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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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전부 용사의 탓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며 멋대로 마왕성에 누운것도 용사고, 장난에 일일히 당황하며 우습게 하는것도 용사고, 인류 최악의 숙적을 거리낌없이 대해주는 것도 용사다. 다 용사의 탓이다.


트리스 거점을 지키는 경비병의 시야에 낯선 뭔가가 잡힌다. 어린 여성의 모습을 한 그것이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자박자박 걸어온다. 뒷짐을 지고, 망토를 질질 끌며,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점을 향해 다가온다. "..." 경비병은 생각한다.
그건 북쪽에서 걸어왔다. 그건 용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건 인간이 아니다. 경비병은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검집에 손을 얹는다. 하지만 마왕은 도착했다.
마왕 "검을 뽑던가, 아예 포기하던가. 망설임이 크구나, 너."
차분하게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경비병은 얼어붙어버린다. 그렇게 경비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마왕 "시시하네."
지켜보던 마왕이 손을 뻗는다. 경비병은 그저 울음을 터트릴듯 떨며 지켜볼 뿐. 움켜쥔 심장이 터진다. 실로 시시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왕이 쓰러진 시체를 발로 누른다. 우드드득. 갈비뼈가 열리고 구멍이 패이자 비로소 꽤 재미난 모양새가 되었다. 우드득. 드득. 경비병의 시체가 곤죽이 되어간다.
"힉." 마왕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인간이 있었다. 인간이 외친다. "적, 적습이다! 위치로!" 땡땡땡! 종이 울린다. 개미굴에서 나오는 개미떼처럼, 경비병과 기사들이 튀어나온다. 훈련한 대로 일사분란하게 정렬하는 것 까진 멋졌다. 하지만 마왕과 그 밑에 깔린 시체를 보자 이내 어수선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일부는 눈을 돌려버리고 일부는 진영을 무너뜨린다. 마왕은 그걸 지켜보며 뼈마디를 하나씩 분질러 갔다. 뚜둑.


누구하나 나서지 않은 채, 시체는 핏덩이가 되어 바닥에 카펫처럼 늘러붙는다. 마왕이 발을 툭툭 털자 살점들이 튄다. 인간 무더기는 그걸 병신처럼 지켜보고만 있다. 참다못한 마왕이 입을 연다.
마왕 "너희들 오늘은 숫자가 좀 적네. 덕분에 시간이 좀 남겠는데?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아."
인간들은 반응이 없다.
마왕 "그러니까 조금 놀아주면서 일하겠다는 뜻이랍니다. 방심한 채로 싸우는 거니까, 잘하면 너희들이 이길수도 있다고?"
인간들이 쭈뼛거리며 한쪽을 본다. 과연, 대장이 어떻게 나오나 기다리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마왕도 같은 곳을 바라봤으나, 그 대장은 안쓰럽게도 공포에 질려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눈뜨고 봐주기 힘든 추태에 마왕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마왕 "...아. 안되겠네, 이새끼들."
콰앙- 구름이 일며 마왕이 튀어나온다. 가장 바깥에 있던 인간 하나를 잡아채, 손으로 배를 헤집어낸다. 그리고 씩 웃는다.
마왕 "본보기가 더 필요한거지? 시시하게 만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반복학습으로 대가리에 처넣어줄게."
촤아악. 다시 한 번 내장이 조각조각 흩뿌려진다. 가장 앞의 인간 한명이 크게 외친다. "공겨어억! 공격해라!" 있는 힘껏 지른 외침에 무겁게 깔린 공기가 훅 날아간다. 그리고 검을 치켜세워 달려든다. 그 걸음걸이엔 망설임이 없다. 마왕이 입에 미소를 걸고, 드디어 검을 뽑는다. 카아아앙! 혼신을 다한 검격이 마왕의 검과 경쾌하게 부딫힌다.


