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손에 꼽을 만큼 남았다. 정신차려 보니 어느새 이십대 중반이다. 잠시 멈추어 뒤를 보니 몇 발자국 가지 않았음에
안도감과, 불안함을 느낀다. 아홉수인 형님이 말한다. 아직 서른은 아니잖아. 에이 그래도 액면가는 제가 더 많습니다. 서로 껄껄
거리며 잔을 부딪힌다. 동생의 푼수없는 농임을 형님은 아실 것이다. 그렇게 새벽녘이 되서야 각자의 발걸음을 옮긴다. 불꺼진
집에 가는 길에 진눈깨비가 날린다. 실없는 입김을 담배로 덮는다. 아직 갈 길이 남아있구나. 아직 갈 길이 남았구나.
복학
이란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 지겹다고 느꼈던 대학은 갈꺼니? 라는 물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 말은 동생에게
옮겨갔다. 녀석은 그림을 그린다. 난 녀석의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녀석도 내 글을 본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말이 없어졌다.
문은 자연스레 서서히 닫혔다. 집 안 모든 방 문은 닫혀있다. 티브이 혼자만 본인의 얼굴을 비춘다. 모든 가족이 오순도순할 수 없다.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의 가족이 언제부터 부럽지 않다. 보지 않으면 남이다. 가족에게도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어렸을 때
부터 방문을 걸어잠그는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아는 것이 무엇일까. 란 생각이 자주 든다. 교복을 입던 시절. 생활국어를 무척이나 싫어 했다. 문법을 싫어했다. 그런 놈이
글 쓰겠다며 몇 자 끄적이는 것이 현실이다. 배움은 없이 무딘 본능만이 간신히 문장을 붙잡는다. 천부적? 우스운 소리다.
자존감보단 자괴감이 더 강하다. 더하여 쓰는 것 보다, 깎아서 쓰는 것이 더 편하다. 내 삶은 죄로 이루어져 있어, 몇 자 쓰는 이
행위마저 더하여진다면. 커질대로 커진 이 삶이란 종양은 그대로 터져버리겠지.
구월에 단편 하나를 완성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든 생각에 다시 백지를 마주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한 달이다. 제목은
아무렇게나 지었다. 나중에 고쳐쓰면 되겠지. 다만 이야기가 길어진다. 에이포 열장짜리 단편을 끙끙거리며 썼던 기억이 난다.
볼품없는 엽편만 주구장창 썼던 시절. 지나간 햇 수 만큼 죄가 더 많아졌음을 손 끝이 저릿하도록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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