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풋풋하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 - 上 -

솔직히 따로 첫사랑이라고 할 만한 썰은 없어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첫사랑' 이라는 낱말 자체가 무색해질정도로 퇴색한 감정이었거든,


내가 처음으로 연애를 하려고 마음 먹은 그 자세 자체가 많이 어긋났어

난 그냥 '연애, 여자' 이런 호기심에 연애를 하게 됐지.


그냥 좀 반반하다 싶은 여자를 찾았어 나한테는 조금 과분하다 싶은 여자.

그리고 특정한 인물이 타겟팅 되면 적절하게 밀고 당겼었던거 같아 치밀한 계획으로.


첫번째 타겟은 일전에도 익게에 한번 간략하게 푼적이 있는 고등학교 한학년 선배였어.

난 1학년이고 그 누나는 한 학년 위였는데 알게된건 내가 수학여행을 가서야.


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원래 사람을 별로 안좋아하거든, 그래서 친구가 적었어.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같은반 녀석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 사진이 있길래 물어봤어 누구냐고.


자기네 동아리 선배라고 하더라고. 음악계통인거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그래서 다짜고짜 전화번호부 들어가서 아까 말해준 이름으로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지.


꽤 긴 신호음에 끊으려는 찰나에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엄청 취해있었어. 저녁이긴 했지만 학생이 자유로이 술을 마실 정도로 너그러운 시간대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만취였어.


이미 꼬부라질대로 꼬부라진 혀는 짧은 소리를 내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소리에 눈앞이 진짜 아찔해지더라고.

그땐 스마트폰도 아닌데 아까 본 사진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표정없던 사진이 심지어 웃으며 말을 하는것처럼 보이더라.


알고보니 2학년도 수학여행을 갔고 거기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나랑 통화를 했었던 모양이야.


상대쪽이 술이 취해 있어서 그런지 거칠거 없이 내 소개를 하고 전화하기까지의 자초지종을 억지로 주입 설명 시켰지.

그리고 '누나 취했다. 목소리 이뻐. 내일 내 전화로 전화할게' 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난 그날 결국 잠에 들지 못했어.


정말 유년기에나 있을법한 초등학교 소풍날 앞둔 놈 마냥 잠이 너무 안오는거야.

이왕 잠 안오는거 내일 전화해서 어떻게 얘기해야 연애 할 수 있을지 생각할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어.


복도에 조교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조용히 천천히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문을 열고 나갔는데 조교는 보이지도 않더라.


그래서 3층에 있던 나는 1층 매점 뒤뜰 산책로로 내려가려고 복도를 가로 질러 지나가는데 몇몇 방에서는 야릇한 소리도 들리더라고.


왠지 괘씸해서 복도 맨끝 계단쪽에 있는 마지막 방을 지나는데 역시 야릇한 소리가 들리길래 조교인척하고 문을 강하게 두들기고는

닌자 같은 빠르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왔어.


그리고 매점 앞을 지나가는데 인형 뽑기가 보이더라.

그 누나를 쏙 빼 닮은 곰인형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거야.

'저거 뽑아서 주면 좋아하겠다. 아니 좋아해야 돼.' 라고 생각하고서는 칠천원이라는 자본으로 무려 십사회만에 뽑았어.


솔직히 나도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때만큼 기뻐했던거 같아. 아무도 없는 은은한 조명의 산책로에서 세레머니까지 했으니까.


그리고선 생각 좀 해보려는 찰나에 해가 떠서 난 다시 방으로 돌아갔고 너무 정신 없는 수학여행 스케쥴 덕에 잠깐 누나를 잊고

수학여행만을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되어 버린거야.

제주도에서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 눈에 잘 담아 가려는데 기념품이 눈에 들어왔어.


크리스탈 공예품중에 하나였는데, 전체적인 틀은 정육면체였지만 어떻게 한건지 알 수 없는 기술로 크리스탈 안쪽 중앙에 작은 점들이 하늘의 별처럼 수놓여져 하트 무늬를 이루고 있는 그런 아주 작고 약해보이는 기념품이었어. (이미지는 찾아봤는데 안나오네.)


