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억에 관한 좋은글-4(기억의 단계)

기억의 단계

기억은 어떻게 저장될까? 어떻게 정보를 신경망에 기록할까? 여러 가지 가설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달팽이가 연합을 학습할 수 있고 이는 사람에서의 연합기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나 토끼의 뇌가 학습하는 기전이 달팽이와 같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동물들이 연합이라는 공통의 기전으로 학습한다고 할 때 포유류의 뇌 안에 있는 수천만 개의 뉴런 중에서 특정한 기억세포를 찾을 수 있을까? 수천 개의 뉴런이 동일한 연합을 저장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그러나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기억의 생물학이라 하면 대단히 광범한 내용이 포함되겠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① 기억에는 단계가 있고 계속해서 변한다. ② 장기기억은 뇌의 물리적 또는 가소성 변화에 의한다. ③ 기억을 기록하는 물리적 변화는 신경계 전체에 걸쳐 여러 부위에 소재한다. ④ 반사기억과 서술기억은 별개의 신경회로를 가질 것이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을 때 머리에 충격이 있기 이전의 기억이 선택적으로 소실되는 역행성 건망증이나 의식을 되찾은 이후에 일어난 사건의 기억이 선택적으로 소실되는 선행성 건망증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이 현상은 동물실험으로도 철저하게 연구되어 왔다. 뇌에 전기충격을 가한다거나 물리적 상해를 입히는 방법 또는 뇌의 신경활성을 억제하는 약물 또는 단백질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사용한 방법들이 이용되었다. 임상적으로도 뇌손상이 건망증을 일으키고 특히 손상 전 수 일 이내의 사건들에 관한 기억상실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최근에 습득한 기억은 쉽게 소실될 수 있으나 오래된 기억은 쉽게 소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학습이 된 후 잠재적 역행성 건망증의 정도 다시 말해 기억이 불안정상태인 기간은 학습의 강도나 성질, 기억을 방해하는 사건의 성질이나 강도 및 동물에 따라 수 초에서 수 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억의 유지와 붕괴에 관한 연구에는 흔히 기억저장계통 모델이 이용된다(그림 5). 뇌로 들어오는 입력은 단기기억저장으로 처리된다. 이 저장용량은 한정된 것이어서 십여 가지 항목밖에 지속될 수 없다. 정보는 이어서 일련의 처리과정에 의해 보다 영구적인 장기기억 저장으로 전환된다. 장기기억은 다시 중간형으로 나누는데 이 중간형은 비교적 붕괴되기 쉬우나 장기기억은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 이 모델이 완성되려면 기억저장을 탐색하여 주어진 과업에서 요구되는 정보를 인출하는 기능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기억저장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파괴되거나 정보탐색 및 인출기전이 붕괴되면 경험의 유지가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손상성 건망증은 부분적으로 정보탐색 및 인출기전의 붕괴에 의하는 것이다. 손상 후 잊어 버렸던 기억이 점차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장된 기억이 완전하게 파괴되었다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림 5  기억저장계통의 모델

우울증 치료를 위한 전기경련요법을 받은 환자에서도 동물실험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래리 스퀴어는 기억 정도를 정량화하는 믿을 만한 기억검사법을 소개하였다. 비교적 최근 (1~2년) 의 사건, 오래된 (3~9년) 사건 그리고 아주 오래된 (9~16년) 사건으로 나누고 1957년에서 1972년 사이의 어느 한 해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이름을 대게하였다. 1차로 검사하고 나서 2차 검사는 전기경련요법 후에 시행하였다. 전기경련요법 전후에 다같이 기간이 오래된 것일수록 적중률은 점차 감소하였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 1~2년 사이에 방영되었던 것의 적중률은 전기경련요법 전후에 있어 크게 차이가 있었다. 이 결과는 최근 기억의 인출은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쉽게 붕괴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단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면 비교적 안정하나 손상이 가해지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장된 정보가 점차로 소실되고 인출능력이 감소한다는 것을 말한다.

학습에 미치는 약물의 효과로 기억의 시간의존성과 기억형성의 변화요인을 알아볼 수 있다. 스트리키닌이라는 경련유발약물을 경련용량이하를 투여하면 학습효과가 개선된다. 학습훈련 후에 투여하여도 개선된다. 학습훈련 직후에 투여하면 다음날의 학습효과가 촉진된다. 그러나 학습훈련 수 시간 후에 투여하면 아무 효과도 없다.