"으아아아!" 그러자 다른 인간들도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검을 뽑아온다. 대장도 검을 뽑는다. "공격하라!" "바람은 풀을 가르고!" 달려오는 인간들 틈으로 윈드 커터가 몇개 날아온다. 마왕은 먼저 마주댄 검을 비틀어 팔을 잘라낸다. "끄아아악!" 그리고 탁- 손가락을 튕기자 같은수의 윈드 커터가 날아가 공멸한다. 그 틈을 타 기사 한명이 검을 찔러온다. 마왕은 쳐내고, 목을 잡아 꺾는다. 또 한 명이 아래로 베어온다. 동작이 크다. 살짝 피하고 등짝을 깊게 벤다. "아아아아!" 어깨를 앞세워 돌진해온다. 체중을 완전히 실은 공격은 튕겨내기 힘들다. 마왕이 그걸 무릎으로 걷어차 박살을 내고, 타이밍 좋게 마왕의 등 뒤로 검격이 날아온다. 휘릭, 마왕이 한 손으로 칼등을 밀어내 자세를 무너뜨린다. 머리를 터트린다.
투쾅, 대장의 검을 받아내자 마왕의 손에도 짜릿하게 진동이 온다. "죽여주마!" 대장이 분노에 찬 말을 뱉는다. 때문에 검은 무뎌지겠지만, 검을 뽑지도 못하는 두려움보단 낫지 않은가. 팅, 팅, 마왕이 요리조리 검을 흘려보낸다. 이에 경비병 두명이 가세한다. 서걱- 마왕이 허리를 힘껏 틀어 피했으나, 살짝 닿아 처음으로 마왕의 피가 튄다. 용기를 얻은 경비병은 아쉽게도 다음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아이스 랜스에 구멍이 뚫린다. 다른 한 명은 망설였다. 그 댓가로 심장이 반토막난다. 이어 지쳐버린 대장의 눈먼 검격이 허공을 가른다. 마왕은 자세를 숙였고, 목을 깊게 베인 대장은 고꾸라졌다. 무거운 시체를 밀쳐내고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보자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마왕은 그것을 닦아 혀로 맛본다.
"우오오오오!" 눈치를 보던 기사가 대장의 죽음에 검을 꼬나들고 달려든다. 캉! 마왕이 쳐내자 검이 허무하게 날아가 땅바닥에 꽂힌다. 검이 사라져 당황하는 기사의 모습에 마왕이 혓바닥을 찬다.
경비병이 뒤를 노리고 검을 뻗는다. 마왕이 그것을 쳐내고, 심장에 검을 꽂았다. "컥." 경비병의 검이 그제야 땅으로 떨어진다.
마왕 "봤어? 이녀석의 검이 훨씬 무거웠어. 넌 용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존심만 센거네. 그것도 분수에 안맞는."
주저앉아 뒷걸음질 치는 기사를 마왕이 들어올린다.
마왕 "최악이야. 죽어."
그대로 땅에 얼굴을 갈아버린다. 묻은 피가 더러워 마왕은 손을 툭툭 털었다.


고개를 들자 벌벌 떨고있는 나머지 것들이 보인다. 공격해오는 인간이 더이상 없다. 남아있는 것들은 길바닥의 개미만큼이나 시시한 것들이다. 마왕은 검을 집어넣었다.
마왕 "그럼, 최소한 죽을때는 재미있게 죽어줘."
마왕이 주저앉은 인간 하나를 붙잡는다. "으아아! 아아아아악!" 그것만으로도 돼지같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왕은 혀뿌리를 뽑아 던져버렸다. 재밌게도 정작 죽는 순간에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마왕이 시체를 버린다. 털썩.
엉거주춤 기어서 도망가는 인간을 발로 누른다. 그대로 척추를 드르르륵 뽑아낸다. 축 늘어진 가죽덩어리를 땅에 떨군다. "도, 도망쳐어어!" 라는 말을 입에 담은 인간은 배에 어스 차지를 두들겨맞고 마왕의 앞으로 던져진다. 퍼억. 목이 끊어져 절명한다. 검을 떨어뜨린 버러지들은 하나씩 하나씩,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제 차례를 기다리며 죽어나갔다.
그리고 하나가 남았다. 마왕이 걸어오자 그것이 검을 뽑아 겨눈다. 마왕이 멈춰 바라보자, 꽤 어린 아이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인 탓에 용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흔들리는 검이라도 마왕을 향하고 있다. 이에 마왕이 다시 검을 뽑는다.
마왕 "아직도 시간이 남네."
"아아아악!" 날선 비명을 지르며 애송이가 달려든다. 푸우욱. 애송이의 어깨가 반쯤 잘려나갔다. 그리고 마왕의 심장도 뚫렸다.
마왕 "..."
마왕이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니, 그 검은 등 뒤에서 꽂혔다.
"죽... 어라..." 그래, 제일 처음 달려든 그 인간이다. 팔이 날아간 채로 최후까지 기다리다 가장 완벽한 시점에 뒤를 친 것이다. 마왕은 죽어가면서도 천천히 애송이의 심장까지 검을 밀어넣는다. 그리고, 죽는다. 죽었다.


