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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괴물 후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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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中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정황이 한 사람의 악의를 증명하고 있기에 확신을 가졌건만, 억울한 사람이었던 경우. 내가 지목했던 모든 근거는 우연의 산물이었으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상황이 덧붙여져 불행한 한 사람의 피해자를 만들어낸 경우. 소문과 개인적인 근거는 타인을 너무도 쉽게 악마화하고, 이슈로 삼는다. 그리고 이 오해가 극단에 치달았을 때는, 우리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서서 '몰랐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싱글맘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에게서 이지메의 흔적을 발견한다. 머리를 갑자기 잘라버리는 모습, 갑자기 사라진 신발, 사방에서 발견된 흙과 물통에서 튀어나온 흙덩이. 아들을 누군가 괴롭힌다는 확신에 찬 사오리는 아들에게서 '호리 선생님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증언을 듣게 된다. 이에 교무실을 찾아간 사오리. 하지만 교무실에서 들리는 것은 형식적이고 반복적인 사과의 말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오리에게 사과만 반복하고 반성할 생각은 없는 이 교사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처럼 보일 뿐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이런식이다. '나'의 관점에서 악마처럼 보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확실한 근거와 정황이 사람 하나를 악마로 만들고 있지만, 다시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자기 아들의 팔을 꺾고 폭언을 일삼은' 호리 선생님은 싱글맘 사오리에겐 악마같은 존재다. 하지만 무고에 휩쓸린 호리 선생님에게 싱글맘 사오리는 몬스터 페어런츠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근거를 가지고 타인을 악마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 되는 과정 속에서,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주된 플롯뿐만 아니라 곁가지로서 계속해서 타인을 악마화하고, 이를 해소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걸즈바에 드나든다던 호리 선생님은 그냥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던 선량한 피해자였다. 교장은 자기 손녀를 사고로 치여죽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나토는 요리를 괴롭히는 불량학생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괴물화하는 과정 속에서, 모두가 좋은 면이 있고, 복잡한 사람이란 사실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의미를 가지는 사실들은, 타인의 관점에서 보이는 '악의' 뿐이다. 악의만이 인물의 행적을 증명하고 이끌고, 뒤틀어낸다. 그리고 이 뒤틀린 세상 속에 떨어진 두 소년은 당연하게도 뒤틀린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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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 두 소년은 서로를 마주보며 동물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한다. 호시카와 요리는 친구 미나토에게 힌트를 준다. 

 

 

"이 동물은 누군가에게 고통받아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놓아버립니다."

 

 

미나토는 이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호시카와 요리입니까?"

 

 

 

 

나는 이 영화의 일본판 포스터를 참 좋아한다. 왜곡된 상 앞에 서있는 두 소년의 모습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평범한 사람도 괴물처럼 보인다.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던 그 일그러진 상처럼, 우리는 서로를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비틀린 세상 속에서, 두 소년이 태어나고 자랐다. 일그러진 풍경을 보고 자란 소년들은 어느새 괴물이 되어 다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결말부에 이르렀을 때, 지금껏 타인의 악의를 담던 카메라는 소년들의 모습을 비추다 말고 빛에 가려진다. 

 

 

소년들이 어디까지 달려가는지, 어느 곳으로 향하는 지 우리는 그 마무리를 볼 수 없다. 

 

 

악의를 담아내던 카메라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마저 왜곡하기 마련이기에.

4개의 댓글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감정이 진정한 후기이지 않을까, 요즘 후기라고 적는 것들을 보면 해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거 보다가 이거 보니까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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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요리 너무 기여움

0
2023.12.06

난 진짜 괴물을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음. 부국제 야외상영으로 처음 볼 때 그 때로 진심 다시 돌아가고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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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마법사

와 진짜 부럽다. 글로만 들었는데 분위기가 영화랑 싱크 되었던 그 순간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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