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즐겨찾기
최근 방문 게시판

몽골제국 시기 고려 왕들의 국운을 건 도박

 

 

 

 

수십년간의 대몽항쟁 끝에 결국 고려 조정은 몽골에 항복을 결심한다.

 

 당시 고려 왕이었던 고종은 태자 (훗날 원종) 을 당시 몽골의 대칸이었던 몽케 칸에게 보내 항복의 뜻을 표명하려 한다

 

 

몽골군1.jpg

 

 

 그런데 태자가 북상하던 그 때, 몽케 칸이 갑작스레 사망한다.

 

 몽케 칸은 생전 자신의 막내 동생인 아리크 부카를 상당히 아꼈고,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해 둔 상황이었다.

 

 아리크 부카는 카라코룸에서 대칸을 선출하는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해 몽골 대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칸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고려의 태자는 카라코룸으로 가던 발걸음을 중국으로 돌린다.

 

 중국 남부의 악양까지 6천리 길을 걸어간 태자는, 총독으로 머물고 있던 몽케 칸의 넷째 동생을 만난다.

 

 이 넷째는 본래 남송의 정벌을 명령받았지만,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려다 몽케 칸에게 좌천당해 황위와는 멀어진 상황이었다.

 

 황위와 가깝다고는 볼 수 없는 이 넷째에게 고려는 나라의 운명을 건 도박을 건다.

 

 그리고 이 넷째 동생이 훗날의 쿠빌라이 칸이 된다.

 

 

쿠빌라이3.jpg

 

 

 "고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 당 태종이 친정하였음에도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그 세자가 스스로 내게 왔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쿠빌라이는 크게 기뻐하며 태자를 후대한다. 이후 태자는 고려로 돌아가 원종이 되었고, 5년 후 쿠빌라이는 아리크 부카와의 긴 싸움을 끝내고

 

  몽골제국 전체의 황제로 즉위한다.

 

 

쿠빌라이1.jpg

 

 

  " 고려가 요구하는 6가지 조건을 전부 허가한다. 몽골의 군대와 다루가치를 모두 철수하며, 고려는 국호와 사직을 보존한다.

   

    또한 의관과 풍속을 몽골식으로 고치지 않아도 좋다 "

 

 

 전례없는 대우에 이어 쿠빌라이는 자신의 막내딸 제국대장공주와 원종의 아들 충렬왕을 결혼시킨다.

 

 제국대장공주는 칭기즈칸 직계 혈족인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몽골의 웬만한 대귀족이 아니면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황족이었다.

 

 실제로 쿠빌라이의 사위 중 비 몽골인 출신은 충렬왕 단 한 명 뿐이다.

 

 칭기즈칸의 직계혈통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적이었다. 황금씨족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칸을 칭할 수 없었다.

 

 명나라 수도를 털고 황제를 붙잡는 토목보의 변을 일으킨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는, 황금씨족이 아니면서 감히 칸을 참칭했다는 이유로 부하에게

 

 살해당한다. 티무르 제국을 만든 그 티무르조차 황금씨족의 부마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결혼으로 고려 왕은 황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차기 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연회.jpg

 

 

 어려운 순간에 쿠빌라이를 지지했던데다, 이제 황제의 사위가 된 고려왕의 서열은 상당했다.

 

 원나라 황실이 연회를 열면 서열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이 때 충렬왕의 제국 서열은 7위였다.

 

 쿠빌라이의 아들이 12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서열이었다.

 

 이후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그 아들 테무르가 원 성종으로 즉위하자, 황제의 고모부가 된 충렬왕의 서열은 4위까지 올라간다.

 

 

 

충선.jpg

 

 이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충선왕이다.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로 태어난 충선왕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제국은 점점 팽창하고, 궁 내의 정치세력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쿠빌라이 칸의 사망 후에도 고려가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는 원 황실의 일족인 카이샨과 아유르바리바드와 형제 이상으로 가까이 지냈다.

 

 

몽골1.jpg

 

 

 

  武宗仁宗龍潛與王同臥同起晝夜不相離 (<益齋亂藁> 卷9上「忠憲世家」)

 

 "원 무종 (카이샨) 과 인종 (아유르바리바드) 는 잠룡 (즉위 이전) 시절 충선왕과 더불어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밤낮으로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후계자가 없던 성종 테무르가 병사하자, 몽골 황실은 다시 황위 다툼에 휩싸였다.

