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2

01


그도 그럴것이,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있다. 마왕과 용사가 보내온 시간들은 사건 사고가 정말 너무 많았다. 평범한 10년지기 친구간의 추억은 숫자에서 비교가 안된다.


오늘도 용사는 마왕성 응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주마다 발행하는 신문을 가져다 읽고 있었다. 신문이라고 해봐야 내용은 매주 똑같다.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실리고, 나머지는 행방불명자를 찾는 광고나 용병을 구하는 광고로 채워진다. 용사는 그냥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읽어내려갈 뿐이다.
마왕도 딱히 할일이 없으니 응접실에서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채 이마를 짚은 모양새가 마치 굉장히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아니다. 마왕은 진지하게 잡생각을 한다. 이것도 습관이다.


용사 "오오."
마왕 "응?"
갑자기 정적이 깨져버리자 마왕이 되묻는다.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감탄사에 용사 본인도 당황한듯 둘러댄다.
용사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마왕 "..."
마왕이 꼰 다리를 풀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참을 계속 쳐다본다. 설명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용사를 콕콕 찔러댄다. 말없는 실랑이 끝에 불편함을 참지 못한 용사가 한숨을 쉬며 신문을 내렸다.
용사 "도시에서 서커스가 열린다고 하는군."
마왕 "서커스?"
용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용사 "전쟁통에 서커스단은 다 사라진줄 알았더니,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군. 좋은 일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웃을 일이 없으니까, 서커스라도 열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마왕 "서커스가 뭔데?"
용사 "서커스를 모르나?"
용사의 눈이 살짝 커진다. 마왕이 흥미가 생긴 듯 하다.
용사 "광대들이 신기한 묘기들을 선보이면서 사람들한테 웃음을 주는 일종의 쇼다. 불을 삼키거나 줄을 타고 공중을 누비거나... 뭐 여러가지 묘기를 보여주고 입장료를 받는거다."
마왕 "재밌겠는데!"
마왕의 표정이 환해지는 순간 용사는 지금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마왕이 서커스를 보러 도시로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서둘러 서커스가 재미없음을 설명해야만 한다. 용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맻힌다.
마왕 "언제 한대? 어디서? 입장료는?"
용사 "으흠, 흠.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쇼는 아니야. 트릭도 간단하고. 연습만 하면 할 수 있는 정도의 묘기뿐이다."
마왕 "그건 보면 알겠지. 신문 줘봐. 어디서 한대?"
용사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용사는 말을 돌리기를 시도한다.


용사 "그러고보니 너희쪽엔 서커스가 없는건가?"
마왕 "우리쪽?"
용사 "마족들 말이다. 비슷한 거 없나?"
마왕 "불을 삼키고 줄타기를 하는거라면 있지. 우린 입장료를 내는 대신 배팅을 해. 살아남은 사람을 맞추면 돈을 따갈 수 있어."
용사 "이런 시발."
마왕 "응?"
용사 "아니다."
마왕은 필시 콜로세움이나 비슷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마왕은 기대에 못미치는 쇼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면 인류의 마지막 서커스단이 살아있는 지옥불길 위에서 목숨을 건 줄타기를 하게 될지 모른다. 용사는 다른 길을 모색한다.
용사 "정말 별거 없다만. 정 궁금하면 짧게 보여줄 수 있다.
마왕 "진짜? 너도 할 수 있어?"
용사 "물론이다. 간단하니까."
마왕 "볼래! 보고싶어!"
이건 먹힐 것 같다. 용사는 차라리 광대가 되기를 선택했다.


