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물결이 느리게 전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모두 작은 불덩이들이다. 소녀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것들은 모두 영주의 성을 향하고 있었다. 소녀의 여윈 뺨 위로 눈물이 흐른다. 바람이 불자 소녀의 머리를 모두 덮은 모자가 흔들리며 벗겨졌다. 덕분에 가려졌던 시야가 훤히 트였다. 불빛들은 숲까지 밝힐 정도로 큰 물결을 이뤘다.
소녀는 처음 검을 쥐었을 때를 떠올린다. 훌륭한 검사였던 소녀의 아버지는 두려움을 잊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굳은살이 박힌 오른손이 가늘게 떨린다. 이윽고 그것은 어둠을 가른다.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팍을 가볍게 내리친 소녀는 고개를 든다.



"샤무…샤무는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내가 알기로는 영주의 성문 앞에서 성난 사람들의 발에 깔려 죽어버렸지."

배를 움켜쥔 소녀가 포효한다. 고통에 찬 비명에 샤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죽여버릴 거야. 네 놈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뽑아 어금니로 씹어먹을 거야."
"취향이 독특하구나."

샤무는 유쾌하게 웃으며 피를 울컥 쏟아내는 소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자를 향해 소녀는 저주의 말을 짓씹었다. 부러진 검을 쥔 소녀의 손이 고통으로 떨린다. 샤무는 소녀의 턱을 움켜쥐고 난폭하게 입술을 맞댄다. 소녀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비명을 힘껏 지른다. 뜨끈한 혀가 안쪽으로 발을 들이자 소녀는 입을 떼려 비명을 지르고 안간힘을 쓴다. 뒷목을 붙잡은 샤무의 손은 단단했다. 이와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내며 소녀의 입에서 샤무의 입으로 둥글고 단단한 것이 옮겨간다. 그제야 샤무는 소녀를 놓아주었다. 오랜 시간 숨을 쉬지 못해 크게 헐떡거리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구슬을 제 손에 뱉어낸 샤무가 혀를 찬다.

"코는 냄새만 맡으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샤무의 손 안에서 새빨갛고 큼지막한 구슬이 바닥으로 낙하한다. 샤무가 그것을 발로 밟자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간다. 소녀는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칼에 관통 당한 상처가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져 소금에 버무려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만! 그만!"

소녀의 첫 애원에도 샤무는 구슬 위로 더욱 체중을 실었다. 결국 구슬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색색거렸다.

"내 이름은 알아도 소용이 없어. 대신 내가 올라앉은 자리를 말해주지."

소녀는 흐린 눈동자로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고 남자의 입을 노려본다. 입술이 달싹거리며 오므라들고, 검은 안개가 남자의 몸을 휘감는다. 소녀는 남자의 입술이 움직였던 것처럼 제 입술을 움직인다.

마왕.



졸라 잘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