(1)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기억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극히 단기간의 초단기기억 이다. 기억하려는 항목이 수 초 간밖에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달리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관을 1~2초 후에는 떠올릴 수 있으나 그보다 먼저 보았던 것은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 중에서 주의를 끌었던 사항은 단기기억 으로 옮겨진다. 단기기억으로 옮겨진 사항은 수 분 동안 유지된다. 이것은 불안정하여 다른 사건으로 인해 방해 받으면 곧 소실된다.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려고 할 때 그 번호를 마음 속으로 몇 번 되풀이하면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어 온다거나 공중전화에서 동전을 떨어뜨리게 되면 전화번호를 잊어 버리고 만다.

단기기억 속의 사항들은 장기기억 으로 이송될 수 있다. 여기서 기억은 수 시간 때로는 생애를 통하여 유지될 수 있다. 이 같은 기억의 이송에 필요한 뇌신경계의 하나가 해마이다. 사람에서 해마의 이 기능은 해마절제수술을 받은 H.M. 이라고 하는 환자의 예로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해마는 좌우 측두엽에 있으며 H.M. 이라는 환자는 심한 간질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양측 해마를 절제하였다. 이 환자는 수술 후 기억장애를 나타내게 되었다. 다음은 임상보고를 발췌한 것이다.

수술 후 H.M. 은 임상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전반적인 지능장애의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수술 전보다 지능이 약간 높았다. 그러나 현저한 기억장애가 계속되어 환자는 최근 수 년간에 경험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H.M. 은 수술 후 10개월째에 같은 동네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였다. 일 년쯤 지난 후 검사하였을 때 새로 이사한 집주소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였다. 혼자 두면 옛집으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6년 전에 다시 이사했는데 역시 현주소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사했다는 사실은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똑같은 퀴즈를 매일 반복해서 풀고 똑같은 잡지를 매일 반복해서 읽었다. 이같이 건망증이 심했는데 기억범위는 정상이었다. 하루는 584라는 숫자를 기억하도록 하라고 이르고 15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있게 한 다음 숫자를 대어보라고 하였더니 더듬거림 없이 숫자를 대었다. 그래서 "어떻게 숫자를 외웠는가?: 라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야 간단하지요. 8 만 기억하면 되거든요. 5, 8, 4 를 합하면 17 이고 8 을 기억해 내고 17 에서 8 을 빼면 9 가 되고 9 를 둘로 나누면 5 와 4 가 되니까 그래서 584 지요. 간단하지요."

이 같은 교묘한 기억술에도 불구하고 H.M. 은 그로부터 1분 후에는 584 라는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였고 이에 관련된 일련의 사고과정에 대해서도 기억해 내지 못하였다. 심지어 숫자를 기억하도록 하라고 하였던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건망증이 어떤 느낌이었는가는 H.M. 의 진술로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이상한 일을 했던지 이상한 말을 했지요?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이 나에게 분명한데 방금 전에 어떤 일이 있었지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기분입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다." 환자 H.M. 은 수술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억은 상실하지 않았다. 장기기억의 저장고에 있는 기억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기억이란 학습 후 일정기간 동안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2) 작업기억 (Working Memory)

이것이 없으면 이 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식당의 식단도 기억할 수 없으며 집을 찾아가는 길도 알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에서 결여된 것이 곧 작업기억이다.지울 수 있는 뇌의 칠판이라 할 수 있다. 이해력, 추리 및 계획수립에 필요한 정보, 예를 들면 음식값 또는 주위의 지도 같은 정보를 뇌에 잠시 동안 저장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작업기억은 잠시 동안만 작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행동, 언어 및 사고의 조직화에 필수적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작업기억은 지능 정도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것의 신경적 기전을 사람과 동물 실험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과거 20년 동안의 집중적인 연구로 작업기억은 뇌에 산재해 있는 여러 영역들의 협동을 필요로 하고 그 영역들은 기억해야 할 사물, 위치 또는 단어에 따라 정확한 자리가 정해졌다 는 것이 알려졌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기억과 학습 같은 뇌의 고위기능과 연관되어 있는 전전두엽 영역에서 작업기억의 합주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부위는 작업기억의 정보를 저장할 뿐 아니라 고위 추리와 관계되는 감각 영역의 활동을 조정한다. 작업기억을 좋게 하는 약은 노인들의 숙원이다. 23년 전 알란 배드리 (Alan Baddeley) 가 소위 단기기억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서 작업기억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행동심리학적 실험에 의하면 단기기억은 작업기억계의 일부이고 계획과 추리에 필요한 정보를 잠시 동안 저장하고 처리한다(그림 6).

