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POP /ˈsɪtipɒp/

시티 팝.


베이퍼웨이브가 뜨면서부터 인디씬, 메이저 할 것 없이 음악계에는 한 차례 복고 열풍이 불어닥쳤더랬지. 보통 90년대 음악에서 많이 샘플링을 하는데, 간혹 좀 더 간 애들은 아예 80년대 음악에서 따오기도 하고, 개중에는 Night Tempo같이 일본 시티 팝을 주로 샘플링하는 아티스트도 있어.



Night Tempo의 "Plastic Love", 원곡은 타케우치 마리야가 쓴 동명의 곡이야.



맨 처음 내가 시티 팝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 것도 Night Tempo가 손 본 타케우치 마리야의 노래를 들으면서부터였어.


"어, 이 세련된 분위기는 뭐지?" 지금까지 일본 노래라고 하면 나는 러*라이브 같은 그들의 세계 같은 것만 떠올렸거든. 근데 이 노래는 뭔가 다른 것 같더라구. 비록 썸네일은 덕후삘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노래는 내가 알던 일본 노래와는 되게 색다른 것 같았고, 그 느낌에 꽂혀서 찾아보기 시작하니까 생각보다 되게 좋은 노래들이 많더라구! 그렇게 해서 LP앨범도 사 모으고 지금같이 이렇게 글을 쓰기에 이른거지.


자,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시티 팝City Pop이란 뭘까?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70년대에서 80년대의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기조야. 이름에 걸맞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특징이고. 장르의 특성상 디스코나 다른 음악같이 장르 전반을 뚜렷히 꿰뚫는 음악적 특징은 별로 없어. 쉽게 말해서 듣기에 시티 팝 같으면 시티 팝이야. 되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지?




마미야 타카코의 "哀しみは夜の向こう". 팬 M/V는 한국 영화에서 따온 것 같아.


과연 어떤 요소가 이런 음악들을 시티 팝이라고 분류하게 될까?


일단, 음악적으로는 구미권의 펑크, 디스코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어. 특유의 복잡한 베이스 기타 주법이나 적극적인 전기악기의 사용, 그리고 그로 인해 연출되는 특유의 그루브에서 흑인 음악 특유의 요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 하지만 앞에 말한 장르들 전반에 흐르는 "흑인음악적인" 끈적한 감성이 아이돌 문화로 대표되는 일본적인 감성으로 대체되었고, 주로 여성 보컬로 청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현지화라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변화가 시티 팝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큰 특징이 돼.


흔히 시티 팝이라고 하는 음악들은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짙어. "도시의 밤", "세련되고 발전한 삶" 등 도시적이라고 여겨질만한 주제를 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적지 않은 아티스트들은 괌, 사이판 같은 열대 해변의 분위기 또한 주요한 주제로 삼았어. 이러한 곡들의 경우에는 다른 곡들처럼 마냥 세련된 분위기보다는 좀 더 나른하고 휴양지적인 소리를 지향했어. 시 펑크와 베이퍼 웨이브, 트로피컬 하우스 하면 생각나는 새하얀 모래사장에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야자수 같은 이미지가 바로 이 시티 팝이라고 할 수 있지. 어째서 이런 분위기 일색일까? 그건 바로 시티 팝이 등장한 시기와 깊은 연관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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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 재킷. 개인적으로 시티 팝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인 재킷이라고 생각해.



시티 팝이 등장할 시기인 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일본 사회는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갖게 됐어. 주머니에 돈이 쏟아져 들어오자 일본 소비자들은 비교적 '비싼' 문화인 서구권의 매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히 일본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문화수준은 나날이 높아져갔어.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일본 음반사들은 해외의 프로듀서와 최고급 설비를 도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지. 차고 넘치는 자본력과 그를 바탕으로 구축한 최고급 음악적 인프라는 자연히 가요계 전체의 질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 가요계의 프로듀싱 능력도 진일보하게 돼. 



시티팝을 키운 데엔 일본 버블경제도 한몫했다. 당시 일본 음반사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최고의 연주자, 프로듀서, 음향설비를 녹음실로 불러들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는 “고히루이마키 가호루라는 가수는 당시 미국 팝스타 프린스에 작곡을 의뢰할 정도였다. 상상을 초월한 프로덕션이 이루어지던 시기”라고 했다. 