 

 당시 유력한 후보는 황후이자 황태후였던 불루칸과 좌승상 아쿠다이가  강력하게 밀어주던 안서왕 아난다였다.

 

 심지어 아버지 충렬왕도 아난다를 지지했다.

 

 하지만 충선왕은 여기서 다시 한번 모험을 한다. 형제처럼 지내던 카이샨과 아유르바리바드의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는 이 두번째 도박에도 성공한다.

 

 치열한 쿠데타 끝에 카이샨의 세력이 승리했고, 충선왕은 반대 세력을 직접 숙청하는 일을 맡을 정도로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몽골2.jpg

 

 

 "...내가 연전에 황제 황태후 황태자를 우러러 의지하여 공을 일으키고 황제 폐하를 옹위하여 그 뜻과 일을 도와 사해를 숙청하였다..."

 

 "肇自祖王統合三韓臣服述職者尙矣.逮我父王上國顧遇夐異於前獲承釐降厚沐寵光孤亦入侍繼爲駙馬歷衛三朝于今十有九年越於年前仰憑皇帝皇太后

 

  皇太子奮庸熙載肅淸四海至於本國奸佞之儔亦皆蕩除內外安寧. (<高麗史> 33卷「世家33-忠宣王1」)

 

 

 "...좌승상 아쿠다이 등이 안서왕 아난다를 옹립하여 정변을 도모하거늘, 태자가 그것을 알고 하루 먼저 아쿠다이 등을 잡아서

 

 충선왕 등으로 하여금 이들을 잡아 처형하게 하였다. 5월에 회녕왕이 황제위에 나아가니 이가 무종이다...."

 

 "左丞相阿忽台平章八都馬辛等謀奉安西王阿難達爲亂太子知其謀先一日執阿忽台等使大王都刺院使別不花及王按誅之.

 

  五月皇姪懷寧王卽皇帝位是謂武宗. <高麗史>33卷-世家33-忠宣王1" 

 

 카이샨은 즉위해 원 무종이 되었고, 이후 아유르바리바드가 원 인종으로 황위를 잇는다.

 

 

 일등 공신이 된 충선왕은 만주의 왕인 심양왕에 봉해졌다. 

 

 같은 해 아버지로부터 고려왕 작위 또한 물려받아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자가 된다.

 

 

 

원 무종.jpg

 

 "아! 그대 추충규의협모좌운공신 개부 의동삼사 정동행중서성좌승상 부마 왕장(王璋 : 충선왕 )은 세조(世祖 : 쿠빌라이 칸) 의 외손으로써

 

 선대의 귀한 사위가 되어 바야흐로 짐이 선조의 사직을 계승하는 위업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짐을 크게 도와주었도다.

 

 선행에 상을 주고 악행에 벌을 주는 공정함과 어버이에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대절(大節)을 상주기 위해 특별히

 

 개부 의동삼사 태자태보 상주국 부마도위(開府 儀同三司 太子太傅 上柱國 駙馬都尉)를 수여하며 심양왕으로 진봉하노라.”

 

 

 “咨! 爾推忠揆義協謀佐運功臣開府儀同三司征東行中書省左丞相駙馬王璋, 世祖外孫, 先朝貴壻, 方朕纘承之始, 寔參翊贊之功. 以賞善罰惡之至公,

 

 保孝父忠君之大節, 可特授開府儀同三司太子太傅上柱國駙馬都尉. 進封瀋陽王.”

 

 

 "또한 중서성(中書省)에 들어가 정사에 참의하게 하고 김호부 옥대 칠보대 벽전금대 및 황금 500량 은 5000량을 하사하였으며, 황후나 황태자도 또한

 

 충선왕을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게 하여 각종 보물과 비단 등 갖은 귀한 하사품들은 가히 이루다 헤아리지 못 할 만큼 되었다.."

 

 又令入中書省叅議政事賜金虎符玉帶七寶帶碧鈿金帶及黃金五百兩銀五千兩. 皇后皇太子亦寵待所賜珍寶錦綺未可勝計

 

 

 

이 시점에서 충선왕의 위치를 알아보자면.

