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스압)디아블로3 캐릭터 성전사 스토리 - 여정의 끝

성전사.jpg



"성전은 계속 된다!"


안녕 게이들!

오늘은 디아3 캐릭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성전사를 가져왔어.



우선 성전사에 대해 알려면 성전사들이 믿는 '자카룸교'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어.


1. 자카룸교의 시작

자카룸교는 오래전 마법단 전쟁 ( 비제레이라는 마법단이 악마 소환술에 다시 손을 대자 대자 에네아드, 아무이트라 마법단이 이를 막고자 일으킨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던 때 (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종교적인 편안함을 위해 마법을 거부하기 시작했어.)


시안사이를 유랑하던 '아카라트' 가 꿈에서 야예리우스라는 존재를 만나. (야예리우스는 시안사이어로 '빛의 아들')


야에리우스를 접한 아카라트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 깨달음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내면의 빛'이야. 


그는 빛의 기운이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을 보면서 그것을 ‘빛의 존재’의 형상이라 생각했고, 여기서 인류는 강력한 빛의 그릇이며 따라서 훌륭한 삶을 살고 우주만물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내면의 빛'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되.


이 사건 이후  아카라트는 케지스탄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고 밀림으로 사라지고..


아카라트가 사라진 이후,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모여서 자카룸교를 만들었지


케지스탄에서 성장한 자카룸교는 쿠라스트를 중심으로 매우 왕성한 교권을 펼쳐.



칸두라스의 왕이었던 레오릭, 서부원정지의 초대 왕 라키스 모두 다 자카룸 출신이니 말 다했지 ㅋㅋ




2. 자카룸 교의 타락




호라드림이 흩어지기 전 자카룸교에 맡겨진 임무가 하나 있었는데..                                   ←호라드림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중에 다룰거야 (위의 마법단 전쟁도)


그것이 뭐냐면.. 메피스토가 봉인된 봉인석을 지키는 일이였어. (원흉의 시작)


하지만 메피스토의 악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 악의 정수는 영혼석에 갖힌 뒤에도 나와


트라빈칼의 빛의 사원에 봉인된 메피스토는 자카룸 교주, 신도들을 타락시키고 


빛의 사원이 증오의 사원이 되면서 결국에는 교단 전체가 미친놈이 되버렸지


마지막까지 남은 교황 칼림은 타락한 대주교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져 정글에 버려짐..


그리고 교황 칼림의 후계자 산케쿠르가 메피스토의 숙주가 되버려


메피스토.jpg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 물론 디아2 게임 안에서는 호구


결국 디아2의 플레이어에 의해서 처단 되었지만 


지금 현제 디아3 마을에 있는 자카룸 교 사제가 자카룸 교의 빛이 사라졌다고 말할 정도니


과거의 명성은 되찾기 어려울거라고 생각 됨.


그럼 성전사들은 어떻게 된거야? 라고 물어볼 게이들이 있을건데


성전사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설명할게.


3. 성전사 개요


위에서 말했던 라키스가 서부원정지로 향하기 전


'아크칸'이라는 성직자가 교단의 타락을 느껴. (디아3을 플레이해본 게이들이라면 많이 들어봤을거야 ㅋㅋ)


당시의 아크칸은 타락의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 몰랐지만 근원은 당연히 빛의 사원에 봉인된 메피스토 때문.


이때부터 아크칸은 가장 독실하고 강력한 전사들을 모아서 교단의 타락을 정화시킬 방법을 찾으라 임무를 맡겨.


그리고 성전사들은 라키스 장군과 성기사들이 향한 서부원정지와는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향했어.


이유는 아카라트가 사라지기전 동쪽으로 향했다는 소문이 있어서야.

성역.jpg



파란색이 아카라트가 깨달음을 얻고 전파한 경로

초록색이 라키스 장군이 서부원정지로 간 경로

빨간색이 성전사들이 향한 경로


처음에 동쪽으로 파견된 성전사는 427명이었지만 현제 남은 성전사는 341명으로 줄어든 상태야.


그리고 성전사들은 제자를 한 명 거두어서 동행을 하였는데

자신이 죽었을 때 그 제자가 무기, 갑옷, 심지어 이름까지 물려받아서 

대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어. (무려 200년 동안..!)


4. 성기사와 성전사의 차이점


일단 디아2의 성기사(Paladin)이랑 디아3의 성전사(Crusader)는 엄연히 다른 존재야. (참고로 디아3의 추종자 기사단원도 자카룸 교단소속의 기사단(Templar)임)


성기사는 자카룸 교가 신앙을 퍼뜨릴 때 이를 해칠려는 존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야.


'신앙의 수호자' , '자카룸의 손' 등 여러 단체가 있지만  


몇몇 단체가 (대표적으로 자카룸의 손 단체)가 도가 지나친 이단 심문으로 인해 (악마, 이단자를 물리친단 이유로 마을하나를 쓸어버리기도함)               


무너지고 이런 교단의 행위에 반발한 몇몇 성기사들이 서부원정지로 서부원정지의 기사와 융합하여 다양한 성기사단을 결성하기도 해.

 

성전사는 아까도 말했던것 같이 아크칸이 교단의 타락을 경계하여 가장 신앙심이 깊은 신도들을 모아서 교단을 정화할 임무를 부여한 비밀결사야.


그리고 기사단은 서부원정지에서 결성된 자카룸교 하부조직인데


'맹목적인 정의를 내세우는 천사와 악의 화신인 악마 사이에 있는 인간이야말로 위대한 존재'라는 사상을 가진 미치광이가 만든 집단으로


무고한 사람을 징집, 세뇌, 고문시켜 강제로 기사단원을 만들어서 세상을 정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디아3의 추종자 '코르마크'에게 진상이 밝혀진 후 기사단을 박살내버리지  사실상 유저가 박살냄





ㅋㅋ 설명이 너무 길었네 

오늘 이야기는 여성 성전사 '아나진'의 이야기야.

아나진은 디아3에 등장하는 패시브, 아이템에서 등장하기도 해

불사.jpg 황금형벌채찍.jpg


하지만 아나진은 우리가 플레이하는 성전사는 아니야.


작중에 보면 트리스트럼으로 먼저 간 성전사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성전사가 디아3에서 플레이하는 성전사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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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쾅 소리와 함께 금속 장갑을 낀 손이 여관 문을 거칠게 열었다. 모래가 빙글빙글 도는 리본처럼 휴게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라이터의 빗자루가 멈췄다. 그는 응시했다. 스러져 가는 황혼빛 때문에, 소년은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의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모래폭풍이 윙윙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형체가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갑주가 절그럭거렸다. 흰 튜닉이 갑옷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 이상한 기호가 드러났다. 하지만 라이터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무기였다. 험악하게 생긴 가시 돋친 추가 검은색의 짧은 사슬로 손잡이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남자는 심지어 엄청나게 큰 방패도 가지고 있었다. 라이터의 키보다도 큰 방패였다. 장비의 무게 때문에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무 바닥이 흔들렸다. 남자가 두꺼운 투구에 감싸인 머리를 돌려 소년 쪽을 보았다.



라이터는 너무 겁에 질려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는 한 손을 들어올려 투구를 벗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물결치며 그의 어깨에... 아니, 그녀의 어깨에 떨어졌다. 라이터는 충격을 받아 입을 떡 벌렸다. '여자잖아!' 그는 살면서 그렇게 섬세하게 장식된, 무시무시한 갑옷을 본 적이 없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상인들의 정예 경비병도 그렇게 무장하고 있진 않았고, 그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다. 적어도 라이터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실 그렇게 많은 경비병을 만나본 건 아니었다.



여자는 기침을 했다. 갑옷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 모래폭풍 속에서 걸어왔단 말인가? 미친 짓이었다. 그녀는 라이터를 바라보고 웃음 지었다. 친절하고 온화한 웃음이었다. "어디 보자." 그녀는 말했다. "넌 이 집 아들이겠구나?"



라이터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그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외쳤다.



위층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왜? 바닥은 다 쓸었냐?"



"손님이 왔어요."



"이런 날씨에 손님은 얼어 죽을." 그는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넌 대체... 아." 상스러운 말투가 싹 사라지고, 따뜻한 접대용 인사말로 바뀌었다. "사과드립니다, 나으리... 아니, 부인. 손님이 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이런 폭풍 속에서는 말입니다." 불안한 듯 갑옷을 흘끔거리는 눈길이 그의 매력적인 응대를 조금 망치고 있었다. "오아시스 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분이 묵을 방을 찾고 계신가요?"



둘? 라이터는 시선을 옮겼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의 동행, 소박한 옷가지를 걸친 소녀의 존재를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젊었다. 사실, 라이터 또래일 것 같았다. 갑옷을 입지 않은 탓에 돌풍에 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에 모래 알갱이가 엉겨 붙어 있었다. 라이터는 못 본 체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당신이 책에 취미가 있고, 고객한테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책? 이 둘은 겨우 책 때문에 모래폭풍을 헤치고 걸어왔단 말인가?



"사실입니다, 부인." 아버지가 말했다. "어떤 이들은 저희 여관의 도서관이 케지스탄에서 최고라고들 하지요. 물론, 칼데움 밖에서 말입니다."



여자는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여기 머물고 싶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절 부인이라고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이름은 아나진입니다."



"물론입니다, 부... 아나진! 오늘 오아시스 여관엔 방이 많습니다." 라이터의 아버지는 따뜻하게 두 팔을 벌렸다. "두 분처럼 이런 날씨에 여행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에 넘쳐나는 건 아니거든요."



두 번째 손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용기라. 퍽이나 그렇군요. 모래폭풍에 휘말리기나 하고. 벌써 시인들이 우리 용기를 찬양하는 시를 지으려고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네요." 라이터는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소녀는 그 시선을 마주 받고, 잠시 후에 예의 바르게 미소를 돌려주었다.



갑옷을 입은 여자가 활짝 웃었다. "저희가 좀 불시에 들이닥쳤나 봅니다. 어떤 제자가 잘 따라오기만 했다면 여기 며칠 전에 도착했을 텐데."



"어쩌면 사막에 있는 모든 동굴을 뒤져 보고 싶어한 사람은 그 제자가 아니었는지도 모르죠." 제자가 말했다.



"어쩌면." 아나진은 장갑 하나를 풀고 거꾸로 뒤집었다. 모래가 작은 폭포처럼 마룻바닥에 쏟아졌다. 라이터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그 모래를 쓸어내야 할 터였다. "어쨌든 우린 생산적인 일을 하긴 했잖니." 아나진이 빈정대는 투로 덧붙였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자, 두 분은 분명히 목이 마르시겠죠. 오아시스 여관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이터의 아버지는 말했다. "라이터? 우리 손님들께 물을 두 잔 가져다 드리겠니?" 그는 소년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라이터?"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튀겼다.



소년은 깜짝 놀라 튕기듯 몸을 바로 하고는, 여자의 제자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물이요. 네, 아버지." 그는 물잔 두 개를 움켜잡고 바닥에 있는 여닫이 문을 열어, 국자를 물통 안에 내렸다.



계산대가 자기를 가려 주는 게 고마웠다. 갑옷 입은 여자의 동행은... 라이터는 절로 미소가 번지는 걸 막으려고 애를 썼다. 여자의 제자는 스승보다 길고 색깔은 더 옅은, 거의 금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곡선이란... 게다가 그녀가 자기를 보고 웃어 주었다. 냉담한 미소였지만, 어쨌든 웃어 주었다.



'내가 맘에 드는 거야.' 라이터는 생각했다.



라이터는 두 여자에게 잔을 건넸다. 둘 다 한 번에 꿀꺽꿀꺽 잔을 비웠다. 그는 더 어린 손님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왜 그러냐는 듯 그를 곁눈질했다. 라이터는 눈길을 돌렸다.



"위층으로 따라오시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라이터의 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지금 당장 도서관을 보고 싶은데요." 아나진이 말했다. "우레라는 도시에 대한 책이 있나요?"



여자는 재빨리 갑옷을 벗고는 라이터의 아버지를 따라 도서관으로 갔다. 여자의 제자는 휴게실에 남아 있었다. "혹시 천 조각이랑 물 한 그릇 얻을 수 있을까? 지금 갑옷을 닦는 게 나을 것 같아." 소녀는 말했다.



"물론이지." 라이터는 말했다. 그는 계산대 너머에서 물건을 챙겼다.



제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다시 생각해 봤는데, 천은 됐어. 내 옷을 좀 찢어서 쓸 거야."



"괜찮아. 천 많은걸."



"돌려받지 못할 거야. 돌려받고 싶지 않을 거라고. 이걸 다 닦고 나면 태워 버려야 할걸." 제자가 말했다.



"상관없어." 라이터가 그릇과 천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가장 자신 있는 미소를 짓고서. 길 저쪽에 있는 교역품 가게의 딸이 그에게 속눈썹을 깜빡이며 애교를 부리게 만들었던 바로 그 미소였다. 그녀의 이름은 비아였다. 라이터는 동네 소녀를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천은 많으니까."



