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한자 교육은 어휘력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요새 MZ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라는 논란이 많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로 '심심한 사과', '명징하게 직조한...' 등과 같은 한자어가 그 중심에 서 있죠. 따라서 이러한 해결책으로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경향이 X세대와 그 윗세대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 교육이 곧 문해력의 하위 범주라고 할 수 있는 어휘력으로 연결되는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일반적으로 어휘력을 논함에 있어 한자어를 중심으로 한 어휘력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단어의 뜻을 해석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글의 중심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기에 틀린 경향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자를 알아야 한자어를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교육학 및 교육 심리학적으로 접근해봅시다.

 

1. 한자는 우리 환경을 보았을 때 습득이 아닌 학습하는 것이다.

 

  제1 언어는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접하고 사용하는 모국어를 뜻합니다. 이러한 모국어를 어떻게 익히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교육학적, 심리학적 이론들이 있습니다. 그중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바로 행동주의, 생득주의, 구성주의의 세 이론입니다. 행동주의는 올바른 습관의 형성을, 생득주의는 언어적 입력이 뇌에 내장된 특수한 장치를 거쳐 언어적 출력이 발현됨을, 구성주의는 환경 또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습득을 언어 발달의 원인으로 설명하죠. 하지만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습득'입니다. 모국어는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습득'되는 것입니다. 언어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의 행동 강화 혹은 입력 제공 등을 통해 습득되는 것입니다. 반면 학습은 본인이 노력하여 집중을 기울여 공부하는 것인데 모국어는 이렇게 형성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국어 능력은 습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자교육은 바로 이러한 습득 조건 때문에 필수 교육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현재 한자를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한자어라고 하더라도 소리만 한글로 표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간혹 신문에서 쓰이더라도 한글 표기와 병기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한자 사용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한자를 습득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텍스트 자체가 전부 한글로 표기되어 제공되는데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까요? 한자는 인위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현재의 환경입니다. 그런데 학습한 것은 절대로 습득된 지식으로 변환되지 않습니다. 언어학자인 Krashen에 따르면 학습한 지식은 습득된 지식의 교정자 역할만 할 뿐 유창성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암기 등으로 학습한 한자 지식은 글을 독해할 때 맞게 독해했는지 차후에 점검하는 역할만 할 뿐 단어 읽기와 독해를 이어주는 근본적인 읽기 유창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학습된 한자 지식은 글을 다 읽고 단어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사전 찾아보는 것과 비슷한 역할밖에 못 한다는 뜻입니다.

 

2. 우리는 한자를 학습하지 않고도 어휘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한자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는 맥락 중심으로 지도하는 현재의 국어 교육 방향과 연결됩니다. 글에서 단어는 탈맥락적으로 단독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항상 문장 내 다른 단어 그리고 다른 문장과 연결되어 제시됩니다. 더 나아가 배경지식을 통해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하향식 글 읽기 모형을 적용한다면, 글 속의 단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어휘와도 연결됩니다. 이런 읽기 과정을 기초로 할 때, 우리는 어떤 단어의 뜻을 문장과 문단 그리고 글 전체와 배경지식을 통해 유추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글을 읽다가 배양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른다고 했을 때, 해당 학생은 앞뒤의 다른 문장을 살피고 자신의 배경지식을 통해 맥락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를 유추하여 유추한 뜻을 바탕으로 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독자들이 단어를 읽고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한편,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분 중 국가정치가의 차이도 모르고 어떻게 낱말의 의미를 알 수 있냐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이미 많은 선행 연구가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노명희(2006)덕목과 같은 2자어의 내부 구조를 다른 단어와의 관련 성속에서 의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으므로 전체 단어에서 파악되는 의미와 관련시켜 의 공통된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개념의 연상을 통해 명목이나 이목’, ‘목적등을 떠올리고 여기에서 의 의미를 추출해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박상숙(2018)에 따르면 한국어 모어 화자들은 가옥, 가정, 가족...’ 등의 단어에서 의 공통된 의미를 추출할 수 있으며 건축가, 정치가, 화가...’ 등의 단어에서 ‘~하는 사람의 의미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를 해석할 때 더 이상 원래 쓰이던 한자인 ’, ‘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한자 암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자 교육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는 아직 학계에서도 학자별로 의견이 나뉩니다. 하지만 현재 국어 교육을 봤을 때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쪽의 의견이 대세로 자리 잡았고, 또 그렇게 교육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암기 위주의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었고 또 그게 교육의 대세였습니다. 많은 텍스트가 한문으로 쓰여 있었고 이를 모르면 독해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문맹률이 높았고 많은 사람이 글을 편하게 읽기 위해 거의 모든 텍스트가 현재는 국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환경에 맞는 어휘 교육 방법이 필요하며, 이에 효과적인 방식은 독서와 체계적인 어휘 지도 방법임을 이미 많은 국어학자와 초중등 교육가들이 제시하였습니다.

