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엄마 생각나서 쓰는 글

몇 달 전 전남대병원에 지인이 입원해서 병문안 들를 일이 있었다. 서로 괜찮냐, 수술 잘 이겨냈으니 쾌차할거다 라는 인사를 건네고 터미널에 가려고 길을 걷는데 기시감이 들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뒤에 있는 빵집을 보자 나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어릴 적 나는 눈에 문제가 있어 큰 수술을 받고, 전대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나에게 가장 서러운 것은 눈을 가리고 있어 TV해서 하던 그랑죠를 귀로 듣기만 해야하는 것이었다. 온갖 투정을 부리고, 어머니는 그걸 다 받아주셨다.

 

 

그 뒤로 1년에 한 번씩, 여름방학때 정기검진을 받으러 전대병원 안과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렀다. 초등학생이 검사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저 의사선생들이 지시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은 퍽 지루한 순간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나면 고생했다며 당시 병원에 있던 매점에서 점심을 사먹었다. 어머니는 김밥으로, 나는 컵라면과 어머니가 먹다 남긴 김밥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병원을 나서고 우리는 터미널을 가기 위해 걸음을 했다. 터미널 뒤에는 빵집이 있었고, 이미 배가 부른 나는 사 달라는 말은 꺼내지 않고 버스를 타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간혹 시간이 남을 때면 병원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지하의 식당코너에서 밥을 먹곤 했다. EBS 여름방학 숙제에 치여있던 나에겐 하나의 일탈로 퍽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 날의 추억들이 몇 달 전 나의 모습과 겹쳤다. 비록 매점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사라지고, 걷던 길 역시 군데군데 변하였지만 빵집만은 어린 날의 어머니와 나의 추억을 회상시켜주는 것처럼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문득 나는 어머니에게 통화를 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고, 꽤 오랜 시간동안 전화를 하고 통화를 끝마쳤다.

 

 

전화를 끝내고 나서 상념에 잠겼다. 어머니 역시 젊은 나이였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퍽 이기적이라 아이는커녕 결혼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어머니는 나라는 존재를 보듬어주고 돌봐주셨던 것이다. 혹자들은 낳았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 여름방학의 추억들은 가슴 속에 남아 살아숨쉬고 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자식이 아팠을 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참아내는 인내심을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나는 어머니와 나눠 먹을 심산으로 그 빵집에서 빵을 집었다. 어머니는 뭘 이런걸 사왔냐고 물으시면서도 맛있게 드셨고, 나도 집어먹으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이만 줄인다. 개붕이들도 부모님과의 좋은 추억이 가슴에 살아 숨쉬리라 믿고, 자식들에게 당장은 드러나지 않아도 헌신과 사랑으로 대해주면 그것이 가슴속에 살아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니 애들 있으면 잘 대해줘라. 난 없지만.

8개의 댓글

2021.06.03

맞아. 내가 8살즘 엄마가 지금 내나이겠구나. 그런생각하면 난 아직도 애새끼라는걸 느끼게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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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근성가이

난 내가 세 살일때 엄마나이...후...언제 철들고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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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오 나도 고향이 광주!!

어렸을 때 자주아팠는데 난 남구에 보훈병원 갔었음 지금은 첨단으로 옮겼지만 그 때 쓰니처럼 엄마랑 왔다갔다했던 추억이 있어서 폐 건물 상태일 때도 한번씩 갔었음 지금은 건물도 싹다 밀었드라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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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nglg

팡주는 아니고 그냥 전남살아 ㅎㅎ...옛 추억이 담긴 거리를 다시 걷는다는게 참 묘한 일인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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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효자가 달리 효잔가

 

혹시 효자동 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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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BigJay

껄껄,,,횐님의,,,유우모아에,,,크게,,,무릎을,,,탁,,,칩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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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일간주간월간

그러다 도가니 나가유 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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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아직도 있었음? 맛집인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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