"고마워." 제자는 말했다. 그녀는 이상한 방식으로 갑옷을 닦았다. 손가락 몇 개를 그릇에 담그고 천에 물을 몇 방울만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복잡한 무늬와 장식이 있는 두꺼운 금속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라이터는 그녀 옆에 앉았다.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기울였다. "저 기호들은 뭘 뜻하는 거야? 꼭 자카룸 표식같이 생겼네."



"자카룸 표식 맞아."



라이터는 감동했다. "정말? 네 스승님이 성기사라고? 마을을 지나가는 성기사는 많이 봤어. 네 스승님은 보통 성기사들보다 훨씬 예쁘다." 그러고는, 이때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덧붙였다. "너도 그렇고."



소녀는 다시 그를 보며 냉담하게 웃음 지었다. "아나진은 성기사가 아니야."



라이터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상관없었다. "이 마을에 오래 머물 거야?" 그는 물었다.



제자는 천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계속 갑옷을 문질렀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야. 스승님한테 달렸지. 길어 봐야 며칠일 거야." 그녀는 두꺼운 얼룩을 노려보고는 천에 물을 몇 방울 더 묻혔다. 조심스럽게, 그녀는 젖은 천을 그 부분에 꼭꼭 눌렀다. 잠시 후엔 만족한 듯 다시 갑옷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분이 우레를 찾는다고 하시는 걸 들었는데. 혹시 보물 사냥꾼이셔? 온갖 보물 사냥꾼들이 여길 찾아오는데." 라이터가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뒤로 젖히면서 몸에서 힘을 좀 뺐다. 느긋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길 바라면서.



소녀는 라이터의 말을 곱씹었다. "보물 사냥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근데 그 표현이 거의 맞는 것 같네." 그녀는 마지막으로 라이터를, 그리고 그의 자세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자기 일에 몰두했다.



"내 이름은 라이터야. 너는?" 그는 물었다. 소녀는 미소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터는 기다렸다. 침묵이 이어졌다. '뭐, 어때.' 그녀의 이름은 어차피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네 스승님이 성기사가 아니라면, 대체 뭐야?"



"성전사." 그녀가 말했다.



"아, 맞아. 성전사. 알고 있었어." 라이터가 말했다. 그녀는 라이터를 흘끔 쳐다봤다. 라이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거짓말인 줄 그녀가 아는 것 같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라이터는 꼼지락거렸다.



어쨌든, 소녀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시작 아닌가?



한 달 전에 경비병 한 무리가 여관에 방을 잡고는 제일 싸구려 술만 마셔 대며 시간을 죽인 적이 있었다. 라이터는 그들이 있는 게 즐거웠다. 그중에 까무잡잡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얼룩진 튜닉을 걸치고, 벗겨지고 있는 머리통 여기저기에 벌겋게 염증이 있는 남자였는데, 그가 자기 멋대로 라이터에게 "세상 물정"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아무 귀여운 계집애"가 하룻밤을 허락하게 만드는 법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자애가 너랑 대화를 하게 만들어. 그러면 흥미를 가질 거야. 여자애가 웃으면, 반은 된 거야.' 경비병은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라이터에게 속삭였다. 그의 역겨운 숨결은 라이터의 콧속에 영원히 머무르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여자애가 너랑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여자애가 계속 웃으면, 네가 이긴 거야. 웃음이 사라지면 주제를 바꿔. 그 애한테 찬사를 늘어놓으라고.' 라이터는 그게 그렇게 쉬울 수 있다는 데 놀랐었다.



"이름이 뭐야?" 라이터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스승님을 위해 잡일을 많이 해? 우리 아버지는 항상 나한테 청소를 시키는데."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라이터는 말을 이었다. "아버진 항상 내게 우리 여관이 칼데움의 안식처에서 제일 깨끗해야 된다고 하셔."



"흥미롭네." 소녀는 말했다. 그녀는 또 다른 두꺼운 얼룩을 손톱으로 긁고는, 손을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홱 잡아당기며 뭐라고 투덜거렸다. 그러고는 천 조각의 마른 부분으로 그 지점을 지그시 눌렀다.



라이터는 그녀를 자세히 살펴봤다.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주제를 바꿨다. "한동안 걸어 다녔다면 따뜻한 물에 목욕하는 게 좋겠네. 뒤쪽에 욕조가 많이 있어. 내가 물을 데워줄 수도 있는데. 너만 좋다면."



"글쎄. 나중에." 그녀는 말했다.



"하나도 귀찮지 않아." 그는 고집스럽게 말하고는, 가볍게 덧붙였다. "심지어 같이 들어가는 것도 상관없어."

소녀는 천 조각을 내려놓고 라이터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그녀가 말했다.



라이터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적절한 설명을 찾아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 정말 미안해! 어떤 사람들은 그걸 점잖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단 걸 깜박했어. 여기 사막에선 드문 일이 아니야. 손이 잘 안 닿는 부위에서 모래를 씻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거 말이야." 그의 말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침묵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저기," 라이터는 갑자기 천 조각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이거 도와줄게." 그는 재빨리 천을 물에 적셨다. 손이 소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짜릿한 느낌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주저하지 않고, 라이터는 천을 갑옷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소녀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잠깐..."



라이터가 젖은 천을 얼룩에 갖다 대는 순간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진 것 같았다. 소녀가 소리쳤다. 물이 담긴 그릇이 뒤집혔다. 그릇 아래의 탁자도 뒤집혔다. 연기가, 곪은 피와 유황 냄새가 나는 끔찍한 연기가 허공을 채웠다. 라이터는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제자는 갑옷을 잡고 단 한 번의 깔끔한 동작으로 문 밖에 내던졌다. 갑옷은 발코니를 넘어 모래폭풍 속에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에, 라이터는 녹색 불꽃이 빠른 속도로 갑옷에 번지고는 번쩍하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라이터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탁자가 몸 위에 떨어져 그를 내리눌렀다. 라이터는 숨이 턱 막혔다.



고함치며, 울부짖으며, 라이터는 탁자를 치우려고 발버둥쳤다. 튼튼한 두 팔이 그 무거운 탁자를 치워 주었다. 아나진, 성전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이터의 아버지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겁지겁 휴게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아나진이 말했다. 성전사는 시선을 라이터에게서 바깥의 모래폭풍 한가운데에 놓인 갑옷으로, 그러고는 자기 제자에게로 돌렸다. 마지막엔 엄격한 눈초리였다.



모두에게 놀랍게도, 성전사의 제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신나게 웃었던지 눈물까지 나오며 몸이 마구 흔들렸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앉아야만 했다. 라이터의 아버지는 격분한 눈치였다. "아카라트의 이름으로, 대체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소녀는 눈물을 닦아내고, 라이터가 제발 그녀가 하지 않길 바랐던 대답을 했다. "쟤가 저더러 같이 목욕을 하자더군요. 그러고는 사과한답시고 갑옷 닦는 걸 도우려고 했어요." 다시 한 번 폭소가 휴게실을 채웠다. "죄송해요, 아나진. 쟤가 말라붙은 악마 피에 물을 부을 줄은 저도 몰랐어요."



"내 아들이 뭘 했다고?" 여관 주인의 눈이 자기 아들과 아나진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라이터는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말라붙은 뭐?"



아나진은 아직도 자기 제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진짜니?" 그녀는 물었다. 제자는 억지로 웃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제자는 손가락으로 좀 큰 벼룩 정도의 모양을 만들었다. "다행이네." 아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아무 피해도 없겠군."



라이터의 아버지는 걱정과 분노, 공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무슨 피해요? 제 아들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뭐 끔찍한 일이 생긴 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는." 아나진이 말했다. "칼데움으로 향하던 상단이 가끔 사라지는 일이 있지요? 그렇죠? 이제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모래폭풍이 불기 바로 전에 저희가, 음... 둥지 하나를 발견했거든요. 그 생명체들은 특히 물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명백하죠? 사막은 그들이 보금자리로 삼기에 딱 좋은 곳이었죠."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는 다른 부위의 장비, 다리 보호구를 하나 들어 찬찬히 살폈다. "위험한 건 다 씻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삼 일 내내 모래가 시야를 가리는 상황에서 완벽할 순 없는 법이라서요." 그녀는 라이터의 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비록 작은 위험이었지만, 모든 게 저의 불찰입니다."

라이터는 아버지의 입이 소리 없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 알겠습니다. 아무 피해도 없었으니까요. 저도 죄송합니다. 제 아들놈의 행동에 대해서요." 그는 라이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나진이 즉시 말했다. "제 제자가 댁의 아드님한테 홀딱 반하는 건, 정말 괜찮습니다."



제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게..."



"설명할 필요 없다." 아나진은 활짝 웃으며 제자의 말을 끊었다. "젊은 사랑이라. 어찌나 아름다운지. 봄에는 꽃이 피지. 사막의 장미 등등. 너도 알다시피, 성전사의 맹세는 너랑 이 소년을 전혀 막지 않..."



"제 맹세요? 안 막죠." 성전사의 제자는 툴툴거렸다. "좋은 남자에 대한 저의 감각은요? 막거든요?"



아버지가 배꼽을 잡고 웃자 라이터는 쫓기듯 여관 창고로 달려갔다. 그는 두 여자가 여관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을 피하는 걸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일주일쯤 머물렀다.



라이터는 거의 성공했다. 하지만 한번은 성전사의 제자가 그를 찾아내, 자기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다.



"아나진의 유머 감각이 나한테 옮아 버렸어. 우리는 가끔 서로를... 물어뜯는달까... 그럴 때가 있거든. 하지만 그게 변명이 되진 않겠지.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해."

라이터는 뭔가 중얼거리고는 가라고 그녀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녀와 그 스승은 어쨌든 미친 사람들 같았다. '악마의 피라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건 이성적이지 않았다.



"이상한 여자야." 그들이 떠나자 라이터의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저 여잔 확실히 뭔가 있어. 지가 성전사라고 했지.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늪지에서 왔다더군. 종교적인 뭐시기를 찾아서 사막을 건너온 거 같은데. 너도 물어보지 그랬냐. 아주 끝내주는 얘기였는데."



"그런 것 같네요." 라이터가 대답했다.


II



"바닥을 잘 쓸어라." 라이터의 아버지가 힘없이 말했다. 발작적인 기침이 노쇠한 몸을 뒤흔들었다. 그는 양손으로 입을 꽉 막았지만, 뼈만 남은 손가락 사이에서 가래가 흘러나오는 걸 라이터는 볼 수 있었다. "여관을... 깨끗하게..."



"그럴 거예요, 아버지. 수프를 다 드셔야죠." 라이터가 말했다.



"못 먹겠다... 맛이 이상해..."



"비아가 오늘 아침에 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거라고요." 그는 생각보다 참을성 있게 말했다. "어서 회복하셔야죠. 다 드세요."



라이터는 문을 꼭 닫고 휴게실로 향했다. 점심은 몇 시간 전에 나왔던 터라, 아직 탁자에 앉아 있는 손님은 셋뿐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상인 두 명이 서부원정지 포도주 가격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고, 뭔가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친구 하나가 두꺼운 책의 책장을 조용히 넘기고 있었다. 라이터는 계산대 뒤로 걸어갔다. 아내가 식칼을 갈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차 좀 더 갖다 줄 수 있을까?" 라이터가 말했다. "오늘 상태가 별로 안 좋으셔."



"꿀 좀 드릴까?" 비아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라이터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꿀이 비싸졌다. 트리스트럼에서 상인이 오는 게 늦어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주까지는 상인이 와주길 바랐다. 그러지 않으면, 오아시스 여관엔 곧 생필품이 떨어질 것이다.



"안 그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라이터는 재빨리 덧붙였다. "꿀이 부족하면 손님들이 불만족스러워할 거고, 그럼 우리 여관 평판이 떨어진다고.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 비아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상황을 아셨다면 아버지 스스로 꿀은 필요 없다고 하셨을걸. 이 여관은 아버지한테 전부라고. 그분의 유산이야." 라이터는 잠시 꿈지럭거리고는 항복한 듯 두 손을 쳐들었다. "알았어. 꿀을 드려. 조금만."



아내의 눈은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어쨌든 그녀는 차를 만들었다... 꿀을 넉넉히 넣어서. 그러고는 차를 들고 계단 위로 사라졌다.



라이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항복했는데도 아내가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별 이유 없이 라이터의 기운을 빼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여관 문이 활짝 열렸다. 휴게실에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라이터는 계단 쪽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아시스 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으리.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나으리? 부인보단 낫네." 재미있어 하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라이터는 뒤돌았다. 새로운 손님은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팔구 년 전에 본 바로 그 갑옷이었다. 투구, 가슴 보호구, 방패, 도리깨, 자카룸의 표식이 수놓인 긴 망토... 그녀였다. 라이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성전사?' "아... 죄송합니다, 부인."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녀는 가볍게 쿡쿡 웃었다. "'부인'이라. 내 이름은 그냥 아나진인데."



