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콩데이. 난 여러분의 프렌들리 네이버후드 정신과 의사.


오늘도 잡소리를 늘어놓기 위해 찾아왔다.


오늘은 공상과 망상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


지금까지 중에서는 제일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일단 공상과 망상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야겠지?


공상은 영어로 fantasy 라고 흔히 번역하곤 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판타지라고 하면 어감이 약간 달라진다는 점이야.


일반인들이 '판타지'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건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엘프, 오크, 마법과 검술이 존재하는 소설, 영화 등의 세계관일거야.


그 외에도 초능력물, 이능력물, 공상과학물 등등도 폭넓게 포함시킬 수 있겟지.


정신과에서 판타지라고 할 때에는 보통 '한 개인의 소망, 욕구, 번뇌 등이 뒤섞여있는 상상' 을 이야기하곤 해.


그래서 옛날엔 이걸 fantasy랑 구분하기 위해 phantasy 라고 기재하자는 학자들도 있었지. 요즘은 그다지 구분하지 않는 편이야.


사실 공상이 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거야. 멍 때리면서 머리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다들 해봤을거 아냐.


'내가 로또가 당첨됐다면...' '내가 명문대를 나왔더라면'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면' 등등등



공상의 역할은 보통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상상속에서 이루어줌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 또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거야.


현실에서 로또가 될 가능성이 없거나 매우 낮으니까 상상속에서 해보는거지. 막 돈으로 샤워도 해보고 요플레 뚜껑을 안 핥고 버리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공상은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제공해.


이러한 기능은 특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상상속으로 할 떄 극대화되지.



아주 흔한 공상 중 살해공상이 있어. 누군가 미워 죽겠는 놈이 있어서 상상속에서 죽이는 그런 상상.


학교에서 날 괴롭힌 일진일수도 있고, 매일 나한테만 지랄하는 상사라던지, 주말 밤마다 디스코를 추는지 너무 시끄러운 위층 거주민들 등...


아무리 미워도 현실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죽이는 상상을 하는거야.


그런데 그 상상을 하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아주 약간은 좋아져.



또 흔한 공상이 연애공상 또는 성행위에 대한 공상이지.


사람은 모두 평등한건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 주변 사람들 사이에 '급'을 나누는 것도 사실이야.


나랑 수입도 비슷하고 학력도 비슷하고 외모도 보통인 옆집 영희랑 사귀는 건 비교적 현실적이지만 쯔위랑 사귀는게 현실적이진 않잖아?


분명 평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왠지 모르게 그 생각을 하지. 아, 저 사람이랑은 내가 동급이 아니구나 라고.


그런데 그런 생각은 반대로 약간의 우울감을 불러일으켜. 상대방이 대단한 사람인만큼 내가 볼품없어지니까.


그런데 상상속에선 뭐든지 가능하지? 비단 쯔위만이 아니라 누구와도 연애를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것도 할 수 있어.


현실의 나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충분히 만족감을 주는 행위야 이런 공상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공상 중 부모살해의 공상이 있어.


아무리 훌륭한 부모 아래서 자랐다 한들 아이가 부모에 대한 공격성을 내재하는건 아주 지극히 정상이야.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기 나름이고 부모는 그걸 혼내고 막는게 정당한 역할이거든.


아이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콘센트에 손가락을 넣고 물건을 던지며 똥을 먹는 아이를 방치하는게 옳지는 않을거 아냐.


아무리 올바른 혼냄이라도 그 당시의 감정은 앙금으로 남기 마련이야. 그런데 부모 역시 초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에 따라 올바르지 않은 혼냄,


감정적이고 일률적이지 않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혼냄을 할 수도 있어. 이런 경우 앙금은 훨씬 더 쌓이겠지.


어쨌든 이러한 공격성은 평생 조금씩 쌓이기 때문에 이걸 풀어야 하는데 '부모님에게 대든다' 라는 행위는 보통 나쁜 일로 인식이 되지.


그래서 이걸 상상으로나마 하는 경우가 많아. 그 중 특히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나오는 공상이 부모님의 사망에 대한 거야.


강도는 다양해. 부모가 사고로 죽는다던지, 갑자기 없어진다던지, 내가 직접 죽인다던지.


이정도로 강력한 '금단'의 공상은 보통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공상을 한 주체가 혼란스러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못된 인간이라니.... 라고 하면서 말야.


그러나 사실은 그걸 생각으로 끝냈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는것만으로 지극히 건강한 정상적인 정신활동이란거지.


그러니 이런 생각을 한다고 너무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어.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또 재미있는 공상의 형태 중 구세주 공상, 영어로는 savior fantasy 라는게 있어.


내가 누군가를 구해주는 내용의 공상인데, 이것도 다양하지.


우리반 왕따를 내가 책임지고 구해주는 역할이 된다던지


정말 가난한 친구에게 내가 돈을 줘서 그 친구가 재기하는 계기가 되는 상상이라던지


늘 우울해하고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고, 부모나 옛 애인에게 폭행을 당했던 '그 아이'에게 내가 다가가서 진짜 따뜻한 인간관계를 가르쳐준다던지


이런 구세주 공상의 주요 골자는 그런데 결국 상대를 도와주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도울 만큼 큰 힘이 있는 대단한 나 자신' 이야.


현실에선 그럴 여유가 없지만 공상속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는거지.


웃기는건 공상속에서의 일을 내가 현실에서 못했다고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는거야.


