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스압)디아블로3 캐릭터 악마사냥꾼 스토리 - 증오와 절제

hatred-and-discipline-large.jpg



안녕 게이들!


오늘은 디아3 캐릭터 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돌아온! 악마사냥꾼 습충의 스토리를 가져왔어. 


1. 악마사냥꾼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가지고 있지만 (야만용사 - 아리앗 산, 부두술사 - 테간제 남부 등등)


악마사냥꾼들은 뚜렷한 국적, 고향이 없어.


왜냐하면 악마사냥꾼은 악마들에 의해 마을, 가족이 사라진 사람을 악마사냥꾼들이 거두어서 육성하는 형태거든.




2010년 블리즈컨에서 공개된 악마사냥꾼 소개영상인데 영상에서 보듯이 저런 형식으로 거두어져 육성 되는거야.


잘 훈련된 악마사냥꾼은 홀로 행동하거나 적당히 무리지어 행동하며, 


단순히 악마를 죽인다는 목적 말고도 악마가 인간들의 거주지를 습격할 경우 추적하여 섬멸시키기도 한다고해.


그리고 악마들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해 (어떻게 ㄷㄷ)



이런 악마사냥꾼에 대한 기록은 압드 알 하지르가 쓴 문서에서도 볼 수 있어.


---------------------------------------------------------

공포의 땅이라 불리는 얼음 덮인 황무지의 변두리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한때 아름다운 땅이었지만, 어떤 참사가 발생한 후로 
영원히 옛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황량한 풍경과 폐허로 변한 도시만이 남아,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밤을 지내고자 브론이라는 마을로 향했는데 이제껏 
구경조차 못해본 처참한 파괴의 흔적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위험을 감지했을 때 걸음을 돌렸어야 했지만, 
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린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고, 
드문드문 보이는 그을린 나무 기둥이 아니었다면 
한때 건물이었는지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연기에 숨이 막혔다.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상당수는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몸의 절반이 불에 타 없어진 시신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버림받은 도시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무너지지 않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여관 바깥벽에서 
회색 피부에다 괴물 같은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알 수 없는 악마의 언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어리였는데, 전투를 위한 근육까지 갖추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그것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제일 앞쪽에 있던 괴물이 망토 앞자락을 붙잡고 땅에서 나를 들어 올렸다. 발톱이 망토와 살갗을 꿰뚫었다. 
눈앞에서 괴물이 뜨거운 숨결을 내뿜었고, 썩은 살에서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났다. 
괴물이 입을 넓게 벌리자, 날카롭고 누런 이빨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고 그 사이사이로 핏자국이 보였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끝이 난다면 
우리 세계의 놀라운 일들을 더는 독자들에게 전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석궁 화살이 날아와 앞에 있던 야수의 눈을 꿰뚫었다. 괴물의 뜨거운 피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괴물은 고통 속에서 인간의 소리가 아닌 비명을 질러댔고 내 몸을 내팽개친 후 화살을 붙잡았다. 
다른 괴물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찾는 동안 잠깐이나마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 발치에서 두건을 찢어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며 화살이 날아온 곳을 찾아 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악마 사냥꾼을 보았다.


채 스무 살이 안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저무는 노을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악마 사냥꾼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머지 괴물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악마 사냥꾼의 손이 쌍발 석궁에 닿을 때마다 
이글거리는 불화살이 연달아 내 머리 위로 날아가며 거대한 괴물들을 제압했다.
한 발 한 발이 뿔 난 괴물들에게 적중했고 화살을 맞은 다수가 고꾸라졌다.


더 많은 놈들이 악마 사냥꾼의 등 뒤로 다가가는 것이 곁눈으로 보였다. 
소리를 내어 경고를 전하려 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악마 사냥꾼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허리띠에 손을 가져가더니 알 수 없는 쇳덩어리 세 조각을 
적이 다가오는 길에 굴려 보냈다. 괴물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곧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밝은 불길이 솟아올라 놈들을 기절시켰다. 덕분에 악마 사냥꾼은 공격할 시간을 넉넉히 벌었고, 
석궁으로 놈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한 차례 바라보고 더는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악마 사냥꾼은 
슬픈 듯이 머리를 저으며 앞으로 걸어왔다. 허리춤에 석궁을 다시 차는 동안, 
여러 겹 망토 뒤에 가려진 얼굴에는 깊은 실망감이 서렸다.

“생존자는 없군요,” 비통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악마 사냥꾼이라 불렀다. 
불타는 지옥의 괴물을 잠재운다는 목적을 이루기로 맹세한 광적 전사들의 집단이었다. 

악마 사냥꾼은 수백 명에 달했으며 
국경 내에 그런 위험한 집단을 두고 싶지 않은 국가가 간섭하지 않도록 공포의 땅에 본거지를 두었다. 
그래도 언제나 반 이상의 악마 사냥꾼이 전 세계로 파견되어 이 여자처럼 지옥의 괴물을 좇는다. 

모든 악마 사냥꾼에게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어 보통 사람이라면 미치고 말 악마의 타락에 저항한다. 
그리고 악마의 타락에 저항하는 이 힘을 연마하여, 악마의 힘을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명과 힘만으로 악마 사냥꾼들이 결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밤,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어린 아이였을 때 악마들이 고향 마을에 나타났다고 했다. 
악마들이 마을을 부수고 집에 불을 지르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아야 했다. 
아는 이들이 모두 살해되고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빼앗겼다.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도망쳤고 지옥의 악마들을 피해 며칠을 숨어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악마 사냥꾼에게 발견이 되었고, 악마 사냥꾼은 아이에게 잠재한 힘을 알아보고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악마 사냥꾼은 누구나 비슷한 사연이 있다고 여자는 말했다.

악마 사냥꾼은 살아남은 자로서, 복수를 갈망한다. 


- 압드 알 하지르가 쓴 기록에서 발췌


2. 발라


그리고 이번 스토리에서 나오는 '발라'는 우리가 플레이 하고 있는


a0080834_505ec59e8d752.png


이 캐릭터가 맞아.


세계관 시점으론 현제 19살이며 서부원정지 출신이라고 해.


근데


이렇게 캐릭터 스토리에 우리가 직접 플레이 하는 캐릭터가 나오는건 악마사냥꾼하고 마법사 밖에 없어. (마법사의 이름은 리밍)


거의 사실상 주인공들인데


이 발라하고 리밍은 공통점이 있어.


바로 세계석이 파괴 된 이후로 태어난 인간라는 점이야. (세계석은 20년전에 파괴 됨)


원래 세계석의 목적은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인 네팔렘의 힘을 약화시키는건데


이 사건의 영향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파괴 전 세대 보다는 강할 것이고


서서히 힘이 차오를 수 도 있고 아니면.. 천사와 악마의 힘을 넘어섰던 초기 네팔렘의 힘을 가질 수 도 있지.





설명음 이쯤으로 하고


이 이야기는 트리스트럼으로 파견되기전 악마사냥꾼 발라가 겪은 이야기야.


이야기중 발라의 스승 조센이 나오는데 


인게임에 구현된 패시브중 하나에 조센에 관한 내용이 있어

기민함.jpg




--------------------------------------------------------------------------------------------------------------------------

목적지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썩어가는 시체 냄새가 먼저 찾아왔다.



악마사냥꾼 발라가 황폐해진 홀브룩에 도착했을 때, 구름이 칸두라스를 온통 뒤덮고 있었지만 대기는 따스했다. 한때 작지만 복작대던 이 마을은 이제 버려진 유령의 땅이 되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하지만 대기를 가득 채운 부패의 냄새는 마을에 아직 주민들이 있음을 드러냈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발라의 스승 조센은 마을 중앙에서 쓰레기 더미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깨진 돌덩이, 그리고 뒤집어진 흙과 돌이 뒤엉킨 더미였다.



조센은 악마사냥꾼의 전형적인 장비로 무장한 상태였다. 몸 절반을 덮은 판금 갑옷에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반사되어 빛났고, 한 쌍의 쇠뇌가 손이 닿기 쉬운 허벅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두건을 눌러 쓴 채로, 세찬 바람에 실린 망토를 펄럭였다.



발라도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지금도 그녀의 얼굴 아래쪽을 가린 검은색 긴 스카프였다. 목수의 딸, 발라는 말을 세우고 뛰어내려, 잠시 조용하고 차분하게 주변을 파악했다.



어렴풋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하지만 인기척은 조센과 다른 두 명의 사냥꾼에게서만 느껴질 뿐이었다. 한 명은 버려진 건물들을 수색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너져내린 창고 근처에 서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는 생존자를 찾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을 뿐이었다. 사실 그것이 악마사냥꾼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재앙을 겪고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 그들을 이끌고 용기를 북돋우며, 치유, 교육, 훈련하는 일... 그리고 그들에게 의지가 있다면, 첫 번째로 중요한 일, 바로 악마사냥꾼이 되어 이런 악을 세상에 퍼뜨리는 지옥의 자식들을 말살해야 한다.



조센은 다가오는 발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강렬한 시선으로 쓰레기 더미를 살폈다. "최대한 빨리 왔어요." 그녀는 스카프를 끌어내리며 말했다.



웅웅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계속되었다. 조센의 시선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있어선 안 돼."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갈 굴리는 소리 같았다. "델리오스가 임무를 완수했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거야." 그의 형형한 눈이 마침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이게 뭐처럼 보이는지 말해보렴."