 

고려왕 : 고려의 왕

 

심양왕 : 만주의 왕

 

추충규의협모좌운공신 : 황제 옹립 일등공신

 

태자태부 : 황태자의 스승

 

개부 : 스스로 막부를 설치하고 그 막료와 부속을 임명할 권한. 대장군 등이 자기 부를 개설할 때 사용

 

의동삼사 : 최고위 관료인 삼공 (태사, 태보, 태부) 와 동등한 대우를 받음

 

정동행중서성 :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의 장

 

좌승상 : 제국의 좌승상

 

부마 : 부마도위. 황제의 사위

 

송나라 황제가 개부의동삼사를 인정해준 사람은 역사를 통틀어 4명뿐일 정도로

 

어마무시한 관직이란 걸 고려할 때, 고려왕의 정치적 위치는 거의 황제 바로 다음 서열이었다.

 

후대의 고려 왕들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 선조인 태위왕(충선왕)께서 인종 황제를 도와 내란을 평정하고 나아가 앙골(지명)에 이르러 무종황제를 영입하매 천자를 세우는 일에

 

1등 공신이 되었나이다..."

 

(大德)末我祖太尉王佐仁宗皇帝平定內亂行至央骨迎立武宗皇帝爲定策一等功臣.(<高麗史>36卷「世家36-忠惠王」)

 

코토.jpg

 

 

그렇게 12년간 권력을 누리던 충선왕이었지만, 자신이 옹립한 인종이 사망하고 아들인 영종이 즉위하자 점차 밀려나게 된다.

 

결국 고려 출신 환관이었던 임빠이엔토쿠스와 인종의 비였던 고려인 바얀 코토크의 모략으로 티베트까지 유배를 가게 된 충선왕은

 

이후 자신의 매부인 이순 테무르가 황제로 즉위하며 유배에서 풀려나나 2년 후 사망한다.

 

충선왕은 고려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은 채, 제국의 수도에서 머물며 교지를 내려 고려를 다스렸다.

 

어쩌면 충선왕은 자신이 제국의 중앙귀족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게 고려의 입지에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원 간섭기, 고려 왕들은 격동하는 정세에 기민하고 대담하게 대응했다. 

 

비록 고려의 멸망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막지 못했지만, 그저 무력하게 스러져간 수많은 망국의 왕족들을 보다보면

 

고려왕들의 이런 행보가 새롭게 느껴진다

 

105개의 댓글

@재롱이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고려왕' 보다 '원 제국 황실 일족' 의 위상이 훨씬 높았을 수도 있음.

몽골 제국이 만든 세계에서 고려가 받았던 대접은 파격적이었음. 대칸 스스로도 "세상에 고려만한 대접 받은 나라가 없다" 고 하고

고려 압박할때는 "너희가 받은 대접이 정말 합당하다고 생각하나? 정복당한 다른 국가를 보지 못했나?" 이런 식으로 얘기할정도.

근데 문제는 몽골이 만든 천하라는게 전 세계를 -100정도 해버린 천하라 제일 잘 대접받은 고려도 -10정도..

고려가 겪은 고통도 어마어마했지. 고려가 힘들 동안 나머지들은 폭삭 망하는 수준이라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이 됐지만

0
2019.01.27

교과서나 교육매체등에서는 민족 자주나 자존심같은거 강조하려고

고려가 몽골한테 짓밟히고 복속되어서 하인취급받은식으로 묘사되는경우 많은데

사실 상당히 외교질 잘해서 관계도 괜찮고 끝이 굉장히 좋았다는건 숨기려는 경향이 있음

0
2019.01.27

자주 미화되는 이야기인데 실제로는 아리크부케 대신 쿠빌라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몽골 강화 사신으로 가다가 쿠빌라이에게 '선택'당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더라.

0
2019.01.27
@합성캐

???: 너! 내 동료가 돼라!

0
2019.01.27

아리크부케와 쿠빌라이의 격전은 당대 고려의 입장에서는 꽤 먼거리의 내륙에서 이루어지던 것이라서. 외교 사절로 입조하던 고려 태자입장에서는 둘을 선택하고 자시고 할 위치가 아니었음. 보다 고려 쪽에 가깝게 주둔하던 쿠빌라이와의 만남이 먼저였고. 쿠빌라이는 이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아서 고려 의복과 풍습은 건들지 않겠다고 못 박는 대신 경제/외교적인 완전 복속을 이뤄냄. 이때 태자였던 원종의 역할은 글에서 묘사된 것처럼 당당한 주도적 외교메이커라기 보단 대세를 거스리지 않는 정도였던 것.