 

  많은 윗세대들이 보기에 한자로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개탄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세대가 한문이 극히 드물게 쓰이는 환경에 놓인 것과 시대가 변했음을 이전 세대가 인지하지 못해 생긴 오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젊은 세대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읽기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더 이상 예전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젊은 세대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골똘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노명희, 「한자어 문법 단위와 한자어 교육」, 국어국문학 142, 국어국문학회, 2006, 465~489쪽.

박상숙,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한자어의 의미 제시 방안 연구」, 한국학연구 51,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 475~494쪽.

109개의 댓글

2022.11.19

중국어, 일본어 공부할땐 도움이 되지

그리고 한자 읽을줄 알거나 사자성어 많이 알면 유식해보이는 척하기도 좋고

 

0
2022.11.19

한자를 부수에 획수까지 일일이 외워가며 빽빽하게 써대는 그런 방식으로 가르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어휘나 조어원리를 익히는 건 필요하다. 이건 오히려 한국어 학습를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다.

 

영어 교육에서 문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어릴 때 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었다면 영문법 교육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문법 교육이 영어 습득에 더 효율적이다.

 

한자도 마찬가지. 어릴 때 부터 다양한 텍스트를 자연스럽게 습득해 온 사람은 한자 교육 없이도 자연스럽게 고급 어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누구나 다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다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는 환경에 노출될 수 없다. 괴상망측한 영문법이 아닌 실용영문법에 대한 교육은 필요한 것처럼, 빽빽이 한자교육이 아닌 실용 한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9
2022.11.19
@가이브러쉬

국어 교육에서도 낱말 구조 분석을 통해 어휘 지도를 하긴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모든 학생이 다양하고 질 좋은 텍스트를 접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하는게 지금의 교육 방향입니다.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 적절하기에 채택된거지 진리는 아니기에 언젠가는 또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의 방식이 알고 보니 다른 방법보다 비효율적일 수도 있는 것이죠. 나중에 다시 한자 교육이 필수로 대두될 수 있구요.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은 많은 입력을 바탕으로 문맥 속에서 어휘를 지도하는 것이 현존하는 다른 방식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입니다.

0
2022.11.19

표의문자인 한자가 없어서 어휘력 딸리면

라틴어쓰는 코쟁이놈들은 죄다 병신이게?

6
2022.11.19

개인적으론 영어 공부할 때 접두 접미 공부해두면 비슷한 시리즈들 문맥상 읽을 수 있듯이 한자 공부도 도움 많이 되던데

1
2022.11.19

한자교육이 어휘력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의 논의에서 사람들이 크게 간과하는 점은, 그게 의미있는 사람의 범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여. 연구과제 보고서 같은 기술적인 글쓰기를 많이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적확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개개별 한자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것이, 명료하면서도 압축적인 글쓰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어. 비슷한 다른 예로, 의사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의학용어들이 라틴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때부터 따로 라틴어를 배웠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어. 이와 같이 한자어의 정교한 사용과 이를 가능하게하는 한자공부는 전문적인 글쓰기를 요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거고, 그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듭하여 한자공부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거여.

