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개붕이들아. 환절기인 만큼 바이러스 외에도 감기같은 잡병 조심하길 ㅎㅎ

사실 제목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별거 없긴 하다.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썰이기에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때는 바야흐로 약 2년 전, 러시아에서 한창 어학연수를 받고 있을 때였음.

수업도 다 끝났고, 맥주가 마려워서 같이 어학연수 받으러 온 동생과 함께 기숙사 근처 마트를 가기로 했다.

마트는 얼마 멀지 않았고, 맥주를 고르고 대충 라면 하나 집어들고 돌아가려던 도중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웬 험상궂게 생긴 머머리 아르메니아인이 내 어깨를 한대 죽일듯이 쌔게 때리고는

"Ты чё братан, всё в порядке?(마, 니 괘안나?)"

라고 말하더니 나를 째려보더라. 어안이 벙벙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을 때렸는데 그 후로 등짝스매시를 오지게 날리면서

"Чего не знаешь русский?(러시아어 모르냐?)"

라고 말하더라. 어깨를 꽉 잡고 연신 노려보면서 놓아주질 않으니 아 내가 멸치 개붕이라 얕잡아 보였나 싶기도 하고 말로만 듣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인가 싶기도 해서 묘비명에 쓸 비문 생각하며 바지에 쌀 준비 딱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딱 떠오른 생각이 이거 그냥 말그대로 안부 물어보는 거일수도 있겠다 싶어

"Ну брат всё в порядке, а как у тебя?(다 괜찮지 형씨 넌 어떤데?)"

처음으로 러시아어로 말문을 여니까 좋아죽으면서

"Дай бог тебе здоровья и счастья...!"

내 안부부터 시작해서 사돈에 팔촌까지 축복을 하니까

아까부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이윽고 그 술에 쩔어버린 아르메니아인의 바이킹 닮은 친구가 와서 연신 사과하면서 이친구가 원래 이러지 않는데 오늘 술 많이 마셨다고 거듭 미안함을 전하더라. 그 후에 대충 러시아에서 많이 하는 어깨빵 인사하고 대충 사진찍고 끝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마트에서 마주쳤는데 그땐 그냥 서로 머쓱하게 인사하고 안부나 묻고 지나침.

한편으로는 상남자스런 러시아 아재들의 인사법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던 경험이기도 했거니와, 이때 말 한마디 잘못했으면 다음날 한인일보랑 러시아 특파원이 내 사망소식을 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진은 어두워서 잘 나오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때 당시에 찍었던 사진이야. 사실 왜 찍었는지도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