"죄송합니다... 아나진." 라이터는 말했다. 그게 그녀의 이름이었던가? 아나진은 기억 속의 모습과 달라 보였다. 머리카락은 더 옅고 길었고, 턱의 윤곽이 더 뚜렷했고, 코는 더 작았다. 이상하게도, 전보다 젊어 보였다.



그는 휴게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서 불안한 사람이 자기뿐만은 아니라는 게 조금 위안이 됐다. "방이 필요하십니까? 제자분도 같이 머무시나요?" 제자. 뱃속이 뒤틀렸다. 뒤집힌 탁자와 두꺼운 얼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혹감이 치밀었고, 그는 그 기억을 재빨리 몰아냈다.



"한 명이 지낼 방 하나면 돼. 아직 제자를 찾지 못했거든." 그녀는 말했다. "도서관도 다시 가고 싶은데."



라이터는 그녀를 이끌고 휴게실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이죠. 저희 도서관은..." 목소리가 잦아들며 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 제자를 찾지 못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땐 아나진에게 제자가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에 대한 라이터의 기억이 부정확한 듯도 했다. 그는 그 생각을 떨쳐냈다. "케지스탄에서 최고죠. 물론, 칼데움 밖에서 말입니다."



아나진은 그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갑옷이 무겁게 절그럭거렸다. "이 사막에 있는 벽지 마을을 서른 다섯 개는 넘게 방문했는데, 너와 네 아버지 말이 맞아." 그녀는 말했다. "큰 도시 바깥에서 본 도서관 중엔 여기 있는 게 제일 크더군. 사실 이런 마을에 이런 도서관이 있는 걸 아예 본 적이 없어."



"아버지 생각이셨죠." 라이터가 말했다. "칼데움의 안식처는 작은 마을이지만, 남쪽 경로를 따라 칼데움으로 가거나 칼데움에서 오는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 머무르거든요. 아시겠지만, 오아시스 때문에 말입니다. 고약한 사막을 지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죠. 아버지는 교수나 학자, 순례자들 중 많은 수가 길 저쪽에 있는 선술집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해서, 그들을 끌어들일 만한 뭔가를 마련하신 겁니다."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거였지만.' 라이터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빈곤한 학생에게 조용한 공부방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포도주나 다른 주류를 파는 게 훨씬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아버진 자신이 책을 살 의향이 있다는 걸 상인들에게 알렸죠."



"아버지는 잘 계셔?"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라이터가 말했다.



아나진은 고개를 숙이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뭔가 내가 도와줄 게 있니? 그분을 뵐 수 있을까?"



"요샌 의식이 또렷하지 않으십니다. 옛날 기억으로 그분을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나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도서관의 문이 바로 앞에 있었다. "지난번에 온 이후로 새 책이 많이 들어왔니?"



"그런 것 같습니다." 라이터는 말했다. 사실 그 자신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는 도서관 문을 열었다. "여깁니다."



"고마워."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한 걸음 물러서자 머리카락이 조금 라이터의 손에 스쳤다. 금발, 그는 깨달았다. 갑자기 모든 게 한꺼번에 기억났다... 스승, 갈색 머리카락, 이름.



"너... 넌 아나진이 아냐. 넌 그 제자잖아!"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돌아왔다. "이젠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 갑옷은... 넌 네 이름이 아나진이라고 했어!"



"그게 내 이름이니까." 여자가 말했다.



라이터의 당혹감은 분노로 변했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며 비웃는 것 같았다. 또다시. "그건 네 스승님 이름이잖아!"



"그리고 내 이름이야." 그녀는 아직도 웃고 있었다. "그게 정말 그렇게 이상해?"



"넌...!" 라이터는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네 스승님인 것처럼 얘기하잖아." 그는 씩씩거렸다. "날 속이려는 거였어? 지난번에 이미 충분히 나한테 망신 주지 않았나?"



"무례하게 굴 생각은 전혀 없었어. 난 성전사야. 아나진이고." 그녀는 말했다. "내 스승님이 그랬던 것처럼. 내 스승님의 스승님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이름이 아나진이라고?"



"스승님의 방패를 물려받을 때, 그분의 대의와 이름도 함께 물려받았어." 그녀가 말했다.



"방패를 물려받아?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 스승님이..." '돌아가셨어?' 라이터는 갑자기 알고 싶지 않아졌다. 그는 다급히 주제를 바꿨다. "아직도 우레에 대한 책을 찾고 있어?"



"아니." 그녀는 말했다. "탈 라샤의 분실된 회고록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어."



"아... 알겠어."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럼 볼일 봐." 그는 황급히 도서관을 빠져나와 휴게실로 돌아왔다.

비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이야?" 라이터는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비아가 물었다.



"몇 년 전에 여기 왔었던 여자야. 내 생각엔 미친 여자일지도 몰라." 그는 속삭였다. 비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라이터는 상인들이 사용한 접시를 치우고, 다른 탁자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 한 주전자를 가져갔다. '미친 거야.' 라이터는 남자의 잔을 가득 채우며 생각했다. '제정신이라면 누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물려받고 그 사람의 삶을 살려고 해? 이성적이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책을 다 팔아 치우는 데 얼마나 걸릴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저 성전사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아예 없는 게 제일 나을지도 모른다.



심각한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주인장." 방금 잔을 채워준 남자였다.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그 여자 누구요? 갑옷 입은 여자 말이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라이터가 말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상한 여자예요."



남자는 책을 덮었다. 익숙한 자카룸의 상징 중 하나가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성전사가 지닌 표식과 매우 비슷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남자도 아나진의 갑옷과 영 다르진 않은 갑옷을 입고 여기 도착했었다. "그 여자가 전에도 여기 온 적이 있소?" 남자가 물었다.



그의 말에 약간 날이 서 있는 게 거슬렸다. "한 번이요. 몇 년 전이었습니다. 전 그때 아직 어린아이였죠." 그는 자기 말투가 그녀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길 바라면서 말을 이었다. "이상한 여자 같았습니다. 생각이 그렇게 이성적이라고 할 순 없더군요. 하지만 해가 되는 사람은 아니었죠." 문득 자신이 남자의 의도를 오해한 건 아닐지 걱정됐다. "혹시... 친구분이십니까?"



"아니오." 그 목소리보단 얼음이 차라리 더 따뜻할 지경이었다. "이성적이라고 할 순 없다니, 흥미롭군. 당신은 어떻소, 주인장? 당신은 이성적인 사람 같소?"



"그런 것 같은데요." 라이터가 말했다.



"정말 그렇소? 그런 사람이 왜 이단자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겠소?"



라이터는 한 걸음 물러섰다. "네?"



"그 여자의 갑옷에 있는 표식을 봤소. 망토에도. 그 표식들은 장식용이 아니오." 남자가 일어서자 라이터는 처음으로 그의 건장한 체격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카룸의 손에 소속된 성기사요. 타락과 이단을 발견하는 즉시 제거하지." 그는 손가락으로 라이터의 가슴을 쿡 찔렀다. 여관 주인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 여자에게서는 빛이 느껴지지 않소. 뭔가 다른 게 느껴지오. 당신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여관에 그녀를 머물게 할 순 없소. 당신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오, 주인장?"



"네, 네, 물론이죠." 라이터가 째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왜 그 여자를 그냥 두는 거요?" 성기사가 말했다.



라이터는 위압적인 남자 앞에서 몸을 떨었다. 이렇게 화난 성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전 자신이 빛의 은총을 구한다고 하는 모든 이를 정중하게 대합니다. 그녀가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을 성전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가 당신의 교단에 속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용서하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무지가 저에게 무거운 죄를 저지르게 했습니다.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으리?" 그는 숨을 죽였다.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성전사?" 라이터는 재빨리 위쪽을 훔쳐봤다. 성기사는 그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름이 왜...?"



"말씀만 하십시오. 당장 여관에서 그 여잘 쫓아내겠습니다, 나으리." 라이터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성기사는 생각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알겠소. 그녀에게 여관 앞에서 보자고 전하시오. 내 직접 그녀의 의도가 뭔지 조사할 거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녀를 상대할 거요." 그는 책을 가지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라이터는 불안한 듯 서서 이마에 밴 땀을 닦아냈다. '잘됐군.'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나진 스스로 성기사와 그녀 사이의 문제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바깥에서. 되도록 여관에서 먼 곳에서. 성기사가 위층에서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터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자기가 얼마나 겁먹었는지 아나진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몇 방울의 물과 피 때문에 그가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그는 결심했다. 간단히 아나진에게 나가라고 하겠다고.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은 라이터의 여관,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라이터의 여관이 될 곳이었다. 그리고 라이터는 그녀가 여기 없길 바랐다. 이성적인 생각 같았다.



그가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아나진은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나진, 아니 이름이 뭐든, 당장 나가 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눈을 들어 라이터를 보고는 페이지를 하나 넘겼다. 읽고 있는 부분을 금속 장갑에 덮인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바깥에서 뭔가 성난 말소리가 들리던데." 그녀는 말했다.



"남자가 하나 있는데... 성기사야. 그가 넌 이단자라고 하더군." 라이터가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성기사라면 그럴 것 같네." 그녀의 눈은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라이터는 잠깐 동안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했다. "그가 날 죽이겠다고 위협하든?" 그녀가 물었다.



"글쎄, 그건... 응." 라이터는 단호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내 생각엔 널 죽이려는 것 같아. 지금 바깥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널 보내서 경고를 해주다니, 착하네."



그녀는 계속 책을 읽었다. 라이터는 불편한 듯 자세를 바꿨다. "너 나가서... 그와 맞서지 않을 거야?"



"결국엔 맞서게 되겠지. 그가 그때도 거기 있다면." 그녀는 말했다. "좀 기다려야 할 거야. 읽을 게 많이 남았거든. 어쩌면 그가 좀 더 나은 다른 할 일을 찾을지도 모르지."

라이터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끌고 나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계속했다. "아나진, 내 여관을 나가줬으면 좋겠어. 지금 당장."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라이터는 폭발했다. "대체 넌 뭐가 문제인 거야? 그 책에 뭐가 들어 있길래 널 죽이려는 남자보다 더 중요한데? 대체 왜 내 여관에 돌아온 건데?"



아나진은 한숨을 쉬고는 책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았다. 갑옷이 가볍게 절그럭거렸다. "너희 아버지가 내 스승님께 물었었는데..."



"진짜 아나진? 첫 번째 사람?" 라이터가 아무 생각 없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응, 그래. 하지만 그분이 첫 번째는 아니야. 아나진은 수백 년 전부터 성전을 시작했어." 그녀는 말했다. 라이터는 눈을 껌벅였지만, 그녀는 계속했다. "너희 아버지가 우리의 성전에 대한 모든 걸 내 스승님께 물었어. 너한테 말씀 안 해주셨어?" 라이터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짧게 말할게. 난 내 신앙을 구원할 무언가를 찾고 있어."



"구원... 무엇으로부터?"



아나진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부패로부터. 타락으로부터."



"그럼 저 성기사는 왜 너를 그렇게 미워하는데?"



"누가 너한테 네 신앙은 뿌리부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넌 기분 좋겠니? 결국엔 썩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부를 거라고 하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바깥에 있는 성기사는 지위가 높지는 않을 거야. 성전에 대한 건 그가 속한 교단 내에서 지도자들한테만 공유되거든. 만약 그자가 그들 중 하나라면, 이렇게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을 거야."



"그럼 어쩔 건데?"

"날 죽이려고 네 여관을 발칵 뒤집겠지." 아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자가 말귀를 알아듣게 설득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어. 만약 설득하지 못하면 아마도 난 이 마을을 떠나야 하겠지. 그러니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이걸 다 읽을 거야."



"하지만 그자는 나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결국 뱉고 말았다.

잠깐 침묵. "그랬어?"



"뭐,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아나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어쨌든 넌 위협을 느꼈잖아." 질문이 아니었다. 아나진은 책을 덮었다. "그럼 당장 떠날게. 네가 나 때문에 위험을 느끼는 건 원치 않아.

하지만 이 책은." 그녀는 책을 들어올렸다. "내게 팔아 줄래? 좋은 값을 쳐줄 수 있어."



라이터는 그녀를 응시했다.



***



암피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참을성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마치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여관 앞길에 바람이 몰아쳐, 그의 갑옷에 모래를 불어댔다.



"성전사." 성기사가 중얼거렸다. 어디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것일까? 쿠라스트에서 수습생으로 공부할 때 배웠던가? 아니다.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이 왜 이토록 신경 쓰이는 것일까? 성전사란 자들은 암피가 속한 교단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지식조차 확실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의 갑옷을 장식한 표식들은 조심스럽게, 경건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었다. 명백한 신성 모독은 없었다. 그녀는 광대도 아니었고, 몸에 자카룸의 표식을 그리고 싸구려 선술집을 돌아다니는 배우도 아니었다.