용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품에서 단검을 몇개 꺼낸다. 한 두번 손에서 돌려보며 무게중심을 익힌다. 손에서 나는 땀을 대충 닦는다.
용사가 의자를 기울이고 그 위에 올라탄다. 넘어질듯 아슬아슬하게 의자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 용사는 그 상태로 단검 저글링을 시작했다.
마왕 "오오!"
휙휙휙, 흔들리는 의자를 컨트롤 하면서 동시에 단검 세개를 던져올린다. 주거니 받거니 단검이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저글링을 할때는 받는 손과 던지는 손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요령이 붙은 용사가 단검을 한개 더 추가한다. 휙휙휙휙. 휙휙휙휙휙. 마왕의 눈이 단검을 따라 빙글빙글 돈다.
적당히 보여줬으니 질리기전에 단검은 집어 넣어야 한다. 대신 이번엔 랜턴기름을 꺼내든다. 용사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랜턴기름을 쭈욱 들이켜기 시작한다. 마왕이 놀래서 입을 가린다. 물론 삼키는건 아니고 입에 머금는 것이다. 불줄기가 잘 보이도록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손가락을 입술로 옮긴다.
기름을 입술 틈새로 뿜으며 손가락으로 파이어를 아주 작게 시전한다. 휘발성이 강한 랜턴기름이 바로 타올라 불줄기를 만든다.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입에서 불이 치솟는다. 자극적인 볼거리에 마왕도 흥미진진한듯 하다. 여기까진 참 완벽했으나, 용사는 불을 끄는 요령은 몰랐으니. 기름이 점점 떨어지고 뿜는 기세가 약해지면서 입안으로 불이 역류한 뒤에야 그걸 알아차린 것이다.
용사 "...끄으으으으응."
입안을 바싹 태워먹은 용사가 한껏 얼굴을 찌푸린다. 일반적으로 이건 심각한 중상에 해당한다. 폐까지 들어가면 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물이 쏙 나오려던 찰나에.
마왕 "와아."
짝짝짝. 마왕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러자 용사는 화상입은 입안이 씻은듯이 낫는 기분이 든다.


물론 실제로 나았기 때문이다. 용사는 회복력도 최강이다.
용사가 다시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쳐든다.
마왕 "...? 끝이야?"
용사 "끝이다."
마왕 "..."
마왕이 반응이 없자 용사가 한마디 더 잇는다.
용사 "진짜로 끝이다. 더 대단한건 없다고."

본 방송을 기대하고 있던 마왕의 표정이 급격하게 실망으로 바뀐다.
마왕 "뭐야 이게."
용사 "별거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이정도 묘기가 전부라니까."
마왕 "으아, 시시해. 이런것보단 우리쪽 서커스가 훨씬 재밌어."
마왕이 탁자에 엎어져버린다. 다행히 마왕은 서커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듯 하다. 이것으로 인류 마지막 서커스단은 무사히 쇼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용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용사 "이참에 전쟁을 그만두는건 어떤가. 그러면 서커스도 좀 더 많아질거고, 그 속에서 대단한 서커스도 등장할 수 있겠지."
마왕 "안돼. 인간은 다 죽여야 해."
용사 "그런가."
한결같이 던져온 제안은 늘 그래왔듯 거절당한다.
용사가 신문을 읽는다. 마왕이 고개를 까딱인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분다.

4개의 댓글

2017.05.01
아니 ㅋㅋㅋㅋ 용사 죽을뻔한거 아니냐 ㅋㅋㅋㅋㅋ
용사 : (대사) 마왕 : (대사) 이렇게 직접 대사 넣지 말고 문장으로 표현 해줬으면 정말 좋을듯
근데 그렇게 표현해도 유치하지 않고 재밌게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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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번째자살시도
문장을 곱씹으면서 보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가독성 100% 소설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 대사가 누구의 것인지 고민하는 절차도 생략하고 싶었다
사서읽는 책도 아니고 인터넷 소설이면 뇌를 비우고 봐도 읽힐정도로 쉬워야 한다고 생각함. 그래야 끝까지 보거든. 수준이 인스턴트로 내려가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어쩔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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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방패
읽으면서도 좆같은데 재밌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게 일부러 이렇게 써서 그런거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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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2
@전장의방패
이런 방식으로 쓸만한 필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네
난 저런 대화체? 는 바로 거르는데 끝까지 다 읽었다 ㅋㅋㅋㅋ
앞으로도 잼난거 많이 써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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