그림 6  작업기억 모델

정상 또는 뇌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에 의하면 작업기억은 한 장소에만 저장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요소로 이루어진다. 즉, 언어 및 시각기억을 위한 두 가지 단기기억 완충 그리고 조직적 활동, 문제해결 및 계획수립을 위해 완충에 저장된 정보들을 취급하고 조정하는 관리역인 '중앙수뇌부' (central executive) 가 있다. 그러나 배드리는 이 같은 신경망이 뇌의 어느 부위에 형성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최근 원숭이를 이용한 전기생리학적 연구로 실마리가 잡혔다. 퍼스터 (Fuster) 는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전두엽피질에 대상의 위치에 관한 단기기억이 저장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를 얻었다. 우선 원숭이에게 모양이 같은 두 가지 대상을 보여 준다. 한 가지는 오른쪽에 그리고 또 하나는 왼쪽에 보여 준다. 그리고 한 쪽에는 사과조각을 둔다. 그리고 60초 동안 대상을 감추었다가 다시 보여 준다. 원숭이가 위치를 기억한다면 먹이가 있는 쪽을 잡을 것이다. 원숭이가 먹이가 있는 쪽을 기억하게 된 후 대상이 감추어진 동안 전전두엽피질의 국한된 지역의 뉴런이 전기적 활성을 나타냄을 관찰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결과를 작업기억과 연관하여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만으로 단기기억과 전전두엽피질의 관계를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실험으로 원숭이가 TV 화면 중앙의 한 점에 시선을 집중하고 화면 외곽에 잠시 동안 번쩍이는 네모의 위치에 주목하도록 훈련하였다. 수 초의 지연시간 후에 네모가 있었던 쪽으로 눈을 움직여서 기억하고 있는 네모의 위치를 나타내도록 하였다. 원숭이의 전전두엽 세포는 지연시간 동안에 활성을 나타내었다. 네모의 위치를 바꾸면 다른 세포들이 활성을 나타내었다. 한편 전전두엽과 여러 시각영역들에서의 신경활성을 기록함으로써 전전두엽의 일부는 대상의 인식을 위한 작업기억에 관련되고 또 다른 부위는 공간적 위치에 대한 작업기억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작업기억에 있어서 다목적 중앙통제기구는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1996년 사람의 신경영상기술을 이용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원숭이의 전전두엽에서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의 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알려졌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에 의하면 얼굴의 모양과 위치에 대한 작업기억은 서로 다른 전전두엽 지역과 서로 다른 감각영역에 관련됨을 알 수 있었다. 또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을 이용하여 공간 작업기억과 언어 작업기억이 서로 다른 부위에 관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개의 점의 위치를 기억하는 일에 있어서는 전전두엽의 특정 부위와 위치 감지에 관련되는 오른쪽 뇌에서 주로 활성을 나타내었다. 한편 네 가지 글자를 식별하는 일에는 언어의 생성과 감지에 관련되는 세 가지 부위의 왼쪽 뇌가 활성을 나타내었다. 이 중 두 부위는 전전두엽에 있었다.

사람의 뇌에서 공간, 대상 및 언어적 작업기억이 별도의 회로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나 이들의 전전두엽 회로가 절대적으로 별개인지는 확실치 않다. 원숭이에서는 위치에 관계되는 작업기억이 전전두엽의 특정부위인 영역 46에 관련됨에 강력하게 암시하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영역은 이전에 훈련을 통해 습득한 대상을 탐지해야 할 때 또는 정보의 종류에 관계 없이 동시에 주어진 여러 가지 정보 중에서 마음 속에 임의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때 항상 활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맡은 일이 열 가지라고 할 때 이 중에서 어느 것은 이미 완료되었고 어느 것은 아직 미결 상태인가를 파악해야 할 때 이 부위가 관계되는 것이다. 물론 전전두엽의 자세한 역할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 즉 전전두엽피질은 어떻게 세분되고 그들이 어떻게 총화를 이루는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기능의 하나는 정보의 온라인 저장일 것이라는 것이 사람의 뇌 영상연구로 제안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전전두엽피질의 활성은 다루어야 할 정보의 양에 비례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로 더욱 뒷받침된다. 산소 농도를 측정하여 뇌세포의 활성을 알아보는 방법의 하나인 기능적 자기공명영상법을 이용한 사람 뇌의 연구에 의하면, 보여 준 몇 개의 글자를 식별하고 순서를 기억하도록 하면 기억해야 할 글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에 비례하여 전전두엽영역 46의 활성도 증가하였다. 즉, 이 부위는 정보를 식별하고 순서를 마음 속으로 정하는 일에 관계된다는 것을 말한다. 뇌의 뒤쪽 영역들도 작업기억에 관계된다는 증거도 있다.