'체니스.' 암피가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은 이름이었다. 트라빈칼 사원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그 소년은 지식에 대한 마르지 않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체니스는 어느 날 밤, 자카룸의 손 장로 중 한 명의 연구실에 숨어들어가서 책을 한 권 훔쳤다. 그는 흥분해서 암피에게 자기가 알아낸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결코 배운 적이 없는 것들을. 그는 심지어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체니스는 숨겨진 지식을, 잊힌 범죄를 찾아냈다. 신앙 안에 있는 균열을 찾아냈다. 이상하게도 체니스는 얼마 후에 사라졌고, 암피는...



체니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암피는 화가 났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 증오와 분노가 흘러 들어왔다. 마치 더러운 것들이 덮인, 독물이 가득 찬 저수지에 그 기억들이 잠겨 있는 것처럼. 곧 그의 궁금증은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졌고...



성전사였다. 암피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참을성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눈을 깜빡였다.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어린 시절의 친구? 그거였다. 그는 그 생각을 마음속에서 몰아냈다.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저랑 얘기하고 싶어하셨다고요?" 그 목소리가 암피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녀가 와 있었다.



암피는 사람들이 거리 여기저기서 쏜살같이 실내로 달려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여행자고 주민이고 할 것 없이 숨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암피는 생각했다. 그는 여자가 자신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녀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성기사여?" 그녀가 물었다.



"이름을 말하라." 그가 매몰차게 물었다. "네가 누구인지, 혹시 악의 지배를..."



"제 이름은 아나진입니다. 성전사고요." 그녀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리고 전 조용한 대화를 나누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난 악과 협상 따위 하지 않는다. 발견하는 즉시 벌하지." 암피가 쏘아붙였다.



"잘됐네요." 아나진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우린 공통점이 있군요. 하지만 오늘 뭔가를 벌할 일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나요?"



암피는 빠른 동작으로 검을 뽑았다. 그녀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건 암피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넌 이단자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넌 나의 신앙을 따르느냐?" 그가 성난 듯 외쳤다. "자카룸교에 충실한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닙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말을 멈추고, 그녀는 동정 어린 눈길로 그를 살폈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많습니다, 성기사여. 아주 많지요. 우리 둘 다 같은 것을 바랍니다."



암피는 땅에 침을 뱉었다. 이 여자의 말이 왜 이토록 그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일까? 그는 여기서 당장 그녀를 공격하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그 욕망은 점점 강해졌지만, 그는 저항하며 딱딱한 목소리로 계속 몰아붙였다. "네가 걸친 그 표식들. 그건 신성한 표식이다. 넌 그 표식을 지닐 자격이 없다."



성전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을 괴롭히는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 대해 아는 바를 말씀해 보십시오."



"넌 나의 믿음을 모독한다." 그는 말했다.



"어떻게요?"



"난... 모르겠다." 그는 내뱉었다.



"제가 아는 건 이겁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악은 어디서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요.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 안에서도 자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경계하지 않는다면요."



"조용히 해." 암피가 속삭임처럼 말했다. 분노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당신을 지금 있는 곳으로 이끈 그 길이 후회로 점철돼 있다는 걸 압니다." 그녀는 계속했다. "당신이 정의를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걸 압니다. 믿음 안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이 의심하게 되었음을 압니다. 당신이 그걸 이해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이 강하다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진정으로 악에 굴복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제발 그만해." 암피는 간청했다. 그녀가 옳았다. 모든 것에 대해. 교단이 취하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순간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당신이 빛의 영광을 느꼈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맹세를 저버렸겠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그걸 들판에서, 세상 한가운데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트라빈칼에선 아니었지요. 당신네 교단의 사원 안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 대답이 당신에게서 숨겨져 있었는데도요."



미간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는 그 격류에 깊이 잠겨 진실을 찾았다.



그가 본 것은 돌이었다. 어둠이 돌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언가 무너졌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일순간 사라졌다.



증오였다. 증오가 그 자리를 채웠다. 순수한, 눈먼 증오가.



암피는 성전사에게 칼을 겨누고, 그녀를 처음 본 이래 처음으로 목표가 명확해짐을 느꼈다. 그는 두 손을 들어올려 빛의 힘을 불렀다. "말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단자야. 죽어라!" 그는 울부짖었다.



아나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녀는 암피가 자신에게 힘을 쏟아내자 슬프게 미소 지었다.



***


라이터는 성기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표정이 험악해진 건 확실했다. 여관집 아들은 창문으로 계속 밖을 엿보았다. 잠시 후, 비아도 그의 옆으로 왔다.



"들어가." 그는 속삭였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



"당신 먼저." 그녀는 말했다. 라이터는 그녀를 쏘아보았지만, 번쩍이는 빛이 그의 시선을 다시 거리로 잡아끌었다.



비아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라이터는 움찔했다. 성기사가... 무언가를...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불러냈다. 성기사는 그것을 머리 위에 띄우고 아나진에게 뭐라고 고함친 후, 그녀에게 그 빛을 날렸다.



빛이 아나진과 충돌하기 직전에, 라이터는 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고, 아나진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불길이 솟구쳐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성전사는, 흔적도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늘에서 순수한 힘과 광채가 담긴 번개가 내리쳤다. 아나진이 번개와 함께 내리꽂혔다. 성기사는 자신에게 닥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라이터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팔을 들어 눈부신 빛을 가리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 팔을 내렸을 때에도 그 번개가 아직 그의 시야에 날카로운 보라색 형체로 어른거렸다. 격하게 눈을 깜박이며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보았다. 아나진이 홀로 서 있었다. 침착하게. 몸 옆에서 도리깨가 천천히 흔들렸다.



성기사의 흔적은, 있었다. 대부분 멀리 흩어져 있었다. 아나진을 둘러싼 모래가 축축해진 것 같았다.



라이터는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비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라이터는 멍해진 채 아나진이 갑옷에 달린 고리에 도리깨 자루를 꽂는 것을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여관 쪽을 한 번 바라보고, 아나진은 서쪽으로 걸어갔다. 길을 따라 칼데움의 안식처 밖으로. 석양을 길잡이로 삼아.



완전한 침묵이 그녀와 함께했다. 온 마을이 숨을 죽이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는 게 들렸다. 아버지의 침실이었다. 라이터는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의 아버지는 최근 몇 달 중 가장 생기에 차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이 사막으로 사라지는 아나진을 쫓았다. "그 여자구나. 그렇지? 몇 년 전의! 다시 방문해 주길 기대했지. 뭔가 있는 여잔 줄 알고 있었어. 저 망나니 자식을 제대로 손봐 준 거지. 응?"



"그런 것 같네요." 라이터가 대답했다.


III



"전 이단자가 아닙니다. 평생 믿음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라이터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무표정한 얼굴 세 개가 그를 응시했다. 그들이 자기를 믿는 건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저는 현명한 예언자 아카라트의 말씀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초라한 종일 뿐입니다. 때로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전..."



마른 몸에 파리한 얼굴,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가장 작은 성기사가 그의 말을 잘랐다. "그게 바로 우리가 걱정하는 점이다. 네가 비틀거린 것 같아서." 그는 여관 주인을 밀치며 말했다. "너는 믿음의 적에게 고의로 잘 곳을 내줬다. 그리고 정의로운 이가 그걸 바로잡으려다가 목숨을 잃었지. 우리 형제 중 하나가."



"아니요, 아닙니다!" 성기사가 그를 벽으로 밀치자 라이터는 헉 소리를 냈다. 충격에 나무 벽이 삐걱거렸다. "당신의 형제가 제 도움을 구했을 때, 전 그분을 도왔습니다. 주저하지 않고요!"



"암피가 죽었으니,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 두 번째 성기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아카라트께 버림받은 이 마을에 있는 모든 건물 중에서 그 이단자가 하필 네 여관을 숙소로 골랐단 거다."



"어떤 이가 저희 여관 현관으로 들어올 때 그 사람의 마음속까지 볼 수는 없습니다." 라이터는 애원했다. 첫 번째 성기사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강하게. 라이터는 고통에 끙끙거렸다. "전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여자에 대해 기억하는 모든 걸 말했고, 그녀는 몇 년이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성기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름을 알려줬어." 그는 말했다. "아나진. 전엔 몰랐던 정보지."



첫 번째 성기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난 이자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그는 한 손으로 여관 주인을 벽에 밀어붙이고 다른 손을 그의 얼굴 앞에 올렸다. 희미한 빛이 손가락 사이에서 춤췄다. "내가 지금 얼마나 진지한지 알길 바란다." 라이터는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헛되이 꿈틀거렸다. 성기사의 주먹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나는 라이터의 코에 맞았고, 그는 머리를 꿰뚫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만, 체니스." 세 번째 성기사가 말했다.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 지역에 성전사가 있다면, 우리가 그자를 찾아낼 거야. 이 오아시스에 오지 않고 사막에 영원히 숨어 있을 수는 없어. 이 불쌍한 바보를 더 고문할 필요는 없다고."



"내 뜻에 의문을 제기하지 마라. 책임자는 나니까." 첫 번째 성기사가 천천히 라이터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두 번째 성기사가 첫 번째 성기사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만해." 둘은 서로를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눈을 깜박거리며 눈물을 참던 라이터는 그 둘이 서로에게 달려들까 봐 겁이 났다. 둘 다 그에게 달려든다는 생각에 비하면 훨씬 덜 겁나는 생각이었지만.



"좋다." 첫 번째 성기사가 말하고는 라이터를 놔줬다. 여관 주인은 왼쪽 어깨를 붙잡고 쌕쌕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콧물이 떨어졌다. "네가 맞을지도 모르지. 트라빈칼, 사원에서 온 소식이... 내가 좀 성급한 걸지도 모르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다."



"그럴 필요는 없어." 두 번째 성기사가 말했다. "그 여자한테 휴식처를 제공했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모르고 벌인 일이지. 저자가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라이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절대로요."



"좋아." 첫 번째 성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 역겨운 존재를 먼발치에서라도 다시 보게 되는 날엔, 주저 없이 우리에게 알려야 한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여 여관주인에게 바싹 얼굴을 들이댔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네!"



세 성기사 모두 뒤돌아 여관을 나갔다. 휴게실에 손님은 없었다. 라이터는 홀로 숨을 헐떡거리며 흐느꼈다.



한 목소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아빠, 괜찮아?"



라이터는 마지막으로 코를 한 번 훌쩍이고, 눈물을 닦아내고, 딸 릴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물론이지. 아빤 괜찮아. 그냥 눈에 모래가 좀 들어갔어. 가끔 날 바보 같이 보이게 만든다니까." 그는 일어서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딸은 이제 겨우 네 살이었다. 자기보다 두 배는 나이가 많은 아이들보다도 똑똑한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긴 했지만.


"저 착한 아저씨들은 오늘 밤 다른 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릴사는 엄지손톱을 깨물고는 대답했다. "착한 아저씨들 아닌 거 같던데."



라이터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것 같구나." 그는 다시 눈가를 훔쳤다. "엄마는 어디 있니?"



"반짝거리는 옷 입은 착한 언니들하고 뒷문 밖에 있어." 릴사가 말했다.



발걸음을 옮기던 라이터는 딸의 천진한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딸과 마주보았다. 아이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라이터는 다시 웃음 지으려고 애썼다. "착한 언니들이라니, 릴사?" 아이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웃음이 그리 설득력 있지는 않았나 보다. "무슨 언니들, 릴사? 중요한 문제란다." 그는 다시 말했다.



딸의 눈이 커졌다. "두 명. 한 언니는 다친 거 같아." 릴사가 드디어 말했다.



라이터는 부드럽게 딸을 안아 올리고는 창고를 성큼성큼 지나가 뒷문을 열었다. 사막의 맹렬한 태양이 그의 눈을 공격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잘못 보았을 리는 없었다. 세 여자가 여관 뒤의 긴 나무 의자에 함께 앉아 있었다.



한쪽 끝에는 비아가 앉아서 축축한 천을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라이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십대 소녀가 앉아 있었다. 중간에 앉은 건...



... 그녀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혼란에 빠진 라이터는 화난 목소리로 속삭이며 딸을 내려놓았다.



"이분 다쳤어, 라이터." 비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조용히 해."



"나랑 상관없어! 방금도 저 여자 때문에 내 여관에 침입자들이 난입했다고." 라이터는 아나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네가 네 적들을 내 여관에 불러들였어, 성전사. 그리고..." 라이터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의자 아래의 땅이 젖어 있었다. 그녀의 갑옷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더 젊은 여자, 십대 소녀가 대답했다. 소녀는 아나진... 지금의 아나진이 라이터와 처음 만났을 때 정도의 나이였다. "어제 사막에서 좀 골치 아픈 놈들이랑 마주쳤는데, 아나진이 피하는 걸 잊었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성전사의 갑옷을 벗겨냈다. 라이터는 숨이 턱 막혔다. 아나진의 복부에 깊고 벌건 상처가 가로로 길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악마의 칼날에 당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거든요."



라이터는 딸이 다리에 달라붙는 걸 느꼈다. "악마?"