발라는 마을에 남은 대격변의 참상을 바라봤다. 돌더미와 나무 조각들은 낯이 익었고... 그 위에 흩뿌려진 검은 액체 역시 익숙했다. 하지만 뭔지 알아볼 수 없는, 마치 타르 같은 검은 물질도 사방에 퍼져 있었다.



"마을 우물이군요." 발라가 말했다. "악마는 여기서 나타났어요... 악마의 피를 보니 상처를 입었나 봐요. 델리오스가 거기까지는 해냈군요. 사냥꾼답게 죽었기를 바랄 수 밖에요."



조센이 흙바닥을 발로 찼다. 표면 아래의 토양은 젖어 있었다. "하루 이상 지나지 않았군. 그 전에..."



발라는 조센이 말을 잇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물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죠?"



스승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띄고 답했다. "따라와."



창고에 다가가자 웅웅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귀를 꿰뚫을 듯 진동하는 소리였다. 커지는 소리와 함께 악취도 강해졌다. 창고 앞에 서 있던 사냥꾼이 커다란 문을 열었다.

짙은 검은색 구름처럼 모여든 파리떼가 창고를 빠져나갔다. 썩어가는 육신의 냄새는 발라에게 익숙했지만, 이번 냄새는 너무도 강렬해서 그녀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 했다. 그녀는 스카프를 단단히 조여맨 채로 넘어오는 신물을 꿀꺽 삼켰다.



헛간 크기의 공간 안에는 마을 주민들이 되는 대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남성, 여성... 대부분은 복부가 크게 부풀어오른 상태였다. 사체 중 일부는 배가 갈려 내장이 흘러 나왔고, 그 주위에서는 구더기가 꿈틀댔다. 눈과 코, 입에서는 체액이 흘렀다. 부패의 냄새 아래에는 인분의 냄새가 뚜렸했다. 수백 마리 파리떼가 학살의 현장을 뒤덮었다.

발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상처는 끔찍하긴 했지만 지옥의 자식들이 남기는 형태가 아니었다. 악마는 주로 찢어지고, 사지가 떨어지고, 목이 잘린 시체들을 남기는데 비해, 이들은 찔리고, 꿰뚫리고, 두개골이 부서져 있었다.



조센이 말했다. "델리오스가 브람웰 외곽에서 목격됐다. 유곽을 급습해서 모두를 죽이고 사라졌지. 어젯밤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 아편굴에서 열다섯 명 사망. 쇠뇌 화살과 칼에 맞아 죽었다더군."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발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조센은 그녀의 소리 없는 물음에 답했다.



"악마의 타락에 굴복한 모양이다. 이젠 잃어버린 사냥꾼이야. 악마와 다를 바가 없어."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선과 악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드는 악마사냥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냥꾼이 자신의 두려움과 증오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으면, 경계 너머로 넘어가기가 너무 쉬웠다. 하지만 여기... 이곳의 일은 델리오스의 소행이 아니다. 뭔가 달랐다. 발라는 불안감을 감췄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 일은 사냥꾼 짓이 아닙니다. 악마도 아니고요."



"동의한다."



"서로를 살해한 걸까요?"



"어쩌면." 조센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발라는 시체 더미를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린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밖으로 나간 조센은 말 옆에 서 있었다. 발라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지난 번 임무는 모두 마쳤어요. 다음 명령을 내려주세요."



"우린 계속해서 생존자를 찾는다. 동틀녘이 되면, 난 브람웰로 가서 델리오스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너무 늦지 않았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잠시 동안의 머뭇거림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발라는 몸을 똑바로 폈다. "그러면 제가 악마를 찾겠어요."



"안 돼." 조센이 쏘아붙였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발라가 스승에게 다가갔다. "뭐라고요?"



그녀를 향해 돌아선 스승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게 무엇인지도 우린 거의 모르고 있어. 어떤 방법을 쓰는지도. 공포를 섭취하는 악마라고 생각되지만... 델리오스도 그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고 말았지. 이런 악마는..."



조센은 살짝 눈을 감았다. "... 네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모든 공포, 모든 의혹, 모든 후회를 들춰낼 거다. 네가 아무리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더라도 소용 없어. 넌 네 자신과 싸워야 한다." 스승은 눈을 번쩍 뜨고 발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폐허에서의 네 실패를 기억해라."



"그건 달랐어요. 분노의 악마라고요." 발라는 주장했다.



"분노, 증오, 공포. 모두 서로를 먹고 자라지. 악마사냥꾼은 증오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배운다. 하지만 그 균형은 위태로울 뿐이야. 균형을 잃는 순간, 순환이 시작된다. 증오가 파괴를 낳고, 파괴가 공포를 낳고, 다시 공포가 증오를..."



"벌써 천 번은 들은 얘기라고요!" 발라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잘 새겨 들으렴. 넌 아직 젊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내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악마사냥꾼은 언제나 증오를 절제로 다스려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진정하거라. 이 악마는 상처를 입었고,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냥꾼을 보내마."



조센은 뒤로 돌아 떠나려 했다. 하지만 발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델리오스를 쫓겠어요."



조센은 다시 뒤돌아섰다. "여기 남아서 생존자 수색을 도와라. 델리오스는 내 사냥감이다. 이건 명령이다." 이 말만 남기고 스승은 자리를 떠났다. 차분하게. 그래서 발라는 더 화가 났다. 소리를 지르든, 호통을 치든, 어떻게든 빌어먹을 감정을 보여주길 바랐었다.



준비가 안 됐다고?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만 해도... 발라는 속삭였다. "어떻게 내게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하실 수가 있나요?"



잠시 후, 그녀는 말에 올라탔다.



어느쪽으로? 악마는 어느쪽으로 갔을까? 발라는 잔해 더미 가운데의 피를 흘긋 쳐다봤다. 핏자국은 더미 밖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쪽에는 산뿐이었다. 서쪽으로는 서부 반도 만, 남쪽 먼 곳에는 신 트리스트럼이 있었다. 하지만 악마는 부상을 당했다. 남쪽 멀리까지 떠나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아니면... 이곳처럼 작은 농촌 마을들이 있는 북동쪽으로 떠났을까?



손쉬운 먹잇감이 더 필요해.



가장 가까운 마을, 헤이븐우드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선택은 내려졌다.



엘리스 할스태프는 아픈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사만다는 아래층 침실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찬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놓은 아이는 얕은 숨을 몰아쉬었다.



딸아이는 어젯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고, 결국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 엘리스가 이유를 물어보자, 아이는

"머리 속에 나쁜 게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헤이븐우드의 치유사인 벨릭이 오늘 오전에 왕진을 와서 사만다가 쉴 수 있게 간단한 물약을 처방해 주었고, 여유가 생기면 아이를 찬물에 목욕시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사만다는 이제 편히 쉬고 있었다. 사만다의 남동생 렐린에게 우유를 먹이고, 밤이 늦기 전에 남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전에는 쉬운 일이었다. 사만다의 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만 해도. 남편이 아무 말도 없이,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나 돌아오지 않는 지금은 모든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엘리스는 사만다를 내려다보며, 지난 번 아이 생일에 조숙한 7살 딸아이가 뻔뻔스럽게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제 심부름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선언하던 일을 떠올렸다. 사만다의 웃음, 쾌활하고 순수하게 깔깔대던 모습을 떠올렸다. 며칠 전에 사만다가 확신에 찬 말투로 조슈아 그레이라는 아이에게 반한 것 같다고, 그 아이의 눈동자는 멋진 꿈과 같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런 일을 떠올리면서, 아카라트께 사만다를 어서 낫게 해달라고, 또 멋진 꿈을 많이 꾸고 이렇게 병치레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발라는 헤이븐우드를 몇 킬로미터 남겨둔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는 턱을 따라 난 긴 상처를 멍하니 손으로 문질렀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악마사냥꾼은 언제나 증오를 절제로 다스려야 한다.



조센의 말에 아직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어쩌면... 어쩌면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에서의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와 델리오스는 함께 며칠간 모험하며 공포의 땅 남부 깊숙이 들어갔다. 델리오스는 거칠고, 신경에 거슬렸으며,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발라는 혼자 임무를 수행하는 편을 좋아했지만, 조센은 꼭 둘이 함께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둘은 미지의 문명이 남긴 폐허의 한가운데에서 악마의 은신처를 발견했다. 발라는 조센이 가르쳐 준 대로 자신의 마음을 보호했다. 조센은 앞서 두 사람 모두에게, 이렇게 강력한 악마와의 전투는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고 경고했었다.



"너희가 바로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의 충고였다.



휘감아 도는 넓고 거대한 돌계단을 따라 둘이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발라는 불안감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계단 아래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로 이어졌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 기둥이 수없이 위로 뻗어 있었으며, 그 꼭대기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불타는 화로가 여기저기에 깜빡이는 빛을 뿌렸다.



델리오스가 앞으로 돌진했다.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발라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악마가 머릿속을 침투해 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의 눈에 보이는 악마의 모습은 그녀를 도발하고, 또 달래는 검은 촉수와 같았다. 발라는 델리오스가 지닌 짜증나는 습관과 부정적인 성격 모두를 곰곰히 곱씹었다. 그녀의 불안감은 곧 화로 변했고, 이내 다시 분노로 커져갔다.



델리오스가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돌아서서 짓궂은 미소만 보낼 뿐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가 타락했다고 확신했다. 틀림없이 선을 넘었다. 그녀의 분노가 끓어 넘쳐 맹목적으로 폭발할 지경이었고, 그녀는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약하고 무력하다. 그의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자비로운 일이다.



