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이유 (왜 우리는 미루는가?)

 

1.

 

내가 '자유의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귀찮고 하기 싫을 때이다.

 

예를 들어, 새해 목표로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러닝하기'를 계획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첫 2~3일은 계획을 별 어려움 없이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4일쯤 되는날 아침

알람을 듣고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지금 일어나야 돼'

'2~3일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1시간만 더 잘까'

 

10분여간 내 자신과 싸우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이 순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과,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내가 더 자고 싶은 유혹에 무릎꿇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이것은 나의 '자유 의지'인가,

"쉬고싶다"고 외치는 나의 뇌파 신호로 인해 필연적으로 결정된 미래인가?

 

만약 내가 더 많이 고민하고,

내 건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면 나는 일어날 수 있었을까?

 

 

 

2.

 

자유의지에 관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피험자가 왼손에 있는 버튼과 오른손에 있는 버튼 둘 중

본인이 선택해 하나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실험이다.

 

연구자는 

피험자가 왼손/오른손을 선택하기 '약 10 초' 전에 이미

피험자의 뇌에서는 '선택'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 됐으며,

'약 5초 전'에는 움직일 손을 관장하는 운동 뉴런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연구자는 운동 뉴런의 활성 패턴을 보고

피험자가 약 5초 후 어떤 버튼을 누를지 예측도 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피험자 본인은 본인이 왼쪽/오른쪽 버튼을 누르는 것을

'방금 선택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아래와 같은 시사점을 준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인간은 기계처럼 주변 환경에 반응해 화학신호를 내뿜는 존재이고,

인간이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자동적으로 발생한 행동에 대해서

본인이 '사후적인 해석'을 곁들인 것에 불과하다"

 

 

3.

 

위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내가 침대 위에서

 

'일어날까'

'일어나지 말고 더 잘까'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내일 더 열심히 뛰면 상관 없지 않을까'

 

고민했던 시간은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이미 내가 침대에 누워서 1시간 더 자기로 한 결정은

나의 뉴런 신호에 의해 한참 전에 결정 되어있었으며

 

나는 대뇌피질을 활용해 

그럴듯한 선택의 명분을 뒤에 갖다 붙였을 뿐이다.

 

 

4.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포기해야 하는가?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만큼 의지가 강력한 사람

운동은 운동을 할 수 있을만큼 의지가 강력한 사람만 할 수 있는가?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할 지/실패할 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다양한 변수가 상호작용하며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것은

주변 환경과, 나의 감정, 상황에 다양하게 영향받으며,

나의 선택은 내 주변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대신, 나의 감정과 주변 환경을 컨트롤 하면

나의 선택도 컨트롤 할 수 있다.

 

 

5.

 

예를들어,

 

알람 시계를 화장실에 두고 자보자.

 

아침에 일어나 알람 시계를 끄러

화장실에 가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난 것이 된다.

 

어차피 화장실에 가 있으니

샤워하는 것은 쉽고.

다시 침대로 놀아가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것 보다

러닝을 하러 나가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다음으로,

 

내일 오전 러닝을 앞두고 잠에 들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2가지를 떠올려 보자.

 

"내일 아침 내가 러닝 나가는 것에 성공하면, 나는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긍정 정서)

"내일 아침 내가 러닝에 나가는 것에 실패하면, 나는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부정 정서)

 

내일 일어날일에 대해서

내가 느낄 감정을 구체화하고, 생생하게 만들면

다음날 오전 침대에서 일어나 러닝을 나가게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우리의 선택은 뇌의 신호에 결정받으며

뇌의 신호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강하게 종속되기 때문이다.

 

 

6.

 

위에서 언급한 심리학 실험의 결과를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1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알람시계를 화장실에 놔둠으로써,

잠들기 전에 내일 일어날 일을 '생생하게' 상상함으로써

내가 내일 오전 러닝을 나가게 될 확률을 높였다면

 

이것은 자유의지가 아닌가?

나의 행동이 환경에 종속되기는 했으나, 

순전히 내 논리적인 정합성 만으로

내일 아침 나의 행동을 이끌어낸 것이다.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다.

 

 

 

51개의 댓글

2022.03.13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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