0
@합성캐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만주에 있던 원정군이나 동방 3왕가나 북중국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있던 원정군들도 있는데 굳이 빙 돌아서 악양까지 쿠빌라이를 만나러 가는 건 원종 본인 의사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함. 아니면 이미 아릭부케가 대칸 선언을 해버린 이상 그냥 다 씹고 아릭부케 만나러 가도 그만이고. 몽골 대귀족들 지지 받으면서 대칸까지 받은 아릭부케가 버티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쿠빌라이가 다른 사절도 아니고 항복하러 오는 외국 사절 잡아다가 협조를 강요하는건 너무 정치적으로 무리한 행보임.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고려를 우방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0
2019.01.27
@베타엑디스테론

동방 3왕가는 옷치긴 등의 기타 혈족들에 해당해서 몽케칸의 후계자 위치가 전혀 아니었고. 혈통과 세력상 몽케 칸의 후계자는 아리크부케와 쿠빌라이로 좁혀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야. 물론 몽케의 견제를 받아서 쿠빌라이가 초기 경쟁은 불리했지만, 화북을 선점하고 대송전선에서의 군사력이 자기 기반인 이상, 다른 칸들보다 고려에 대해 훨씬 주도적으로 행동할 위치에 있었지.

피지알에 신불해란 사람이 쓴 글이 있는데.

https://pgr21.co.kr/pb/pb.php?id=freedom&no=78042&page=6&sn1=on&divpage=12&sn=on&keyword=%EC%8B%A0%EB%B6%88%ED%95%B4&select_arrange=hit

잘 설명해두었음.

0
@합성캐

나는 동방왕가가 몽케칸의 후계자라는 얘기가 아니라, 쿠빌라이가 포섭하려 한다면 당장 전력이 될 수 있고 몽골내에서 발언권도 있는 동방 3왕가를 차라리 설득하지 당장 별다른 도움도 안 되는 고려에 무리하게 접근하지는 않았을거란 말임. 네 말대로 이미 물량이 되는 중국을 기반으로 잡은 이상 장기적으론 결국 이길 싸움이었는데 그런 순간에 무리해서 고려 태자를 납치해서 설득한다? 타장하지 않다고 봄. 고려가 병력이나 보급을 지원해줄 수 잇는 사정도 아니었는데. 사서에도 고려가 “찾아오니” 기뻐했다고만 나오지 쿠빌라이가 먼저 컨택했다는 뉘앙스의 사서는 없는걸로 암.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그 때 당시의 시선도 그랫음. “천병과 민심의 거취를 깨달아,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을 갔다” 는게 고려사의 사평임.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고려는 쿠빌라이의 협상 우선순위 명단에서 끄트머리에 있었을걸. 중국 내 한인들 포섭하기도 바쁠텐데 당장 병졸 하나 못 보내주는 고려를?

0
2019.01.27
@베타엑디스테론

맞아. 네 말대로 고려에게 먼저 무리하게 접근할 이유는 없지. 납치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네. 다만 경우가 다른게. 이 경우는 태자가 몽케 칸에게 항복하기 위해 이미 중원에 있던 상황이야. 그런데 태자는 뭉케의 소식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었고. 쿠빌라이를 만난 뒤에도 2년(연년으로 치면)차가 되도록 체류하면서 의사를 확실히 하지 않음. 글에 묘사된 것처럼 쇼부를 쳤다면 바로 상황 파악하고 쿠빌라이를 지지해야 했을 텐데. 실제로는 쿠릴타이에도 참여하지 않고 본국 국왕의 죽음을 핑계대며 귀환하려고 했어. 대담하게 승부를 봤다기 보다는 오히려 누가 이길 지 당시는 알 수 없어서 발을 빼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오히려 쿠빌라이가 주도적으로 (기왕 들어온) 고려를 포섭해야겠다는 정치적 제스쳐를 많이 취했던 것으로 보여.

0
@합성캐

그 상황에서 뭉기적거린 것 자체가 결단이고 쿠빌라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증거임. 만약 아릭부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면 그냥 그대로 아릭부케 만나러 쭉 가면 됨. 아니면 다시 고려로 돌아온 다음 나중에 상황 안정되면 출발하거나. 굳이 쿠빌라이가 있던 중국에서 핑계대면서 어물쩡거리던건 쿠빌라이 만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되지. 그리고 '본국 국왕의 죽음을 핑계대며 귀환' 이란건 너무 이상한 해석인데, 백여년간 신하들한테 농락당하던게 고려 왕권이고 지금 외적 침입에 전 국토 다 털려서 왕실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왕위 계승자는 해외에 있는데 왕이 사망함. 이럴 때 태자가 해야할 일은 최대한 빨리 고려로 돌아가서 왕위를 계승하는거지. 안 그러면 다른 왕족이 내가 왕 한다고 덤빌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그런 시도도 있었고. 무신집권자인 김인준이 원종 동생인 안경공 왕창을 왕으로 세우려고 시도까지 했음. 쿠빌라이가 반대해서 결국 못했지만. 왕이 사망하면 바깥에 있던 왕위 계승자는 후다닥 달려오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오히려 이미 쿠빌라이 쪽으로 귀부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쿠릴타이에 참여 안 할 수도 있는거지. 이미 의사를 밝혔으니까. 만약 안 그랬으면 쿠릴타이는 반드시 참석해야 했을걸.