아나진은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처리했으니까."



더 젊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스승님이 거의 처리될 뻔했죠. 다시 치료를 해봐야겠네요." 그녀는 아나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대 문자가 쓰인 두꺼운 책을 펼쳤다. 책장의 어떤 부분을 짚더니, 그걸 아나진에게 보여줬다. "여기서부터 시작할까요?



"그래." 아나진은 말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해. 믿음으로 다가가렴."



라이터는 혼란에 빠져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해가 안 돼. 대체 뭘..." 비아가 손을 휙 내저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성전사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제자가 입을 열어, 자카룸교의 오랜 율법을 읊기 시작했다. 라이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교 따위가 여기서 무슨 소용인가? 어쨌든, 희망이 담긴 그 구절들이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닌 건 사실이었다. 갑자기 날이 더 밝아지고 공기가 더 따뜻해진 것 같았다. 반기는 것 같았다. 라이터는 놀라움에 눈을 들었다. 빛이 그들 모두에게 내리쬐는 것 같았다.



제자는 낭독을 마치고 책을 덮었다. "됐어요." 그녀는 말했다. 아나진은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잠시 비틀거렸지만, 제자가 부축하려는 걸 손을 내저어 물리쳤다. 그녀는 어깨를 풀고 몸을 쭉 뻗었다. 웃옷은 아직 붉게 얼룩져 있었지만, 새로 피가 솟는 흔적은 없었다.



"잘했어." 아나진이 말했다. 제자가 환하게 웃었다.



라이터는 눈을 깜박였다. 성전사의 상처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뭘... 한 거야...?"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상관없어. 당장 떠나 줘야겠어."



"라이터." 비아가 경고하는 투로 입을 열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말을 이었다.



"내겐 딸이 있어. 임신한 아내가 있어. 지켜야 할 여관이 있어." 그는 말했다. "성기사 세 명이... 바라건대 단지 세 명이! 마을에 있어. 그들은 네가 이 지역에 있는 걸 알아. 조용히 내 여관을 떠나 줘. 제발."



라이터는 말다툼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아나진이 따지고 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지친 듯 다시 갑옷을 걸쳤다. "그들이 널 곤경에 빠뜨렸다면 미안해. 대부분 올바른 사람들이었는데, 지난 몇 주 사이에 완전히 길을 잃었어." 제자가 칼집에 꽂힌 칼과 도리깨를 그녀에게 건넸다. 무기는 자연스럽게 갑옷에 매달렸고, 마지막으로 아나진은 방패를 들어올렸다. "트라빈칼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조심해야 돼. 거기서 뭔가 극적인 일이 벌어졌거든. 그 사람들은 불안정한 상태일 수 있어."



"나도 알아, 성전사 나으리." 라이터가 쏘아붙였다. "그중 한 명은 내 머리를 거의 날려버릴 뻔했으니까. 네가 한 짓 때문에 날 탓하더군! 그 성기사가 죽은 게 내 책임이라고 보는 거야."



아나진이 멈칫했다. "그래?"



"그래!" 라이터는 여자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넌 내 여관에 왔어. 다른 집이 아니라 내 여관에. 그래서 그들은 내게 죄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댔어."



"그 성기사들은 지금 어디 있지?" 아나진이 조용히 물었다.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겠지. 칼데움의 안식처 다른 곳도 수색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니까." 라이터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만족하며 다시 몸을 바로 했다. "그래. 넌 이미 충분히 폐를 끼쳤어. 내 여관에서 떠나 줘. 당장."



아나진은 제자와 알 수 없는 눈길을 교환하고는, 방패를 다시 모래에 박았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떠날 수 없어."



"잘됐네요." 비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두 분 다 어디든 가기 전에 일단 좀 쉬셔야 할 테니."



라이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비아!"



그녀는 도전적인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방은 많아. 손님은 없고. 며칠 밤은 안전하게 재워 드릴 수 있잖아."



"성기사들은!"



"성기사가 뭐? 그들은 떠났어." 비아가 말했다. "이 둘은 남쪽에서 왔어. 길이 아닌 사막으로 왔다고. 아무도 이들을 못 봤어. 작은 창고에 간이 침대를 넣고, 문 앞에는 순무랑 육포 상자를 쌓아 놓지 뭐. 성기사들이 돌아와도 거기 방이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게. 아예 그들을 불러서 조사해 보라고 해도 되고. 작년에 도둑들이 나타났을 때 당신이 했던 거잖아. 그때 당신은 그게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비아와 라이터 둘 다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성기사들은 돌아올 거고, 우릴 발견하든 발견하지 못하든 상관없을 겁니다."



"뭐? 왜?" 라이터가 말했다.



"그들은 이미 네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나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마을을 수색해도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면, 그 분노를 너한테 돌릴 가능성이 아주 높아. 혹은 너 아닌 누군가에게. 신성한 목적이 아닌, 증오가 그들을 움직이고 있어. 너와 네 가족들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바로 너 때문에!"



"맞아."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난 너와 네 마을을 그들의 손아귀에 버려 두고 떠나지 않을 거야. 내가 직접 네 여관을 지키는 걸 원치 않는다면, 눈에 띄지 않게 제자와 함께 사막에서 야영을 할게. 만약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듣거나 뭔가 감지하면..."



"아,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창고에 있으면 별문제 없을 거라니까." 비아가 말했다. 라이터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지만, 비아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막았다. "문제없을 거예요. 잠시만 남편하고 얘기 좀 나눌게요."



라이터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릴사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성전사의 귀에 얘기가 안 들릴 정도가 되자 그는 소리 죽여 분노를 터트렸다. "정신 나갔어, 비아? 성기사들이 우릴 죽일 거야!"



비아는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릴사, 잠깐만 네 방에 가 있을래?" 그녀는 물었다. 아이는 계단을 올라가 모습을 감췄다. 비아는 라이터에게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어조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당신이 딸한테 보여 주고 싶은 게 그런 모습이야? 아버지가 두 사람을, 그것도 한 명은 다친 상태인데! 사막으로 내쫓는 게? 이방인 세 명이 어떻게 생각할지 무섭단 이유로?"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라이터가 말했다. "아나진은 우리 목숨을 위험에 빠뜨렸고, 성기사들이 아무리 아나진을 미워해도 육칠 년 전에 그녀가 여기 머물렀단 이유만으로 우릴 죽일 리는 없어. 실제로 아나진을 여기서 발견하지 못한 이상은. 릴사를 생각해.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 라이터는 비아의 부른 배에 다정히 손을 올렸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아나진은 떠나야 돼. 당장. 이성적으로 생각해."



비아는 남편의 손을 보고는 고개를 들어 라이터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당신은 아나진보다 그 성기사들을 믿고 싶어?"



"이미 말했다시피, 난 아나진이 과민 반응하고 있다고 확신해." 라이터가 말했다.



그녀는 배에 놓인 라이터의 손을 치웠다. "그 남자들은 당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어. 아나진은 언제나 친절하고 진실했어."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왜 그렇게 아나진을 싫어하는진 모르겠지만, 난 그녀를 믿어. 만약 성기사들이 아직도 우리한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가 여기 있는 게 낫잖아.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제 좀 이성적인 소리로 들려?" 그녀는 몸을 돌리고 어깨 너머로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쏘아봤다. "당신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하셨든, 그분은 겁쟁이는 아니었어. 지금 당신을 부끄러워하고 계실 거야."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러 밖으로 나갔다.



라이터는 속이 뒤틀렸다. '비아는 이해 못 해. 우리 모두 죽게 만들 거라고.' 바깥에서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전사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휴게실로 달아났다.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부끄러워하셔?' 라이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때 아버지가 친절을 베푸는 걸 좋아했던 건 사실이고, 라이터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넘어 아버지는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어쨌든 라이터도 비아의 말 중 하나는 옳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는 몸을 떨었다.



어쩌면, 어쩌면 아나진과 그 제자가 성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예전에 그녀가 다른 성기사를 어떻게 해치웠는지 직접 봤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보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아나진은 더 건강했다. 원기 왕성했다. 자신감 넘쳤다. 오늘은 달랐다. 몇 분 전만 해도 죽음의 문턱까지 가지 않았던가. 아나진의 제자가 아무리 강한들, 그들이 함께 아무리 잘 싸우든...



'아나진은 그들을 물리칠 수 없어.' 라이터는 결론을 내렸다. 단 한 명의 성기사만 살아남아도 그의 가족이 그 결과로 고통받을 것이었다.



'주저 없이 알려라.' 성기사 체니스가 말했었다.



라이터는 일어났다. 그것만이 빠져나갈 방법이었다. 희망이 샘솟았다. 성기사들은 아나진을 찾을 때까진 비이성적으로 굴지 몰라도, 찾고 나면 분명히 진정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라이터가 성기사들을 아나진에게 이끌어 준다면, 그가 성전사를 돕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말이 진심이란 걸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가 옳은 일을 했다고 칭찬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나진은... 그녀와 제자는 죽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죽는 것보단 낫지.' 그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여관을 빠져나갔다.



칼데움의 안식처는 큰 마을이 아니었다. 라이터는 성기사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는 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저 없이 알려라.' 발걸음이 빨라졌다. 달음질이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질주하고 있었다.



***



대장장이는 모루를 내리치는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나으리"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이상한 갑옷을 입은 여자가 들어오면..."



"어떤 여자든 들어오면," 체니스가 내뱉었다. "이단자는 변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널 속여서 죄악의 길로 이끌려고 할 것이다."



"네, 나으리." 대장장이가 말했다. "어떤 여자든 여기 들어오면, 기사님이나 기사님의 형제들을 찾겠습니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얇은 금속 조각을 집게로 집어 들고 찬찬히 살폈다. 끄응 소리를 내고는 금속을 모루에 내려놓고 가장자리에 다시 망치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달리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나으리?"



체니스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내가 말할 땐 날 봐라, 대장장이."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입죠." 대장장이가 말했다. 그는 성기사를 건성으로 한번 쳐다보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말입니다, 나으리."



남자의 목소리에 조롱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체니스는 분노가 끓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자넬 방해하고 있나? 중요한 일을 못 하게 만들고 있나?"



"아닙니다, 나으리. 전 듣고 있습니다." 대장장이는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체니스의 눈을 마주보고는 껌벅거렸다. 뭔가 위험한 것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무거운 한숨과 함께 그는 가장 가까운 담금질 통에 금속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성난 쉿 소리와 함께 증기가 피어올랐다. "사과드립니다. 또 뭘 알고 싶으십니까, 나으리?"



"뭘 만들고 있었나?" 성기사가 가볍게 물었다.



"통 긁개입죠." 그가 말했다. "저쪽 길가에 있는 여관 주인이 주문했습니다."



"오아시스 여관의 주인?"



"네, 그 사람입니다."



체니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진심이었다. 이 멍청이가 의심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한통속이군. 함께 죄악의 삶을 살고 있어.' 그들은 함께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훌륭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료 성기사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잘된 일이었다. "이미 이단자를 본 적이 있다면, 내게 말했겠지?"



"물론이죠, 나으리." 대장장이가 대답했다



"난 널 믿지 않는다."



대장장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체니스는 팔목 장갑을 살펴보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는 모루에 몸을 기댔다. 대장장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빛의 종복을 두려워해? 뭘 숨기고 있기에?'



"지금 내가 얼마나 진지한지 알아 줬으면 좋겠군." 체니스는 말했다. 그가 주먹을 꽉 쥐자 빛이 그를 채웠다. 빛나는 형체가 두 남자 사이에 나타났다. "네가 품질 좋은 통 긁개를 만들 거라고 확신한다. 망치에 대해선 뭘 알지?"



대장장이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죄악이 가득한 그의 눈도 공중에 떠 있는 빛의 망치를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기이하게도, 남자의 시선이 방 안 여기저기에 꽂혔다. 체니스는 그의 시선을 쫓았지만 특이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림자들이 좀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커지면서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체니스는 축복받은 빛의 망치가 모든 그림자를 몰아내던 때를 기억했다. 아주 오래전 일 같았다. 한평생도 더 전의 일 같았다. 그가 아이였을 때.



체니스는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가 아팠다. 망치는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사라졌다. 어린 시절에 대해 생각하니 고통이 밀려오고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그 생각을 몰아냈다. 한평생도 더 전의 일. 지금 일과 상관없다. 망치가 다시 나타났다.



"나으리," 대장장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



체니스는 가볍게 망치를 흔들었다. 저쪽에서 모루가 폭발했다. 대장장이는 복부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배에 금속 조각이 박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체니스는 말했다. "그렇게 말했었나?"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그를 흡족하게 했다. 완전한 무력감. 완전한 공포. 체니스는 빛나는 망치를 대장장이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이단자에 대해 정말로 아는 것을 왜 내게 말하지 않는 거지?"