그녀는 앞으로 나섰다. 델리오스는 그녀를 비웃으며 서 있었다. 발라는 그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는 이내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그 뒤를 쫓았고...



델리오스는 사라졌다. 그녀는 뒤편에서 악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이세계의 존재였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마는 꼭두각시 인형의 끈을 조작하듯 간단하게 발라를 조종했다. 그녀가 쫓았던 델리오스는 실제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가 길을 잃었고, 이대로 죽어갈 터였다.



폭발이 일어났고, 그 다음의 일은 발라에게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바로 조센이 악마와 싸우는 모습이었다. 델리오스도 돕기 위해 달려왔다. 발라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쇠뇌로 화살을 몇 발 발사했다. 조센은 추방의 말을 외쳤다. "드락시엘, 메피스토의 애완견, 난 네가 보인다.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이름으로, 널 추방한다! 사라져라! 지옥으로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지어다!" 조센이 화살을 발사했다. 눈을 시리게 하는 불빛이 번쩍였고, 악마는 사라졌다.



폐허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조센은 모든 것이 시험이라고, 인생 그 자체가 바로 시험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발라는 실패했다. 이제... 이제 델리오스 역시 실패했다. 대가는 그의 영혼이었다.



발라는 이 악마를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델리오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겠다고도 결심했다...

이젠 잃어버린 사냥꾼이야. 악마와 다를 바가 없어.



목수의 딸은 몸서리가 쳐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악마를 추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조센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악마가 널 들여다보면, 너도 마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악마사냥꾼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라고도 말해 주었다.



폐허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후로 발라는 너무 많이 성장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동생 할리사의 모습을 조각한 장신구를 꺼내들었다.



"너를 위해서야." 그녀는 속삭였다. 모닥불이 사그라지자, 그녀는 조센이 가르쳐 준 정신적 훈련을 시작했다.



난 죽을 거야., 엘리스 할스태프는 생각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현관으로 빠져나가 헤이븐우드 마을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렐린에게 먼저 가야만 했다. 겨우 한살 반밖에 되지 않은 연약한 아기였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 자기 몸을 지킬 수는 없다.



그녀는 성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몸을 끌어올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쓸모없는 오른발이 질질 바닥에 끌렸다.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딸아이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일을 마친 엘리스는 아이가 잘 있는지, 이제 목욕을 해도 괜찮을지 보려고 사만다의 방에 들렀다. 사만다는 미소 지으며 엘리스의 조각칼을 이불 밑에서 꺼내들고는 엄마의 다리를 찔렀고, 뒤이어 가슴에까지 칼을 꽂았다. 다섯, 여섯 번. 어쩌면 그 이상. 엘리스는 충격을 받아 소중한 시간을 몇 초 낭비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달아났다.



엘리스의 머리는 이제 안개가 낀 듯했다. 그녀가 계단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 아래층 거실에서 사만다가 맨발로 달려오는 날쌘 콩콩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는 돌아봤고, 계단 아래에는 예쁜 금발머리 딸아이가 서 있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저축해서 추수절 축제때 사 줬던,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옷에는 짙은 진홍색 얼룩이 램프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만다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피가 딸아이의 팔꿈치 아래를 온통 덮고, 칼날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잠깐만, 엄마. 내가 잡을 거야!"



이걸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엘리스는 몸을 끌어올려 한 계단 더 올라섰다.



사만다는 펄쩍 뛰어올라 두 계단을 한번에 올라왔다. "기다리랬잖아!" 계단에 흥건한 피에 미끄러진 딸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머리 위로 들어올린 오른손에 쥔 칼이 엘리스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계단에 내리꽂혔다.



엘리스가 뒤로 돌아서서 마지막 계단 두 개를 기어올라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 자신의 비명이 다른 모든 소리를 뒤덮었다. 그녀는 쓸모없는 오른다리를 질질 끌며 렐린의 방으로 황급히 달렸다.



안에 들어가면 빗장을 걸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문간에 다다른 엘리스는 우뚝 얼어붙었다. 아기 침대에 렐린이 없었다. 게다가 침대의 나무 난간은 부서져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더욱 심해진 어지러움 때문에 엘리스는 팔을 뻗어 부서진 난간을 붙잡고 기대섰다. 팔다리는 차가웠고,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영 굼뜨게 반응할 뿐이었다.



"찾았다!"



돌아보니 문간에 선 사만다가 보였다. 딸아이는 아버지가 떠나버리기 전, 야던법석을 떨며 함께 놀던 시절처럼 활짝 웃고만 있었다.



세상이 비틀거렸다. 엘리스는 한 걸음 물러서며 부서진 난간을 붙잡았다. 길고 한 쪽 끝이 날카로운 막대였다. 그녀는 침대에서 그 막대를 떼어내고는, 떨리는 손으로 사만다를 향해 내밀었다.



"사만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니? 동생을 어떻게 했어?"



사만다가 칼을 내렸다. 통통한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입꼬리는 아래로 쳐졌고, 눈쌀을 찌푸리며 촉촉한 눈이 더욱 커졌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는 혼나지 않으려 할 때의 표정이었다.



"나 때릴 거야, 엄마?"



거친 바다에 떠 있는 배 갑판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엘리스는 손과 막대가 느릿하게 휘청거린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냥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 엘리스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며 흐느꼈다. "아파서 그러니? 고칠 수 있을 거야. 벨릭 선생님한테 가면..."



그 순간 성한 발목 뒤쪽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물리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흘러,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엘리스의 눈에, 침대 밑에서 기어나온 렐린이 보였다. 아기는 그녀를 따스한 눈길로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작은 치아가 반짝이는 붉은빛으로 덮여 있었다.



세상이 흔들리며 점차 어두워져다. 엘리스의 팔이 아래로 떨어지고, 고개는 뒤로 젖혀졌다. 다행히 그녀는 사만다가 휘두른 칼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발라는 자정 직전에 헤이븐우드 외곽에 도착했다. 일부러 늦게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시각이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악마사냥꾼은 늘 그랬다. 날이 아무리 좋아도 그네들은 어둠의 징조이자 죽음의 조짐일 뿐이다.



대기는 아직 따스했다. 발라는 수확이 끝나고 황량한 옥수숫대가 가득한 들판과, 짚더미가 마치 충직한 병사들처럼 줄지어 선 농지를 지났다. 수확의 계절이었다.



발라의 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이다.



말을 타고 달리던 목수의 딸은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



여관 주인은 발라를 보자마자 파랗게 질렸다. 그녀가 조금이나마 상대를 편하게 해 주려고 두건을 벗고 스카프도 끌어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마을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이상한 일도 전혀 없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동이 트자 마자 마을의 치유사에게 전해달라며, 문제가 생기면 날 찾아오시오.라고 적힌 쪽지를 여관 주인에게 맡겼다.



숙소에 들어선 발라는 일상적인 확인 작업을 하며 몇 가지 점에 주목했다. 필요할 때 방벽으로 쓸 수 있을 튼튼한 탁자. 옆방으로 이어지는 문 없음. 입구 반대쪽에 자리잡아서 입구쪽 시야가 확보된 침대. 1인용 책상과 의자. 지상으로부터 약 5미터 위치에 있는 창문 하나.



그리고 발라는 판금 갑옷을 벗고 여러 무기를 내려놓았다. 한 쌍의 쇠뇌, 단검들, 독침, 올가미 폭탄, 화살통 가득한 화살. 특히 화살몸에 룬 문자가 새겨진 핏빛 화살 하나는 주의 깊게 침대에서 손이 닿는 위치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수의 딸은 내내 말을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를 괴롭힌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중요한 일, 뭔가 핵심적인 일. 그녀의 마음 속이 텅 빈 느낌, 한때 어떤 중요한 정보가 있던 곳이 공허하게 빈 느낌이었다.



짐 정리를 마친 그녀는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규칙적인 맥박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녀가 잊어버린 게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생각이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그녀가 모두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조센의 말을 거역하고도 얻는 것이 없다면?



걱정해 봐야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기억도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발라는 책상에 앉아 사랑하는 동생 할리사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늘어놓고, 별 일 없다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또 곧 찾아가겠다고 썼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길 바랐다. 이번 악마를 추방시키고 나면... 어쩌면 잠깐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고, 봉투는 여행 가방에 보관했다.



발라는 촛불을 끄고, 문을 바라보며 모로 누웠다. 머릿속으로는 잊어버린 것이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는 깊이 한숨을 쉬고, 매일 밤 그렇듯 애타게 바랐다. 마을이 공격당하는 악몽을 꾸지 않고 달콤한 잠을 자기를 바랐다. 매일 밤 그렇듯, 한 번 쯤은 좋은 꿈을 꾸길 바랐다.



발라는 사람들이 학살당하지 않는 꿈을 꾼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케건 그레이는 더듬더듬 자신의 집 현관으로 들어왔다. 방금 정원 꽃밭에 볼일을 보고 온 터였다. 그 사실을 알면 세레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은지 잘 알고 있을 테니, 입은 다물 것이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잘 몰랐었지만, 몇 년에 걸쳐 케건이 잘 가르쳐 줬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현관 옆 등이 꺼져 있었다. 아침이 되면, 케건은 이 문제에 대해 세레타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집이 어두우면 가장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 세 번이나 더듬거린 끝에, 케건은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케건은 부엌으로 향하면서 렉스가 어디에 있을지 막연히 떠올렸다. 케건이 술집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렉스는 예의 문간으로 달려와 혓바닥을 죽 내밀고 꼬리를 신나게 흔들면서 그를 맞이하고는 했다. 물론 렉스는 조슈아의 방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마 지금쯤 조슈아의 침대 발치에 웅크리고 자고 있을 것이다.