0
@합성캐

니가 링크 걸어준 글 읽고 왔는데 나는 동의가 힘듬. 그 이유로는

 

1. 당시 기록에서 공통되게 고려가 찾아왔다고 언급하는 점

 

2. 자기 주장을 위한 무리한 해석이 보이는 점. '폐백을 바쳤다라고만 되어있고 표문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표문은 전달 안 했을 것이다' 이런 건 너무 무리한 주장임. '아무개는 모월 모일 회사에 출근했다' 라는 기록을 보고 '회사에 출근했다고만 하고 일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아마 회사에 가서 일은 안하고 빈둥빈둥 놀았을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거랑 다를바가 없다고 봄.

 

3. 쿠빌라이가 고려 귀국하는 태자에게 병사를 대동시켜 준 건 압박이 아니라 오히려 왕 즉위를 도와준 것으로 보는게 타당해보임. 당시 고종 사망 이후 다른 왕실 인척들이 왕위를 노리며 음모를 꾸미는 상황에서 쿠빌라이의 푸쉬가 원종의 즉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걸 보면 특히나 더. 그리고 바로 위에서는 "....대우가 소홀하여 그 마음을 회유하고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가 일단 귀국하게 되면 다시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니, 마땅히 그 숙소와 음식을 후하게 하여 번왕의 예로써 그를 대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 부친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전을 왕으로 세워 환국케 한다면, 그는 은덕에 감격하여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려고 할 것입니다..." 라고 잘해줘야 한다고 해놓고 밑에서는 병사를 보내서 겁박했다고 하는건 앞뒤가 안맞음.

 

4. 마찬가지로 쿠릴타이를 '본국 국왕의 죽음을 핑계대고 빠져나갔다' 이건 정말 이상한 해석임. 백여년간 무신들한테 농락당하던게 고려 왕실이고 외적한테 전국토가 다 털려서 땅에 떨어진게 왕실의 권위인데 이럴 때 왕은 사망하고 왕위계승자는 바깥에 나가 있으면 다른놈들이 그 자리 먹겠다고 안 덤비겠어? 실제로 무신 김인준이 안경공 왕창 추대하려다가 실패했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하루 빨리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럼 이걸 빠지고 쿠릴타이를 가야하나. 이미 쿠빌라이에게 귀부하겠다는 의사 밝혔는데 굳이?

 

4. 쿠빌라이의 약조를 '다른 나라도 받은것' 이란 식으로 별로 대단치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실제로 세조구제는 후에 입성책동에서 고려를 지키는 유력한 명분이 됨. 그 '다른 나라' 중에 쿠빌라이의 유훈이라는 식으로 항변해서 성공한 나라 단 하나도 없음. 만약 정말 별로 대단하지 않은 약조고 누구나 받은거면 저럴 수가 없지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건 '원종이 쿠빌라이를 만났을 때 100% 완벽한 복속을 맹세하지 않았다' 인데 이걸 가지고 '그러므로 고려의 결단이 아니고 쿠빌라이에게 간택받은거다' 라고 하는건 무리한 주장임. 100% 충성까지는 아니어도 그 전후로 고려 하는걸 보면 7-80% 까지는 충성이었음. 그 당시에 완벽한 맹세를 안 했다고 저렇게 몰아가는건 좀 무리한 주장임. 기본적으로 쿠빌라이 편에 붙기로 마음 먹었으되, 상황 돌아가는거 보고 좀 간을 봤을 수는 있지. 이건 근데 전 세계 어느 시대 정치세력이든 마찬가지임

0
2019.01.27
@베타엑디스테론

이것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이네. 다만 내가 링크한 글이나 내가 처음에 달았던 댓글은 '쿠빌라이에게 간택받은거다' '고려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아무래도 이 부분 말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보니 원종의 역량을 의도적으로 띄워주면서 잘못된 국뽕에 빠지는 걸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커. 세조구제를 받은 고려 왕실은 협상을 통해 독립국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쿠빌라이의 의도대로 몽골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번국으로 남게 되었고,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태자(원종)의 주체성은 글이나 많은 곳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쿠빌라이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기 보다는, 쿠빌라이가 '더 배팅해!'라며 올 때까지 간을 보는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오히려 현실 정치인으로서 그렇게 행동했기에 협상 결과가 고려 왕실로서는 더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고려 민중에겐 똑같이 지옥이었지만.