대장장이는 애원했다. 흐느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맹세했다. 아카라트의 자비를 구했다. '그러기엔 조금 늦었는데.' 얼마나 길을 잃었기에 계속 거짓말을 하는가? 두 눈으로 뭘 보았길래 고백하길 거부하는가? 체니스는 망설였다. 어쩌면 더 강한 방법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는 아주 조금만, 망치를 대장장이의 얼굴에 더 가까이 가져갔고...



남자의 비명이 뚝 그쳤다. 크게 뜬 두 눈엔 망치의 빛이 기묘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순수하게. 홍채나 눈동자의 흔적 없이.



그러더니 붉은빛이 몰려들어 남자의 눈꺼풀 아래 고이며, 그 완벽히 하얀 구체를 더럽혔다. 체니스는 홀린 듯 지켜보았다. 툭, 터지는 소리가 뜻밖에 컸다. 대장장이의 뺨 위로 붉은 액체가 약간의 흰색 액체와 함께 흘러내렸다. 그래도 남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순수한 공포에 혀가 마비된 것이다.



문득 체니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 남자는 몇 시간, 어쩌면 며칠 동안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체니스는 자신을 꾸짖었다. '이런 낭비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기사는 빛의 힘을 뻗어 대장장이의 혀를 순식간에 잡아 뽑았다. 심지어 자기 손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모래 덮인 바닥에 분홍빛 살덩이가 툭 떨어졌고, 드디어, 대장장이가 고통에 찬 무언의 비명을 터트렸다. 체니스는 그가 비명을 지르게 두었다. 이건 괜찮은 생각 같았다. 성전사는 이 지역에 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온 마을 사람이 장님에 벙어리라면 그녀가 어디서 쉴 곳을 찾을 수 있겠는가? 몇 년 전 이단자를 보호해준 죄를 생각하면 이건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이었다. 그래, 그는 결심했다. 집집마다 찾아가서...



"아카라트여, 저희를 구하소서." 숨죽인 속삭임이 대장간 입구에서 흘러나왔다. 체니스는 조용히 뒤돌았다. 여관 주인이었다. 그 여관 주인이었다.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울부짖는 대장장이에게 못박혀 있었다.



"아카라트께서는 너희를 구하실 수 없다." 체니스는 말했다. "아무도 너희를 구할 수 없어."



"저는..." 여관 주인의 눈은 무너져 내린 대장장이의 몸뚱이와 체니스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전 말씀드리려고... 아까 명령하셨듯이... 주저 없이..."



"오, 그거 못 믿겠는데." 체니스는 슬프게 말했다. 그가 손가락을 구부리자, 희미하게 빛나는 빛의 고리가 여관 주인의 목을 감았다. 성기사는 그 빛의 고리를 조였다. 아주 세게. 여관 주인은 숨이 막혀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돌아왔지. 그렇지 않으냐? 그리고 넌 기다렸다가 이제야 고한 거야. 너 같은 놈들이 어떤지 안다. 넌 기다렸어." 그는 손가락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구부렸다. 빛의 고리가 더 나타나 여관 주인의 손목을 한데 조이고 팔꿈치를 한데 조였다. 캑캑거리는 소리는 숨죽인 비명으로 변했다.



체니스는 여관 주인을 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형제들이여!" 그는 외쳤다. "형제들이여, 죄인이 여기 있다!" 잠시 생각한 후 그는 두 손을 다시 들어 대장간 지붕에 불꽃을 흩뿌렸다. 즉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작은 불꽃이 합쳐져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 성기사들은 때로 꺼림칙해했다. 악을 ... 단호하게... 바로 체니스가 선호하는 대로 벌하는 것을. 그러니 아예 이 일을 모르게 해서, 그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리라. 불길은 깔끔하게 모든 걸 정리하기에 완벽한 수단이었다.

여관 주인은 옥죄인 목구멍 너머로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가족... 자비를..."



"이제 입 다물어라." 체니스가 말했다.



***



"아가, 이모 방패를 건드리면 못써." 비아가 릴사를 안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딸의 등을 톡톡 두르려 주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나진을 내려다 보았다. "그 무거운 장비를 다 걸치고 주무실 건 아니죠?"



성전사는 침대에서 머리를 들어올리고 미소 지었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죠?"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그녀는 다시 누웠다. 아나진의 제자는 침대 발치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잔 세 개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아나진이 무게 중심을 바꾸자, 갑옷이 가볍게 절그럭거렸다.



사실 우스꽝스러웠다. 비아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다. "그걸 벗으면 훨씬 편하게 주무실 수 있을 텐데요." 그녀는 말했다. 릴사가 귓가에서 키득거렸다. "보세요. 제 딸도 그렇다고 하잖아요."



"따님 생각이 맞을 겁니다." 아나진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억지로 지은 게 아니었지만, 두 눈에는 피로가 짙게 묻어 있었다. 비아는 그녀가 최근 죽을 위험을 겪은 게 이번 한 번뿐은 아니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그 신사분들이 돌아오면, 빨리 대응해야 하니까요."



비아는 조용해졌다. 릴사는 등잔 불빛이 갑옷에 그리는 무늬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 저희에게 해를 끼칠 거라고는, 그러니까 심각하게 해코지할 거라고는 못 믿겠어요." 하지만 성기사들이 라이터를 윽박지르는 소리가 벽 너머로 다 들렸었다. 그들의 분노를 비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떤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전 여기서 자랐어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봤죠. 성기사는 드물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만난 성기사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고요.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그들은..." 그녀는 망설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시나요? 그들이 왜 이상해졌는지?"



제자가 묻는 듯한 눈빛으로 아나진을 쳐다보았다. 아나진은 잠깐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들 내부의 어둠이 표면에 떠오른 겁니다. 그 어둠이 저의 성전을 재촉하고요." 그녀는 말했다.



"성기사를 미워하시나요?" 비아가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아나진은 말했다. "저희의 믿음은 뿌리가 같아요. 전 그들이 제 형제 자매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가족이지요." 제자가 찻잔을 건넸다. 아나진은 말을 잇기 전에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수세기 전, 한 현자가 자카룸교 내부가 타락했음을, 오염되었음을 알아차렸죠. 감지하기 어려운 정도였지만 악의 요소가 자카룸교의 근간에 숨어들었던 겁니다. 트라빈칼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그 악이 더는 숨지 않고 지난 몇 년간 대놓고 날뛰었던 모양입니다. 트라빈칼은 말 그대로 증오의 온상이 되었어요. 누군지 몰라도 그곳을 파괴한 이는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겁니다."



트라빈칼이 파괴됐다고? 비아는 불편한 듯 무게 중심을 바꿨다. 그런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그 교단 내부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악에 기울어진 이들이 정의로운 이들을 압도했지요." 아나진이 말했다. "안식처가 파괴되었으니 남은 이들의 정신이 불안정해졌을 겁니다."



비아는 성전사의 제자에게서 찻잔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의 성전은 그들을 뿌리 뽑는 거고요?"



아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성전은 그들을 타락시킨 악을 뿌리 뽑는 겁니다. 믿음을 정화할 무언가를 찾는 거죠. 며칠 전에는 저 사막 안에 그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확실히 뭔가를 정화하긴 했는데, 그게 믿음은 아니었죠."



"제 창자였는지도 모르죠." 제자가 웅얼거렸다.



비아는 그 언사에 충격을 받았지만, 성전사는 그저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둠 속에서 악마가 몇 마리 튀어나오는 걸 보는 게 장을 깨끗이 하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긴 하죠. 어쨌든 저희는 악마의 요새를 처리했고, 그건 전혀 시간 낭비가 아니었어요. 사막에 간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아나진은 뭔가 불편한 게 생각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비아, 당신 남편은 어디 있죠?"



"아마 토라져서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거예요." 비아가 짓궂게 속삭였다. "자기 맘대로 안 되면 그러곤 하거든요."

아나진은 웃지 않았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는 못 들었어요. 아니, 이 여관 안에서 어디로든 가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죄송하지만, 그를 찾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야겠네요." 비아가 말했다. 아직 릴사를 안은 채로 그녀는 작은 방 밖으로 나갔다. "라이터?" 그녀는 외쳤다.

릴사도 함께 외쳤다. "아빠아아!"



대답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아는 휴게실로 들어가며 다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침묵만이 흘렀다. "아빠가 어디 있을까?" 그녀는 조용히 릴사에게 물었다.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비아는 다시 성전사의 방으로 올라갔다. "잠깐 자리를 비운 모양이에요, 아나진. 근데 왜..."



성전사는 이미 방패와 도리깨를 붙잡고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녀의 제자는 짧은 칼을 칼집에서 꺼냈다.



"안타깝게도," 아나진이 말했다. "당신 남편이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IV



빛의 끈, 혹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라이터의 목을 감은 그것은 성기사들이 그를 멈추게 했을 때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갈 만큼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라이터는 피부가 열기에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등 뒤에서 묶여 있는 손이 헛되이 허우적댔다.



그의 눈... 그의 눈은. '아카라트여, 제 눈이!' 온통 암흑이었다. 성기사가 아까 라이터를 향해 손가락을 구부리자, 고통이 머릿속을 태우고 시야가 사라져 버렸다.

라이터는 눈이 멀었다. 완전히 눈이 멀었다.



"네가 네 죄를 짊어지고 최대한 빨리 우릴 찾아온 건 잘한 일이다." 대장 성기사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린 너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주지 않고 자카룸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적어도 넌 내게 좋은 연습이 됐어. 네 눈은 머리통에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이 라이터를 무릎 꿇렸다. 그는 힘겹게 쌕쌕거렸지만, 목구멍으로는 실오라기만 한 공기밖에 넘어오지 않았다.



세 성기사가 거리에서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터는 필사적으로 마지막 애원을 뱉으려고 애썼다. '저희 가족을 살려 주세요. 성전사를 잡아가고, 저희 가족은 살려 주세요.' 하지만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쇳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라이터는 옆으로 쓰러졌다. 거리 어디선가 문이나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길 바라며 귀를 기울였다. 아니, 그는 깨달았다. 도움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이 마을의 어느 누구도 돕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에 발을 들이는 건 비이성적인 짓이니까.



대장 성기사가 크고 또렷하게 외쳤다. "이단자여!" 잠시 후, 그는 다시 외쳤다. "이단자여! 아나진이란 이름을 가진 자여! 나는 성기사 체니스이다. 네가 더럽히려 드는 자카룸교의 이름으로 명한다. 당장 항복하고 심판을 받아라."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여관의 나무 발코니에서 들려 왔다. 라이터는 암흑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주저 없이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관 주인, 이건 알아 줘." 아나진이 말했다. "난 당신 가족의 안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야." 그녀의 음성엔 라이터가 예상했던 분노와 비난 대신 동정과 슬픔이 가득했다.



"시간 낭비다." 대장 성기사가 내뱉었다. "이단자를 숨겨 준 자는... 누구든... 이단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음흉한 미소와 함께 그는 덧붙였다.



***



길 여기저기서 문과 창문이 쾅 닫혔다. 그 소리 말고는 칼데움의 안식처 어디에서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온 마을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나진은 세 성기사를 응시했다. 중간에서 라이터 뒤에 서 있는 성기사가 대장 같았다. 다른 둘은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눈에서 주저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나진이 말을 건넨 건 그 둘이었다.



"여러분의 지도자는 여관 주인,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린 소녀를 살해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의 뱃속에는 다른 아이가 있지요." 그녀는 말했다. 마디마다 경멸이 묻어났다. "성기사 체니스는 한 점의 후회도 없이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당신들도 진정 그렇게까지 추락했습니까? 진정 저자만큼이나 악에 물들었습니까?"



이 말은 체니스에게 다시 불을 지폈다. 정의와 심판, 이단에 대한 성난 외침이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아나진은 듣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둘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곁눈질했다.



망설임.



죄책감.



그들은 체니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어떤 괴물이 되어 버렸는지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결코 인정한 적 없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뼛속 깊숙이, 지금 벌어지려고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나진이 그들을 지켜보는 사이, 한 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한 명도 곧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의 눈에는 증오만이 남았다. 아나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일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복종할 것이다. 나중에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후회하는 그 순간이 언젠가는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원의 대가는 죄 없는 자들의 목숨이 될 것이었다.



성기사는 계속해서 고함치고 있었다. 아나진은 깊이, 정말 깊이 숨을 들이마셔 공기와 빛으로 자신을 완전히 채웠다. 하지만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피로가 한 땀 한 땀 새겨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빛은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언제나 그럴 것이듯이.



"그래야만 한다면," 그녀는 말하고, 내달렸다.



빛이 그녀 주위에 소용돌이쳤다.



***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아는 움찔했다. 릴사는 신기한 듯 입을 헤 벌린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새로운 소음이 일었다. 섬뜩한 분노가 담긴 소리였다. 전투의 소리였다.



"라이터, 안 돼. 라이터." 비아가 속삭였다.