부엌 식탁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케건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턱을 앙다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세레타에게 저녁을 준비해 놓으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다니. 조슈아가 케건 몫의 저녁밥을 먹어치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를 혼내줘야겠다. 이런 문제라면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 한다.



지금은 우선 케건이 손수 끼니를 때워야 할 모양이다. 마을에서부터 말을 타고 오느라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다. 그는 식탁에서 칼을 주워들고, 등불을 앞세워 식품 저장실로 향했다.



케건은 칠흙같이 어둡고 긴 방에 들어섰다. 등불이 방을 밝히자, 오른쪽에 도살장에서 잡은 커다란 통돼지가 갈고리에 걸려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두툼한 다리 고기 앞에서 미소지었다.



고깃덩이를 잘라내려고 등불을 내려놓다가, 케건은 바닥에 마치 포도주처럼 검붉은 액체가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다.

피였다.



그 모습에 술기운이 가셨다... 바닥에 피가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돼지는 밖에서 내장을 끄집어내고 닦아냈었다.



다리 사이에 고인 피는 뒤쪽 어딘가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일어서 뒤로 돌아선 케건은, 등불을 들어올리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렉스가 턱 아래쪽에 갈고리가 박힌 채 반대편 벽에 걸려 있었다. 피는 렉스의 털을 적셔 몸에 착 달라붙게 하고, 꼬리쪽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내장은 대부분 끄집어내져 식품 저장실 구석에 쌓여 있었다.



식품 저장실 끝쪽의 문이 밖에서부터 열리자, 따스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불빛이 그곳까지 미치지 못해 케건은 누가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등불을 내려놓고 눈이 어둠에 익기를 기다렸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조슈아! 어서 이리 와라. 밖에서 뭘 하는 거냐?"



불빛 너머에 선 조슈아는 아직 흐릿한 검은색 형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리 오라고 했어! 누가 개를 죽였다. 어서 내 말대로 해. 이리 오라고!"



그때 어둠에 익은 그의 눈에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선 아이는 양손에 손잡이가 긴 낫을 들고 있었다. 곡선으로 굽은 날이 달과 구름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아직 잘라낼 게 있어요, 아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케건이 입이 떡 벌렸다.



"뭐라고? 너 갑자기 돌았냐...?"



몇 걸음 더 나아가자 등불빛이 조슈아를 비췄다. 아들의 작업복은 얼룩져 있었다. 바닥을 덮은 것과 같은 포도주색 액체였다.



"네가 이랬냐? 네가 개를 죽였어? 이 망할 꼬마..."



아무 말 없이 조슈아는 앞으로 다가와 낫을 휘둘렀다. 케건은 막아내려 왼팔을 들어올렸지만, 마지막 순간 아이는 낫을 아래쪽으로 내리고 옆으로 휘둘렀다. 케건의 갈비뼈 사이를 지나 그의 복부를 꿰뚫은 낫은 등쪽으로 날이 빠져나올 만큼 깊이 박혔다.



꾸룩거리는 소리가 케건의 목을 타고 올라와 열린 입으로 새어 나왔다. 아들이 나를 찔렀다! 빌어먹을 돼지처럼 내 배를 꿰뚫었다.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겠어. 무슨 일이 있든 벌을 줘야겠다. 가혹한 벌을.



조슈아는 낫을 뽑았다. 무심코 저지른 실수였고, 케건은 이 틈을 노렸다. 재빨리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그는 부엌칼로 조슈아의 목을 꿰뚫고 손잡이가 피부에 닿을 때까지 밀어 넣었다.



아들은 마치 석상처럼 뒤로 넘어졌다. 낫은 이미 빠져나간 후였지만, 케건의 배는 타는 듯 아팠다. 기침을 하자 커다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달렸다. 내 손으로 아들을 죽였다!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건 달아나는 것 뿐이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뛰는 것 뿐이었다. 그는 옥수수밭으로 뛰어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옥수숫대를 짓밟고 옆으로 밀어 젖혔고, 넘어지고 구르며 피를 토했다. 어지러움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떨리는 발로 할 수 있는 한 빨리 뛰었지만, 결국 배의 통증 때문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옥수수밭의 허수아비 발치였다. 도망쳐야 했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마을까지만 갈 수 있다면, 치유사 벨릭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케건은 허수아비의 바지를 붙잡고 일어서려 했다. 끈적한 타액과 피가 턱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붙잡은 손 안의 물질은 지푸라기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피가 그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그의 피일까?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케건은 힘겹게 일어서며 거칠게 허수아비를 풀어헤쳤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입을 헤벌리고 공포에 질린, 죽은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발라는 벨릭의 연구실 안에서 천으로 덮은 시신 옆에 서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나와 천을 적신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누굽니까?" 발라가 물었다.



"더겐. 대장장이야. 여기 도착했을 땐 말도 못 했지... 죽기 전에 겨우 몇 마디 말을 남겼는데, 그걸로 충분했어."



"뭐라고 했나요?"



"뭐?"



벨릭은 깡마르고 허리가 굽었으며, 귀가 유난히 크지만 청력은 좋지 않은, 꼭 골동품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 때문에 불편해 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대장장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뭐였습니까?" 발라가 더 크게 물었다.



"아..."



치유사는 천을 걷어내려 했지만, 말라붙은 피 때문에 시신에 들러붙어 있었다. 벨릭이 힘주어 천을 뜯어내자, 강타를 맞아 머리 절반이 푹 꺼진 중년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게... '아들이 이랬소'라고 하더군."



발라는 오랫 동안 시신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그 생각을 다시 마음 뒤편으로 밀어두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했다. 자신의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은 남자에게 집중했다.



밖의 거리에서 비명이 들렸다. 급작스럽게 생명을 잃게 된 누군가의 단말마 비명이었다.



발라는 문을 향해 빙글 돌았다. "여기 계세요."



잠시 후, 그녀는 동트기 전에 서서히 밝아오는 거리에 나섰다.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여성 상인의 시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소년은 대장장이의 망치를 들고 있었으며, 망치 머리는 끈적한 액체에 뒤덮여 있었다. 죽은 여성이 낡은 담요 위에 늘어놓은 여러 생활용품 위에는, 그녀의 두개골 조각이 흩뿌려 있었다.



발라는 홀브룩의 창고 안에 아이들의 시체가 하나도 없었음을 떠올리고는, 갑자기 진상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바로 살인자들이기 때문에 시체가 없었던 것이다. 악마의 지시를 따르는 졸이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여, 발라는 잠시 방심했다. 연약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현재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서 행동하지 않으면 죽는다.



비명 소리에 이끌린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발라가 주목한 것은 대로 끄트머리에 나타난,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금발 소녀였다. 아이는 한 손에 붉게 물든 칼을 들고, 다른 한쪽 팔로는 피투성이가 된 굶주려 보이는 아기를 들고 있었다. 아이의 크게 뜬 눈동자는 형형한 빛을 띄고 있었다.



발라가 머리 위 노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밖으로 나서는 소리였다. 짧고 높은 삐걱 소리는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한 명의 아이.



대장장이의 아들은 이제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발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또 두 명의 아이가 더 나타났다. 한 어린 소년은 칼집에 든 칼을 질질 끌고 있었고, 조금 나이가 든 소녀는 양 손에 커다란 돌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염 같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앞니 두 개가 빠진 소년이 오른손에 손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거리에는 다섯 명의 성인도 나타났고, 창밖을 내다보는 얼굴도 몇몇 보였다.



"다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들어가세요." 두건을 뒤집어 쓴 발라가 명령했다.



"어서요!"



거리에 나왔던 성인들은 그 말을 따랐다.



벨릭은 창밖을 내다봤다.



저 여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고 살았던 예전이라면. 하지만 이제 그녀는 파멸의 조짐으로만 보였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악마사냥꾼이 가는 곳에는 죽음이 뒤따랐다.



마을 주민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 아이들은 거리에 남아 공격 태세를 갖췄다. 대장장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아들이 이랬소.



세상이 어떤 광기에 휩싸였기에 아이들이 도살자로 변했단 말인가? 그리고 저 여자... 저 악마사냥꾼은 분명히 아이들을 죽일 것이다.



여자의 발 밑에서 연기 구름이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사방을 가득 메우며 악마사냥꾼의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벨릭의 시선 위쪽에 있던 노대에서 작은 형체가 연기 속으로 뛰어내렸다. 연기가 걷히는 도중에 손도끼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왔고, 조금 전에 뛰어내린 소년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벨릭이 고개를 홱 돌리자, 흐려지는 연기와 몇 미터 떨어진 곳의 가판대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여자 악마사냥꾼이었다. 연막은 그녀가 터뜨린 것이었다. 그녀가 손목을 살짝 튕기자 노대에서 뛰어내렸던 붉은 머리의 소년, 트래버스네 아들로 보이는 그 소년이 벌레에라도 물린 듯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벨릭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아이들을 죽이고 있어!