이거다 싶어서 바로 적절하지 못한 기념품 바가지 금액을 제시하고서는 조금 기다리니까 빨간색 보드라운 천으로 감겨진 반지 케이스 같은 곳에 담아주길래 순간접착제 하나 사서 누나닮은 인형의 양손에 붙여서 인형이 들고 있게 만들었어.


나름대로 이정도면 귀엽다고 만족하고서는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울로 다시 왔지.


비행기에서 정신 놓고 자다가 잠깐 깨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정신 놓고 잠들었어.

그리고선 드디어 학교앞에 도착했고 난 전화기 먼저 들었어.


저장해놓은 누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

전화기 신호음 비트에 맞춰서 내 헕빝도 빠르게 뛰더라. 단순히 연애가 목적이었는데도..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에서 누나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고,

좌절해 있었더니 문자가 한 통 왔어.

'미안, 창피해'

약 3초간 다운 되었던 내 심리상태는 급변해서 그 날 하루종일 '귀엽다'를 연발했고,

그렇게 내 기분과 같이 빠르게 하루가 흘러 드디어 학교를 가게 된거야.


당시 한창 멋부리는거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던 시기의 나는 괜시리 집에서 등교길에 나서기 전 머리에 왁스를 발랐다 빨았다를 무려 다섯번이나 하고나서야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 수 있었어.


학교를 가는길에 장미꽃 한송이와 수학여행에서 준비한 곰돌이녀석을 양손에 들고 정문을 통과하다가 장미꽃이 꺾일때까지 선생님께 맞고

굉장히 암울해진 상태로 교실에 들어갔어.


장미꽃을 대신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심 고심하다가 친구녀석한테 물어봤지.

'누나가 좋아하는게 뭐냐?'

그녀석은 한참 고민하더니 뭐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빼빼로!!' 라고 대답했고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점으로 뛰어갔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 내킴을 막지 못하고 지갑에 있는 팔만 사천원을 매점 아주머니께 건네며

매점에 있는 빼빼로를 모조리 사재기 했어.

어마어마하게 큰 비닐봉지에 가득 빼빼로를 담고 서슴없이 2층의 남녀분반 잘 되어 있는 선배들의 틈으로 올라갔지.


그리고 서슴없이 누나 반의 앞문을 박차고 들어갔어. 꽤 패기있게.

딱 한마디와 함께,

'OO누나! 어딨어?'


난생처음 인실좆을 당했지. 사방에서 크큭대는 소리가 들리더라.

꽤 떡벌어져 입장했던 내 어께는 조금씩 수그러 들었고 비로소 쥐구멍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슬금 슬금 뒷걸음질 칠때 즈음 어디선가 들려왔어.

'OO이 지금 없는데?'

그리고 방청객 리액션 수준의 웃음이 빵 터졌고 그 웃음에 나도 실소를 해버렸어.


내 실소가 끝나자 이성의 끈이 갑자기 내 손 위에 놓여져서 바로잡고 선배님들께 예의를 차렸지.

'죄송합니다..'

교탁위에 빼빼로와 곰돌이를 올려놓고 선배님들께 한말씀 더 올렸지.

'OO이 누나 꺼에요!'


그 한마디와 함께 내 그림자가 날 쫓아오지 못할 속도로 앞문을 벗어나 복도로 나와서 그제서야 몰려오는 쪽팔림 덕에

복도에 풀린 다리로 앉아 있었어.


그때!


뒷문이 열리면서 'OO아..' 라고 누나가 날 부르는거야.


이미 풀린 긴장은 다시 추스리기 어려웠는지 누나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난 교실로 뛰어갔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뛰어가다 방향을 틀어서 교문 밖으로 향했어.

그리고 교문을 지나쳐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면서 걸어서 집을 가려는데 전화가 왔어.


누나였어.