1
@합성캐

저자의 의도는 알겠는데 대중의 의견에 반감 가지고 반대쪽으로 가려다 너무 간 거 같음. 고려 말 너무 힘든 시절인건 모두가 알고 있고 이것도 국뽕이라기보단 그냥 크 그 상황에서 기지가 대단하네 하고 원종 개인을 칭찬하고 끝내지 않나? 몽골의 충실한 하수인이라기 보다는 아예 몽골이라는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서 그 안에서 잘 나갔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고려 독립국이었음. 그 당시 사람들도 도대체 우리가 몽골국의 일부인지 독립국인지 헷갈려서 직접 몽골에 사신까지 보내서 물어봄. 이때 몽골 조정 공식 입장이 독립국이란거였음. 고려 국왕 인장도 그렇게 찍혀 나왔고. 이런 독립국 인장 받은 나라가 두세개 더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곧 망하고 흡수되어서 마지막까지 남은건 고려뿐.

 

간을 본 건 맞는데 대체로 쿠빌라이 쪽으로 기운 것도 맞고, 그 간 본 정도가 그냥 일상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수준 이상으로 간 거 같지는 않음. 이걸 "100% 다 걸지 않았으니 대중들의 흔한 인식은 틀렸다!" 이거는 역사 좀 아는 사람들의 고질적인, 대중적인 어설픈 역사 이해를 병적으로 혐오하는 성향때문에 너무 간 느낌임. 좀 나쁘게 말하면 "너네는 이렇게 알고 국뽕 빨고 있지? 사실 그거 틀렸어 이 바보들아!" 이렇게 일침놓고 싶어하는 일침병 느낌. 원종이 쿠빌라이한테 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아, 원종이 쿠빌라이에게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고 오체투지했구나" 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적당히 간도 봤겠지. 근데 그렇게 말해도 놀라진 않을걸? 왜냐하면 그정도 간보는건 일상적인 의사 결정에서도 우리 모두 하는 거니까

0
2019.01.27

병신마냥 뒤진 명나라 불알 만지작거리다가 좆된 좆선이랑 비교된다

0
@blyyyyat

만력제만화나 보고와라 병신아

0
2019.01.27
@blyyyyat

만력제는 빨아줄만 했음. 그리고 현실적으로 인조가 명나라 빨때까지 그 누구도 명나라가 질 꺼라고 생각 안함. 공격하는 쪽도.

이득을 얻으려고 공격한 거지

0
@니2니

설마 명나라가 농민반란으로 수도 털리고 원숭환은 모문룡 잡았다고 능지처참당하고 국경군이 이랏샤이마세 할 줄 도대체 누가 예측했을까. 다들 흉년 한두 해만 더 지속되면 후금도 끝이겠구나 했겠지

0
2019.01.27
@blyyyyat

명나라는 거의 자멸해서 그렇게 될 줄 누구도 몰랐지

0
2019.01.27
@blyyyyat

명나라 멸망하고 난 뒤에도 산해관 못뚫어서 찔찔거리는 청나라에 붙으라는 소리는 지금 중국이 성장세니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자는 소리와 같다.

0
2019.01.27
@blyyyyat

야한 냄새를 풍겨버린 모습이다

0

어찌됬든간에 ㄹㅇ루다가 인생도박을 넘어선 국가도박에 성공한거네 현대로치면 imf시절 국민연금기금으로으로 선물시장에서 역배터져서 imf 벗어난거라고 봐야 하나?

