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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문간드
무한한 수명의 와우배거
내가빅뱅이론을만났을때
손짝짝발짝짝엉덩이짝짝
불타오르네
사회주의에서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곧 (제국주의로부터의 피지배)민족해방, (부르주아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계급해방이거든
산E
너희들 오고나서 막장 고속도로로 200km/h 폭주한거지
보라뚱이
유해동물퇴치빌런
선조 버리고간거 알고 백성들 야마돌아서 궁에 불지르고 약탈함 그뒤에 왜군들 환대하면서 같이 술판벌였다
약탈은 어매뒤진 명나라새끼들이 더많이함
년째 긴하품
데자이언츠
중갑옷빌런
지만 승만런 해버려서 하하책
정상범위에서벗어났습니다
비꼬는거 아냐 진짜 알건 알아야지
hijklnopqrst
저때 궁을 불태울거면 인조가 강화도로 튀었을 때는 왜 불은 안질렀겠음?
백성은 왕이 뭘 하면 니미 시펄 하는 존재였지 난이 쉽게 나는게 아님
만약 인조가 치세에 쓰레기였다면 임란이후로 민란이 존나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애당초 인구가 반토막 났는데 그 나라를 이끈 것만 봐도
평화시기에 선조는 그렇게 쓰레긴 아님
정상범위에서벗어났습니다
hijklnopqrst
선조 아니었으면 임진왜란 2차 침공.. 정유재란이던가
하여간 그때 조선 멸망이었을 가능성도 높음
정상범위에서벗어났습니다
돔페리뇽
불타오르네
돔페리뇽
엥거기완전
오히려 백성들이 불질렀다는 기록은
조선측 기록임
hijklnopqrst
경복궁 방화범을 백성으로 보는 견해는 《선조수정실록》을 근거로 한다.
“거가車駕가 떠나려 하자 도성의 간민姦民이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훔쳤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亂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공사 노비 문적이 있는 장예원과 형조를 불태우고 궁성의 창고를 약탈하고 방화하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일시에 모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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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은 자신이 겪은 임진왜란을 《징비록》이란 한 권의 책에 담았는데, 문제의 4월 30일자 기록은 이러하다.
“돈의문을 나와서 사현沙峴(지금의 서대문구 현저동)에 이르니 동쪽 하늘이 차츰 밝아왔다. 고개를 돌려 도성 안을 바라보니 남대문 안 큰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 연기가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
남대문 안 창고에서 불길이 일었다고 했으나, 백성들이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얘기는 없다.
//
《선조실록》은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 8년(1616)에 편찬되었다. 그런데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자마자 《실록》을 고쳐야 한다는 의논이 고개를 들었다. “적괴賊魁에 의해 편찬되어 부끄럽고 욕됨이 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적괴란 광해군 때의 집권 세력이었던 북인을 말한다. 북인과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들로서는 북인 정권기에 쓰인 《선조실록》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경복궁은 과연 누구 손에 불탔을까? 《선조수정실록》과 《선조실록》의 기록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다. 그럼, 당시 텅 빈 한양에 입성했던 왜군 장수들이 남긴 기록을 보자. 다음은 왜군의 선봉대로 가장 먼저 한양에 입성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大關의 전기 《조선정벌기》의 한 대목이다. 5월 3일에 입성한 그는 경복궁을 처음 본 소감을 적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적어도 5월 3일까지 경복궁은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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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jklnopqrst
엥거기완전
딱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고 한 백만년전부터 나왔던 주장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민족주의 사관이 정립된 이후부터 나온 주장인데
경복궁이 불타지 않고 건재했다는 주장이 실린 책은 너가말한 조선정벌기
딱 한권뿐임
나머지 기록들은 모두 일관되게 조선백성들이 경복궁을 불태웠다고 주장하고있음
만약 백성들이 불태웠다는게 거짓주장이면 조선 내부에서부터 바로 잡았을텐데
그러기는 커녕 조선 망할때까지 유학자들이 심심할때 마다
'임금이 백성들을 잘 돌봐야 하는 이유'의 예시로 든게 저 경복궁이였고
흥선대원군까지 경복궁이 재건이 안된것도 그 논리의 영향을 받음
선조수정실록부터 송와잡설까지 거의 대다수의 사료들이 일관적으로
경복궁방화의 주범은 백성들이였다고 기술하고 있음
딱히 일본이 바꾼 것도 아니고 조선측의 일관된 기술이였기 때문에
현재 사학자들이 경복궁 방화 왜군설을 부인하는 까닭이란다
엥거기완전
조선정벌기는 일기나 사관의 기록이 아니라
왜란 한참후에 나온 '군담소설'임
사료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고 판단함
비유하자면 삼국지 만화책 읽고 중국 역사 정확히 알아냈다고 설치는 격....
쉬이익쉬익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알찐한테 맞아도 그때 자신을 못지켜준 친구나 부모탓 이런느낌이냐
명나라도 병신짓 ( 민간인 학살 , 부녀자겁탈) 많이했지만 일본보다 더했다는거 ㄹㅇ이냐
당시 왜놈들이 코 귀 짜르고 애들죽이고 부산털자마자 동래부사 첩들 겁탈하고 죽이고
올라가면서 개쓰레기짓했다던데 그게 명나라보다 빈도가적을랑가
아프니까노인이다
렙뚝배기
0o0o000
엥거기완전
일본측 기록이라면 어느정도 거르고 들어야겠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엄연히 나와있는 사실임
어딜 가나 점령군은 피점령지 주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노력함.
