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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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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은 마치 틀어진 방향으로 쑤셔박힌 못과도 같다. 크게 잘못되었지만 뽑히진 않는다.


챠락.
착.  착.
휙.
탁. 탁. 스륵.
휙.


휙.
용사 "J트리플. 내가 이겼다."
마왕 "말도 안돼!"
마왕이 비명을 지른다. 마왕의 손에 들린 투페어가 구겨지기 전에 얼른 용사가 뺏어든다.
마왕 "J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용사 "당연히 나머지 셋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것 아닌가?"
마왕 "확률이 말도 안된다고! 어떻게 교체한 두개가 딱 J 두장인건데!"
용사 "그 두장이 들어왔으니 내가 레이즈를 한것 아닌가. 확률보다 내 반응을 먼저 살폈어야지."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놓인 별모양 쿠키가 용사의 품으로 빨려들어간다. 빼앗긴 쿠키들을 지켜보는 마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용사 "네 차례- 우왓."
우당탕. 마왕이 테이블을 엎자 카드들이 흩어져 바닥을 구른다.
마왕 "갸아아악."
용사 "어휴."
마왕이 씩씩대며 주변을 맴돈다. 용사가 앉은채로 손을 뻗어 흩어진 카드들을 하나씩 줍는다.
용사 "넌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배팅하더군. 체스면 모를까 포커는 그렇게 하는 게임이 아니다."
마왕 "아... 아... 후... 너무 오래 감정조절을 했나봐..."
마왕이 이마를 짚으며 어지러움을 호소한다. 하긴, 저 표정 풍부한 마왕에게 포커페이스는 체력소모가 심했다. 용사가 뚱하게 쳐다본다.
용사 "그게 그렇게 힘들었나?"
마왕 "이런 썅!"
걷어채인 테이블이 용사의 면전에 날아든다. 용사가 간신히 잡아채 테이블은 무사하다.
용사 "미안하다. 내가 실언했다. 머리 식혀라."
마왕 "하아... 하아..."
숨을 가쁘게 고른다. 용사가 마왕을 자극하지 않게 천천히 테이블을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진정이 되었는지 마왕이 의자에 다시 앉는다.
마왕 "..."
용사가 말없이 차를 탄다. 쪼로록. 조금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용사가 차를 내온다. 마왕은 그걸 받아들어 한모금 마신다.
마왕 "으. 몇번을 말하지만 물이 많다고."
용사 "찻잎이 귀하던 시절 버릇이라. 알고는 있는데 고쳐지질 않는군."
마왕 "한심하네. 나가죽어."
흥. 콧방귀를 내며 마왕이 차를 마신다. 기분 전환이 빠른것은 마왕의 장점이다. 하기사 쿠키 몇개 떼였다고 삐지는게 되려 이상하겠다만. 용사가 쿠키를 우물우물 먹는다.


열린 창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나른함이 찾아오는 오후 두시경의 햇살이다. 봄날씨에 어울릴법한 새소리가 들린다. 그 주인공인 참새가 창가에 앉았다.
용사가 손을 뻗는다. 그러자 바로 도망가버린다.
용사 "아."
마왕 "얌전한 새를 왜 괴롭혀?"
용사 "이건 좀 억울한데. 난 아무 의도도 없었다."
마왕 "그건 네 생각이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불순하다고."
용사 "대체 어디가."
마왕 "피냄새가 나잖아."