0
@야짤밴당햇다풀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 쿠데타 터져서. 염병 도중에. 내정자 말고 다른 사람 찍어 밀어 주다가

존나 강해진꼴 아니냐?!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다들 힐러리가 될거라고 할때 트럼프 밀어서 로또맞은거지

0
2019.01.27

존나 재밌다 ㅋㅋㅋㅋㅋㅋ

0
2019.01.27

맹꽁이 서당엔 다 부정적으로밖에 안나왔었는데

재밌는 썰들 많은듯

0

잼나넹

0
2019.01.27

되게 재밌는 내용이다

0

위에 댓글 토론 하는거 멋있네

0

고려 후기가 썩었다고 했는데

 

난 조선 건국이 되지 않고

 

고려의 문신 무신 체제로

 

유교같은거 빨지 않고. 과학 빨면서 존나 발전했었으면 어땟을까 싶다...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나라가 흥망성쇠하는건 어쩔 도리가 없는거고.

고려도 망할만 했으니 망한거지 멀쩡한데 조선이 등장한줄 아냐.

과학 빨면서 발전은 뭔놈의 과학 빨면서 발전이냐. 이성계 없었으면 고려는 왜구들에게 털려서 나라 삭제 당하고 우리는 일본말 쓰고 있겠지.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고려도 진짜 헬고려 그 자체였는데 왤케 빠는 애들이 많은지 모르겠음

조선 후기가 진짜 임팩트있게 개병신이어서 그렇지, 600년이 죄다 병신인건 아니었음.

0
@도덕적 쾌락주의

뭔가가 발전하려면 생산력이 받쳐줘야하는데 뽑아먹기만하는 수준이라 불가능했음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조선이 고려보다 몇만배는 나은국가입니다. 적어도 국민들 생활 한정으로는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고려 문신, 무신 체제면 무신은 재상도 못해보고 빌빌 기어야 되요. 군인 출신 왕이 들어선 조선이어서 무과도 시행하고 무신도 재상 해보고 가능했음.

0
2019.01.27
@도덕적 쾌락주의

그럼 너 이거 한문으로 써야함 ㅋ

0
@물호구

ㄹㅇ 이네 ㅌㅋㅋㅋㅋㅋ 쉬벌 ㅋㅋㅋㅋ

0

'어쩌면 충선왕은 자신이 제국의 중앙귀족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게 고려의 입지에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위 부분은 고려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원에 남아있는 걸로 해석하는 게 인간적으로 더 바람직 하지 않나 싶음

0
@가을바람산들바람

뭐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치곤 충선왕이 고려에 이런저런 개혁도 많이 시도했고,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내세운 게 원나라 중앙귀족으로서 자신의 입지였거든. 그걸로 찍어누르면서 개혁 진행했으니 저런 생각도 했겠지.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남아있다고 하기엔 당시 고려 왕자들 거의 다 원나라에서 오래 살았는데 고려 돌아와서 잘만 살던 사람들도 많아서.. 공민왕만 해도 어린시절 거의 전부 원나라에서 보냄

0
2019.01.27

고구려처럼 자주정신으로 정복한게 아닌, 몽골 딱가리 짓하면서 라인 좀 잘 탄걸 자랑스럽게 적어놔서 ㅂㅁ

왕,귀족들한테나 기민한 정치 였겠지 백성들은 공녀로 끌려가고 전쟁으로 뒤지고 헬게이트 였을텐데 미화하고있네

0
2019.01.27
@Zero47

저 기민한 정치가 없었으면 고려는 완전히 사라지고 이후로 아예 중국사에 편입 되었을 수도 있다.

1
@Zero47

자랑스럽게 적지도 않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썼을 뿐임.

그리고 최고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 하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임. 객관적으로 당시 고려의 국력을 고려했을 때 고구려처럼 정복전쟁 하고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망해야 하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한 이야기가 뭐가 그리 불만이냐. 네 논리대로면 이순신의 공적도 폄하되겠네. 자주적으로 일본 정벌한게 아니라 명나라 지원받고 간신히 원정군 몰아내는게 고작이었다고. 만약 고려 왕들이 저렇게라도 안 했으면 공녀로 끌려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다. 호라즘처럼 다 파괴되고 노예로 팔리고 싶나? 아니면 송나라처럼 집집마다 몽골 병사 한명씩 시중들고 싶어? 그리고 세계 제국 서열 10위 안에 드는건 단순히 라인 잘 타서 되는 게 아니다.