대장장이의 아들 킨달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두 눈알은 튀어나올 듯 부풀어 있고, 열린 입에서는 침이 튀었다. 큰 원을 그리며 아이는 망치를 휘둘렀다. 악마사냥꾼은 아이에게 접근하여 손목을 붙잡고, 회전하는 힘을 그대로 이용하여 아이를 내던졌다. 아이는 벨릭이 모르는 다른 소년과 충돌했는데, 그 소년은 자기 키보다 더 큰 칼을 칼집에서 꺼내는 중이었다.



그 소년은 땅에 널부러졌다. 악마사냥꾼은 망치를 빼앗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망치 머리는 킨달의 턱에 부딪혔고, 부러진 이가 튀어나왔다. 그 여자는 옆으로 이동했고, 킨달은 얼굴을 땅에 처박고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트래버스네 아들이 여전히 목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풀썩 쓰러졌다.



악마사냥꾼의 손이 노대에서 뛰어내린 소년 쪽으로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칼을 든 소년처럼 벨릭이 모르는 아이였다. 어쩌면 홀브룩에서 온 아이인가?



벨릭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깥에는 두 명의 아이가 여자를 향해 돌진했다. 사만다 할스태프는 피투성이 단검을 흔들어 대며 놀이라도 하듯 앞으로 달렸다. 또 브리 튜니스는 묵직한 돌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뛰었다.



벨릭은 몇 년 전, 먼 곳에서 칼데움을 찾아온 곡예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몸을 이리저리 젖히고 구르며, 경이로울 만큼 쉽게 공중제비를 넘고 옆으로 재주넘기를 해치웠다. 여자 악마사냥꾼이 판금 방어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로 뛰어오르거나 몸을 숙이고 공처럼 몸을 굴러 사만다의 뒤로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그때의 곡예사를 보는 것 같았다. 흐릿하게 보일 만큼 움직임이 빨라서 눈이 쫓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악마사냥꾼이 지나고 난 자리에 사만다가 가는 밧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노대에서 뛰어내렸던 아이가 앞서 트래버스네 아이처럼 풀썩 쓰러졌다.



이제 그만!



벨릭은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마침 악마사냥꾼은 빙글 회전하며 사만다를 브리쪽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믿기 힘들 만큼 빨랐다. 회오리 바람에 붙들린 깃발처럼 그녀의 팔은 움직였고, 악마사냥꾼이 작업을 마쳤을 때, 두 소녀는 모두 밧줄에 묶인 채였다.



사만다의 동생, 아기 렐린이 기어왔다. 악마사냥꾼의 다리를 물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기를 들어올리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안돼!" 벨릭은 소리쳤다.



단검은 아이의 옷만 꿰뚫고 뒤쪽의 기둥에 박혔다. 아이는 무사히 팔다리를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뒤로 돌아 벨릭을 향해 걸어왔다.



"아이들은..." 그는 숨을 헐떡였다.



"모두 살아 있어요. 강력한 진정제를 바른 침을 썼거든요. 일단은 안전해요.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벨릭의 주먹에서 힘이 빠졌다. 마음이 놓이면서 어깨도 축 처졌다.



"놀라셨나요?" 발라가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네들 중 일부는..." 벨릭은 고개를 숙였다.



"말해보세요." 발라가 쏘아붙였다.



벨릭은 용기를 모았다. "... 악마보다 나을 게 없다고 하더군. 당신네 눈에서는 지옥불이 불탄다고. 당신네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죽음이 뒤따른다고."

발라는 벨릭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고, 벨릭은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악마가 당신을 들여다볼 때, 치유사님,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어둠 속을 들여다볼 때, 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당신도 마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복수만이 보일 뿐이에요. 사냥 그 자체만 보일 뿐이라고요. 그때 사냥꾼의 눈은 집착으로 불타올라요."



벨릭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당신의 눈은... 불타지 않는군."



발라가 긴장을 풀었다. "네. 난 복수를 위해 살지 않아요." 발라가 뒤로 돌았다. "자, 이 아이들을 붙잡아 둘 곳이 필요해요. 하나씩 따로따로 떼어 놔야 해요."



치유사는 잠시 생각했다.



"감방은 하나 뿐이오... 하지만 야생동물들을 가두는 데도 쓰는 마구간이 있긴 하오. 그래, 거기면 충분하겠어."



발라는 철창을 친 작은 창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 봤다. 사만다가 거기 앉아 있었다. 손발은 밧줄로 묶이고, 고개를 숙여 금발 머리가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른 칸에 가둬 두었다. 두셋씩 가둔 곳도 있었지만, 사만다만은 혼자여야 한다고 발라는 주장했다.



아이들을 여기로 데려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 아이들을 태운 수레를 둘러쌌다. 시민들 중 다수는 폭력적으로 변했고, 그 분노는 주로 발라를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벨릭을 신뢰했고, 그런 벨릭 덕분에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잠시 동안은 그랬다. 주민들은 마구간 밖에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었다. 발라는 그들이 욕설과 탄식으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벨릭이 그들과의 말을 마치고 들어왔다. "다들 알고 싶어하는군.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요? 왜 하필 아이들이지?"



발라는 사만다가 갇힌 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마른 지푸라기 위에 무릎을 꿇었다.



"뒤에서 문을 잠그세요."



"하지만..."



"어서요."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를 들은 뒤, 발라는 사만다의 머리카락을 치웠다. 그리고 소녀의 턱을 조금 들어 올렸다.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금발, 화사한 피부... 모두 동생 할리사를 생각나게 했다. 할리사가 언니를 보고 표정이 환해지던 모습이 생각났다. 맑고 호기심 어린 눈과 넘치던 활력을 생각했다.

발라는 치유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현기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슬픔과 혐오감의 파도가 몰아치며, 갑자기 발라는 육체와 영혼 모두 극도의 피로를 느꼈다.



그녀는 서부 반도에 있던 고향을 생각했다. 가족을 생각했다. 학살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녀가 어린 꼬마에 불과했던 때의 일이었다. 매일 밤마다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의 비명... 피... 그녀의 목을 노렸지만 턱을 베고 지나간 악마의 손톱... 도망쳐... 꼭 붙잡았던 할리사의 손... 강 근처에 숨었던 때...



그리고 얼마 후, 비슷한 운명을 겪은 사람들에게 발견된 일. 그렇게 악마사냥꾼에 대해 알게 된 일. 조센의 가르침을 받고 복수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나, 어둠의 심장을 찌를 무기가 되기까지 훈련 받은 일.



발라는 멍하니 턱에 난 상처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사만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악마, 말해라."

발라는 기다렸다. 묵묵부답.



"내숭 떨지 마. 넌 이길 수 없어. 네 유일한 희망은, 빛의 저주를 받은 네 주인에게 돌려보내지는 거다. 지옥이 네게 자비를 베풀어 주길 기도해라. 내게선 자비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이제 네 이름을 말해."



사만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녀의 고개를 다시 숙여주며, 발라는 일어나 철창살이 쳐진 창으로 향했다.



"치유사님! 이 악마가 아이들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었지요? 제가 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이 가련한 지옥의 미물은 약하고 여린 꼬마 아이들만 고를 수밖에 없었어요. 주인이 버린 쓰레기만 주워 먹고 사는, 쓸모 없는 종자가 손쉽게 차지할 수 있는 사냥감 말이에요."



벨릭은 발라의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는 당황스러운 듯 눈썹을 치켜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발라는 뒤쪽에서 움직임을 느꼈다. 희미한 소리가 뒤따랐다.



뒤로 돌아서자, 소녀는 발 끝으로 서 있었다. 등은 둥글게 굽고, 머리는 한 쪽 어깨에 기댄 채... 머리카락이 갈라지며 핏줄이 툭툭 튀어나오고, 초점 없는 충혈된 눈을 크게 뜬 얼굴이 드러났다. 입을 벌린 소녀는 말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절 버리지 마십시오, 긍지 높은 분이시여!"



계속해서 숨을 들이쉬는 것 같은, 크고 귀에 거슬리게 짓눌린 목소리였다.



"나를 막아서려 하느냐?" 소녀의 머리가 한쪽 어깨에서 다른쪽으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하등 생물아, 이건 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다. 잠시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그저 재미있을 뿐이지. 이걸 풀어라. 그러면 보게 되리니..."



발라는 칼을 꺼냈다. 벨릭은 그녀를 막으려고 하다가, 그냥 손으로 귀를 꽉 막으며 입술을 떨었다. 발라는 벨릭의 모습은 본 체도 하지 않고, 사만다를 묶은 밧줄을 잘랐다.

어디 한 번 보자.



일어선 소녀는 머뭇거리며 두 걸음을 내디뎠다. 발라가 옆으로 비켜서자, 소녀는 앞으로 달려가 창살이 쳐진 문 앞에 섰다. 아이의 머리가 서서히 뒤로 회전했고, 턱이 어깨 너머까지 넘어온 후, 공허한 눈이 발라를 향했다.



"따라와라."



발라가 벨릭에게 말했다. "문을 여세요."



벨릭의 눈이 사만다와 발라 사이를 바삐 오갔다. "괜찮을까?"

"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책임질게요."



잠시 머뭇거린 벨릭은 발라의 말대로 문을 열었다. 턱을 가슴에 붙이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소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별다른 문제 없이 마구간 안을 걸었다.



벨릭은 그녀에게서 몸을 피했고, 그와 발라는 소녀를 따라 다른 아이들이 갇힌 첫 번째 칸을 지났다. 오른쪽으로는 앞서 돌덩이를 휘둘렀던 소녀가 문가에 서서 철창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토해내는 듯한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올페스토스, 침입자이자, 획득자이자, 타락한 자들의 목동이고, 몸부림치는 저주받은 자들의 껍질을 벗겨 주는 존재이다..."