이와 별개로 본문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어휘의 학습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은 없어. 나도 그렇게 어휘를 배웠었는걸, 다만 그렇게 어설프게 감으로 배운 어휘의 부정확한 사용에 대해서 개쳐맞으면서 고쳐진게 열받아서 이렇게 인터넷 상에서 한명이라도 설득 못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다는거지.

하여간 핵심은 이거야. 한자 공부 필요성을 느끼면 하는거고, 없으면 안하는거고. 누가 맞니 틀리니 아무 의미없음.

더 쉽게 말해주면, 수학공부 살면서 어디에 씀? 이거랑 똑같은 논의야. 필요한 사람은 수학 열심히하고, 아닌 사람은 안해도 되고.

5
2022.11.19
@까궁123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어느 분야냐에 따라 한자나 라틴어가 필요하기도 하지. 내가 말하는 건 알다시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영역을 말하는 거야. 기초가 닦여야 응용이 가능하듯, 일상적인 영역에서 능숙한 독자가 되어야 네가 말한 전문 분야의 독해와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보면 좋을 것 같아.

9
2022.11.19
@Norway

? 그러면 한자교육은 어휘력에 큰 도움이 되는거 아니야? 왜 말이 바뀜? 글쓴이 말고 다른이가 이런 댓글을 달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님은 아님. 이 글의 주장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지;

1
2022.11.19
@까궁123

말을 바꾼 적이 없는데 잘못 이해가 되게 말을 했나...? 학문적 영역에서는 해당 학문 분야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가 있어. 이는 주로 자주 쓰이지 않는 한자어나 라틴어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말하는 어휘력으로 보지 않지. Tibia라는 정강이뼈 용어를 모른다고 어휘력이 달리다고 얘기하나? 네가 말한 것처럼 전문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한자가 필요한 경우가 일부 있지만 이를 일상으로 일반화시키면 안된다는 얘기야.

4
2022.11.19
@Norway

그걸 왜 어휘력으로 안보지? 난 그게 더 이해가 안가는데? 그러면 칼같이 나눠서 어휘력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나?

1
2022.11.19
@까궁123

용어 정의에 대해서 질문을 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봤는데...

이찬승 외 3인의 "초등학생의 교과 어휘력 격차"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어휘력이란 일상에서 쓰는 어휘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로 규정해. 이외에 다양한 어휘력 정의가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이러한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나 또한 이러한 의미로 서술했어. 인문사회 계열에서 용어 정의는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0
2022.11.19
@Norway

내가 그러면 금일이라고 쓰면 어휘력이 아니고, 오늘이라고 쓰면 어휘력인가? ㅎㅎ

 

0
2022.11.19
@Norway

쉽게 풀어서 말해주지, 어휘력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면,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驅使)할 수 있는 능력"이야. 그런 정의로 따졌을 때, 내가 말한 것은, 전문적인 분야에서 한자어에 기반한 명료한 어휘가 필요하다. 라는 거고 그건 니도 동의했어. 그러면... 그 한자를 공부한게 "어휘를 (전문적으로) 풍부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에 도움되는거 아니야? 왜 이걸 어휘력 아니라고 주장해? 그것도 니 죶대로 일반적으로 한정지으면서?

1
2022.11.19
@까궁123

논쟁을 하는 건 좋은데 기본적인 태도가 아니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10
2022.11.19
@Norway

ㅡㅡ 개 역겹네요 님 진짜

2
2022.11.20
@까궁123

ㄹㅇ 병신인증이네 ㅋㅋㅋㅋㅋ

4
2022.11.20
@까궁123

ㄹㅇ ㅋㅋ

0
2022.11.21
@까궁123

역겨운건 님같습니다

1
2022.11.22
@까궁123

너 이미 이해했는데 쪽팔려서 존나 우기고 있는거잖아 그래놓고 역겹대

0
2022.11.20
@Norway

에휴 그렇게 책임감없게 주장 싸지르고 도망다니는 버릇하세요. 현실에선 보지 맙시다.

1
2022.11.20
@까궁123

똥이 무서워서 피하랴… 행복한 주말 보내길 바랍니다.