0
2019.01.27
@Zero47

이런 민족주의자같으니라고

일제강점기때 자주정신 민족주의 타령하던 놈들 말로가 뭔지아냐? 전부 변절해서 일제 앞잡이로 넘어갔어

왠지알어? 자기들 논리로는 민족이 스스로 일어나 자기들의 힘으로 일제를 꺾어야하는데 현실은 그럴수가 없었거든

논리의 인지부조화가 일어나서 결국엔 일제쪽으로 변절했어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고려가 선택한 저 길이 최선이 아닐수가있어 하지만 정보도 불충분할뿐더러 나라가 넘어가기 직전에 택한 저 선택이 지금의 한국이 남아있게 했다고 본다

저게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 중국말 쓰고있을지도 몰라

0
@Zero47

저 시대에 몽고한테 항복 안하고 쓸려 나갔던 국가들은 그냥 전지역 초토화였어

그랬다보니 다른 모든 국가들이 몇년만에 항복하게 된거고

물론 대몽항쟁때 고려도 거의 전지역 초토화인걸 26년이나 버텼다보니

저렇게 항복했을때 중앙 귀족으로 편입되서 엄청난 서열 순위까지 오른거고

0
2019.01.27

저 드라마 개꿀잼이었는데

 

중간에 엎어져서 슬픔 ㅜㅜ

0
2019.01.27

저기 나온 제국대장공주는 너무 난폭해서 남편인 충렬왕을 맨날 개패듯이 패고 살았다 함 ㄷㄷ 신하들 보는 앞에서도 ;;

0
2019.01.27
@크엉엉켱

팸돔이네 ㄷㄷ

0
@뇌삼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사이 엄청 안좋긴 했나봐. 그래서 점점 멀어졌고 충렬왕이랑 충선왕 사이도 별로 안좋았다네.

충숙왕하고 아내인 복국장공주도 사이 되게 안좋았는데 어느정도였냐면 복국장공주가 사망하자 충숙왕이 두들겨 패서 죽은거라는 소문 돌아서 원나라에서 조사나올 정도

0
2019.01.27

한국사선생님이 이때 줄 잘 탔었다고 이야기 해주시는데 잼썼음ㅋㅋㅋ

글이 좀더 자세해서 재밌네

0
2019.01.27

국운을 건 도박수 고려왕들은 상남자들이었네

0

몽골제국시대 고려는 거의 고려칸국으로 봐야되는게 아닌가 싶어

킵차크 오고타이 등의 다른 칸국도 마찬가지고 몽골 황금씨족들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고려왕들도 사실상 황금씨족 대우를 받았으니까

걍 개인적인 생각임

1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포브스 선정, 2023 대한민국 유튜버 파워 랭킹 TOP 100 41 추천요정이여름 18 3 분 전
[속보] 의료공백 장기화에 '초강수'…외국 의사면허... 51 분뇨조절장애 58 9 분 전
짱구는 못말려 제작사에서 한국만을 위해 만들어준 애니 오프닝 15 김츼 55 26 분 전
너무 낮은 몸값에 충격.jpg 51 뭐라해야하냐 82 32 분 전
대한민국에서 돈 벌기 존나 쉬운 이유 91 캥거루나라코알라공주 134 41 분 전
레이를 소나타로 바꿔오라는 여친 105 에어부산 72 43 분 전
스파이더맨으로 인해 생겨난 물건 20 homi 38 43 분 전
의사가 말해주는 ADHD 환자의 머릿속 109 추천요정이여름 61 45 분 전
서울 남자 평균 키 175cm 오피셜 이제 174도 작다.jpg 122 드립더 59 53 분 전
더콰이엇: "우리는 다시 홍대로 돌아갈것이다" 48 안녕계획 64 54 분 전
세월이 무상한 사탄의 인형 처키 근황... 32 착한생각올바른생각 47 54 분 전
싱글벙글 쥐꼬리만한 월급 기준.jpg 88 닉네임변경01 77 54 분 전
보스턴 다이나믹스 로봇 근황 ㄷㄷㄷㄷㄷㄷㄷㄷ 65 AARRRRRRENA 38 55 분 전
부동산 호황기에 26조 벌어놓고…PF 정리하려니 곡소리 45 nesy 74 55 분 전
34살에 중요한게 없는걸 안 보배인... 64 짱돌 64 55 분 전
항공기로 극한의 수송력을 내려면 36 커뮤니티 37 55 분 전
ㅇㅆㅇㅆ)친구가 엄마한테 껄떡거리는 만화.manhwa 29 누나향 35 56 분 전
대학다닐때는 몰랐는데 회사다니니까 ㄹㅇ 섬뜩한짤 84 추천요정이여름 80 1 시간 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 철수는 구라선동이다 39 지지기기 59 1 시간 전
어제 새벽 강남 포스코사거리 킥보드 사망사고..CCTV 125 추천요정이여름 125 1 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