625때 북한도 그랬고 남한도 그랬음
이럴때 살기 힘든 민초들은 자신한테 잘해주는 쪽에
기계적으로 충성을 바침
왜군도 처음 상륙때는 민심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음
조선왕조실록에 선조가 '백성들의 너나할거 없이
머리를 깎고 왜인이 되길 자진했으니 통탄할바이다'
라고 말한 기록이 있을정도
물론 왜군이 퇴각하면서 주민들 약탈하고 학살하는 바람에
여론이 완전히 뒤집혀졌지만
바보멍청이
http://www.gn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280
초반에 그랬다니?
초반부터 성안에 있던 양민들 성별 나이 불문하고 모조리 때리고 베어서 죽였는데?
625때 북한이 민심 얻으려고 서울대병원에서 학살하고 인민재판으로 죄없는 양민들 죽창으로 죽였음?
엥거기완전
625때 북한도 남한을 점령하고 친일파와 지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나눠주는 민심달래기 정책도 한 측면도 있는 반면
인민재판을 열어 죄없는 양민들 죽창으로 찔러 죽인 면도 있으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거는 전반적인 민심의 흐름을 말한거임.
왜군이 결론적으로 어떻게 행동했던
초반의 민심흐름이 좋았던건 사실임
이건 일본측 기록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 엄연히 있는 기록임
'사실'과 '당위'는 구분하도록 하자
여혐은진리야후
초기 부산 함락 당시엔 링크의 내용이 맞습니다. 다만 일본은 보급등의 문제로 전쟁을 장기화 하기보다는 속전속결을 원했기 때문에 육로이동중 일반 백성과의 충돌을 최대한 피했습니다
만약 일일이 다 털어먹고 백성들과 충돌했다면 20일만에 한양까지 갈수도 없었을 겁니다. 너무 빠른 속도 때문에 명나라는 조선과 일본이 자신들을 속이고 처들어온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일본이 본격적으로 약탈모드로 돌아선건 이순신 장군님께서 해상길을 막아버려 보급이 안되고, 선조가 도망가고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강화회담이 결렬되고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아는 바처럼 히데요시는 보복으로 우리 백성들의 코, 귀를 잘라갔습니다.
또한 지배층중엔 진급을 위해 일반백성의 시체를 왜군처럼 꾸미거나, 또는 멀쩡한 백성을 죽여 왜군처럼 꾸며 공적을 허위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순왜, 부왜라고 해서 양반등 지배층에 수탈당했던 사람들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조실록(선조25년 5월 4일)에도 선조가 왜군의 절반은 조선인이라고 하던데 사실이냐 라고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소문이 과장되어 선조 귀에 그렇게 들어 갈 수 있으나 그만큼 당시 지배층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에 붙은 백성들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 초기는 아니지만 전쟁 중반중에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이 워낙 개판처서 조선백성이 스스로 두 왕자를 일본군에 넘겨준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방행정관도 아니고 왕자마저 넘겨줄 정도였다면 얼마나 민심이 왕가에게서 떠났는지 알수 있을 것입니다.
새우잡이배
임진왜란 이전 일본은 전국시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치하기 직전 수많은 가문들이 성과 영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영지내의 백성들은 사유재산이라는 성격이 강했기때문에 영지탈환시 해당 지역의 백성들은 절대 죽이지 않았음, 왜냐하면 나중에 자기가 점령하면 잘만 써먹을 일꾼들이니깐. 이런 상황을 잘 알기때문에 민초들 또한 절대 반항하지 않고 그저 위의 명령체계가 바뀔뿐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주인이 누가 되든간에 저항이건 뭐건 아무런 생각이 없었음
근데 왜 조선에서는 이유불문하고 학살을 자행했는가?
이때 상륙 초반기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들의 경우 부산진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부산쪽 군세를 전멸시키고 입성하였을때, 부산의 민초들 3천명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기록이 있음. 이 경우 왜군들은 국가간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을 전투병력으로 생각하고 전투(라고 읽고 학살)을 벌인것으로 보임. 왜군 장수 딴에는 부산진 군민들이 부산진사 정발을 자신들 목숨을 바칠만큼 존경하기에 죽음으로서 결사항전하려는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봤을수도 있음. 그때는 아직 일본쪽 관리들이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지역별 영주로서의 개념이 강했기에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걸로 생각이 듬
아니면 영토 안에 타국의 군대가 침략전쟁을 벌일시에 보일 반응을 생각하지도 않고 들어갔다가 그런 경우를 맞닥뜨렸을수도 있고.
하여간 말이 안되지만 그때 일본 문화가 그런 식이었다고 하더라. 글고 임진왜란과 6.25는 일단 시대부터가 다른 전쟁이고, 국가간 전쟁이 아닌 민족간 내전이라는 차이도 있고, 단순한 침략전쟁이 아닌 사상과 이념의 충돌이란 차이도 있고, 문화의 차이도 있으니 무조건 동일시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음.
시작하는사람
잉그거잉여
세금때문에 애죽이는게 문화로 정착한 새끼들임
엥거기완전
여기서 누가 왜군을 옹호했습니까.....
혹시나 몰라서
천황개새끼 씹새끼
잉그거잉여
비수
불알에바늘을콕콕
2D세상
노농
일본의 전쟁 방식은 냅다 성으로 달려가서 성주 목 따거나 성주 잡하다가 할복시키면 전쟁이 끝나는거였음.
성주들은 빤스런하지 않고 성을 끝까지 지키고.
그래서 요시땅 하지마자 한양먹고 선조 잡아다가 조선을 정복할 생각으로 초반에는 민심을 챙겼을 수 있음.
근데 한양성을 지켜야 하는 성주(선조)가 냅다 빤스런 해버리네?
어? 열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