0
@까궁123

뭐야 얘 왜 혼자 염병임

5
2022.11.20
@까궁123

현실에서 보지말아야할 사람은 본인인듯

6
2022.11.20
@까궁123

행복한 주말 보내길 바랍니다

1
2022.11.20
@까궁123

지가 남의 글에 와서 말하면서 왜 지만의 정의를 들이밀지 진짜 지능낮네 ㅋㅋㅋ...

 

니생각 말하고싶으면 따로 글을 써라

1
2022.11.21
@까궁123

뭐냐 이 신박한 등신은 ㅋㅋㅋㅋㅋㅋㅋ

0
[삭제 되었습니다]
2022.11.19
@달째뷰릇뷰릇싼다

댓글 잘 읽고 간다

1
2022.11.19
@달째뷰릇뷰릇싼다

밑에 내 댓글도 한 번 읽어봐줘 ㅎㅎ 왠지 너라면 잘 공감해줄 내용일 것 같아서

0
2022.11.20
@달째뷰릇뷰릇싼다

맞아요. 아무리 문맥으로 유추하려 해도 안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 찾기가 중요하고 습관화하도록 교육되고 있습니다. 어휘의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중요하기에 사전 찾기가 필수적입니다. 다만, 한자를 학습했으면 굳이 사전을 찾는 검증 단계를 생략할 수 있겠지요.

1
2022.11.19

본문이랑은 다른 얘기지만 연관성 정도는 있는 일이라 전부터 종종 하던 생각이 다시 떠오르는데요, 저는 10년 넘게 독일에서 살고있는데, 독일에 부러운 점이 있어요.

 

우리말에 '파악하다' 라는 말이 있는데, 대충 뜻을 이해한다, 뭐 그런 의미잖아요? 근데 이 낱말의 한자를 살펴보면 '잡을 파', '쥘/잡을 악' 이란 말이죠. 독어에 거의 같은 의미의 낱말로 begreifen [베그라이펜] 이라는 말이 있어요. 파악하다랑 마찬가지로 이해하다, 뭐 그런 의미입니다. greifen 은 쥐다, 라는 뜻을 갖고있고, 앞에 붙은 be- 는 목적어를 가지는 동사라는 의미를 좀더 강화해 주는 기능을 합니다. (be- 부분의 기능이 이것 뿐만은 아닐 것 같지만 저는 언어학이나 독어 전공자는 아니라 깊게는 잘 몰라요.)

 

이해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들인 '파악'이나 'begreifen' 이나 본래의 뜻을 살펴보면 잡다, 쥐다, 이런 의미가 있는데, 이런 걸 보면 뭔가를 잡았을 때의 느낌이, 뭔가 뜻을 잘 모르고 허우적대다가 마침내 뭔가를 딱 잡았을 때의 그 느낌이랑 이어지는가보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텐데, 독어에서는 이게 쉽게 되지만 한국어에서는 한자를 모르면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말에 한자어가 매우 많음에도, 한자를 따로 힘들게 공부해 두지 않으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거나, 역으로 한자로 된 낯선 한자어-단어를 봤을 때 낱말을 이루는 각 한자들의 뜻을 통해 전체 낱말의 뜻을 이해한다거나, 이런게 직관적으로 잘 되지 않으니까, 그게 참 아쉽단 생각이 듭니다. 한자 공부를 해 놨더라도 책에 한자 병기가 되어있지 않으면 큰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고요…

 

조금이라도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담고있는 말은 거진 다 한자를 빌어서 담아내고 있었다보니… 한자에 담아진 지적 내용물들에 접근하려면 한자를 따로 배워야 되고, 뭐, 오늘날에는 지적 문화의 중심이 서양이 된 마당이기도 하니 한자쪽을 단념한다 치더라도 서양의 지적 성과에 접근하려면 영어를 아주 힘들게 배워야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자기네 말로 지적 성과들을 일구고 담아낸 바가 있다보니 독일어만 잘 알아도 접근할 수 있는 지적 내용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좀 부럽더라구요. 거기도 아주 옛날엔 라틴어를 썼다지만, 칸트도 독어로 자기 생각을 써 놨고…. 뭐, 독어가 모어인 사람이 영어를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게 배우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물론 이런 상황은 한국어 화자 뿐만 아니라 주변부 (←좀 모호한 표현이지만 제가 어떤 얘길 하고 싶은 건지는 충분히 전달되리라 믿습니다) 문명의 언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해당되겠지 싶긴 합니다.

