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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인) 와인이 맛이 없는 이유.txt

갓 스무 살이 된 개붕쟝 소주에 본격적으로 도전한다. 졸라 쓰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달콤하기에 진정한 어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맥주도 마셔본다. 쌉싸름한 게 콜라보다 별맛은 없는 거 같은데 마시다 보니 또 맛있다.

소맥도 말아본다. 목도 안 따갑고 이제 좀 술 같다. 다음날 숙취로 다 토해본다.

 

막걸리도 마셔보고 과일 소주도 마셔보고 콜라도 타보고 토닉워터도 타보고 뭐 별짓 다 해본다.

그러다 슬슬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술을 도전해보게 된다. 

 

"와 머선일이고! 속 다 탄다! 내 식도가 느껴진다!"

"아이고 개붕아 얼음에 타 마셔야지 그게 온더락인기라! 그런데 스트레이트로 마시네? 니 남자 맞네!"

역시 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아빠 양주 진열장에 있는 거 몰래 빼먹었다더니 달라도 뭐가 다르다. 그렇게 노란 양주도 마셔본다.(이맘때쯤 엡솔루트 보드카도 마셔본다. 깔끔하네!)

 

그런데 아직 한 놈이 남았다. 바로 와인. 첫 여자친구와 함께 100일 기념으로 레스토랑에서 와인도 한 번 마셔보려고 했다.

 

"저기 와인도 있나요?"

"네 손님 여기 와인 리스트입니다."

'X됐따...와 씨'

 

나름 영어 공부를 했는데도 읽을 수 있는 단어는 "프랑스", "레드", "이태리" 그리고 년도, 가격(VAT 미포함) 나머지는 다 읽지도 못할 외국어...

가격은 심지어 10만 원을 가뿐히 넘어가는 게 부지기수. 큰일이다. 결국 고민 끝에 끄트머리나 제일 위에 있는 글래스 와인으로 한 잔씩 시킨다.

사진도 찍고 건배도 하고 사전의식 다 하고 나서 마셨는데 웬걸? 별맛을 느끼지 못한다. '뭐지? 비싸기는 오지게 비싼데 그냥 포도 주스에 소주 타 마시는 게 낫겠네.' 와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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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사마!!! 사기꾼 새끼..."

 

텁텁하기만 하고 단맛은 커녕 떫기만 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허세 같고 가라 같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일찍 결혼하는 친구들 호텔 결혼식에 놀러 가서 몇 번 와인을 얻어 먹어보고 어디 놀러 갈 때나 집에서 술 마실 때 양주 진열장에 함께 묵혀왔던 선물 받은 와인도 꺼내 마셔본다. 맛이 그저 그렇다. 

 

내가 마신 와인이 별로 좋은 와인이 아닌가 싶어 나름 와인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와인 입문자 추천 마트 가성비 와인'도 몇 개 사서 마셔보지만 나하고는 별로 안 맞는 듯하다. 그때부터 와인은 허세용, 인스타 업로드용 술 정도로 인식이 박힌다.

 

마실 때마다 와인 글래스, 와인오프너가 필요해 번거롭고 달지도 쓰지도 않은 애매한 데다가 비싸기는 비싸고 과실주라 다음날 숙취는 더 심한 것 같고...차라리 술에 돈 지랄 할꺼면 위스키를 마시지 암요암요하고 증류주 계열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음먹고 입문해보려고 해도 알아야 할 건 얼마나 많은지 공부, 일하기도 바쁜데 언제다 공부하고 앉았나... 싶다. 물론 다른 사례들도 아주 많겠지만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와인에 좋은 기억들이 많이 없다. 가끔 와인 매니아를 자처하는 친구가 나에게 "니가 좋은 와인을 안 마셔봐서 그래~" 라고 말하지만 그럴때마다 "응 좋은 거 니나 많~이 잡수세요"라고 대답하게 된다.

 

이 모든 원흉은 어떤 새끼 때문이냐 바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줄여서 까쇼)" 이 새끼가 범인이다.

 

이 새끼가 바로 한남 개붕이들과 와인을 이간질한 주범이다. 와인 좀 마셔본 개붕이는 이 머선 개소리고! 하고 팔짝 뛰겠지만 설명을 다 들어보면 납득할 것이다.

 

이 까가 놈은 적응력과 성장력이 강하고 병충해에도 강해 와인 제조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포도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워낙 생명력이 강한 데다가 양조자의 실력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져 초저가 와인부터 초고가 와인에까지 두루두루 쓰인다. 와인 생산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모두 재배한다. 이 말이 거짓말인 것 같으면 당장 대형마트 와인코너 가서 아무 와인이나 꺼내서 품종을 찾아보자. 높은 확률로 'Cabernet Sauvignon'이라고  적혀있을 것이다. 워낙 많이 재배하고 와인으로 만들다 보니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너무나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수입하는 와인 중에서도 까쇼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피노 누아(Pinot Noir)" 이 년은 공범이다.(사실 사진으로 보면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피노 누아 100%로 만든 프랑스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ee Conti)의 리쉬브루(Richebourg) 1999년산을 마셨을 때의 그 맛과 을 표현한 장면이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개붕이들이 이런 맛과 향을 와인에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피노 누아는 위의 까쇼랑은 정반대의 특징이 많다. 껍질이 얇아 기후, 열과 습도에 민감하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 지가 싫은 곳에서는 잘 자라지도 않는다. 당연히 손이 많이 가고 값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별명은 공주님 그러다 보니 '값싸고 좋은 피노 누아 와인'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피노누아를 마셔보려면 최~~소 5만 원은 줘야 시작이다.(물론 끝은 부르는 게 값.)

