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의 멸망은 우리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갈리아를 점령한 이상 그 것에 대한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로마는 곧 눈을 동쪽으로 돌렸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로마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서부를 되찾기 위해 벨리사리우스를 보냈듯.
호노리우스도 거병하여 동부로의 수복을 꿈꾸었다.
제국은 살로나를 수복한 뒤
동부 항구의 중심지인 디라키온을 수복했다.
제국은 일리리쿰 속주에 대한 우위권을 차지했다.
디라키온 뿐이겠는가?
코린토스마저 함락시키면서 제국은 그리스를 거의 차지했다.
제국은 게피드에 전쟁을 선포한 뒤 테살로니카에 대한 공략을 예고했다.
하지만 제국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제국은 디라키온에서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했으며
폐허가 된 디라키온은 수성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제국군은 굳건하게 맞섰으나 불행하게도 우울한 패배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는 작은 패배일 뿐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제국은 곧장 뒤 따라오던 후발 군대를 이용해 디라키온을 다시 한번 수복했다.
더불어 테살로니카 마저 손에 넣으면서 그리스 속주를 완벽하게 차지하였고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를 되찾기 위한 로마군의 진군은 계속될 터였다.
곧 제국군은 진군을 지속하였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성벽앞에 다다랐다.
게르만족의 도시가 된 콘스탄티노플을 살펴보겠다.
도시 자체는 로마식을 유지하고 있으나 콘스탄티노플의 성소, 하기아 소피아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포룸은 여전히 압도적인 위압감을 보여준다.
게르만의 도시인 탓인지 3중 성벽은 보이지 않는다.
제국군의 압도적 공격앞에 콘스탄티노플은 수복되었다.
잠시동안 게르만의 압제에 고통받던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환호했다.
훈족 용병 기병대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였다.
훈족으로서는 최초로 콘스탄티노플에 군대로서 입성하는 것이다.
로마 군대가 자랑스럽게 콘스탄티노플의 시가지를 행군했다.
이 곳에서는 이제 동로마 특유의 쌍두독수리기가 아닌 서로마의 독수리기가 올라갈 터였다.
또한 이 곳은 더 이상 그리스 정교의 도시가 아니라 라틴 기독교의 지배를 받을 것이었다.
정신을 못차리고 로마 군대에게 저항하는 시민들은 사정없이 도륙했다.
게르만의 압제에서 구해주었는데 이런식으로 대한다면 곤란할 것이다.
곧 게르만의 마지막 군대를 섬멸하며 콘스탄티노플을 최종적으로 탈환했다.
서로마 황제는 이를 크게 치하하며 제국의 동부와 서부가 다시 합쳐진 날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늙고 병든 호노리우스 황제는 얼마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52세의 나이에 그의 일대기를 마무리 지었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였다.
제국은 이제 동부와 서부를 다시 아우르게 되었고 압도적인 통치력을 얻어내게 되었다.
갈리아 이베리아 이탈리아 일리리쿰 북아프리카를 이은 대제국은 아직도 로마인이 강성함을 보여주었다.
문틈
아와비아의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