2
2022.11.20
@메롱매롱

말씀하신 걸 보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사전을 찾고 낱말의 구조를 분석하며 의미 지도를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전 찾기를 제외하고 개인이 하는 경우는 드물고 어휘 지도의 한 방법으로 쓰이죠.

당장 인터넷 정보의 약 70% 가량이 영어이고 한국어는 소수점 둘째자리에 해당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니... 전문 분야는 더 심하겠죠? 댓글 쓰신 분의 탄식을 이해합니다.

3
2022.11.20

한자를 배워야만 한자어를 해석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좋은 글이네요. 확실히 저도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문맥으로 파악하는 때를 생각하면 맞는 말인것 같어요.

0
2022.11.20
@일간주간월간

예시를 든 글들이 왜 논란이 되었는가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해가 되었네요.

 

글 내에서 단어는 확실히 탈맥락적으로 쓰이지 않지만, 논란이 된 글들은 한 줄로 나타났기 때문에, 심심이란 말이 따분하고 할 게 없다는 심심하다의 의미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를 표합니다라는 표현에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이 생겼네요.

 

명징하게 직조해낸이란 글에서도 이는 한줄평이었기때문에, 글 자체는 탈맥락적이지 않았지만 명징과 직조를 모르는 독자는 이 한줄로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해하지 못했던 거고요.

 

그러면 이러한 사태는 어휘력의 부족이 아닌,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자세의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색한 단어나 문맥 등이 있으면 버럭 화내기보다는 이 때 이 단어가 맞나, 혹시 모르는 뜻이 있는가 등으로 생각하는게 맞겠군요.

1
2022.11.20
@일간주간월간

앞서 말한 사례들은 어휘력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긴 합니다. 자신이 아는 어휘 범위에 '심심', '명징', '직조' 등이 있지 않아 생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댓글 쓰신 분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어휘가 나왔을 때 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였으면, 하다못해 필자의 의도라도 생각했더라면 그런 사회적 이슈는 불거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명징 직조 사태의 당사자인 이동진 평론가께서도 댓글 쓰신 분과 마찬가지로 태도의 문제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왜 어려운 어휘를 사용했냐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찾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1
2022.11.20
@Norway

음...어휘력의 부족이 주요 원인이 아닌 복합적 원인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핸드폰으로 쓰다보니 퇴고가 안됐네요 ㅎㅎㅎ

 

저도 명징하게 직조한 사태땐 명징이란 단어를 몰라서 명? 명확하게 뭘 해서 자아낸? 뭐 그런 뜻인가보네 나중에 생각나면 찾아봐야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화가 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사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거, 참 어려운 조언인것 같아요.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금 알고 있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고, 그걸 돌려말하면 자네가 잘 모른다고 하질 않나, 단호히 지적하면 화를 내고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가 잘못 알았다는걸 인지하더라도 조언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사례는 드물더라고요.

 

새벽에 술먹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 뭔가 관련없는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작성자분도 좋은 주말 보내시기를 바라며 자야겠습니다 ㅎㅎ

1
2022.11.20
0

나도 항상 이런 요지의 주장을 펼쳤는데 태반은 이해를 못하더라

예컨대 위의 말을

[나도 恒常 이런 要旨의 主張을 펼쳤는데 太半은 理解를 못하더라]

라고 쓰지 않아도

항상의 '항'이 '항구적이다' '변함이 없이 지속된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가 있다는 것만 알면 되는데

굳이 恒라는 한자 심방변을 쓰고 9획을 어떻게 쓰는지 알 필요는 없지.

