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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이 싫다.

b675964a 24 일 전 180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집돌이여서 바깥에 잘 나가지 않는다.

나가봐야 동네 산책, 가봐야 동네 카페

 

요즘 취미로는 주로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본다.

정신 건강에는 달리기가 좋다고 해서 동네 공원을 뛰고 있다.

 

친구와 번화가에 다녀왔다.

커플이 참 많았다. 사람도 많았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알콜중독의 치료로 술은 마시지 않았다.

 

우울증약은 서서히 줄이고 있다. 

지금 먹어버리면 좋겠는데, 사실 오늘 약을 하나도 안 먹었다.

점심에 먹는 알콜중독의 약, 자기 전에 먹는 우울증의 약.

하나도 먹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술은 자의로 끊을 수 있다.

라고 말하기엔 이미 30알이 들어있던 약통은 흔들 때마다

덜그럭덜그럭에서 달가락달가락, 가볍고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박자에 맞춰 작은 악기를 흔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집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지나치는 지하철 차창 너머로

불투명도를 낮춘 사진들처럼 지난 사랑의 잔상이 보였다.

돌아오는 저녁에는 지하철의 차창 너머로 지난 날의 봄밤이 보였다.

 

이미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사랑을,

손가락으로 콕 찍어 그림을 그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쉬는 모습

땀으로 범벅이 된 피부에 남는 손가락의 흔적

상기된 피부, 구겨지는 얼굴 

 

손가락으로 한 번 더 콕 찍어 그림을 그린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소나기와 함박눈

바다와 산, 도시와 시골, 도심과 구도심

 

많은 그림들을 그리고 나니 잿더미가 있던 자리는

번져버린 담묵화처럼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흩어져있다.

손으로 다시 한 번 찍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더 이상 남은 재가 없어 흐릿한 회색선이 잘 가다 끊어진다. 

 

미화된 추억을 재생했다.

지난 날의 내가 지금의 나와 옳고 그름을 가리고 있다.

네가 떠나면 안됐더라고, 네가 떠난 것이 옳았다고.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며 눈을 감고 침대시트를 적셨다. 

이미 돌아갈 수 없음에도 왜 나와 나는 싸우는걸까. 

 

역사학자들이 왜 지난 날을 두고 싸우는지 알 것만 같다. 

지난 건 지난 건데 멍청하게도 싸우는 모습을 보고있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안좋아한다. 

술을 마셔버릴까, 약을 먹을까. 

 

지난 날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뿌리칠 수 없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끼고 있다. 난 그래서 봄이 싫다. 

 

 

 

9개의 댓글

cec0ef79
24 일 전

우울 장애가 있을 때에는 커뮤니티는 독이 된다

일기는 진짜 혼자만 읽을 수 있는 일기장에 적든 해라.

이런 글들은 자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니까

0
b675964a
24 일 전
@cec0ef79

술 마실지 약 먹을지 고민하는 중이었음

0
cec0ef79
24 일 전
@b675964a

약도 술도 니 우울장애를 극복하는 데에는 보조수단이고

자칫하면 의존도만 올리고 병 치료에는 도움이 안 되는 기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 치료도 병행하면서 의지를 태워봐

낫고 싶을 거 아니냐

0
b675964a
24 일 전
@cec0ef79

분명 괜찮다고 후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번화가만 나갔다하면 집에 와서 이런 상태가 돼버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음..

 

심리 치료는 어릴 때 놀이 치료 한 번 받아본 적 있고 똑같은 정신과 거의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데 심리 치료라는게 상담을 하는건지 아니면 안락의자 같은 곳에 130도 정도로 누워서 눈을 감고 대화 하는건지 모르겠음.

 

일단 오늘 밤은 양자택일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봐야 말짱 도루묵이니 근처 편의점가서 저렴한 위스키라도 사와야할듯 감사합니다

0
b675964a
24 일 전
@b675964a

우울증은 별로 안됐음 8년인가

0
cec0ef79
24 일 전
@b675964a

8년이면 별로 안 된 게 아니라, 이미 장기/만성 우울증이라 진짜 존나 빡세게 하지 않는 이상 안 나음

 

약만 먹고 땡, 심리치료 가서 대화하고 땡

 

이러면 병이 나을 리가 있냐

정신장애는 암이라고 생각해야 함

암이 약만 먹는다고 낫는 병이겠어?

 

거기서 배운 거 들은 걸 자기 현생에 접목을 해야 낫는 거지

그 때만 하고 땡치면 암이든 정신장애든 뭐든 그런 걸 떠나서

다이어트도 그렇게 하면 살 안 빠지잖아

 

식단도 안 해, 헬스장 가끔 가는 데 운동 깔짝 하고 말아

그럼 살 빠져? 안 빠지잖어... 그걸 생각해봐

0
b675964a
24 일 전
@cec0ef79

운동, 다이어트 너무 공감함

내 우울증이 그런거 같음

살 빼본 적은 없지만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감

 

무언가 이루기 위해선 무언가 버려야 하는데 삶에서 무언가를 버린적은 없고

 

군대에서 남이 강제로 버려준 덕에 2년은 그나마 무탈했던 것 같은데 스스로 하기가 참 어려운듯

 

좋은 답변 너무 감사함

0
cec0ef79
24 일 전
@b675964a

왜 무언가를 “버려야”한다고 생각하는 지 모르겠네

버리는 게 아니라 여기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구나 하고 깨닫고 인정하는 거지

과한 목표를 덜어내는 건, 버리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담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덜어내는 거야

 

버리는 거랑 덜어내는 건 엄연히 다른 거임

 

부페에서 손대기 전에 못 먹을 거 같아서 음식이 섞이기 전에 덜어내는 거랑

내가 못 먹어서 남기고 버린 건 다르잖아.

내가 못 먹을 양이라는 걸 알기 위해 양을 이리저리 조절하는 것

이게 니가 해야만 하는 거다

0
348d7c70
23 일 전

진정한 집돌이인 나는 동네 카페 동네 산책도 못하는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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