그 한마디에 용사가 말을 잃어버린다. 뻗었던 손은 움츠러들고 눈이 흔들린다. 그 궁상맞은 모습에 마왕이 찻잔을 내려놓고 한소리 한다.
마왕 "또 또 표정봐라. 그걸 가지고 상처받는거야? 어깨에 힘 풀라고 내가 말했잖아."
용사 "됐다. 알았다."
마왕 "내가 말을 못해요 아주."
지나치게 궁상맞아지기 전에 용사가 고개를 털고 창가에서 떨어진다. 그러자 용사의 눈에 아까의 그 참새가 보인다. 마왕에 어깨에 태연하게 앉아있는.
용사 "아아니! 대체!"
마왕 "뭐가?"
용사 "너도 나만큼이나 피범벅 아닌가! 왜 너는 싫어하질 않는거지?"
마왕 "피범벅 아닌데?"
마왕의 당당함에 순간 용사가 말문이 막힌다.
마왕 "피범벅이었던 마왕은 최근에 죽었어. 난 한번도 손에 피를 묻힌적이 없거든~"
용사 "...그래서, 깨끗하다는건가."
용사가 이를 간다. 그러자 마왕이 몸을 당겨 용사를 똑바로 바라본다.
마왕 "맞아. 난 깨끗해. 난 한번도 내가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마왕 "넌 어때? 넌 네가 깨끗하다고 생각해?"
용사 "절대 아니다. 난 내가 한 짓들을 잊지 않아."
마왕 "후회해?"
용사 "당연히 후회한다."
마왕 "아, 그래? 내 전쟁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고, 한치의 후회도 없어. 넌 그 마음가짐으로 이런 날 막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용사 "..."
마왕 "약해. 한심해. 헛점 투성이야. 너, 그렇게 지금처럼 머뭇거리고 짐을 늘리고 뒤를 돌아보고 멍청하게 걷다간-"


마왕 "죽여버릴거라고. 내가."
마왕의 검이 용사의 가슴에 닿는다. 피가 한 방울 맻혀 흐른다.


용사 "...아냐. 이건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네가 틀렸어."
용사가 고개를 들어 마왕을 노려본다.
용사 "내 손이 더럽고 짐이 무겁지만 그걸 떨치고 도망가진 않는다. 내 뒤에 후회가 가득하지만 내 선택을 번복하진 않는다. 나는 내 더러운 업보를 업고 걷는다. 이게 옳다. 이게 맞는 일이다. 너의 생각은 난 결코 공감할 수 없다. 효율과 이성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마왕 "..."
용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약해지던 얼마나 방심하던 얼마나 눈을 돌리고 걷던간에-"
용사가 검날을 손으로 움켜쥔다.
용사 "넌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리고 밀어낸다. 검에 피가 끈적하게 묻는다. 마왕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다.


마왕 "그래. 그것까지 참견하려 하는건 실례인 것 같네."
용사 "..."
마왕 "어쨌든 요녀석은 네가 아니라 나한테 왔잖아? 그럼 내가 이긴거 아니겠어?"
참새가 긍정의 의미로 지저귄다.
마왕 "멍청이."
용사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쿠키때문에 삐진건 아니겠지?"
마왕 "이..."
마왕이 뭔가 말하려다 참는다. 그렇다. 어떻게 대답해도 삐진 것 처럼 들릴 것이다. 그 사이 용사가 응접실 문을 나선다.
마왕 "어디가?"
용사 "오븐에 쿠키가 더 있다."
마왕 "...좀 오래 구운거 아니야?"
좀 오래 굽는 게 아니라 타버릴 수준의 시간경과다. 잠시 뒤.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마왕의 앞에 용사가 들고온 것은, 쿠키로 쌓아올린 산이었다. 쾅. 테이블에 박력있게 내려놓자 쿠키의 산이 흔들린다.
용사 "시범작이 맛있게 나왔길래 본격적으로 만들어봤다."
말을 잃은 마왕의 앞에 쿠키가 한주먹 건네져온다.
마왕 "...오븐을 한가득 채운거야?"
용사 "그렇다. 그러다보니 익는데 오래 걸렸군."
마왕 "계란... 밀가루... 다 써버렸겠네..."
용사 "쿠키는 많으니 기분 풀어라."
눈치 없는 용사가 쿠키를 맛있게 먹는다. 별수 없이 마왕도 쿠키를 맛은 있게 먹는다.
쿠키의 산이 줄어든다. 창문 밖으로 버터 향이 새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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