6
2022.11.20

"학습된 한자 지식은 글을 다 읽고 단어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사전 찾아보는 것과 비슷한 역할밖에 못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 때문에 한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옥스포드 사전, 콜린스 사전 등을 가진 영어, 두덴 사전이 있는 독일어, 고지엔, 산세이도 등이 있는 일본어에 비하면, 한국어 사전은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사전으로 내려가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엣센스, 프라임 사전이 개정판을 출간하지 않은지 10년은 넘은 것 같네요...

다독으로 한자어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격식 표현이나 추상적인 개념에 관한 어휘가 많은 한자어의 특성상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적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어 사전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니 결국 한자에 대해 알아야만 하고요.

2
2022.11.20
@lIIlIIl

한자가 '정확하게' 의미를 표현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할 수도 없긴 매 한 가지죠.

한자를 모국어 표현에 쓰는 중국 조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자의 의미와 역할이 달라지고

현대 한국어에서는 한자의 원래 뜻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한자 단어들이 수두룩합니다.

추상적인 개념이 한자를 알아야 이해가 도움이 된다고 하셨지만

사회(社會)와 회사(會社) 같은 단어들은 한자만으로는 적확한 이해가 불가능하죠.

추상적이지 않은 지방(地方), 유모차(乳母車), 방송(放送), 소포(小包) 등등

원래 한자의 뜻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진 예도 널리고 널렸습니다.

어차피 한자로 표기한다 한들 사전을 보아야하는 상황인데 한국어 사전을 보완하는 쪽이 오히려 해법에 가깝다 봅니다.

0
2022.11.20
@지하철승객

물론 한국어 사전을 개선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문외한인 탓이겠지만 고려대 사전을 제외하면 나아질 기미를 찾기 힘드니 안타깝네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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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한자를 쓰는 것과 한자어를 아는 것은 차이가 있고

요즘은 영어를 아는게 훨씬 도움되는 듯

교수님들부터 한자어로 된 단어보단 그냥 영어로 표현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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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과 통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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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한자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한자를 공부해야기 한국 음읽기만으론 안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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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응실화야

동음이의어가 많다고 해도 문맥상으로 이해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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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도깨비팬티

몰겠다 일본어 배워보니 한자는 아는 게 좋음. 머리에 떠오르는 의미랑 이해도, 연상어 등등이 전혀 달라져

그리고 글쓰기 할 때도 아 뭐더라 그 단어... 이 상황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하지...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한자로 유추하면 금방 찾음. 동의어 많으면 헷갈려서 정확한 어근을 못떠올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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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응실화야

일본어야 뭐 한자 배우는건 필수고 거의

알면 모르는거보단 나은건 맞음

아에 쓸모없다는건 아님

하지만 안다고 해서 그게 곧 어휘력으로 연결이 되냐는 다른 문제임

글 본문에도 잇지만 단순히 자기가 배운게 맞는지 맞춰보는거뿐이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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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도깨비팬티

난 내 어휘력을 위해 한자 배울래. 아직은 고사성어라던지 한자 쓰는 경우가 많고 한자 몰라도 대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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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응실화야

본인이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건 자유지

본인의 사고력이 충분해서 소화가능하면 어휘력이 되니깐

문제는 그런거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배워야한다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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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

굳이 한자 암기 없이도 맥락으로 단어 해석하고 쌓은 빅데이터에서 역으로 한자 의미를 추출한다는 개념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역시 이미 다 논문이 있구나ㅋㅋㅋ 나는 어릴 때부터 암기하는 것 너무 싫어해서 부모님이 한자 학습지고 뭐고 이것저것 시켜보시다가 포기하셨었는데(결과적으로 지금 한자는 내 이름 정도나 간신히 씀), 독서 많이 해서 그런지 학창시절에나 지금이나 내 어휘력이나 국어능력은 아주 좋은 편이라고 자부함. 한자 교육 주장하는 사람들 볼 때마나 그럼 나같은 케이스는 뭐지? 싶어서 혼자 생각해보다 나온 결론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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