(3) 장기기억과 가소성 변화

어떻게 정보가 저장되는가? 단기기억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는 것같다. 한 가지는 시각의 잔영과 같은 대단히 짧은 단기기억으로 망막에서의 광화학적 처리가 잔영에 관계되는 것이다. 즉, 단기기억의 일부는 감각수용체 에서의 일시적인 물리적 변화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한 가지는 수 분에서 수 시간 동안 지속하는 약간 지속적인 단기기억이다. 후경직성 강화 또는 시냅스전 억제 같은 시냅스 전달기전의 단기간의 가소성 변화에 의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단기기억 기록기전에는 뉴런간의 흥분성 되먹이기 고리에 의해 유지되는 뉴런활성의 형태로 정보가 저장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뉴런활성은 폐쇄회로 안에서 순회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일정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다. 즉, 단기기억은 뉴런의 물리적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 단순히 진행 중인 뉴런활성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말한다.

장기기억은 어떻게 수 년 동안 저장될 수 있는가?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단기기억에서와 마찬가지의 역동적 변화가 장기기억에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장기기억에는 일종의 가소성 변화로 뇌에 지속적인 기능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간단한 실험으로 이 두 가지 가능성을 구별할 수 있다. 만일 모든 뉴런의 활성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면 역동적 기전, 즉 순회회로에 의한 기억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전신마취나 무산소증 또는 뇌의 냉각 등으로 뉴런의 활성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단기기억 또는 최근의 기억은 사라지게 할 수 있으나 오래된 기억은 유지된다. 따라서 오래된 기억은 역동적 변화에 의한다기 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에 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그러면 기억은 뇌의 어느 곳에 저장되는가? 파브로브는 모든 학습과정이 신피질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신피질의 병변에서 심지어는 수술적인 뇌와 척수의 분리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학습과 기억이 뇌의 어느 특정 부위에 국한하여 위치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같다. 정보의 특성에 따라 신피질은 물론 척수에 이르는 신경계 모든 부위에 기억저장에 필요한 가소성을 갖는 뉴런들이 분포하고 있다. 아주 단순한 학습에서도 정보는 병렬통로를 통하여 뇌의 여러 장소에 분산 저장된다. 이 같은 병렬처리방식 때문에 국한된 뇌손상이 있을 때 특정 학습효과가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 제한된 부위의 뇌손상이 있더라도 특정 사건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 또 학습의 일반화라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즉, 애초에 학습과정에 사용되었던 자극과 약간 다른 자극으로도 학습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학습이란 단순한 자극-반응 결합형성이 아니며 감각경험의 단순한 재생도 아니다. 학습이란 특정 뉴런의 가소성 변화에 의한 것이지만 이 같은 뉴런은 신경계에 널리 분포한다. 따라서 뇌손상이 부분적으로 있다하더라도 가소성 변화를 일으킨 일부 뉴런은 남아 있게 된다. 더구나 뇌는 일부 남아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원래대로 재생시키는 능력도 있다.

소뇌와 측두엽에서의 연구에 의하면 반사기억과 서술기억은 뇌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신경회로가 담당한다. 편도핵이 손상되면 심박반응 조건화에 장애를 일으키는데, 반사궁의 운동신경말단에 인접한 신경경로의 차단에 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리자극에 이어 눈에 바람불기를 반복하면 소리자극에 의해 순막반사 (눈 깜짝이기) 조건화가 형성된다. 소뇌의 내측치상핵외측중간핵에 국한한 손상이 있으면 이 조건반사가 사라진다. 그러나 바람에 의한 무조건반사는 지장이 없다. 이것은 순막반사의 조건화에 소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을 의미한다.