벨릭은 공포에 질려 소녀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았고, 사만다는 계속해서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거리에서 커다란 검을 끌었던 소년이 반대쪽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고, 악마의 목소리는 소년의 입에서 이어졌다.



"선동자이자, 수집가이자, 가해자이자, 침묵의 비명을 지르는 목구멍이고..."



사만다의 오른쪽 칸에서 또 다른 아이가 말을 이었다. "잃어버린 꿈, 깨어진 희망, 시들어가는 절망의 뱃사공이다."

마지막 칸에는 대장장이의 아들이 갇혀 있었다. 아이의 앞니가 있던 자리에는 피투성이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공포의 오른팔이자, 안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나에 대해 알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를 알게 되리라."

사만다가 햇살 속으로 나서는 순간, 벨릭은 발라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발라는 그 뒤에서 마구간을 빠져나와, 두건을 벗고 모여든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비키세요! 모두들! 벨릭, 좀 도와줘요!"



질문과 비난을 쏟아내며 사람들이 밀려 들었다. 사만다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벨릭은 모두에게 비켜 서라고 소리쳤다.



발라는 어린 소녀 앞의 사람들을 이리저리 밀쳐냈다. 소녀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 움직임은 기이했고, 가끔씩은 경련을 일으키는 듯했지만, 그 외에는 우아하고 마치 물 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로 모여 마을 동쪽 끝에 있는 상점가를 지나 계속 걸었다.



사만다의 걸음이 빨라졌다. 몇몇 마을 주민들이 뒤쳐졌다. 벨릭은 헐떡이며 숨을 들이쉬었고, 힘겹게 움직이는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황량한 흙길을 따라 움직였다. 들판으로 향하는 좁다란 오솔길 정도의 길이었다. 사만다는 죽은 풀밭 위에 비틀거리며 올라서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아이의 고개가 들리고, 악마의 질풍 같은 목소리가 다시 쏟아져 나왔다.



"나를 막아서려 하느냐? 그렇다면 따라와라..."



소녀는 천천히 웃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 사만다 할스태프의 목소리였다. "같이 놀아요."

갑자기 소녀의 눈이 감겼고, 그녀의 몸은 축 늘어져 쓰러져내렸다.



발라는 앞으로 달려가서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 아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뒤쳐졌던 마을 주민들도 도착했고, 이제는 악마사냥꾼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벨릭은 숨을 몰아쉬며 곁에 서 있었다. 발라는 악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위를 올려다 봤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황폐해진 풀을 눈여겨 보고, 그걸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시든 풀은 넓게 퍼져 있었고, 끝으로 가면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습이 거대한 눈을 연상시켰다. 군데군데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악마에게 오염된 지점이다.



"치유사님, 이 밑에는 뭐가 있죠?"



벨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것도 없소."



"꼭 그렇지는 않아."



발라와 벨릭은 동시에 뒤로 돌아 지켜보던 사람들 중 한 명을 바라봤다. 흰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퉁퉁한 농부였다.



"보섬 강이 이 밑에쯤 흐르고 있을 거야."



벨릭은 발라를 쳐다봤다. 빛의 장난 때문이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발라는 조금 창백해진 것 같았다.



"어젯밤에 말을 타고 오면서도 강물 소리를 들었어요. 지금도 희미하게 들리는데요."



턱수염을 기른 농부가 어딘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진짜 보섬 강이 아냐... 수 세기 전에 정착민들이 물길을 돌리기 위해 파놓은 수로지. 진짜 보섬 강은 데드폴 산에서 흘러나와서..."

농부는 뒤로 돌아 북동쪽을 가리켰다.



"... 바로 동굴로 흘러들어. 그리고 지하로 흘러서... 이 부근을 지나고 서쪽으로 이틀치 여행길만큼 흘러간 후에 다시 올라온다고."

발라는 주변을 살폈다.



"우물은 없나요?"



"마을 바깥 땅은 농사짓기 딱 좋지만, 이쪽 땅은 쇳덩이보다 더 단단해. 옛날 사람들도 수로를 뚫는 편이 더 쉬웠을 거야."

발라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강이 흘러드는 동굴이나 다시 땅 위로 올라오는 지점으로... 달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농부는 내뱉듯이 말했다. "없어."



"동굴은 어디 있죠?"



농부는 산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저쪽으로 반나절쯤 가면 돼."



벨릭은 묻는 듯한 시선을 발라에게 던졌다. "이제... 어쩌겠소?"



목수의 딸은 두건을 벗고 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훑었다.



"모두 여기서 한데 모여 기다리세요. 사람의 숫자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만다를 다시 마구간으로 데려가세요. 여름을 열 여섯 번 겪지 않은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밧줄로 묶어 가둬 두세요." 그녀는 다시 벨릭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 말을 데려오세요. 가서 악마를 죽이겠습니다."



천둥 소리 같았다.



발라는 보섬 강이 흘러드는 구멍 앞에 서서 휘돌아 들어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강은 움푹 패인 구멍 안쪽을 향해 소용돌이쳤다. 가장자리에서는 천천히 회전하다가 안쪽으로 갈수록 더 세차게 움직였고, 마침내 중앙의 어둠을 통해 미지의 지하로 사라졌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서 흩어져 나온 물보라가 얼굴을 서늘하게 적셨다. 돌풍 같은 소리에 발라의 기억은 고향 마을이 공격당하고 몇 주 뒤의 어느날 밤으로 되돌아갔다...

땅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발라와 할리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할리사는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온 수많은 밤과 마찬가지로, 학살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할리사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고, 무작정 달렸다...



옆에는 물이 불어난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할리사는 강둑에 너무 가까이 붙어 달렸고, 한 순간 진흙에 미끄러졌다... 할리사는 손을 뻗었지만...



발라는 할리사가 물살에 휩쓸려 영원히 사라지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지금 구멍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는 강물처럼... 저 텅 빈 눈구멍 속으로...

다시 떠오른 기억에 가슴이 저렸다. 하지만 그녀는 할리사의 손을 잡았었다. 일이 잘 풀렸었다. 결국 아무 문제도 없었다.



지금 여기로 돌아와 보니, 발라의 기억 속 텅 빈 공간이 더욱 두드러졌다. 영원한 무. 잃어버린 조각이 뭐든 상관 없다고 발라는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피곤했지만, 이 일만은 끝낼 것이다. 할리사를 위해.



방어구가 몸을 무겁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발라는 방어구를 하나씩 벗었다. 무기는 벨릭이 준 가방에 담았다. 바로 이 용도를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가방 안에는 염소 가죽에 싼 부싯돌과 불쏘시개가 들어 있었다. 발라는 가죽 안에 올가미 폭탄과 여러 가지 폭발성 촉이 달린 화살들을 보관했다.



그리고 망토와 두건이 거추장스럽지 않게 모두 벗어 가방 안에 함께 넣었다. 조끼까지 벗은 뒤에, 발라는 가방을 묶고 구멍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어린아이를 타락시키는 악마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있을까? 그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 부글거리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악마가 원하는 것이리라.



델리오스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악마사냥꾼은 언제나 증오를 절제로 다스려야 한다.'



이곳으로 뛰어들다가 죽을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휘도는 물살에 휩쓸려 수장될지도 모른다.



발라는 숨을 한껏 들이쉬고 뛰어내렸다.



눈알 모양 구멍 안에서 날뛰는 물길은 일종의 고립된 혼돈과도 같았다. 몸을 지탱하려 그녀의 근육이 애쓰는 동안 세상은 암흑에 뒤덮였다. 숨을 참느라 가슴이 불타는 듯했다. 이 와중에도 그녀는 가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이리저리 내쳐지고, 구르고, 떠밀리고, 깊숙히 가라앉으며,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이었다. 완전한 암흑에 휩싸인 그녀는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물에 실려 가는 동안 튀어나온 돌에 몸 여기저기를 부딪혔다.



그리고...



손가락이 날카로운 암초에 닿았다. 그녀는 두꺼운 석순을 붙잡고 몰아치는 해일에 맞서 버텼다.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최대한 많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가방이 여전히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눈에 들어간 물 때문에 앞을 전혀 볼 수 없어서 팔로 얼굴을 닦아냈지만, 아직 앞은 흐릿하기만 했다.



이곳의 공기는 서늘했다. 발라가 발을 뻗자 돌벽이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가방을 바위 위에 던져 올리고, 날뛰는 물살 밖으로 몸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 여기저기에는 동굴과 우묵한 공간이 있었다. 빛을 내뿜는 이끼가 벽과 종유석, 석순, 바위 기둥, 천정 일부를 덮고 있었다. 그 빛이 으스스하고 섬뜩하게 주변을 비춰, 횃불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잘 됐군. 양손을 모두 쓸 수 있겠어. 발라는 생각했다.



세찬 물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천둥 같은 포효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발라는 가방에서 두건을 꺼냈다. 놀랍게도 거의 젖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두건을 단단히 둘러쓰고 체온을 유지하려 했다. 무기를 꺼내면서, 붉은색 화살이 잘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녀는 쇠뇌를 장전하고 양손에 하나씩 든 후에 일어섰다.

