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1

그도 그럴것이, 피차 너무 오래 알고지낸 사이인 것이다. 1년만 같이 살아도 별의 별 감정들이 생겨나는데, 마왕과 용사는 얼굴을 맞대고 다닌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피차 죽질 않으니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고.

마왕 "앗, 어서와!"
용사가 마왕성에 들어온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마왕이 반갑게 맞이한다.
용사 "...그래."
마왕 "여기 왔다는건 이제 루터릭 거점 점령은 끝난거지?"
용사 "그래."
마왕 "생각보다 오래걸렸잖아. 이러면 오히려 본 부대 진군 타이밍도 늦춰줘야 겠는데. 루터릭도 내가 먹을걸 그랬나?"
용사 "헛소리 마라."
마왕 "어쨌든 환영이야. 올라가자."
천천히 마왕성을 걸어올라간다. 함정은 전부 멈췄고, 몬스터와 경비병들은 전부 퇴근시켰다. 텅 빈 통로에 발자국 소리만 또각또각 울려퍼진다. 쓸데없이 길기만 한 통로다.

마왕 "커피? 홍차? 녹차?"
용사 "녹차로."
마왕 "그럼 나도 녹차로 해야지."
넓은 응접실에 조그만 원형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용사는 의자를 땡겨 앉는다. 마왕은 옆에서 직접 녹차를 탄다.
마왕 "거점은 어땠어? 인간측 생존자는 있었어?"
용사 "...아무도 없었다."
마왕 "그거 아쉽게 됐네!"
마왕이 킬킬댄다. 녹차 두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용사가 녹차를 받아든다.
마왕 "아, 원래 놀리려고 물어본건 아니였어. 거기 보낸 장군은 통솔력은 있는데 꼼꼼함이 부족하거든. 이번엔 어땠나 싶었지."
용사 "나한테 직접 물어볼 이유는 없잖아. 니 부하한테서 직접 들으면 되는거 아닌가?"
마왕 "그치만 늦는걸. 너한테서 들으면 빨리 들을 수도 있고. 현장감도 있으니까."
호로록. 마왕이 녹차를 한모금 마신다.
마왕 "근데 점령하는거 솔직히 지루하지 않아? 신성력으로 구역 전체를 채우는게 하루아침에 되는것도 아니고. 비유하자면 물속에 들어간 녹찻잎 신세인건가."
마왕이 잔을 흔들자 녹찻잎이 따라서 흔들린다.
용사 "한번 점령해두면 네놈이 건드리질 못하니까. 앞으로 귀찮아질 일을 없애려면 지루해도 해야하는거다."
마왕 "안하면 안돼?"
용사 "안돼!"
마왕 "재미없게 산다 진짜."
용사도 녹차를 마신다.
용사 "아 그래. 아까 생존자 얘기를 했었지. 사실은 한명 있었다."
마왕 "아아앗! 내 이럴줄 알았어! 밑대가리들 혼 좀 내야겠네!"
마왕이 펄쩍 뛴다. 탁자를 내려치는 바람에 찻잔에 어지럽게 파문이 인다. 용사가 담담히 말을 이어간다.
용사 "...결국 죽었지. 발견했을땐 너무 늦었다. 그저 지켜보는게 할 수 있는 전부였어. 대신 이런 말을 했다... 자기의 검을 한번이라도 대신 써달라고. 이대로 자기 손에서 사라지기엔 미안한 검이라고 하더군."
마왕 "어, 그래."
용사 "그런거다."

쐐액

용사가 검을 뽑아 참격을 날린다. 마왕이 탁자를 걷어차 밀치고 찻잔을 높이 든다. 그리고는 검이 마왕을 머리부터 발까지 반으로 갈라버린다. 피가 바닥에 흩뿌려진다. 떨어지는 마왕의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진다.
그걸 마왕이 잡아챈다.
마왕 "아이쿠."
마왕이 마왕의 시체를 내려다본다. 그리곤 시체를 발로 슥슥 밀어 한쪽 구석에 치워둔다. 새 의자를 꺼내 다시 탁자에 태연하게 앉는다.

이게 문제다. 마왕을 죽이면 바로 새 마왕이 자리를 대신한다. 용사는 마왕을 몇번이고 죽여왔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죽여봐야 무의미한 일. 마왕은 불멸이다.