'그 떄 내가 나섰다면 그 아이는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내가 적금을 깼다면 그 친구는 훨씬 잘 살텐데'


'나라면 그 아이를 바꿀 수 있어. 나와는 행복할 수 있을거야'


만화책이나 소설이라면 훌륭한 얘기겟지만 현실에선 전부 근거와 확신은 없지.


물론 저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건 아니야. 다 훌륭한 이타적인 행위들이야. 행할 경우 반드시 칭찬받을 일이지.


그런데 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일들이기도 해. 그렇기에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비난할 이유도 없어.





공상에 대해선 여기까지로 하자. 그럼 망상으로 넘어가볼까.


망상은 영어로 delusion 이라고 하지. 망상과 공상의 차이는 그러면 뭘까?


바로 현실검증력이 살아있냐 없냐야.


이 '현실검증력' 이란게 참 미묘하고도 중요한 것이... 공상 또는 망상의 컨텐츠랑은 큰 상관이 없어.


흔히들 중2병이라 하는 '난 사실 좀 특별한 사람이다' 라는 내용도 믿음의 강도에 따라 공상이 될수도 망상이 될수도 있지.


'난 사실 진짜 강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른사람이랑 싸우지 않는다. 내가 싸우면 상대가 죽으니까' 라는 상상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쳐.


그 아이가 깡패 집단이랑 마주쳤을 때 객기 안 부리고 조용히 돈을 주면 위의 내용은 공상에 불과하겠지.


그런데 '썩 꺼져라 우민들아' 등을 외치면서 덤비면 망상에 가까울수도 있어.


설명하는게 약간 힘들긴 한데 결국 공상과 망상을 가르는건 '이게 진짜 현실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냐 없냐라고 보면 돼.




망상의 종류 역시 너무나도 많지. 절대로 전부 나열할 수는 없고.


대중적인 것중 하나는 피해망상, 편집망상이지.


피해망상은 말 그대로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내용의 망상이야.


강도에 따라 재미있는 내용이 진짜 많아.


- 윗집에서 층간소음을 내는데 꼭 내가 일을 할 때만 맞춰서 내드라. 이건 반드시 일부러다 - 같이 그럴듯한 내용도 있고

- 길 건너편 같은 자리에 늘 같은 차가 주차하는걸로 봐서 일부러 내게 불쾌감을 주려고 그러는거다 - 처럼 이상한 내용도 있고

- TV에서 욕이 나오는게 다 나 들으라고 하는거다 - 등 아얘 현실성이 훅 떨어지는 내용도 있어. 그런데 이건 관계망상에 좀더 가깝긴 하네.



편집망상은 피해망상이랑 비슷한데 주로 주제가 감시에 대해서야.


국가가 날 감시하고 있다, CCTV들이 다 나를 찍고 있다 라던지.




색정망상이라고 이성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내용의 망상도 있어.


과대망상은 내가 현실의 나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의 망상이지.


이 둘의 경우 역할이 공상이랑 어느 정도는 비슷해.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정신활동이지. 그러나 공상과 다른 점은 나 스스로 현실과 망상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고.




망상 중 특별히 카테고리를 나누기 힘든 것들도 있고, 일상생활에 그다지 큰 장애를 안 주는 것들도 있어.


예를 들어 내가 지구가 네모 모양이라고 믿는다 쳐.


이걸 주변에다 막 주장하고 다니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날 이상하게 안 볼거 아냐.


그럼 이게 망상이 맞는걸까? 그저 내가 제대로된 교육을 못 받은거일수도 있잖아?


내게 둥근 지구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여줘도 내가 그걸 가짜라고 의심하면 그게 망상일까?


내가 그냥 의심이 많은 성격은 아닐까?


어렵지? 사실 이런 경우는 우리도 어려워.


그렇기에 모든 정신과 질환이 그렇듯이 해당 망상이 일상생활에 장애를 주지 않을 경우 우린 그걸 정신병으로 분류하진 않아.


다음에 정신병 그 자체에 대해서도 한번 다뤄야겠네. 왠지 이 말도 저번에 한것 같군.




오늘 그러면 굳이 재미없는 공상과 망상에 대해 왜 이렇게 알기 어렵게 써놨을까.


결론은 딱 하나야


공상은 OK! 망상은 위험!


공상의 수준에서는 그 어떤 생각을 해도 문제가 없어. 부모를 죽이는 내용도 어느정도 정상인데 뭔들 하면 안되겠어.


그런데 그걸 현실과 구분 못하는 시점에선 위험해. 그건 자아경계가 깨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어. 병원을 가야해.


안타깝게도 망상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이게 망상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는건 쉽지 않아.


게다가 망상의 종류에 따라 이걸 일반인이 망상이냐 아니냐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세 줄요약 갈게.


1. 너 스스로 상상하는건 어떤 내용이라도 괜찮아. 자책하지 말고 마음껏 상상해. 단, 상상 속에서만 그쳐.


2. 남의 상상에 대해 들을 경우 그 사람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것만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해. 그들도 상상할 자유가 있어.


3. 만약 주변사람이 상상과 현실을 분간 못하면 병원에 데리고 오는걸 심각하게 고려해봐





P.S.


다음엔 뭐에 대해 써볼까. 소재는 끝도 없겠지만 뭐 정신과 질환 하나 하나를 다 설명한다던지 이런건 재미없잖아.


흥미있는 소재가 있다면 얘기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