성전사의 제자는 하나뿐인 길을 따라 줄지은 건물 뒤편으로, 대결이 벌어지는 곳에서 멀리 비아와 릴사를 인도했다. 짧은 칼은 오른손에 들린 채 위를 향해 있었다. 왼손은 비아의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계속 움직여요." 그녀는 속삭였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혹은 작은 무리가 되어 사막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여기 잠깐이라도 더 있느니 척박한 사막에서 운을 시험하는 게 낫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남편, 제 남편은...?"



제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나진은 자기가 살아 있는 한, 그분이 돌아가시게 두지 않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강렬한 소리가 줄지어 선 건물들 너머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네요."



엄청난 굉음이 말을 끊었다. 무언가... 누군가... 여관 뒷벽을 뚫고 떨어져 모래 위를 굴렀다. 비아는 숨이 턱 막혔다. 누군가가 온 여관을 관통할 만큼 강하게 내던져진 것이다. 지붕 한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도 곧 뒤를 따를 것 같았다. 사막을 구르다 멈춘 형체는 라이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



"골목으로." 제자가 말했다. "조용히. 지금이요."



비아는 흙벽돌로 된 벽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방금 그건 누구였죠? 죽었나요?"



제자는 모퉁이 너머를 잠깐 엿보았다. "성기사들 중 하나네요. 그리고 아니요, 안 죽었어요." 주저하며 그녀는 덧붙였다. "지금 건물 옆쪽으로 가고 있어요. 몰래 돌아가서, 뒤에서 아나진을 덮치려는 거예요." 그녀는 손에 든 칼을 내려다보고 다시 비아를 보았다.



"스승님을 도와야 하나요?" 비아가 물었다.



제자는 머뭇거렸다. "저더러 두 분을 떠나지 말라고 했어요."



"저흰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게요." 비아가 말했다. 그래도 제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자들이 당신 스승님을 죽이면 멈출까요? 제 남편을 죽이면 멈출까요?"



"아니요." 제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가세요." 비아가 말했다.



***



아나진은 방패를 올려 망치를 비스듬히 튕겨냈다. 충격이 뼛속까지 뒤흔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관에 난 구멍 너머를 재빨리 보았다. 그녀가 날려 버린 성기사는 일어서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 아나진은 생각보다 더 피곤한 상태였던 것이다. 아까의 일격으로 그 성기사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어야 옳았다.



다른 두 성기사는 가차없이 그녀를 공격했다. 체니스라던 대장 성기사는 빛의 망치를 연거푸 휘둘렀고, 다른 하나는 밝게 일렁이는 빛의 화살을 끊임없이 쏟아부었다. 아나진은 방패를 높이 들고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두 번째 성기사가 세 걸음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어깨를 낮추고 방패를 단단히 지탱한 채, 밀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벽이 달려드는 성기사를 맞았다. 붉은 안개가 확 퍼졌다. 빛이 사라졌을 때, 진홍빛은 공중에 머물렀다. 뼈, 금이 가고 부서진 마른 뼈만이, 모래 위에 떨어졌다. 심지어 옷조차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아나진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체니스에게 몸을 돌려 도리깨를 휘둘렀다. 그는 깜짝 놀라 성난 외침과 함께 뒤로 펄쩍 뛰며 다른 망치를 던졌다. 망치는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명중했다. 고통이 솟구쳤지만 그녀는 차갑게 그 아픔을 무시했다.



성기사는 형제의 유해를 곁눈질하며 식식거렸다. "더러운 살인자, 악의 종자 같으니."



"그 입을 다물면 모든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질 거 같은데." 아나진이 말했다.



그녀는 갑자기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시 방패를 밀었지만, 성기사는 자기 형제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팔을 들어 공격을 피하며 일격을 휘둘렀다. 그의 반격이 방패를 울렸지만, 아나진은 이미 머리 위에서 도리깨를 휘두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는 성전사의 무기를 막을 다른 망치를 불러냈지만, 그녀는 방패를 앞세웠다. 자신의 앞에 빛을 모아 성기사의 공격을 모두 뚫고, 그를 모래에 처박았다. 그녀가 도리깨를 내리치자 순수하고 밝은 빛이 번개처럼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성기사는 으르렁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번개를 붙잡았다. 그것을 다시 그녀에게 보냈다.



성전사는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번개가 투구와 갑옷을 타고 흐르게 그냥 두었다.



"악마." 성기사가 악을 썼다. "악마, 저주받은 자."



"빛은 정의로운 이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아나진은 말했다.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네가 휘두르는 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격분한 성기사는 잽싸게 일어나 그녀에게 몸을 내던졌다. 도리깨와 망치가 부딪혔다. 충격파가 마을 중심가에 있는 건물들의 창문을 깨뜨렸다. 아나진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밀려드는 감각을 무시하면서. 그 모든 피로와...



... 고통을...



그녀는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헐떡거리며. 방패는 그녀의 손에 없었다. 그녀는 몸을 굴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뒤이은 공격을 본다기보다는 감지하며. 도리깨의 가시 돋친 추가 체니스의 오른쪽 다리, 갑주 사이에 단단히 박혔다. 그의 망치는 그녀의 머리 겨우 몇 센티 위에서 사라졌고, 그는 피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



누가 그녀를 기습한 것일까? 무엇으로? 그녀는 두 발로 일어서려고 애를 썼지만 팔다리가 떨리며 무너져 내려, 다시 모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안 되는데.' 그녀는 생각했다. 몸 왼쪽에 눌은 자국이 올라왔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긁혀 나가는 듯했다. 몸 안쪽이 불탄 것이다. 몸 안쪽부터 불탄 것이다. 내장이 바싹 타는 게 실제로 느껴진다고 맹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그녀는 생각했다. '새로운 감각이네.'



이를 악물고 그녀는 가까스로 똑바로 일어섰다. 고통을, 피로를, 나약함을 무시하고. "네가 이 삶을 선택했어." 그녀는 큰 소리로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귓가에 자기 목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받아들여라. 저주해라. 하지만 후회하지는 마라." 오래전, 그녀의 스승이 그렇게 말했었다. '계속 움직여.' 그녀는 다시 방패를 들어올리고 길 쪽을 보았다.



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밝은 빛들이 충돌하며 번쩍였다. 부상당한 성기사, 체니스가 큰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남은 다른 성기사, 아나진이 건물을 뚫고 던져 버린 자도 거기 있었다. '저 녀석이 날 기습했군.'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퍼붓고 있었다. 갑옷을 입지 않고 칼을 든 누군가에게...



"오, 이 멍청한 것." 아나진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제자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비꼬듯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십대 소녀는 바보는 아니었다. 경험이 적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제자가 전투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나진은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두 번째 성기사가 그녀를 끝장냈으리라.



아나진은 여관 주인이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이 보라색인 걸 보니 성기사의 힘에 목이 졸려 질식사하기 직전인 듯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가벼운 손짓으로 고리들을 없애 주었다.



라이터의 목구멍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목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가 눈을 떴다.



아나진은 움찔했다. 두 눈이 완전히 하얀색이 되어 있었다. 눈이 먼 것이다. 길 한참 아래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장간이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체니스가 거기서 무슨 짓을 했을지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 둬야 했다.



"넌 괜찮을 거야." 아나진은 라이터에게 말했다. '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네.' "가능하면 일어나. 이 거리를 벗어나야 해." 그녀는 길 위쪽을 보았다. 그녀의 제자는 아직 버티고 있었다. 체니스는 부상당했고, 다른 성기사는 건물을 관통하는 여행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둘 다 싸우는 자세가 불안정했다. 제자는 그들 주위를 거의 춤추듯 뱅뱅 돌고 있었다.



아나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제발, 서둘러." 여관 주인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단어 대신 겁먹은 듯 헉헉거리는 소리만 나왔다. '미안해.' 그는 말하려고 애썼다. 아나진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얼굴에, 심지어 텅 빈 두 눈에도 죄책감이 어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저놈들이 널 발견하면 친절하게 굴진 않을 거야. 꼭꼭 숨어." 그녀는 말했다. 드디어,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채, 그는 휘청거리며 불안정하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잘 숨어야 해." 아나진은 속삭였다. 그에게 마을 밖으로 달아나라고 하지는 않았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충분한 보급품을 지닌 교역단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감히 케지스탄 사막을 걸으려 하지 않을 것임을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눈먼, 그것도 최근에 눈먼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을 터였다.

라이터와 이 마을이 안전해지려면, 성기사들은 죽어야 했다.



체니스가 절뚝거리며 제자에게 접근하는 게 보였다. 소녀는 성기사의 공격 범위를 잽싸게 넘나들고 있었다. 갑옷을 걸치지 않은 대신 날렵한 몸을 잘 이용해, 빛의 벽을 세워 공격을 막아내면서 두 번째 성기사의 팔에 작은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아나진은 무거운 미소와 함께 비틀거리며 사냥감에 달려들었다. 제자만 재미를 보게 둔다면 자기가 무슨 스승이겠는가?



***



"이쪽이야, 릴사." 비아가 말했다. 침착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해냈다. 둘은 교역품 가게 옆쪽을 조용히 움직여 길 쪽으로 돌았다. "조금만 더 가자."

릴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 매달려 있었지만 울거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성전사 언니가 나쁜 아저씨들을 때려줄까?"



"물론이지." 비아는 실제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신 있게 말했다. "아빠 찾으러 가자." 라이터가 비틀거리며 길 반대편으로 가는 걸 본 터였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포가 끓어올랐다. 그는 심하게 다치고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우레와 같은 노성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러더니 널빤지가 부러지고 벽이 무너지는 굉음이 길게 이어졌다. 비아는 소음이 잦아들고 전투의 분노만 허공에 맴돌 때까지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는 모퉁이 밖을 훔쳐봤다. 숨이 턱 막혔다.



오아시스 여관, 그녀의 집이, 옆집인 약제상과 함께 폭삭 무너져 있었다. 엄청난 충격이 두 집의 토대를 무너뜨린 것이다. 비아는 기도를 웅얼거렸다. 약제사와 그의 아내가 도망가는 걸 전에 본 것 같았다. 그러길 바랐다.



길 건너편 골목에서 누군가 벽을 의지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라이터.' 그에게 가려면 비아와 릴사는 싸우는 사람들 눈에 훤히 모습을 드러내며 길을 건너가야 할 터였다.



'싸움이 더 길어지면 칼데움의 안식처가 온통 폐허가 될 거야.' 비아는 생각했다. 저들이 휘두르는 힘을 볼 때, 건물 뒤에 숨는 건 전혀 안전하지 않을 듯했다. 그대로 있으나 움직이나 위험하긴 거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비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릴사를 재빨리 안아 올렸다. "아빠 만날 준비 됐어?" 그녀는 물었다. 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비아는 말하고 길 위로 내달렸다.



***



으르렁거리며 체니스는 두 이단자에게 거듭 망치를 던졌다. 몇 번이고 갑옷을 입은 여자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고, 어린 쪽은 춤추듯 몸을 피했다.



소녀가 갑자기 접근해서 칼을 휘둘렀다. 그녀의 칼은 팔뚝을 덮은 금속에 부딪혀 튕겨났다. 드러난 팔꿈치에 칼이 맞고 팔이 잘려나가지 않은 건 순전히 하늘의 도움이었다.

그는 소녀가 다시 공격 범위 밖으로 물러나게 그냥 두고 다른 망치를 불러냈다. 이번엔, 그녀 뒤였다.



성전사의 제자는 빙글 돌며 두 손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체니스는 그 망치가 사라지게 두고 다른 망치를 바로 자기 가슴 앞에서 던졌다. 그녀는 칼을 비틀었고 망치는 살 대신 금속에 부딪혔지만, 그 충격에 소녀는 수십 보는 뒤로 밀려났다. 씩 웃으며 체니스는 성전사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아나진. 그녀는 차가운 결의가 담긴 눈으로 두 성기사를 노려보며 아직 사납게 싸우고 있었지만, 공격의 위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자카룸의 손의 적들이 정의와 맞설 때면 늘 그러했듯이. 그녀는 도리깨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모두 몇 걸음씩 빗나갔다.



"죽을 때다." 그는 말했다.



"네 말대로다." 그녀는 대답했다. 갑자기 성전사가 둘이 되었다... 아니 셋... 넷... 돌진하는...



고함을 치며 체니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뿌옇고 반투명한 형체들에게 크게 망치를 휘둘렀다. 두 성전사가 휘두르는 도리깨가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의 공격은 둘 다에게 맞았지만, 그들은 산들바람에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다른 성기사는 그처럼 빠르지 않았다. 두 명의 다른 아나진이 도리깨를 휘둘렀고, 남자의 몸은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안개가 사라지자, 거기엔 다시 한 명의 아나진만 있었다. 그녀는 방패에 몸을 기댔다. 지쳤지만, 사나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체니스에게 빛냈다.



"말해 봐라, 성기사." 그녀는 말했다. "장로들이 악의 소굴로 널 끌고 갔나, 아니면 네가 제 발로 갔나?"



체니스는 성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제자는 천천히, 고통스러워 하며, 하지만 확실하게 전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잠깐 동안 성기사는 그냥 서 있기만 했다. 그러더니 뒤돌아 절뚝거리며, 피 흘리며 도망쳤다.



