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 자치독립 읽을 거리 참고글 : http://www.dogdrip.net/139643180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누가 일단 통일 공동체부터 만들고 나서 독립을 생각하라고 해서 썼음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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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군의 시초는 조선, 대한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위 지도는 에도막부 후기-메이지 유신 초기에 일본 정부에서 파악한 조선 및 대한제국이다.
쿠르드족과는 다르게 한국은 예전부터 전제군주국으로서 일단 단일중앙집권국가를 표명했기때문에, 군주없는 단일국가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부터 1905년 을사늑약이후에 분류에 따라 계층별로는 3개 부류, 왕의 칙명을 받은 존왕양이파(왕의 친족들 및 친왕파 양반들), 자발적으로 일어난 유학파(양반들,elite층)과 일반 백성들의 각기 다른 항일운동 파벌, 종교별로는 유학파, 종교별로는 유학계(흔히 말하는 양반들), 동학계, 불교계, 기독교계, 종교가 없는 파벌이 생겼다.
이 파벌이라는 것도 잘 이해해야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 파벌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견련되있는 파벌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3개의 파벌들이 각각 시초를 이루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아갔다.
이 분류하기 애매한 파벌끼리도 크게는 온건파, 강경파, 작게는 수구, 온건수구, 온건진보, 진보계열로 뒤섞이어 유럽에서는 흔히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 혼잡한 19세기말을 극복해나가 국가간 생존경쟁에서 근대화, 개혁을 해나가며 외세를 물리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와중에는 외세의 힘을 빌어 이를 극복해보자고하는 친일파, 친청파, 친러파, 친미파, 친영파, 친독파, 친불파 등등 각기 다른 생각들이 난립해 나간 혼잡한 시기라 볼 수 있다.
문과(극혐)생들은 대다수 알겠지만, 김옥균, 김홍집, 흥선대원군, 고종, 민비 등 역사에 굵은 이름을 남기고 간 거인들은 전부 한 목표 조선*대한제국의 국가생존을 건 근대화를 목표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라 불리던 벨에포크 시대는 조선에게는 생존의 시대였다.
대충 감이 오겠지만, 시발점이 다르면, 전개과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왕의 명령을 받은 존왕양이파들은 그냥 보수 중에서도 진보 보수와 수구파로 갈리는 관리계열의 인사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진짜 왕이나 왕실의 칙명을 받고 한양 또는 지방에 내려가 지방양반들과 백성들을 규합하였으며, 자금또한 왕실에서 초기자원부터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사상적으로는 위정 척사라고 불렀다. 위정척사란, 그 유명하신 최익현 양반네들을 중심으로 [衛正 : 바른것을 지키고 , 斥邪 : 사악한것을 물리치자]라는 의미로 바른 것은 성리학이며, 사악한 것은 당시 조선 사대부들, 민중들이 이해 할 수 없는 양이들의 문물이었다. 이들의 의지는 1920년 근까지 한반도 내에서 의병 항쟁을 하다가 일본의 한반도 대토벌작전으로 인해 더이상 제국내의 투쟁이 불가능해지자 만주, 중화민국으로 넘어가 구성하는 일파가 된다. 유명인으로는 이항로 선생님이 계신다. 이항로 선생님은 위정척사계중에서도 화서계였는데, 굳이 꺼내는 이유는 이 존왕양이-위정척사계열에서도 화서계, 노사계, 한주계 등 그 계열이 또 갈린다.
미국의 경제압박으로 인해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쟁을 확대한 일본에 의해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가 함락되었고, 임시정부는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충칭으로 본거지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한인 애국단을 통해 1932년 이봉창의 히로히토 테러사건, 이덕주와 유진식의 조선총독 암살 미수, 유상근과 최흥식의 관동군 사령관 암살 미수, 윤봉길 의거등 꾸준히 활동을 해갔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의 공동회, 국민회, 멕시코 등지에 모금을 하러 다녔으며, 윤봉길 의거 이후에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에 의해 지원을 받게 되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다.
오랜 항일투쟁,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독립운동가들에게는 통일된 전선의 절실함을 느꼈고, 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통합운동을 전개하엿으나 두 달만에 분열되었고, 이후 좌익의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혁명자연맹, 조선청년전위동맹과 민족주의진영의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등의 대표들이 영산호텔에서 통일 회의를 개최하였으나 조선청년전위동맹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이 이탈하였고, 후에 조선민족혁명당이 이탈. 결국 민족주의진영만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중국내륙까지 전화에 휩싸이자 임시정부는 본격적인 군사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 광복군을 설립하였고, 과거 신흥 무관 학교 출신 독립군이 대거 참여하게된다.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42년에 김원봉계열의 조선의용대가 합류하여 비정규전에 참여하였다.
후에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의 지원하에 특수 요원을 육성하엿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패망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끝이 났다.
광복 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승인된 독립운동가들만이 해방된 조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각각 김구의 한국독립당,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성수*송진우의 한국민주당,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김규식*안재홍의 국민당 등에서 각각 활동하게 되지만, 결국 해방이후에도 서로 반목하다가 암살, 납치, 테러등으로 위 인물 중 이승만과 박헌영을 제외하고 한국전쟁까지 살아남는 인물은 없었다.
가끔보면 우리나라 독립은 진짜 독립을 향한 열망하나 가지고 엄청 낭만주의를 품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대상황 및 그분들도 사람인지라, 암살하고 위장살해하고 욕하고 똥싸놓고 도망가고 별짓 다함.
어설프게 쓴 글 읽어줘서 고맙고, 틀린거 있으면, 귀엽게 봐줘.... 나름 보기 쉽게 쓴다고.. 3시간 걸림.. ㅂㄷㅂㄷ..
어그로거북
문틈
Jean Moulin
NMNM
로히림
ReconNyko
에스파다
연합군측이 한국이란 나라를 일본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게된 계기가 됐지.
스에히로안나
흰두루
Jean Moulin
후이바르
스에히로안나
인생뭐아무것도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