마치 사냥감을 집어삼키려는 찰나의 상어 아가리처럼, 천정과 바닥에서 삐죽삐죽 솟아난 석회암 가시들을 바라본 그녀는 검은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발라는 그 뒤를 쫓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에 접촉해 오는 악마의 숨결을 느꼈다. 인식 밖에 도사리고 앉은 사악하고 가증스러운 존재의 기척, 마치 어두운 숲 가장자리를 서성거리는 늑대와 같은 기척이었다.



그녀가 오감을 바짝 긴장한 채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내딛자, 그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그녀의 맥박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잘 왔다.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발라는 동굴 뒤편으로 이동했다. 어둠속으로 이어지는 동굴이 뚫려 있었고, 이곳은 이끼가 많지 않았다. 홀브룩의 우물에서 봤던 검은 물질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그 끈적이는 물질을 만졌다.



참으로 고집스럽구나. 욕망이 가득하구나.



어째서?



눈은 볼 것이다..



발라는 일어서서 쇠뇌로 앞을 조준한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 쪽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희미하게 빛을 반사하는 검은 촉수가 떠올라 그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발라가 화살을 발사하자 그 촉수는 뒤로 움찔했지만, 쇠뇌는 이런 공격을 하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쇠뇌 하나를 등에 메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에도 악마가 자신의 머릿속을 찔러들어오는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검은 촉수를 그렸다. 방금 그녀를 공격했던 끈적한 물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목수의 딸.



발라는 미끄러지듯 반대편으로 이동하며, 촉수의 끝을 잘라냈다. 촉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의 마음 속 존재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핏덩이 같은 아이가 이 안에 예쁜 기억을 감춰놓고 있구나. 먹음직스럽게 잘 익었어.'



발라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여러 개의 바늘이 발라의 머리를 찌르는 것 같았다. 이곳의 벽에는 검고 반짝이는 진흙이 두텁게 덮여 있었다.



마을. 가족. 친구. 따뜻함. 안식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악마들. 메뚜기떼 같은 악마 군단.



진창에서 더 많은 촉수들이 뻗어나와 꿈틀거렸고, 이제는 마치 벽 전체가 꿈틀대는 것 같았다. 발라는 두 번째 쇠뇌도 등에 메고, 다른 단검을 꺼내 좌우를 벴다.



달렸군.



겁쟁이.



가족을 버렸어. 죽어가는 가족을.



발라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일부와 맞서 싸워야 했다.



너희가 바로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내가 죽어버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발라는 이렇게 소리지르며, 거대한 촉수를 깊숙히 베면서 공중제비를 넘었다. "내가 했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난 살아남았다."



그녀는 커다란 원형의 전당에 들어와 있었고, 그 너머로는 더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바깥쪽 절반은 거대한 바위 기둥이 늘어서 있었는데, 위아래는 두껍고 중앙은 비교적 가늘었다. 머리가 쿵쿵 울렸다. 악마가 더 세게 쳐들어오고 있었다.



비명. 죽음. 마을... 정화.



가족... 정화.



"나는 델리오스처럼 조종할 수 없어!"



피...



그래. 마치...



강물 같은 피.



"그만해! 이리 나와! 당장 끝내주마!"



눈은 본다.



난 네가 보인다.



여기선 천둥 같은 물소리도 희미하게만 들렸다. 발라는 얼핏 어린 소녀의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둥근 공간의 바깥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 발라는 그 뒤를 쫓았다.



공간은 또 다른 동굴로 이어지고, 그렇게 굽은 길을 지나자 그녀는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바닥에 깔린 검고 끈적한 액체 때문에 걸을 때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쏟아지는 강물 소리가 다른 모든 소음을 지워 버렸다.



그녀는 크게 한 바퀴 돌아 물에 다가갔다.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굽은 길 뒷편에서 엿보는 머리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발라는 다시 쇠뇌를 들었다. 굽은 길을 지난 그녀는 순간적으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봤다. 그 악마가 아이들 중 하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모양이다... 아마 살아있는 방패로 쓰기 위해서겠지.



그 형체는 달리기 시작했다. 발라는 그 뒤를 쫓았다. 둘은 강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그 형체가 어린 소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긴 금발 소녀였다.

천둥. 비.



아이는 뜀박질을 멈추고 으스스하게 그 자리에 멈춰섰다. 발라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가슴 속에서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여동생.



소녀가 뒤로 돌았고, 발라는 할리사의 모습을 봤다.



강. 달렸지. 마음이 부서진 채.



물론 그 소녀가 할리사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 비슷했다. 소녀는 창백했다. 마치 죽음처럼 창백했다. 물에 퉁퉁 불은 피부는 조각조각 떨어져 나왔고, 한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발라는 멈춰섰다. 두통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그녀의 기억을 가리고 있던 벽이 모두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억했다...



그래.



할리사가 이성을 잃고 달렸던 밤을 기억했다. 자매가 목격했던 대학살의 광경 때문에 몇 주 동안 악몽에 시달리고 짐승처럼 지낸 끝에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 폭풍을 뚫고 할리사를 뒤쫓았던 것을 떠올렸다.



동굴 속 어린 소녀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검은 게의 집게발이 갑자기 뻗어 나왔다.



할리사가 미끄러져 넘어졌고, 발라의 심장은 얼음이 되었다. 할리사가 손을 뻗었고 발라는 그걸 붙잡았지만...



비에 젖은 손이 미끄러졌다. 할리사는 단 한 번의 비명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묻어버리려고 시도했구나. 정말 깊이 묻었어. 하지만 눈은 본다.



네게 좋은 꿈이란 없다.



발라는 동굴 속의 소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몰아치는 강물에서 검은 촉수가 꿈틀거리며 뻗어나와, 마치 뱀처럼 바닥을 기어왔다. 촉수는 발라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차가운 손아귀에서 단검 하나가 떨어졌다. 이제 상관 없었다. 아무 것도 상관이 없었다.



어째서 아이들이냐고? 아이들은 희망이지. 난 희망의 파괴자, 사랑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할 때의 공포다. 나는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분노다.



파괴가 공포를 낳고, 공포가 증오를 낳고, 증오가 파괴를 낳고...



그래.



델리오스. 증오가 참 많더군.



그 밑에는 겁먹은 소년이 있었을 뿐이야. 파괴에 열심인.



그녀는 거친 돌바닥을 온몸으로 느끼며, 강가로 끌려갔다.



넌 이제 내 것이다.



아지만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이 더 있었다.



그녀는 모닥불을 떠올렸다.



촉수가 그녀를 끌어 내렸다. 또 하나의 촉수가 솟아나와 그녀의 나머지 팔을 붙잡았다. 이곳의 물은 깊었다. 발라는 눈을 감았다. 아직 마지막 숨을 내쉴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남은 조각이 무엇이었지?



모닥불. 정신적 훈련. 그녀는 할리사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묻어 두었었다. 하지만 왜?



기억하라.



악마가 그걸 찾아가게 하려고. 마음의 눈으로, 발라는 수백 개의 촉수가 침입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악마가 널 들여다볼 때, 네 마음 깊은 곳 어둠 속을 들여다볼 때, 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너도 마주 바라볼 수 있다.



발라는 의식이 촉수을 단단히 붙잡고, 그 뿌리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상상했다...



이건 뭐지?



악마사냥꾼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지.



그녀의 의식이 자신에게 너무 깊숙이 들러붙은 존재에 침입했다. 악의에 찬 붉은 눈이 그녀의 정신적 시야를 점령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찾았다. 주위는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존재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스럽게 점점 더 깊이 찔러 들어가자... 그 존재가 형체를 띄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그녀는 자신이 무엇에 맞서고 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물 속에서 발라가 눈을 떴다. 그리고 검은 잉크 같은 물 속에서...



그녀의 눈은 불타오르듯 빛났다.



난 네가 보인다.



그녀는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에서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마음을 붙잡은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남은 단검으로 앞을 베어 촉수를 잘라냈다. 강물은 그녀를 휩쓸어가려 했지만... 이번엔 당하지 않는다. 강은 그녀에게서 다른 무엇도 빼았아가지 못하리라.



올페스토스는 네 저주 받은 진짜 이름도 아냐.



발라는 수면으로 헤엄쳐 올라가, 튀어나온 바위를 붙잡았다. 그녀가 물 밖으로 나서자, 할리사의 시체는 이제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고 한 걸음 물러났다.

난 네가 보인다. 발드락시스. 하찮은 졸개. 버려지고 소외된 악마.



죽은 소녀는 뒤로 돌아 달렸다.



대악마와의 전쟁에서 네가 이끈 작전은 실패했지. 비난과 조롱은 견딜 수 없었을 거야... 넌 한때 지옥에서 나름 지위 있는 악마였겠지만, 이제는 동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야.



나는...



무언가 그녀의 오른쪽 어둠속에서 어기적거리며 나타났다. 한때 두꺼비와 비슷했을 테지만, 이제는 변형되고 부풀어 오른 채, 거대하고 희미하게 빛나는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날 부정하지 마라.



발라는 단검을 입에 물고, 조끼 안에 넣어둔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올가미 폭탄은 그 안에 잘 들어 있었다.



그녀는 올가미 폭탄을 던져 그 양서류의 팔에 감았다. 그 생물은 팔에 감긴 물체를 얼굴 가까이 들어올려 밧줄과 구체를 유심히 살폈다.



폭탄이 폭발하며 그 생물의 팔을 증발시켰고, 머리도 함께 사라졌다. 발라는 입에 물었던 단검을 들고 소녀의 뒤를 쫓았다.