아나진이 짜증스러운 듯 낮게 신음했다. "내가 널 뒤쫓게 만들지 마라." 그녀가 외쳤다. 체니스는 이를 악물었다. 분노와 공포가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도망쳐야 해. 저 계집을 죽여야 해. 그래야 돼... 그래야 돼...'



길 저쪽에서 한 형체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체니스는 그 형체를 쫓았다.



***



아나진은 제자가 오는 걸 기다렸다. "더 심하게 당했을 수도 있어." 고통스러운 미소와 함께 성전사가 말했다.



제자는 숨이 가쁜 모양이었다. "성기사가... 여관 주인의 아내를..."



아나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디?" 제자는 앞쪽의 골목을 가리켰다. 체니스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힘을 되찾은 듯 그들은 체니스를 뒤쫓아 달렸다.



***



"라이터," 비아가 두 손으로 라이터의 얼굴을 붙들고 말했다. "놈들이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의 새하얀 눈이 눈구멍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볼 수가 없어." 그는 말했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자길 놓을까 두려운 듯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자가 내 눈을... 볼 수가 없어. 당신 괜찮아? 릴사는? 여기 있어?"



"아빠, 나 여기 있어." 릴사가 말했다. 크게 뜬 두 눈에서 눈물이 반짝거렸다.



라이터는 맞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쭈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릴사?" 드디어 그의 손이 아이를 찾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아이를 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비아와 시선을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들었다. "미안해." 그는 꺽꺽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해."



"지금 와선 상관없어." 비아는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내 생각엔..." 그녀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싸우는 소리가 멎어 있었다. "전투가 끝났나 봐."



"누가 이겼지?" 라이터가 속삭였다.



비아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자카룸의 손은 언제나 이긴다, 추잡한 놈들."

릴사가 비명을 질렀다.



***



잘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아이의 비명 소리였다. "건물 옆으로 돌아가." 아나진이 부드럽게 말했다.



제자는 고개를 저었다. "전 스승님을 떠나지 않아요."



"난 지금 부탁하는 게 아니다. 건물 옆으로 돌아가." 성전사의 목소리는 이제 부드럽지 않았다. 제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절뚝거리며 건물 옆으로 돌아갔다. 보아하니 통을 만들어 파는 가게 같았다.



아나진은 여관 주인과 그의 가족이 이미 이 지역을 벗어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희망에 기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기사!" 아나진이 외쳤다. "진정 죄 없는 자들을 우리 싸움에 끌어들일 작정인가?"



어두운 형체가 골목 끝에 나타났다. "이 마을에 죄 없는 자는 없다." 성난 목소리가 말했다. "너 같은 종자를 숨겨 준 이상."



아나진은 이를 악물고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의 자비심에 호소하는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그래서 넌 어둠 속에 숨는 건가?" 그를 어떻게든 끌어내서, 제자가 측면에서 그를 덮칠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빛의 종복들이 싸우는 방식인가?"



화난 듯 으르렁거리며 그가 나왔다. 아나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왼팔을 비아의 목에 감고 있었다. 주먹을 쥔 오른손은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게다가 릴사가 비아의 품에 있었다. 어머니의 허리를 꼭 붙잡고, 자기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기사의 주먹에서 불꽃이 튀었다. 비아는 심지어 그 불꽃이 자기 피부에 닿아도 움찔하지 않았다. '잘하고 있어요.' 아나진은 생각했다. '그에게 보여주지 마요. 딸에게 보여주지 마요.'



"장로들이 지금 널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할까?" 아나진이 물었다. "신의 용사가 임신부와 어린아이 뒤에 숨어 있는 걸 보면 트라빈칼 사원의 신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할까?"



체니스가 자포자기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신도는 없다. 이젠 없어. 트라빈칼이... 내게 장로라는 존재가 남아 있는 것 같지도 않군. 하지만 난 그분들이 내게 주신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게 무슨 임무지?"



"이단자들. 언제나 이단자가 너무 많아. 난 네 정체를 안다." 반쯤 미친 듯한 그의 웃음 소리가 거리에 메아리쳤다. "우리 교단에서도 그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난 알아. 넌 우리가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나락에 빠졌다고. 하지만 떠났던 건 너희야, 성전사. 너와 너 같은 족속들, 너흰 도망쳤어. 그 무엇에도 맞서지 않고. 허둥지둥 도망쳐서 늪지에 숨어 버렸지. 우리는 남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



"그게 네 장로들이 했던 말인가? 거짓말이야."



체니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분노에서 공포로 변했다. 그는 몇천 킬로미터 밖을, 이십 년 전을 보고 있었다. "왜 도망쳤어? 왜 날 떠났어?"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목소리는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나한테 무슨 짓을 하게 시켰는데... 왜 도와주지 않았어? 알고 있었어? 날 기다리는 게 뭔지 알고 있었어? 그들은 내가 미워하게 만들었어. 미움으로 날 가득 채웠어." 그의 주먹이 떨렸지만, 비아의 머리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우린 충분히 알고 있었어." 아나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악이 이미 자카룸의 근간을 더럽혔었어. 우린 그걸 살릴 수 없었어. 우리만의 힘으로는. 그래서 그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선 거야."



"찾았어?" 여전히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희망찼다.



"아직." 아나진이 말했다.



"그럼 소용없는 짓이었네. 아무 소용없었어." 체니스는 잠시 훌쩍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아이가 사라지고 성기사가 돌아왔다. 그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무기를 내려놓아라, 성전사. 방패를 내려놓아라. 갑옷을 모두 벗어라. 그러지 않으면 이들을 죽이겠다." 비아의 목을 죈 팔에 힘이 들어갔다. 비아의 눈이 아나진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은 자신이 아닌, 릴사의 목숨을 조용히 간청하고 있었다.



라이터가 골목에서 기어나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안 돼." 그는 울부짖었다. "우리 가족은. 자비를. 제발. 자비를!"



"어서 해, 성전사!"



아나진의 눈에 제자가 통 가게 모퉁이에서 이쪽을 살짝 엿보는 게 보였다. 체니스 뒤였다. 제자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나진은 숨을 깊이 내쉬었다.  자신의 제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완전히 무장한 성기사가 인질들을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는. 체니스를 죽일 만큼 강한 공격은 그들 모두를 죽일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평화가 밀려들었다. 손에서 도리깨 손잡이가 빠져나갔다. 도리깨는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네가 알아 줬으면 좋겠어, 체니스." 그녀는 방패를 땅에 단단히 박았다. 방패는 땅에 꽂혀 똑바로 서 있었다. "네가 희망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 팔목 장갑이 모래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갑옷이 떨어졌다. 갑옷 아래 입은 단순한 천 웃옷은 아직도 피와 땀에 얼룩져 있었다. "난 내가 찾던 걸 찾지 못했어. 내 스승님도, 내 스승님의 스승님도 그랬지." 어깨 판갑이 떨어졌다. 다리 보호구가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후회하지 않아. 누군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거야. 우리의 신앙은 정화될 거야. 그리고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하던 간에..." 그녀는 발을 흔들어 장화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내 여정의 끝은 아직 오지 않았어. 나의 성전은 계속될 거야."



체니스의 얼굴에 아이의 희망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차가운 살의만이 남았다. 성기사는 오른팔을 뻗었다. 빛나는 망치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 눈을 뜨고 미소 지었다.



***



비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소리가 사라졌다. 그녀의 목을 죄고 있던 남자의 팔이 풀렸다.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마라." 성기사는 그녀의 귀에 대고 윽박질렀다. 비아는 끄덕였지만, 성기사는 이미 아나진에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나진의 몸에서 남은 것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아는 릴사를 끌어당기고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막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나한텐 네 여정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데." 성기사가 조롱했다. 그는 성전사의 갑옷을 걷어찼다. "네 탐색은 끝난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비아와 성기사는 함께 그 목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성전사의 제자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성기사는 포효하며 그녀에게 망치를 던졌다.

굉음과 분노가 천지를 뒤흔들고, 소녀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불길이 솟구쳐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성전사의 제자는, 흔적도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성전사의 제자가 번개와 함께 내리꽂혔다. 성기사는 자기에게 닥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안심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스쳤다.

그게 끝이었다.



제자는 스승의 곁에 무릎을 꿇고 뭔가 비아가 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모래 위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눈물이었다.

십대 소녀는 일어섰다. 아나진의 방패를 집어 들었다.



"비아?" 라이터가 쉰 소리로 물었다. "비아? 괜찮아?"



비아는 그에게 뛰어갔다. "괜찮아. 릴사도 무사해."



"아나진..."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나진은...?"



"여기 있어요." 제자가 말했다. 비아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라이터가 고개를 젖혔다. "아... 아나진? 너야?"



"네." 제자가 말했다. 그녀는 성전사의 마지막 갑옷 부위를 걸치고 눈먼 남자에게 다가갔다. 신중하게, 그녀는 한 손을 남자의 이마에 대고 아나진의 율법책을 펼쳤다. 부드럽게 다른 구절을 읊었다. 라이터는 계속 눈을 깜박였다. 머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눈은 이제 온통 흰색이 아니었다. 되돌아온 눈동자가 마구 움직였다. 제자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괜찮으세요?"



라이터는 비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잘... 온통 흐릿해."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라이터의 시선이 소녀를 향했다. "고마워, 아나진." 반신반의하는 투였다. 비아는 그가 볼 수 있는 게 그녀가 걸친 갑옷의 형태 정도일 거라는 걸 깨달았다. "너 뭔가 다르게 들려."



"그럴 것 같네요." 그녀는 말했다.



V



"맹세에 담긴 건 그런 것이란다." 아나진이 말했다. "탐색에 헌신하겠다는 맹세야. 신앙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맹세야. 심지어 구원하는 사람이 네가 되지 못하더라도."



라이터는 아픈 등허리를 구부려 귀를 바싹 대고 엿들었다. 도서관에서 들려오는 성전사의 말은 좀 작긴 했지만, 닫힌 문 너머로도 들을 만했다. 거의 이십 년 전 여관을 새로 지을 때, 그는 전보다 얇은 벽에 만족해야 했다. 비용을 대기 위해 땅을 반은 팔았다. 희생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여관은 예전의 영광을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이었다.



"저도 이해하는 것 같아요." 릴사가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어린아이였을 때 한 번 본 아나진을 다시 만났다는 데 한껏 들떠 있었다. 며칠 동안이나 릴사는 시시때때로 성전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희망이 아니에요. 목적이지요. 그래서 최초의 성전사의 이름을 물려받는 거예요. 선대들의 희생이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거죠."



"그런 이유도 있지." 아나진이 말했다.



라이터의 뱃속이 아파 왔다. 그는 관절이 삐걱거리는 걸 느끼며 조용히 계단에 앉았다. 자신이 엿듣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았다. 노쇠하여 이미 한참 전부터 마디가 튀어나온 두 손을 반사적으로 쥐었다 폈다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이마에서 땀이 났다.



"릴사, 정말 네 삶을 여기에 바치고 싶니? 내 스승님이 전에 말씀하셨지. 만약 이 삶을 택한다면, 그 삶을 받아들여도 되고 저주해도 된다고. 하지만 결코 후회해선 안 된다고. 우리는 오래 사는 일이 드물고, 운 좋게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세월도 고난으로 가득해."



"네." 릴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라이터는 신음이 나오는 걸 억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신과 함께 탐색에 나서고 싶어요..." 그녀는 멈칫했다. "어디부터 가죠?"



"솔직히 말하면, 최근 계획을 좀 바꿨단다." 아나진이 말했다. "신 트리스트럼에 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어. 악몽이 그 땅을 돌아다닌다더군. 거기 도착하는 성전사가 내가 처음은 아닐 듯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릴사는 흥분해서 손뼉을 쳤다. 도서관 문이 홱 열리자 라이터는 재빨리 일어나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가는 척했다. 그저 휴게실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공포가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머릿속에 수천 개의 말들이 돌아다녔다. 훈계, 경고, 거절, 일축의 말들이. 릴사가 마음을 바꾸게, 이성적으로 굴게 만들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그는 알고 있었다. 그중 어떤 말도 자신은 감히 입 밖에 낼 용기가 없음을.



"아버지," 릴사가 말했다. "중대한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런 것 같구나." 그는 말했다.

10개의 댓글

2014.10.01
성전사 스토리도 좋네
0
2014.10.01
오늘 디아3 세일해서 지름.
0
2014.10.01
크 스토리 좋아서 ㅊㅊ
0
2014.10.01
키야.. 성전사 조으당
0
2014.10.01
남자 성기삽니다
0
2014.10.02
와 이게 제일 재밌네 추천
0
2014.10.02
개쩐다 ㄷㄷ.....ㅅㅂ..지린당꼐
0
2014.10.02
성전사 스토리 좋구요
0
2014.10.04
바람앞에 쭉정이같구나
0
2014.10.04
바람앞에 쭉정이같구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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