(후략, 출처: http://news.donga.com/Culture/more29/3/all/20170810/85761301/1)



이러한 기조가 절정에 달할 시기, 일본 가요계에는 "AOR"로 대표되는 최신 유행 장르들, 곧 프로그레시브 록, 디스코, 스무스 재즈 등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신시사이저와 전기악기를 기반으로 짜여진 그루브한 진행은 엔카와 포크가 지배하던 일본 가요계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어. 특히 가장 큰 호응을 보인 곳은 그 최신식 세련됨에 흠뻑 빠진 도쿄 일대였지. 이 새로운 장르를 리스너들은 "도시에서 흥하는 음악"이라 하여 CITY 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시티 팝은 소비자들의 한껏 높아진 구매력을 타고 일본 전역에 걸쳐 크게 유행하게 돼.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J-POP 음악사에 길이 남을 아티스트들이 대거 등장해. 프로듀싱의 대부 이노우에 아키라, 싱어 송라이터의 효시격인 타케우치 마리야와 야마시타 타츠로 페어는 물론이고, 수 많은 아이돌들과 역작 "Love Trip"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여가수 마미야 타카코까지. 80년대는 여러모로 J-POP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시티 팝의 유행은 80년대가 저물어가며 서서히 지기 시작해. 대신 하우스를 위시한 일렉트로니카가 음악계에 등장하자 으레 그렇듯이 그 흐름에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음악들이 점차 음반 시장을 장악해나가며 시티 팝의 자리를 대신 채워나갔어. 


이 음악들은 최신 외국 장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시티 팝의 등장과 상당히 흡사하고,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전반적으로 특유의 도시적인 감성 또한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 즈음의 일본의 아티스트들은 기존 장르의 요소를 단순히 짜집기 해넣기보다는 자체적인 테이스트를 선호했어. 결과적으로 일본 음악계에는 시티 팝 시절의 방법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사운드들이 등장했고, 본격적인 일본적인 일렉트로니카를 정립하기에 이르러. 이 '신 장르'는 시티 팝이 그랬듯이 도쿄에서 굉장히 흥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시부야의 타워 레코드가 이 유행의 보급소 역할을 했어. 이것이 그 유명한 시부야계의 등장이야.


비록 시작은 당시 유행을 고대로 따온 음악이지만, 점차로 발전해 자체적인 사운드를 이끌어내고, 넘어서 일본 음악계 전체의 진보를 상징하게 된 장르는 그렇게 새로운 조류에 뒤를 맡기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17년도 월간 윤종신 시리즈 7월호, "Welcome Summer".


엉뚱하게도 미국 힙스터들에 의해 시티 팝은 다시금 발굴되기 시작해. 당시에는 세련되게만 보였던 요소들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촌스러운 것이 되어갔고, 다시 한 차례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의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없었던 세대가 등장하자, 시티 팝은 낮선 과거의 개성적인 파편이 되었어. 시티 팝이 품고 있던 당시의 '최신' 풍경들은 지금에 이르러서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키치적인 것이 되었고, 그 분위기에 주목한 인디 아티스트들에 의해 다시금 음악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되지. 이를 다루는 시티 팝 리바이벌에 대한 글은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조사해서 다시 한 번 글을 써보려고 해. :)


매일매일 들려오는 EDM에 지쳤다면, 한 번쯤은 시티 팝과 함께 한 번도 본 적 없는 과거의 여름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17' DEC 04, Tropique의 사설.






덧,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의 노래. 

곡 전체에 흐르는 AOR튠 분위기 속에서 시티 팝의 향기를 찾아볼 수 있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에서도 비슷한 곡들을 찾아볼 수 있어.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민주화를 전후하여 급격한 성장세를 맞이하게 되고, 곧 이와 비슷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한국의 문화에도 흐르게 되었거든. 물론 주류는 앞서 말한 포크 락이었지만, 그 한켠에서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와 같이 시티 팝을 연상케 하는 곡이 등장하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