마왕 "너, 지금보니 3일짜리네."


인간은 등 뒤에서의 목소리를 듣는다. 털썩 엎어져 숨을 고른다. "어...떻...게..."
마왕 "그냥 죽어도 다시 돌아오는거야. 마왕의 특별한 힘. 즉, 처음부터 너희한테 승리같은건 없었던거지. 속인점은 참 미안하네."
"..." 마왕이 멋쩍게 코를 긁는다.
마왕 "...그, 넌 확실히 날 한번 죽였어. 마지막 일격. 그거 피해버렸거나, 빗나갔거나 한게 아니니까."
실망하지마- 라고 하려 했을까. 마왕이 쭈그려 앉아 인간을 내려다본다.
마왕 "맞아, 3일짜리 인간이라고 내가 말했지. 그건 나~중에 너희의 수도를 칠 때의 이야기야. 만약 네가 살아있으면, 최후의 테자비온 공성전은 3일 더 연장된다는 뜻. 보통의 병사는 1시간도 못채우지. 초 단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놈들도 많아. 3일이면 정말 대단한거라고. 저쪽의 대장보단 네가 훨씬 나았어."
...
마왕 "...아. 죽었다."
모든 인간을 잃은 거점이 바스라진다.
까마귀떼가 날아와 마왕의 시체를 뜯는다. 해를 바라보니, 곧 노을이다. 좀 이르긴 하지만, 일찍 돌아가면 그거대로 용사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왕 "돌아갈까."
마왕이 마왕성으로 돌아간다. 찰박, 찰박, 가벼운 발자국이 무거운 피웅덩이를 남긴다.

1개의 댓글

2017.05.23
5화를 맞이하여 잠깐 피드백을 받을까 합니다. 객관식으로 놓았으니 그냥 고르시면 됩니다.
귀찮으시면 안하셔도 되고, 귀찮지 않다면 도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은 철저히 인스턴트 웹소설을 지향하며, 가독성과 흡입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실험적인 요소들을 여럿 넣었습니다. 우선 그 부분에 대해서 점검하고 싶습니다.
노코멘트 하고 싶은 부분은 0으로 답변해주세요.

마왕 "xxx" 용사 "xxx"와 같은 네이버 웹소설식 대화표기법에 대해서
유치해서 봐주기 힘들다(1). 문제 없다(2).

~한다. 와 같은 현재형 문체가 대부분인데, 이것에 대해서
정신없다(1). 문제 없다(2).

문단 구분, 즉 엔터키에 대해서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다(1), 문제 없다(2).

쉼표에 대해서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다(1), 문제 없다(2).

작가 관찰자 시점, 즉 인물의 속마음을 직접 쓰지않고 지켜보는 사람의 눈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
마왕과 용사의 속을 도통 납득할 수가 없다(1). 지장이 없을 만큼 이해할 수 있다(2).

04, 05에서 주로 나온 전투씬에 대해서
무슨 장면인지 알아듣기 힘들다(1). 어느정도 상상이 가능하다(2).

카앙! 같은 효과음에 대해서
별로다(1). 별 생각 없다(2).

맞춤법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다(1). 참을 만 하다(2).

이외에도 의견 있으시고 귀찮지 않으시다면 피드백 부탁합니다. 캐릭터성, 내용이나 떡밥같은 종류는 굳이 이번에 점검하지 않습니다만 궁금하신 부분 있으면 스포일러가 아닌 선에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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