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나의 폐급 이야기 -3-

1편 링크 https://www.dogdrip.net/232573672

2편 링크 https://www.dogdrip.net/232959634

 

1, 2편 요약

 

1. 입대 1년 전 집 망함, 아버지 의처증으로 어머니 살인 위협

2. 그렇게 정신이 박살난 상태에서 보충대 입소

3. 보충대에서 물건 보내는 것도 아버지가 흥신소 써서 추적할까봐 고민, 결국 친구집으로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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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충대에서 훈련소까지.

 

보충대에서의 첫 날 밤, 생활관 사람들 일부는 조금씩 말을 텄다. 불안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아예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일부러 더 말을 하려는 듯 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고 앞으로 같은 부대를 간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서로 말을 텄다. 나는 간단한 통성명 정도만 했다. 굳이 말을 많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생활관의 다른 친구들은 앞으로 남은 날짜를 계산하며 절망에 빠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보충대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때 되면 밥먹고, 가져가라는 물건을 받으면 일과가 끝났던 것 같다. 조교들은 그다지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매번 아버지와의 싸움에서 해방되어 처음으로 느끼는 평화였다. 하지만 시설이 너무 낡아 오래 있을 곳은 못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평온했다. 군대에서 평온했다는 건 기억할 일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기억나는 건 잠자기 전 불안한 잡담들뿐이다.

 

이틀만 자고 집에 다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인데못 가겠죠?”

씨발, 벌써 집에 가고 싶다. 아니 진짜 내일 버스타고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제 하루 갔네요. 하아.”

 

대부분 군대에 왔다는 사실을 아직 체감하지 못한 듯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 한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검진을 받고 집에 가버린 녀석도 둘 있었기에 더욱 그런 듯싶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둘은 실실 웃으면서 짐을 싸고 빠르게 생활관을 빠져나갔다. 보충대 첫 날에는 그들을 이야기하며 부러워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 나는 아직 군대의 쓴맛을 못 봤기에 부러움 이외의 감정은 없었을 것이다. 불안한 담소는 길게 가지 않았다. 곧 조교가 나타나 조용히 하라며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환경에서 불안에 빠져있던 우리는 지은 죄가 없는데도 그 말대로 했다.

 

보충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 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갈 부대가 최전방 부대라는 사실이었다. 행선지를 알게 되고 훈련소로 떠나는 날, 별다른 추억을 나누지 않았지만 각기 다른 부대를 향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곧 더플백에 물건을 대충 쑤셔 넣고 내 몸도 함께 중형버스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 내 군생활 첫 고난이 시작되는 훈련소를 향했다.

 

훈련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30여분 쯤 갔을까, 학교처럼 생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넓은 운동장과 함께 교회, 성당처럼 생긴 건물이 띄엄띄엄 있었다. 불과 며칠만에 또 변한 환경에 멀뚱멀뚱 눈알을 굴리고 있던 그 때, 멧돼지같은 체격의 부사관이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아, 빨리 빨리 안 움직여!?”

 

역시 지은 죄는 없었지만, 우리는 그 말대로 했다.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훈련소의 첫 모습은 내게 또 다른 불안을 가져다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훈련소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할 뿐,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내겐 그런 것을 다 따져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끝없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나마도 성공하지 못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훈련소는 물론 군생활 전체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 당시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아쉬운 기억이 많다. 그렇게 쫓기듯 하지 않아도 버틸만한 곳이었는데.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순 없지만, 결론은 똑같다. 나는 이때부터 폐급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고 있었다. 훈련소는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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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훈련소를 왔네요.

8개의 댓글

2019.11.11

필력이 좋구만 술술 읽히네

1
2019.11.11
@도희

댓글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

1
2019.11.12
@아미라이프

수필임?

0
2019.11.12
@헬NOGADA

소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실화에 기반한..

훈련소부터는 실존인물이 나와서 적당히 바꾸고 있어요

0
2019.11.11

이런 썰류 반응 좋아도 승희가 쳐내던데 어떻게 따로 분류 탭을 만들어 두던가하지

창판은 접근성이 영 좋은 편이 아니던데

0
2019.11.11

오늘은 넘짧다

0
2019.11.12

빨리 다음편 주세요

0
2019.11.12

표현력이 너무좋으시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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