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판

즐겨찾기
최근 방문 게시판

펌)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던 나의 셈은 틀렸다

(전략)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10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이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늘 전자기력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인력과 강력,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 이렇게 4가지 힘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내 손이 키보드를 그냥 통과하지 않고 누를 수 있는 건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은 ‘나’를 ‘나’라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나 <에반게리온>의 ‘에이티(AT)필드’처럼 내가 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인 것이다. 너무 외롭다고 해서 아예 걷어버리면 나라는 형태가 허물어진다. 반대로 타인이 너무 두려워 보호막으로 두텁게 에워싸면 속절없이 너무 멀어져 버린다. 요컨대 타인과의 거리라는 것은 바로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어림잡아 더하는 일이다.

 

삶에 있어 큰 사고라고 할 만한 최근의 일을 통과하면서, 나는 나의 가시와 보호막이 터무니없이 길고 두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길이와 두께는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오랫동안 비대해져 왔다. 그래서는 애초 타인과의 정확한 거리를 셈하는 게 무의미하다. 어떻게 해도 서로의 말이 닿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나의 셈은 틀렸다.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몸을 만드는 일을 포기한 건 아니다. 아마 남은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다만 애초 왜 그런 맹세를 했는지 질문을 다시 해보았을 뿐이다. 그건 버티기 위해서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몸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의 내 상황에선 맞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버틴다는 것이 혼자서 영영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는 태양계 경계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절대적인 고독 앞에 혼자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비할 수 없이 가치 있다는 걸 깨닫고 지구로 귀환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간단한 걸 우주 끝까지 가서야 알 수 있냐며 조소한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무언가를 깨닫는 데는 늘 큰 비용이 든다. 무려 암에 걸리고서야 그걸 알았냐고. 그러게 말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23053.html#csidxa3b8dc067028532a807cfdf20505e97 

 

 

옛날 이글루스에서 찌질거리던 허지웅씨가 이렇게 될 줄은...

글 참 잘쓴다

3개의 댓글

2020.08.08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0
2020.08.08

이글루스 허지웅 올만이네.

당시 허지웅 난해하게 글 쓴다고 안티 많았지

0
2020.08.08

저걸 이제야 깨달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허지웅씨.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3881 오세훈, 한동훈 저격글에 다시반격 “SNS 의견제시 최소화해야” 1 엄복동 6 분 전 38
653880 [뉴스1] 응애 나 초선의원 설문조사충 12 분 전 64
653879 프랑스식 시위 함 조져야하지 않나? 1 E편한세상 14 분 전 55
653878 몰랐으니까! 2 슈뢰딩거의SW 19 분 전 88
653877 직구규제 자체에 대해 대통령이 알았냐 몰랐냐가 중요함? 6 소리없이남은 26 분 전 128
653876 이번 직구 kc인증 문제는 6 쿨럭 27 분 전 112
653875 軍 고위공무원·장성 '개인 이메일' 해킹 "군·... 매콤챱스 27 분 전 51
653874 근데 한동훈은 글이랑 말이 왜 저모양임??? 5 투기꾼입니다만 29 분 전 112
653873 김관진은 사면복권해줬으면 김경수도 해줘야하는가 1 ㅇㄱㄱㅈ 30 분 전 58
653872 채상병 문제부터 직구 사태까지. 1 와일드서지 32 분 전 78
653871 그래서 이번 KC인증 추진하고, 혜택 받는분들이 어떤분들임? 6 교수님다메요 40 분 전 132
653870 근데 관세청은 왜 저러는거냐? 5 환상수첩 42 분 전 158
653869 이 일은 대체 어떻게 끝날까 욕정컴미 48 분 전 71
653868 서울시장께서 저의 의견제시를 잘못된 처신이라고 하셨던데 8 엄복동 50 분 전 180
653867 갑자기 용산 이전이 생각나네 1 nullpoint 54 분 전 75
653866 하도 급발진 하는 정책이다 보니 각종 음모론이 튀어나오네. 5 와일드서지 1 시간 전 190
653865 대통령령을 대통령이 다 알 순 없지 2 년째하는중 1 시간 전 142
653864 그래서 7광구는 진실이 뭐냐??? 5 외앉뒈오똫헤 1 시간 전 163
653863 아크로비스타에 헬기장 없나 학습된무기력 1 시간 전 59
653862 "정의당은 이제 망했어!" 6 년째숙성주 1 시간 전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