측두엽이나 간뇌의 손상은 서술기억에 현저한 영향을 미친다. 1차적으로는 새로운 기억의 유지가 장애를 받는다. 이미 저장된 기억은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이들 구조는 기억장소라기보다는 기억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과정에 관계되는 구조라 하겠다. 신경외과의사인 펜필드는 심한 간질환자의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측두엽 절제술을 시행하면서 각성상태인 환자의 노출된 측두엽을 전기적으로 자극하였다. 측두엽의 한 부위를 자극하였더니 환자는 과거에 들었던 일이 있는 멜로디가 들린다고 하였다. 잠시 뒤에 같은 장소를 다시 자극하였더니 똑같은 멜로디가 들린다고 하였다. 기억에 있어서의 측두엽의 역할은 측두엽에 있는 구조의 하나인 양측 해마를 절제한 간질환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환자는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기억은 잘 유지된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다거나 대화방법에는 지장이 없다. 단기기억 자체에도 별 지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단기기억의 장기기억으로의 이행에 결정적 결함을 나타낸다. 대화 도중 잠시 방을 떠났다가 다시 들어와 대화를 계속하려면 잠시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해마는 기억의 고정과정에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억의 고정이란 뇌가 정보를 구조화하고 재체제화하여 영속적인 기억의 일부로 만드는 생리학적 및 심리학적 변화를 말한다. 해마에 국한하는 뇌손상은 산소결핍증 후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같은 환자에서 건망증이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에서 허혈에 의한 해마의 신경세포손상이 건망증에 민감한 과업 수행에 지장을 초래함이 알려졌다. 반사기억에 속하는 재주기억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서술기억에는 장애가 나타났다. 즉,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학습하고 기억할 수는 있어도 세상사를 기억하는 데에는 장애가 있다. 해마에 인접한 대뇌피질에 손상이 있어도 비슷한 기억장애가 나타난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정신병인 콜사코프정신병에서도 해마손상의 경우와 비슷한 건망증을 볼 수 있다. 이 경우 심한 기억장애와 함께 전두엽 기능장애를 나타낸다. 그리고 대뇌변연계에 속하는 간뇌에 병변을 나타낸다. 특징적으로 시상하부의 유두체와 시상의 내배측핵에 손상이 있다. 이들 환자에서는 반사기억에 속하는 예비화라는 현상에는 지장이 없으나 서술기억에 속하는 의미기억에는 장애가 나타난다. 동물실험에서도 내측시상의 광범한 병변은 사람의 건망증과 비슷한 학습장애를 나타낸다.

측두엽이나 간뇌에 손상이 있는 환자는 서술기억에 관계되는 과업수행에는 장애가 있으나 반사기억에 관계되는 과업은 잘 수행한다. 학습과업이 두 가지 형에 모두 관련될 경우는 문제의 일부 측면은 기억하나 다른 측면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복잡한 재주를 구성하는 법칙이나 절차의 학습이 불가능하다. 즉, 이 건망증환자에서는 기억의 저장과 인출을 돕는 기억저장계와 인식중개계 사이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4) 기억의 고정

해마와 측두엽의 내측에 기억의 고정과정 역할을 담당하는 부위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 기억의 고정이란 뇌가 정보를 구조화하고 재체제화하여 영속적인 기억으로 만드는 생리학적 및 심리학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정보가 일단 장기기억으로 들어온 후에도 정보의 일부는 변화받는다. 또 재체제화된 것이 영속적으로 보존되도록 되기 전에 망각될 수도 있다.

재구조화의 단순한 예를 들자면 문자를 처음 배울 때 ㅏ 와 ㅓ 를 구별하기 위해 점이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일단 문자의 인식이 이루어지면 재구조화된 기억에 의해 그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아도 문자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해마와 측두엽의 내측부는 영속적 기억장소라기보다는 기억의 형성이나 발달에 관여한다. 해마를 절제한 환자나 심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전기충격요법을 받은 환자에서 처치 이후의 사건에 대한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 그 증거의 예이다.

