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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시기 고려 왕들의 국운을 건 도박

 

 

 

 

수십년간의 대몽항쟁 끝에 결국 고려 조정은 몽골에 항복을 결심한다.

 

 당시 고려 왕이었던 고종은 태자 (훗날 원종) 을 당시 몽골의 대칸이었던 몽케 칸에게 보내 항복의 뜻을 표명하려 한다

 

 

몽골군1.jpg

 

 

 그런데 태자가 북상하던 그 때, 몽케 칸이 갑작스레 사망한다.

 

 몽케 칸은 생전 자신의 막내 동생인 아리크 부카를 상당히 아꼈고,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해 둔 상황이었다.

 

 아리크 부카는 카라코룸에서 대칸을 선출하는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해 몽골 대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칸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고려의 태자는 카라코룸으로 가던 발걸음을 중국으로 돌린다.

 

 중국 남부의 악양까지 6천리 길을 걸어간 태자는, 총독으로 머물고 있던 몽케 칸의 넷째 동생을 만난다.

 

 이 넷째는 본래 남송의 정벌을 명령받았지만,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려다 몽케 칸에게 좌천당해 황위와는 멀어진 상황이었다.

 

 황위와 가깝다고는 볼 수 없는 이 넷째에게 고려는 나라의 운명을 건 도박을 건다.

 

 그리고 이 넷째 동생이 훗날의 쿠빌라이 칸이 된다.

 

 

쿠빌라이3.jpg

 

 

 "고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 당 태종이 친정하였음에도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그 세자가 스스로 내게 왔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쿠빌라이는 크게 기뻐하며 태자를 후대한다. 이후 태자는 고려로 돌아가 원종이 되었고, 5년 후 쿠빌라이는 아리크 부카와의 긴 싸움을 끝내고

 

  몽골제국 전체의 황제로 즉위한다.

 

 

쿠빌라이1.jpg

 

 

  " 고려가 요구하는 6가지 조건을 전부 허가한다. 몽골의 군대와 다루가치를 모두 철수하며, 고려는 국호와 사직을 보존한다.

   

    또한 의관과 풍속을 몽골식으로 고치지 않아도 좋다 "

 

 

 전례없는 대우에 이어 쿠빌라이는 자신의 막내딸 제국대장공주와 원종의 아들 충렬왕을 결혼시킨다.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즈칸 직계 혈족인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몽골의 웬만한 대귀족이 아니면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황족이었다.

 

 실제로 쿠빌라이의 사위 중 비 몽골인 출신은 충렬왕 단 한 명 뿐이다.

 

 칭기즈칸의 직계혈통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적이었다. 황금씨족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칸을 칭할 수 없었다.

 

 명나라 수도를 털고 황제를 붙잡는 토목보의 변을 일으킨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는, 황금씨족이 아니면서 감히 칸을 참칭했다는 이유로 부하에게

 

 살해당한다. 티무르 제국을 만든 그 티무르조차 황금씨족의 부마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결혼으로 고려 왕은 황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차기 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연회.jpg

 

 

 어려운 순간에 쿠빌라이를 지지했던데다, 이제 황제의 사위가 된 고려왕의 서열은 상당했다.

 

 원나라 황실이 연회를 열면 서열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이 때 충렬왕의 제국 서열은 7위였다.

 

 쿠빌라이의 아들이 12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서열이었다.

 

 이후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그 아들 테무르가 원 성종으로 즉위하자, 황제의 고모부가 된 충렬왕의 서열은 4위까지 올라간다.

 

 

 

충선.jpg

 

 이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충선왕이다.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로 태어난 충선왕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제국은 점점 팽창하고, 궁 내의 정치세력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쿠빌라이 칸의 사망 후에도 고려가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는 원 황실의 일족인 카이샨과 아유르바리바드와 형제 이상으로 가까이 지냈다.

 

 

몽골1.jpg

 

 

 

  武宗仁宗龍潛與王同臥同起晝夜不相離 (<益齋亂藁> 卷9上「忠憲世家」)

 

 "원 무종 (카이샨) 과 인종 (아유르바리바드) 는 잠룡 (즉위 이전) 시절 충선왕과 더불어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밤낮으로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후계자가 없던 성종 테무르가 병사하자, 몽골 황실은 다시 황위 다툼에 휩싸였다.

 

 당시 유력한 후보는 황후이자 황태후였던 불루칸과 좌승상 아쿠다이가  강력하게 밀어주던 안서왕 아난다였다.

 

 심지어 아버지 충렬왕도 아난다를 지지했다.

 

 하지만 충선왕은 여기서 다시 한번 모험을 한다. 형제처럼 지내던 카이샨과 아유르바리바드의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는 이 두번째 도박에도 성공한다.

 

 치열한 쿠데타 끝에 카이샨의 세력이 승리했고, 충선왕은 반대 세력을 직접 숙청하는 일을 맡을 정도로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몽골2.jpg

 

 

 "...내가 연전에 황제 황태후 황태자를 우러러 의지하여 공을 일으키고 황제 폐하를 옹위하여 그 뜻과 일을 도와 사해를 숙청하였다..."

 

 "肇自祖王統合三韓臣服述職者尙矣.逮我父王上國顧遇夐異於前獲承釐降厚沐寵光孤亦入侍繼爲駙馬歷衛三朝于今十有九年越於年前仰憑皇帝皇太后

 

  皇太子奮庸熙載肅淸四海至於本國奸佞之儔亦皆蕩除內外安寧. (<高麗史> 33卷「世家33-忠宣王1」)

 

 

 "...좌승상 아쿠다이 등이 안서왕 아난다를 옹립하여 정변을 도모하거늘, 태자가 그것을 알고 하루 먼저 아쿠다이 등을 잡아서

 

 충선왕 등으로 하여금 이들을 잡아 처형하게 하였다. 5월에 회녕왕이 황제위에 나아가니 이가 무종이다...."