딱 한마디하고 끊더라고.


'나 오늘 집에 대려다 줘'


당당하게 교문을 다시 넘어서 교실로 들어갔지. 선생님한테 그날 학교가 마칠때까지 맞고 반성문을 썼고.

학교가 끝나는 종과 함께 또 난 뛰었어. 누나와 뒷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누나집은 경기도 분당이었어. 난 분명 서울 동쪽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누나의 집은 경기도 분당이 집이더라고.

그 와중에 멀어서 좋다고 히죽 히죽 대니까 누나가 입을 때더라.


'고마워.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어'


누나의 말이 끝나고 나도 입을 땠어.


'누나가 좋아. 연애 하자.'


배드 타이밍이었지. 너무 급했어. 마음만 앞선 어린 청소년의 패기였던거지.

누나는 눈썹을 사람 인자로 만들더니 그 크고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어.


'자, 차비해.'


만원 짜리 한장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미안하다며 누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갔고, 나는 미처 그 길을 따라 걷지 못했어.

그자리에서 3시간을 가만히 서서 눈에 밟혀 지워지지 않는 누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봤지.

5개의 댓글

첫사랑팬
2013.06.10
이게왜 무플이야 재밋어재밋어 하편써주세요
0
HA
2013.06.10
@첫사랑팬
헤헿 감사요.
0
첫사랑팬
2013.06.11
@HA
현기증난단말이예요....
0
2013.06.11
하편 기다리고 있자나
왜 안써
0
기묘한 이야기 라서 읽었더니 그냥 사랑이야기네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063 [기묘한 이야기] 살면서 겪어본 기묘한 체험 3 로또당첨예정자 3 2024.04.07
1062 [기묘한 이야기] [실화] 아직까지 뭔지 모르겠는 경험 하나 10 오골닭 7 2024.04.05
1061 [기묘한 이야기] 우리 가족 가위눌린 썰 8 사딸라 6 2024.03.30
1060 [기묘한 이야기] 일본 멘헤라 아이템에 대해서 알아보자 24 Overwatch 19 2024.03.13
1059 [기묘한 이야기] 해태 타이거즈의 똥군기 썰.txt 18 군석이 12 2024.01.01
1058 [기묘한 이야기] 소설: 테이블에 남은 빵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며 1 유미주의 2 2023.12.05
1057 [기묘한 이야기] 미얀마 범죄조직의 중국공안 생매장 사건 (펌) 6 세기노비는역사비... 12 2023.11.19
1056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 새시즌 언제 나오냐고! 레몬진7도는너무강해 0 2023.10.03
1055 [기묘한 이야기] 이런 내용의 이야기 아는사람? 5 장규진 1 2023.09.14
1054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그림 5 월급받으며개드립하기 5 2023.08.12
1053 [기묘한 이야기] 삼각형 UFO 목격한 개붕이는 봐라 41 서대문개고기김 18 2023.08.11
1052 [기묘한 이야기] 해병대썰 3 - 긴빠이와 기수열외 6 파닭파오리 6 2023.08.01
1051 [기묘한 이야기] 죽음만이 가득한 세상 3 VIPS 2 2023.07.28
1050 [기묘한 이야기] '머리없는시신' 훗카이도 삿포로 용의자가족 체포 12 물속티슈뚜껑 8 2023.07.27
1049 [기묘한 이야기] 일본에서 사라지는 한국인들.. 15 물속티슈뚜껑 12 2023.07.26
1048 [기묘한 이야기]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 6 정공 4 2023.06.24
1047 [기묘한 이야기] 사망 9일만에 백골이 되어버린 사건 11 불소주 18 2023.06.11
1046 [기묘한 이야기] 어떻게 된 일이지? 2 84738 1 2023.06.10
1045 [기묘한 이야기]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가끔 생각함 48 REDPILLER 10 2023.05.19
1044 [기묘한 이야기] 이상한 sf 꿈 꾼 얘기 2 푹신푹신 7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