(5) 기억 단계에서의 반사기억과 서술기억뇌는 두 가지 종류의 정보를 별도로 처리하여 그 각각을 별도로 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반사 또는 절차기억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이다. 서술기억은 개인의 과거 경험에 대한 명료하고 접근 가능한 기록으로서 그 경험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서술기억은 측두영역과 시상의 일부에서 처리된다.절차적 학습은 서술적 학습보다 계통 발생적으로 먼저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학습했다는 자각이 없이도 생기는 습관화나 민감화 또는 고전적 조건화는 절차학습의 구체적 예이다. 반사기억은 그 절차에 직접적으로 관련하는 신경회로에서만 일어나는 생화학적 및 물리학적 변화에 기인한다는 것을 군소의 습관화나 해우의 고전적 조건화의 예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서술기억에서 일어나는 신경회로의 재구축이라는 것은 이와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어린아이들은 유아기나 아주 어린 아동기에 경험했던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어른이 되면 잊어 버린다. 사람은 초기 2년간을 인지발달의 감각운동기라고 한다. 물건을 잡으려면 손을 어떻게 써야 하고 걸음마를 하려면 근육이 어떻게 협동적으로 일해야 하고 중력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또 멀리 있는 물건과 가까이 있는 물건의 상대적 크기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등을 학습한다. 유아의 사물에 대한 지식은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에 한정된다. 즉, 유아에 있어서 사람이나 물건은 그것에 대해 유아가 행한 감각운동행위에서 독립된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절차학습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는 물건이나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할 수 없으므로 서술적 기억이 불가능하다. 두 살이 지나서 물건이나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어 소위 자기가 성립하게 된다. 그래서 사물을 마음에 두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유아의 사고는 논리 이전의 것이므로 성인과는 달라서 어른이 되면 잊어 버리게 된다.기억과 그것의 인출을 돕는 기억술이라는 것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그리스의 웅변가가 발명했다는 장소법이다. 어느 친숙하며 낯익은 장소를 마음 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연설하려고 하는 내용의 요점과 중요한 어휘를 그 장소의 길을 따라 늘어 놓는다. 연설에 임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 거리를 걸으며 어휘들을 늘어 놓았던 장소를 찾아 기억했던 어휘를 상기한다. 서술기억의 정보를 구조화하기 위해 절차적 학습법을 가미한 것이다.

2개의 댓글

2014.01.23
그래서 어쩌면 기억오래가는지 요약좀
0
2014.01.24
@번째 사정
반복해서보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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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과학] 경계선 지능이 700만 있다는 기사들에 대해 34 LinkedList 12 18 일 전
562 [과학] 번역)새들은 왜 알을 많이 낳는가? - 후투티의 형제살해 습성... 7 리보솜 3 2024.03.23
561 [과학] 학계와 AI, 그리고 Bitter Lesson (쓰라린 교훈) 26 elomn 35 2024.02.17
560 [과학] 지구의 속삭임, 골든 레코드의 우주 9 Archaea 10 2024.02.16
559 [과학] 잔혹한 과학실험 이야기 <1> 절망의 구덩이 19 개드립하면안됨 37 2024.02.15
558 [과학]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이 땡기는 이유 12 동식 16 2024.02.10
557 [과학] 지능은 모계유전이 아니다. 40 울릉특별자치도 35 2024.01.26
556 [과학] 진화를 생각할 때 고려할 것들 23 날씨가나쁘잖아 12 2024.01.17
555 [과학] 학문적(과학적) 접근과 유사 진화심리"학" 26 날씨가나쁘잖아 19 2024.01.15
554 [과학] 호모 사피엔스의 야릇한 은폐된 배란에 대한 남녀 학자의 다... 14 개드립하면안됨 15 2023.12.29
553 [과학]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느낀 점 (스포있음) 21 장문주의 2 2023.11.28
552 [과학] 제4회 포스텍 SF 어워드 공모전 ( SF 단편소설 / SF 미니픽션 ) 2 따스땅 1 2023.11.25
551 [과학] 펌) CRISPR 유전자 가위 치료제 "최초" 승인 12 리보솜 7 2023.11.25
550 [과학] 러시아는 기술산업을 어떻게 파괴시켰는가(펌) 9 세기노비는역사비... 15 2023.11.18
549 [과학] 고양이에 의한 섬생태계 교란과 생물 종의 절멸 (펌) 2 힘들힘들고 6 2023.11.16
548 [과학] 번역) 알츠하이머병 유전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12 리보솜 10 2023.11.15
547 [과학] 『우영우』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개념이 왜곡인 이유 (펌) 47 힘들힘들고 10 2023.11.12
546 [과학] 흑수저 문과충 출신 구글 취직하는 파이썬 특강 -1 14 지방흡입기 11 2023.09.27
545 [과학] 국가별 당뇨 유병율 이거 뭐가 바뀐건지 아는사람? 8 LAMBDA 1 2023.09.27
544 [과학] 물샤워 ㅇㅈㄹ 하는 놈들 봐라 171 철동이 48 2023.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