 

 "左丞相阿忽台平章八都馬辛等謀奉安西王阿難達爲亂太子知其謀先一日執阿忽台等使大王都刺院使別不花及王按誅之.

 

  五月皇姪懷寧王卽皇帝位是謂武宗. <高麗史>33卷-世家33-忠宣王1" 

 

 카이샨은 즉위해 원 무종이 되었고, 이후 아유르바리바드가 원 인종으로 황위를 잇는다.

 

 

 일등 공신이 된 충선왕은 만주의 왕인 심양왕에 봉해졌다. 

 

 같은 해 아버지로부터 고려왕 작위 또한 물려받아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자가 된다.

 

 

 

원 무종.jpg

 

 "아! 그대 추충규의협모좌운공신 개부 의동삼사 정동행중서성좌승상 부마 왕장(王璋 : 충선왕 )은 세조(世祖 : 쿠빌라이 칸) 의 외손으로써

 

 선대의 귀한 사위가 되어 바야흐로 짐이 선조의 사직을 계승하는 위업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짐을 크게 도와주었도다.

 

 선행에 상을 주고 악행에 벌을 주는 공정함과 어버이에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대절(大節)을 상주기 위해 특별히

 

 개부 의동삼사 태자태보 상주국 부마도위(開府 儀同三司 太子太傅 上柱國 駙馬都尉)를 수여하며 심양왕으로 진봉하노라.”

 

 

 “咨! 爾推忠揆義協謀佐運功臣開府儀同三司征東行中書省左丞相駙馬王璋, 世祖外孫, 先朝貴壻, 方朕纘承之始, 寔參翊贊之功. 以賞善罰惡之至公,

 

 保孝父忠君之大節, 可特授開府儀同三司太子太傅上柱國駙馬都尉. 進封瀋陽王.”

 

 

 "또한 중서성(中書省)에 들어가 정사에 참의하게 하고 김호부 옥대 칠보대 벽전금대 및 황금 500량 은 5000량을 하사하였으며, 황후나 황태자도 또한

 

 충선왕을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게 하여 각종 보물과 비단 등 갖은 귀한 하사품들은 가히 이루다 헤아리지 못 할 만큼 되었다.."

 

 又令入中書省叅議政事賜金虎符玉帶七寶帶碧鈿金帶及黃金五百兩銀五千兩. 皇后皇太子亦寵待所賜珍寶錦綺未可勝計

 

 

 

이 시점에서 충선왕의 위치를 알아보자면.

 

고려왕 : 고려의 왕

 

심양왕 : 만주의 왕

 

추충규의협모좌운공신 : 황제 옹립 일등공신

 

태자태부 : 황태자의 스승

 

개부 : 스스로 막부를 설치하고 그 막료와 부속을 임명할 권한. 대장군 등이 자기 부를 개설할 때 사용

 

의동삼사 : 최고위 관료인 삼공 (태사, 태보, 태부) 와 동등한 대우를 받음

 

정동행중서성 :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의 장

 

좌승상 : 제국의 좌승상

 

부마 : 부마도위. 황제의 사위

 

송나라 황제가 개부의동삼사를 인정해준 사람은 역사를 통틀어 4명뿐일 정도로

 

어마무시한 관직이란 걸 고려할 때, 고려왕의 정치적 위치는 거의 황제 바로 다음 서열이었다.

 

후대의 고려 왕들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 선조인 태위왕(충선왕)께서 인종 황제를 도와 내란을 평정하고 나아가 앙골(지명)에 이르러 무종황제를 영입하매 천자를 세우는 일에

 

1등 공신이 되었나이다..."

 

(大德)末我祖太尉王佐仁宗皇帝平定內亂行至央骨迎立武宗皇帝爲定策一等功臣.(<高麗史>36卷「世家36-忠惠王」)

 

코토.jpg

 

 

그렇게 12년간 권력을 누리던 충선왕이었지만, 자신이 옹립한 인종이 사망하고 아들인 영종이 즉위하자 점차 밀려나게 된다.

 

결국 고려 출신 환관이었던 임빠이엔토쿠스와 인종의 비였던 고려인 바얀 코토크의 모략으로 티베트까지 유배를 가게 된 충선왕은

 

이후 자신의 매부인 이순 테무르가 황제로 즉위하며 유배에서 풀려나나 2년 후 사망한다.

 

충선왕은 고려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은 채, 제국의 수도에서 머물며 교지를 내려 고려를 다스렸다.

 

어쩌면 충선왕은 자신이 제국의 중앙귀족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게 고려의 입지에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원 간섭기, 고려 왕들은 격동하는 정세에 기민하고 대담하게 대응했다. 

 

비록 고려의 멸망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막지 못했지만, 그저 무력하게 스러져간 수많은 망국의 왕족들을 보다보면

 

고려왕들의 이런 행보가 새롭게 느껴진다

 

105개의 댓글

2019.01.27

고려 외교는 다른때보다 좀 더 재밌는거같음

0
2019.01.27

마르코 폴로 드라마 고증 좋음? 여기 짤에 나온 인물이 다 그 사람들이었구나

0
@실직고

비쥬얼 고증은 모르겠고 스토리 고증은 안드로메다임 ㅋㅋ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라고 보면됨

0
2019.02.03

고려사좋아하면 이글도 봐바 내가 예전에 올린글인데 흥미로움

https://www.dogdrip.net/138922229

0
@블랭키멍멍

고려사 레전드급 글 아님? ㅋㅋ 인터넷에서 고려말기 다루는 글은 거의 다 이게 시발점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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