진짜 할리사의 시신은 아닐 것이다. 그녀를 약화시키기 위해 악마가 취한 모습일 뿐.



이제 약한 건 너다, 이 보잘 것 없는 녀석아.



벽 으슥한 곳에서 괴물 같은 것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옆으로 종종걸음을 치다가 거대한 손톱 하나를 휘둘렀다. 발라는 그 생물 위로 도약하며 껍질을 뚫고 단검을 꽂았다. 악마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쇠뇌 하나를 꺼내 들었다.



또 하나의 돌연변이가 달려들었다. 발라가 발사한 화살 하나가 팔과 비슷한 무언가를 부숴 놓았고, 다음 화살은 휘둥그레진 눈을 꿰뚫었다. 발라는 그 와중에도 계속 움직이며 동생의 거짓 모습을 뒤쫓았다. 그녀는 단검을 던져 버리고 두 번째 쇠뇌를 꺼내 들었다.



긴 통로가 그녀를 맞이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곤충들... 바퀴벌레, 지네, 딱정벌레 등, 미끈하고 축축한 해충의 파도가 한꺼번에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악마사냥꾼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무릎을 꿇고 양쪽의 쇠뇌로 화살을 연속 발사했다. 몇 번의 작은 폭발이 있었다. 얼굴에 열기가 느껴졌고, 불길이 사라진 후에는 꿈틀대던 벌레 무리가 대부분 끈적한 얼룩으로 변해 있었다. 남은 벌레들은 다시 달려가기 시작한 그녀의 발에 짓밟혔다.



굽은 동굴을 지난 발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발라는 앞으로 다가가며 진홍빛 화살을 꺼내 들었다. 발라의 반영이 입을 벌리자 진득하고 검은 진흙과 같은 물질이 부글거리며 입에서 쏟아져 나와, 턱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 물질은 코에서도 흘러 내렸다. 턱에 난 상처가 터져 벌어지며, 역시 끈적한 물질이 배어 나왔다. 두 눈마저도 액체에 잠식당하고, 발라의 반영은 악마의 피를 눈물로 흘리며 울부짖었다.



아냐. 저건 내가 아냐. 나일 수 없어.



발라의 반영은 거대한 바위 기둥 언저리의 어둑한 공간을 지나 달렸다. 악마사냥꾼은 쇠뇌를 장전하며 그 뒤를 쫓았다. 그녀는 기둥을 지나 빙글 돌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난 네가 보인다, 불타는 지옥의 졸개 녀석아..."



그녀가 말하는 순간, 어둑한 공간에서 악마가 갑자기 나타났다. 놈이 휘두른 굵은 팔은 그 끝이 톱니 모양의 칼날이었다. 하마터면 발라의 머리가 잘려나갈 뻔했다.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이름으로, 널 추방한다!"



악마는 거대했다. 그 형체는 빛이 결코 닿지 않는 심해에 존재하는 생물들 같았다. 퉁퉁 불어 오른 검은 촉수가 다리 역할을 했다. 상체는 가시 돋힌 갑옷 같은 껍질에 싸여 있었다. 끔찍한 악몽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 형체는 깊은 밤과 같은 색의 끈적이는 물질에 덮여 있었다.



"사라져라! 지옥으로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지어다!"



가늘게 찢어진 거대한 붉은 눈이 그녀를 마주 바라봤다. 눈이 크게 열리자 발라는 붉은색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이 눈에 꽂히자, 눈은 마치 포도처럼 터져버렸다. 화살대의 룬 문자가 빛나고, 뒤이어 빛의 폭발이 뒤따랐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발라는 일어섰다. 두건은 그대로 쓴 채, 할리사의 무덤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바라봤다. 지난 번 찾아왔던 이후로 잡초가 조금 자랐다. 고생 끝에 유해 일부를 찾아 묻었던 부모님의 무덤도 여기 있었고, 그 주위를 도살당한 다른 마을 주민들의 무덤이 둘러싸고 있었다.



조센이 그녀에게 다가왔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산들바람이 그의 망토를 살며시 흔들었다.



발라는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소식이 전해져 왔다." 조센이 말했다.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짜증스러울 만큼 메말라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지금 상황을 고려해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아이들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자신들이 벌인 일에 대한 기억은 없어... 대부분은 부모 없이 자라야겠지만. 벨릭과 다른 사람들이 고아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는군."

발라는 이를 악물었다. "잘 됐군요."



조센이 몸을 조금 움직였다. "마을 주민들이...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목수의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센을 흘긋 쳐다봤다. 그의 얼굴 왼쪽에는 세 줄기 깊은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델리오스는요?" 발라가 물었다.



"처리됐다." 조센이 답했다. 발라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기다렸지만, 스승은 냉랭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문을 들었어요... 예언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본 전조요... 지금부터 7일 후에 트리스트럼에 별이 떨어질 거라고 하더군요."



조센의 눈이 발라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 말이 맞다. 유성은 예언의 전조라고들 하지. 다른 이들이 내게 최고의 사냥꾼을 보내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더군."

발라가 방어구 아래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둘 사이에 잠시 흐른 침묵을 조센의 말이 깨뜨렸다.



"네가 한 일은..."



"도박이었어요. 하지만 성공했지요."



목수의 딸은 헤이븐우드에서 쓴 편지를 펼치고 자리에 앉았다. 무덤 앞에 편지를 내려 놓은 그녀는 그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내가 온다고 했잖아." 그녀는 속삭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스승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시험이라고 즐겨 말씀하셨지요. 삶이 시험이라고요. 전 폐허에서는 실패했어요... 하지만 이번 시험은 통과했지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나 자신이 가장 끔찍한 적이라는 사실을 배웠어요. 하지만 악마가 아무리 많은 것을 파괴한다고 해도, 희망까지 파괴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배웠어요."



저무는 저녁 해가 발라의 눈에 비쳤다. "스승님은 단순히 감정을 차단하는 편이 편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제 방식이 아니에요. 잠깐이었지만,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하는 삶은 자유로웠어요. 만족스러운 거짓말 같은 삶을 살았다고요."



그 거짓말 같은 삶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발라는 생각했다. 조센은 특유의 관찰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발라는 말을 이었다. "좋은 꿈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꿈일 뿐이에요."



목수의 딸은 두건을 당겨 썼다. "난 돌아왔어요. 그리고... 준비가 됐어요. 사냥을 계속하겠어요."



그녀는 돌아섰다.



"어딜 가는 거지?" 조센이 냉랭하게 물었다.



"트리스트럼에요. 최고의 사냥꾼을 보내달라고 했죠? 제가 최고예요. 제가 갈 테니, 말리려면 지금 바로 말씀하세요."



발라는 스승에게 등을 돌린 채 잠시 기다리다가, 스카프를 다시 올려 썼다... 잠시 후, 그녀는 말을 달려 언덕을 올랐고,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조센은 그녀를 바라봤다. 누군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어딘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승의 입가에 뭔가 드러났다. 마치... 미소 같았다.


12개의 댓글

2014.10.10
왔군요 형제여!
0
2014.10.10
캬.... 스토리 장난 아니네 ㅠㅠ..

제가 최고에요! 망3 해보고싶다.
주변에서 다 재미없다고 극구 말려서 안샀는데 ㅠㅠㅠ
0
@개드립굉이
개소리임
0
2014.10.10
@개드립굉이
개솔 꿀잼이구만
0
2014.10.10
@개드립굉이
모든게임은 각자취향타는건데 쩝;
0
2014.10.12
@개드립굉이
재미 없다고 한 사람들 사서 해보긴 했대?
0
2014.10.10
지전... 책한권 읽었다 고맙다
0
2014.10.10
발라 존예... 네가 보인다! 헠헠
0
2014.10.10
크 덕분에 잘 읽고간다 고맙다!
0
2014.10.11
발라!
0
2014.10.12
발라 모르굴리스
0
네 두려움이 보인다!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5220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7 [소녀의 잔혹동화] <마녀의 집> 9 잿더미어캣 4 1 일 전
5219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16 <마녀의집MV> 10 잿더미어캣 19 8 일 전
5218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5[아편고양이, 캣냅편] <파피플레이... 13 잿더미어캣 20 14 일 전
5217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4[교권의 수호자, 미스딜라이트] <... 15 잿더미어캣 26 21 일 전
5216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3[4D로 즐기는 허기워기] <파피플레... 21 잿더미어캣 20 29 일 전
5215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2 <파피플레이타임> 7 잿더미어캣 19 2024.03.25
5214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1 <파피플레이타임> 4 잿더미어캣 16 2024.03.19
5213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9) 8 CopyPaper 13 2024.03.15
5212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8) 6 CopyPaper 6 2024.03.15
5211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7) 4 CopyPaper 5 2024.03.14
5210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6) 3 CopyPaper 5 2024.03.14
5209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5) 8 CopyPaper 6 2024.03.13
5208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4) 5 CopyPaper 5 2024.03.12
5207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3) 7 CopyPaper 5 2024.03.12
5206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2) 5 CopyPaper 5 2024.03.11
5205 [연재] 공포게임하는.manhwa 10 <파피플레이타임> 4 잿더미어캣 9 2024.03.11
5204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1) 9 CopyPaper 4 2024.03.05
5203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20) 5 CopyPaper 7 2024.03.05
5202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19) CopyPaper 5 2024.03.04
5201 [연재] 조조전 모드 - 유선전 플레이 일지 (18) 2 CopyPaper 5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