 

정리해보면 까쇼는 무난무난하고 피노 누아는 까탈스럽다. 즉 우리 개붕이가 마시고 실망했을 와인은 아마도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와인일 것이다.

내 기억에도 "와인 참 떫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유는 바로 "껍질이 굵어서"...

 

포도의 껍질과 줄기에는 '타닌(tannin, 탄닌) '이 많다. 떫은 감에 듬뿍 들어 있는 것도 바로 '타닌'. 특히 까쇼는 '타닌'이 많은 편이다.(우리 와인 업계에서는 강인한, 남성적인 와인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달콤하고 산뜻하고 꽃향기를 기대했는데 떫은 포도 주스+소주 같은 것을 마셨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그렇다면 왜 우리는 떫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마실 수밖에 없었을까.. 문제는 이다. 

 

와인은 출고가격(수입 신고가격)에 주세 30%가 부과되고, 여기에 주세의 10%인 교육세가 붙고, 부가세(원가+주세+교육세의 10%)까지 붙어서 총 세금을 원가 대비 46%가량 내야 한다. 만약 출고가 1만 원짜리 ㄱ와인과 10만 원짜리 ㄴ와인이 있다면, ㄱ엔 세금이 약 5천 원, ㄴ엔 세금이 약 5만 원이 붙게 된다. 여기에 유통비용과 판매마진까지 고려한다면 ㄱ은 2만 원, ㄴ은 20만 원 정도로 시중에 팔리게 된다. ㄱ와인과 ㄴ와인의 출고가는 9만 원 차이지만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은 2배인 18만 원 차이가 되는 셈이다. 비싼 와인일수록 더 비싸진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와인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단체 손님용, 선물용, 글래스 와인(하우스 와인) 정도다. 공주님인 피노 누아를 선보이기에는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원산지, 품종도 알아보기 힘든 싸구려 와인은 내기 어렵다. 그래서 절충안이 바로 고급 와인에도 자주 쓰이고 합리적인 가격대인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이제 왜 우리가 피노 누아 대신에 까쇼를 마셔야 했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떫은 까쇼를 굳이 돈주고 마시지?"

 

우리는 떫기만 했던 감이 시간이 지나고 숙성되면서 점점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한 맛만 남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떫은 까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맛이 난다. 당연히 잘 숙성된 까쇼 와인은 비싸다. 그리고 싸게 샀더라도 숙성될 때까지 보관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아래는 미국 유명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WS)'에서 발표하는 '빈티지 차트' 중 캘리포니아 카베르네 소비뇽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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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작황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고 점수를 매기고, 언제 마시면 좋을지 나와 있다. 와인 스펙테이터가 말하길 현재 기준으로 잘 보관, 숙성된 2006년  캘리포니아/나파 밸리 까쇼가 마시기 딱 좋단다.  장장 14년간 보관해야 비로소 마시기 좋다는 뜻이다.

 

혹 어떤 개붕이는 우리 집 양주 진열장에 잘 보관했는데 왜 맛이 형편없냐! 구라아님? 하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열에 민감한 와인에 한국의 여름은 너무 덥고 한국의 겨울은 너무 덥다. 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오랫동안 타닌이 많은 와인을 보관할 여력도 없고 판매는 해야겠고 하다보니 아직 기다려야 할 카베르네 소비뇽들이 와린이들에게 판매되고 있고 와인은 떫고 맛없고 비싸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만들게 된다.  즉, 덜 익은 감을 곶감, 단감, 홍시인 줄 알고 먹어왔던 것.

 

정리

1. 산뜻하고 향이 좋고 달큰한 것은 피노 누아. 피노 누아는 비싸다.

2. 구색을 맞추기에 가장 알맞은 품종은 무난한 카베르네 소비뇽.

3. 카베르네 소비뇽은 숙성이 안되면 떫다. 숙성하려면 비싸진다.

 

결론

1. 떫은 맛이 싫고 비싼 돈 들이기 싫다면 타닌이 적은 품종의 와인을 찾아보자!

2. 거품도 당연히 있지만 와인도 어느정도 돈값은 한다. 

3. 자기 딴에는 억울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용서해주자.

 

207개의 댓글

2021.02.02
@누구신교

포도주 원료의 당도가 부족하면 도수가 낮거나 가당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걸거야 ㅋㅋ 물론 맛을 위해 일부로 숙성을 중지시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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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야떼미로

단거좋아하는데 막걸리처럼 단 포도주 먹어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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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누구신교

와인은 살짝 단 것부터 오지게 단 것 까지 있는데 스파클링 와인 스윗한 거 마셔보면 막걸리 정도 단 맛 나지 않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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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야떼미로

비싼건 비싼거대로 싼건 싼거대로 떫고 다라이하고 그나마 향만 즐길만한데 미미하기만해서 개씹노맛이었는데 궁금하긴하네

포도주스+소주는 맛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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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누구신교

그렇잖아도 이 글을 먼저 쓸까 스윗한 와인에 대해서 먼저 쓸까 고민했었는데 조만간 글 한 번 써볼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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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야떼미로

보고 와인사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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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누구신교

제일 무난한 건 '모스카토 다스티'니까 고거부터 츄라이츄라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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