용사 "이름모를 인간의 복수다. 이자식아."
마왕 "응."
마왕이 녹차를 쭉 들이켠다.
마왕 "이제 그 검은 마왕을 죽인 검이 된거네. 만족해?"
용사 "허, 그다지."
그 말에 마왕이 눈살을 찌푸린다.
마왕 "거 봐. 진짜 쓸데없는 일에 자주 열내는구나. 결국 죽은 사람도 이 사실을 모를거고, 너도 즐겁지 않았다면 완전 헛수고 한거 아냐? 인간은 이래서 안돼."
마왕이 드물게 짜증을 낸다.
용사 "뭐야, 갑자기 삐진건가?"
마왕 "아 진짜!"

마왕이 손을 휘두르고 아이스 랜스가 용사에게 후두둑 박힌다. 용사가 무심하게 박힌 랜스를 다시 뽑아던진다. 이번엔 검을 뽑아 휘두른다. 그러자 용사도 검을 뽑아 맞대응한다. 콰앙- 콰앙- 옆구리를 노린 참격도, 목을 노린 찌르기도, 스텝으로 페인트를 걸고 들어간 횡베기도 용사는 모두 쳐낸다. 결국 마왕이 검을 냅다 집어던진다. 물론 용사는 그마저도 고개를 제껴 피한다.

이것도 문제다. 마왕은 용사를 이길 수 없다. 마법도, 검술도, 군대도, 역병도, 어떤 수단을 써도 마왕은 한 발자국 용사보다 약했다.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용사는 최강이다.

용사 "아니면 한번 더 죽여달라는 것인가?"
마왕 "흥."
용사 "흠, 흠."
머쓱해졌는지 용사가 헛기침을 하며 품을 뒤진다. 한참을 찾다 손에서 나온것은 빨간 산딸기 뭉치였다. 탁자에 올려놓자 마왕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용사 "전에 얘기 꺼냈던 산딸기를 좀 가져와봤다. 네가 직접 구하기엔 위험할것 같아서."
마왕 "날 걱정해주는거야?"
용사 "산골마을 사람들이 걱정이다."
신선하고 차가운 산딸기가 은은한 향을 풍긴다. 마왕이 한참을 바라보다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톡.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왕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마왕 "셔."
용사 "신맛이 난다고 했을텐데?"
마왕 "그냥 딸기가 훨씬 맛있어."
용사가 빙그레 웃는다. 톡, 톡, 신맛이 자꾸자꾸 터진다.

용사 "밥은 먹었나?"
마왕 "아니."
용사 "내가 만들까?"
마왕 "그러든지."
용사가 응접실을 나서고 마왕은 산딸기를 하나 더 집는다. 마왕을 죽인 검이 피를 흘린다. 날이 저물어 간다.

2개의 댓글

2017.04.26
용사가 쌔면 마왕납치해서 따먹으면 대잔아
0
2017.04.27
생매장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조회 수
32453 [그림] 핫도그 여우 3 뿔난용 3 1 일 전 102
32452 [그림] 로켓단 소니아 2 띠굼아 3 1 일 전 79
32451 [그림] ㄱㄹ 3 하츠네 미쿠 6 3 일 전 134
32450 [그림] 6장 11 2049 10 4 일 전 148
32449 [그림] 에라. 그냥 올림 8 rulru 12 5 일 전 280
32448 [그림] 호인 뿔난용 2 7 일 전 147
32447 [잡담] 8월 일페부스 같이나갈 개붕이있니 10 뀰강정 3 8 일 전 252
32446 [그림] 자세를 창작해서 그리는건 힘드네 뿔난용 3 8 일 전 180
32445 [그림] 코하루 모작 연습 3 뀰강정 5 8 일 전 208
32444 [기타 창작] 3D 븜 열심히 진행중 1 에오리스 4 8 일 전 121
32443 [그림] ddsdsdsds 7 구파 10 9 일 전 112
32442 [그림] 블렌더 배경연습 한장 6 끠자치킨 6 10 일 전 132
32441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 3 뿔난용 5 14 일 전 134
32440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스케치) 뿔난용 1 14 일 전 63
32439 [그림] 오랜만에 샤프 낙서 장윈영 2 14 일 전 123
32438 [그림] 야밤 동탄 4 프로수간충 7 14 일 전 389
32437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 뿔난용 2 14 일 전 67
32436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스케치) 뿔난용 1 14 일 전 26
32435 [기타 창작] 개다, 요루시카 권주가 1 14 일 전 60
32434 [그림] 플러스터 간+테라 뿔난용 3 15 일 전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