대립하는 이유이다. 배트맨은 세상에 선한 사람은 없다고 믿으며 슈퍼맨이 악에 물든다면 큰 위험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슈퍼맨을 죽이려한다. 슈퍼맨은.. 루터가 협박해서 배트맨과 싸운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이라고하면 단순히 툭탁거리고 건물 몇채 날아가는걸 보려고하는건 아닐것이다. 최소한 둘이 상반되는 주제를 들고 싸웠다면 흥미진진했을지도 모른다. 시빌워가 히어로들끼리의 싸움을 다뤘음에도 이렇게 상반된 대우를 받는것을 보면 배트맨vs슈퍼맨은 초점부터 잘못잡은 것 같다.
슈퍼맨은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맨오브스틸에서 영웅으로서의 탄생과정과 가치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배트맨은 이번이 첫 등장이다. 사실 매번 배트맨이 나올때마다 [부모님이 총을 맞는다-흩어지는 진주알-괴로워하는 어린 브루스-고뇌,성장,조잡한 복면에서부터 간지나는 가면까지]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이미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더 좋을 수 없이 정리를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dc의 간판격인 히어로를 툭 던져놓은것은 별로였다. 마치 감독이 "얘 배트맨임. 누군지 다 알지? 부모님 죽고 선과 악에 대해 갈등하고 블라블라블라...근데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얘가 슈퍼맨이랑 맞짱을 뜬다!!"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dc히어로가 마블히어로와 다른 점은 바로 내면의 어두운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심오한 캐릭터인가? 악인에 의해 부모가 죽었지만 자신의 신념에 의해 총을 쓰지도 않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는다(사지를 부러뜨리기는 하지만) 때로는 이런 신념 때문에 스스로 벽에 부딪히게되고 갈등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적에게 총을 쏘고 이렇다할 고뇌조차 없이 "세상에 선한 사람은 없어! 슈퍼맨도 나쁠거야! 나 슈퍼맨 죽일거야!"하는 배트맨은 이게 내가 아는 그 영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스나이더 감독이 새롭게 해석한 배트맨을 보여주기를 원했다면 배트맨의 영화를 먼저 보여줘야하지 않았나싶다. 슈퍼맨과 렉스루터, 그리고 원더우먼과 무수한 떡밥들 사이에서 배트맨이라는 인물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새롭게 탄생한 인물이 렉스루터 아닐까싶다. 그 동안에는 비열함과 냉철한 이성으로 수퍼맨을 괴롭혔던 중년의 머머리였다면, 이번 렉스루터는 머리숱과 똘끼를 채워넣었다. 오히려 슈퍼맨과 배트맨보다 더 눈이 갈 정도로 제시아이젠버그의 연기가 돋보일정도였다. 시종일관 정서불안인것처럼 떠벌거리고 감정에 북받치는 모습이 '똘끼 넘치는 악당'으로는 제격이었다. 어쩌면 새로운 조커를 만드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그저 똥을 한바가지 싸놓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초라한 마무리를 지었다.

영화는 두 영웅의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내지 않고 단편적인 모습들만 던져주며 얼기설기 이야기를 엮어낸다. 그리고 관객들을 놀라게 하려고 저스티스 리그의 떡밥도 중간 중간 껴준다. 하지만 이건 영화의 흐름을 흐려놓을 뿐이다. 그냥 이름만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배트맨 앞에 플래시로 보이는 놈이 나타난다. 원더우먼은 아예 차례 차례 저스티스리그의 일원이 될 인물들의 파일을 열어본다. 차라리 쿠키 영상에 끼워넣었다면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치 A와 B가 현피를 뜨는데 옆에서 끝내주게 재밌는 다른게 있다며 방해하는 것 같다.

디씨가 슈퍼맨리턴즈로 칼날을 잡고 그린랜턴으로 할복수준까지 이르른 지금 입이 딱 벌어질만한 영화가 탄생하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영화들(그렇게 이번 영화에서 광고했던)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역시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